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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獠)獠

주서 이역전 周書 異域傳 · 영호덕분(令狐德棻) 등 · 636년 (당 정관 10) · 단락 5 · 한자 855자 · 낭독 3.4분

「주서 이역전」 한 권 「요(獠)」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북주(北周)가 본 이웃들. 고려의 열세 벼슬과 골소 관, 백제의 어라하·건길지와 열여섯 품계가 상세하고, 만(蠻)·요(獠)·탕창강·계호 등 중국 안팎 여러 족속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판본을 견준 교감기 66조를 협주로 함께 옮겼다.

1이름 없는 사람들

獠者,蓋南蠻之別種,自漢中達于卭、笮,川洞之間,在所皆有之。俗多不辨姓氏,又無名字,所生男女,唯以長幼次第呼之。其丈夫稱阿謩、阿段,婦人阿夷、阿第之類,皆其語之次第稱謂也。喜則羣聚,怒則相殺,雖父子兄弟,亦手刃之。遞相掠賣,不避親戚。被賣者號叫不服,逃竄避之,乃將買人指撝捕逐,若追亡叛,獲便縛之。但經被縛者,即服為賤隸,不敢更稱良矣。俗畏鬼神,尤尚淫祀巫祝,至有賣其昆季妻孥盡者,乃自賣以祭祀焉。往往推一酋帥為王,亦不能遠相統攝。

요(獠)는 대개 남만의 별종으로, 한중에서 공·작에 이르는 내와 골 사이 어디에나 있다. 풍속에 성씨를 가리지 않는 이가 많고 또 이름이 없어, 낳은 아들딸을 오직 맏이 차례로만 부른다. 장부는 아모·아단이라 하고 부인은 아이·아제 따위로 부르니, 다 그 말의 차례 일컬음이다. 기쁘면 무리 지어 모이고 성나면 서로 죽이니, 아비 자식 형제라도 손수 칼질한다. 서로 노략해 팔되 친척도 가리지 않는다. 팔린 자가 울부짖으며 승복하지 않고 달아나 숨으면, 곧 산 사람을 시켜 가리키며 뒤쫓게 하여 도망친 종 잡듯 하니, 잡히면 묶는다. 한 번 묶인 자는 곧 천한 종으로 승복하여 감히 다시 양민이라 일컫지 못한다. 풍속이 귀신을 두려워하고 음사와 무당을 더욱 숭상하여, 형제와 처자를 다 팔아 버린 자가 마침내 스스로를 팔아 제사에 바치는 데까지 이른다. 이따금 한 추장을 밀어 왕으로 삼으나 멀리까지 서로 다스리지는 못한다.

협주 2

婦人阿夷阿第之類魏書卷一0一、北史卷九五僚傳、通典卷一八七僚條、冊府卷九六0一一二九四頁「第」都作「等」,疑作「第」誤。

「부인은 아이·아제 따위」의 제(第)는 위서·북사 요전·통전·책부원귀에 다 「등(等)」으로 되어 있으니 「第」가 잘못인 듯하다.

乃自賣以祭祀焉宋本「祭祀」作「祭祭」。魏書、北史、通志本傳,通典卷一八七,冊府卷九六0一一二九四頁作「供祭」。按文義作「供祭」較長。疑宋本誤「供」作「祭」,後人以「祭祭」不可通,改下「祭」字作「祀」,不知誤在上「祭」字。

「스스로를 팔아 제사에 바친다」 — 송본에는 「제사(祭祀)」가 「제제(祭祭)」로 되어 있다. 위서·북사·통지 본전과 통전·책부원귀에는 「공제(供祭)」로 되어 있다. 글뜻으로는 「공제」가 낫다. 송본이 「供」을 「祭」로 잘못 쓰자, 뒷사람이 「祭祭」가 통하지 않으므로 아래 「祭」를 「祀」로 고친 것이니, 잘못이 위 「祭」 자에 있는 줄 몰랐던 것이다.

2압료

自江左及中州遞有巴、蜀,多恃險不賓。太祖平梁、益之後,令所在撫慰。其與華民雜居者,亦頗從賦役。然天性暴亂,旋至擾動。每歲命隨近州鎮出兵討之,獲其口以充賤隸,謂之為壓獠焉。後有商旅往來者,亦資以為貨,公卿逮于民庶之家,有獠口者多矣。

강남과 중원이 차례로 파·촉을 차지했으나 대개 험함을 믿고 복종하지 않았다. 태조가 양주·익주를 평정한 뒤 곳곳에 명해 어루만지게 하였다. 화민(華民)과 섞여 사는 자는 자못 부역을 따랐다. 그러나 천성이 사납고 어지러워 이내 소동하니, 해마다 가까운 주진에 명해 군사를 내어 치고 그 사람들을 잡아 천한 종으로 삼으니, 이를 압료(壓獠)라 일렀다. 뒤에는 오가는 장사꾼들도 그것을 밑천 삼아 팔고 사니, 공경부터 서민의 집까지 요의 종을 둔 자가 많았다.

3육등이 목롱을 깨뜨리다

魏恭帝三年,陵州木籠獠反,詔開府陸騰討破之,俘斬萬五千人。保定二年,鐵山獠又反,抄斷江路。陸騰復攻拔其三城,虜獲三千人,降其種三萬落。語在騰傳。

위 공제 3년에 능주 목롱의 요가 배반하니, 조서로 개부 육등이 쳐서 깨뜨리고 만 오천 명을 사로잡고 베었다. 보정 이년에 철산의 요가 또 배반하여 강길을 끊어 노략하니, 육등이 다시 그 세 성을 쳐서 빼앗고 삼천 명을 사로잡았으며 그 갈래 삼만 락의 항복을 받았다. 이야기는 육등의 전에 있다.

