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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신천황崇神天皇

일본서기 日本書紀 · 도네리 친왕(舍人親王) 등 · 720년 (일본 요로 4) · 단락 36 · 한자 3,313자 · 낭독 13.3분

「일본서기」 인대 「숭신천황」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정사. 신들의 시대부터 지통천황까지 서른 권이다. 신대 상·하는 같은 신화의 다른 판본을 「어떤 책에는 이렇게 되어 있다」로 나란히 실어, 갈리는 이야기를 감추지 않았다. 백제·신라·고구려·임나 기사가 1,379곳에 나와 한국 사서와 맞대 볼 자리가 가장 많은 책이기도 하다.

1숭신천황

御間城入彦五十瓊殖天皇。稚日本根子彦大日日天皇第二子也。母曰伊香色謎命。物部氏遠祖大綜麻杵之女也。天皇年十九歳。立爲皇太子。識性聰敏。幼好雄略。既壯寛博謹愼。崇重神祇。恒有經綸天業之心焉。六十年夏四月。稚日本根子彦大日日天皇崩。

미마키이리비코이니에천황(御間城入彦五十瓊殖天皇)은 와카야마토네코히코오히히천황의 둘째 아들이다. 어머니는 이카가시코메노미코토라 하니 모노노베씨의 먼 조상 오헤소키(大綜麻杵)의 딸이다.

천황이 나이 열아홉에 황태자로 세워졌다. 앎과 성품이 총명하고 민첩하며 어려서 씩씩한 꾀를 좋아하였다. 장성하매 너그럽고 넓으며 삼가고 조심하였다. 신들을 높이 받들고 늘 하늘의 업을 다스릴 마음이 있었다.

육십년 여름 사월에 와카야마토네코히코오히히천황이 죽었다.

2자리에 오르다

元年春正月壬午朔甲午皇太子即天皇位。尊皇后曰皇太后。

원년 봄 정월 임오 초하루 갑오일에 황태자가 천황의 자리에 올랐다. 황후를 높여 황태후라 하였다.

3황후와 여러 비

二月辛亥朔丙寅。立御間城姫爲皇后。先是。后生活目入彦五十狹茅天皇。彦五十狹茅命。國方姫命。千千衝倭姫命。倭彦命。五十日鶴彦命。又妃紀伊國荒河戸畔女遠津年魚眼眼妙媛。生豐城入彦命。豐鍬入姫命。次妃尾張大海媛。生八坂入彦命。淳名城入姫命。十市瓊入姫命。是年也太歳甲申。

이월 신해 초하루 병인일에 미마키히메를 세워 황후로 삼았다. 이보다 앞서 황후가 이쿠메이리비코이사치천황과 히코이사치노미코토와 구니카타히메노미코토와 지지쓰쿠야마토히메노미코토와 야마토히코노미코토와 이카쓰루히코노미코토를 낳았다.

또 비 기이국 아라카와토베의 딸 도오쓰아유메마쿠와시히메가 도요키이리비코노미코토와 도요스키이리비메노미코토를 낳았다. 다음 비 오와리의 오시아마히메가 야사카이리비코노미코토와 누나키이리비메노미코토와 도오치노니이리비메노미코토를 낳았다.

이해는 태세가 갑신이다.

협주 1

一云大海宿禰女八坂振天某邊。

일설에는 오시아마노스쿠네의 딸 야사카후루아마□베라 한다.

4미즈카키노미야로 옮기다

三年秋九月。遷都於磯城。是謂瑞籬宮。

삼년 가을 구월에 도읍을 시키로 옮겼다. 이를 미즈카키노미야(瑞籬宮)라 한다.

5조서를 내리다

四年冬十月庚申朔壬午。詔曰。惟我皇祖。諸天皇等。光臨宸極者。豈爲一身乎。蓋所以司牧人神經綸天下。故能世闡玄功。時流至徳。今朕奉承大運。愛育黎元。何當聿遵皇祖之跡。永保無窮之祚。其羣卿百僚。竭爾忠貞。共安天下。不亦可乎。

사년 겨울 시월 경신 초하루 임오일에 조를 내렸다. "생각건대 우리 황조와 여러 천황이 하늘의 자리에 빛나게 임하신 것이 어찌 한 몸을 위함이겠는가. 아마 사람과 신을 맡아 기르고 천하를 다스리기 위함이었으리라. 그러므로 능히 대대로 그윽한 공을 열고 때때로 지극한 덕을 흘려보냈다.

이제 짐이 큰 운수를 받들어 백성을 사랑하여 기르니, 어찌 마땅히 황조의 자취를 좇아 길이 다함없는 복을 지키지 않겠는가. 여러 대신과 온 벼슬아치는 너희 충정을 다하여 함께 천하를 편안히 하는 것이 또한 옳지 않겠는가."

6돌림병이 돌다

五年。國内多疾疫。民有死亡者。且大半矣。

오년에 나라 안에 돌림병이 많아 백성 가운데 죽는 이가 또한 반이 넘었다.

7두 신을 궁 밖에서 제사하다

六年。百姓流離。或有背叛。其勢難以徳治之。是以晨興夕■。請罪神祇。先是。天照大神。倭大國魂二神。並祭於天皇大殿之内。然畏其神勢共住不安。故以天照大神。託豐鍬入姫命。祭於倭笠縫邑。仍立磯堅城神籬。亦以日本大國魂神。託渟名城入姫命令祭。然渟名城入姫命髮落體痩而不能祭。

육년에 백성이 흩어져 떠돌고 더러는 배반하는 이가 있었다. 그 형세가 덕으로 다스리기 어려웠다. 이 때문에 새벽에 일어나고 저녁에 □하며 신들에게 죄를 빌었다.

