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길勿吉
1일곱 갈래의 물길
勿吉國在高句麗北,一曰靺鞨。邑落各自有長,不相總一。其人勁悍,於東夷最強,言語獨異。常輕豆莫婁等國,諸國亦患之。去洛陽五千里。自和龍北二百餘里有善玉山,山北行十三日至祁黎山,又北行七日至洛環水,水廣里餘,又北行十五日至太岳魯水,又東北行十八日到其國。國有大水,闊三里餘,名速末水。其部類凡有七種:其一號粟末部,與高麗接,勝兵數千,多驍武,每寇高麗;其二伯咄部,在粟末北,勝兵七千;其三安車骨部,在伯咄東北;其四拂涅部,在伯咄東;其五號室部,在拂涅東;其六黑水部,在安車骨西北,其七白山部,在粟末東南。勝兵並不過三千,而黑水部尤爲勁健。自拂涅以東,矢皆石鏃,即古肅慎氏也。東夷中爲強國。所居多依山水。渠帥曰大莫弗瞞咄。國南有從太山者,華言太皇,俗甚敬畏之,人不得山上溲汙,行經山者,以物盛去。上有熊羆豹狼,皆不害人,人亦不敢殺。
물길국(勿吉國)은 고구려 북쪽에 있으니 말갈이라고도 한다. 읍락마다 우두머리가 따로 있어 하나로 통솔되지 않는다. 그 사람들은 굳세고 사나워 동이 가운데 가장 강하고 말이 유독 다르다. 늘 두막루 등 나라를 업신여기니 여러 나라도 걱정한다. 낙양에서 오천 리다. 화룡에서 북으로 이백여 리에 선옥산이 있고, 산에서 북으로 열사흘을 가면 기려산, 또 북으로 이레를 가면 낙환수니 물 너비가 리 남짓이요, 또 북으로 보름을 가면 태악로수, 또 동북으로 열여드레를 가면 그 나라에 이른다. 나라에 큰 물이 있어 너비가 삼 리 남짓이니 속말수라 이름한다. 그 갈래는 무릇 일곱이다. 첫째는 속말부니 고려와 접하며 씩씩한 군사 수천에 날래고 굳센 이가 많아 늘 고려를 노략한다. 둘째는 백돌부니 속말 북쪽에 있고 군사 칠천이다. 셋째는 안차골부니 백돌 동북에 있다. 넷째는 불열부니 백돌 동쪽이다. 다섯째는 호실부니 불열 동쪽이다. 여섯째는 흑수부니 안차골 서북이요, 일곱째는 백산부니 속말 동남이다. 군사는 다 삼천을 넘지 않는데 흑수부가 더욱 굳세다. 불열부터 동쪽은 화살이 다 돌살촉이니 곧 옛 숙신씨다. 동이 가운데 강국이다. 사는 곳은 대개 산과 물에 의지한다. 우두머리는 대막불만돌이라 한다. 나라 남쪽에 종태산(從太山)이 있으니 중국말로 태황(太皇)이라, 풍속이 몹시 공경하고 두려워하여 사람이 산 위에서 오줌을 누어 더럽히지 못하며, 산을 지나는 자는 그릇에 담아 간다. 산 위에 곰·말곰·표범·이리가 있는데 다 사람을 해치지 않고 사람도 감히 죽이지 않는다.