4조문표의 한 길

天和三年,梁州恆稜獠叛,總管長史趙文表討之。軍次巴州,文表欲率眾徑進。軍吏等曰:「此獠旅拒日久,部眾甚彊。討之者皆四面攻之,以分其勢。今若大軍直進,不遣奇兵,恐併力於我,未可制勝。」文表曰:「往者既不能制之,今須別為進趣。若四面遣兵,則獠降走路絕,理當相率以死拒戰。如從一道,則吾得示威恩,分遣使人以理曉諭。為惡者討之,歸善者撫之。善惡既分,易為經畧。事有變通,奈何欲遵前轍也。」文表遂以此意遍令軍中。時有從軍熟獠,多與恆稜親識,即以實報之。恆稜獠相與聚議,猶豫之間,文表軍已至其界。獠中先有二路,一路稍平,一路極險。俄有生獠酋帥數人來見文表曰:「我恐官軍不悉山川,請為鄉導。」文表謂之曰:「此路寬平,不須導引,卿但先去,好慰諭子弟也。」乃遣之。文表謂其眾曰:「向者,獠帥語吾從寬路而行,必當設伏要我。若從險路,出其不虞,獠眾自離散矣。」於是勒兵從險道進,其有不通之處,隨即治之。乘高而望,果見其伏兵。獠既失計,爭携妻子,退保險要。文表頓軍大蓬山下,示以禍福,遂相率來降。文表皆慰撫之,仍徵其稅租,無敢動者。後除文表為蓬州刺史,又大得獠和。

천화 삼년에 양주 항릉의 요가 배반하니 총관장사 조문표가 쳤다. 군사가 파주에 이르자 문표가 무리를 거느리고 곧장 나아가려 하니, 군리들이 말하였다. 「이 요는 버틴 지 오래고 부중이 몹시 강합니다. 치는 자들이 다 사면으로 쳐서 그 세력을 나누었습니다. 이제 대군이 곧장 나아가고 기병(奇兵)을 보내지 않으면, 힘을 우리에게 모을까 두려우니 이길 수 없습니다.」 문표가 말하였다. 「지난날에도 제압하지 못했으니 이제 달리 나아가야 한다. 사면으로 군사를 보내면 요는 항복해도 달아날 길이 끊기니, 이치로 보아 서로 이끌고 죽기로 막아 싸울 것이다. 한 길로 가면 내가 위엄과 은혜를 보이고, 사람을 나누어 보내 이치로 타이를 수 있다. 악한 자는 치고 선으로 돌아오는 자는 어루만진다. 선악이 갈리면 경략하기 쉽다. 일에는 변통이 있는 법인데 어찌 앞 자취만 따르려 하는가.」 문표가 드디어 이 뜻을 군중에 두루 명하였다.

그때 종군한 숙료(熟獠) 가운데 항릉과 친분 있는 이가 많아 곧 사실대로 알려 주었다. 항릉의 요가 서로 모여 의논하며 머뭇거리는 사이에 문표의 군사가 이미 그 지경에 이르렀다. 요의 땅에는 본디 두 길이 있어 한 길은 조금 평탄하고 한 길은 몹시 험했다. 이윽고 생료(生獠) 추장 몇 사람이 문표를 찾아와 「관군이 산천을 잘 모르실까 하여 길잡이가 되기를 청합니다」 하니, 문표가 「이 길은 넓고 평탄하니 인도가 필요 없다. 그대들은 먼저 가서 자제들을 잘 타이르라」 하고 보냈다. 문표가 무리에게 말하였다. 「아까 요의 우두머리가 나더러 너른 길로 가라 했으니 반드시 매복을 두어 우리를 노릴 것이다. 험한 길로 가서 그 뜻밖을 찌르면 요의 무리는 절로 흩어지리라.」 이에 군사를 몰아 험한 길로 나아가며 통하지 않는 곳은 곧바로 닦았다. 높은 데 올라 바라보니 과연 그 복병이 보였다. 요가 계책을 잃자 다투어 처자를 이끌고 물러나 험요를 지켰다. 문표가 대봉산 아래 군사를 머물고 화복을 보이니 드디어 서로 이끌고 와서 항복하였다. 문표가 다 어루만지고 그대로 조세를 거두니 감히 움직이는 자가 없었다. 뒤에 문표를 봉주자사로 삼으니 또 요의 화심을 크게 얻었다.

5도의로 부르기 가장 어려운 무리

建德初,李暉為梁州總管,諸獠亦竝從附。然其種類滋蔓,保據巖壑,依林走險,若履平地,雖屢加兵,弗可窮討。性又無知,殆同禽獸,諸夷之中,最難以道義招懷者也。

건덕 초에 이휘가 양주총관이 되니 뭇 요가 또한 다 따라 붙었다. 그러나 그 갈래가 불어나 바위 골짜기에 웅거하며 숲을 타고 험한 데를 달리기를 평지 밟듯 하니, 여러 번 군사를 더해도 끝까지 칠 수 없었다. 성질이 또 아는 것이 없어 거의 새 짐승 같으니, 여러 이(夷) 가운데 도의로 불러 품기 가장 어려운 무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