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이 — 임읍과 부남南夷
1남이 임읍국
南夷林邑國,在交州南,海行三千里,北連九德,秦時故林邑縣也。漢末稱王。晉太康五年,始貢獻。
남이(南夷) 임읍국은 교주 남쪽에 있으니 바닷길로 삼천 리다. 북으로 구덕에 잇닿으니, 진(秦)나라 때의 옛 임읍현이다. 한나라 말에 왕을 일컬었다. 진(晉) 태강 오년에 처음 공물을 바쳤다.
2이름이 된 자마금
宋永初元年,林邑王范楊邁初產,母夢人以金席藉之,光色奇麗。中國謂紫磨金,夷人謂之「楊邁」,故以為名。楊邁死,子咄立,慕其父,復改名楊邁。
송 영초 원년에 임읍왕 범양매가 처음 태어날 때, 어머니가 꿈에 어떤 사람이 금 자리를 깔아 주는데 빛깔이 기이하고 고왔다. 중국에서 자마금(紫磨金)이라 하는 것을 이인(夷人)은 「양매」라 하므로 그로써 이름을 삼았다. 양매가 죽고 아들 돌(咄)이 서니, 아버지를 사모하여 다시 이름을 양매로 고쳤다.
3단화지가 임읍을 치다
林邑有金山,金汁流出於浦。事尼乾道,鑄金銀人像,大十圍。元嘉二十二年,交州刺史檀和之伐林邑,楊邁欲輸金萬斤,銀十萬斤,銅三十萬斤,還日南地。大臣䓯僧達諫,不聽。和之進兵破其北界犬戎區栗城,獲金寶無笇,毀其金人,得黃金數萬斤,餘物稱是。和之後病死,見胡神為祟。孝建二年,始以林邑長史范龍跋為揚武將軍。
임읍에는 금산이 있어 금물이 갯가로 흘러나온다. 니건도(尼乾道)를 섬겨 금은으로 사람 형상을 부어 만드는데 크기가 열 아름이다.
원가 이십이년에 교주자사 단화지가 임읍을 치니, 양매가 금 만 근, 은 십만 근, 구리 삼십만 근을 바치고 일남 땅을 돌려주겠다 하였다. 대신 자승달이 간하니 듣지 않았다. 화지가 진병하여 그 북쪽 지경 견융의 구률성을 깨뜨리고 금과 보배를 이루 셀 수 없이 얻었으며, 그 금인(金人)을 부수어 황금 수만 근을 얻으니 다른 물건도 그에 맞먹었다. 화지는 뒤에 병들어 죽었는데, 호신(胡神)이 빌미가 된 것을 보았다 한다. 효건 이년에 처음 임읍장사 범용발을 양무장군으로 삼았다.
협주 2
元嘉二十二年交州刺史檀和之伐林邑「二十二年」南史作「二十三年」。按宋書文帝紀繫此事於元嘉二十三年六月。
「원가 22년에 교주자사 단화지가 임읍을 쳤다」의 「22년」은 남사에 「23년」으로 되어 있다. 송서 문제기에는 이 일이 원가 23년 6월에 매여 있다.
大臣䓯僧達諫「諫」下南監本、局本有「止之」二字。
「대신 자승달이 간했다」의 「간(諫)」 아래에 남감본·국본에는 「지지(止之)」 두 자가 있다.
4범당근순의 찬탈
楊邁子孫相傳為王,未有位號。夷人范當根純攻奪其國,篡立為王。永明九年,遣使貢獻金簟等物。詔曰:「林邑(蟲)〔雖〕介在遐外,世服王化。當根純乃誠款到,率其僚職,遠績克宣,良有可嘉。宜沾爵號,以弘休澤。可持節、都督緣海諸軍事、安南將軍、林邑王。」范楊邁子孫范諸農率種人攻當根純,復得本國。十年,以諸農為持節、都督緣海諸軍事、安南將軍、林邑王。建武二年,進號鎮南將軍。永泰元年,諸農入朝,海中遭風溺死,以其子文款為假節、都督緣海軍事、安南將軍、林邑王。
양매의 자손이 서로 전하여 왕이 되었으나 위호는 없었다. 이인 범당근순이 그 나라를 쳐서 빼앗고 찬탈해 왕이 되었다. 영명 구년에 사신을 보내 금 대자리 등 물건을 바쳤다. 조서에 「임읍이 비록 먼 밖에 있으나 대대로 왕의 교화에 복종했다. 당근순이 정성이 지극하여 관료를 거느리고 먼 데서 공적을 펴니 참으로 가상하다. 작호를 주어 아름다운 은택을 넓힘이 마땅하니, 지절·도독연해제군사·안남장군·임읍왕으로 삼을 만하다」 하였다.