2물길의 풍속
地卑濕,築土如堤,鑿穴以居,開口向上,以梯出入。其國無牛,有馬,車則步推,相與偶耕。土多粟、麥、穄,菜則有葵。水氣堿,生鹽于木皮之上,亦有鹽池。其畜多獵,無羊。嚼米爲酒,飲之亦醉。婚嫁,婦人服布裙,男子衣豬皮裘,頭插武豹尾。俗以溺洗手面,于諸夷最爲不潔。初婚之夕,男就女家,執女乳而罷。妒,其妻外淫,人有告其夫,夫輒殺妻而後悔,必殺告者。由是姦淫事終不發。人皆善射。以射獵爲業。角弓長三尺,箭長尺二寸,常以七八月造毒藥,傅矢以射禽獸,中者立死。煮毒藥氣亦能殺人。其父母春夏死,立埋之,塚上作屋,令不雨濕;若秋冬死,以其屍捕貂,貂食其肉,多得之。
땅이 낮고 습하여 흙을 둑처럼 쌓고 굴을 파서 사는데, 입구를 위로 내고 사다리로 드나든다. 나라에 소가 없고 말은 있으며, 수레는 사람이 밀고 둘이 짝지어 밭을 간다. 땅에 조·보리·기장이 많고 채소로는 아욱이 있다. 물기운이 짜서 나무껍질 위에 소금이 열리고 소금못도 있다. 가축 대신 사냥이 많고 양이 없다. 쌀을 씹어 술을 빚으니 마시면 또한 취한다. 혼인에 부인은 베 치마를 입고 남자는 돼지가죽 갖옷에 머리에 범과 표범 꼬리를 꽂는다. 풍속이 오줌으로 손과 낯을 씻으니 여러 이(夷) 가운데 가장 깨끗하지 못하다. 첫 혼인날 저녁에 남자가 여자 집에 가서 여자의 가슴을 잡는 것으로 그친다. 시새움이 심하여 아내가 바깥에서 간음한 것을 누가 지아비에게 알리면, 지아비가 문득 아내를 죽이고 뉘우쳐 반드시 알린 자를 죽인다. 이 때문에 간음한 일이 끝내 드러나지 않는다. 사람들이 다 활을 잘 쏘아 사냥으로 업을 삼는다. 각궁은 석 자요 화살은 한 자 두 치니, 늘 칠팔월에 독약을 만들어 화살에 발라 새와 짐승을 쏘면 맞는 대로 죽는다. 독약을 달이는 김도 사람을 죽일 수 있다. 부모가 봄여름에 죽으면 곧 묻고 무덤 위에 집을 지어 비에 젖지 않게 하며, 가을겨울에 죽으면 그 주검으로 담비를 잡으니, 담비가 그 살을 먹으므로 많이 잡힌다.
3을력지의 조공
延興中,遣乙力支朝獻。太和初,又貢馬五百匹。乙力支稱:初發其國,乘船溯難河西上,至太濔河,沈船于水。南出陸行,度洛孤水,從契丹西界達和龍。自云其國先破高句麗十落,密共百濟謀,從水道並力取高麗,遣乙力支奉使大國,謀其可否。詔敕:「三國同是籓附,宜共和順,勿相侵擾。」乙力支乃還。從其來道,取得本船,泛達其國。九年,復遣使侯尼支朝。明年,復入貢。其傍有大莫盧國、覆鐘國、莫多回國、庫婁國、素和國、具弗伏國、匹黎爾國、拔大何國、郁羽陵國、庫伏真國、魯婁國、羽真侯國,前後各遣使朝獻。太和十二年,勿吉復遣使貢楛矢、方物于京師。十七年,又遣使人婆非等五百餘人朝貢。景明四年,復遣使侯力歸朝貢。自此迄於正光,貢使相尋。爾後中國紛擾,頗或不至。興和二年六月,遣石文雲等貢方物。以至於齊,朝貢不絕。
연흥 연간에 을력지를 보내 조공하였다. 태화 초에 또 말 오백 필을 바쳤다. 을력지가 말하기를, 처음 제 나라를 떠나 배를 타고 난하를 거슬러 서쪽으로 올라 태이하에 이르러 배를 물에 가라앉혀 두고, 남으로 나와 뭍길로 낙고수를 건너 거란 서쪽 지경을 거쳐 화룡에 닿았다 하였다. 스스로 이르기를, 그 나라가 먼저 고구려의 열 부락을 깨뜨렸고, 몰래 백제와 함께 물길로 힘을 합쳐 고려를 치기를 꾀하여 을력지를 대국에 사신 보내 그 옳고 그름을 여쭙는다 하였다. 조칙하기를 「세 나라가 다 같은 번국이니 마땅히 화순하고 서로 침요하지 말라」 하니 을력지가 이에 돌아갔는데, 왔던 길을 따라 제 배를 찾아 타고 그 나라에 닿았다. 9년에 다시 사신 후니지를 보내 조회하고 이듬해 다시 조공하였다. 그 곁의 대막로국·복종국·막다회국·고루국·소화국·구불복국·필려이국·발대하국·욱우릉국·고복진국·노루국·우진후국이 앞뒤로 저마다 사신을 보내 조헌하였다. 태화 십이년에 물길이 다시 사신을 보내 호시와 방물을 서울에 바치고, 17년에 또 사인 파비 등 오백여 명을 보내 조공하였다. 경명 사년에 다시 사신 후력귀를 보내 조공하니, 이로부터 정광에 이르도록 공물 사신이 잇달았다. 그 뒤 중국이 어지러워 이따금 이르지 못했다. 흥화 이년 6월에 석문운 등을 보내 방물을 바치고, 제(북제)에 이르도록 조공이 끊이지 않았다.
