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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국高麗國

남제서 동남이전 南齊書 東南夷傳 · 소자현(蕭子顯) · 537년 무렵 (남조 양) · 단락 8 · 한자 1,334자 · 낭독 5.3분

「남제서 동남이전」 한 권 「고려국」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남제가 본 동이와 남이. 장수왕의 죽음, 가라왕 하지의 첫 단독 입전, 백제 동성왕(모대)이 북위 기병 수십만을 깨뜨렸다는 표문이 실려 있다. 고려전 한가운데 한 쪽이 결락된 사연까지 그대로 보였다.

1장수왕과 남제

東夷高麗國,西與魏虜接界。宋末,高麗王樂浪公高璉為使持節、散騎常侍、都督營平二州諸軍事、車騎大將軍、開府儀同三司。太祖建元元年,進號驃騎大將軍。三年,遣使貢獻,乘舶汎海,使驛常通,亦使魏虜,然彊盛不受制。

동이 고려국은 서쪽으로 위로(魏虜·북위)와 경계를 접한다. 송나라 말에 고려왕 낙랑공 고련(장수왕)이 사지절·산기상시·도독영평이주제군사·거기대장군·개부의동삼사가 되었다. 태조 건원 원년에 표기대장군으로 호를 올렸다. 삼년에 사신을 보내 공물을 바치니,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사신과 역참이 늘 통했으며, 위로에도 사신을 보냈으나 강성하여 절제를 받지는 않았다.

협주 1

太祖建元元年進號驃騎大將軍按高帝紀繫此事於建元二年四月。

「태조 건원 원년에 표기대장군으로 호를 올렸다」 — 고제기에는 이 일이 건원 2년 4월에 매여 있다.

2사신 자리다툼

虜置諸國使邸,齊使第一,高麗次之。永明七年,平南參軍顏幼明、冗從僕射劉思斅使虜。虜元會,與高麗使相次。幼明謂偽主客郎裴叔令曰:「我等銜命上華,來造卿國。所為抗敵,在乎一魏。自餘外夷,理不得望我鑣塵。況東夷小貊,臣屬朝廷,今日乃敢與我躡踵。」思斅謂偽南部尚書李思沖曰:「我聖朝處魏使,未嘗與小國列,卿亦應知。」思沖曰:「實如此。但主副不得升殿耳。此閒坐起甚高,足以相報。」思斅曰:「李道固昔使,正以衣冠致隔耳。魏國必纓冕而至,豈容見黜。」幼明又謂虜主曰:「二國相亞,唯齊與魏。邊境小狄,敢躡臣蹤。」

오랑캐(북위)는 여러 나라 사신의 관저를 두었는데, 제나라 사신이 첫째요 고려가 그다음이었다. 영명 칠년에 평남참군 안유명과 용종복야 유사효가 오랑캐에 사신 갔다. 오랑캐의 새해 조회에서 고려 사신과 나란히 서게 되자, 유명이 거짓 조정의 주객랑 배숙령에게 말하였다. 「우리는 상국의 명을 받들고 그대 나라에 왔소. 맞설 만한 상대는 오직 위나라 하나뿐이오. 그 밖의 외이는 이치로 보아 우리 수레 먼지도 바라볼 수 없거늘, 하물며 동이의 작은 맥(貊)으로 우리 조정에 신하로 속한 자가 오늘 감히 우리와 발꿈치를 나란히 하는가.」

사효가 거짓 조정의 남부상서 이사충에게 「우리 성조는 위나라 사신을 대접함에 작은 나라와 나란히 세운 적이 없으니 그대도 알 것이오」 하니, 사충이 「참으로 그렇소. 다만 정사와 부사가 전에 오르지 못할 뿐이오. 이곳은 앉는 자리가 몹시 높으니 그것으로 갚음이 되오」 하였다. 사효가 「이도고가 옛날 사신 왔을 때는 바로 의관 때문에 막혔을 뿐이오. 위나라가 반드시 갓끈에 면류관을 갖추고 온다면 어찌 물리침을 당하겠소」 하였다.