범양매의 자손 범제농이 종인을 거느리고 당근순을 쳐서 본국을 되찾았다. 십년에 제농을 지절·도독연해제군사·안남장군·임읍왕으로 삼았다. 건무 이년에 진남장군으로 호를 올렸다. 영태 원년에 제농이 입조하다가 바다에서 바람을 만나 빠져 죽으니, 그 아들 문관을 가절·도독연해군사·안남장군·임읍왕으로 삼았다.
협주 2
夷人范當根純攻奪其國張森楷校勘記云:「梁書、南史並云扶南王子當根純,事在晉末,與此敘於永明元年者不同。」
「이인 범당근순이 그 나라를 쳐서 빼앗았다」 — 장삼해 교감기에 「양서와 남사에는 다 부남 왕자 당근순이라 하고 일이 진나라 말에 있으니, 여기서 영명 연간에 편차한 것과 같지 않다」 하였다.
林邑(蟲)〔雖〕介在遐外各本作「林邑蠢爾,介在遐外」,元龜九百六十三作「林邑雖分當作介在遐外」。按詔賜林邑王爵號,不當引用「蠢爾」語,且下詔報扶南國王,亦有「彼雖介在遐陬」語,明「蟲」乃「雖」字之譌,今據元龜改。
「임읍이 (蟲)〔비록〕 먼 밖에 있으나」 — 각 판본에는 「임읍준이(林邑蠢爾), 개재하외(介在遐外)」로 되어 있고, 책부원귀 963권에는 「임읍이 비록 먼 밖에 있으나」로 되어 있다. 임읍왕에게 작호를 내리는 조서에 「준동하는 것들」이라는 말을 끌어 쓸 리 없고, 또 아래 부남 국왕에게 답한 조서에도 「저들이 비록 먼 모퉁이에 있으나」라는 말이 있으니, 「충(蟲)」이 「수(雖)」 자의 잘못임이 분명하므로 책부원귀에 따라 고쳤다.
5임읍의 풍속
晉建興中,日南夷帥范稚奴文數商賈,見上國制度,教林邑王范逸起城池樓殿。王服天冠如佛冠,身被香纓絡。國人凶悍,習山川,善鬬。吹海蠡為角。人皆裸露。四時暄暖,無霜雪。貴女賤男,謂師君為婆羅門。羣從相姻通,婦先遣娉求婿。女嫁者,迦藍衣橫幅合縫如井闌,首戴花寶。婆羅門牽婿與婦握手相付,呪願吉利。居喪剪髮,謂之孝。燔尸中野以為葬。遠界有靈鷲鳥,知人將死,集其家食死人肉盡,飛去,乃取骨燒灰投海中水葬。人色以黑為美,南方諸國皆然。區栗城建八尺表,日影度南八寸。
진(晉) 건흥 연간에 일남의 이(夷) 우두머리 범치의 종 문(文)이 여러 번 장사를 다니며 상국의 제도를 보고, 임읍왕 범일을 가르쳐 성지와 누전을 짓게 하였다. 왕은 하늘 관 쓰기를 부처 관같이 하고 몸에 향 영락을 두른다. 나라 사람들은 사납고 산천에 익숙하며 싸움을 잘한다. 바다소라를 불어 뿔피리로 삼는다. 사람들은 다 벌거벗는다. 사철이 따뜻하여 서리와 눈이 없다. 여자를 귀히 여기고 남자를 천히 여기며, 사군(師君)을 바라문이라 이른다. 겨레붙이끼리 서로 혼인하며, 며느리 쪽이 먼저 폐백을 보내 사위를 구한다. 여자가 시집갈 때는 가람의(迦藍衣)를 입는데 폭을 옆으로 대어 우물 난간처럼 맞꿰매며, 머리에 꽃보배를 인다. 바라문이 사위를 이끌어 며느리와 손을 잡아 서로 맡기며 길하고 이롭기를 빈다. 상을 당하면 머리를 자르는 것을 효라 이른다. 주검을 들에서 태우는 것으로 장사를 삼는다. 먼 지경에 영취조(靈鷲鳥)가 있어 사람이 죽으려는 것을 알고 그 집에 모여들어 죽은 사람 고기를 다 먹고 날아가면, 이에 뼈를 거두어 태워 재를 바다에 던져 물장사를 지낸다. 사람 빛깔은 검은 것을 아름답다 하니 남방 여러 나라가 다 그렇다. 구률성에 여덟 자 표를 세우면 해 그림자가 남으로 여덟 치를 넘는다.