이보다 앞서 아마테라스오미카미과 야마토노오쿠니타마 두 신을 아울러 천황의 큰 전각 안에서 제사하였다. 그러나 그 신의 위세가 두려워 함께 사는 것이 편치 않았다. 그러므로 아마테라스오미카미을 도요스키이리비메노미코토에게 맡겨 야마토의 가사누이 마을에서 제사하게 하고, 이어 시카타키의 히모로기(神籬)를 세웠다.

또 야마토노오쿠니타마노카미를 누나키이리비메노미코토에게 맡겨 제사하게 하였다. 그러나 누나키이리비메노미코토는 머리털이 빠지고 몸이 여위어 제사하지 못하였다.

협주 1

神籬。此云比莽呂岐。

신리(神籬)는 히모로기라 읽는다.

8꿈에 오호모노누시노카미가 이르다

七年春二月丁丑朔辛卯。詔曰。昔我皇祖大啓鴻基。其後聖業逾高。王風轉盛。不意。今當朕世數有災害。恐朝無善政。取咎於神祇耶。蓋命神龜以極致之所由也。於是。天皇乃幸于神淺茅原。而會八十萬神以卜問之。是時。神明憑倭迹迹日百襲姫命曰。天皇何憂國之不治也。若能敬祭我者。必當自平矣。天皇問曰。教如此者誰神也。答曰。我是倭國城内所居神。名爲大物主神。時得神語隨教祭祀。然猶於事無驗。天皇乃沐浴齊戒。潔瀞殿内。而祈之曰。朕禮神尚未盡耶。何不享之甚也。冀亦夢裏教之。以畢神恩。是夜夢有一貴人。對立殿戸。自稱大物主神曰。天皇勿復爲愁國之不治。是吾意也。若以吾兒大田田根子。令祭吾者則立平矣。亦有海外之國自當歸伏。

칠년 봄 이월 정축 초하루 신묘일에 조를 내렸다. "옛적에 우리 황조가 큰 터전을 크게 여셨고 그 뒤에 성스러운 업이 더욱 높아지고 왕의 풍화가 더욱 성하였다. 뜻하지 않게 이제 짐의 대에 이르러 재해가 자주 있다. 조정에 좋은 정사가 없어 신들에게 허물을 얻은 것이 아닌가 두렵다. 아마 신령한 거북에게 명하여 그 까닭을 끝까지 밝혀야 하겠다."

이에 천황이 가무아사지하라(神淺茅原)에 나아가 팔십만 신을 모아 점쳐 물었다.

이때 신령이 야마토토토히모모소히메노미코토에게 실려 말하였다. "천황은 어찌 나라가 다스려지지 않음을 근심하는가. 만약 나를 공경히 제사할 수 있다면 반드시 절로 평정될 것이다."

천황이 물었다. "이렇게 가르치는 이는 어느 신입니까."

답하였다. "나는 야마토국 안에 사는 신이니 이름을 오호모노누시노카미라 한다."

그때 신의 말을 얻어 가르침대로 제사하였다. 그러나 오히려 일에 증험이 없었다.

천황이 이에 목욕하고 재계하여 전각 안을 깨끗이 하고 빌었다. "짐이 신을 예로 모심이 아직 다하지 못한 것입니까. 어찌 흠향하지 않으심이 이토록 심합니까. 바라건대 다시 꿈속에서 가르치시어 신의 은혜를 다하여 주소서."

이날 밤 꿈에 한 귀한 이가 있어 전각 문에 마주 서서 스스로 오호모노누시노카미라 하며 말하였다. "천황은 다시 나라가 다스려지지 않음을 근심하지 마라. 이는 내 뜻이다. 만약 내 아들 오타타네코(大田田根子)로 나를 제사하게 하면 곧 평정될 것이다. 또한 바다 밖 나라도 절로 마땅히 돌아와 엎드릴 것이다."

9오타타네코를 찾다

秋八月癸卯朔己酉。倭迹速神淺茅原目妙姫。穗積臣遠祖大水口宿禰。伊勢麻績君。三人共同夢而奏言。昨夜夢之。有一貴人。誨曰。以大田田根子命爲祭大物主大神之主。亦以市磯長尾市爲祭倭大國魂神之主。必天下太平矣。天皇得夢辭益歡於心。布告天下求大田田根子。即於茅渟縣陶邑得大田田根子而貢之。天皇即親臨于神淺茅原。會諸王卿及八十諸部。而問大田田根子曰。汝其誰子。對曰。父曰大物主大神。母曰活玉依媛。陶津耳之女。亦云。奇日方天日方。武茅渟祇之女也。天皇曰。朕當榮樂。乃卜使物部連祖伊香色雄爲神班物者。吉之。又卜便祭他神。不吉。

가을 팔월 계묘 초하루 기유일에 야마토토하야카무아사지하라마쿠와시히메와 호즈미노오미의 먼 조상 오미쿠치노스쿠네와 이세노오미노키미 세 사람이 함께 같은 꿈을 꾸고 아뢰었다.