유명이 또 오랑캐 임금에게 말하였다. 「두 나라가 서로 버금가는 것은 오직 제와 위뿐인데, 변경의 작은 오랑캐가 감히 신의 발자취를 밟습니다.」

3절풍 관은 무엇이오

高麗俗服窮袴,冠折風一梁,謂之幘。知讀五經。使人在京師,中書郎王融戯之曰:「服之不衷,身之災也。頭上定是何物?」答曰:「此即古弁之遺像也。」

고려의 풍속은 통 좁은 바지를 입고 절풍(折風) 한 량짜리 관을 쓰니, 책(幘)이라 이른다. 오경을 읽을 줄 안다. 사신이 서울에 있을 때 중서랑 왕융이 놀리기를 「입은 것이 몸에 맞지 않으면 몸의 재앙이라 하였소. 머리 위의 것은 대체 무엇이오?」 하니, 답하기를 「이것이 곧 옛 고깔(弁)의 남은 모습이오」 하였다.

4장수왕이 죽다 — 결락 한 쪽

高璉年百餘歲卒。隆昌元年,以高麗王樂浪公高雲為使持節、散騎常侍、都督營平二州諸軍事、征東大將軍、高麗王、樂浪公。建武三年,報功勞勤,實存名烈。假行寧朔將軍臣姐瑾等四人,振竭忠効,攘除國難,志勇果毅,等威名將,可謂扞城,固蕃社稷,論功料勤,宜在甄顯。

고련이 나이 백여 살로 죽었다. 융창 원년에 고려왕 낙랑공 고운(문자명왕)을 사지절·산기상시·도독영평이주제군사·정동대장군·고려왕·낙랑공으로 삼았다.

건무 삼년에 — (이 아래 한 쪽이 결락되어 고려전의 뒷부분과 백제전의 앞부분이 빠졌다. 이어지는 글은 백제왕 모대의 표문 가운데 토막이다.) —

「…공로와 부지런함에 보답함은 실로 이름과 공렬을 보존하는 길입니다. 가행 영삭장군 신 저근 등 네 사람은 충성을 떨쳐 나라의 어려움을 물리쳤으니, 뜻과 용맹이 과감하여 위엄이 명장에 맞먹고 성을 지키는 방패라 할 만하며 사직의 울타리를 굳혔으니, 공을 논하고 부지런함을 헤아리면 마땅히 드러내야 합니다.…」

협주 3

原闕

원문 빠짐.

建武三年原闕此下缺一頁,脫高麗傳之下半篇,百濟傳之上半篇,各本同。原本每頁十八行,每行十八字。按元龜九百六十八:「明帝建武三年,高麗王、樂浪公遣使貢獻。」明帝紀不載,當亦為高麗傳缺頁中佚文。又建康實錄南齊高麗傳有:「其官位加(?)長史、司馬、參軍之屬。拜則申一腳,坐則跪,行則走,以為恭敬。國有銀山,採為貨,並人參貂皮。重中國綵纈,丈夫衣之。亦重虎皮。」疑亦南齊書高麗傳缺頁中佚文也。又元龜九百六十三:「齊高帝建元二年三月,百濟王牟都遣使貢獻。詔曰:『寶命維新,澤被絕域。牟都世藩東表,守職遐外,可即授使持節都督百濟諸軍事、鎮東大將軍。』」當亦為百濟傳缺頁中佚文。

「건무 3년」 아래 원문 빠짐 — 이 아래 한 쪽이 결락되어 고려전의 아래 반쪽과 백제전의 위 반쪽이 빠졌으니, 각 판본이 같다. 원본은 쪽마다 18행, 행마다 18자다. 책부원귀 968권에 「명제 건무 3년에 고려왕 낙랑공이 사신을 보내 공물을 바쳤다」 하는데 명제기에 실리지 않았으니, 이 또한 고려전 결락 쪽의 잃어버린 글일 것이다. 또 건강실록 남제 고려전에 「그 관위에 장사·사마·참군 따위를 더한다. 절할 때는 한 다리를 펴고, 앉을 때는 꿇어앉으며, 다닐 때는 달리는 것으로 공경을 삼는다. 나라에 은산이 있어 캐어 재화로 삼고, 인삼과 담비 가죽이 난다. 중국의 채색 비단을 귀히 여겨 장부가 입고, 범 가죽도 귀히 여긴다」 하니, 이 역시 남제서 고려전 결락 쪽의 글인 듯하다. 또 책부원귀 963권에 「제 고제 건원 2년 3월에 백제왕 모도가 사신을 보내 공물을 바치니, 조서에 〈보명이 유신하여 은택이 먼 지역까지 미친다. 모도는 대대로 동쪽에서 번국 노릇을 하며 먼 밖에서 직분을 지켰으니, 사지절도독백제제군사·진동대장군을 제수할 만하다〉 하였다」 하니, 이는 백제전 결락 쪽의 글일 것이다.