협주 1
謂師君為婆羅門「師君」南監本、局本作「師巫」。
「사군(師君)을 바라문이라 이른다」의 「사군」은 남감본·국본에 「사무(師巫)」로 되어 있다.
6서남쪽 삼천 리
自林邑西南三千餘里,至扶南。
임읍에서 서남쪽으로 삼천여 리를 가면 부남에 이른다.
7부남국의 유래
扶南國,在日南之南大海西(蠻)〔灣〕中,廣袤三千餘里,有大江水西流入海。其先有女人為王,名柳葉。又有激國人混填,夢神賜弓一張,教乘舶入海。混填晨起於神廟樹下得弓,即乘舶向扶南。柳葉見舶,率眾欲禦之。混填舉弓遙射,貫船一面通中人。柳葉怖,遂降。混填娶以為妻。惡其裸露形體,乃疊布貫其首。遂治其國。子孫相傳。
부남국(扶南國)은 일남 남쪽 큰 바다 서쪽 만(灣) 가운데 있으니, 너비가 삼천여 리요 큰 강물이 서쪽으로 흘러 바다에 든다. 그 옛날 여인이 왕이 되었으니 이름이 유엽(柳葉)이다. 또 격국 사람 혼전(混塡)이 꿈에 신이 활 한 장을 주며 배를 타고 바다로 들라 가르쳤다. 혼전이 새벽에 일어나 신묘 나무 아래에서 활을 얻고, 곧 배를 타고 부남으로 향했다. 유엽이 배를 보고 무리를 거느려 막으려 하니, 혼전이 활을 들어 멀리 쏘아 배 한쪽을 꿰뚫고 그 안의 사람까지 맞혔다. 유엽이 두려워 드디어 항복하니 혼전이 맞아 아내로 삼았다. 몸을 벌거벗은 것을 싫어하여 겹천을 그 머리에 꿰게 하였다. 드디어 그 나라를 다스리고 자손이 서로 전하였다.
협주 4
在日南之南大海西(蠻)〔灣〕中據南監本及御覽七百八十六引改。
「일남 남쪽 큰 바다 서쪽 (蠻)〔만(灣)〕 가운데 있다」는 남감본과 어람 786권 인용에 따라 고쳤다.
夢神賜弓一張「一張」各本並作「二張」。
「꿈에 신이 활 한 장을 주었다」의 「한 장」은 각 판본에 다 「두 장」으로 되어 있다.
混填娶以為妻「娶」殿本作「遂」。
「혼전이 맞아 아내로 삼았다」의 「취(娶)」는 전본에 「수(遂)」로 되어 있다.
乃疊布貫其首「乃」下御覽七百八十六引有「穿」字。按通典邊防典亦有「穿」字。
「이에 겹천을 그 머리에 꿰게 했다」의 「내(乃)」 아래에 어람 786권 인용에는 「천(穿)」 자가 있다. 통전 변방전에도 「穿」 자가 있다.
8범심까지의 골육상잔
至王槃況死,國人立其大將范師蔓。蔓病,姊子旃(慕)〔篡〕立,殺蔓子金生。十餘年,蔓少子長襲殺旃,以刃鑱旃腹曰:「汝昔殺我兄,今為父兄報汝。」旃大將范尋又殺長,國人立以為王,是吳、晉時也。晉、宋世通職貢。
왕 반황이 죽자 나라 사람들이 그 대장 범사만을 세웠다. 사만이 병들자 누이의 아들 전(旃)이 찬탈해 서고 사만의 아들 금생을 죽였다. 십여 년 뒤 사만의 작은아들 장(長)이 전을 습격해 죽이고, 칼로 전의 배를 찌르며 「네가 옛날 내 형을 죽였으니 이제 아비와 형을 위해 너에게 갚는다」 하였다. 전의 대장 범심이 또 장을 죽이니, 나라 사람들이 그를 세워 왕으로 삼았다. 이는 오·진(吳晉) 때의 일이다. 진과 송 시대에 직공을 통하였다.
협주 1
姊子旃(慕)〔篡〕立據南史改。按旃名下屢見,不作「旃慕」,明「慕」乃「篡」字之形譌。
「누이의 아들 전(旃)이 (慕)〔찬탈해〕 섰다」는 남사에 따라 고쳤다. 전(旃)이라는 이름이 아래 여러 번 나오는데 「전모」로 되어 있지 않으니, 「모(慕)」가 「찬(篡)」 자의 모양이 비슷해 생긴 잘못임이 분명하다.
