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序
1안과 밖을 가른 뜻
蓋天地之所覆載,至大矣;日月之所臨照,至廣矣。然則萬物之內,民人寡而禽獸多;兩儀之間,中土局而庶俗曠。求之鄒說,詭怪之迹實繁;考之山經,奇譎之詞匪一。周、孔存而不論,是非紛而莫辯。秦皇鞭笞天下,黷武於遐方;漢武士馬彊盛,肆志於遠畧。匈奴既卻,其國已虛;犬馬既來,其民亦困。是知鴈海龍堆,天所以絕夷夏也;炎方朔漠,地所以限內外也。况乎時非秦、漢,志甚嬴、劉,違天道以求其功,殫民力而從所欲,顛墜之釁,固不旋踵。是以先王設教,內諸夏而外夷狄;往哲垂範,美樹德而鄙廣地。雖禹迹之東漸西被,不過海及流沙;王制之自北徂南,裁稱穴居交趾。豈非道貫三古,義高百代者乎。
무릇 하늘과 땅이 덮고 싣는 것은 지극히 크고, 해와 달이 비추는 것은 지극히 넓다. 그러나 만물 안에 사람은 적고 새와 짐승은 많으며, 하늘과 땅 사이에 중토(中土)는 좁고 뭇 풍속의 땅은 넓다. 추연의 설에서 찾으면 괴이한 자취가 실로 많고, 산해경에서 상고하면 기이한 말이 하나가 아니다. 주공과 공자는 두고 논하지 않았으니 옳고 그름이 어지러워 가릴 수 없다.
진시황은 천하를 채찍질하여 먼 지방에 무력을 함부로 썼고, 한 무제는 군사와 말이 강성하여 원대한 계략에 뜻을 부렸다. 흉노를 물리쳤으나 제 나라는 이미 비었고, 천마가 왔으나 그 백성 또한 곤궁해졌다. 이로써 알겠으니 안해(雁海)와 용퇴(龍堆)는 하늘이 이(夷)와 하(夏)를 끊은 까닭이요, 더운 남방과 북쪽 사막은 땅이 안과 밖을 한계 지은 까닭이다. 하물며 때는 진·한이 아닌데 뜻은 영정과 유철보다 심하여, 천도를 어겨 공을 구하고 백성의 힘을 다 써서 하고 싶은 대로 한다면, 넘어지는 화가 참으로 발꿈치 돌리기 전에 온다. 그러므로 선왕이 가르침을 베풂에 제하(諸夏)를 안으로 하고 이적을 밖으로 하였으며, 옛 현인이 본을 드리움에 덕 심기를 아름답다 하고 땅 넓히기를 비루하다 하였다. 우임금의 자취가 동으로 번지고 서로 미쳤어도 바다와 유사(流沙)를 넘지 않았고, 왕제(王制)의 북에서 남까지도 겨우 혈거와 교지를 일컬었을 뿐이다. 어찌 도가 삼고(三古)를 꿰뚫고 의가 백대에 높은 것이 아니랴.
협주 1
犬馬既來北史卷九四「犬」作「天」。二張皆以為當從北史作「天」。按「天馬」見史記卷一二三大宛傳、漢書卷九六西域傳,且漢武帝有天馬倈之歌,作「天」是。
「견마기래(犬馬既來)」는 북사 권94에 「견(犬)」이 「천(天)」으로 되어 있다. 두 장씨(교감자)가 다 북사를 따라 「천」이라 해야 한다고 보았다. 「천마(天馬)」는 사기 대완전과 한서 서역전에 보이고 한 무제에게 천마가(天馬歌)가 있으니 「천」이 옳다.
2주나라와 사방의 오랑캐
有周承喪亂之後,屬戰爭之日,定四表以武功,安三邊以權道。趙、魏尚梗,則結姻於北狄;廐庫未實,則通好於西戎。由是德刑具舉,聲名遐洎。卉服氈裘,輻凑於屬國;商胡販客,填委於旗亭。雖東畧漏三吳之地,南巡阻百越之境,而國威之所肅服,風化之所覃被,亦足為弘矣。其四夷來朝聘者,今竝紀之於後。至於道路遠近,物產風俗,詳諸前史,或有不同。斯皆錄其當時所記,以備遺闕云爾。
주(周·북주)나라는 상란의 뒤를 이어 전쟁의 날을 만나, 무공으로 사방을 정하고 권도로 세 변경을 편안히 하였다. 조·위 땅이 아직 막혀 있으면 북적과 혼인을 맺고, 마구간과 곳간이 차지 않으면 서융과 통호하였다. 이로써 덕과 형벌이 함께 거행되고 명성이 멀리 미치니, 풀옷과 털갖옷 입은 무리가 속국으로 몰려들고, 장사하는 호인 손들이 저자 정자에 가득하였다. 비록 동으로는 삼오(三吳) 땅을 빠뜨리고 남으로는 백월의 지경에 막혔으나, 나라의 위엄이 엄숙히 복종시키고 풍화가 널리 입힌 것은 또한 넓다 하기에 족하다. 사이(四夷)로서 조빙하러 온 자들을 이제 다 뒤에 기록한다. 길의 멀고 가까움과 물산과 풍속은 앞선 사서에 자세한데 더러 같지 않은 것도 있다. 이는 다 당시에 기록된 것을 적어 빠진 것을 갖추려는 것일 뿐이다.
협주 1
聲名遐洎宋本「名」作「明」。張元濟云:「『昭其聲也』『昭其明也』按見左傳桓二年『聲明』二字可通。」
「성명하계(聲名遐洎)」는 송본에 「명(名)」이 「명(明)」으로 되어 있다. 장원제가 이르기를 「〈그 소리를 밝히고 그 밝음을 밝힌다〉는 좌전 환공 2년에 보이니, 성명(聲明) 두 자는 통할 수 있다」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