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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행천황景行天皇

일본서기 日本書紀 · 도네리 친왕(舍人親王) 등 · 720년 (일본 요로 4) · 단락 61 · 한자 6,416자 · 낭독 25.7분

「일본서기」 인대 「경행천황」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정사. 신들의 시대부터 지통천황까지 서른 권이다. 신대 상·하는 같은 신화의 다른 판본을 「어떤 책에는 이렇게 되어 있다」로 나란히 실어, 갈리는 이야기를 감추지 않았다. 백제·신라·고구려·임나 기사가 1,379곳에 나와 한국 사서와 맞대 볼 자리가 가장 많은 책이기도 하다.

1경행천황

大足彦忍代別天皇。活目入彦五十狹茅天皇第三子也。母皇后曰日葉洲媛命。丹波道主王之女也。活目入彦五十狹茅天皇卅七年立爲皇太子。九十九年春二月。活目入彦五十狹茅天皇崩。

오타라시히코오시로와케천황(大足彦忍代別天皇)은 이쿠메이리비코이사치천황의 셋째 아들이다. 어머니 황후는 히바스히메노미코토라 하니 다니와노미치누시노미코의 딸이다. 이쿠메이리비코이사치천황 삼십칠년에 황태자로 세워졌다. 구십구년 봄 이월에 이쿠메이리비코이사치천황이 죽었다.

2자리에 오르다

秋七月己巳朔卯己卯。太子即天皇位。因以改元。

가을 칠월 기사 초하루 기묘일에 태자가 천황의 자리에 올랐다. 이어 연호를 고쳤다.

3태세

是年也太歳辛未。

이해는 태세가 신미다.

4오오우스와 오우스

二年春三月丙寅朔戊辰。立播磨稻日大郎姫爲皇后。后生二男。第一曰大碓皇子。第二曰小碓尊。其大碓皇子。小碓尊。一日同皰而雙生。天皇異之。則誥於碓。故因號其二王曰大碓。小碓也。是小碓尊。亦名日本童男。亦曰日本武尊。幼有雄略之氣。及壯容貌魁偉。身長一丈。力能扛鼎焉。

이년 봄 삼월 병인 초하루 무진일에 하리마의 이나비노오이라쓰메를 세워 황후로 삼았다. 황후가 두 사내를 낳았다. 첫째는 오오우스 황자요, 둘째는 오우스노미코토다.

그 오오우스 황자와 오우스노미코토는 한날 한 태에서 쌍둥이로 났다. 천황이 이상히 여겨 곧 절구에 대고 외쳤다. 그러므로 이로 인하여 그 두 왕을 오오우스(大碓)와 오우스(小碓)라 이름하였다.

이 오우스노미코토는 다른 이름이 야마토오구나요, 또 야마토타케루노미코토(日本武尊)라 한다. 어려서 씩씩한 꾀의 기운이 있었고, 장성하매 얼굴과 몸이 크고 우람하여 키가 한 길이요 힘이 능히 솥을 들었다.

협주 3

一云。稻日稚郎姫。郎姫。此云異羅□□。

이나비노와카이라쓰메라고도 한다. 낭희(郎姫)는 이라□□라 읽는다.

一書云。皇后生三男。其第三曰稚倭根子皇子。

어떤 책에는 황후가 세 사내를 낳았고 그 셋째를 와카야마토네코 황자라 한다.

童男。此云鳥具奈。

동남(童男)은 오구나라 읽는다.

5다케우치노스쿠네가 나다

三年春二月庚寅朔。卜幸于紀伊國。將祭祀群神祇。不吉。乃車駕止之。遣屋主忍男武雄心命令祭。爰屋主忍男武雄心命詣之。居于阿備柏原而祭祀神祇。仍住九年。則娶紀直遠祖菟道彦之女影媛。生武内宿禰。

삼년 봄 이월 경인 초하루에 기이국에 나아가 여러 신에게 제사하려고 점쳤으나 길하지 않았다. 이에 거둥을 그쳤다. 야누시오시오타케오고코로노미코토를 보내어 제사하게 하였다.

이에 야누시오시오타케오고코로노미코토가 나아가 아비의 가시와라에 머물러 신들에게 제사하고 이어 아홉 해를 살았다. 곧 기노아타이의 먼 조상 우지히코의 딸 가게히메에게 장가들어 다케우치노스쿠네(武内宿禰)를 낳았다.

협주 1

一云武猪心。

다케이고코로라고도 한다.

6오토히메가 언니를 천거하다

四年春二月甲寅朔甲子。天皇幸美濃。左右奏言之。茲國有佳人。曰弟媛。容姿端正。八坂入彦皇子之女也。天皇欲得爲妃。幸弟媛之家。弟媛聞乘輿車駕。則隱竹林。於是天皇權令弟媛至而居于泳宮。鯉魚浮池朝夕臨視而戯遊。時弟媛欲見其鯉魚遊。而密來臨池。天皇則留而通之。爰弟媛以爲。夫婦之道。古今逹則也。然於吾而不便。則請天皇曰。妾性不欲交接之道。今不勝皇命之威。暫納帷幕之中。然意所不快。亦形姿穢陋。久之不堪陪於掖庭。唯有妾姉。名曰八坂入媛。容姿麗美。志亦貞潔。宜納後宮。天皇聽之。仍喚八坂入媛爲妃。生七男六女。第一曰稚足彦天皇。第二曰五百城入彦皇子。第三曰忍之別皇子。第四曰稚倭根子皇子。第五曰大酢別皇子。第六曰渟熨斗皇女。第七曰渟名城皇女。第八曰五百城入姫皇女。第九曰■依姫皇女。第十曰五十狹城入彦皇子。

사년 봄 이월 갑인 초하루 갑자일에 천황이 미노에 나아갔다. 좌우가 아뢰었다. "이 나라에 아리따운 이가 있어 오토히메라 합니다. 모습이 단정하니 야사카이리비코 황자의 딸입니다."

천황이 얻어 비로 삼고자 하여 오토히메의 집에 나아갔다. 오토히메가 임금의 수레가 온다는 말을 듣고 대숲에 숨었다.

이에 천황이 꾀를 내어 오토히메를 오게 하려고 구쿠리노미야에 머물렀다. 잉어를 못에 놓아 아침저녁으로 굽어보며 놀았다. 그때 오토히메가 그 잉어 노는 것을 보고자 하여 몰래 와서 못에 임하였다. 천황이 곧 붙들어 통하였다.

이에 오토히메가 생각하였다. '부부의 도리는 예나 이제나 통하는 법이다. 그러나 내게는 편치 않다.' 곧 천황에게 청하였다.

"저는 성품이 사귀는 도리를 바라지 않습니다. 이제 임금의 위엄을 이기지 못하여 잠시 장막 안에 들었으나 마음이 유쾌하지 않고 또 모습이 더럽고 누추하여 오래 궁에 모시기를 견디지 못하겠습니다. 다만 제게 언니가 있어 이름을 야사카이리비메라 하는데, 모습이 아름답고 뜻 또한 곧고 깨끗하니 마땅히 후궁에 들이소서."

천황이 들어주었다. 이어 야사카이리비메를 불러 비로 삼아 일곱 사내와 여섯 계집을 낳았다. 첫째는 와카타라시히코천황이요, 둘째는 이오키이리비코 황자요, 셋째는 오시노와케 황자요, 넷째는 와카야마토네코 황자요, 다섯째는 오스와케 황자요, 여섯째는 누노시 황녀요, 일곱째는 누나키 황녀요, 여덟째는 이오키이리비메 황녀요, 아홉째는 □요리히메 황녀요, 열째는 이사키이리비코 황자다.

협주 1

泳宮。此云區玖利能彌揶。

영궁(泳宮)은 구쿠리노미야라 읽는다.

7여든 자식을 여러 나라에 봉하다

第十一曰吉備兄彦皇子。第十二曰高城入姫皇女。第十三曰弟姫皇女。又妃三尾氏磐城別之妹。水齒郎媛。生五百野皇女。次妃五十河媛。生神櫛皇子。稻背入彦皇子。其兄神櫛皇子。是讃岐國造之始祖也。弟稻背入彦皇子。是播磨別之始祖也。次妃阿倍氏木事之女。高田媛。生武國凝別皇子。是伊豫國御村別之始祖也。次妃日向髪長大田根。生日向襲津彦皇子。是阿牟君之始祖也。次妃襲武媛。生國乳別皇子與國背別皇子。豐戸別皇子。其兄國乳別皇子。是水沼別之始祖也。弟豐戸別皇子。是火國別之始祖也。夫天皇之男女。前後并八十子。然除日本武尊。稚足彦天皇。五百城入彦皇子外。七十餘子。皆封國郡。各如其國。故當今時。謂諸國之別者。即其別王之苗裔焉。

열한째는 기비노에히코 황자요, 열두째는 다카키이리비메 황녀요, 열세째는 오토히메 황녀다.

또 비 미오씨 이와키와케의 누이 미즈하노이라쓰메가 이오노 황녀를 낳았다. 다음 비 이카와히메가 가무쿠시 황자와 이나세이리비코 황자를 낳았다. 그 형 가무쿠시 황자는 사누키노쿠니노미야쓰코의 시조요, 아우 이나세이리비코 황자는 하리마노와케의 시조다.

다음 비 아베씨 고고토의 딸 다카타히메가 다케쿠니코리와케 황자를 낳았다. 이가 이요국 미무라노와케의 시조다.

다음 비 히무카의 가미나가오타네가 히무카노소쓰히코 황자를 낳았다. 이가 아무노키미의 시조다.

다음 비 소노타케히메가 구니치와케 황자와 구니세와케 황자와 도요토와케 황자를 낳았다. 그 형 구니치와케 황자는 미누마노와케의 시조요, 아우 도요토와케 황자는 히노쿠니노와케의 시조다.

