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高麗
1흘두골성의 주몽
高麗者,其先出於夫餘。自言始祖曰朱蒙,河伯女感日影所孕也。朱蒙長而有材畧,夫餘人惡而逐之。土于紇斗骨城,自號曰高句麗,仍以高為氏。其孫莫來漸盛,擊夫餘而臣之。莫來裔孫璉,始通使於後魏。
고려는 그 선조가 부여에서 나왔다. 스스로 말하기를 시조는 주몽이니, 하백의 딸이 햇빛에 감응하여 밴 아들이라 한다. 주몽은 자라며 재주와 계략이 있어 부여 사람들이 미워하여 쫓아내니, 흘두골성에 자리 잡고 스스로 고구려라 이름하며 그대로 고(高)를 성씨로 삼았다. 그 손자 막래가 차츰 성해져 부여를 쳐서 신하로 삼았다. 막래의 후손 련(장수왕)이 처음 후위에 사신을 통하였다.
협주 2
土于紇斗骨城北史殿本卷九四高麗傳作「紇升滑城」,北史百衲本、魏書卷一00高句麗傳、通典卷一八六高句麗條、冊府卷九五六一一二四二頁都作「紇升骨城」。按「骨」「滑」同音。「升」「斗」隸書常相混,不知孰是。
「흘두골성에 자리 잡았다」는 북사 전본 고려전에 「흘승골성(紇升滑城)」으로, 북사 백납본·위서 고구려전·통전·책부원귀에는 다 「흘승골성(紇升骨城)」으로 되어 있다. 「골」과 「활」은 소리가 같고, 「승」과 「두」는 예서에서 늘 서로 헷갈리니 어느 것이 옳은지 모른다.
其孫莫來漸盛魏書本傳稱「朱蒙死,閭達代立;閭達死,子如栗代立;如栗死,子莫來代立」。隋書卷八一高麗傳亦以莫來為閭達孫,則是朱蒙曾孫。北史本傳百衲本、殿本缺閭達一代,則莫來為朱蒙孫,與周書同,而局本卻又有「閭達」,疑據魏書補。
「그 손자 막래가 차츰 성해졌다」 — 위서 본전에는 「주몽이 죽자 여달이 대신 서고, 여달이 죽자 아들 여률이 서고, 여률이 죽자 아들 막래가 섰다」 한다. 수서 고려전도 막래를 여달의 손자라 하니 곧 주몽의 증손이다. 북사 백납본·전본에는 여달 한 대가 빠져 막래가 주몽의 손자가 되어 주서와 같은데, 국본에는 또 「여달」이 있으니 위서에 따라 보충한 듯하다.
2평양성과 별도들
其地,東至新羅,西渡遼水二千里,南接百濟,北隣靺鞨千餘里。治平壤城。其城,東西六里,南臨浿水。城內唯積倉儲器備,寇賊至日,方入固守。王則別為宅於其側,不常居之。其外有國內城及漢城,亦別都也,復有遼東、玄菟等數十城,皆置官司,以相統攝。
그 땅은 동으로 신라에 이르고 서로 요수를 건너 이천 리며, 남으로 백제에 접하고 북으로 말갈과 이웃하기 천여 리다. 평양성을 다스림터로 삼는데, 그 성은 동서 육 리로 남쪽이 패수에 임한다. 성안에는 오직 곡식과 병기만 쌓아 두었다가, 도적이 이르는 날에야 들어가 굳게 지킨다. 왕은 그 곁에 따로 집을 지었으나 늘 살지는 않는다. 그 밖에 국내성과 한성이 있으니 역시 별도(別都)요, 또 요동·현도 등 수십 성이 있어 다 관사를 두어 서로 통솔한다.
3대대로와 열세 벼슬
大官有大對盧,次有太大兄、大兄、小兄、意俟奢、烏拙、太大使者、大使者、小使者、褥奢、翳屬、仙人并褥薩凡十三等,分掌內外事焉。其大對盧,則以彊弱相陵,奪而自為之,不由王之署置也。其刑法:謀反及叛者,先以火焚爇,然後斬首,籍沒其家。盜者,十餘倍徵贓。若貧不能備,及負公私債者,皆聽評其子女為奴婢以償之。
큰 벼슬에 대대로(大對盧)가 있고, 다음에 태대형·대형·소형·의사사·오졸·태대사자·대사자·소사자·욕사·예속·선인과 욕살까지 무릇 열세 등급이 있어 안팎의 일을 나누어 맡는다. 그 대대로는 강하고 약함으로 서로 업신여겨 빼앗아 스스로 되는 것이요, 왕이 임명하는 자리가 아니다. 그 형법은, 모반하거나 배반한 자는 먼저 불로 지진 뒤에 목을 베고 그 집안을 적몰한다. 도둑질한 자는 열몇 배로 장물을 물린다. 가난하여 갖추지 못하거나 공사의 빚을 진 자는, 다 그 자녀를 노비로 쳐서 갚는 것을 들어준다.
