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공황후神功皇后
1신공황후
氣長足姬尊、稚日本根子彦大日々天皇之曾孫、氣長宿禰王之女也。母曰葛城高顙媛。足仲彦天皇二年、立爲皇后。幼而聰明叡智。貌容壯麗。父王異焉。
오키나가타라시히메노미코토(氣長足姬尊)는 와카야마토네코히코오히히천황의 증손이요 오키나가노스쿠네노미코의 딸이다. 어머니는 가즈라키노타카누카히메라 한다. 다라시나카쓰히코천황 이년에 황후로 세워졌다. 어려서 총명하고 슬기로우며 얼굴과 모습이 씩씩하고 아름다워 아버지 왕이 이상히 여겼다.
2재궁을 짓다
九年春二月、足仲彦天皇崩於筑紫橿日宮。時皇后傷天皇不從神教而早崩、以爲、知所崇之神、欲求財寶國。是以、命群臣及百寮、以解罪改過、更造齋宮於小山田邑。
구년 봄 이월에 다라시나카쓰히코천황이 쓰쿠시의 가시히노미야에서 죽었다. 그때 황후가 천황이 신의 가르침을 좇지 않아 일찍 죽은 것을 마음 아파하고, 받들어야 할 신을 알아 보배의 나라를 구하고자 하였다. 이 때문에 여러 신하와 온갖 벼슬아치에게 명하여 죄를 풀고 허물을 고치게 하고, 다시 오야마다 마을에 재궁을 지었다.
3신의 이름을 묻다
三月壬申朔、皇后選吉日、入齋宮、親爲神主。則命武內宿禰令撫琴。喚中臣烏賊津使主、爲審神者。因以千繒高繒、置琴頭尾、而請曰、先日教天皇者誰神也。願欲知其名。逮于七日七夜、乃答曰、神風伊勢國之百傳度逢縣之拆鈴五十鈴宮所居神、名撞賢木嚴之御魂天疎向津媛命焉。亦問之、除是神復有神乎。答曰、幡荻穗出吾也、於尾田吾田節之淡郡所居神之有也。問、亦有耶。答曰、於天事代於虛事代玉籤入彦嚴之事代主神有之也。問、亦有耶。答曰、有無之不知焉。於是、審神者曰、今不答而更後有言乎。則對曰、於日向國橘小門之水底所居、而水葉稚之出居神、名表筒男・中筒男・底筒男神之有也。問、亦有耶。答曰、有無之不知焉。遂不言且有神矣。時得神語、隨教而祭。然後、遣吉備臣祖鴨別、令擊熊襲國。未經浹辰、而自服焉。且荷持田村有羽白熊鷲者。其爲人强健。亦身有翼、能飛以高翔。是以、不從皇命。毎略盜人民。
삼월 임신 초하루에 황후가 좋은 날을 가려 재궁에 들어가 몸소 신주가 되었다. 곧 다케우치노스쿠네에게 명하여 거문고를 타게 하고, 나카토미노이카쓰노오미를 불러 사니와(審神者)로 삼았다. 이어 천 필 높은 필의 비단을 거문고 머리와 꼬리에 놓고 청하였다.
"지난날 천황에게 가르친 이는 어느 신입니까. 바라건대 그 이름을 알고자 합니다."
이레 낮 이레 밤에 이르러 이에 답하였다. "신령한 바람의 이세국, 백 번 전하는 와타라이현의 사쿠스즈 이스즈노미야에 사는 신이니 이름은 쓰키사카키이쓰노미타마아마사카루무카쓰히메노미코토다."
또 물었다. "이 신 말고 다시 신이 있습니까."
답하였다. "깃발 억새 이삭이 나오듯 나오는 나다. 오다의 아가타후시의 아와 고을에 사는 신이 있다."
물었다. "또 있습니까."
답하였다. "하늘 일을 대신하고 빈 일을 대신하는 다마쿠시이리비코이쓰노코토시로누시노카미가 있다."
물었다. "또 있습니까."
답하였다. "있는지 없는지 알지 못한다."
이에 사니와가 말하였다. "이제 답하지 않고 뒤에 다시 말할 것이 있습니까."
곧 대답하였다. "히무카국 다치바나의 오도의 물 밑에 살며 물풀이 어린 듯 나와 있는 신이 있으니 이름은 우와쓰쓰노오·나카쓰쓰노오·소코쓰쓰노오의 신이다."
물었다. "또 있습니까."
답하였다. "있는지 없는지 알지 못한다." 마침내 다시 신이 있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때 신의 말을 얻어 가르침대로 제사하였다. 그런 뒤에 기비노오미의 조상 가모와케를 보내어 구마소국을 치게 하였다. 열이틀이 지나지 않아 절로 복종하였다.
또 노토리타 마을에 하시로쿠마와시라는 이가 있었다. 그 사람됨이 굳세고 힘세며 또 몸에 날개가 있어 능히 날아 높이 솟았다. 이 때문에 임금의 명을 좇지 않고 늘 백성을 노략하고 훔쳤다.
협주 1
荷持、此云能登利。
하지(荷持)는 노토리라 읽는다.
4구마와시와 다부라쓰히메를 치다
戊子、皇后欲擊熊鷲、而自橿日宮遷于松峽宮。時飄風忽起、御笠墮風。故時人號其處曰御笠也。辛卯、至層増岐野、卽舉兵擊羽白熊鷲而滅之。謂左右曰、取得熊鷲。我心則安。故號其處曰安也。丙申、轉至山門縣、則誅土蜘蛛田油津媛。時田油津媛之兄夏羽、興軍而迎來。然聞其妹被誅而逃之。
무자일에 황후가 구마와시를 치려고 가시히노미야에서 마쓰오노미야로 옮겼다. 그때 회오리바람이 홀연히 일어 쓰신 삿갓이 바람에 떨어졌다. 그러므로 그때 사람들이 그곳을 미카사(御笠)라 이름하였다.
신묘일에 소소키노에 이르러 곧 군사를 들어 하시로쿠마와시를 쳐 멸하였다. 좌우에게 일렀다. "구마와시를 잡았다. 내 마음이 곧 편안하다." 그러므로 그곳을 야스(安)라 이름하였다.
병신일에 옮겨 야마토현에 이르러 곧 쓰치구모 다부라쓰히메를 베었다. 그때 다부라쓰히메의 오라비 나쓰하가 군사를 일으켜 맞으러 왔다. 그러나 그 누이가 베임을 당하였다는 말을 듣고 달아났다.
5낚시와 갈라진 머리
夏四月壬寅朔甲辰、北到火前國松浦縣、而進食於玉嶋里小河之側。於是、皇后勾針爲鉤、取粒爲餌、抽取裳縷爲緡、登河中石上、而投鉤祈之曰、朕西欲求財國。若有成事者、河魚飲鉤。因以舉竿、乃獲細鱗魚。時皇后曰、希見物也。故時人號其處、曰梅豆羅國。今謂松浦訛焉。是以、其國女人、毎當四月上旬、以鉤投河中、捕年魚、於今不絶。唯男夫雖釣、以不能獲魚。既而皇后、則識神教有驗、更祭祀神祗、躬欲西征。爰定神田而佃之。時引儺河水、欲潤神田、而掘溝。及于迹驚岡、大磐塞之、不得穿溝。皇后召武內宿禰、捧劒鏡令禱祈神祗、而求通溝。則當時、雷電霹靂、蹴裂其磐、令通水。故時人號其溝曰裂田溝也。皇后還詣橿日浦、解髮臨海曰、吾被神祗之教、頼皇祖之靈、浮渉滄海、躬欲西征。是以、令頭滌海水。若有驗者、髮自分爲兩。卽入海洗之、髮自分也。皇后便結分髮、而爲髻。
여름 사월 임인 초하루 갑진일에 북으로 히젠국 마쓰라현에 이르러 다마시마 마을의 작은 냇가에서 밥을 먹었다.
이에 황후가 바늘을 굽혀 낚시를 만들고 밥알을 미끼로 삼고 치마 올을 뽑아 낚싯줄로 삼았다. 냇물 가운데 돌 위에 올라 낚시를 던지고 빌었다. "짐이 서쪽으로 보배의 나라를 구하고자 한다. 만약 일이 이루어질 것이면 냇물고기가 낚시를 물어라."
이어 낚싯대를 드니 곧 은어를 얻었다. 그때 황후가 말하였다. "드물게 보는 물건이다." 그러므로 그때 사람들이 그곳을 메즈라국이라 이름하였다. 이제 마쓰라라 이르는 것은 잘못 옮겨진 것이다.
이 때문에 그 나라 여인이 사월 초순이 될 때마다 낚시를 냇물에 던져 은어를 잡는 것이 이제도 끊이지 않는다. 다만 사내는 낚아도 고기를 얻지 못한다.
이윽고 황후가 곧 신의 가르침에 증험이 있음을 알고 다시 신들에게 제사하며 몸소 서쪽을 치고자 하였다. 이에 신전(神田)을 정하여 갈았다. 그때 나 냇물을 끌어 신전을 적시려고 도랑을 팠다. 도도로키 언덕에 이르러 큰 바위가 막아 도랑을 뚫지 못하였다.