무릇 천황의 아들딸이 앞뒤로 아울러 여든이었다. 그러나 야마토타케루노미코토와 와카타라시히코천황과 이오키이리비코 황자를 뺀 일흔 남짓 자식은 다 나라와 고을에 봉하여 각각 그 나라로 가게 하였다. 그러므로 지금 여러 나라의 와케(別)라 하는 이들은 곧 그 봉해진 왕의 후손이다.

협주 1

一云。宮道別皇子。

미야지와케 황자라고도 한다.

8오오우스가 명을 저버리다

是月。天皇聞美濃國造。名神骨之女。兄名兄遠子。弟名弟達子。並有國色。則遣大碓命。使察其婦女之容姿。時大碓命便密通而不復命。由是恨大碓命。

이달에 천황이 미노노쿠니노미야쓰코로 이름이 간호네라는 이의 딸들이, 언니는 에토코라 하고 아우는 오토토코라 하는데 아울러 나라 안의 미인이라는 말을 들었다. 곧 오오우스노미코토를 보내어 그 여인들의 모습을 살피게 하였다. 그때 오오우스노미코토가 곧 몰래 통하고 명을 아뢰지 않았다. 이로 말미암아 오오우스노미코토를 미워하였다.

9히시로노미야

冬十一月庚辰朔。乘輿自美濃還。則更都於纒向。是謂日代宮。

겨울 십일월 경진 초하루에 임금의 수레가 미노에서 돌아왔다. 곧 도읍을 다시 마키무쿠로 옮겼다. 이를 히시로노미야(日代宮)라 한다.

10구마소가 배반하다

十二年秋七月。熊襲反之不朝貢。

십이년 가을 칠월에 구마소가 배반하여 조공하지 않았다.

11쓰쿠시로 나아가다

八月乙未朔己酉。幸筑紫。

팔월 을미 초하루 기유일에 쓰쿠시에 나아갔다.

12가무나쓰소히메가 도적을 알리다

九月甲子朔戊辰。到周芳娑麼。時天皇南望之。詔羣卿曰。於南方烟氣多起。必賊將在。則留之。先遣多臣祖武諸木。國前臣祖菟名手。物部君祖夏花。令察其状。爰有女人。曰神夏磯媛。其徒衆甚多。一國之魁帥也。聆天皇之使者至。則拔磯津山之賢木。以上枝挂八握釼中枝挂八咫鏡。下枝挂八尺瓊。亦素幡樹于船舳。參向而啓之曰。願無下兵。我之屬類。必不有違者。今將歸徳矣。唯有殘賊者。一曰鼻垂。妄假名號。山谷響聚。屯結於菟狹川上。二曰耳垂。殘賊貧婪。屡略人民。是居於御木川上。三曰麻剥。潜聚徒黨。居於高羽川上。四曰土折猪折。隱住於緑野川上。獨恃山川之險。以多掠人民。是四人也。其所據並要害之地。故各領眷屬。爲一處之長也。皆曰。不從皇命。願急撃之。勿失。於是。武諸木等先誘麻剥之徒。仍賜赤衣褌及種種奇物。兼令■不服之三人。乃率己衆而參來。悉捕誅之。天皇遂幸筑紫。到豐前國長峽縣。興行宮而居。故號其處曰京也。

구월 갑자 초하루 무진일에 스오의 사바에 이르렀다. 그때 천황이 남쪽을 바라보고 여러 대신에게 조를 내렸다. "남쪽에 연기가 많이 일어난다. 반드시 도적이 있을 것이다." 곧 머물러 먼저 오노오미의 조상 다케모로키와 구니사키노오미의 조상 우나테와 모노노베노키미의 조상 나쓰하나를 보내어 그 사정을 살피게 하였다.

이에 여인이 있어 가무나쓰소히메라 하였다. 그 무리가 매우 많아 한 나라의 우두머리였다. 천황의 사자가 왔다는 말을 듣고 곧 이소쓰산의 신성한 나무를 뽑아 윗가지에 여덟 줌 칼을 걸고 가운뎃가지에 야타의 거울을 걸고 아랫가지에 여덟 자 구슬을 걸었다. 또 흰 기를 뱃머리에 세우고 나아와 아뢰었다.

"바라건대 군사를 내리지 마소서. 제 무리는 반드시 어기는 이가 없고 이제 덕에 돌아오려 합니다. 다만 남은 도적이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타리라 하는데 함부로 이름과 칭호를 빌려 산골짜기가 울리도록 무리를 모아 우사 냇가에 진 쳤습니다. 둘째는 미미타리라 하는데 모질고 탐욕스러워 여러 번 백성을 노략하니 미케 냇가에 삽니다. 셋째는 아사하기라 하는데 몰래 무리를 모아 다카하 냇가에 삽니다. 넷째는 쓰치오리이오리라 하는데 미도리노 냇가에 숨어 살며 홀로 산과 내의 험함을 믿고 백성을 많이 노략합니다. 이 네 사람이 웅거한 데가 아울러 요해의 땅이라 각각 겨레붙이를 거느려 한 곳의 어른이 되었습니다. 다 임금의 명을 좇지 않겠다 하니, 바라건대 급히 치시고 놓치지 마소서."

이에 다케모로키들이 먼저 아사하기의 무리를 꾀어 붉은 옷과 잠방이와 온갖 진기한 물건을 주고, 아울러 복종하지 않는 세 사람을 □하게 하였다. 이에 제 무리를 거느리고 와서 다 잡아 베었다.

천황이 마침내 쓰쿠시에 나아가 부젠국 나가오현에 이르러 행궁을 일으켜 머물렀다. 그러므로 그곳을 미야코(京)라 이름하였다.

협주 1

木。此云開。

목(木)은 게라 읽는다.

13쓰치구모를 치다

冬十月。到碩田國。其地形廣大亦麗。因名碩田也。到速見邑。有女人。曰速津媛。爲一處之長。其聞天皇車駕而自奉迎之諮言。茲山有大石窟。曰鼠石窟。有二土蜘蛛。住其石窟。一曰青。二曰白。又於直入縣禰疑野有三土蜘蛛。一曰打猿。二曰八田。三曰國摩侶。是五人並其爲人強力。亦衆類多之。皆曰。不從皇命。若強喚者。興兵距焉。天皇惡之不得進行。即留于來田見邑。權興宮室而居之。仍與群臣議之曰。今多動兵衆。以討土蜘蛛。若其畏我兵勢將隱山野必爲後愁。則採海石榴樹。作椎爲兵。因簡猛卒。授兵椎以穿山排草襲石室土蜘蛛。而破于稻葉川上。悉殺其黨。血流至踝。故時人其作海石榴椎之處曰海石榴市。亦血流之處曰血田也。復將討打猿。姪度禰疑山。時賊虜之矢。横自山射之。流於官軍前如雨。天皇更返城原。而卜於水上。便勒兵先撃八田於禰疑野而破。

겨울 시월에 오키타국에 이르렀다. 그 땅 모양이 넓고 크며 또한 아름다웠다. 이로 인하여 오키타(碩田)라 이름하였다.

하야미 마을에 이르니 여인이 있어 하야쓰히메라 하며 한 곳의 어른이었다. 천황의 수레가 온다는 말을 듣고 스스로 받들어 맞이하며 아뢰었다.

"이 산에 큰 돌 굴이 있어 네즈미의 돌 굴이라 합니다. 두 쓰치구모(土蜘蛛)가 있어 그 돌 굴에 삽니다. 하나는 아오라 하고 둘은 시로라 합니다. 또 나오리현 네기노에 세 쓰치구모가 있으니 하나는 우치사루라 하고 둘은 야타라 하고 셋은 구니마로라 합니다. 이 다섯 사람이 아울러 사람됨이 힘세고 또 무리가 많습니다. 다 임금의 명을 좇지 않겠다 하니, 만약 억지로 부르시면 군사를 일으켜 막을 것입니다."

천황이 이를 언짢게 여겨 나아가지 못하고 곧 구타미 마을에 머물러 임시로 궁실을 일으켜 지냈다. 이어 여러 신하와 의논하였다. "이제 군사를 많이 움직여 쓰치구모를 친다면, 만약 그들이 우리 군세를 두려워하여 산과 들에 숨는다면 반드시 뒷근심이 될 것이다."

곧 동백나무를 베어 몽둥이를 만들어 무기로 삼았다. 이어 날랜 군사를 가려 몽둥이를 주어 산을 뚫고 풀을 헤쳐 돌집의 쓰치구모를 습격하여 이나바 냇가에서 깨뜨렸다. 그 무리를 다 죽이니 피가 흘러 복사뼈에 닿았다. 그러므로 그때 사람들이 그 동백 몽둥이를 만든 곳을 쓰바키치(海石榴市)라 하고, 또 피가 흐른 곳을 지타(血田)라 하였다.

다시 우치사루를 치려고 네기산을 넘어갔다. 그때 도적의 화살이 옆으로 산에서 날아와 관군 앞에 비 오듯 쏟아졌다. 천황이 다시 기하라로 돌아가 물가에서 점쳤다. 곧 군사를 다잡아 먼저 야타를 네기노에서 쳐 깨뜨렸다.

협주 1

碩田。此云於保岐陀。

석전(碩田)은 오키타라 읽는다.

14밟은 돌

爰打猿謂不可勝而請服。然不聽矣。皆自投洞谷而死之。天皇初將討賊。次于柏峽大野。其野有石。長六尺。廣三尺。厚一尺五寸。天皇祈之曰。朕得滅土蜘蛛者。將蹶茲石。如柏葉而擧焉。因蹶之。則如柏上於大虚。故號其石曰蹈石也。是時祷神。則志我神。直入物部神。直入中臣神三神矣。

이에 우치사루가 이길 수 없음을 알고 항복을 청하였다. 그러나 들어주지 않았다. 다 스스로 골짜기에 몸을 던져 죽었다.

