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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百濟

북사 사이전 北史 四夷傳 · 이연수(李延壽) · 659년 (당 현경 4) · 단락 10 · 한자 2,022자 · 낭독 8.1분

「북사 사이전」 한 권 「백제」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북조 네 왕조가 본 동방. 알에서 난 주몽 신화의 온전한 꼴, 장수왕 백 년의 외교(혼삿말과 딸의 죽음), 개로왕의 표문, 그리고 물길·거란·실위·유구·왜까지 열네 갈래 — 수 양제의 패망을 「덕을 넓히는 자는 창성하고 땅을 넓히는 자는 망한다」로 맺는다.

1동명과 구태

百濟之國,蓋馬韓之屬也,出自索離國。其王出行,其侍兒於後妊娠,王還,欲殺之。侍兒曰:「前見天上有氣如大雞子來降,感,故有娠。」王舍之。後生男,王置之豕牢,豕以口氣噓之,不死;後徙于馬闌,亦如之。王以爲神,命養之,名曰東明。及長,善射,王忌其猛,復欲殺之。東明乃奔走,南至淹滯水,以弓擊水,魚鱉皆爲橋,東明乘之得度,至夫餘而王焉。東明之後有仇台,篤於仁信,始立國于帶方故地。漢遼東太守公孫度以女妻之,遂爲東夷強國。初以百家濟,因號百濟。

백제국은 대개 마한에 딸린 나라니 색리국(索離國)에서 나왔다. 그 왕이 출행한 사이 모시는 아이가 뒤에서 아기를 배니, 왕이 돌아와 죽이려 하였다. 아이가 「지난번 하늘 위에 큰 달걀 같은 기운이 내려오는 것을 보고 감응하여 아기를 배었습니다」 하니 왕이 놓아주었다. 뒤에 아들을 낳으니 왕이 돼지우리에 버렸으나 돼지가 입김을 불어 죽지 않았고, 마구간에 옮겼으나 또한 그러하였다. 왕이 신령하다 여겨 기르게 하고 이름을 동명(東明)이라 하였다. 자라매 활을 잘 쏘니 왕이 그 용맹을 꺼려 다시 죽이려 하였다. 동명이 이에 달아나 남으로 엄체수에 이르러 활로 물을 치니 물고기와 자라가 다 다리가 되어, 동명이 타고 건너 부여에 이르러 왕 노릇 하였다. 동명의 후손에 구태(仇台)가 있어 어짊과 신의에 도타우니, 처음 대방 옛 땅에 나라를 세웠다. 한나라 요동태수 공손탁이 딸을 주어 아내 삼게 하니 드디어 동이의 강국이 되었다. 처음 백 집(百家)이 건넜다(濟) 하여 백제(百濟)라 이름하였다.

2고마성과 열여섯 품계

其國東極新羅,北接高句麗,西南俱限大海,處小海南,東西四百五十里,南北九百餘里。其都曰居拔城,亦曰固麻城。其外更有五方:中方曰古沙城,東方曰得安城,南方曰久知下城,西方曰刀先城,北方曰熊津城。王姓餘氏,號「于羅瑕」,百姓呼爲「鞬吉支」,夏言並王也。王妻號「于陸」,夏言妃也。官有十六品:左平五人,一品;達率三十人,二品;恩率,三品;德率,四品;杅率,五品;奈率,六品。已上冠飾銀華。將德,七品,紫帶。施德,八品,皁帶。固德,九品,赤帶。季德,十品,青帶。對德,十一品;文督,十二品,皆黃帶。武督,十三品;佐軍,十四品;振武,十五品;克虞,十六品,皆白帶。自恩率以下,官無常員。各有部司,分掌衆務。內官有前內部、穀內部、內掠部、外掠部、馬部、刀部、功德部、藥部、木部、法陪、後宮部。外官有司軍部、司徒部、司空部、司寇部、點口部、客部、外舍部、綢部、日官部、市部,長吏三年一交代。都下有萬家,分爲五部,曰上部、前部、中部、下部、後部,部有五巷,士庶居焉。部統兵五百人。五方各有方領一人,以達率爲之,方佐貳之。方有十郡,郡有將三人,以德率爲之。統兵一千二百人以下,七百人以上。城之內外人庶及余小城,咸分隸焉。