"어젯밤 꿈에 한 귀한 이가 있어 가르쳤습니다. '오타타네코노미코토로 오호모노누시노오카미를 제사하는 주인을 삼고, 또 이치시노나가오치(市磯長尾市)로 야마토노오쿠니타마노카미를 제사하는 주인을 삼으면 반드시 천하가 태평하리라' 하였습니다."

천황이 꿈의 말을 얻고 마음에 더욱 기뻐하였다. 천하에 널리 알려 오타타네코를 구하였다. 곧 지누현 스에 마을에서 오타타네코를 얻어 바쳤다.

천황이 곧 몸소 가무아사지하라에 임하여 여러 왕과 대신과 팔십 여러 부를 모아 오타타네코에게 물었다. "너는 누구의 아들이냐."

답하였다. "아버지는 오호모노누시노오카미라 하고 어머니는 이쿠타마요리히메라 하니 스에쓰미미의 딸입니다." 또 이르기를 구시히카타아마쓰히카타와 다케지누쓰미의 딸이라 한다.

천황이 말하였다. "짐이 마땅히 번영하고 즐거우리라." 이에 점쳐 모노노베노무라지의 조상 이카가시코오로 하여금 신에게 물건을 나누어 바치는 이로 삼으니 길하였다. 또 다른 신을 제사하는 것을 점치니 길하지 않았다.

10돌림병이 그치다

十一月丁卯朔己卯。命伊香色雄而以物部八十手所作祭神之物。即以大田田根子。爲祭大物主大神之主。又以長尾市。爲祭倭大國魂神之主。然後卜祭他神吉焉。便別祭八十萬羣神。仍定天社。國社。及神地。神戸。於是疫病始息。國内漸謐五穀既成。百姓饒之。

십일월 정묘 초하루 기묘일에 이카가시코오에게 명하여 모노노베의 여든 손이 만든 신에게 바치는 물건을 쓰게 하였다. 곧 오타타네코로 오호모노누시노오카미를 제사하는 주인을 삼고, 또 나가오치로 야마토노오쿠니타마노카미를 제사하는 주인을 삼았다.

그런 뒤에 다른 신을 제사하는 것을 점치니 길하였다. 곧 팔십만 뭇 신을 따로 제사하고, 이어 하늘 신사와 나라 신사와 신의 땅과 신의 호(神戸)를 정하였다.

이에 돌림병이 비로소 그치고 나라 안이 차츰 고요해졌으며 오곡이 익어 백성이 넉넉해졌다.

11술 맡은 이를 세우다

八年夏四月庚子朔乙卯。以高橋邑人活日爲大神之掌酒。

팔년 여름 사월 경자 초하루 을묘일에 다카하시 마을 사람 이쿠히를 큰 신의 사카비토(掌酒)로 삼았다.

협주 1

掌酒。此云佐介弭苔。

장주(掌酒)는 사카비토라 읽는다.

12미와의 궁문을 열다

冬十二月丙申朔乙卯。天皇以大田田根子令祭大神。是日活日自擧神酒。獻天皇。仍歌之曰。許能瀰枳破。和餓瀰枳那羅孺。■磨等那殊。於朋望能農之能。介瀰之瀰枳。伊句臂佐。伊久臂佐。如此歌之。宴于神宮。即宴竟之。諸大夫等歌之曰。宇磨佐開。瀰和能等能能。阿佐妬珥毛。伊弟■由介那。瀰和能等能渡■。於茲。天皇歌之曰。宇磨佐階。瀰和能等能能。阿佐妬珥毛。於辭寐羅箇禰。瀰和能等能渡烏。即開神宮門而幸行之。所謂大田田根子。今三輪君等之始祖也。

겨울 십이월 병신 초하루 을묘일에 천황이 오타타네코에게 큰 신을 제사하게 하였다. 이날 이쿠히가 몸소 신주(神酒)를 들어 천황에게 바쳤다. 이어 노래하였다.

「고노미키와 와가미키나라즈 □마토나스 오호모노누시노 가미시미키 이쿠히사 이쿠히사(許能瀰枳破 和餓瀰枳那羅孺 ■磨等那殊 於朋望能農之能 介瀰之瀰枳 伊句臂佐 伊久臂佐)」

이와 같이 노래하고 신궁에서 잔치하였다. 잔치가 끝나매 여러 대부가 노래하였다.

「우마사케 미와노토노노 아사토니모 이데테□유카나 미와노토노도□(宇磨佐開 瀰和能等能能 阿佐妬珥毛 伊弟■由介那 瀰和能等能渡■)」

이에 천황이 노래하였다.

「우마사케 미와노토노노 아사토니모 오시비라카네 미와노토노도오(宇磨佐階 瀰和能等能能 阿佐妬珥毛 於辭寐羅箇禰 瀰和能等能渡烏)」

— 노래는 다 소리를 적은 것이라 뜻으로 옮기지 않는다.

곧 신궁의 문을 열고 나갔다. 이른바 오타타네코는 이제 미와노키미들의 시조다.

13꿈에 방패와 창을 바치라 가르치다

九年春三月甲子朔戊寅。天皇夢有神人。誨之曰。以赤盾八枚。赤矛八竿。祠墨坂神。亦以黒盾八枚。黒矛八竿。祠大坂神。

구년 봄 삼월 갑자 초하루 무인일에 천황의 꿈에 신인이 있어 가르쳤다. "붉은 방패 여덟 낱과 붉은 창 여덟 자루로 스미사카의 신에게 제사하고, 또 검은 방패 여덟 낱과 검은 창 여덟 자루로 오사카의 신에게 제사하라."