4돌지계의 귀화
隋開皇初,相率遣使貢獻。文帝詔其使曰:「朕聞彼土人勇,今來實副朕懷。視爾等如子,爾宜敬朕如父。」對曰:「臣等僻處一方,聞內國有聖人,故來朝拜。既親奉聖顏,願長爲奴僕。」其國西北與契丹接,每相劫掠,後因其使來,文帝誡之,使勿相攻擊。使者謝罪。文帝因厚勞之,令宴飲于前,使者與其徒皆起舞,曲折多戰鬥容。上顧謂侍臣曰:「天地間乃有此物,常作用兵意。」然其國與隋懸隔,唯粟末、白山爲近。煬帝初,與高麗戰,頻敗其衆。渠帥突地稽率其部降,拜右光祿大夫,居之柳城。與邊人來往,悅中國風俗,請被冠帶,帝嘉之,賜以錦綺而褒寵之。及遼東之役,突地稽率其徒以從,每有戰功,賞賜甚厚。十三年,從幸江都,尋放還柳城。李密遣兵邀之,僅而得免。至高陽,沒于王須拔。未幾,遁歸羅藝。
수 개황 초에 서로 이끌고 사신을 보내 공물을 바쳤다. 문제가 그 사신에게 조서하기를 「짐이 들으니 그 땅 사람들이 용감하다더니 이제 오니 실로 짐의 마음에 맞는다. 너희를 아들같이 볼 터이니 너희도 짐을 아비같이 공경하라」 하니, 대답하기를 「신들은 한구석에 궁벽히 살면서 내국(內國)에 성인이 계시다 듣고 조배하러 왔습니다. 이미 성안(聖顏)을 친히 뵈오니 길이 노복이 되기를 원합니다」 하였다. 그 나라가 서북으로 거란과 접하여 늘 서로 겁략하므로, 뒤에 사신이 온 김에 문제가 타일러 서로 치지 말게 하니 사자가 사죄하였다. 문제가 두터이 위로하고 어전에서 잔치를 베풀게 하니, 사자가 그 무리와 함께 일어나 춤추는데 몸놀림에 싸움 모습이 많았다. 임금이 시신을 돌아보며 「천지간에 이런 무리가 있어 늘 싸울 뜻만 지녔구나」 하였다. 그러나 그 나라는 수나라와 아득히 멀고 오직 속말과 백산만 가까웠다. 양제 초에 고려와 싸워 그 무리가 자주 패하니, 우두머리 돌지계가 그 부를 거느리고 항복하매 우광록대부를 제수하고 유성에 살게 하였다. 변방 사람들과 오가며 중국 풍속을 즐거워하여 관과 띠 입기를 청하니, 황제가 가상히 여겨 비단을 내리고 표창하며 총애하였다. 요동의 전역에 돌지계가 무리를 거느리고 좇아 싸움마다 공이 있으니 상이 몹시 두터웠다. 13년에 강도에 호종했다가 이윽고 유성으로 돌려보냈는데, 이밀이 군사를 보내 노렸으나 겨우 면했고, 고양에 이르러 왕수발에게 붙잡혔다가 얼마 안 되어 도망해 나예에게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