천황이 처음 도적을 치려 할 때 가시와오의 넓은 들에 머물렀다. 그 들에 돌이 있어 길이 여섯 자, 너비 석 자, 두께 한 자 다섯 치였다. 천황이 빌었다. "짐이 쓰치구모를 멸할 수 있다면 이 돌을 차서 떡갈나무 잎처럼 오르게 하라." 이어 차니 떡갈나무 잎처럼 큰 허공에 올랐다. 그러므로 그 돌을 호미시(蹈石)라 이름하였다.

이때 빈 신은 곧 시가의 신과 나오리의 모노노베 신과 나오리의 나카토미 신 세 신이다.

15다카야노미야

十一月。到日向國。起行宮以居之。是謂高屋宮。

십일월에 히무카국에 이르러 행궁을 일으켜 머물렀다. 이를 다카야노미야(高屋宮)라 한다.

16구마소를 꾀로 치다

十二月癸巳朔丁酉。議討熊襲。於是。天皇詔群卿曰。朕聞之。襲國有厚鹿文。■鹿文者。是兩人熊襲之渠帥者也。衆類甚多。是謂熊襲八十梟帥。其鋒不可當焉。少興師則不堪滅賊。多動兵是百姓之害。何不假鋒刄之威。坐平其國。時有一臣進曰。熊襲梟帥有二女。兄曰市乾鹿文。弟曰市鹿文。容既端正。心且雄武。宜示重幣以■納麾下。因以伺其消息。犯不意之處。則會不血刄。賊必自敗。天皇詔。可也。於是。示幣欺其二女而納幕下。天皇則通市乾鹿文而陽寵。時市乾鹿文奏于天皇曰。無愁熊襲之不服。妾有良謀。即令從一二兵於己。而返家。以多設醇酒。令飮己父。乃醉而寐之。市乾鹿文密斷父弦。爰從兵一人進殺熊襲梟帥。天皇則惡其不孝之甚而誅市乾鹿文。仍以弟市鹿文賜於火國造。

십이월 계사 초하루 정유일에 구마소 칠 일을 의논하였다. 이에 천황이 여러 대신에게 조를 내렸다.

"짐이 듣건대 소국(襲國)에 아쓰카야와 □카야가 있는데 이 두 사람은 구마소의 우두머리다. 무리가 매우 많으니 이를 구마소야소타케루라 한다. 그 예봉을 당할 수 없다. 군사를 적게 일으키면 도적을 멸하기에 모자라고, 군사를 많이 움직이면 이는 백성의 해다. 어찌 칼날의 위엄을 빌리지 않고 앉아서 그 나라를 평정하지 않겠는가."

그때 한 신하가 나아가 말하였다. "구마소타케루에게 두 딸이 있어 언니는 이치후카야라 하고 아우는 이치카야라 합니다. 얼굴이 이미 단정하고 마음 또한 씩씩합니다. 마땅히 두터운 폐백을 보이어 휘하에 들이시고, 이로써 그 소식을 엿보아 뜻하지 않은 곳을 치면 곧 칼날에 피를 묻히지 않고 도적이 반드시 스스로 무너질 것입니다."

천황이 조를 내렸다. "옳다."

이에 폐백을 보이어 그 두 딸을 속여 장막 아래 들였다. 천황이 곧 이치후카야와 통하여 거짓으로 사랑하였다.

그때 이치후카야가 천황에게 아뢰었다. "구마소가 복종하지 않음을 근심하지 마소서. 제게 좋은 꾀가 있습니다."

곧 한두 군사를 저를 따르게 하여 집으로 돌아가 진한 술을 많이 마련하여 제 아비에게 먹였다. 이에 취하여 잠들매 이치후카야가 몰래 아비의 활줄을 끊었다. 이에 따라온 군사 하나가 나아가 구마소타케루를 죽였다.

천황이 곧 그 효도 없음이 심함을 미워하여 이치후카야를 베었다. 이어 아우 이치카야는 히노쿠니노미야쓰코에게 주었다.

협주 1

乾。此云賦。

건(乾)은 후라 읽는다.

17소국을 평정하다

十三年夏五月。悉平襲國。因以居於高屋宮。已六年也。於是。其國有佳人。曰御刀媛。則召爲妃。生豐國別皇子。是日向國造之始祖也。

십삼년 여름 오월에 소국을 다 평정하였다. 이로 인하여 다카야노미야에 머문 지 이미 여섯 해였다. 이에 그 나라에 아리따운 이가 있어 미하카시히메라 하니 곧 불러 비로 삼아 도요쿠니와케 황자를 낳았다. 이가 히무카노쿠니노미야쓰코의 시조다.

협주 1

御刀。此云彌波迦志。

어도(御刀)는 미하카시라 읽는다.

18히무카라는 이름과 나라 그리는 노래

十七年春三月戊戌朔己酉。幸子湯縣。遊于丹裳小野。時東望之。謂左右曰。是國也直向於日出方。故號其國曰日向也。是日陟野中大石。憶京都而歌之曰。波辭枳豫辭。和藝幣能伽多由。區毛位多知區暮。夜摩苔波。區珥能摩保邏摩。多多儺豆久。阿烏伽枳夜摩。許莽例屡。夜摩苔之。于屡破試。異能知能摩會祁務比苔破。多多濔許莽。幣遇利能夜摩能。志邏伽之餓延塢。于受珥左勢。許能固。是謂思邦歌也。

십칠년 봄 삼월 무술 초하루 기유일에 고유현에 나아가 니모노오노에서 놀았다. 그때 동쪽을 바라보고 좌우에게 일렀다. "이 나라는 곧바로 해 뜨는 쪽을 향하였다." 그러므로 그 나라를 히무카(日向)라 이름하였다.

이날 들 가운데 큰 돌에 올라 서울을 그리며 노래하였다.

「하시키요시 와기헤노카타유 구모위타치쿠모 야마토와 구니노마호라마 다타나즈쿠 아오카키야마 고모레루 야마토시 우루하시(波辭枳豫辭 和藝幣能伽多由 區毛位多知區暮 夜摩苔波 區珥能摩保邏摩 多多儺豆久 阿烏伽枳夜摩 許莽例屡 夜摩苔之 于屡破試) 이노치노마소케무히토와 다타미코모 헤구리노야마노 시라카시가에오 우즈니사세 고노코(異能知能摩會祁務比苔破 多多濔許莽 幣遇利能夜摩能 志邏伽之餓延塢 于受珥左勢 許能固)」

— 소리를 적은 것이라 뜻으로 옮기지 않는다. 이를 구니시노비우타(思邦歌), 곧 나라 그리는 노래라 한다.

19이즈미히메

十八年春三月。天皇將向京以巡狩筑紫國。始到夷守。是時於石瀬河邊。人衆聚集。於是天皇遥望之。詔左右曰。其集者何人也。若賊乎。乃遣兄夷守。弟夷守二人令覩。乃弟夷守還來而諮之曰。諸縣君泉媛。依獻大御食而其族會之。

십팔년 봄 삼월에 천황이 서울로 향하려고 쓰쿠시국을 돌아보았다. 처음 히나모리에 이르렀다. 이때 이와세 냇가에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이에 천황이 멀리 바라보고 좌우에 조를 내렸다. "저 모인 이들은 누구냐. 도적인가."

이에 에히나모리와 오토히나모리 두 사람을 보내어 보게 하였다. 이에 오토히나모리가 돌아와 아뢰었다. "모로가타노키미 이즈미히메가 큰 진지를 바치려고 그 겨레가 모인 것입니다."

20구마현

夏四月壬戌朔甲子。到熊縣。其處有熊津彦者兄弟二人。天皇先使徴兄熊。則從使詣之。因徴弟熊。而不來。故遣兵誅之

여름 사월 임술 초하루 갑자일에 구마현에 이르렀다. 그곳에 구마쓰히코라는 이가 있어 형제 두 사람이었다. 천황이 먼저 형 구마를 부르게 하니 사자를 따라 나아왔다. 이어 아우 구마를 불렀으나 오지 않았다. 그러므로 군사를 보내어 베었다.

21미즈시마

壬申。自海路泊於葦北小嶋而進食。時召山部阿弭古之祖小左。令進冷水。適是時嶋中無水。不知所爲。則仰之祈于天神地祗。忽寒泉從崖傍涌出。乃酌以獻焉。故號其曰水嶋也。其泉猶今在水嶋崖也。

임신일에 바닷길로 아시키타의 작은 섬에 닿아 밥을 먹었다. 그때 야마베노아비코의 조상 오히다리를 불러 찬물을 올리게 하였다. 마침 이때 섬 안에 물이 없어 어찌할 바를 몰랐다. 곧 우러러 하늘 신과 땅 신에게 빌었다. 홀연히 찬 샘이 벼랑 곁에서 솟아 나왔다. 이에 떠서 바쳤다. 그러므로 그곳을 미즈시마(水嶋)라 이름하였다. 그 샘이 지금도 미즈시마 벼랑에 있다.

22히노쿠니라는 이름

五月壬辰朔。從葦北發船到火國。於是日沒也。夜冥不知著岸。遥視火光。天皇詔挾杪者曰。直指火處。因指火往之。即得著岸。天皇問其火光之處曰。何謂邑也。國人對曰。是八代縣豐村。亦尋其火。是誰人之火也。然不得主。茲知非人火。故名其國曰火國。

오월 임진 초하루에 아시키타에서 배를 띄워 히노쿠니에 이르렀다. 이에 해가 졌다. 밤이 어두워 언덕에 닿을 곳을 알지 못하였다. 멀리 불빛이 보였다. 천황이 사공에게 조를 내렸다. "곧바로 불 있는 곳을 가리켜라." 이어 불을 가리켜 가니 곧 언덕에 닿을 수 있었다.