14꿈대로 제사하다

夏四月甲午朔己酉。依夢之教。祭墨坂神。大坂神。

여름 사월 갑오 초하루 기유일에 꿈의 가르침대로 스미사카의 신과 오사카의 신에게 제사하였다.

15백성을 가르치는 근본

十年秋七月丙戌朔己酉。詔群卿曰。導民之本。在於教化也。今既禮神祇。災害皆耗。然遠荒人等。猶不受正朔。是未習王化耳。其選郡卿。遣于四方。令知朕意。

십년 가을 칠월 병술 초하루 기유일에 여러 대신에게 조를 내렸다. "백성을 이끄는 근본은 가르쳐 바꾸는 데 있다. 이제 이미 신들에게 예를 갖추어 재해가 다 사라졌다. 그러나 멀고 거친 데 사는 이들이 오히려 정삭(正朔)을 받지 않으니, 이는 아직 왕의 교화를 익히지 못한 것이다. 여러 대신을 가려 사방에 보내어 짐의 뜻을 알게 하라."

16네 길로 장군을 보내다

九月丙戌朔甲午。以大彦命遣北陸。武渟川別遣東海。吉備津彦遣西道。丹波道主命遣丹波。因以詔之曰。若有不受教者。乃擧兵伐之。既而共授印綬爲將軍。

구월 병술 초하루 갑오일에 오히코노미코토를 북쪽 뭍길로 보내고, 다케누나카와와케를 동해로 보내고, 기비쓰히코를 서쪽 길로 보내고, 다니와노미치누시노미코토를 다니와로 보냈다. 이어 조를 내렸다. "만약 가르침을 받지 않는 이가 있거든 이에 군사를 들어 쳐라." 이윽고 함께 인수를 주어 장군으로 삼았다.

17계집아이의 노래가 반란을 알리다

壬子。大彦命到於和珥坂上。時有少女歌之曰。瀰磨紀異利寐胡播揶。飫逎餓鳥■。志齊務苔。農殊末句志羅珥。比賣那素寐殊望。於是大彦命異之。問童女曰。汝言何辭。對曰。勿言也。唯歌耳。乃重詠先歌忽不見矣。大彦乃還而具以状奏。於是天皇姑倭迹迹日百襲姫命。聰明叡智。能識未然。乃知其歌恠。言于天皇。是武埴安彦將謀反之表者也。吾聞。武埴安彦之妻吾田媛。密來之取倭香山土。領巾頭。而祈曰。是倭國之物實。乃反之。是以知有事焉。非早圖必後之。於是更留諸將軍而議之。未幾時。武埴安彦與妻吾田媛。謀反逆興師忽至。各分道而夫從山背。婦從大坂。共入欲襲帝京。時天皇遣五十狹芹彦命。撃吾田媛之師。即遮於大坂皆大破之。

임자일에 오히코노미코토가 와니 고개 위에 이르렀다. 그때 어린 계집이 있어 노래하였다.

「미마키이리비코와야 오노가오오□ 시세무토 누스마쿠시라니 히메나소비스모(瀰磨紀異利寐胡播揶 飫逎餓鳥■ 志齊務苔 農殊末句志羅珥 比賣那素寐殊望)」

이에 오히코노미코토가 이상히 여겨 계집아이에게 물었다. "네가 한 말이 무슨 말이냐."

답하였다. "말한 것이 아닙니다. 다만 노래일 뿐입니다." 이에 앞의 노래를 거듭 읊고는 홀연히 보이지 않았다.

오히코가 이에 돌아와 사정을 갖추어 아뢰었다. 이에 천황의 고모 야마토토토히모모소히메노미코토가 총명하고 슬기로워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을 잘 알았다. 곧 그 노래가 괴이한 줄 알고 천황에게 말하였다.

"이는 다케하니야스히코가 장차 배반을 꾀하는 표시입니다. 제가 듣기로 다케하니야스히코의 아내 아타히메가 몰래 와서 야마토의 가구야마 흙을 가져다 목도리 끝에 싸고 빌기를 '이는 야마토국의 물건 됨(物實)이다' 하고는 돌아갔다 합니다. 이로써 일이 있음을 압니다. 일찍 꾀하지 않으면 반드시 뒤늦을 것입니다."

이에 다시 여러 장군을 머물게 하고 의논하였다. 얼마 되지 않아 다케하니야스히코가 아내 아타히메와 함께 배반을 꾀하여 군사를 일으켜 갑자기 이르렀다. 각각 길을 나누어 지아비는 야마시로에서, 아내는 오사카에서 함께 들어와 서울을 습격하려 하였다.

그때 천황이 이사세리히코노미코토를 보내어 아타히메의 군사를 쳤다. 곧 오사카에서 막아 다 크게 깨뜨렸다.

협주 3

一云。大彦命到山背平坂。時道側有童女歌之曰。

일설에는 이러하다. 오히코노미코토가 야마시로의 히라사카에 이르렀을 때 길가에 계집아이가 있어 노래하였다.