그 나라는 동으로 신라에 다다르고 북으로 고구려에 접하며 서남은 다 큰 바다로 한계 지어 소해 남쪽에 자리하니, 동서 사백오십 리, 남북 구백여 리다. 도읍은 거발성이라 하니 고마성이라고도 한다. 그 밖에 다시 다섯 방이 있으니, 중방은 고사성, 동방은 득안성, 남방은 구지하성, 서방은 도선성, 북방은 웅진성이다. 왕의 성은 여씨(餘氏)요 「어라하」라 부르고 백성은 「건길지」라 부르니 중국말로 다 왕이다. 왕의 아내는 「어륙」이라 부르니 중국말로 비(妃)다. 벼슬에 열여섯 품이 있다. 좌평은 다섯 사람으로 1품, 달솔은 서른 사람으로 2품, 은솔 3품, 덕솔 4품, 우솔 5품, 나솔 6품이니, 이상은 관을 은꽃으로 꾸민다. 장덕은 7품으로 자주 띠, 시덕 8품 검은 띠, 고덕 9품 붉은 띠, 계덕 10품 푸른 띠요, 대덕 11품과 문독 12품은 다 누런 띠, 무독 13품·좌군 14품·진무 15품·극우 16품은 다 흰 띠다. 은솔 아래로는 벼슬에 정원이 없고 저마다 부사가 있어 뭇일을 나누어 맡는다. 내관에는 전내부·곡내부·내략부·외략부·마부·도부·공덕부·약부·목부·법부·후궁부가 있고, 외관에는 사군부·사도부·사공부·사구부·점구부·객부·외사부·주부·일관부·시부가 있으며, 장리(長吏)는 세 해에 한 번 교대한다. 도성 아래 만 집이 있어 다섯 부로 나뉘니 상부·전부·중부·하부·후부라 하며, 부에는 다섯 항(巷)이 있어 사서(士庶)가 살고, 부마다 군사 오백을 거느린다. 다섯 방에는 저마다 방령 한 사람을 달솔로 삼고 방좌가 돕는다. 방에는 열 군이 있고 군에는 장수 셋을 덕솔로 삼으니, 군사 일천이백 이하 칠백 이상을 거느린다. 성 안팎의 백성과 그 밖의 작은 성들이 다 나뉘어 예속된다.

3백제의 풍속

其人雜有新羅、高麗、倭等,亦有中國人。其飲食衣服,與高麗略同。若朝拜祭祀,其冠兩廂加翅,戎事則不。拜謁之禮,以兩手據地爲禮。婦人不加粉黛,女辮髪垂後,已出嫁,則分爲兩道,盤於頭上。主似袍而袖微大。兵有弓箭刀槊。俗重騎射,兼愛墳史,而秀異者頗解屬文,能吏事。又知醫藥、蓍龜,與相術、陰陽五行法。有僧尼,多寺塔,而無道士。有鼓角、箜篌、箏竽、篪笛之樂,投壺、樗蒲、弄珠、握槊等雜戲。尤尚奕棋。行宋《元嘉曆》,以建寅月爲歲首。賦稅以布、絹、絲、麻及米等,量歲豐儉,差等輸之。其刑罰,反叛、退軍及殺人者,斬;盜者,流,其贓兩倍征之;婦犯奸,沒入夫家爲婢。婚娶之禮,略同華俗。父母及夫死者,三年居服,餘親則葬訖除之。土田濕,氣候溫暖,人皆山居。有巨栗,其五穀、雜果、菜蔬及酒醴肴饌之屬,多同於內地。唯無駝、騾、驢、羊、鵝、鴨等。國中大姓有八族,沙氏、燕氏、刕氏、解氏、真氏、國氏、木氏、苗氏。其王每以四仲月祭天及五帝之神。立其始祖仇台之廟于國城,歲四祠之。國西南,人島居者十五所,皆有城邑。