천황이 그 불빛이 있던 곳을 물었다. "무슨 마을이냐." 그 나라 사람이 답하였다. "이는 야쓰시로현 도요 마을입니다." 또 그 불을 찾아 이는 누구의 불이냐 하였으나 주인을 찾지 못하였다. 이에 사람의 불이 아님을 알았다. 그러므로 그 나라를 히노쿠니(火國)라 이름하였다.

23쓰치구모 쓰쓰라를 죽이다

六月辛酉朔癸亥。自高來縣渡玉杵名邑。時殺其處之土蜘蛛津頬焉。

유월 신유 초하루 계해일에 다카쿠현에서 다마키나 마을로 건너갔다. 그때 그곳의 쓰치구모 쓰쓰라를 죽였다.

24아소라는 이름

丙子。到阿蘇國也。其國郊原曠遠。不見人居。天皇曰。是國有人乎。時有二神。曰阿蘇都彦。阿蘇都媛。忽化人以遊詣之曰。吾二人在。何無人耶。故號其國曰阿蘇。

병자일에 아소국에 이르렀다. 그 나라 들이 넓고 멀어 사람 사는 데가 보이지 않았다. 천황이 말하였다. "이 나라에 사람이 있는가."

그때 두 신이 있어 아소쓰히코와 아소쓰히메라 하였다. 홀연히 사람으로 변하여 놀며 나아와 말하였다. "우리 두 사람이 있는데 어찌 사람이 없다 하십니까." 그러므로 그 나라를 아소(阿蘇)라 이름하였다.

25미케라는 이름

秋七月辛卯朔甲午。到筑紫後國御木。居於高田行宮。時有僵樹。長九百七十丈焉。百寮蹈其樹而往來。時人歌曰。阿佐志毛能。瀰概能佐烏麼志。魔幣菟耆瀰。伊和■羅秀暮。瀰開能佐烏麼志。爰天皇問之曰。是何樹也。有一老夫曰。是樹者歴木也。嘗未僵之先。當朝日暉。則隱杵嶋山。當夕日暉。亦覆阿蘇山也。天皇曰。是樹者神木。故是國宜號御木國。

가을 칠월 신묘 초하루 갑오일에 지쿠시노미치노시리국 미케에 이르러 다카타 행궁에 머물렀다. 그때 쓰러진 나무가 있어 길이가 구백칠십 길이었다. 온갖 벼슬아치가 그 나무를 밟고 오갔다. 그때 사람들이 노래하였다.

「아사시모노 미케노사오바시 마헤쓰기미 이와타라스모 미케노사오바시(阿佐志毛能 瀰概能佐烏麼志 魔幣菟耆瀰 伊和■羅秀暮 瀰開能佐烏麼志)」 — 소리를 적은 것이라 뜻으로 옮기지 않는다.

이에 천황이 물었다. "이는 무슨 나무냐."

한 늙은이가 있어 말하였다. "이 나무는 구누기입니다. 일찍이 쓰러지기 전에 아침 해가 비치면 기시마산을 가리고, 저녁 해가 비치면 또한 아소산을 덮었습니다."

천황이 말하였다. "이 나무는 신령한 나무다. 그러므로 이 나라를 미케국(御木國)이라 이름함이 마땅하다."

26야메라는 이름

丁酉。到八女縣。則越藤山以南望粟岬。詔之曰。其山峯岫重疊。且美麗之甚。若神有其山乎。時水沼縣主猿大海奏言。有女神。名曰八女津媛。常居山中。故八女國之名由此而起也。

정유일에 야메현에 이르렀다. 곧 후지산을 넘어 남쪽으로 아와 곶을 바라보고 조를 내렸다. "저 산은 봉우리와 멧부리가 거듭 겹치고 또 아름다움이 심하다. 혹 신이 그 산에 있는가."

그때 미누마노아가타누시 사루오미가 아뢰었다. "여신이 있어 이름을 야메쓰히메라 하며 늘 산속에 삽니다." 그러므로 야메국이라는 이름이 이로 말미암아 일어났다.

27우키하라는 이름

八月。到的邑而進食。是日膳夫等遺盞。故時人號其忘盞處曰浮羽。今謂的者訛也。昔筑紫俗號盞日浮羽。

팔월에 이쿠하 마을에 이르러 밥을 먹었다. 이날 요리 맡은 이들이 잔을 잊었다. 그러므로 그때 사람들이 그 잔을 잊은 곳을 우키하(浮羽)라 이름하였다. 이제 이쿠하라 이르는 것은 잘못 옮겨진 것이다. 옛적에 쓰쿠시 풍속에 잔을 우키하라 하였다.

28히무카에서 돌아오다

十九年秋九月甲申朔癸卯。天皇至自日向。

십구년 가을 구월 갑신 초하루 계묘일에 천황이 히무카에서 돌아왔다.

29이오노 황녀를 보내다

廿年春二月辛巳朔甲申。遣五百野皇女令祭天照大神。

이십년 봄 이월 신사 초하루 갑신일에 이오노 황녀를 보내어 아마테라스오미카미을 제사하게 하였다.

30다케우치노스쿠네를 동쪽에 보내다

廿五年秋七月庚辰朔壬午。遣武内宿禰令察北陸。及東方諸國之地形。且百姓之消息也。

이십오년 가을 칠월 경진 초하루 임오일에 다케우치노스쿠네를 보내어 북쪽 뭍길과 동쪽 여러 나라의 땅 모양과 또 백성의 형편을 살피게 하였다.

31히타카미국을 아뢰다

廿七年春二月辛丑朔壬子。武内宿禰自東國還之奏言。東夷之中。有日高見國。其國人。男女並椎結文身。爲人勇悍、是總曰蝦夷。亦土地沃壞而曠之。撃可取也。

이십칠년 봄 이월 신축 초하루 임자일에 다케우치노스쿠네가 동국에서 돌아와 아뢰었다. "동이 가운데 히타카미국(日高見國)이 있습니다. 그 나라 사람은 사내와 계집이 아울러 머리를 방망이처럼 묶고 몸에 무늬를 새기며 사람됨이 날래고 사납습니다. 이를 통틀어 에미시(蝦夷)라 합니다. 또한 땅이 기름지고 넓으니 쳐서 얻을 만합니다."

32구마소가 다시 배반하다

秋八月。熊襲亦反之。侵邊境不止。

가을 팔월에 구마소가 또 배반하여 변경을 침범하기를 그치지 않았다.

33야마토타케루를 보내다

冬十月丁酉朔己酉。遣日本武尊令撃熊襲。時年十六。於是。日本武尊曰。吾得善射者欲與行。其何處有善射者焉。或者啓之曰。美濃國有善射者。曰弟彦公。於是。日本武尊遣葛城人宮戸彦喚弟彦公。故弟彦公便率石占横立。及尾張田子之稻置。乳近之稻置而來。則從日本武尊而行之。

겨울 시월 정유 초하루 기유일에 야마토타케루노미코토를 보내어 구마소를 치게 하였다. 그때 나이 열여섯이었다.

이에 야마토타케루노미코토가 말하였다. "내가 활 잘 쏘는 이를 얻어 함께 가고자 한다. 어디에 활 잘 쏘는 이가 있는가."

어떤 이가 아뢰었다. "미노국에 활 잘 쏘는 이가 있어 오토히코노키미라 합니다."

이에 야마토타케루노미코토가 가즈라키 사람 미야토히코를 보내어 오토히코노키미를 불렀다. 그러므로 오토히코노키미가 곧 이시우라노요코타치와 오와리의 다고노이나키와 지치카의 이나키를 거느리고 와서 야마토타케루노미코토를 따라갔다.

34야마토타케루라는 이름을 얻다

十二月。到於熊襲國。因以伺其消息及地形之嶮易。時熊襲有魁帥者。名取石鹿文。亦曰川上梟帥。悉集親族而欲宴。於是。日本武尊解髪作董女姿。以密伺川上梟帥之宴時。仍佩劔■裏。入於川上梟帥之宴室。居女人之中。川上梟帥感其童女之容姿。則携手同席。擧坏令飮而戲弄。于時也更深人闌。川上梟帥且被酒。於是。日本武尊抽■中之釼。刺川上梟帥之胸。未及之死。川上梟帥叩頭曰。且待之。吾有所言。時日本武尊留釼待之。川上梟帥啓之曰。汝尊誰人也。對曰。吾是大足彦天皇之子也。名曰本童男也。川上梟帥亦啓之曰。吾是國中之強力者也。是以當時諸人。不勝我之威力。而無不從者。吾多遇武力矣。未有若皇子者。是以賎賊陋口以奉尊號。若聽乎。曰。聽之。即啓曰。自今以後號皇子。應稱日本武皇子。言訖。乃通胸而殺之。故至于今稱曰日本武尊。是其縁也。然後遣弟彦等悉斬其黨類。無餘■。既而從海路還倭。到吉備以渡穴海。其處有惡神。則殺之。亦比至難波。殺柏濟之惡神。

십이월에 구마소국에 이르렀다. 이어 그 형편과 땅의 험하고 편함을 엿보았다. 그때 구마소에 우두머리가 있어 이름을 도로시카야라 하고 또 가와카미노타케루라 하였는데, 겨레붙이를 다 모아 잔치하려 하였다.

이에 야마토타케루노미코토가 머리를 풀어 계집아이 모습을 하고 몰래 가와카미노타케루의 잔치 때를 엿보았다. 이어 칼을 옷 속에 차고 가와카미노타케루의 잔칫방에 들어가 여인들 가운데 앉았다.

