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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국倭國

구당서 동이전 舊唐書 東夷傳 · 유후(劉昫) 등 · 945년 (후진 개운 2) · 단락 3 · 한자 265자 · 낭독 1.1분

「구당서 동이전」 한 권 「왜국」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당나라가 본 삼국의 마지막 세기. 경당에서 책 읽는 고려 젊은이들, 연개소문의 정변, 안시성의 흙산, 백강 어귀의 네 싸움과 웅진의 흰 말 맹세, 진덕여왕의 태평송, 그리고 고씨·부여씨의 대가 끊기는 순간까지.

1산섬에 사는 나라

倭國者,古倭奴國也。去京師一萬四千里,在新羅東南大海中,依山島而居。東西五月行,南北三月行。世與中國通。其國,居無城郭,以木爲柵,以草爲屋。四面小島五十餘國,皆附屬焉。其王姓阿每氏,置一大率,檢察諸國,皆畏附之。設官有十二等。

왜국은 옛 왜노국이다. 서울에서 만 사천 리 떨어져 신라 동남 큰 바다 가운데 있으니, 산섬에 의지해 산다. 동서로 다섯 달 길이요 남북으로 석 달 길이다. 대대로 중국과 통하였다. 그 나라는 사는 데 성곽이 없고 나무로 목책을 삼고 풀로 지붕을 삼는다. 사면의 작은 섬 오십여 나라가 다 붙어 속한다. 왕은 성이 아매씨(阿每氏)니, 일대솔(一大率)을 두어 여러 나라를 검찰하니 다 두려워 붙는다. 벼슬은 열두 등급을 둔다.

2왜의 풍속

其訴訟者,匍匐而前。地多女少男。頗有文字,俗敬佛法。並皆跣足,以幅布蔽其前後。貴人戴錦帽,百姓皆椎髻,無冠帶。婦人衣純色裙,長腰繻,束髮於後,佩銀花,長八寸,左右各數枝,以明貴賤等級。衣服之制,頗類新羅。

송사하는 자는 엎드려 기어 나아간다. 땅에 여자가 많고 남자가 적다. 자못 문자가 있고 풍속이 불법을 공경한다. 다 맨발이며 폭 넓은 베로 앞뒤를 가린다. 귀인은 비단 모자를 쓰고 백성은 다 몽치 상투에 관과 띠가 없다. 부인은 순색 치마에 허리 긴 저고리를 입고 머리를 뒤로 묶으며, 은꽃을 차니 길이 여덟 치에 좌우 각각 몇 가지로 귀천의 등급을 밝힌다. 의복의 제도는 자못 신라와 비슷하다.

3고표인의 실례

貞觀五年,遣使獻方物。太宗矜其道遠,勑所司無令歲貢,又遣新州刺史高表仁持節往撫之。表仁無綏遠之才,與王子爭禮,不宣朝命而還。至二十二年,又附新羅奉表,以通起居。

정관 오년에 사신을 보내 방물을 바쳤다. 태종은 그 길이 먼 것을 딱하게 여겨 담당 관사에 칙하여 해마다 조공하지 말게 하고, 또 신주자사 고표인을 보내 부절을 가지고 가서 어루만지게 하였다. 표인은 먼 데를 안무할 재주가 없어 왕자와 예를 다투고 조정의 명을 펴지 못한 채 돌아왔다. 22년에 이르러 다시 신라에 딸려 표를 받들어 안부를 통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