그 사람들에는 신라·고려·왜 등이 섞여 있고 중국 사람도 있다. 먹고 마시고 입는 것은 고려와 대략 같다. 조회와 제사 때는 관 양옆에 깃을 더하고 군사 일에는 그러지 않는다. 절하고 뵙는 예는 두 손을 땅에 짚는 것으로 한다. 부인은 분과 눈썹먹을 하지 않고, 처녀는 머리를 땋아 뒤로 드리우며 시집가면 두 갈래로 나누어 머리 위에 서린다. 옷은 도포 비슷한데 소매가 조금 크다. 병기로 활·화살·칼·창이 있다. 풍속이 말타기와 활쏘기를 무겁게 여기고 아울러 경전과 사서를 사랑하니, 빼어난 이는 글을 제법 짓고 관리 일에 능하다. 또 의약과 시초·거북점과 관상술과 음양오행법을 안다. 승려가 있고 절과 탑이 많으나 도사는 없다. 북과 뿔피리·공후·쟁·우·지·적의 음악이 있고, 투호·저포·구슬 놀리기·악삭 등 여러 놀이가 있으며 바둑을 더욱 숭상한다. 송나라 원가력을 써서 인월을 한 해의 첫머리로 삼는다. 조세는 베·명주·실·삼과 쌀 등으로 하되 해의 풍흉을 헤아려 차등으로 낸다. 형벌은, 반역한 자와 싸움에서 물러난 자와 살인한 자는 목을 베고, 도둑질한 자는 유배하고 장물을 두 배로 물리며, 부인이 간음하면 지아비 집의 계집종으로 몰수한다. 혼인의 예는 화속과 대략 같다. 부모와 지아비가 죽으면 세 해 복을 입고 그 밖의 친속은 장사를 마치면 벗는다. 땅이 습하고 기후가 따뜻하며 사람들이 다 산에 산다. 큰 밤이 나며, 오곡과 온갖 과일과 채소와 술·단술·안주 따위는 안 땅과 거의 같은데 오직 낙타·노새·나귀·양·거위·오리가 없다. 나라의 큰 성씨로 여덟 족속이 있으니 사씨·연씨·이씨·해씨·진씨·국씨·목씨·묘씨다. 왕은 네 계절 가운뎃달마다 하늘과 오제의 신에게 제사하고, 시조 구태의 사당을 도성에 세워 해마다 네 번 제사한다. 나라 서남쪽 바다에 사람 사는 섬이 열다섯 곳이니 다 성읍이 있다.

4개로왕의 표

魏延興二年,其王余慶始遣其冠軍將軍駙馬都尉弗斯侯、長史余禮、龍驤將軍、帶方太守司馬張茂等上表自通,云:「臣與高麗,源出夫餘,先世之時,篤崇舊款。其祖釗,輕廢鄰好,陵踐臣境。臣祖須,整旅電邁,梟斬釗首。自爾以來,莫敢南顧。自馮氏數終,餘燼奔竄,丑類漸盛,遂見陵逼,構怨連禍,三十餘載。若天慈曲矜,遠及無外,速遣一將,來救臣國。當奉送鄙女,執掃後宮,並遣子弟,收圉外廄,尺壤疋夫,不敢自有。去庚辰年後,臣西界海中,見屍十餘,並得衣器鞍勒。看之,非高麗之物。後聞乃是王人來降臣國,長蛇隔路,以阻於海。今上所得鞍一,以爲實矯。」

위(북위) 연흥 이년에 그 왕 여경(개로왕)이 처음 관군장군 부마도위 불사후와 장사 여례, 용양장군 대방태수 사마 장무 등을 보내 표를 올려 스스로 통하였다. 「신은 고려와 근원이 부여에서 나와 선대에는 옛 정의를 도탑게 높였는데, 그 조상 쇠(고국원왕)가 이웃의 우호를 가벼이 저버리고 신의 지경을 짓밟았습니다. 신의 조상 수(근구수왕)가 군사를 정돈해 번개같이 달려가 쇠의 머리를 베어 매다니, 이로부터 감히 남쪽을 돌아보지 못한 지 오래였습니다. 그런데 풍씨의 운수가 다하여 남은 무리가 도망쳐 들어간 뒤로 추한 무리가 차츰 성해져, 드디어 능멸과 핍박을 당하여 원한을 얽고 화를 이은 지 삼십여 해라, 재물도 힘도 다하여 나라가 절로 쇠약해졌습니다. 하늘의 사랑이 굽어 가엾이 여기시어 멀리 미치지 않는 데가 없다면, 속히 한 장수를 보내 신의 나라를 구원하소서. 마땅히 변변찮은 딸을 보내 후궁을 쓸게 하고 아울러 자제를 보내 바깥 마구간에서 말을 먹이게 하며, 한 자 땅 한 지아비라도 감히 스스로 가지지 않겠습니다. 지난 경진년 뒤에 신의 서쪽 바다에서 주검 십여 구를 보고 아울러 옷과 그릇과 안장과 굴레를 얻었는데, 보니 고려의 물건이 아니었습니다. 뒤에 들으니 곧 왕인(王人·황제의 사신)이 신의 나라로 내려오던 것이라 합니다. 긴 뱀이 길을 막아 바다에 빠뜨린 것입니다. 이제 얻은 안장 하나를 올려 실제 증험으로 삼습니다.」