협주 1
意俟奢隋書本傳作「意侯奢」,北史作「竟侯奢」。
「의사사(意俟奢)」는 수서 본전에 「의후사(意侯奢)」, 북사에 「경후사(竟侯奢)」로 되어 있다.
4골소 관과 두 신묘
丈夫衣同袖衫、大口袴、白韋帶、黃革履。其冠曰骨蘇,多以紫羅為之,雜以金銀為飾。其有官品者,又插二鳥羽於其上,以顯異之。婦人服裙襦,裾袖皆為襈。書籍有五經、三史、三國志、晉陽秋。兵器有甲弩弓箭戟矟矛鋋。賦稅則絹布及粟,隨其所有,量貧富差等輸之。土田塉薄,居處節儉。然尚容止。多詐偽,言辭鄙穢,不簡親疏,乃至同川而浴,共室而寢。風俗好淫,不以為愧。有遊女者,夫無常人。婚娶之禮,畧無財幣,若受財者,謂之賣婢,俗甚恥之。父母及夫喪,其服制同於華夏。兄弟則限以三月。敬信佛法,尤好淫祀。又有神廟二所:一曰夫餘神,刻木作婦人之象;一曰登高神,云是其始祖夫餘神之子。竝置官司,遣人守護。蓋河伯女與朱蒙云。
장부는 통소매 적삼과 통 넓은 바지에 흰 가죽 띠와 누런 가죽신을 신는다. 그 관은 골소(骨蘇)라 하는데 대개 자줏빛 비단으로 만들고 금은을 섞어 꾸민다. 벼슬 품계가 있는 자는 또 그 위에 새 깃 둘을 꽂아 뚜렷이 달리한다. 부인은 치마저고리를 입는데 도련과 소매에 다 선을 두른다.
서적으로는 오경과 삼사(三史)와 삼국지와 진양추가 있다. 병기로는 갑옷·쇠뇌·활·화살·창·긴 창·모·연이 있다. 조세는 명주·베와 조를 그 있는 대로 빈부를 헤아려 차등으로 낸다. 땅과 밭은 메마르고 얇아 사는 것이 검소하다. 그러나 몸가짐을 숭상한다. 속임이 많고 말씨가 비루하며 친하고 성긴 것을 가리지 않아, 같은 내에서 목욕하고 한 방에서 자는 데 이른다. 풍속이 음란함을 좋아하면서 부끄러워하지 않으며, 노는 여인이 있어 지아비가 일정하지 않다. 혼인의 예는 재물이 거의 없으니, 재물을 받으면 계집종을 판다 하여 풍속에 몹시 부끄럽게 여긴다.
부모와 지아비의 상에는 복제가 화하와 같고, 형제는 석 달로 한한다. 불법을 공경해 믿으며 음사(淫祀)를 더욱 좋아한다. 또 신묘가 두 곳 있으니, 하나는 부여신이라 하여 나무를 깎아 부인의 형상을 만들었고, 하나는 등고신이라 하니 그 시조 부여신의 아들이라 한다. 다 관사를 두고 사람을 보내 지키는데, 대개 하백의 딸과 주몽이라 한다.
협주 4
白韋帶隋書、北史本傳作「素皮帶」。
「백위대(白韋帶·흰 가죽 띠)」는 수서·북사 본전에 「소피대(素皮帶)」로 되어 있다.
其冠曰骨蘇北史本傳倒作「蘇骨」。
「그 관을 골소(骨蘇)라 한다」는 북사 본전에 「소골(蘇骨)」로 뒤집혀 있다.
乃至同川而浴共室而寢隋書、北史本傳「乃至」作「父子」。
「내지(乃至) 같은 내에서 목욕하고 한 방에서 잔다」의 「내지」는 수서·북사 본전에 「부자(父子)」로 되어 있다.
一曰登高神北史本傳倒作「高登神」。
「하나는 등고신(登高神)이라 한다」는 북사 본전에 「고등신(高登神)」으로 뒤집혀 있다.
5양원왕과 평원왕
璉五世孫成,大統十二年,遣使獻其方物。成死,子湯立。建德六年,湯又遣使來貢。高祖拜湯為上開府儀同大將軍、遼東郡開國公、遼東王。
련의 5세손 성(양원왕)이 대통 십이년에 사신을 보내 방물을 바쳤다. 성이 죽고 아들 탕(평원왕)이 즉위하였다. 건덕 육년에 탕이 또 사신을 보내 조공하니, 고조가 탕에게 상개부의동대장군·요동군개국공·요동왕을 제수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