가와카미노타케루가 그 계집아이의 모습에 반하여 곧 손을 잡고 자리를 함께하고 잔을 들어 마시게 하며 희롱하였다. 이때 밤이 깊고 사람이 뜸해지매 가와카미노타케루가 또한 술에 취하였다.

이에 야마토타케루노미코토가 옷 속의 칼을 뽑아 가와카미노타케루의 가슴을 찔렀다. 아직 죽음에 이르지 않아 가와카미노타케루가 머리를 조아리며 말하였다. "잠깐 기다려라. 내게 할 말이 있다."

그때 야마토타케루노미코토가 칼을 멈추고 기다렸다.

가와카미노타케루가 아뢰었다. "그대는 누구시오."

답하였다. "나는 오타라시히코천황의 아들이니 이름을 야마토오구나라 한다."

가와카미노타케루가 또 아뢰었다. "나는 이 나라 안에서 힘센 자입니다. 이 때문에 그때 여러 사람이 내 위력을 이기지 못하여 따르지 않는 이가 없었습니다. 내가 무력 있는 이를 많이 만났으나 아직 황자 같은 이는 없었습니다. 이 때문에 천한 도적의 누추한 입으로 높은 이름을 바치려 하니 들어주시겠습니까."

말하였다. "들어주겠다."

곧 아뢰었다. "이제부터 황자를 야마토타케루 황자(日本武皇子)라 일컬으소서."

말이 끝나매 이에 가슴을 꿰뚫어 죽였다. 그러므로 지금에 이르도록 야마토타케루노미코토라 일컫는 것이 이 때문이다.

그런 뒤에 오토히코들을 보내어 그 무리를 다 베어 남은 □가 없었다. 이윽고 바닷길로 야마토에 돌아와 기비에 이르러 아나노우미를 건넜다. 그곳에 사나운 신이 있어 곧 죽였다. 또 나니와에 이를 즈음에 가시와노와타리의 사나운 신을 죽였다.

협주 1

濟。此云和多利。

제(濟)는 와타리라 읽는다.

35구마소 평정을 아뢰다

廿八年春二月乙丑朔。日本武尊奏平熊襲之状曰。臣頼天皇之神靈。以兵一擧。頓誅熊襲之魁帥者。悉平其國。是以西洲既謐。百姓無事。唯吉備穴濟神。及難波柏濟神。皆有害心。以放毒氣。令苦路人。並爲禍害之薮。故悉殺其惡神。並開水陸之徑。天皇於是美日本武之功。而異愛。

이십팔년 봄 이월 을축 초하루에 야마토타케루노미코토가 구마소를 평정한 사정을 아뢰었다.

"신이 천황의 신령에 힘입어 군사를 한 번 들어 문득 구마소의 우두머리를 베고 그 나라를 다 평정하였습니다. 이 때문에 서쪽 고을이 이미 고요하고 백성이 일이 없습니다. 다만 기비의 아나노와타리의 신과 나니와의 가시와노와타리의 신이 다 해칠 마음을 품고 독한 기운을 놓아 길 가는 이를 괴롭게 하며 아울러 재앙과 해의 소굴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그 사나운 신을 다 죽이고 아울러 물길과 뭍길을 열었습니다."

천황이 이에 야마토타케루의 공을 아름다이 여겨 남달리 사랑하였다.

36동이가 배반하다

四十年夏六月。東夷多叛。邊境騒動。

사십년 여름 유월에 동이가 많이 배반하여 변경이 시끄러웠다.

37도끼를 주며 동정을 명하다

秋七月癸未朔戊戌。天皇詔群卿曰。今東國不安。暴神多起。亦蝦夷悉叛。屡略人民。遣誰人以平其亂。羣臣皆不知誰遣也。日本武尊奏言。臣則先勞西征。是役必大碓皇子之事矣。時大碓皇子愕然之。逃隱草中。則遣使者召來。爰天皇責曰。汝不欲矣豈強遣耶。何未對賊。以豫懼甚焉。因此遂封美濃。仍如封地。是身毛津君。守君凡二族之始祖也。於是。日本武尊雄誥之曰。熊襲既平。未經幾年。今更東夷叛之。何日逮于大平矣。臣雖勞之。頓平其亂。則天皇持斧鉞。以授日本武尊曰。朕聞。其東夷也。識性暴強。凌犯爲宗。村之無長。邑之勿首。各貪封堺。並相盜略。亦山有邪神。郊有姦鬼。遮衢塞徑。多令苦人。其東夷之中。蝦夷是尤強焉。男女交居。父子無別。冬則宿穴。夏則住樔。衣毛飮血。昆弟相疑。登山如飛禽。行草如走獸。承恩則忘見怨必報。是以箭藏頭髻。刀佩衣中。或聚黨類。而犯邊界。

가을 칠월 계미 초하루 무술일에 천황이 여러 대신에게 조를 내렸다. "이제 동국이 편치 않고 사나운 신이 많이 일어나며 또 에미시가 다 배반하여 여러 번 백성을 노략한다. 누구를 보내어 그 어지러움을 평정하겠는가."

여러 신하가 다 누구를 보낼지 알지 못하였다.

야마토타케루노미코토가 아뢰었다. "신은 앞서 서쪽을 치느라 애썼습니다. 이 일은 반드시 오오우스 황자의 일입니다."

그때 오오우스 황자가 깜짝 놀라 풀 속에 도망해 숨었다. 곧 사자를 보내어 불러 오게 하였다.

이에 천황이 꾸짖었다. "네가 바라지 않는데 어찌 억지로 보내겠느냐. 어찌 아직 도적을 만나지도 않았는데 미리 두려워함이 심하냐." 이로 인하여 마침내 미노에 봉하니 이어 봉한 땅으로 갔다. 이가 무게쓰노키미와 모리노키미 두 겨레의 시조다.

이에 야마토타케루노미코토가 씩씩하게 외쳤다. "구마소가 이미 평정된 지 몇 해가 지나지 않았는데 이제 다시 동이가 배반합니다. 어느 날에야 큰 평화에 이르겠습니까. 신이 비록 애쓰더라도 문득 그 어지러움을 평정하겠습니다."

곧 천황이 도끼를 가져 야마토타케루노미코토에게 주며 말하였다.

"짐이 듣건대 그 동이는 앎과 성품이 사납고 굳세어 짓밟고 침범함을 으뜸으로 삼는다. 마을에 어른이 없고 고을에 우두머리가 없어 각각 제 경계를 탐하여 아울러 서로 훔치고 노략한다. 또한 산에 삿된 신이 있고 들에 간악한 귀신이 있어 네거리를 막고 길을 가로막아 사람을 많이 괴롭게 한다.

그 동이 가운데 에미시가 가장 강하다. 사내와 계집이 섞여 살고 아비와 자식의 구별이 없다. 겨울에는 구멍에 자고 여름에는 나무 둥지에 산다. 털옷을 입고 피를 마시며 형제가 서로 의심한다. 산에 오르기를 나는 새 같고 풀밭을 달리기를 달리는 짐승 같다. 은혜를 입으면 잊고 원한을 보면 반드시 갚는다. 이 때문에 화살을 상투에 감추고 칼을 옷 속에 찬다. 혹 무리를 모아 변경을 침범하고

38도끼를 받고 아뢰다

或伺農桑。以略人民。撃則隱草。追則入山。故往古以來。未染王化。今朕察汝人也。身體長大。容姿端正。力能扛鼎。猛如雷電。所向無前。所攻必勝。即知之。形則我子。實則神人。是寔天愍朕不叡。且國不平。令經綸天業。不絶宗廟乎。亦是天下。則汝天下也。是位則汝位也。願深謀遠慮。探姦伺變。示之以威。懷之以徳。不煩兵甲。自令臣隷。即巧言而調暴神。振武以攘姦鬼。於是。日本武尊乃受斧鉞。以再拜奏之曰。嘗西征之年。頼皇靈之威。堤三尺釼。撃熊襲國。未經浹辰。賊首伏罪。今亦頼神祗之靈。借天皇之威。往臨其境。示以徳教。猶有不服。即擧兵撃。仍重再拜之。天皇則命吉備武彦與大伴武日連。令從日本武尊。亦以七掬脛爲膳夫。

혹 농사와 누에 치는 때를 엿보아 백성을 노략한다. 치면 풀에 숨고 쫓으면 산에 든다. 그러므로 옛적부터 아직 왕의 교화에 물들지 않았다.

이제 짐이 너라는 사람을 살피건대, 몸이 크고 얼굴이 단정하며 힘이 능히 솥을 들고 사납기가 우레와 번개 같아 향하는 데 앞을 막을 이가 없고 치는 데 반드시 이긴다. 곧 알겠다. 모습은 내 자식이나 실은 신인이다. 이는 참으로 하늘이 짐의 슬기롭지 못함과 또 나라가 평안하지 못함을 가엾이 여겨, 하늘의 업을 다스려 종묘를 끊이지 않게 하려는 것이 아니겠는가.

또한 이 천하는 곧 네 천하요, 이 자리는 곧 네 자리다. 바라건대 깊이 꾀하고 멀리 생각하여 간악함을 살피고 변고를 엿보아, 위엄으로 보이고 덕으로 품어 군사와 갑옷을 번거롭게 하지 않고 절로 신하로 삼아라. 곧 교묘한 말로 사나운 신을 다스리고 무위를 떨쳐 간악한 귀신을 물리쳐라."

이에 야마토타케루노미코토가 이에 도끼를 받고 두 번 절하여 아뢰었다.

"일찍이 서쪽을 치던 해에 황조의 위엄에 힘입어 석 자 칼을 들고 구마소국을 쳐서 열이틀이 지나지 않아 도적의 우두머리가 죄에 엎드렸습니다. 이제 또한 신들의 신령에 힘입고 천황의 위엄을 빌려 그 지경에 가서 임하여 덕과 가르침으로 보이겠습니다. 오히려 복종하지 않으면 곧 군사를 들어 치겠습니다."