一云。於朋耆妬庸利。于介伽卑氏。許呂佐務苔。須羅句志羅珥□。比賣那素寐須望。

「오호키미토요리 우카가히테 고로사무토 스라쿠시라니□ 히메나소비스모(於朋耆妬庸利 于介伽卑氏 許呂佐務苔 須羅句志羅珥■ 比賣那素寐須望)」

物實。此云望能志呂。

물실(物實)은 모노시로라 읽는다.

18하니야스히코를 쏘아 죽이다

殺吾田媛悉斬其軍卒。復遣大彦與和珥臣遠祖彦國葺。向山背撃埴安彦。爰以忌瓮鎭坐於和珥武坂上。則率精兵。進登那羅山而軍之。時官軍屯聚而■■草木。因以號其山曰那羅山。更避那羅山。而進到輪韓河。與埴安彦。挾河屯之。各相挑焉。故時人改號其河曰挑河。今謂泉河訛也。埴安彦望之問彦國曰。何由矣汝興師來耶。對曰。汝逆天無道。欲傾王室。故擧義兵欲討汝逆。是天皇之命也。於是各爭先射。武埴安彦先射彦國葺。不得中。後彦國射埴安彦。中胸而殺焉。其軍衆脅退則追破於河北。而斬首過半。屍骨多溢。故號其處曰羽振苑。亦其卒怖走。屎漏于褌。乃脱甲而逃之。知不得兔。叩頭曰我君。故時人號其脱甲處曰伽和羅。褌屎處曰屎褌。今謂樟葉訛也。又號叩頭之處曰我君。是後。倭迹迹日百襲姫命爲大物主神之妻。然其神常晝不見而夜來矣。

아타히메를 죽이고 그 군졸을 다 베었다. 다시 오히코와 와니노오미의 먼 조상 히코쿠니부쿠를 보내어 야마시로로 향하여 하니야스히코를 치게 하였다.

이에 이와이베(忌瓮)를 와니의 다케사카 위에 자리 잡아 모시고, 곧 날랜 군사를 거느려 나라산에 올라 진 쳤다. 그때 관군이 모여 풀과 나무를 밟아 고르게 하였다. 이로 인하여 그 산을 나라산(那羅山)이라 이름하였다.

다시 나라산을 벗어나 와카라강에 이르러 하니야스히코와 강을 사이에 두고 진 쳤다. 각각 서로 돋우었다. 그러므로 그때 사람들이 그 강의 이름을 고쳐 이도미강(挑河)이라 하였다. 이제 이즈미강이라 이르는 것은 잘못 옮겨진 것이다.

하니야스히코가 바라보며 히코쿠니부쿠에게 물었다. "무슨 까닭으로 네가 군사를 일으켜 왔느냐."

답하였다. "네가 하늘을 거스르고 도가 없어 왕실을 기울이려 한다. 그러므로 의로운 군사를 들어 네 거스름을 치려 한다. 이는 천황의 명이다."

이에 각각 먼저 쏘기를 다투었다. 다케하니야스히코가 먼저 히코쿠니부쿠를 쏘았으나 맞히지 못하였다. 뒤에 히코쿠니가 하니야스히코를 쏘아 가슴에 맞혀 죽였다.

그 군사가 겁먹고 물러나매 곧 뒤쫓아 강 북쪽에서 깨뜨렸다. 목 벤 것이 반이 넘고 주검과 뼈가 많이 넘쳤다. 그러므로 그곳을 하후리소노(羽振苑)라 이름하였다.

또 그 군졸이 두려워 달아나다가 잠방이에 똥을 쌌다. 이에 갑옷을 벗고 달아났으나 벗어나지 못할 줄 알고 머리를 조아리며 "우리 임금이여" 하였다. 그러므로 그때 사람들이 갑옷 벗은 곳을 가와라(伽和羅)라 하고, 잠방이에 똥 싼 곳을 구소바카마(屎褌)라 이름하였다. 이제 구즈하라 이르는 것은 잘못 옮겨진 것이다. 또 머리 조아린 곳을 와가키미(我君)라 이름하였다.

이 뒤에 야마토토토히모모소히메노미코토가 오호모노누시노카미의 아내가 되었다. 그러나 그 신은 늘 낮에는 보이지 않고 밤에만 왔다.

협주 2

□□。此云布瀰那羅須。

□□은 후미나라스라 읽는다.

叩頭。此云逎務。

고두(叩頭)는 노무라 읽는다.

19빗상자 속의 작은 뱀

倭迹迹姫命語夫曰。君常晝不見者。分明不得視其尊顏。願暫留之。明旦仰欲覲美麗之威儀。大神對曰。言理灼然。吾明旦入汝櫛笥而居。願無驚吾形。爰倭迹迹姫命心裏密異之。待明以見櫛笥。遂有美麗小蛇。其長大如衣紐。則驚之叫啼。時大神有耻。忽化人形。謂其妻曰。汝不忍令羞吾。吾還令羞汝。仍踐大虚登于御諸山。爰倭迹迹姫命仰見而悔之急居。則箸撞陰而薨。乃葬於大市。故時人號其墓。謂箸墓也。是墓者日也人作。夜也神作。故運大坂山石而造。則自山至于墓。人民相踵。以手遞傳而運焉。時人歌之曰。飫朋佐介珥。菟藝逎煩例屡。伊辭務邏■。手誤辭珥固佐縻。固辭介■務介茂。

야마토토토히메노미코토가 지아비에게 말하였다. "그대가 늘 낮에 보이지 않으니 그 존안을 분명히 볼 수 없습니다. 바라건대 잠시 머무소서. 내일 아침에 아름다운 거동을 우러러 뵙고자 합니다."