황후가 다케우치노스쿠네를 불러 칼과 거울을 받들고 신들에게 빌게 하여 도랑이 통하기를 구하였다. 곧 그때 우레와 번개가 벼락 쳐 그 바위를 차서 갈라 물을 통하게 하였다. 그러므로 그때 사람들이 그 도랑을 사쿠타의 도랑(裂田溝)이라 이름하였다.
황후가 돌아와 가시히 갯가에 나아가 머리를 풀고 바다에 임하여 말하였다. "내가 신들의 가르침을 입고 황조의 신령에 힘입어 푸른 바다를 건너 몸소 서쪽을 치고자 한다. 이 때문에 머리를 바닷물에 씻는다. 만약 증험이 있으면 머리가 절로 갈라져 둘이 되어라."
곧 바다에 들어가 씻으니 머리가 절로 갈라졌다. 황후가 곧 갈라진 머리를 묶어 상투를 지었다.
협주 1
希見、此云梅豆邏志。
희견(希見)은 메즈라시라 읽는다.
6여러 신하에게 뜻을 밝히다
因以、謂群臣曰、夫興師動衆、國之大事。安危成敗、必在於斯。今有所征伐。以事付群臣。若事不成者、罪有於群臣。是甚傷焉。吾婦女之、加以不肖。然暫假男貌、强起雄略。上蒙神祗之靈、下藉群臣之助、振兵甲而度嶮浪、整艫船以求財土。若事就者、群臣共有功。事不就者、吾獨有罪。既有此意。其共議之。群臣皆曰、皇后爲天下、計所以安宗廟社稷。且罪不及于臣下。頓首奉詔。
이로 인하여 여러 신하에게 일렀다.
"무릇 군사를 일으키고 무리를 움직이는 것은 나라의 큰일이다. 편안함과 위태로움과 이루고 그르침이 반드시 여기에 달렸다. 이제 칠 곳이 있어 일을 여러 신하에게 맡긴다. 만약 일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죄가 여러 신하에게 있게 되니 이는 몹시 마음 아픈 일이다.
나는 여자요 게다가 어리석다. 그러나 잠시 사내의 모습을 빌려 억지로 씩씩한 꾀를 일으킨다. 위로 신들의 신령을 입고 아래로 여러 신하의 도움을 빌려, 군사와 갑옷을 떨쳐 험한 물결을 건너고 배를 갖추어 재물의 땅을 구하려 한다. 만약 일이 이루어지면 여러 신하가 함께 공이 있고, 일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나 홀로 죄가 있다. 이미 이런 뜻이 있으니 함께 의논하라."
여러 신하가 다 말하였다. "황후께서 천하를 위하여 종묘와 사직을 편안히 할 바를 꾀하십니다. 또 죄가 신하에게 미치지 않는다 하시니 머리를 조아려 조를 받듭니다."
7배를 모으고 군령을 내리다
秋九月庚午朔己卯、令諸國、集船舶練兵甲。時軍卒難集。皇后曰、必神心焉、則立大三輪社、以奉刀矛矣。軍衆自聚。於是、使吾瓮海人烏摩呂、出於西海、令察有國耶。還曰、國不見也。又遣磯鹿海人名草而令視。數日還之曰、西北有山。帶雲横絚。蓋有國乎。爰卜吉日、而臨發有日。時皇后親執斧鉞、令三軍曰、金鼓無節、旌旗錯亂、則士卒不整。貪財多欲、懷私內顧、必爲敵所虜。其敵少而勿輕。敵强而無屈。則姧暴勿聽。自服勿殺。遂戰勝者必有賞。背走者自有罪。既而神有誨曰、和魂服王身而守壽命。荒魂爲先鋒而導師船。卽得神教、而拜禮之。因以依網吾彦男垂見爲祭神主。于時也、適當皇后之開胎。皇后則取石插腰、而祈之曰、事竟還日、産於茲土。其石今在于伊都縣道邊。既而則撝荒魂、爲軍先鋒、請和魂、爲王船鎭。
가을 구월 경오 초하루 기묘일에 여러 나라에 명하여 배를 모으고 군사와 갑옷을 익히게 하였다. 그때 군졸이 모이기 어려웠다. 황후가 말하였다. "반드시 신의 마음이다." 곧 오미와 신사를 세우고 칼과 창을 바쳤다. 군사가 절로 모였다.
이에 아헤의 어부 오마로를 시켜 서쪽 바다에 나가 나라가 있는지 살피게 하였다. 돌아와 말하였다. "나라가 보이지 않습니다." 또 시카의 어부 나구사를 보내어 보게 하였다. 며칠 만에 돌아와 말하였다. "서북에 산이 있고 구름이 띠처럼 가로 걸렸습니다. 아마 나라가 있는 듯합니다."
이에 좋은 날을 점쳐 떠날 날이 다가왔다. 그때 황후가 몸소 도끼를 잡고 삼군에 명하였다.
"징과 북에 절도가 없고 깃발이 어지러우면 군사가 가지런하지 못하다. 재물을 탐하고 욕심이 많으며 사사로움을 품고 안을 돌아보면 반드시 적에게 사로잡힌다. 적이 적어도 가벼이 여기지 말고 적이 강해도 굽히지 마라. 간사하고 사나운 짓은 들어주지 말고, 스스로 복종하는 이는 죽이지 마라. 마침내 싸워 이긴 이에게는 반드시 상이 있고, 등지고 달아나는 이에게는 절로 죄가 있다."
이윽고 신이 가르쳤다. "니기미타마(和魂)는 왕의 몸에 붙어 목숨을 지키고, 아라미타마(荒魂)는 선봉이 되어 군선을 이끌리라."
곧 신의 가르침을 얻고 절하였다. 이로 인하여 요사미노아비코오타루미를 제사하는 신주로 삼았다.
이때 마침 황후가 몸을 풀 때였다. 황후가 곧 돌을 가져 허리에 꽂고 빌었다. "일이 끝나 돌아오는 날에 이 땅에서 낳으리라." 그 돌이 이제 이토현 길가에 있다.
이윽고 곧 아라미타마를 지휘하여 군사의 선봉으로 삼고 니기미타마를 청하여 왕의 배를 지키게 하였다.
협주 1
和魂、此云珥岐瀰多摩。荒魂、此云阿邏瀰多摩。
화혼(和魂)은 니기미타마라 읽는다. 황혼(荒魂)은 아라미타마라 읽는다.
8신라 왕이 항복하다
冬十月己亥朔辛丑、從和珥津發之。時飛廉起風、陽侯舉浪、海中大魚、悉浮扶船。則大風順吹、帆舶隨波。不勞㯭楫、便到新羅。時隨船潮浪、遠逮國中。卽知、天神地祇悉助歟。新羅王、於是、戰々慄々厝身無所。則集諸人曰、新羅之建國以來、未嘗聞海水凌國。若天運盡之、國爲海乎。是言未訖間、船師滿海、旌旗耀日。鼓吹起聲、山川悉振。新羅王遙望以爲、非常之兵、將滅己國。讋焉失志。乃今醒之曰、吾聞、東有神國。謂日本。亦有聖王。謂天皇。必其國之神兵也。豈可舉兵以距乎、卽素旆而自服。素組以面縛。封圖籍、降於王船之前。因以、叩頭之曰、從今以後、長與乾坤、伏爲飼部。其不乾船柂、而春秋獻馬梳及馬鞭。復不煩海遠、以毎年貢男女之調。則重誓之曰、非東日更出西、且除阿利那禮河返以之逆流、及河石昇爲星辰、而殊闕春秋之朝、怠廢梳鞭之貢、天神地祇、共討焉。時或曰、欲誅新羅王。
겨울 시월 기해 초하루 신축일에 와니 나루에서 떠났다. 그때 바람 귀신이 바람을 일으키고 물결 귀신이 물결을 들어 바다 가운데 큰 고기가 다 떠올라 배를 붙들었다. 곧 큰바람이 뒤에서 불고 돛단배가 물결을 따라 노를 젓는 수고 없이 곧 신라에 이르렀다. 그때 배를 따른 조수 물결이 멀리 나라 안까지 미쳤다. 곧 하늘 신과 땅 신이 다 도운 줄 알았다.
신라 왕이 이에 벌벌 떨며 몸 둘 곳이 없었다. 곧 여러 사람을 모아 말하였다. "신라가 나라를 세운 이래로 아직 바닷물이 나라를 넘었다는 말을 듣지 못하였다. 혹 하늘의 운수가 다하여 나라가 바다가 되는 것인가."
이 말이 끝나기 전에 배와 군사가 바다에 가득하고 깃발이 해에 빛났다. 북과 피리가 소리를 일으키니 산과 내가 다 흔들렸다.
신라 왕이 멀리 바라보고 예사롭지 않은 군사가 제 나라를 멸하려 한다 여겨 두려워 정신을 잃었다. 이에 이제야 깨어 말하였다. "내가 듣건대 동쪽에 신의 나라가 있어 일본이라 하고, 또 성스러운 임금이 있어 천황이라 한다 하였다. 반드시 그 나라의 신령한 군사다. 어찌 군사를 들어 막겠는가."
곧 흰 기를 들고 스스로 복종하였다. 흰 끈으로 얼굴을 묶고 지도와 호적을 봉하여 왕의 배 앞에 항복하였다. 이어 머리를 조아리며 말하였다.