9나가선이 표류하다
宋末,扶南王姓僑陳如,名闍耶跋摩,遣商貨至廣州。天竺道人那伽仙附載欲歸國,遭風至林邑,掠其財物皆盡。那伽仙閒道得達扶南,具說中國有聖主受命。
송나라 말에 부남왕은 성이 교진여요 이름이 사야발마인데, 장삿짐을 광주에 보냈다. 천축 도인 나가선이 그 배에 얹혀 제 나라로 돌아가려다가 바람을 만나 임읍에 이르렀는데, 그 재물을 다 빼앗겼다. 나가선은 샛길로 겨우 부남에 이르러, 중국에 성주(聖主)가 천명을 받았음을 자세히 말하였다.
10부남왕의 표문
永明二年,闍耶跋摩遣天竺道人釋那伽仙上表稱扶南國王臣僑陳如闍耶跋摩叩頭啟曰:「天化撫育,感動靈祇,四氣調適。伏願聖主尊體起居康(御)〔豫〕,皇太子萬福,六宮清休,諸王妃主內外朝臣普同和睦,隣境士庶萬國歸心,五穀豐熟,災害不生,土清民泰,一切安穩。臣及人民,國土豐樂,四氣調和,道俗濟濟,竝蒙陛下光化所被,咸荷安泰。」又曰:「臣前遣使齎雜物行廣州貨易,天竺道人釋那伽仙於廣州因附臣舶欲來扶南,海中風漂到林邑,國王奪臣貨易,并那伽仙私財。具陳其從中國來此,仰序陛下聖德仁治,詳議風化,佛法興顯,眾僧殷集,法事日盛,王威嚴整,朝望國軌,慈愍蒼生,八方六合,莫不歸伏。如聽其所說,則化隣諸天,非可為喻。臣聞之,下情踊悅,若蹔奉見尊足,仰慕慈恩,澤流小國,天垂所感,率土之民,竝得皆蒙恩祐。
영명 이년에 사야발마가 천축 도인 석나가선을 보내 표를 올렸다. 「부남국왕 신 교진여 사야발마는 머리를 조아려 아룁니다. 하늘의 교화가 어루만져 기르시니 신령이 감동하고 사철 기운이 고릅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성주께서는 존체 기거가 편안하시고, 황태자는 만복하시며, 육궁이 맑고 편안하며, 여러 왕과 비주와 안팎 조정 신하가 두루 화목하며, 이웃 지경의 선비와 백성과 만국이 마음을 돌리며, 오곡이 풍성히 익고 재해가 나지 않아, 땅이 맑고 백성이 태평하여 일체 안온하기를 빕니다. 신과 인민과 나라도 풍성하고 즐거우며 사철 기운이 고르니, 도인과 속인이 다 폐하의 빛나는 교화를 입어 모두 편안합니다.」
또 아뢰었다. 「신이 앞서 사신을 보내 잡물을 싣고 광주에 가서 무역하게 했는데, 천축 도인 석나가선이 광주에서 신의 배에 얹혀 부남으로 오려다가 바다에서 바람에 떠밀려 임읍에 이르니, 그 나라 왕이 신의 무역물과 나가선의 사사 재물까지 빼앗았습니다. 나가선이 중국에서 이곳으로 온 일을 자세히 아뢰며, 폐하의 성덕과 어진 다스림을 우러러 펴 말하기를, 풍화를 자세히 의논하고 불법이 흥성하며 뭇 승려가 성대히 모여 법사(法事)가 날로 성하고, 왕의 위엄이 엄정하며 조정의 명망과 나라 법도가 창생을 어여삐 여겨 팔방 육합이 귀복하지 않음이 없다 합니다. 그 말대로라면 교화가 여러 하늘에 이웃함을 비유할 길이 없습니다. 신이 이를 듣고 속마음이 뛸 듯 기뻐, 잠깐이라도 존족(尊足)을 뵈온 듯 자애로운 은혜를 우러러 사모하니, 은택이 작은 나라에 흘러 하늘이 드리워 감응하시매 온 땅의 백성이 다 은혜와 복을 입게 되기를 바랍니다.
협주 1
伏願聖主尊體起居康(御)〔豫〕據南監本改。
「엎드려 바라건대 성주의 존체 기거가 강(御)〔예(豫)〕하시고」는 남감본에 따라 고쳤다.
