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구流求
1유구국의 왕과 마을
流求國,居海島,當建安郡東。水行五日而至。土多山洞。其王姓歡斯氏,名渴刺兜,不知其由來有國世數也。彼土人呼之爲可老羊,妻曰多拔茶。所居曰波羅檀洞,塹柵三重,環以流水,樹棘爲籓。王所居舍,其大一十六間,雕刻禽獸。多鬥鏤樹,似橘而葉密,條纖如發之下垂。國有四五帥,統諸洞,洞有小王。往往有村,村有鳥了帥,並以善戰者爲之,自相樹立,主一村之事。男女皆白紵繩纏發,從項後盤繞至額。其男子用鳥羽爲冠,裝以珠貝,飾以赤毛,形制不同。婦人以羅紋白布爲帽,其形方正。織鬥鏤皮並雜毛以爲衣,制裁不一。綴毛垂螺爲飾,雜色相間,下垂小貝,其聲如珮。綴璫施釧,懸珠於頸。織藤爲笠,飾以毛羽。有刀槊、弓箭、劍鈹之屬。其處少鐵,刀皆薄小,多以骨角輔助之。編紵爲甲,或用熊豹皮。王乘木獸,令左右輿之,而導從不過十數人。小王乘機,鏤爲獸形。國人好相攻擊,人皆驍健善走,難死耐創。諸洞各爲部隊,不相救助。兩軍相當,勇者三五人出前跳噪,交言相罵,因相擊射。如其不勝,一軍皆走,遣人致謝,即共和解。收取鬥死者聚食之,仍以髑髏將向王所,王則賜之以冠,便爲隊帥。
유구국(流求國)은 바다 섬에 사니 건안군 동쪽에 해당하며 물길로 닷새면 이른다. 땅에 산과 골이 많다. 왕은 성이 환사씨요 이름이 갈랄두니, 유래와 나라 이어 온 대수는 알 수 없다. 그 땅 사람들은 왕을 가로양이라 부르고 왕비를 다발도라 한다. 사는 곳은 파라단동이라 하니 해자와 목책이 세 겹이요 흐르는 물을 두르고 가시나무로 울을 삼았다. 왕이 사는 집은 크기가 열여섯 칸으로 새와 짐승을 아로새겼다. 두루수(鬥鏤樹)가 많으니 귤과 비슷한데 잎이 빽빽하고 가지가 머리카락처럼 가늘어 아래로 드리운다. 나라에 네댓 우두머리가 있어 여러 동(洞)을 통솔하고 동에는 작은 왕이 있다. 이따금 마을이 있어 마을마다 조료수(鳥了帥)가 있으니, 다 싸움 잘하는 자로 삼되 저희끼리 세워 한 마을 일을 주관한다. 남녀가 다 흰 모시 노끈으로 머리를 감아 목덜미 뒤에서 이마까지 두른다. 남자는 새 깃으로 관을 만들어 구슬과 조개를 달고 붉은 털로 꾸미니 생김이 저마다 다르다. 부인은 무늬 흰 베로 모자를 만드니 모양이 네모반듯하다. 두루나무 껍질과 온갖 털을 섞어 짜서 옷을 만드니 마름질이 한결같지 않다. 털을 잇고 소라를 드리워 꾸미니 온갖 빛깔이 섞이고 작은 조개를 아래로 늘어뜨리면 그 소리가 패옥 같으며, 귀고리를 달고 팔찌를 끼고 구슬을 목에 건다. 등나무를 엮어 삿갓을 만들고 털과 깃으로 꾸민다. 칼·창·활·화살·검·피(鈹) 따위가 있다. 그곳은 쇠가 적어 칼이 다 얇고 작으며 뼈와 뿔로 많이 보탠다. 모시를 엮어 갑옷을 만들고 혹 곰과 표범 가죽을 쓴다. 왕은 목수(木獸)를 타고 좌우가 메게 하는데 이끌고 따르는 이가 십수 명을 넘지 않는다. 작은 왕은 궤짝을 타니 짐승 모양으로 아로새겼다. 나라 사람들이 서로 치기를 좋아하며 다 날래고 잘 달리고 죽기 어렵고 상처를 잘 견딘다. 동마다 부대를 이루되 서로 구원하지 않는다. 두 군사가 맞서면 용감한 서너댓 사람이 앞에 나와 뛰며 소리치고 말을 주고받으며 서로 꾸짖다가 이내 치고 쏜다. 이기지 못하면 온 군사가 다 달아나고 사람을 보내 사과하면 곧 화해한다. 싸우다 죽은 이를 거두어 모여 먹고, 해골을 왕에게 가져가면 왕이 관을 내리니 곧 대수(隊帥)가 된다.