等威名將「威」原譌「截」,各本不譌,今改正。

「위엄이 명장에 맞먹는다(等威名將)」의 「위(威)」는 원래 「절(截)」로 잘못되어 있는데, 각 판본은 잘못되지 않았으니 이제 바로잡았다.

5저근 등 네 왕후

今依例輒假行職。伏願恩愍,聽除所假。寧朔將軍、面中王姐瑾,歷贊時務,武功竝列,今假行冠軍將軍、都將軍、都漢王。建威將軍、八中侯餘古,弱冠輔佐,忠効夙著,今假行寧朔將軍、阿錯王。建威將軍餘歷,忠款有素,文武列顯,今假行龍驤將軍、邁盧王。廣武將軍餘固,忠効時務,光宣國政,今假行建威將軍、弗斯侯。」

「…이제 예에 따라 우선 임시 직을 내렸으니, 엎드려 바라건대 은혜로 살피시어 임시로 내린 것을 정식 제수로 허락하소서. 영삭장군 면중왕 저근은 시무를 두루 도와 무공이 아울러 드러났으니 이제 가행 관군장군·도장군·도한왕이라 하고, 건위장군 팔중후 여고는 약관에 보좌하여 충성이 일찍 드러났으니 이제 가행 영삭장군·아착왕이라 하고, 건위장군 여력은 충성이 본디 있고 문무가 뚜렷하니 이제 가행 용양장군·매로왕이라 하고, 광무장군 여고(餘固)는 시무에 충성을 다해 나라 정사를 빛냈으니 이제 가행 건위장군·불사후라 합니다.」

6고달·양무·회매

牟大又表曰:「臣所遣行建威將軍、廣陽太守、兼長史臣高達,行建威將軍、朝鮮太守、兼司馬臣楊茂,行宣威將軍、兼參軍臣會邁等三人,志行清亮,忠款夙著。往泰始中,比使宋朝,今任臣使,冒涉波險,尋其至効,宜在進爵,謹依先例,各假行職。且玄澤靈休,萬里所企,況親趾天庭,乃不蒙賴。伏願天監特愍除正。達邊効夙著,勤勞公務,今假行龍驤將軍、帶方太守。茂志行清壹,公務不廢,今假行建威將軍、廣陵太守。(萬)〔邁〕執志周密,屢致勤効,今假行廣武將軍、清河太守。」詔可,竝賜軍號,除太守。為使持節、都督百濟諸軍事、鎮東大將軍。

모대가 또 표를 올렸다. 「신이 보낸 행건위장군·광양태수·겸장사 신 고달과, 행건위장군·조선태수·겸사마 신 양무와, 행선위장군·겸참군 신 회매 등 세 사람은 뜻과 행실이 맑고 미더우며 충성이 일찍부터 드러났습니다. 지난 태시 연간에 잇달아 송조에 사신 갔고 이제 신의 사신을 맡아 파도의 험함을 무릅썼으니, 그 지극한 보람을 헤아리면 마땅히 작을 올려야 합니다. 삼가 전례에 따라 각각 임시 직을 내렸습니다. 또 하늘의 은택은 만 리가 우러르는 바이온데, 하물며 몸소 천정(天庭)에 나아가고도 은혜를 입지 못하겠습니까. 엎드려 바라건대 하늘의 살피심으로 특별히 정식 제수를 허락하소서. 고달은 변경의 공효가 일찍 드러났고 공무에 부지런하니 이제 가행 용양장군·대방태수라 하고, 양무는 뜻과 행실이 맑고 한결같아 공무를 폐하지 않으니 이제 가행 건위장군·광릉태수라 하고, 회매는 뜻 잡음이 주밀하고 여러 번 부지런한 보람을 이루었으니 이제 가행 광무장군·청하태수라 합니다.」

조서로 허락하고 아울러 군호를 내리고 태수를 제수하였다. 그리고 (모대를) 사지절·도독백제제군사·진동대장군으로 삼았다.