큰 신이 답하였다. "말이 이치에 밝다. 내가 내일 아침에 그대의 빗상자에 들어가 있겠다. 바라건대 내 모습에 놀라지 마라."

이에 야마토토토히메노미코토가 마음속으로 몰래 이상히 여겼다. 밝기를 기다려 빗상자를 보니 마침내 아름다운 작은 뱀이 있어 그 길이와 굵기가 옷끈 같았다. 곧 놀라 부르짖었다.

그때 큰 신이 부끄러워하여 홀연히 사람 모습으로 변하여 그 아내에게 일렀다. "그대가 참지 못하여 나를 부끄럽게 하였다. 나도 돌아가 그대를 부끄럽게 하겠다." 이어 큰 허공을 밟고 미모로산에 올랐다.

이에 야마토토토히메노미코토가 우러러보고 뉘우쳐 주저앉았다. 그러다 젓가락이 음부를 찔러 죽었다. 이에 오이치에 장사 지냈다. 그러므로 그때 사람들이 그 무덤을 일러 하시하카(箸墓)라 하였다.

이 무덤은 낮에는 사람이 만들고 밤에는 신이 만들었다. 그러므로 오사카산의 돌을 날라다 지었는데, 산에서 무덤까지 사람들이 서로 잇달아 손으로 건네어 날랐다. 그때 사람들이 노래하였다.

「오호사카니 쓰기노보레루 이시무라오 다고시니코사바 고시카테무카모(飫朋佐介珥 菟藝逎煩例屡 伊辭務邏■ 手誤辭珥固佐縻 固辭介■務介茂)」

협주 1

急居。此云菟岐于。

급거(急居)는 쓰키우라 읽는다.

20네 길의 장군을 보내다

冬十月乙卯朔。詔群臣曰。今返者悉伏誅。畿内無事。唯海外荒俗。騷動未止。其四道將軍等今急發之。

겨울 시월 을묘 초하루에 여러 신하에게 조를 내렸다. "이제 배반한 자가 다 베임을 받아 기내(畿内)에 일이 없다. 오직 바다 밖 거친 무리가 시끄러이 움직여 그치지 않는다. 그 네 길의 장군들은 이제 급히 떠나라."

21장군들이 떠나다

丙子。將軍等共發路。

병자일에 장군들이 함께 길을 떠났다.

22오랑캐를 평정하였다 아뢰다

十一年夏四月壬子朔己卯。四道將軍以平戎夷之状奏焉。

십일년 여름 사월 임자 초하루 기묘일에 네 길의 장군이 오랑캐를 평정한 사정을 아뢰었다.

23나라가 편안해지다

是歳。異俗多歸。國内安寧。

이해에 다른 풍속이 많이 돌아오고 나라 안이 편안하였다.

24백성을 헤아리다

十二年春三月丁丑朔丁亥。詔曰。朕初承天位。獲保宗廟。明有所蔽。徳不能綏。是以陰陽謬錯。寒暑矢序。疫病多起。百姓蒙災。然今解罪改過。敦禮神祇。亦垂教而緩荒俗。擧兵以討不服。是以官無廢事。下無逸民。教化流行。衆庶樂業。異俗重譯來。海外既歸化。宜當此時。更校人民。令知長幼之次第。及課之先後焉。

십이년 봄 삼월 정축 초하루 정해일에 조를 내렸다. "짐이 처음 하늘의 자리를 이어 종묘를 지킬 수 있었으나, 밝음에 가린 바가 있고 덕이 능히 편안케 하지 못하였다. 이 때문에 음양이 어그러지고 춥고 더움이 차례를 잃어 돌림병이 많이 일고 백성이 재앙을 입었다.

그러나 이제 죄를 풀고 허물을 고쳐 신들에게 예를 도타이 하였다. 또 가르침을 드리워 거친 풍속을 누그러뜨리고 군사를 들어 복종하지 않는 이를 쳤다. 이 때문에 관에는 버려진 일이 없고 아래에는 놀고먹는 백성이 없으며, 교화가 흘러 행하고 뭇 백성이 생업을 즐긴다. 다른 풍속이 통역을 거듭하여 오고 바다 밖이 이미 돌아와 붙었다.

마땅히 이때에 다시 백성을 헤아려 어른과 아이의 차례와 부역의 앞뒤를 알게 하라."

25하쓰쿠니시라스천황이라 일컫다

秋九月甲辰朔己丑。始校人民。更科調役。此謂男之弭調。女之手末調也。是以。天神地祇共和享。而風雨順時。百穀用成。家給人足。天下大平矣。故稱謂御肇國天皇也

가을 구월 갑진 초하루 기축일에 비로소 백성을 헤아리고 다시 조세와 부역을 매겼다. 이를 사내의 활 끝 세(弭調)와 계집의 손끝 세(手末調)라 한다.

이 때문에 하늘 신과 땅 신이 함께 화하여 흠향하고 비바람이 때를 따르며 온갖 곡식이 이루어져 집집이 넉넉하고 사람마다 만족하여 천하가 크게 태평하였다. 그러므로 일컬어 하쓰쿠니시라스천황(御肇國天皇)이라 한다.