5헌문제의 답조

獻文以其僻遠,冒險入獻,禮遇優厚,遣使者邵安與其使俱還。詔曰:「得表聞之無恙。卿與高麗不睦,至被陵犯,苟能順義,守之以仁,亦何憂於寇讎也。前所遣使,浮海以撫荒外之國,從來積年,往而不反,存亡達否,未能審悉。卿所送鞍,比校舊乘,非中國之物。不可以疑似之事,以生必然之過。經略權要,已具別旨。」又詔曰:「高麗稱籓先朝,供職日久,於彼雖有自昔之釁,于國未有犯令之愆。卿使命始通,便求致伐,尋討事會,理亦未周。所獻錦布海物,雖不悉達,明卿至心。今賜雜物如別。」又詔璉護送安等。至高麗,璉稱昔與余慶有讎,不令東過。安等於是皆還,乃下詔切責之。五年,使安等從東萊浮海,賜余慶璽書,褒其誠節。安等至海濱,遇風飄蕩,竟不達而還。

헌문제는 그들이 궁벽하고 먼 데서 위험을 무릅쓰고 들어와 바쳤다 하여 예우를 우대하고, 사자 소안을 보내 그 사신과 함께 돌아가게 하였다. 조서에 일렀다. 「표를 받고 무양함을 들었노라. 경이 고려와 화목하지 못하여 능멸과 침범을 입었다 하나, 진실로 의를 따르고 어짊으로 지키면 원수인들 무엇을 근심하랴. 지난번 보낸 사신은 바다에 떠서 거친 바깥 나라를 어루만지려 한 것인데, 간 지 여러 해가 되도록 돌아오지 않으니, 살았는지 죽었는지 이르렀는지 못 이르렀는지 자세히 알 수 없다. 경이 보낸 안장은 옛것과 견주어 보니 중국의 물건이 아니다. 비슷한 일로 반드시 그렇다는 허물을 만들 수는 없다. 경략의 요체는 따로 뜻을 갖추었다.」 또 조서에 일렀다. 「고려는 선조(先朝)에 번국을 일컬어 직공을 바친 지 오래다. 저들에게 비록 예로부터의 틈이 있으나 나라에는 명을 어긴 허물이 아직 없다. 경이 사신을 처음 통하면서 곧 치기를 구하나, 사세를 살펴보니 이치가 또한 두루 맞지 않다. 바친 비단과 베와 바다 산물은 다 이르지는 못했으나 경의 지극한 마음은 밝다. 이제 별지처럼 여러 물건을 내린다.」 또 조서로 련(장수왕)에게 소안 등을 호송하게 하였다. 고려에 이르니 련이 옛날 여경과 원수진 일을 들어 동으로 지나지 못하게 하니, 안 등이 이에 다 돌아왔다. 곧 조서를 내려 련을 간곡히 꾸짖었다. 5년에 안 등을 시켜 동래에서 바다에 떠서 여경에게 새서를 내려 그 성절을 기리게 했는데, 안 등이 바닷가에 이르러 바람을 만나 떠돌다 끝내 닿지 못하고 돌아왔다.

6남조와도 통하다

自晉、宋、齊、梁據江左,亦遣使稱籓,兼受拜封。亦與魏不絕。

진·송·제·양이 강남에 웅거하자 역시 사신을 보내 번국을 일컬으며 아울러 봉작을 받았고, 위나라와도 끊이지 않았다.

7위덕왕과 북제

及齊受東魏禪,其王隆亦通使焉。淹死,子餘昌亦通使命于齊。武平元年,齊後主以餘昌爲使持節、侍中、車騎大將軍,帶方郡公、百濟王如故。二年,又人餘昌爲持節、都督東青州諸軍事、東青州刺史。

제(북제)가 동위의 선양을 받자 그 왕 융(성왕)도 사신을 통하였다. 융이 죽고 아들 여창(위덕왕)이 역시 제에 사명을 통하였다. 무평 원년에 제 후주가 여창을 사지절·시중·거기대장군으로 삼고 대방군공·백제왕은 예전대로 하였다. 2년에 또 여창을 지절·도독동청주제군사·동청주자사로 삼았다.