11임읍을 쳐 달라
是以臣今遣此道人釋那伽仙為使,上表問訊奉貢,微獻呈臣等赤心,并別陳下情。但所獻輕陋,愧懼唯深。伏願天慈曲照,鑒其丹款,賜不垂責。」又曰:「臣有奴名鳩酬羅,委臣(免)〔逸〕走,別在餘處,構結兇逆,遂破林邑,仍自立為王。永不恭從,違恩負義,叛主之諐,天不容載。伏尋林邑昔為檀和之所破,久已歸化。天威所被,四海彌伏,而今鳩酬羅守執奴兇,自專很彊。且林邑扶南隣界相接,親又是臣奴,猶尚逆去,朝廷遙遠,豈復遵奉。此國屬陛下,故謹具上啟。伏聞林邑頃年表獻簡絕,便欲永隔朝廷,豈有師子坐而安大鼠。伏願遣軍將伐兇逆,臣亦自効微誠,助朝廷剪撲,使邊海諸國,一時歸伏。陛下若欲別立餘人為彼王者,伏聽勑旨。脫未欲灼然興兵伐林邑者,伏願特賜勑在所,隨宜以少軍助臣,乘天之威,殄滅小賊,伐惡從善。
이에 신이 이제 이 도인 석나가선을 사신으로 삼아 표를 올려 문안하고 공물을 바쳐, 신들의 붉은 마음을 조금이나마 드러내고 아울러 아랫사정을 따로 아룁니다. 다만 바치는 것이 가볍고 보잘것없어 부끄러움과 두려움이 깊을 뿐입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하늘 같은 자애로 굽어 비추시어 그 정성을 살피시고, 내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또 아뢰었다. 「신에게 구수라(鳩酬羅)라는 종이 있는데, 신을 저버리고 도망쳐 달아나 딴 곳에서 흉역을 얽어 드디어 임읍을 깨뜨리고 스스로 서서 왕이 되었습니다. 길이 공순하지 않고 은혜를 저버리고 의를 배반하니, 주인을 배반한 허물은 하늘도 용납하지 않는 바입니다. 엎드려 살피건대 임읍은 옛날 단화지에게 깨진 뒤 오래전에 귀화하였습니다. 하늘의 위엄이 미치는 바에 사해가 두루 복종하는데, 이제 구수라가 종의 흉악함을 스스로 지켜 제멋대로 사납게 버팁니다. 게다가 임읍과 부남은 지경이 서로 맞닿았고 친분으로 보아도 신의 종인데 오히려 거슬러 달아났으니, 조정이 아득히 멀다고 어찌 다시 받들겠습니까. 이 나라는 폐하께 속하므로 삼가 갖추어 아룁니다. 엎드려 듣건대 임읍이 요사이 표헌이 뜸하고 끊겨 조정과 아주 떨어지려 한다니, 어찌 사자 자리에 앉아 큰 쥐를 편안히 두겠습니까. 엎드려 바라건대 군장(軍將)을 보내 흉역을 치소서. 신도 작은 정성을 스스로 바쳐 조정의 치고 베어 냄을 도와, 바닷가 여러 나라가 일시에 귀복하게 하겠습니다. 폐하께서 다른 사람을 따로 세워 그 나라 왕으로 삼고자 하시면 칙지를 엎드려 따르겠습니다. 만약 아직 뚜렷이 군사를 일으켜 임읍을 치려 하지 않으신다면, 엎드려 바라건대 특별히 칙명을 그곳에 내리시어 형편 따라 적은 군사로 신을 도우시면, 하늘의 위엄을 타고 작은 도적을 섬멸하여 악을 치고 선을 따르게 하겠습니다.
협주 2
委臣(免)〔逸〕走據殿本、局本改。按南監本作「逃」。
「신을 저버리고 (免)〔도망쳐(逸)〕 달아나」는 전본·국본에 따라 고쳤다. 남감본에는 「도(逃)」로 되어 있다.
親又是臣奴「又」各本譌作「人」。
「친(親)으로 보아도 신의 종인데」의 「우(又)」는 각 판본에 「인(人)」으로 잘못되어 있다.