협주 3

牟大又表曰按「牟大」通志及元龜並作「牟太」。又元龜九百六十三:「齊武帝永明八年正月,百濟王牟太遣使上表,遣謁僕射孫副策命」,知上此表在永明八年正月也。

「모대가 또 표를 올렸다」 — 「모대」는 통지와 책부원귀에 다 「모태」로 되어 있다. 또 책부원귀 963권에 「제 무제 영명 8년 정월에 백제왕 모태가 사신을 보내 표를 올리니, 알자복야 손부를 보내 책명하였다」 하니, 이 표를 올린 것이 영명 8년 정월임을 알 수 있다.

往泰始中「泰始」原譌「太始」,各本並譌,今改正。

「지난 태시 연간(泰始)」의 「泰始」는 원래 「太始」로 잘못되어 있는데, 각 판본이 다 잘못되었으니 이제 바로잡았다.

(萬)〔邁〕執志周密據南監本、殿本、局本改。按邁即上所云之會邁也。

「(萬)〔邁〕執志周密」은 남감본·전본·국본에 따라 고쳤다. 매(邁)는 곧 위에 말한 회매다.

7모대를 책봉하다

使兼謁者僕射孫副策命大襲亡祖父牟都為百濟王。曰:「於戲!惟爾世襲忠懃,誠著遐表,滄路肅澄,要貢無替。式循彝典,用纂顯命。往欽哉!其敬膺休業,可不慎歟!制詔行都督百濟諸軍事、鎮東大將軍百濟王牟大今以大襲祖父牟都為百濟王,即位章綬等玉銅虎竹符四。〔王〕其拜受,不亦休乎!」

겸알자복야 손부를 시켜, 모대에게 죽은 할아버지 모도의 백제왕 자리를 잇도록 책명하였다. 「아아! 그대는 대대로 충성과 부지런함을 이어 정성이 먼 데까지 드러났고, 바닷길이 맑게 트여 조공이 끊이지 않았다. 떳떳한 법을 따라 드러난 명을 잇게 하니, 가서 공경할지어다! 그 아름다운 업을 공경히 받으라. 삼가지 않을 수 있으랴! 제조(制詔)하노니, 행도독백제제군사·진동대장군 백제왕 모대는 이제 할아버지 모도를 이어 백제왕이 되니, 즉위의 인장과 인끈 등 옥·동호·죽부 넷을 내린다. 왕은 절하고 받으라. 또한 아름답지 않은가!」

협주 3

為使持節都督百濟諸軍事鎮東大將軍按此句上有奪文。

「사지절·도독백제제군사·진동대장군으로 삼았다」 — 이 구절 위에 빠진 글이 있다.

即位章綬等玉銅虎竹符四按此句疑有脫誤。

「즉위의 장수 등 옥·동호·죽부 넷」 — 이 구절에 빠지거나 그릇된 데가 있는 듯하다.

〔王〕其拜受據南監本、殿本、局本補。

「〔왕〕은 절하고 받으라」의 왕 자는 남감본·전본·국본에 따라 보충했다.