이어 거듭 두 번 절하였다.

천황이 곧 기비노타케히코와 오토모노타케히노무라지에게 명하여 야마토타케루노미코토를 따르게 하고, 또 나나쓰카하기를 요리 맡은 이로 삼았다.

39길을 떠나다

冬十月壬子朔癸丑。日本武尊發路之。

겨울 시월 임자 초하루 계축일에 야마토타케루노미코토가 길을 떠났다.

40야마토히메가 구사나기 칼을 주다

戊午。抂道拜伊勢神宮。仍辭于倭姫命曰。今被天皇之命。而東征將誅諸叛者。故辭之。於是倭姫命取草薙釼。授日本武尊曰。愼之莫怠也。

무오일에 길을 굽혀 이세 신궁에 절하였다. 이어 야마토히메노미코토에게 하직하여 말하였다. "이제 천황의 명을 받아 동쪽을 쳐 여러 배반한 이를 베려 합니다. 그러므로 하직합니다."

이에 야마토히메노미코토가 구사나기 칼(草薙釼)을 가져 야마토타케루노미코토에게 주며 말하였다. "삼가고 게을리하지 마라."

41불타는 들과 오토타치바나히메

是歳。日本武尊初至駿河。其處賊陽從之。欺曰。是野也糜鹿甚多。氣如朝霧。足如茂林。臨而應狩。日本武尊信其言。入野中而覓獸。賊有殺王之情。放火燒其野。王知被欺。則以燧出火之。向燒而得兔王曰。殆被欺。則悉焚其賊衆而滅之。故號其處曰燒津。亦進相摸欲往上總。望海高言曰。是小海耳。可立跳渡。乃至于海中暴風忽起。王船漂蕩而不可渡。時有從王之妾。曰弟橘媛。穗積氏忍山宿禰之女也。啓王曰。今風起浪泌。王船欲沒。是必海神心也。願以妾之身。贖王之命而入海。言訖。乃披瀾入之。暴風即止。船得著岸。故時人號其海曰馳水也。爰日本武尊則從上總轉入陸奥國。時大鏡縣於王船。從海路廻於葦浦。横渡玉浦至蝦夷境。蝦夷賊首嶋津神。國津神等。

이해에 야마토타케루노미코토가 처음 스루가에 이르렀다. 그곳 도적이 거짓으로 따르며 속여 말하였다. "이 들에 사슴이 매우 많아 기운이 아침 안개 같고 다리가 우거진 숲 같습니다. 나아가 사냥하심이 마땅합니다."

야마토타케루노미코토가 그 말을 믿고 들 가운데 들어가 짐승을 찾았다. 도적에게 왕을 죽일 마음이 있어 불을 놓아 그 들을 태웠다. 왕이 속은 줄 알고 곧 부싯돌로 불을 내어 마주 태워 벗어날 수 있었다.

왕이 말하였다. "하마터면 속을 뻔하였다." 곧 그 도적의 무리를 다 태워 멸하였다. 그러므로 그곳을 야키즈(燒津)라 이름하였다.

또 사가무에 나아가 가즈사로 가려 하였다. 바다를 바라보고 큰소리로 말하였다. "이는 작은 바다일 뿐이다. 뛰어서도 건널 만하다."

이에 바다 가운데 이르매 사나운 바람이 홀연히 일어 왕의 배가 떠돌아 건널 수 없었다. 그때 왕을 따르는 첩이 있어 오토타치바나히메라 하니 호즈미씨 오시야마노스쿠네의 딸이었다. 왕에게 아뢰었다. "이제 바람이 일고 물결이 사나워 왕의 배가 가라앉으려 합니다. 이는 반드시 바다 신의 마음입니다. 바라건대 제 몸으로 왕의 목숨을 대신하여 바다에 들겠습니다."

말이 끝나매 이에 물결을 헤치고 들어갔다. 사나운 바람이 곧 그치고 배가 언덕에 닿을 수 있었다. 그러므로 그때 사람들이 그 바다를 하시리미즈(馳水)라 이름하였다.

이에 야마토타케루노미코토가 곧 가즈사에서 돌아 무쓰국에 들어갔다. 그때 큰 거울을 왕의 배에 걸고 바닷길로 아시우라를 돌아 다마노우라를 가로질러 에미시의 지경에 이르렀다. 에미시의 도적 우두머리 시마쓰카미와 구니쓰카미들이

협주 2

王謂日本武尊也。

왕은 야마토타케루노미코토를 이른다.

一云。王所佩釼叢雲自抽之薙攘王之傍草。因是得免。故號其釼曰草薙也。叢雲。此云茂羅玖毛。

일설에는 이러하다. 왕이 찬 칼 무라쿠모가 절로 뽑혀 왕의 곁 풀을 베어 없앴다. 이로 인하여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므로 그 칼을 구사나기(草薙)라 이름하였다. 총운(叢雲)은 무라쿠모라 읽는다.

42에미시가 항복하고 사카오리노미야의 노래

屯於竹水門而欲距。然遥視王船。豫怖其威勢。而心裏知之不可勝。悉捨弓矢。望拜之曰。仰視君容。秀於人倫。若神之乎。欲知姓名。王對之曰。吾是現人神之子也。於是。蝦夷等悉慄。則■裳披浪。自扶王船而着岸。仍面縛服罪。故免其罪。因以俘其首帥。而令從身也。蝦夷既平。自日高見國還之。西南歴常陸。至甲斐國。居于酒折宮。時擧燭而進食。是夜。以歌之問侍者曰。珥比麼利。菟玖波■須擬■。異玖用加禰菟流。諸侍者不能答言。時有秉燭者。續王歌之末而歌曰。伽餓奈倍■。用珥波虚虚能用。比珥波苔■伽■。即美秉燭人之聰而敦賞。則居是宮。以靭部賜大伴連之遠祖武日也。於是。日本武尊曰。蝦夷凶首。咸伏其辜。唯信濃國。越國。頗未從化。則自甲斐北轉。歴武藏。上野。西逮于碓日坂。時日本武尊毎有顧弟橘媛之情。故登碓日嶺而東南望之。三歎曰。吾嬬者耶故因號山東諸國。

다케노미나토에 진 쳐 막으려 하였다. 그러나 멀리 왕의 배를 보고 미리 그 위세를 두려워하여 마음속으로 이길 수 없음을 알았다. 활과 화살을 다 버리고 우러러 절하며 말하였다. "임금의 모습을 우러러보니 사람 무리에서 빼어나십니다. 혹 신이십니까. 성과 이름을 알고자 합니다."

왕이 답하였다. "나는 현인신(現人神)의 아들이다."

이에 에미시들이 다 떨었다. 곧 치마를 □하고 물결을 헤쳐 스스로 왕의 배를 붙들어 언덕에 대었다. 이어 얼굴을 묶어 죄에 복종하였다. 그러므로 그 죄를 면하여 주었다. 이로 인하여 그 우두머리를 사로잡아 몸을 따르게 하였다.

에미시가 이미 평정되매 히타카미국에서 돌아왔다. 서남으로 히타치를 지나 가이국에 이르러 사카오리노미야에 머물렀다. 그때 촛불을 들고 밥을 먹었다. 이날 밤 노래로 모신 이에게 물었다.

「니히바리 쓰쿠바오스기테 이쿠요카네쓰루(珥比麼利 菟玖波■須擬■ 異玖用加禰菟流)」

여러 모신 이가 답하지 못하였다. 그때 촛불 잡은 이가 있어 왕의 노래 끝을 이어 노래하였다.

「가가나베테 요니와고코노요 히니와도오카오(伽餓奈倍■ 用珥波虚虚能用 比珥波苔■伽■)」

— 소리를 적은 것이라 뜻으로 옮기지 않는다.

곧 촛불 잡은 이의 총명함을 아름다이 여겨 두터이 상 주었다. 곧 이 궁에 머물면서 유키베를 오호토모노무라지의 먼 조상 다케히에게 주었다.

이에 야마토타케루노미코토가 말하였다. "에미시의 흉한 우두머리가 다 그 죄에 엎드렸다. 다만 시나노국과 고시국이 자못 아직 교화에 따르지 않았다."

곧 가이에서 북으로 돌아 무사시와 고즈케를 지나 서쪽으로 우스히 고개에 이르렀다. 그때 야마토타케루노미코토가 늘 오토타치바나히메를 돌아보는 마음이 있었다. 그러므로 우스히 재에 올라 동남을 바라보며 세 번 탄식하고 말하였다. "아즈마와야(내 아내여)." 그러므로 이로 인하여 산 동쪽 여러 나라를

협주 1

嬬。此云菟摩。

처(嬬)는 쓰마라 읽는다.

43시나노의 흰 사슴과 이부키의 큰 뱀

曰吾嬬國也。於是。分道。遣吉備武彦於越國。令鑒察其地形嶮易。及人民順不。則日本武尊進入信濃。是國也山高谷幽。翠嶺萬重。人倚杖難升。巖嶮磴紆。長峯數千。馬頓轡而不進。然日本武尊披烟凌霧遥徑大山。既■于峯而飢之。食於山中。山神令苦王。以化白鹿立於王前。王異之。以一箇蒜彈白鹿。則中眼而殺之。爰王忽失道。不知所出。時白狗自來。有導王之状。隨狗而行之。得出美濃。吉備武彦自越出而遇之。先是。度信濃坂者。多得神氣以■臥。但從殺白鹿之後。踰是山者。嚼蒜塗人及牛馬。自不中神氣也。日本武尊更還於尾張。即娶尾張氏之女宮簀媛。而淹留踰月。於是聞近江膽吹山有荒神。即解釼置於宮簀媛家。而徒行之。至膽吹山山神化大蛇當道。爰日本武尊不知主神化蛇之謂。是大蛇必荒神之使也。既得殺主神。其使者豈足求乎。因跨蛇猶行。時山神之興雲零氷。

아즈마국(吾嬬國)이라 이름하였다.

