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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한다論

북사 사이전 北史 四夷傳 · 이연수(李延壽) · 659년 (당 현경 4) · 단락 1 · 한자 416자 · 낭독 1.7분

「북사 사이전」 한 권 「논한다」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북조 네 왕조가 본 동방. 알에서 난 주몽 신화의 온전한 꼴, 장수왕 백 년의 외교(혼삿말과 딸의 죽음), 개로왕의 표문, 그리고 물길·거란·실위·유구·왜까지 열네 갈래 — 수 양제의 패망을 「덕을 넓히는 자는 창성하고 땅을 넓히는 자는 망한다」로 맺는다.

1논한다

論曰:廣谷大川異制,人生其間異俗,嗜欲不同,言語不通,聖人因時設教,所以達其志而通其俗也。九夷所居,與中夏懸隔,然天性柔順,無橫暴之風,雖綿邈山海,而易以道禦。夏、殷之世,時或來王。暨箕子避地朝鮮,始有八條之禁,疏而不漏,簡而可入,化之所感,千載不絕。今遼東諸國,或衣服參冠冕之容,或飲食有俎豆之器,好尚經術,愛樂文史,遊學於京都者,往來繼路,或沒世不歸,非先哲之遺風,其孰能致於斯也?故孔子曰:「言忠信,行篤敬,雖蠻貊之邦行矣。」誠哉斯言。其俗之可采者,豈楛矢之貢而已乎?自魏迄隋,年移四代,時方爭競,未遑外略。洎開皇之末,方征遼左,天時不利,師遂無功。二代承基,志苞宇宙,頻踐三韓之地,屢發千鈞之弩。小國懼亡,敢同困獸,兵不載捷,四海騷然,遂以土崩,喪身滅國。兵志有之曰:「務廣德者昌,務廣地者亡。」然遼東之地,不列於郡縣久矣,諸國朝正奉貢,無闕于歲時。二代震而矜之,以爲人莫己若,不能懷以文德,遽動干戈,內恃富強,外思廣地,以驕取怨,以怒興師,若此而不亡,自古未聞也。然四夷之戒,安可不深念哉!其豆莫婁、地豆幹、烏洛侯,歷齊周及隋,朝貢遂絕,其事故莫顯云。

논한다. 너른 골과 큰 내는 제도가 다르고, 그 사이에 사는 사람들은 풍속이 달라, 즐기고 바라는 것이 같지 않고 말이 통하지 않으니, 성인이 때를 따라 가르침을 베풂은 그 뜻을 이루어 주고 그 풍속을 통하게 하려는 것이다. 구이(九夷)가 사는 곳은 중하와 아득히 떨어졌으나, 천성이 유순하여 사납고 포악한 기풍이 없으니, 산과 바다로 멀어도 도로써 다스리기 쉽다. 하·은의 시대에 때로 와서 조회하였다. 기자가 조선에 피해 가서 비로소 여덟 조목의 금법을 두니, 성기어도 새지 않고 간략해도 지킬 만하여 교화의 감화가 천 년을 끊이지 않았다. 지금 요동의 여러 나라는 혹 의복에 관면의 모습이 섞이고 혹 음식에 조두의 그릇이 있으며, 경술을 좋아하고 문사(文史)를 사랑하여, 서울에 유학하는 이가 길에 잇닿고 혹은 죽도록 돌아가지 않으니, 옛 성현의 남긴 풍도가 아니면 그 무엇이 이렇게 하였으랴. 그러므로 공자가 「말이 충성스럽고 미더우며 행실이 도탑고 공경스러우면 만맥의 나라에서도 행해진다」 하였으니 참되도다 이 말이여. 그 풍속의 취할 만한 것이 어찌 호시의 조공뿐이랴. 위나라부터 수나라까지 해가 네 대를 지나며 바야흐로 다투던 때라 바깥 경략에 겨를이 없었다. 개황 말에 이르러 바야흐로 요동을 쳤으나 천시가 불리하여 군사가 드디어 공이 없었다. 이대(양제)가 기업을 이어받아 뜻이 우주를 싸안아, 자주 삼한의 땅을 밟고 여러 번 천 균의 쇠뇌를 쏘았다. 작은 나라는 망할 것이 두려워 감히 궁지의 짐승처럼 맞서니, 군사는 이기지 못하고 사해가 소연해져 드디어 흙 무너지듯 하여 몸을 잃고 나라를 멸하였다. 병지(兵志)에 「덕 넓히기를 힘쓰는 자는 창성하고 땅 넓히기를 힘쓰는 자는 망한다」 하였다. 요동 땅이 군현에 들지 않은 지 오래고, 여러 나라가 정삭에 조회하고 조공을 받들어 철마다 거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대가 위엄을 떨쳐 뽐내며 남이 저만 못하다 여겨, 문덕으로 품지 못하고 갑자기 창칼을 움직여, 안으로 부강함을 믿고 밖으로 땅 넓히기를 생각하여, 교만으로 원망을 사고 노여움으로 군사를 일으켰으니, 이러고도 망하지 않은 일은 예로부터 들은 적이 없다. 그러니 사이(四夷)에 대한 경계를 어찌 깊이 생각하지 않으랴! 두막루·지두간·오락후는 제·주를 지나 수나라에 이르며 조공이 드디어 끊겼으므로 그 사적이 드러난 것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