8기병 수십만을 깨뜨리다

是歲,魏虜又發騎數十萬攻百濟,入其界,牟大遣將沙法名、贊首流、解禮昆、木干那率眾襲擊虜軍,大破之。建武二年,牟大遣使上表曰:「臣自昔受封,世被朝榮,忝荷節鉞,剋攘列辟。往姐瑾等竝蒙光除,臣庶咸泰。去庚午年,獫狁弗悛,舉兵深逼。臣遣沙法名等領軍逆討,宵襲霆擊,匈梨張惶,崩若海蕩。乘奔追斬,僵尸丹野。由是摧其銳氣,鯨暴韜凶。今邦宇謐靜,實名等之略,尋其功勳,宜在褒顯。今假沙法名行征虜將軍、邁羅王,贊首流為行安國將軍、辟中王,解禮昆為行武威將軍、弗中侯,木干那前有軍功,又拔臺舫,為行廣威將軍、面中侯。伏願天恩特愍聽除。」又表曰:「臣所遣行龍驤將軍、樂浪太守兼長史臣慕遺,行建武將軍、城陽太守兼司馬臣王茂,兼參軍、行振武將軍、朝鮮太守臣張塞,行揚武將軍陳明,在官忘私,唯公是務,見危授命,蹈難弗顧。今任臣使,冒涉波險,盡其至誠。實宜進爵,各假行署。伏願聖朝特賜除正。」詔可,竝賜軍號。

이해에 위로가 또 기병 수십만을 일으켜 백제를 쳐 그 지경에 드니, 모대가 장수 사법명·찬수류·해례곤·목간나를 보내 무리를 거느리고 오랑캐 군을 기습해 크게 깨뜨렸다.

건무 이년에 모대가 사신을 보내 표를 올렸다. 「신은 예로부터 봉함을 받아 대대로 조정의 영화를 입었고, 외람되이 절월을 지녀 여러 적을 물리쳤습니다. 지난번 저근 등이 다 영광스러운 제수를 입어 신하와 백성이 다 편안했습니다. 지난 경오년에 험윤(북위)이 뉘우치지 않고 군사를 들어 깊이 쳐들어오니, 신이 사법명 등을 보내 군사를 거느리고 맞아 치게 하여, 밤에 기습해 벼락같이 치니 흉리(匈梨)가 허둥지둥 바다 뒤집히듯 무너졌습니다. 달아나는 것을 타고 쫓아 베니 주검이 들판을 붉혔습니다. 이로써 그 날카로운 기세를 꺾으니, 고래처럼 사납던 것이 흉포함을 감추었습니다. 이제 나라가 고요하니 실로 사법명 등의 계략입니다. 그 공훈을 찾으면 마땅히 기려 드러내야 하니, 이제 사법명을 가행 정로장군·매라왕으로, 찬수류를 행안국장군·벽중왕으로, 해례곤을 행무위장군·불중후로 삼고, 목간나는 앞서 군공이 있고 또 대와 배를 빼앗았으니 행광위장군·면중후로 삼습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하늘 은혜로 특별히 살펴 제수를 허락하소서.」

또 표를 올렸다. 「신이 보낸 행용양장군·낙랑태수 겸장사 신 모유와, 행건무장군·성양태수 겸사마 신 왕무와, 겸참군·행진무장군·조선태수 신 장새와, 행양무장군 진명은 관직에서 사사로움을 잊고 오직 공무에만 힘쓰며, 위태로움을 보면 목숨을 바치고 어려움을 밟고도 돌아보지 않았습니다. 이제 신의 사신을 맡아 파도의 험함을 무릅쓰고 그 지성을 다했으니, 실로 작을 올려야 마땅하므로 각각 가행의 관서를 내렸습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성조께서 특별히 정식 제수를 내리소서.」

조서로 허락하고 아울러 군호를 내렸다.

협주 1

匈梨張惶「梨」南監本作「犁」。漢書匈奴傳,其國稱單于曰撐犂孤塗單于。匈奴謂天為撐犂,謂子為孤塗,單于者,廣大之貌也。匈棃猶言匈奴單于,棃犂通。

「흉리(匈梨)가 허둥지둥」의 「리(梨)」는 남감본에 「犁」로 되어 있다. 한서 흉노전에 그 나라에서 선우를 탱리고도선우(撐犂孤塗單于)라 일컫는데, 흉노는 하늘을 탱리라 하고 아들을 고도라 하며 선우는 광대한 모습이다. 흉리는 흉노 선우를 이르는 말과 같으니, 棃와 犂는 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