2유구의 풍속
無賦斂,有事則均稅。用刑亦無常准,皆臨事科決。犯罪皆斷于鳥了帥,不伏則上請于王,王令臣下共議定之。獄無枷鎖,唯用繩縛。決死刑以鐵錐大如筋,長尺餘,鑽頂殺之,輕罪用杖。俗無文字,望月虧盈,以紀時節,草木榮枯,以爲年歲。人深目長鼻,類于胡,亦有小慧。無君臣上下之節,拜伏之禮。父子同床而寢。男子拔去髭須,身上有毛處皆除去。婦人以黑黥手爲蟲蛇之文。嫁娶以酒、珠貝爲聘,或男女相悅,便相匹偶。婦人產乳,必食子衣,產後以火自灸,令汗出,五日便平復。以木槽中暴海水爲鹽,木汁爲酢,米麵爲酒,其味甚薄。食皆用手。遇得異味,先進尊者。凡有宴會,執酒者必待呼名而後飲,上王酒者,亦呼王名後銜杯共飲,頗同突厥。歌呼蹋蹄,一人唱,衆皆和,音頗哀怨。扶女子上膊,搖手而舞。其死者氣將絕,輦至庭前,親賓哭泣相吊。浴其屍,以布帛縛纏之,裹以葦席,襯土而殯,上不起墳。
부세를 거두지 않고 일이 있으면 고르게 낸다. 형벌 씀에도 일정한 기준이 없어 다 일에 임해 정한다. 죄를 범하면 다 조료수가 결단하고, 승복하지 않으면 왕에게 올리니 왕이 신하들에게 함께 의논해 정하게 한다. 옥에 칼과 사슬이 없고 오직 노끈으로 묶는다. 사형은 젓가락만 한 굵기에 한 자 남짓한 쇠송곳으로 정수리를 뚫어 죽이고, 가벼운 죄는 매를 쓴다. 풍속에 문자가 없어 달이 차고 이지러짐을 바라보고 철을 헤아리며, 풀과 나무가 피고 시듦으로 한 해를 삼는다. 사람들은 눈이 깊고 코가 길어 호(胡)와 비슷한데 자잘한 슬기도 있다. 임금과 신하, 위아래의 절도와 절하고 엎드리는 예가 없다. 아비와 자식이 한 침상에서 잔다. 남자는 수염을 뽑고 몸에 털 난 데는 다 없앤다. 부인은 손에 검은 먹으로 벌레와 뱀 무늬를 뜬다. 혼인은 술과 구슬과 조개로 폐백을 삼고, 혹 남녀가 서로 좋아하면 곧 짝을 이룬다. 부인이 아기를 낳으면 반드시 태를 먹고, 낳은 뒤 불로 제 몸을 지져 땀을 내면 닷새 만에 회복된다. 나무 홈통에 바닷물을 볕에 쬐어 소금을 만들고 나무즙으로 식초를 하며 쌀과 밀가루로 술을 빚으니 그 맛이 몹시 얇다. 먹기는 다 손으로 한다. 별미를 얻으면 먼저 어른에게 올린다. 무릇 잔치 모임에는 술잔 잡은 이가 반드시 이름 불리기를 기다려서야 마시고, 왕에게 술을 올리는 자도 왕의 이름을 부른 뒤에 잔을 물고 함께 마시니 자못 돌궐과 같다. 노래하고 소리치며 발을 구르니, 한 사람이 부르면 뭇사람이 다 화답하는데 소리가 자못 슬프고 원망스럽다. 여자를 부축해 팔뚝 위에 올리고 손을 흔들며 춤춘다. 죽는 이는 숨이 끊어지려 하면 뜰 앞에 메어다 놓고 친척과 손들이 곡하며 조상한다. 주검을 씻어 베와 비단으로 묶고 갈대 자리로 싸서 흙에 바로 묻되 위에 봉분을 세우지 않는다.