"이제부터 길이 하늘땅과 더불어 엎드려 말 먹이는 부(飼部)가 되겠습니다. 배의 키를 마르지 않게 하여 봄가을로 말빗과 말채찍을 바치겠습니다. 또 바다가 멀다 하여 번거로워하지 않고 해마다 사내와 계집의 조(調)를 바치겠습니다."
곧 거듭 맹세하였다. "동쪽에서 뜨는 해가 다시 서쪽에서 뜨지 않는 한, 그리고 아리나레하(阿利那禮河)가 돌이켜 거꾸로 흐르고 냇돌이 올라 별이 되지 않는 한, 봄가을의 조회를 특별히 빠뜨리거나 빗과 채찍의 공물을 게을리 그친다면 하늘 신과 땅 신이 함께 치소서."
그때 어떤 이가 말하였다. "신라 왕을 베고자 합니다."
9삼한이라 하다
於是、皇后曰、初承神教、將授金銀之國。又號令三軍曰、勿殺自服。今既獲財國。亦人自降服。殺之不祥、乃解其縛爲飼部。遂入其國中、封重寶府庫、收圖籍文書。卽以皇后所杖矛、樹於新羅王門、爲後葉之印。故其矛今猶樹于新羅王之門也。爰新羅王波沙寐錦、卽以微叱己知波珍干岐爲質、仍齎金銀彩色及綾・羅・縑絹、載于八十艘船、令從官軍。是以、新羅王、常以八十船之調貢于日本國、其是之縁也。於是、高麗・百濟二國王、聞新羅收圖籍、降於日本國、密令伺其軍勢。則知不可勝、自來于營外、叩頭而款曰、從今以後、永稱西蕃、不絶朝貢。故因以、定內官家屯倉。是所謂之三韓也。皇后從新羅還之。
이에 황후가 말하였다. "처음 신의 가르침을 받을 때 금은의 나라를 주리라 하였다. 또 삼군에 호령하기를 '스스로 복종하는 이는 죽이지 마라' 하였다. 이제 이미 재물의 나라를 얻었고 또 사람이 스스로 항복하였으니 죽이는 것은 상서롭지 않다."
이에 그 묶은 것을 풀어 말 먹이는 부로 삼았다. 마침내 그 나라 안에 들어가 무거운 보배의 곳간을 봉하고 지도와 호적과 문서를 거두었다. 곧 황후가 짚던 창을 신라 왕의 문에 세워 뒷세상의 표로 삼았다. 그러므로 그 창이 이제도 신라 왕의 문에 서 있다.
이에 신라 왕 파사매금(波沙寐錦)이 곧 미질기지파진간기(微叱己知波珍干岐)를 볼모로 삼고, 이어 금은과 고운 빛깔과 능라와 비단을 여든 척 배에 실어 관군을 따르게 하였다. 이 때문에 신라 왕이 늘 여든 배의 조를 일본국에 바치는 것이 이 때문이다.
이에 고려와 백제 두 나라 왕이 신라가 지도와 호적을 거두어 일본국에 항복하였다는 말을 듣고 몰래 그 군세를 엿보게 하였다. 곧 이길 수 없음을 알고 스스로 진영 밖에 와서 머리를 조아리며 정성으로 말하였다. "이제부터 길이 서번(西蕃)이라 일컫고 조공을 끊지 않겠습니다."
그러므로 이로 인하여 내관가(內官家)의 둔창을 정하였다. 이것이 이른바 삼한(三韓)이다. 황후가 신라에서 돌아왔다.
협주 1
高麗
일본서기의 高麗는 왕건의 고려가 아니라 고구려를 가리킨다. 이 책은 원문 글자대로 「고려」로 옮긴다.
10우미에서 낳다
十二月戊戌朔辛亥、生譽田天皇於筑紫。故時人號其産處曰宇瀰也。
십이월 무술 초하루 신해일에 호무타천황을 쓰쿠시에서 낳았다. 그러므로 그때 사람들이 그 낳은 곳을 우미(宇瀰)라 이름하였다.
11다르게 전하는 이야기 하나
一云、足仲彦天皇、居筑紫橿日宮。是有神、託沙麼縣主祖內避高國避高松屋種、以誨天皇曰、御孫尊也、若欲尋寶國耶、將現授之。便復曰、琴將來以進于皇后。則隨神言、而皇后撫琴。於是、神託皇后、以誨之曰、今御孫尊所望之國、譬如鹿角。以無實國也。其今御孫尊所御之船及穴戸直踐立所貢之水田、名大田爲幣、能祭我者、則如美女之睩、而金銀多之、眼炎國以授御孫尊。時天皇對神曰、其雖神何謾語耶。何處將有國。且朕所乘船、既奉於神、朕乘曷船。然未知誰神。願欲知其名。時神稱其名曰、表筒雄・中筒雄・底筒雄、如是稱三神名、且重曰、吾名向匱男聞襲大歷五御魂速狹騰尊也。時天皇謂皇后曰、聞惡事之言坐婦人乎。何言速狹騰也。於是、神謂天皇曰、汝王如是不信、必不得其國。唯今皇后懷姙之子、蓋有獲歟。是夜天皇忽病發以崩之。然後、皇后隨神教而祭。則皇后爲男束裝、征新羅。時神留導之。由是、隨船浪之、遠及于新羅國中。於是、新羅王宇流助富利智干、參迎跪之、取王船卽叩頭曰、臣自今以後、於日本國所居神御子、爲內官家、無絶朝貢。
일설에는 이러하다. 다라시나카쓰히코천황이 쓰쿠시의 가시히노미야에 있었다. 이에 신이 있어 사바현주의 조상 우쓰히코쿠니히코마쓰야타네에게 실려 천황에게 가르쳤다.
"황손존이여, 만약 보배의 나라를 찾고자 하는가. 장차 나타내어 주리라." 곧 다시 말하였다. "거문고를 가져다 황후에게 올려라."
곧 신의 말대로 황후가 거문고를 탔다. 이에 신이 황후에게 실려 가르쳤다.
"이제 황손존이 바라는 나라는 비유하자면 사슴뿔과 같아 알맹이 없는 나라다. 그 이제 황손존이 타신 배와 아나토노아타이 후미타치가 바친 논으로 이름이 오타라 하는 것을 폐백으로 삼아 능히 나를 제사하면, 곧 아름다운 여인의 눈매 같고 금과 은이 많으며 눈에 빛나는 나라를 황손존에게 주리라."
그때 천황이 신에게 대답하였다. "그것이 비록 신이라 하나 어찌 속이는 말인가. 어디에 나라가 있겠는가. 또 짐이 탄 배를 이미 신에게 바쳤으니 짐은 어느 배를 타겠는가. 그러나 아직 어느 신인지 알지 못하겠다. 바라건대 그 이름을 알고자 한다."
그때 신이 그 이름을 일컬어 말하였다. "우와쓰쓰노오·나카쓰쓰노오·소코쓰쓰노오다." 이같이 세 신의 이름을 일컫고 또 거듭 말하였다. "내 이름은 무카히쓰오키키소오코고리이쓰노미타마하야사노보리노미코토다."
그때 천황이 황후에게 일렀다. "언짢은 말을 하는 것은 여인에게 앉은 것인가. 어찌 하야사노보리라 하는가."
이에 신이 천황에게 일렀다. "너 왕이 이같이 믿지 않으면 반드시 그 나라를 얻지 못한다. 다만 이제 황후가 밴 아이는 아마 얻음이 있으리라."
이날 밤 천황이 홀연히 병이 나서 죽었다.
그런 뒤에 황후가 신의 가르침을 좇아 제사하였다. 곧 황후가 사내로 차림하고 신라를 쳤다. 그때 신이 머물러 이끌었다. 이로 말미암아 배를 따른 물결이 멀리 신라국 안까지 미쳤다.
이에 신라 왕 우류조부리지간(宇流助富利智干)이 나아와 맞아 꿇고 왕의 배를 붙들며 곧 머리를 조아리고 말하였다. "신은 이제부터 일본국에 계신 신의 아드님께 내관가가 되어 조공을 끊지 않겠습니다."
12다르게 전하는 이야기 둘
一云、禽獲新羅王、詣于海邊、拔王臏筋、令匍匐石上。俄而斬之、埋沙中。則留一人、爲新羅宰而還之。然後、新羅王妻、不知埋夫屍之地、獨有誘宰之情。乃誂宰曰、汝當令識埋王屍之處、必敦報之。且吾爲汝妻。於是、宰信誘言、密告埋屍之處。則王妻與國人、共議之殺宰。更出王屍葬於他處。乃時取宰屍、埋于王墓土底、以舉王櫬、窆其上曰、尊卑次第、固當如此。於是、天皇聞之、重發震忿、大起軍衆、欲頓滅新羅。是以、軍船滿海而詣之。是時、新羅國人悉懼、不知所如。則相集共議之、殺王妻以謝罪。
일설에는 이러하다. 신라 왕을 사로잡아 바닷가에 나아가 왕의 무릎 힘줄을 뽑고 돌 위를 기게 하였다. 이윽고 베어 모래 속에 묻었다. 곧 한 사람을 남겨 신라의 재(宰)로 삼고 돌아왔다.
그런 뒤에 신라 왕의 아내가 지아비의 주검 묻은 곳을 알지 못하여 홀로 재를 꾈 마음이 있었다. 이에 재를 꾀어 말하였다. "네가 마땅히 왕의 주검 묻은 곳을 알게 해 주면 반드시 두터이 갚겠다. 또 내가 네 아내가 되겠다."