8북주와 통하다

周建德六年,齊滅,餘昌始遣使通周。宣政元年,又遣使爲獻。

주(북주) 건덕 육년에 제가 멸망하자 여창이 비로소 사신을 보내 주와 통하고, 선정 원년에 또 사신을 보내 바쳤다.

9수나라와 백제

隋開皇初,餘昌又遣使貢方物,拜上開府、帶方郡公、百濟王。平陳之歲,戰船漂至海東耽牟羅國。其船得還,經於百濟,昌資送之甚厚,並遣使奉表賀平陳。文帝善之,下詔曰:「彼國懸隔,來往至難,自今以後,不須年別入貢。」使者舞蹈而去。十八年,餘昌使其長史王辯那來獻方物。屬興遼東之役,遣奉表,請爲軍導。帝下詔,厚其使而遣之。高麗頗知其事,兵侵其境。余昌死,子餘璋立。大業三年,餘璋遣使燕文進朝貢。其年,又遣使王孝鄰入獻,請討高麗。煬帝許之,命覘高麗動靜。然餘璋內與高麗通和,挾詐以窺中國。七年,帝親征高麗,餘璋使其臣國智牟來請軍期。帝大悅,厚加賞賜,遣尚書起部郎席律詣百濟,與相知。明年,六軍度遼,餘璋亦嚴兵於境,聲言助軍,實持兩端。尋與新羅有隙,每相戰爭。十年,復遣使朝貢。後天下亂,使命遂絕。

수 개황 초에 여창이 또 사신을 보내 방물을 바치니 상개부·대방군공·백제왕에 제수하였다. 진(陳)을 평정하던 해에 싸움배 한 척이 바다 동쪽 탐모라국에 떠밀려 갔다. 그 배가 돌아올 때 백제를 지나니 창이 물자를 대어 몹시 두터이 보내고, 아울러 사신을 보내 표를 받들어 진 평정을 하례하였다. 문제가 착하게 여겨 조서를 내리기를 「그 나라는 멀리 떨어져 오가기가 지극히 어려우니, 이제부터는 해마다 따로 조공하지 않아도 된다」 하니 사자가 춤추며 갔다. 18년에 여창이 장사 왕변나를 시켜 방물을 바쳤는데, 마침 요동의 전역이 일어나므로 표를 받들어 군도(軍導)가 되기를 청하였다. 황제가 조서를 내려 그 사신을 후대하여 보냈다. 고려가 그 일을 자못 알고 군사로 그 지경을 침노하였다. 여창이 죽고 아들 여장(무왕)이 즉위하였다. 대업 삼년에 여장이 사신 연문진을 보내 조공하고, 그해에 또 사신 왕효린을 보내 바치며 고려 치기를 청하니, 양제가 허락하고 고려의 동정을 엿보게 하였다. 그러나 여장은 안으로 고려와 통화하며 속임수를 끼고 중국을 엿보았다. 7년에 황제가 친히 고려를 치니 여장이 신하 국지모를 보내 행군 기일을 청하였다. 황제가 크게 기뻐하여 상을 두터이 더하고 상서기부랑 석률을 백제에 보내 서로 알렸다. 이듬해 육군이 요수를 건너니 여장도 지경에 군사를 엄히 벌여 군사를 돕는다고 소리 내면서 실은 두 마음을 지녔다. 이윽고 신라와 틈이 생겨 늘 서로 싸웠다. 10년에 다시 사신을 보내 조공했으나, 뒤에 천하가 어지러워 사명이 드디어 끊겼다.

10탐모라국

其南,海行三月有耽牟羅國,南北千餘里,東西數百里,土多麞鹿,附庸於百濟。西行三日,至貊國千餘里云。

그 남쪽으로 바닷길 석 달에 탐모라국(耽牟羅國)이 있으니 남북 천여 리, 동서 수백 리에 노루와 사슴이 많고 백제에 부용한다. 서쪽으로 사흘을 가면 맥국(貊國) 천여 리에 이른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