3유구의 땅과 신
子爲父者,數月不食肉。其南境風俗少異,人有死者,邑里共食之。有熊、豺、狼,尤多豬、雞、無羊、牛、驢、馬。厥田良沃,先以火燒,而引水灌,持一鍤,以石爲刃,長尺餘,闊數寸,而墾之。宜稻、粱、禾、黍、麻、豆、赤豆、胡黑豆等。木有楓、栝、樟、松、楩、楠、枌、梓。竹、藤、果、藥,同于江表。風土氣候,與嶺南相類。俗事山海之神,祭以肴酒。戰鬥殺人,便將所殺人祭其神。或依茂樹起小屋,或懸髑髏於樹上,以箭射之,或累石系幡,以爲神主。王之所居,壁下多聚髑髏以爲佳。人間門戶上,必安獸頭骨角。
아들은 아버지를 위해 몇 달을 고기를 먹지 않는다. 남쪽 지경은 풍속이 조금 달라, 사람이 죽으면 마을이 함께 먹는다. 곰·승냥이·이리가 있고 돼지와 닭이 더욱 많으며 양·소·나귀·말이 없다. 밭이 기름져 먼저 불을 지르고 물을 끌어 대며, 돌로 날을 삼은 한 자 남짓하고 폭 몇 치인 가래 하나를 잡고 간다. 벼·조·기장·삼·콩·팥·호두(胡豆)·검은콩 등이 알맞다. 나무로 단풍·전나무·녹나무·소나무·편나무·남나무·느릅나무·가래나무가 있고, 대나무·등나무·과일·약재는 강남과 같으며 풍토와 기후는 영남과 비슷하다. 풍속이 산과 바다의 신을 섬겨 안주와 술로 제사하고, 싸워서 사람을 죽이면 곧 죽인 사람으로 그 신에게 제사한다. 혹 무성한 나무에 작은 집을 짓고, 혹 해골을 나무 위에 걸고 화살로 쏘며, 혹 돌을 쌓고 깃발을 매어 신주로 삼는다. 왕이 사는 곳은 벽 아래 해골 모으기를 좋아하여 잘된 것으로 여긴다. 민가 문 위에는 반드시 짐승 머리뼈와 뿔을 단다.
4진릉의 원정
隋大業元年,海師何蠻等,每春秋二時,天清風靜,東望依稀,似有煙霧之氣,亦不知幾千里。三年,煬帝令羽騎尉硃寬入海求訪異俗,何蠻言之,遂與蠻俱往。同到流求國,言不通,掠一人而反。明年,復令寬慰撫之,不從。寬取其布甲而歸。時倭國使來朝見之,曰:「此夷邪夕國人所用。」帝遣武賁郎將陳稜、朝請大夫張鎮州率兵自義安浮海至高華嶼,又東行二日到{句黽}鼊嶼,又一日,便至流求。流求不從,稜擊走之。進至其都,焚其官室,虜其男女數千人,載軍實而還。自爾遂絕。
수 대업 원년에 뱃사공 하만 등이, 봄가을 두 철 하늘이 맑고 바람이 잔잔할 때 동쪽을 바라보면 연기와 안개 같은 기운이 어렴풋이 보이는데 몇천 리인지 모른다고 하였다. 3년에 양제가 우기위 주관에게 바다에 들어가 다른 풍속을 찾아보게 하니, 하만이 말한 터라 드디어 만과 함께 갔다. 함께 유구국에 이르렀으나 말이 통하지 않아 한 사람을 잡아 돌아왔다. 이듬해 다시 관을 시켜 위무했으나 따르지 않으니, 관이 그 베 갑옷을 가지고 돌아왔다. 그때 왜국 사신이 와 조회하다 보고 「이는 이사야국(夷邪久國) 사람이 쓰는 것입니다」 하였다. 황제가 무분낭장 진릉과 조청대부 장진주를 보내 군사를 거느리고 의안에서 바다에 떠 고화서에 이르고, 또 동으로 이틀을 가서 구벽서에 이르고, 또 하루 만에 곧 유구에 이르렀다. 유구가 따르지 않으니 릉이 쳐서 쫓고, 나아가 그 도읍에 이르러 궁실을 불사르고 남녀 수천 명을 사로잡아 군실을 싣고 돌아왔다. 그로부터 드디어 끊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