이에 재가 꾀는 말을 믿고 몰래 주검 묻은 곳을 알렸다. 곧 왕의 아내가 나라 사람과 함께 의논하여 재를 죽였다. 다시 왕의 주검을 꺼내어 다른 곳에 장사 지냈다. 이에 그때 재의 주검을 가져다 왕의 무덤 흙 밑에 묻고 왕의 널을 들어 그 위에 묻으며 말하였다. "높고 낮음의 차례가 본디 마땅히 이러하다."
이에 천황이 이를 듣고 거듭 크게 노하여 군사를 크게 일으켜 문득 신라를 멸하려 하였다. 이 때문에 군선이 바다에 가득하여 나아갔다. 이때 신라국 사람이 다 두려워하여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하였다. 곧 서로 모여 함께 의논하여 왕의 아내를 죽여 죄를 빌었다.
13아라미타마를 아나토에 모시다
於是、從軍神表筒男・中筒男・底筒男、三神誨皇后曰、我荒魂、令祭於穴門山田邑也。時穴門直之祖踐立・津守連之祖田裳見宿禰、啓于皇后曰、神欲居之地、必宜奉定。則以踐立、爲祭荒魂之神主。仍祠立於穴門山田邑。
이에 군사를 따른 신 우와쓰쓰노오·나카쓰쓰노오·소코쓰쓰노오 세 신이 황후에게 가르쳤다. "내 아라미타마를 아나토의 야마다 마을에서 제사하게 하라."
그때 아나토노아타이의 조상 후미타치와 쓰모리노무라지의 조상 다모미노스쿠네가 황후에게 아뢰었다. "신이 계시고자 하는 땅은 반드시 마땅히 받들어 정해야 합니다." 곧 후미타치를 아라미타마를 제사하는 신주로 삼고, 이어 아나토의 야마다 마을에 사당을 세웠다.
14가고사카노미코와 오시쿠마노미코가 꾀하다
爰伐新羅之明年春二月、皇后領群卿及百寮、移于穴門豐浦宮。卽收天皇之喪、從海路以向京。時麛坂王・忍熊王、聞天皇崩、亦皇后西征、幷皇子新生、而密謀之曰、今皇后有子。群臣皆從焉。必共議之立幼主。吾等何以兄從弟乎。乃詳爲天皇作陵、詣播磨興山陵於赤石。仍編船絚于淡路嶋、運其嶋石而造之。則毎人令取兵、而待皇后。於是、犬上君祖倉見別與吉師祖五十狹茅宿禰、共隸于麛坂王。因以、爲將軍令興東國兵。時麛坂王・忍熊王、共出菟餓野、而祈狩之曰、若有成事、必獲良獸也。二王各居假庪。赤猪忽出之登假庪。咋麛坂王而殺焉。軍士悉慄也。忍熊王謂倉見別曰、是事大怪也。於此不可待敵。則引軍更返、屯於住吉。時皇后聞忍熊王起師以待之、命武內宿禰、懷皇子、横出南海、泊于紀伊水門。皇后之船、直指難波。于時、皇后之船、𢌞於海中、以不能進。
신라를 친 이듬해 봄 이월에 황후가 여러 대신과 온갖 벼슬아치를 거느리고 아나토의 도유라노미야로 옮겼다. 곧 천황의 상을 거두어 바닷길로 서울로 향하였다.
그때 가고사카노미코와 오시쿠마노미코가 천황이 죽고 또 황후가 서쪽을 치고 아울러 황자가 새로 났다는 말을 듣고 몰래 꾀하였다. "이제 황후에게 아들이 있어 여러 신하가 다 그를 따를 것이다. 반드시 함께 의논하여 어린 임금을 세울 것이다. 우리가 어찌 형으로서 아우를 따르겠는가."
이에 거짓으로 천황의 능을 만든다 하고 하리마에 나아가 아카시에 산릉을 일으켰다. 이어 배를 엮어 아와지섬에 이어 대고 그 섬의 돌을 날라 지었다. 곧 사람마다 무기를 들게 하고 황후를 기다렸다.
이에 이누카미노키미의 조상 구라미와케와 기시의 조상 이사치노스쿠네가 함께 가고사카노미코에게 딸렸다. 이로 인하여 장군이 되어 동국의 군사를 일으키게 하였다.
그때 가고사카노미코와 오시쿠마노미코가 함께 도가노에 나가 우케히가리(祈狩)를 하며 빌었다. "만약 일이 이루어질 것이면 반드시 좋은 짐승을 얻으리라."
두 왕이 각각 임시 사냥막에 있었다. 붉은 멧돼지가 홀연히 나와 사냥막에 올라 가고사카노미코를 물어 죽였다. 군사가 다 떨었다.
오시쿠마노미코가 구라미와케에게 일렀다. "이 일이 크게 괴이하다. 여기서 적을 기다려서는 안 된다." 곧 군사를 끌고 다시 돌아 스미노에에 진 쳤다.
그때 황후가 오시쿠마노미코가 군사를 일으켜 기다린다는 말을 듣고 다케우치노스쿠네에게 명하여 황자를 안고 남쪽 바다로 옆으로 나가 기이의 미나토에 닿게 하였다. 황후의 배는 곧바로 나니와를 가리켰다. 이때 황후의 배가 바다 가운데서 맴돌아 나아가지 못하였다.
협주 1
祈狩、此云于氣比餓利。
기수(祈狩)는 우케히가리라 읽는다.
15신들이 자리를 정하고, 아즈나히의 죄
更還務古水門而卜之。於是、天照大神誨之曰、我之荒魂、不可近皇居。當居御心廣田國。卽以山背根子之女葉山媛令祭。亦稚日女尊誨之曰、吾欲居活田長峽國。因以海上五十狹茅令祭。亦事代主尊誨之曰、祠吾于御心長田國。則以葉山媛之弟長媛令祭。亦表筒男・中筒男・底筒男、三神誨之曰、吾和魂宜居大津渟中倉之長峽。便因看往來船。於是、隨神教以鎭坐焉。則平得度海。忍熊王復引軍退之、到菟道而軍之。皇后南詣紀伊國、會太子於日高。以議及群臣、遂欲攻忍熊王、更遷小竹宮。適是時也、晝暗如夜、已經多日。時人曰、常夜行之也。皇后問紀直祖豐耳曰、是怪何由矣。時有一老父曰、傳聞、如是怪謂阿豆那比之罪也。問何謂也。對曰、二社祝者、共合葬歟。因以、令推問巷里、有一人曰、小竹祝與天野祝、共爲善友。小竹祝逢病而死之。天野祝血泣曰、吾也生爲交友。何死之無同穴乎。則伏屍側而自死。仍合葬焉。蓋是之乎。乃開墓視之實也。故更改棺櫬、各異處以埋之。則日暉爃、日夜有別。
다시 무코의 미나토로 돌아와 점쳤다. 이에 아마테라스오미카미이 가르쳤다. "내 아라미타마는 황거에 가까이 두어서는 안 된다. 마땅히 미코코로의 히로타국에 살겠다." 곧 야마시로네코의 딸 하야마히메로 제사하게 하였다.
또 와카히루메노미코토가 가르쳤다. "나는 이쿠타의 나가오국에 살고자 한다." 이로 인하여 우나카미노이사치로 제사하게 하였다.
또 고토시로누시노미코토가 가르쳤다. "나를 미코코로의 나가타국에서 제사하라." 곧 하야마히메의 아우 나가히메로 제사하게 하였다.
또 우와쓰쓰노오·나카쓰쓰노오·소코쓰쓰노오 세 신이 가르쳤다. "내 니기미타마는 마땅히 오쓰의 누나쿠라의 나가오에 살겠다. 곧 오가는 배를 보겠다."
이에 신의 가르침대로 자리 잡아 모셨다. 곧 편안히 바다를 건널 수 있었다.
오시쿠마노미코가 다시 군사를 끌고 물러나 우지에 이르러 진 쳤다. 황후가 남으로 기이국에 나아가 태자를 히다카에서 만났다. 여러 신하와 의논하여 마침내 오시쿠마노미코를 치려 하고 다시 시노노미야로 옮겼다.
마침 이때에 낮이 밤처럼 어두워진 지 이미 여러 날이었다. 그때 사람들이 말하였다. "늘 밤이 다닌다."
황후가 기노아타이의 조상 도요미미에게 물었다. "이 괴이함이 무슨 까닭인가."
그때 한 늙은이가 있어 말하였다. "전해 듣기로 이런 괴이함을 아즈나히의 죄(阿豆那比之罪)라 합니다."
물었다. "무슨 말인가."
대답하였다. "두 신사의 축(祝)을 함께 합장한 것입니다."
이로 인하여 거리와 마을에 미루어 묻게 하니 한 사람이 있어 말하였다. "시노의 축과 아마노의 축이 함께 좋은 벗이었습니다. 시노의 축이 병을 만나 죽었습니다. 아마노의 축이 피눈물을 흘리며 말하기를 '내가 살아서 사귄 벗이다. 어찌 죽어서 한 구덩이에 들지 않겠는가' 하고는, 곧 주검 곁에 엎드려 스스로 죽었습니다. 이어 합장하였습니다. 아마 이것이 아니겠습니까."