이에 길을 나누어 기비노타케히코를 고시국에 보내어 그 땅 모양의 험하고 편함과 백성이 따르는지 아닌지를 살피게 하였다.

곧 야마토타케루노미코토가 시나노에 들어갔다. 이 나라는 산이 높고 골이 깊으며 푸른 재가 만 겹이라 사람이 지팡이에 기대어도 오르기 어려웠다. 바위가 험하고 돌길이 굽이져 긴 봉우리가 수천이라 말이 재갈을 물고 나아가지 못하였다.

그러나 야마토타케루노미코토가 연기를 헤치고 안개를 무릅써 아득히 큰 산을 지났다. 이미 봉우리에 □하여 주리매 산속에서 밥을 먹었다.

산신이 왕을 괴롭게 하려고 흰 사슴으로 변하여 왕 앞에 섰다. 왕이 이상히 여겨 마늘 한 낱으로 흰 사슴을 쳤다. 곧 눈에 맞아 죽었다.

이에 왕이 홀연히 길을 잃어 나갈 데를 알지 못하였다. 그때 흰 개가 절로 와서 왕을 이끄는 모양이 있었다. 개를 따라가서 미노로 나올 수 있었다. 기비노타케히코가 고시에서 나와 만났다.

이보다 앞서 시나노 고개를 넘는 이는 흔히 신의 기운을 받아 병들어 누웠다. 다만 흰 사슴을 죽인 뒤로는 이 산을 넘는 이가 마늘을 씹어 사람과 소와 말에 바르면 절로 신의 기운에 맞지 않았다.

야마토타케루노미코토가 다시 오와리로 돌아와 곧 오와리씨의 딸 미야즈히메에게 장가들어 달을 넘겨 머물렀다.

이에 오미의 이부키산에 사나운 신이 있다는 말을 듣고 곧 칼을 풀어 미야즈히메의 집에 두고 걸어서 갔다. 이부키산에 이르매 산신이 큰 뱀으로 변하여 길을 막았다.

이에 야마토타케루노미코토가 주신이 뱀으로 변한 줄 알지 못하고 말하였다. "이 큰 뱀은 반드시 사나운 신의 심부름꾼이다. 이미 주신을 죽일 수 있는데 그 심부름꾼을 어찌 찾을 것이 있겠는가." 이로 인하여 뱀을 타넘고 그대로 갔다.

그때 산신이 구름을 일으키고 우박을 내려

44노보노에서 죽다

峯霧谷■。無復可行之路。乃捷遑不知其所跋渉。然凌霧強行。方僅得出。猶失意如醉。因居山下之泉側。乃飲其水丐醒之。故號其泉曰居醒泉也。日本武尊於是始有痛身。然稍起之還於尾張。爰不入宮簀媛之家。便移伊勢而到尾津。昔日本武尊向東之歳。停尾津濱而進食。是時解一釼置於松下。遂忘而去。今至於此。是釼猶存。故歌曰。烏波利珥。多陀珥霧伽幣流。比苔菟麻菟。阿波例比等菟麻菟。比苔珥阿利勢麼。岐農岐勢摩之■。多知波開摩之■。逮于能褒野而痛甚之。則以所俘蝦夷等獻於神宮。因遣吉備武彦。奏之於天皇曰。臣受命天朝。達征東夷。則被神恩。頼皇威。而叛者伏罪。荒神自調。是以。卷甲■戈。■悌還之。冀曷曰曷時。復命天朝。然天命忽至。隙駟難停。是以獨臥曠野。無誰語之。豈惜身亡。唯愁不面。既而崩于能褒野。時年卅。天皇聞之。寢不安席。食不甘味。晝夜喉咽。泣悲■■。

봉우리에 안개가 끼고 골짜기가 □하여 다시 갈 길이 없었다. 이에 갈팡질팡하여 건너갈 바를 알지 못하였다. 그러나 안개를 무릅쓰고 억지로 나아가 겨우 벗어날 수 있었다.

오히려 정신을 잃어 술 취한 듯하였다. 이로 인하여 산 밑 샘가에 머물러 그 물을 마시고 깨어났다. 그러므로 그 샘을 이사메가이(居醒泉)라 이름하였다.

야마토타케루노미코토가 이에 비로소 몸이 아프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겨우 일어나 오와리로 돌아왔다. 이에 미야즈히메의 집에 들지 않고 곧 이세로 옮겨 오쓰에 이르렀다.

옛적에 야마토타케루노미코토가 동쪽으로 향하던 해에 오쓰 갯가에 머물러 밥을 먹었다. 이때 칼 하나를 풀어 소나무 밑에 두고 마침내 잊고 갔는데, 이제 여기 이르니 이 칼이 아직 있었다. 그러므로 노래하였다.

「오와리니 다다니무카헤루 히토쓰마쓰 아하레히토쓰마쓰 히토니아리세바 기누키세마시오 다치하케마시오(烏波利珥 多陀珥霧伽幣流 比苔菟麻菟 阿波例比等菟麻菟 比苔珥阿利勢麼 岐農岐勢摩之■ 多知波開摩之■)」 — 소리를 적은 것이라 뜻으로 옮기지 않는다.

노보노에 이르러 아픔이 심해졌다. 곧 사로잡은 에미시들을 신궁에 바쳤다. 이어 기비노타케히코를 보내어 천황에게 아뢰었다.

"신이 명을 조정에서 받아 멀리 동이를 쳤습니다. 곧 신의 은혜를 입고 임금의 위엄에 힘입어 배반한 이가 죄에 엎드리고 사나운 신이 절로 다스려졌습니다. 이 때문에 갑옷을 거두고 창을 □하여 □하게 돌아가려 하였습니다. 바라기는 어느 날 어느 때에 다시 조정에 명을 아뢸까 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늘의 명이 홀연히 이르니 틈 사이로 지나는 네 마리 말을 멈추기 어렵습니다. 이 때문에 홀로 빈 들에 누워 더불어 말할 이가 없습니다. 어찌 몸이 죽는 것을 아끼겠습니까. 다만 뵙지 못함을 근심할 뿐입니다."

이윽고 노보노에서 죽었다. 그때 나이 서른이었다.

천황이 이를 듣고 잠자리가 편치 않고 먹어도 맛이 달지 않으며 밤낮으로 목이 메어 울고 슬퍼 가슴을 쳤다.

45흰 새가 되어 날다

因以大歎之曰。我子小碓王。昔熊襲叛之日。未及總角。久煩征伐。既而恒在左右。補朕不及。然東夷騒動。勿使討者。忍愛以入賊境。一日之無不顧。是以朝夕進退。佇待還日。何禍兮。何罪兮。不意之間。倏亡我子。自今以後。與誰人之經綸鴻業耶。即詔羣卿命百寮。仍葬於伊勢國能褒野陵。時日本武尊化白鳥。從陵出之。指倭國而飛之。群臣等因以開其棺槻而視之。明衣空留而屍骨無之。於是。遺使者追尋白鳥。則停於倭琴彈原。仍於其處造陵焉。白鳥飛至河内。留舊市邑。亦其處作陵。故時人號是三陵曰白鳥陵。然遂高翔上天。徒葬衣冠。因欲録功名。即定武部也。

이로 인하여 크게 탄식하였다. "내 아들 오우스노미코가 옛적 구마소가 배반하던 날에는 아직 더벅머리에 이르지도 않았는데 오래 정벌에 애썼다. 이윽고 늘 좌우에 있어 짐의 미치지 못함을 도왔다. 그러나 동이가 시끄러워 칠 이가 없으매 사랑을 참고 도적의 지경에 들여보냈다. 하루도 돌아보지 않은 날이 없었다. 이 때문에 아침저녁으로 나아가고 물러나며 돌아올 날을 기다렸다. 무슨 재앙인가, 무슨 죄인가. 뜻하지 않은 사이에 갑자기 내 아들을 잃었다. 이제부터 누구와 더불어 큰 업을 다스리겠는가."

곧 여러 대신에게 조를 내리고 온갖 벼슬아치에게 명하여 이세국 노보노 능에 장사 지냈다.

그때 야마토타케루노미코토가 흰 새로 변하여 능에서 나와 야마토국을 가리켜 날아갔다. 여러 신하가 이로 인하여 그 널을 열어 보니 빈 옷만 남고 주검과 뼈가 없었다.

이에 사자를 보내어 흰 새를 뒤쫓게 하니 곧 야마토의 고토비키하라에 머물렀다. 이어 그곳에 능을 만들었다. 흰 새가 날아 가와치에 이르러 후루이치 마을에 머물렀다. 또 그곳에 능을 만들었다. 그러므로 그때 사람들이 이 세 능을 시라토리노미사사기(白鳥陵)라 이름하였다.

그러나 마침내 높이 날아 하늘에 오르니 다만 옷과 갓을 장사 지냈다. 이로 인하여 공과 이름을 적고자 하여 곧 다케루베(武部)를 정하였다.

46자리에 오른 지 마흔세 해

是歳也。天皇踐祚四十三年焉。

이해는 천황이 자리에 오른 지 마흔세 해였다.

47다케우치노스쿠네가 잔치에 나오지 않다

五十一年春正月壬午朔戊子。招群卿而宴數日矣。時皇子稚足彦尊。武内宿禰不參赴于宴庭。天皇召之問其故。因以奏之曰。其宴樂之日。群卿百寮。必情在戯遊。不存國家。若有狂生而伺墻閤之隙乎。故侍門下備非常。時天皇謂之曰。灼然。則異寵焉。

오십일년 봄 정월 임오 초하루 무자일에 여러 대신을 불러 며칠을 잔치하였다. 그때 황자 와카타라시히코노미코토와 다케우치노스쿠네가 잔치 자리에 나오지 않았다.

