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日本
1해 뜨는 곳의 이름
日本國者,倭國之別種也。以其國在日邊,故以日本爲名。或曰:「倭國自惡其名不雅,改爲日本。」或云:「日本舊小國,併倭國之地。」其人入朝者,多自矜大,不以實對,故中國疑焉。又云:「其國界東西南北各數千里,西界、南界咸至大海,東界、北界有大山爲限,山外卽毛人之國。」
일본국은 왜국의 별종이다. 그 나라가 해 뜨는 가에 있으므로 일본으로 이름을 삼았다. 혹은 「왜국이 스스로 그 이름이 아름답지 못함을 싫어하여 일본으로 고쳤다」 하고, 혹은 「일본은 본디 작은 나라인데 왜국의 땅을 아울렀다」 한다. 그 나라 사람으로 입조하는 자가 스스로 뽐내며 큰 체하고 사실대로 대답하지 않는 이가 많아 중국이 의심한다. 또 이르기를 「그 나라 지경은 동서남북 각각 수천 리인데, 서쪽과 남쪽 경계는 다 큰 바다에 이르고 동쪽과 북쪽 경계는 큰 산으로 한계 지으니, 산 밖은 곧 모인(毛人)의 나라」라 한다.
2조신 마히토
長安三年,其大臣朝臣真人來貢方物,朝臣真人者,猶中國戶部尚書,冠進德冠,其項爲花,分而四散,身服紫袍,以帛爲腰帶。真人好讀經史,觧屬文,容止温雅。則天宴之於麟德殿,授司膳卿,放還本國。開元初,又遣使來朝,因請儒士授經。詔四門助教趙玄默就鴻臚寺教之,乃遺玄默闊幅布以爲束修之禮,題云「白龜元年調布」。人亦疑其偽此題。所得錫賚,盡市文籍,泛海而還。
장안 삼년에 그 대신 조신 마히토(朝臣真人)가 와서 방물을 바쳤다. 조신 마히토는 중국의 호부상서 같은 것으로, 진덕관을 쓰니 그 꼭대기가 꽃 모양으로 네 갈래로 흩어졌고, 몸에 자주 도포를 입고 비단으로 허리띠를 삼았다. 마히토는 경사(經史) 읽기를 좋아하고 글 지을 줄 알며 몸가짐이 온아하였다. 측천이 인덕전에서 잔치를 베풀고 사선경을 제수하여 본국으로 돌려보냈다. 개원 초에 또 사신을 보내 조회하고 유학자에게 경전 배우기를 청하니, 조서로 사문조교 조현묵에게 홍려시에 나아가 가르치게 하였다. 이에 현묵에게 폭 넓은 베를 束脩(속수)의 예물로 주었는데 「백구 원년의 조포」라고 적혀 있어, 사람들이 그 적힌 것도 거짓이 아닌가 의심하였다. 받은 하사품은 다 서적을 사서 바다에 띄워 돌아갔다.
3조형이라 이름을 고치다
其偏使朝臣仲滿,慕中國之風,因留不去,改姓名爲朝衡,仕歷左補闕、儀王友。衡留京師五十年,好書籍,放歸鄉,逗留不去。天寶十二年,又遣使貢。上元中,擢衡爲左散騎常侍、鎮南都護。
그 부사 조신 나카마로(仲滿)는 중국의 풍교를 사모하여 머물러 떠나지 않고, 성명을 조형(朝衡)으로 고쳐 벼슬이 좌보궐·의왕우를 지냈다. 형은 서울에 오십 년을 머물며 서적을 좋아하니, 고향으로 놓아 보내도 머뭇거리며 떠나지 않았다. 천보 십이년에 또 사신을 보내 조공하였다. 상원 연간에 형을 좌산기상시·진남도호로 올렸다.
4다치바나와 구카이
貞元二十年,遣使來朝,留學生橘免勢、學問僧空海。元和元年,日本國使判官高階真人上言:「前件學生,藝業稍成,願歸本國,便請與臣同歸。」從之。開成四年,又遣使朝貢。
정원 이십년에 사신을 보내 조회하며 유학생 다치바나노 하야나리(橘免勢)와 학문승 구카이(空海)를 남겼다. 원화 원년에 일본국사 판관 다카시나노 마히토(高階真人)가 아뢰기를 「앞의 학생들이 학업이 자못 이루어져 본국에 돌아가기를 원하니, 신과 함께 돌아가게 해 주소서」 하니 따랐다. 개성 사년에 또 사신을 보내 조공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