이에 무덤을 열어 보니 사실이었다. 그러므로 다시 널을 고쳐 각각 다른 곳에 묻었다. 곧 햇빛이 빛나고 낮과 밤이 구별되었다.
협주 1
小竹、此云芝努。
시노(小竹)는 시노라 읽는다.
16오시쿠마노미코를 치다
三月丙申朔庚子、命武內宿禰・和珥臣祖武振熊、率數萬衆、令擊忍熊王。爰武內宿禰等、選精兵從山背出之。至菟道以屯河北。忍熊王出營欲戰。時有熊之凝者。爲忍熊王軍之先鋒。則欲勸己衆、因以、高唱之歌曰、
삼월 병신 초하루 경자일에 다케우치노스쿠네와 와니노오미의 조상 다케후루쿠마에게 명하여 수만 무리를 거느려 오시쿠마노미코를 치게 하였다.
이에 다케우치노스쿠네들이 날랜 군사를 가려 야마시로에서 나갔다. 우지에 이르러 강 북쪽에 진 쳤다. 오시쿠마노미코가 진영을 나와 싸우려 하였다.
그때 구마노코리라는 이가 있어 오시쿠마노미코 군사의 선봉이 되었다. 곧 제 무리를 권하고자 하여 이로 인하여 높이 소리 내어 노래하였다.
협주 1
熊之凝者、葛野城首之祖也。一云、多吳吉師之遠祖也。
구마노코리는 가도노노키노오비토의 조상이다. 일설에는 다고노키시의 먼 조상이라 한다.
17노래 — 구마노코리
烏智箇多能、阿邏々麻菟麼邏、摩菟麼邏珥、和多利喩祇氐、菟區喩彌珥、末利椰塢多具陪、宇摩譬等破、于摩譬苔奴知野、伊徒姑播茂、伊徒姑奴池、伊裝阿波那、和例波、多摩岐波屢、于池能阿層餓、波邏濃知波、異佐誤阿例椰、伊裝阿波那、和例波。
「오치카타노 아라라마쓰바라 마쓰바라니 와타리유키테 쓰쿠유미니 마리야오타구헤 우마히토와 우마히토도치야 이토코와모 이토코노치 이자아하나 와레와 다마키하루 우치노아소가 하라누치와 이사고아레야 이자아하나 와레와(烏智箇多能、阿邏々麻菟麼邏、摩菟麼邏珥、和多利喩祇氐、菟區喩彌珥、末利椰塢多具陪、宇摩譬等破、于摩譬苔奴知野、伊徒姑播茂、伊徒姑奴池、伊裝阿波那、和例波、多摩岐波屢、于池能阿層餓、波邏濃知波、異佐誤阿例椰、伊裝阿波那、和例波)」
— 소리를 적은 것이라 뜻으로 옮기지 않는다.
18활줄을 감춘 꾀
時武內宿禰、令三軍悉令椎結。因以號令曰、各以儲弦藏于髮中、且佩木刀。既而乃舉皇后之命、誘忍熊王曰、吾勿貧天下。唯懷幼王、從君王者也。豈有距戰耶。願共絶弦捨兵、與連和焉。然則、君王登天業、以安席高枕、專制萬機。則顯令軍中、悉斷弦解刀、投於河水。忍熊王信其誘言、悉令軍衆、解兵投河水、而斷弦。爰武內宿禰、令三軍、出儲弦、更張、以佩眞刀。度河而進之。忍熊王知被欺、謂倉見別・五十狹茅宿禰曰、吾既被欺。今無儲兵。豈可得戰乎、曳兵稍退。武內宿禰出精兵而追之。適遇于逢坂以破。故號其處曰逢坂也。軍衆走之。及于狹々浪栗林而多斬。於是。血流溢栗林。故惡是事、至于今、其栗林之菓不進御所也。忍熊王逃無所入。則喚五十狹茅宿禰、而歌之曰、
그때 다케우치노스쿠네가 삼군에 다 방망이 상투를 짓게 하였다. 이로 인하여 호령하였다. "각각 여벌 활줄을 머리 속에 감추고 또 나무 칼을 차라."
이윽고 이에 황후의 명을 들어 오시쿠마노미코를 꾀었다. "나는 천하를 탐하지 않는다. 다만 어린 왕을 안고 임금을 따르는 자일 뿐이다. 어찌 맞서 싸울 까닭이 있겠는가. 바라건대 함께 활줄을 끊고 무기를 버려 서로 화친하자. 그러면 임금께서 하늘의 업에 올라 자리를 편안히 하고 베개를 높이 하여 오로지 만사를 다스리시리라."
곧 드러나게 군중에 명하여 다 활줄을 끊고 칼을 풀어 강물에 던지게 하였다.
오시쿠마노미코가 그 꾀는 말을 믿고 군사에게 다 무기를 풀어 강물에 던지고 활줄을 끊게 하였다.
이에 다케우치노스쿠네가 삼군에 여벌 활줄을 꺼내어 다시 메고 참칼을 차게 하였다. 강을 건너 나아갔다.
오시쿠마노미코가 속은 줄 알고 구라미와케와 이사치노스쿠네에게 일렀다. "내가 이미 속았다. 이제 여벌 무기가 없으니 어찌 싸울 수 있겠는가." 무기를 끌고 차츰 물러났다.
다케우치노스쿠네가 날랜 군사를 내어 뒤쫓았다. 마침 오사카에서 만나 깨뜨렸다. 그러므로 그곳을 오사카(逢坂)라 이름하였다.
군사가 달아났다. 사사나미의 밤나무 숲에 이르러 많이 베었다. 이에 피가 흘러 밤나무 숲에 넘쳤다. 그러므로 이 일을 언짢게 여겨 이제까지 그 밤나무 숲의 열매를 임금 계신 곳에 올리지 않는다.
오시쿠마노미코가 달아나 들 곳이 없었다. 곧 이사치노스쿠네를 불러 노래하였다.
19노래 — 오시쿠마노미코
伊裝阿藝、伊佐智須區禰、多摩枳波屢、于知能阿曾餓、勾夫菟智能、伊多氐於破孺破、珥倍廼利能、介豆岐齊奈。
「이자아기 이사치스쿠네 다마키하루 우치노아소가 구부쓰치노 이타테오하즈와 니호도리노 가즈키세나(伊裝阿藝、伊佐智須區禰、多摩枳波屢、于知能阿曾餓、勾夫菟智能、伊多氐於破孺破、珥倍廼利能、介豆岐齊奈)」
— 소리를 적은 것이라 뜻으로 옮기지 않는다.
20세타에 몸을 던지다
則共沈瀬田濟而死之。于時、武內宿禰歌之曰、
곧 함께 세타의 나루에 잠겨 죽었다. 이때 다케우치노스쿠네가 노래하였다.
21노래 — 다케우치노스쿠네
阿布彌能彌、齊多能和多利珥、伽豆區苔利、梅珥志彌曳泥麼、異枳廼倍呂之茂。
「아후미노미 세타노와타리니 가즈쿠토리 메니시미에네바 이키도호로시모(阿布彌能彌、齊多能和多利珥、伽豆區苔利、梅珥志彌曳泥麼、異枳廼倍呂之茂)」
— 소리를 적은 것이라 뜻으로 옮기지 않는다.
22주검을 찾다
於是、探其屍而不得也。然後、數日之出於菟道河。武內宿禰亦歌曰、
이에 그 주검을 찾았으나 얻지 못하였다. 그런 뒤에 며칠 만에 우지 강에 나왔다. 다케우치노스쿠네가 또 노래하였다.
23노래 — 다케우치노스쿠네
阿布瀰能瀰、齊多能和多利珥、介豆區苔利、多那伽瀰須疑氐、于泥珥等邏倍菟。
「아후미노미 세타노와타리니 가즈쿠토리 다나카미스기테 우지니토라헤쓰(阿布瀰能瀰、齊多能和多利珥、介豆區苔利、多那伽瀰須疑氐、于泥珥等邏倍菟)」
— 소리를 적은 것이라 뜻으로 옮기지 않는다.
24섭정 원년
冬十月癸亥朔甲子、群臣尊皇后曰皇太后。是年也、太歲辛巳。則爲攝政元年。
겨울 시월 계해 초하루 갑자일에 여러 신하가 황후를 높여 황태후라 하였다. 이해는 태세가 신사다. 곧 섭정 원년으로 삼았다.
25천황을 장사 지내다
二年冬十一月丁亥朔甲午、葬天皇於河內國長野陵。
이년 겨울 십일월 정해 초하루 갑오일에 천황을 가와치국 나가노 능에 장사 지냈다.
26황태자를 세우다
三年春正月丙戌朔戊子、立譽田別皇子、爲皇太子。因以、都於磐余。
삼년 봄 정월 병술 초하루 무자일에 호무타와케 황자를 세워 황태자로 삼았다. 이로 인하여 이와레에 도읍하였다.
협주 1
是謂若櫻宮。
이를 와카사쿠라노미야라 한다.