26배를 만들게 하다

十七年秋七月丙午朔。詔曰。船者天下之要用也。今海邊之民。由無船以甚苦歩運。其令諸國俾造船舶。

십칠년 가을 칠월 병오 초하루에 조를 내렸다. "배는 천하에 요긴하게 쓰이는 것이다. 이제 바닷가 백성이 배가 없어 걸어 나르기를 몹시 괴로워한다. 여러 나라에 명하여 배를 짓게 하라."

27배를 짓기 시작하다

冬十月。始造船舶。

겨울 시월에 비로소 배를 지었다.

28꿈으로 후사를 가리다

四十八年春正月己卯朔戊子。天皇勅豐城命。活目尊曰。汝等二子。慈愛共齊。不知曷爲嗣。各宜夢。朕以夢占之。二皇子於是被命。淨沐而祈寐。各得夢也。會明。兄豐城命以夢辭奏于天皇曰。自登御諸山向東。而八廻弄槍。八廻撃刀。弟活目尊以夢辭奏言。自登御諸山之嶺。繩■四方。逐食粟雀。則天皇相夢。謂二子曰。兄則一片向東。當治東國。弟是悉臨四方。宜繼朕位。

사십팔년 봄 정월 기묘 초하루 무자일에 천황이 도요키노미코토와 이쿠메노미코토에게 칙명하였다. "너희 두 자식은 사랑함이 다 같아 누구를 뒤로 삼을지 알지 못하겠다. 각각 마땅히 꿈을 꾸어라. 짐이 꿈으로 점치겠다."

두 황자가 이에 명을 받고 깨끗이 목욕하고 빌고 잤다. 각각 꿈을 얻었다.

날이 밝으매 형 도요키노미코토가 꿈의 말을 천황에게 아뢰었다. "스스로 미모로산에 올라 동쪽을 향하여 여덟 번 창을 휘두르고 여덟 번 칼을 쳤습니다."

아우 이쿠메노미코토가 꿈의 말을 아뢰었다. "스스로 미모로산 마루에 올라 사방에 새끼를 치고 조 먹는 참새를 쫓았습니다."

곧 천황이 꿈을 견주어 두 자식에게 일렀다. "형은 한쪽으로 동쪽을 향하였으니 마땅히 동쪽 나라를 다스려라. 아우는 사방에 두루 임하였으니 마땅히 짐의 자리를 이어라."

29황태자를 세우다

夏四月戊申朔丙寅。立活目尊爲皇太子。以豐城命令治東國。是上毛野君。下毛野君之始祖也。

여름 사월 무신 초하루 병인일에 이쿠메노미코토를 황태자로 세우고, 도요키노미코토에게는 동쪽 나라를 다스리게 하였다. 이가 가미쓰케노노키미와 시모쓰케노노키미의 시조다.

30이즈모의 신보를 두고 형이 아우를 죽이다

六十年秋七月丙申朔己酉。詔群臣曰。武日照命。從天將來神寶。藏于出雲大神宮。是欲見焉。則遣矢田部造遠祖武諸隅而使獻。當是時。出雲臣之遠祖出雲振根主于神寶。是徃筑紫國而不遇矣。其弟飯入根則被皇命。以神寶付弟甘美韓日狹與子■濡渟而貢上。既而出雲振根從筑紫還來之。聞神寶獻于朝廷。責其弟飯入根曰。數日當待。何恐之乎。輙許神寶。是以既經年月。猶懷恨忿有殺弟之志。仍欺弟曰。頃者於止屋淵多生■。願共行欲見。則隨兄而往之。先是。兄竊作木刀。形似眞刀。當時自佩之。弟佩眞刀。共到淵頭。兄謂弟曰。淵水清冷。願欲共游沐。弟從兄言。各解佩刀置淵邊。沐於水中。乃兄先上陸。取弟眞刀自佩。後弟驚而取兄木刀。共相撃矣。弟不得拔木刀。兄撃弟飯入根而殺之。故時人歌之曰。椰勾毛多菟。伊頭毛多鷄流餓波鷄流多知。

육십년 가을 칠월 병신 초하루 기유일에 여러 신하에게 조를 내렸다. "다케히나테루노미코토가 하늘에서 가지고 온 신보(神寶)가 이즈모의 대신궁에 갈무리되어 있다. 이를 보고자 한다."

곧 야타베노미야쓰코의 먼 조상 다케모로스미를 보내어 바치게 하였다.

이때 이즈모노오미의 먼 조상 이즈모후루네가 신보를 맡고 있었는데, 쓰쿠시국에 가 있어 만나지 못하였다. 그 아우 이이이리네가 곧 임금의 명을 받아 신보를 아우 우마시카라히사와 아들 우카즈쿠누에게 주어 바쳤다.

이윽고 이즈모후루네가 쓰쿠시에서 돌아와 신보를 조정에 바쳤다는 말을 듣고 그 아우 이이이리네를 나무랐다. "며칠 기다렸어야 마땅하거늘 어찌 두려워하여 문득 신보를 내주었느냐."

이 때문에 이미 여러 해와 달이 지났어도 오히려 한과 분함을 품어 아우를 죽일 뜻이 있었다. 이에 아우를 속여 말하였다. "요사이 야무야의 못에 마름이 많이 났다. 바라건대 함께 가서 보고자 한다."

