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奚)奚
1고막해
奚,本曰庫莫奚,其先東部胡宇文之別種也。初爲慕容晃所破,遺落者竄匿松漠之間。俗甚不潔淨,而善射獵,好爲寇抄。登國三年,道武親自出討,至弱水南大破之,獲其馬、牛、羊、豕十餘萬。帝曰:「此群狄諸種,不識德義,鼠竊狗盜,何足爲患?今中州大亂,吾先平之,然後張其威懷,則無所不服矣。」既而車駕南遷,十數年間,諸種與庫莫奚亦皆滋盛。及開遼海,置戍和龍,諸夷震懼,各獻方物。文成、獻文之世,庫莫奚歲致名馬、文皮。孝文初,遣使朝貢。太和四年,輒入塞內,辭以畏地豆幹抄掠,詔書切責之。二十二年,入寇安州,時營、燕、幽三州兵數千人擊走之。後復款附,每求入塞交易。宣武詔曰:「庫莫奚去太和二十一年以前,與安、營二州邊人參居,交易往來,並無欺貳。至二十二年叛逆以來,遂爾遠竄。今雖款附,猶在塞表,每請入塞,與百姓交易。若抑而不許,乖其歸向之心;信而不慮,或有萬一之驚。交市之日,州遣士監之。」自此已後,歲常朝獻,至武定已來不絕。齊受魏禪,歲時來朝。
해(奚)는 본디 고막해라 하니, 그 선조는 동부호 우문씨의 별종이다. 처음 모용황에게 깨져 남은 무리가 송막 사이에 숨었다. 풍속이 몹시 깨끗하지 못하나 사냥을 잘하고 노략질을 좋아한다. 등국 삼년에 도무제가 친히 나가 쳐서 약수 남쪽에서 크게 깨뜨리고 말·소·양·돼지 십여만을 얻었다. 황제가 「이 뭇 오랑캐 갈래들은 덕과 의를 몰라 쥐새끼처럼 훔칠 뿐이니 어찌 근심할 것이 되랴. 이제 중주(中州)가 크게 어지러우니 내가 먼저 평정한 뒤에 위엄과 품음을 펴면 복종하지 않을 것이 없다」 하였다. 이윽고 거가가 남으로 옮기고 십수 년 사이에 여러 갈래와 고막해가 다 불어났다. 요해를 열고 화룡에 수자리를 두자 여러 이(夷)가 놀라고 두려워 저마다 방물을 바쳤다. 문성제·헌문제 시대에 고막해가 해마다 이름난 말과 무늬 가죽을 바쳤다. 효문제 초에 사신을 보내 조공하였다. 태화 사년에 문득 새내로 들어오면서 지두간의 노략이 두렵다고 둘러대니 조서로 간곡히 꾸짖었다. 22년에 안주를 노략하니 그때 영주·연주·유주 세 주의 군사 수천이 쳐서 쫓았다. 뒤에 다시 정성으로 붙어 늘 새내에 들어와 교역하기를 청하였다. 선무제가 조서하였다. 「고막해는 태화 이십일년 이전에는 안주·영주 두 주의 변방 사람들과 섞여 살며 교역이 오가되 속임이 없었다. 22년의 반역 이래 드디어 멀리 달아났다. 이제 정성으로 붙었다 하나 아직 변방 밖에 있으니, 새내에 들어와 백성과 교역하기를 청할 때마다 눌러 허락하지 않으면 귀순하려는 마음을 어기는 것이요, 믿기만 하고 헤아리지 않으면 만에 하나 놀랄 일이 있을 것이다. 교역하는 날에는 주에서 군사를 보내 감독하라.」 이로부터 뒤로 해마다 조헌하여 무정 연간이 다하도록 끊이지 않았다. 제가 위의 선양을 받자 철마다 와서 조회하였다.
2다섯 부의 해
其後種類漸多,分爲五部:一曰辱紇主,二曰莫賀弗,三曰契個,四曰木昆,五曰室得。每部俟斤一人爲其帥。隨逐水草,頗同突厥。有阿會氏,五部中最盛,諸部皆歸之。每與契丹相攻擊,虜獲財畜,因遣使貢方物。
그 뒤 갈래가 차츰 많아져 다섯 부로 나뉘니, 하나는 욕흘주, 둘은 막하불, 셋은 계개, 넷은 목곤, 다섯은 실득이다. 부마다 사근 한 사람이 우두머리가 된다. 물과 풀을 따라 옮겨 다니니 자못 돌궐과 같다. 아회씨가 있어 다섯 부 가운데 가장 성하니 여러 부가 다 붙는다. 늘 거란과 서로 치며, 노획한 재물과 가축이 생기면 사신을 보내 방물을 바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