27볼모 미질허지가 달아나다
五年春三月癸卯朔己酉、新羅王遣汙禮斯伐・毛麻利叱智・富羅母智等朝貢。仍有返先質微叱許智伐旱之情。是以、誂許智伐旱、而紿之曰、使者汙禮斯伐・毛麻利叱智等、告臣曰、我王以坐臣久不還、而悉沒妻子爲孥。冀蹔還本土、知虛實而請焉。皇太后則聽之。因以、副葛城襲津彦而遣之。共到對馬、宿于鉏海水門。時新羅使者毛麻利叱智等、竊分船及水手、載微叱旱岐、令逃於新羅。乃造蒭靈、置微叱許智之床、詳爲病者、告襲津彦曰、微叱許智忽病之將死。襲津彦使人令看病者。既知欺、而捉新羅使者三人、納檻中、以火焚而殺。乃詣新羅、次于蹈鞴津、拔草羅城還之。是時俘人等、今桑原・佐糜・高宮・忍海、凡四邑漢人等之始祖也。
오년 봄 삼월 계묘 초하루 기유일에 신라 왕이 오례사벌(汙禮斯伐)과 모마리질지(毛麻利叱智)와 부라모지(富羅母智)들을 보내어 조공하였다. 이어 앞서 볼모로 온 미질허지벌한(微叱許智伐旱)을 돌려보내려는 뜻이 있었다.
이 때문에 허지벌한을 꾀어 속여 말하였다. "사자 오례사벌과 모마리질지들이 저에게 알리기를 '우리 왕이 그대가 오래 돌아오지 않는다 하여 처자를 다 몰수하여 종으로 삼았다' 하였습니다. 바라건대 잠시 본토에 돌아가 헛말인지 사실인지 알고자 합니다."
황태후가 곧 들어주었다. 이로 인하여 가즈라키노소쓰히코를 딸려 보냈다.
함께 쓰시마에 이르러 서해(鉏海)의 미나토에 묵었다. 그때 신라 사자 모마리질지들이 몰래 배와 사공을 나누어 미질한기를 태워 신라로 달아나게 하였다.
이에 짚 인형을 만들어 미질허지의 자리에 두고 거짓으로 병든 이라 하며 소쓰히코에게 알렸다. "미질허지가 홀연히 병들어 죽으려 합니다."
소쓰히코가 사람을 시켜 병자를 보게 하였다. 이미 속은 줄 알고 신라 사자 세 사람을 잡아 우리에 넣고 불로 태워 죽였다. 이에 신라에 나아가 답비진(蹈鞴津)에 머물다가 초라성(草羅城)을 함락하고 돌아왔다.
이때 사로잡은 사람들이 이제 구와하라와 사비와 다카미야와 오시누미 무릇 네 마을 아야히토들의 시조다.
28태자에게 잔치하다
十三年春二月丁巳朔甲子、命武內宿禰、從太子令拜角鹿笥飯大神。癸酉、太子至自角鹿。是日、皇太后宴太子於大殿。皇太后舉觴以壽于太子。因以歌曰、
십삼년 봄 이월 정사 초하루 갑자일에 다케우치노스쿠네에게 명하여 태자를 따라 쓰누가의 게히노오카미에 절하게 하였다.
계유일에 태자가 쓰누가에서 이르렀다. 이날 황태후가 태자를 큰 전각에서 잔치하였다. 황태후가 잔을 들어 태자의 장수를 빌었다. 이로 인하여 노래하였다.
29노래 — 황태후
虛能彌企破、和餓彌企那羅儒、區之能伽彌、等虛豫珥伊麻輸、伊破多々須、周玖那彌伽未能、等豫保枳、保枳茂苔陪之、訶武保枳、保枳玖流保之、摩菟利虛辭彌企層、阿佐孺塢齊、佐佐。
「고노미키와 와가미키나라즈 구시노카미 도코요니이마스 이하타타스 스쿠나미카미노 도요호키 호키모토호시 가무호키 호키쿠루호시 마쓰리코시미키조 아사즈오세 사사(虛能彌企破、和餓彌企那羅儒、區之能伽彌、等虛豫珥伊麻輸、伊破多々須、周玖那彌伽未能、等豫保枳、保枳茂苔陪之、訶武保枳、保枳玖流保之、摩菟利虛辭彌企層、阿佐孺塢齊、佐佐)」
— 소리를 적은 것이라 뜻으로 옮기지 않는다.
30다케우치노스쿠네가 답하다
武內宿禰爲太子答歌之曰、
다케우치노스쿠네가 태자를 위하여 답하여 노래하였다.
31노래 — 다케우치노스쿠네
許能彌企塢、伽彌鶏武比等破、曾能菟豆彌、于輸珥多氐々、于多比菟々、伽彌鶏梅伽墓、許能彌企能、阿椰珥、于多娜濃芝作、沙。
「고노미키오 가미케무히토와 소노쓰즈미 우스니타테테 우타히쓰쓰 가미케메카모 고노미키노 아야니 우타다노시 사사(許能彌企塢、伽彌鶏武比等破、曾能菟豆彌、于輸珥多氐々、于多比菟々、伽彌鶏梅伽墓、許能彌企能、阿椰珥、于多娜濃芝作、沙)」
— 소리를 적은 것이라 뜻으로 옮기지 않는다.
32삼십구년 — 위지를 끌어 오다
卅九年。是年也、太歲己未。
삼십구년. 이해는 태세가 기미다.
협주 1
魏志云、明帝景初三年六月、倭女王遣大夫難斗米等、詣郡、求詣天子朝獻。太守鄧夏遣吏將送詣京都也。
위지(魏志)에 이르기를, 명제 경초 삼년 유월에 왜의 여왕이 대부 난두미(難斗米)들을 보내어 군(郡)에 나아가 천자에게 나아가 조회하고 바치기를 구하였다. 태수 등하(鄧夏)가 벼슬아치를 보내어 데리고 서울로 보냈다 한다.
33사십년
卌年。
사십년.
협주 1
魏志云、正始元年、遣建忠校尉梯携等、奉詔書印綬、詣倭國也。
위지에 이르기를, 정시 원년에 건충교위 제휴(梯携)들을 보내어 조서와 인수를 받들고 왜국에 나아갔다 한다.
34사십삼년
卌三年。
사십삼년.
협주 1
魏志云、正始四年、倭王復遣使大夫伊聲者掖耶約等八人上獻。
위지에 이르기를, 정시 사년에 왜왕이 다시 사자 대부 이성기(伊聲者)와 액야약(掖耶約)들 여덟 사람을 보내어 올려 바쳤다 한다.
35백제가 길을 묻다
卌六年春三月乙亥朔、遣斯摩宿禰于卓淳國。於是、卓淳王末錦旱岐、告斯摩宿禰曰、甲子年七月中、百濟人久氐・彌州流・莫古三人、到於我土曰、百濟王、聞東方有日本貴國、而遣臣等、令朝其貴國。故求道路、以至于斯土。若能教臣等、令通道路、則我王必深德君王。時謂久氐等曰、本聞東有貴國。然未曾有通、不知其道。唯海遠浪嶮。則乘大船、僅可得通。若雖有路津、何以得達耶。於是、久氐等曰、然卽當今不得通也。不若、更還之備船舶、而後通矣。仍曰、若有貴國使人來、必應告吾國。如此乃還。爰斯摩宿禰卽以傔人爾波移與卓淳人過古二人、遣于百濟國、慰勞其王。時百濟肖古王、深之歡喜、而厚遇焉。仍以五色綵絹各一疋、及角弓箭、幷鐵鋌卌枚、幣爾波移。便復開寶藏、以示諸珍異曰、吾國多有是珍寶。欲貢貴國、不知道路。有志無從。然猶今付使者、尋貢獻耳。於是、爾波移奉事而還、告志摩宿禰。便自卓淳還之也。
사십육년 봄 삼월 을해 초하루에 시마노스쿠네를 탁순국(卓淳國)에 보냈다.
이에 탁순 왕 말금한기(末錦旱岐)가 시마노스쿠네에게 알렸다.
"갑자년 칠월 중에 백제 사람 구저(久氐)와 미주류(彌州流)와 막고(莫古) 세 사람이 우리 땅에 이르러 말하기를 '백제 왕이 동쪽에 일본이라는 귀한 나라가 있다는 말을 듣고 신들을 보내어 그 귀한 나라에 조회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길을 구하여 이 땅에 이르렀습니다. 만약 능히 신들을 가르쳐 길을 통하게 하시면 우리 왕이 반드시 임금의 덕을 깊이 여길 것입니다' 하였습니다.
그때 구저들에게 일렀습니다. '본디 동쪽에 귀한 나라가 있다는 말은 들었으나 아직 통한 적이 없어 그 길을 알지 못한다. 다만 바다가 멀고 물결이 험하니 큰 배를 타야 겨우 통할 수 있다. 만약 길과 나루가 있다 한들 어찌 이를 수 있겠는가.'
이에 구저들이 말하였습니다. '그렇다면 곧 지금은 통할 수 없습니다. 다시 돌아가 배를 갖춘 뒤에 통하는 것만 못하겠습니다.' 이어 말하기를 '만약 귀한 나라의 사자가 오거든 반드시 마땅히 우리 나라에 알려 주십시오' 하였습니다. 이같이 하고 돌아갔습니다."
이에 시마노스쿠네가 곧 딸린 사람 니하야와 탁순 사람 과고(過古) 두 사람을 백제국에 보내어 그 왕을 위로하였다.
그때 백제 초고왕(肖古王)이 이를 깊이 기뻐하여 두터이 대접하였다. 이어 오색 고운 비단 각 한 필과 뿔활과 화살과 아울러 쇠막대 마흔 낱을 니하야에게 폐백으로 주었다.