12바친 물건들
平蕩之日,上表獻金五婆羅。今輕此使送臣丹誠,表所陳啟,不盡下情。謹附那伽仙并其伴口具啟聞。伏願愍所啟。并獻金鏤龍王坐像一軀,白檀像一軀,牙塔二軀,古貝二雙,瑠璃蘇鉝二口,瑇瑁檳榔柈一枚。」
평정하는 날에는 표를 올려 금 다섯 바라(婆羅)를 바치겠습니다. 이제 이 사신에게 가벼이 신의 단성을 보내니, 표에 아뢴 것으로는 아랫사정을 다하지 못합니다. 삼가 나가선과 그 일행의 입에 부쳐 갖추어 아룁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아뢴 바를 어여삐 여기소서. 아울러 금루용왕좌상 한 구, 백단상 한 구, 상아탑 두 구, 고패 두 쌍, 유리 소랍 두 개, 대모 빈랑반 한 닢을 바칩니다.」
13마혜수라 천신과 조서
那伽仙詣京師,言其國俗事摩䤈首羅天神,神常降於摩躭山。土氣恒暖,草木不落。其上書曰:「吉祥利世閒,感攝於羣生。所以其然者,天感化緣明。仙山名摩躭,吉樹敷嘉榮。摩䤈首羅天,依此降尊靈。國土悉蒙祐,人民皆安寧。由斯恩被故,是以臣歸情。菩薩行忍慈,本迹起凡基。一發菩提心,二乘非所期。歷生積功業,六度行大悲。勇猛超劫數,財命捨無遺。生死不為猒,六道化有緣。具脩於十地,遺果度人天。功業既已定,行滿登正覺。萬善智圓備,惠日照塵俗。眾生感緣應,隨機授法藥。佛化遍十方,無不蒙濟擢。皇帝聖弘道,興隆於三寶。垂心覽萬機,威恩振八表。國土及城邑,仁風化清皎。亦如釋提洹,眾天中最超。陛下臨萬民,四海共歸心,聖慈流無疆,被臣小國深。」詔報曰:「具摩䤈降靈,流施彼土,雖殊俗異化,遙深欣讚。知鳩酬羅於彼背叛,竊據林邑,聚兇肆掠,殊宜剪討。彼雖介遐(休)〔陬〕,舊脩蕃貢,自宋季多難,海譯致壅,皇化惟新,習迷未革。
나가선이 서울에 이르러, 그 나라 풍속은 마혜수라(摩醯首羅) 천신을 섬기는데 신이 늘 마탐산에 내리며, 땅 기운이 늘 따뜻하고 초목이 지지 않는다고 말하였다. 그 글월에 아뢰기를 —
「길상이 세간을 이롭게 하여 뭇 중생을 감싸 잡으시니, 그러한 까닭은 하늘의 감화의 인연이 밝기 때문입니다. 신선 산 이름은 마탐이니 길한 나무가 아름답게 피고, 마혜수라천이 이곳에 의지해 존령을 내리시니, 국토가 다 복을 입고 인민이 다 안녕합니다. 이 은혜를 입었기에 신이 마음을 돌려 귀의합니다. 보살은 인욕과 자비를 행하여 본자취를 범부의 터에서 일으키니, 한 번 보리심을 내면 이승(二乘)은 기약할 바가 아닙니다. 삶을 거듭하며 공업을 쌓고 육도(六度)로 대비를 행하며, 용맹함이 겁수를 뛰어넘어 재물과 목숨을 남김없이 버립니다. 나고 죽음을 싫어하지 않고 육도(六道)의 인연 있는 이를 교화하며, 십지(十地)를 갖추어 닦아 남긴 과보로 인간과 하늘을 건집니다. 공업이 이미 정해지고 행이 차서 정각에 오르니, 만 가지 선과 지혜가 두루 갖추어져 지혜의 해가 티끌 세상을 비춥니다. 중생이 인연 따라 감응하면 근기 따라 법약을 주시니, 부처의 교화가 시방에 두루하여 건져 올림을 입지 않음이 없습니다. 황제께서 거룩히 도를 넓혀 삼보를 일으키시고, 마음을 기울여 만기를 살피시니 위엄과 은혜가 팔방에 떨칩니다. 국토와 성읍에 어진 바람이 맑고 밝으니, 또한 제석천이 뭇 하늘 가운데 가장 뛰어남과 같습니다. 폐하께서 만민에 임하시니 사해가 함께 마음을 돌리고, 성스러운 자애가 가없이 흘러 신의 작은 나라에 깊이 미칩니다.」
조서로 답하였다. 「마혜수라가 신령을 내려 그 땅에 흘러 베푼다 하니, 풍속은 다르고 교화는 달라도 멀리서 깊이 기뻐하며 기린다. 구수라가 그곳을 배반하여 임읍을 몰래 차지하고 흉악한 무리를 모아 마음껏 노략질하니 참으로 쳐 없앰이 마땅하다. 저들이 비록 먼 모퉁이에 있으나 예로부터 번국의 조공을 닦아 왔는데, 송나라 말의 많은 어려움 뒤로 바닷길 통역이 막혔고, 황제의 교화가 새로워졌는데도 미혹에 젖어 아직 고치지 못한 것이다.
협주 1
雖介遐(休)〔陬〕據南監本、毛本、殿本、局本改。
「비록 먼 (休)〔모퉁이(陬)〕에 있으나」는 남감본·모본·전본·국본에 따라 고쳤다.