곧 형을 따라 갔다. 이보다 앞서 형이 몰래 나무 칼을 만들었는데 모양이 참칼 같았다. 그때 스스로 그것을 찼고 아우는 참칼을 찼다.

함께 못가에 이르러 형이 아우에게 일렀다. "못물이 맑고 차다. 바라건대 함께 헤엄쳐 씻고자 한다." 아우가 형의 말을 좇아 각각 찬 칼을 풀어 못가에 두고 물속에서 씻었다.

이에 형이 먼저 뭍에 올라 아우의 참칼을 가져 제가 차고, 뒤에 아우가 놀라 형의 나무 칼을 잡아 함께 서로 쳤다. 아우가 나무 칼을 뽑지 못하매 형이 아우 이이이리네를 쳐서 죽였다. 그러므로 그때 사람들이 노래하였다.

협주 2

一云。武夷鳥。又云。天夷鳥。

일설에는 다케히나토리(武夷鳥)라 하고, 또 아메노히나토리(天夷鳥)라 한다.

一書云。一名大母隅也。

어떤 책에는 다른 이름이 오호모스미(大母隅)라 한다.

31어린아이의 입을 빌려 신이 말하다

菟頭邏佐波磨枳。佐微那辭珥。阿波禮。於是甘美韓日狹。■濡渟。參向朝廷曲奏其状。則遣吉備津彦與武渟河別。以誅出雲振根。故出雲臣等畏是事。不祭大神而有間。時丹波氷上人。名氷香戸邊。啓于皇太子活目尊曰。己子有小兒。而自然言之。玉■鎭石。出雲人祭。眞種之甘美鏡。押羽振。甘美御神底寶御寶主。山河之水泳御魂。靜挂甘美御神底寶御寶主也。是非似小兒之言。若有託言乎。於是。皇太子奏于天皇。則勅之使祭。

「야쿠모타쓰 이즈모타케루가 하케루타치(椰勾毛多菟 伊頭毛多鷄流餓波鷄流多知) 쓰즈라사와마키 사미나시니 아하레(菟頭邏佐波磨枳 佐微那辭珥 阿波禮)」 — 소리를 적은 것이라 뜻으로 옮기지 않는다.

이에 우마시카라히사와 우카즈쿠누가 조정에 나아가 그 사정을 자세히 아뢰었다. 곧 기비쓰히코와 다케누나카와와케를 보내어 이즈모후루네를 베었다.

그러므로 이즈모노오미들이 이 일을 두려워하여 큰 신을 제사하지 않고 얼마를 지냈다.

그때 다니와의 히카미 사람으로 이름이 히카토베라는 이가 황태자 이쿠메노미코토에게 아뢰었다. "제 아이에게 어린것이 있는데 절로 이렇게 말합니다. '옥으로 꾸민 진석(鎭石)이여, 이즈모 사람이 제사하는 참된 씨의 아름다운 거울이여, 눌러 떨치는 아름다운 미카미의 밑바닥 보배이며 보배의 주인이여, 산과 강의 물에서 헤엄치는 미타마여, 고요히 걸린 아름다운 미카미의 밑바닥 보배이며 보배의 주인이로다.' 이는 어린아이의 말 같지 않으니 혹 신이 실려 하는 말이 아니겠습니까."

이에 황태자가 천황에게 아뢰매 곧 칙명하여 제사하게 하였다.

협주 1

□。此云毛。

모(■)는 모라 읽는다.

32못을 파게 하다

六十二年秋七月乙卯朔丙辰。詔曰。農天下之大本也。民所恃以生也。今河内狹山埴田水少。是以。其國百姓怠於農於農事。其多開池溝。以寛民業。

육십이년 가을 칠월 을묘 초하루 병진일에 조를 내렸다. "농사는 천하의 큰 근본이요 백성이 믿고 사는 바다. 이제 가와치의 사야마는 진흙 밭에 물이 적다. 이 때문에 그 나라 백성이 농사일에 게으르다. 못과 도랑을 많이 열어 백성의 생업을 넉넉하게 하라."

33요사미 못

冬十月。造依網池。

겨울 시월에 요사미 못(依網池)을 만들었다.

34가리사카 못과 사카오리 못

十一月。作苅坂池。反折池。

십일월에 가리사카 못(苅坂池)과 사카오리 못(反折池)을 만들었다.

협주 1

一云。天皇居桑間宮造是三池也。

일설에는 천황이 구와마노미야에 있으면서 이 세 못을 만들었다 한다.

35임나가 조공하다

六十五年秋七月。任那國遣蘇那曷叱知令朝貢也。任那者。去筑紫國二千餘里。北阻海以在鷄林之西南。

육십오년 가을 칠월에 임나국(任那國)이 소나갈질지(蘇那曷叱知)를 보내어 조공하게 하였다. 임나는 쓰쿠시국에서 이천여 리 떨어졌고, 북으로 바다를 사이에 두고 계림(鷄林)의 서남쪽에 있다.

36백스무 살에 죽다

天皇踐祚六十八年冬十二月戊申朔壬子崩。時年百廿歳。明年秋八月甲辰朔甲寅。葬于山邊道上陵。

천황이 자리에 오른 지 육십팔년 겨울 십이월 무신 초하루 임자일에 죽었다. 그때 나이 백스무 살이었다. 이듬해 가을 팔월 갑진 초하루 갑인일에 야마노베의 미치노에 능에 장사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