곧 다시 보배 곳간을 열어 여러 진기한 것을 보이며 말하였다. "우리 나라에 이런 진귀한 보배가 많이 있다. 귀한 나라에 바치고자 하나 길을 알지 못하였다. 뜻은 있었으나 좇을 길이 없었다. 그러나 이제 사자에게 부쳐 이어 바칠 뿐이다."
이에 니하야가 일을 받들고 돌아와 시마노스쿠네에게 알렸다. 곧 탁순에서 돌아왔다.
협주 1
斯麻宿禰者、不知何姓人也。
시마노스쿠네는 어느 성의 사람인지 알지 못한다.
36두 나라의 공물
卌七年夏四月、百濟王使久氐・彌州流・莫古、令朝貢。時新羅國調使、與久氐共詣。於是、皇太后・太子譽田別尊、大歡喜之曰、先王所望國人、今來朝之。痛哉、不逮于天皇矣。群臣皆莫不流涕。仍檢校二國之貢物。於是、新羅貢物者、珍異甚多。百濟貢物者、少賤不良。便問久氐等曰、百濟貢物、不及新羅、奈之何。對曰、臣等失道、至沙比新羅。則新羅人捕臣等禁囹圄。經三月而欲殺。時久氐等、向天而呪詛之。新羅人怖其呪詛而不殺。則奪我貢物、因以、爲己國之貢物。以新羅賤物、相易、爲臣國之貢物。謂臣等曰、若誤此辭者、及于還日、當殺汝等。故久氐等恐怖從耳。是以、僅得達于天朝。時皇太后・譽田別尊、責新羅使者、因以、祈天神曰、當遣誰人於百濟、將檢事之虛實。當遣誰人於新羅、將推問其罪。便天神誨之曰、令武內宿禰行議。因以千熊長彦爲使者、當如所願。於是、遣千熊長彦于新羅、責以濫百濟之獻物。
사십칠년 여름 사월에 백제 왕이 구저와 미주류와 막고를 시켜 조공하게 하였다. 그때 신라국의 조(調) 바치는 사자가 구저와 함께 나아왔다.
이에 황태후와 태자 호무타와케노미코토가 크게 기뻐하며 말하였다. "앞 임금이 바라던 나라 사람이 이제 와서 조회한다. 애달프다, 천황께 미치지 못하였구나." 여러 신하가 다 눈물을 흘리지 않는 이가 없었다.
이어 두 나라의 공물을 살펴 헤아렸다. 이에 신라의 공물은 진기한 것이 매우 많고 백제의 공물은 적고 천하며 좋지 않았다.
곧 구저들에게 물었다. "백제의 공물이 신라에 미치지 못하니 어찌 된 일인가."
대답하였다. "신들이 길을 잃어 사비신라(沙比新羅)에 이르렀습니다. 곧 신라 사람이 신들을 잡아 옥에 가두고 석 달이 지나 죽이려 하였습니다. 그때 구저들이 하늘을 향하여 저주하였습니다. 신라 사람이 그 저주를 두려워하여 죽이지 않았습니다. 곧 우리 공물을 빼앗아 제 나라의 공물로 삼고, 신라의 천한 물건으로 서로 바꾸어 신의 나라 공물로 삼았습니다. 신들에게 이르기를 '만약 이 말을 그르치면 돌아가는 날에 마땅히 너희를 죽이겠다'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구저들이 두려워 좇았을 뿐입니다. 이 때문에 겨우 천조에 이를 수 있었습니다."
그때 황태후와 호무타와케노미코토가 신라 사자를 꾸짖었다. 이로 인하여 하늘 신에게 빌었다. "마땅히 누구를 백제에 보내어 일의 헛됨과 참됨을 살피게 하며, 마땅히 누구를 신라에 보내어 그 죄를 미루어 묻게 하리이까."
곧 하늘 신이 가르쳤다. "다케우치노스쿠네로 하여금 의논하게 하라. 이로 인하여 지쿠마나가히코를 사자로 삼으면 마땅히 원하는 대로 되리라."
이에 지쿠마나가히코를 신라에 보내어 백제의 바치는 물건을 함부로 한 것을 꾸짖었다.
협주 1
千熊長彦者、分明不知其姓人。一云、武藏國人。今是額田部槻本首等之始祖也。百濟記云職麻那々加比跪者、蓋是歟也。
지쿠마나가히코는 그 성이 어떤 사람인지 분명히 알지 못한다. 일설에는 무사시국 사람이라 한다. 이제 누카타베노쓰키모토노오비토들의 시조다. 백제기(百濟記)에 이르는 직마나나가비궤(職麻那々加比跪)라는 이가 아마 이 사람인가 한다.
37가라 일곱 나라를 평정하다
卌九年春三月、以荒田別・鹿我別爲將軍。則與久氐等、共勒兵而度之、至卓淳國、將襲新羅。時或曰、兵衆少之、不可破新羅。更復、奉上沙白・蓋盧、請増軍士。卽命木羅斤資・沙々奴跪領精兵、與沙白・蓋盧共遣之。倶集于卓淳、擊新羅而破之。因以、平定比自㶱・南加羅・㖨國・安羅・多羅・卓淳・加羅、七國。仍移兵、西𢌞至古爰津、屠南蠻忱彌多禮、以賜百濟。於是、其王肖古及王子貴須、亦領軍來會。時比利・辟中・布彌支・半古、四邑、自然降服。是以、百濟王父子及荒田別・木羅斤資等、共會意流村。相見欣感。厚禮送遣之。唯千熊長彦與百濟王、至于百濟國、登辟支山盟之。復登古沙山、共居磐石上。時百濟王盟之曰、若敷草爲坐、恐見火燒。且取木爲坐、恐爲水流。故居磐石而盟者、示長遠之不朽者也。是以、自今以後、千秋萬歲、無絶無窮。常稱西蕃、春秋朝貢。則將千熊長彦、至都下厚加禮遇。亦副久氐等而送之。
사십구년 봄 삼월에 아라타와케와 가가와케를 장군으로 삼았다. 곧 구저들과 함께 군사를 다잡아 건너가 탁순국에 이르러 신라를 습격하려 하였다.
그때 어떤 이가 말하였다. "군사가 적어 신라를 깨뜨릴 수 없습니다. 다시 사백(沙白)과 개로(蓋盧)를 올려 보내어 군사를 더하기를 청하십시오."
곧 목라근자(木羅斤資)와 사사노궤(沙々奴跪)에게 명하여 날랜 군사를 거느려 사백·개로와 함께 보냈다. 다 탁순에 모여 신라를 쳐 깨뜨렸다.
이로 인하여 비자벌(比自㶱)·남가라(南加羅)·탁국(㖨國)·안라(安羅)·다라(多羅)·탁순(卓淳)·가라(加羅) 일곱 나라를 평정하였다.
이어 군사를 옮겨 서쪽으로 돌아 고해진(古爰津)에 이르러 남만(南蠻) 침미다례(忱彌多禮)를 무찔러 백제에 주었다.
이에 그 왕 초고와 왕자 귀수(貴須)가 또한 군사를 거느리고 와서 만났다. 그때 비리(比利)·벽중(辟中)·포미지(布彌支)·반고(半古) 네 마을이 절로 항복하였다.
이 때문에 백제 왕 부자와 아라타와케와 목라근자들이 함께 의류촌(意流村)에서 만났다. 서로 보고 기뻐하며 두터운 예로 보냈다.
오직 지쿠마나가히코와 백제 왕이 백제국에 이르러 벽지산(辟支山)에 올라 맹세하였다. 다시 고사산(古沙山)에 올라 함께 반석 위에 앉았다.
그때 백제 왕이 맹세하였다. "만약 풀을 깔아 자리로 삼으면 불에 탈까 두렵고, 또 나무를 가져 자리로 삼으면 물에 떠내려갈까 두렵다. 그러므로 반석에 앉아 맹세하는 것은 길고 멀어 썩지 않음을 보이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이제부터 천추만세에 끊임없고 다함없이 늘 서번이라 일컫고 봄가을로 조공하겠다."
곧 지쿠마나가히코를 데리고 도성 아래에 이르러 두터이 대접하였다. 또 구저들을 딸려 보냈다.
협주 2
是二人、不知其姓人也。但木羅斤資者、百濟將也。
이 두 사람은 그 성이 어떤 사람인지 알지 못한다. 다만 목라근자는 백제의 장수다.
今云州流須祇。
이제 주류수기(州流須祇)라 한다.
38다사성을 주다
五十年春二月、荒田別等還之。夏五月、千熊長彦・久氐等、至自百濟。於是、皇太后歡之問久氐曰、海西諸韓、既賜汝國。今何事以頻復來也。久氐等奏曰、天朝鴻澤、遠及弊邑。吾王歡喜踊躍、不任于心。故因還使、以致至誠。雖逮萬世、何年非朝。皇太后勅云、善哉汝言。是朕懷也。増賜多沙城、爲往還路驛。
오십년 봄 이월에 아라타와케들이 돌아왔다.
여름 오월에 지쿠마나가히코와 구저들이 백제에서 이르렀다.
이에 황태후가 기뻐하여 구저에게 물었다. "바다 서쪽의 여러 한(韓)을 이미 네 나라에 주었다. 이제 무슨 일로 자주 다시 오는가."