14문덕으로 오게 하리라
朕方以文德來遠人,未欲便興干戈。王既欵列忠到,遠請軍威,今詔交部隨宜應接。伐叛柔服,寔惟國典,勉立殊效,以副所期。那伽仙屢銜邊譯,頗悉中土闊狹,令其具宣。」上報以絳紫地黃碧綠紋綾各五匹。
짐은 바야흐로 문덕으로 먼 데 사람을 오게 하려니, 아직 창칼을 일으키고 싶지 않다. 왕이 이미 충성을 정성껏 아뢰며 멀리서 군위(軍威)를 청했으니, 이제 교부(交部)에 조서를 내려 형편 따라 응접하게 한다. 배반한 자를 치고 복종하는 자를 어루만짐은 실로 나라의 법이니, 힘써 남다른 공을 세워 기대에 부응하라. 나가선이 여러 번 변경의 통역을 맡아 중국의 사정을 자못 다 아니, 그로 하여금 자세히 전하게 한다.」 강자색 바탕과 황색·벽록색 무늬 비단 각 다섯 필로 갚아 보냈다.
15부남의 풍속
扶南人黠惠知巧,攻略傍邑不賓之民為奴婢,貨易金銀綵帛。大家男子截錦為橫幅,女為貫頭,貧者以布自蔽。鍜金鐶鏆銀食器。伐木起屋,國王居重閤,以木柵為城。海邊生大箬葉,長八九尺,編其葉以覆屋。人民亦為閣居。為船八九丈,廣裁六七尺,頭尾似魚。國王行乘象,婦人亦能乘象。鬪鷄及狶為樂。無牢獄,有訟者,則以金指鐶若鷄子投沸湯中,令探之,又燒鎖令赤,著手上捧行七步,有罪者手皆燋爛,無罪者不傷。又令沒水,直者入即不沈,不直者即沈也。有甘蔗、諸蔗、安石榴及橘,多檳榔,鳥獸如中國。人性善,不便戰,常為林邑所侵擊,不得與交州通,故其使罕至。
부남 사람은 약고 슬기로우며 재주가 있어, 곁 고을의 복속하지 않는 백성을 쳐서 노비로 삼고 금은과 채백을 무역한다. 큰 집 남자는 비단을 잘라 가로폭 옷을 해 입고 여자는 머리 꿰는 옷(貫頭)을 입으며, 가난한 이는 베로 몸을 가린다. 금가락지와 은 식기를 두드려 만든다. 나무를 베어 집을 짓는데 국왕은 겹누각에 살며 나무 울짱으로 성을 삼는다. 바닷가에 큰 약(箬) 잎이 나니 길이가 여덟아홉 자라 그 잎을 엮어 지붕을 덮는다. 인민도 다락집에 산다. 배는 길이 여덟아홉 길에 너비 여섯일곱 자로 마름하며 머리와 꼬리가 물고기 같다. 국왕은 다닐 때 코끼리를 타며 부인도 코끼리를 탈 줄 안다. 닭싸움과 돼지싸움을 즐긴다.
감옥이 없어 송사하는 자가 있으면 금가락지나 달걀을 끓는 물에 던져 넣고 더듬어 꺼내게 하며, 또 쇠사슬을 벌겋게 달구어 손 위에 얹고 일곱 걸음을 걷게 하니, 죄 있는 자는 손이 다 데어 문드러지고 죄 없는 자는 상하지 않는다. 또 물에 잠기게 하니, 곧은 자는 들어가도 가라앉지 않고 곧지 못한 자는 곧 가라앉는다.
사탕수수와 여러 자류와 석류와 귤이 있고 빈랑이 많으며, 새와 짐승은 중국과 같다. 사람들 성품이 착하고 싸움에 서툴러 늘 임읍의 침격을 받으며, 교주와 통하지 못하므로 그 사신이 드물게 이른다.