천황이 불러 그 까닭을 물으니 이어 아뢰었다. "그 잔치하고 즐기는 날에는 여러 대신과 온갖 벼슬아치가 반드시 마음이 놀이에 있어 나라를 생각하지 않습니다. 혹 미친 자가 있어 담과 문의 빈틈을 엿볼까 합니다. 그러므로 문 아래 모시어 뜻하지 않은 일에 대비하였습니다."

그때 천황이 일렀다. "환하다." 곧 남달리 사랑하였다.

협주 1

灼然。此云以耶知擧。

작연(灼然)은 이야치코라 읽는다.

48황태자를 세우고 구사나기 칼을 아쓰타에 두다

秋八月己酉朔壬子。立稚足彦尊爲皇太子。是日命武内宿禰爲棟梁之臣。初日本武尊所佩草薙横刀。是今在尾張國年魚市郡熱田社也。於是所獻神宮蝦夷等。晝夜喧譁。出入無禮。時倭姫命曰。是蝦夷等不可近就於神宮。則進上於朝庭。仍令安置御諸山傍。未經幾時。悉伐神山樹。叫呼隣里。而脅人民。天皇聞之詔群卿曰。其置神山傍之蝦夷。是本有獸心。難住中國。故隨其情願。令班邦畿之外。是今播磨。讃岐。伊豫。安藝。阿波。凡五國佐伯部之祖也。初日本武尊娶兩道入姫皇女爲妃。生稻依別王。次足仲彦天皇。次布忍入姫命。次稚武王。其兄稻依別王。是犬上君。武部君。凡二族之始祖也。又妃吉備武彦之女。吉備穴戸武媛。生武卵王。與十城別王。其兄武卵王。是讃岐綾君之始祖也。弟十城別王。是伊豫別君之始祖也。次妃穗積氏忍山宿禰之女。弟橘媛生稚武彦王。

가을 팔월 기유 초하루 임자일에 와카타라시히코노미코토를 세워 황태자로 삼았다. 이날 다케우치노스쿠네에게 명하여 마룻대와 들보의 신하로 삼았다.

처음 야마토타케루노미코토가 찼던 구사나기 큰 칼은 이제 오와리국 아유치군 아쓰타 신사에 있다.

이에 신궁에 바친 에미시들이 밤낮으로 시끄럽게 떠들고 드나듦에 예가 없었다. 그때 야마토히메노미코토가 말하였다. "이 에미시들을 신궁에 가까이 두어서는 안 된다." 곧 조정에 올려 보냈다. 이어 미모로산 곁에 두게 하였다.

얼마 되지 않아 신령한 산의 나무를 다 베고 이웃 마을에 소리 질러 백성을 위협하였다. 천황이 이를 듣고 여러 대신에게 조를 내렸다. "저 신령한 산 곁에 둔 에미시는 본디 짐승의 마음이 있어 나라 안에 살기 어렵다. 그러므로 그 뜻이 원하는 대로 나라 안 지경 밖에 나누어 살게 하라." 이가 이제 하리마와 사누키와 이요와 아키와 아와 무릇 다섯 나라 사에키베의 조상이다.

처음 야마토타케루노미코토가 후타지노이리비메 황녀에게 장가들어 비로 삼아 이나요리와케노미코와 다음 다라시나카쓰히코천황과 다음 누노시이리비메노미코토와 다음 와카타케노미코를 낳았다. 그 형 이나요리와케노미코는 이누카미노키미와 다케베노키미 두 겨레의 시조다.

또 비 기비노타케히코의 딸 기비노아나토노타케히메가 다케카이코노미코와 도오키와케노미코를 낳았다. 그 형 다케카이코노미코는 사누키의 아야노키미의 시조요, 아우 도오키와케노미코는 이요노와케노키미의 시조다.

다음 비 호즈미씨 오시야마노스쿠네의 딸 오토타치바나히메가 와카타케히코노미코를 낳았다.

49황후가 죽다

五十二年夏五月甲辰朔丁未。皇后播磨太郎姫薨。

오십이년 여름 오월 갑진 초하루 정미일에 황후 하리마의 오이라쓰메가 죽었다.

50야사카이리비메를 황후로 삼다

秋七月癸卯朔己酉。立八坂入媛命爲皇后。

가을 칠월 계묘 초하루 기유일에 야사카이리비메노미코토를 세워 황후로 삼았다.

51아들이 평정한 나라를 돌아보려 하다

五十三年秋八月丁卯朔。天皇詔群曰。朕顧愛子。何日止乎。冀欲巡狩小碓王所平之國。

오십삼년 가을 팔월 정묘 초하루에 천황이 여러 신하에게 조를 내렸다. "짐이 사랑하는 아들을 그리워함이 어느 날에 그치겠는가. 바라건대 오우스노미코가 평정한 나라를 돌아보고자 한다."

52이세로 나아가다

是月。乘輿幸伊勢。轉入東海。

이달에 임금의 수레가 이세에 나아가 동해로 돌아 들어갔다.

53이와카무쓰카리가 대합을 회로 올리다

冬十月。至上總國。從海路渡淡水門。是時聞覺賀鳥之聲。欲見其鳥形。尋而出海中。仍得白蛤。於是。膳臣遠祖。名磐鹿六鴈。以蒲爲手繦。白蛤爲膾而進之。故美六鴈臣之功。而賜膳大伴部。

겨울 시월에 가즈사국에 이르러 바닷길로 아와노미나토를 건넜다. 이때 가쿠가라는 새의 소리를 듣고 그 새의 모습을 보고자 하여 찾아 바다 가운데 나갔다. 이어 흰 대합을 얻었다.

이에 가시와데노오미의 먼 조상으로 이름이 이와카무쓰카리라는 이가 부들로 어깨끈을 삼고 흰 대합으로 회를 만들어 올렸다. 그러므로 무쓰카리노오미의 공을 아름다이 여겨 가시와데노오토모베를 주었다.

54이세로 돌아오다

十二月。從東國還之居伊勢也。是謂綺宮。

십이월에 동국에서 돌아와 이세에 머물렀다. 이를 가니하타노미야라 한다.

55마키무쿠노미야로 돌아오다

五十四年秋九月辛卯朔己酉。自伊勢還於倭居纒向宮。

오십사년 가을 구월 신묘 초하루 기유일에 이세에서 야마토로 돌아와 마키무쿠노미야에 머물렀다.

56히코사시마노미코가 길에서 죽다

五十五年春二月戊子朔壬辰。以彦狹嶋王拜東山道十五國都督。是豐城命之孫也。然到春日穴咋邑。臥病而薨之。是時。東國百姓悲其王不至。竊盜王尸葬於上野國。

오십오년 봄 이월 무자 초하루 임진일에 히코사시마노미코를 도산도 열다섯 나라의 도독으로 삼았다. 이가 도요키노미코토의 손자다.

그러나 가스가의 아나쿠이 마을에 이르러 병들어 죽었다. 이때 동국 백성이 그 왕이 이르지 못함을 슬퍼하여 몰래 왕의 주검을 훔쳐 고즈케국에 장사 지냈다.

57미모로와케노미코가 에미시를 다스리다

五十六年秋八月。詔御諸別王曰。汝父彦狹嶋王。不得向任所而早薨。故汝専領東國。是以御諸別王承天皇命。且欲成父業。則行治之早得善政。時蝦夷騷動。即擧兵而撃焉。時蝦夷首帥。足振邊。大羽振邊。遠津闇男邊等。叩頭而來之。頓首受罪。盡獻其地。因以免降者而誅不服。是以東久之無事焉。由是其子孫於今有東國。

오십육년 가을 팔월에 미모로와케노미코에게 조를 내렸다. "네 아비 히코사시마노미코가 맡은 곳에 가지 못하고 일찍 죽었다. 그러므로 네가 오로지 동국을 다스려라."

이로써 미모로와케노미코가 천황의 명을 받들고 또 아비의 업을 이루고자 하여 곧 가서 다스려 일찍 좋은 정사를 얻었다.

그때 에미시가 시끄러이 움직이매 곧 군사를 들어 쳤다. 그때 에미시의 우두머리 아시후리베와 오하후리베와 도오쓰쿠라오베들이 머리를 조아리고 와서 이마를 땅에 대고 죄를 받으며 그 땅을 다 바쳤다. 이로 인하여 항복한 이는 놓아주고 복종하지 않는 이는 베었다. 이 때문에 동쪽이 오래 일이 없었다. 이로 말미암아 그 자손이 이제도 동국에 있다.

58사카테 못

五十七年秋九月。造坂手池。即竹蒔其堤上。

오십칠년 가을 구월에 사카테 못(坂手池)을 만들었다. 곧 그 둑 위에 대를 심었다.

59다베노미야케

冬十月。令諸國興田部屯倉。

겨울 시월에 여러 나라에 명하여 다베(田部)와 미야케(屯倉)를 일으켰다.

60다카아나호노미야

五十八年春二月辛丑朔辛亥。幸近江國。居志賀三歳。是謂高穴穗宮。

오십팔년 봄 이월 신축 초하루 신해일에 오미국에 나아가 시가에 세 해를 머물렀다. 이를 다카아나호노미야(高穴穗宮)라 한다.

61백여섯에 죽다

六十年冬十一月乙酉朔辛卯。天皇崩於高穴穗宮。時年一百六歳。

육십년 겨울 십일월 을유 초하루 신묘일에 천황이 다카아나호노미야에서 죽었다. 그때 나이 백여섯 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