구저들이 아뢰었다. "천조의 큰 은택이 멀리 저희 고을에 미쳤습니다. 우리 왕이 기뻐 뛰며 마음을 가누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돌아가는 사자 편에 지극한 정성을 바칩니다. 비록 만세에 이르러도 어느 해인들 조회하지 않겠습니까."
황태후가 칙명하였다. "좋다, 네 말이여. 이것이 짐의 마음이다." 다사성(多沙城)을 더 주어 오가는 길의 역으로 삼게 하였다.
39백제와 사귀는 뜻
五十一年春三月、百濟王亦遣久氐朝貢。於是、皇太后語太子及武內宿禰曰、朕所交親百濟國者、是天所致。非由人故。玩好珍物、先所未有。不闕歲時、常來貢獻。朕省此款、毎用喜焉。如朕存時、敦加恩惠。
오십일년 봄 삼월에 백제 왕이 또 구저를 보내어 조공하였다.
이에 황태후가 태자와 다케우치노스쿠네에게 일렀다. "짐이 가까이 사귀는 백제국은 하늘이 이르게 한 것이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다. 즐기고 좋아할 진기한 물건이 앞서 있지 않던 것이다. 철마다 빠뜨리지 않고 늘 와서 바친다. 짐이 이 정성을 살피고 늘 기뻐한다. 짐이 살아 있을 때처럼 은혜를 도타이 더하라."
40백제 왕 부자가 맹세하다
卽年、以千熊長彦、副久氐等遣百濟國。因以、垂大恩曰、朕從神所驗、始開道路。平定海西、以賜百濟。今復厚結好、永寵賞之。是時、百濟王父子、並顙致地、啓曰、貴國鴻恩、重於天地。何日何時、敢有忘哉。聖王在上、明如日月。今臣在下、固如山岳。永爲西蕃、終無貳心。
그해에 지쿠마나가히코를 구저들에게 딸려 백제국에 보냈다. 이로 인하여 큰 은혜를 드리워 말하였다. "짐이 신에게서 증험한 바를 좇아 비로소 길을 열었다. 바다 서쪽을 평정하여 백제에 주었다. 이제 다시 두터이 좋은 사이를 맺어 길이 사랑하고 상 주리라."
이때 백제 왕 부자가 아울러 이마를 땅에 대고 아뢰었다. "귀한 나라의 큰 은혜가 하늘땅보다 무겁습니다. 어느 날 어느 때에 감히 잊겠습니까. 성스러운 임금이 위에 계시어 밝기가 해와 달 같습니다. 이제 신이 아래에 있어 굳기가 산악 같습니다. 길이 서번이 되어 끝내 두 마음이 없겠습니다."
41칠지도와 칠자경
五十二年秋九月丁卯朔丙子、久氐等從千熊長彦詣之。則獻七枝刀一口・七子鏡一面、及種々重寶。仍啓曰、臣國以西有水。源出自谷那鐵山。其邈七日行之不及。當飲是水、便取是山鐵、以永奉聖朝。乃謂孫枕流王曰、今我所通、海東貴國、是天所啓。是以、垂天恩、割海西而賜我。由是、國基永固。汝當善脩和好、聚歛土物、奉貢不絶、雖死何恨。自是後、毎年相續朝貢焉。
오십이년 가을 구월 정묘 초하루 병자일에 구저들이 지쿠마나가히코를 따라 나아왔다. 곧 칠지도(七枝刀) 한 자루와 칠자경(七子鏡) 한 낱과 온갖 무거운 보배를 바쳤다.
이어 아뢰었다. "신의 나라 서쪽에 물이 있어 근원이 곡나(谷那)의 철산에서 나옵니다. 그 아득함이 이레를 가도 이르지 못합니다. 마땅히 이 물을 마시고 곧 이 산의 쇠를 가져다 길이 성스러운 조정을 받들겠습니다."
이에 손자 침류왕(枕流王)에게 일렀다. "이제 우리가 통하는 바다 동쪽의 귀한 나라는 하늘이 열어 준 것이다. 이 때문에 하늘의 은혜를 드리워 바다 서쪽을 갈라 우리에게 주었다. 이로 말미암아 나라의 터가 길이 굳어졌다. 너는 마땅히 좋은 사이를 잘 닦고 토산물을 거두어 바치기를 끊지 마라. 비록 죽은들 무슨 한이 있겠는가."
이 뒤로 해마다 이어 조공하였다.
42초고왕이 죽다
五十五年、百濟肖古王薨。
오십오년에 백제 초고왕이 죽었다.
43귀수가 왕이 되다
五十六年、百濟王子貴須立爲王。
오십육년에 백제 왕자 귀수가 즉위하였다.
44사지비궤와 가라
六十二年、新羅不朝。卽年、遣襲津彦擊新羅。
육십이년에 신라가 조회하지 않았다. 그해에 소쓰히코를 보내어 신라를 쳤다.
협주 1
百濟記云、壬午年、新羅不奉貴國。貴國遣沙至比跪令討之。新羅人莊飾美女二人、迎誘於津。沙至比跪、受其美女、反伐加羅國。加羅國王己本旱岐、及兒百久至・阿首至・國沙利・伊羅麻酒・爾汶至等、將其人民、來奔百濟。百濟厚遇之。加羅國王妹既殿至、向大倭啓云、天皇遣沙至比跪、以討新羅。而納新羅美女、捨而不討。反滅我國。兄弟人民、皆爲流沈。不任憂思。故、以來啓。天皇大怒、卽遣木羅斤資、領兵衆來集加羅、復其社稷。一云、沙至比跪、知天皇怒、不敢公還。乃自竄伏。其妹有幸於皇宮者。比跪密遣使人、問天皇怒解不。妹乃託夢言、今夜夢見沙至比跪。天皇大怒云、比跪何敢來。妹以皇言報之。比跪知不兔、入石穴而死也。
백제기에 이르기를, 임오년에 신라가 귀국(貴國)을 받들지 않았다. 귀국이 사지비궤(沙至比跪)를 보내어 치게 하였다. 신라 사람이 아름다운 여인 둘을 꾸며 나루에서 맞아 꾀었다. 사지비궤가 그 아름다운 여인을 받고 도리어 가라국을 쳤다. 가라국 왕 기본한기(己本旱岐)와 아들 백구지(百久至)·아수지(阿首至)·국사리(國沙利)·이라마주(伊羅麻酒)·이문지(爾汶至)들이 그 백성을 거느리고 백제로 달아났다. 백제가 두터이 대접하였다. 가라국 왕의 누이 기전지(既殿至)가 대왜(大倭)에 나아가 아뢰었다. "천황이 사지비궤를 보내어 신라를 치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신라의 아름다운 여인을 받고 버려두어 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우리 나라를 멸하여 형제와 백성이 다 떠내려가고 가라앉았습니다. 근심을 가누지 못하여 이렇게 와서 아룁니다." 천황이 크게 노하여 곧 목라근자를 보내어 군사를 거느리고 가라에 모여 그 사직을 되돌리게 하였다. 일설에는 이러하다. 사지비궤가 천황이 노한 줄 알고 감히 드러내 놓고 돌아오지 못하고 이에 스스로 숨었다. 그 누이가 황궁에 총애를 받는 이가 있었다. 비궤가 몰래 사람을 보내어 천황의 노여움이 풀렸는지 물었다. 누이가 이에 꿈에 의탁하여 말하였다. "오늘 밤 꿈에 사지비궤를 보았습니다." 천황이 크게 노하여 말하였다. "비궤가 어찌 감히 오겠는가." 누이가 임금의 말로 알렸다. 비궤가 벗어나지 못할 줄 알고 돌 구멍에 들어가 죽었다 한다.
45침류왕이 즉위하다
六十四年、百濟國貴須王薨。王子枕流王立爲王。
육십사년에 백제국 귀수왕이 죽었다. 왕자 침류왕이 즉위하였다.
46진사가 자리를 빼앗다
六十五年、百濟枕流王薨。王子阿花年少。叔父辰斯奪立爲王。
육십오년에 백제 침류왕이 죽었다. 왕자 아화(阿花)가 나이 어렸다. 숙부 진사(辰斯)가 자리를 빼앗아 즉위하였다.
47육십육년 — 진기거주를 끌어 오다
六十六年。
육십육년.
협주 1
是年、晉武帝泰初二年。晉起居注云、武帝泰初二年十月、倭女王遣重譯貢獻。
이해는 진 무제 태초 이년이다. 진기거주(晉起居注)에 이르기를, 무제 태초 이년 시월에 왜의 여왕이 통역을 거듭하여 바쳤다 한다.
48백 살에 죽다
六十九年夏四月辛酉朔丁丑、皇太后崩於稚櫻宮。冬十月戊午朔壬申、葬狹城盾列陵。是日、追尊皇太后、曰氣長足姬尊。是年也、太歲己丑。
육십구년 여름 사월 신유 초하루 정축일에 황태후가 와카사쿠라노미야에서 죽었다.
겨울 시월 무오 초하루 임신일에 사키의 다타나미 능에 장사 지냈다. 이날 황태후를 추존하여 오키나가타라시히메노미코토라 하였다. 이해는 태세가 기축이다.
협주 1
時年一百歲。
그때 나이 백 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