16교주의 반란
交州斗絕海島,控帶外國,故恃險數不賓。宋泰始初,刺史張牧卒,交趾人李長仁殺牧北來部曲,據交州叛,數年病死,從弟叔獻嗣事,號令未行,遣使求刺史。宋朝以南海太守沈煥為交州刺史,以叔獻為煥寧遠司馬、武平新昌二郡太守。叔獻得朝命,人情服從,遂發兵守險不納煥,煥停鬱林病卒。太祖建元元年,仍以叔獻為交州刺史,就安慰之。叔獻受命,既而斷割外國,貢獻寡少。世祖欲討之,永明三年,以司農劉楷為交州刺史,發南康、廬陵、始興郡兵征交州。叔獻聞之,遣使願更申數年,獻十二隊純銀兜鍪及孔雀毦,世祖不許。叔獻懼為楷所襲,間道自湘川還朝。
교주는 바다 섬에 뚝 떨어져 외국을 당겨 두르니, 험함을 믿고 자주 복종하지 않았다. 송 태시 초에 자사 장목이 죽자 교지 사람 이장인이 장목이 북에서 데려온 부곡을 죽이고 교주를 차지해 배반했다가 몇 해 만에 병으로 죽고, 사촌아우 숙헌이 일을 이었는데 호령이 서지 않자 사신을 보내 자사를 청하였다. 송조가 남해태수 심환을 교주자사로 삼고 숙헌을 심환의 영원사마·무평신창이군태수로 삼았다. 숙헌은 조정의 명을 받고 인심이 따르게 되자, 드디어 군사를 내어 험한 데를 지키고 심환을 받아들이지 않으니, 심환은 울림에 머물다 병으로 죽었다.
태조 건원 원년에 그대로 숙헌을 교주자사로 삼아 안심시켰다. 숙헌은 명을 받고도 이윽고 외국과의 길을 끊어 공헌이 드물고 적었다. 세조가 치려 하여 영명 삼년에 사농 유해를 교주자사로 삼고 남강·여릉·시흥군의 군사를 일으켜 교주를 정벌하였다. 숙헌이 듣고 사신을 보내 몇 해만 더 미루어 주기를 원하며 순은 투구 열두 벌과 공작 깃을 바쳤으나, 세조가 허락하지 않았다. 숙헌은 유해에게 습격당할까 두려워 샛길로 상천을 거쳐 조정으로 돌아왔다.
협주 1
永明三年以司農劉楷為交州刺史「三」字原闕,今據元龜六百九十八補。「三年」各本並作「元年」。按武帝紀,永明三年春正月,以大司農劉楷為交州刺史,則元龜作「三年」是。
「영명 3년에 사농 유해를 교주자사로 삼았다」의 「3」 자는 원래 빠져 있어 책부원귀 698권에 따라 보충했다. 「3년」은 각 판본에 다 「원년」으로 되어 있다. 무제기를 살피면 영명 3년 봄 정월에 대사농 유해를 교주자사로 삼았으니, 책부원귀의 「3년」이 옳다.
17책만 읽던 자사
六年,以始興太守房法乘代楷。法乘至鎮,屬疾不理事,專好讀書。長史伏登之因此擅權,改易將吏,不令法乘知。錄事房季文白之,法乘大怒,繫登之於獄。十餘日,登之厚賂法乘妹夫崔景叔得出,將部曲襲州執法乘,謂之曰:「使君既有疾,不宜勞。」囚之別室。法乘無事,復就登之求書讀,登之曰:「使君靜處猶恐動疾,豈可看書。」遂不與。乃啟法乘心疾動,不任視事,世祖仍以登之為交州刺史。法乘還至嶺而卒。法乘,清河人。昇明中,為太祖驃騎中兵,至左中郎將。性方簡,身長八尺三寸,行出人上,常自俯屈。青州刺史明慶符亦長與法乘等,朝廷唯此二人。
육년에 시흥태수 방법승으로 유해를 대신하게 하였다. 법승은 진에 이르러 병으로 일을 보지 않고 오로지 책 읽기만 좋아하였다. 장사 복등지가 이를 틈타 권력을 마음대로 하며 장수와 아전을 갈아치우되 법승이 모르게 하였다. 녹사 방계문이 이를 아뢰니 법승이 크게 노하여 등지를 옥에 가두었다. 십여 일 만에 등지가 법승의 매부 최경숙에게 후한 뇌물을 주어 빠져나와, 부곡을 거느리고 주를 습격해 법승을 잡고 말하였다. 「사군은 이미 병이 있으니 수고하셔서는 안 되오.」 그러고는 딴 방에 가두었다. 법승이 할 일이 없어 다시 등지에게 책을 달라 하니, 등지가 「사군은 고요히 계셔도 병이 도질까 걱정인데 어찌 책을 보시겠소」 하고 끝내 주지 않았다. 이에 법승이 심질이 도져 일을 맡지 못한다고 아뢰니, 세조가 그대로 등지를 교주자사로 삼았다. 법승은 돌아오다 고개에 이르러 죽었다.
법승은 청하 사람이다. 승명 연간에 태조의 표기중병이 되었고 좌중랑장에 이르렀다. 성품이 방정하고 간결했으며, 키가 여덟 자 세 치로 다닐 때 남보다 우뚝하여 늘 스스로 몸을 굽혔다. 청주자사 명경부도 키가 법승과 같았으니, 조정에 오직 이 두 사람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