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신천황應神天皇
1응신천황
譽田天皇,足仲彦天皇第四子也。母曰氣長足姫尊。天皇以皇后討新羅之年,歳次庚辰冬十二月,生於筑紫之蚊田。幼而聰達,玄監深遠,動容進止,聖表有異焉。皇太后攝政之三年,立爲皇太子。初,天皇在孕而天神地祇授三韓,既産之,宍生腕上,其形如鞆,是肖皇太后爲雄裝之負鞆。故稱其名謂譽田天皇。
호무타천황(譽田天皇)은 다라시나카쓰히코천황의 넷째 아들이다. 어머니는 오키나가타라시히메노미코토라 한다.
천황은 황후가 신라를 치던 해 경진년 겨울 십이월에 쓰쿠시의 가다에서 났다. 어려서 총명하고 통달하였으며 살핌이 그윽하고 멀었다. 몸가짐과 나아가고 멈춤에 성스러운 모습이 남달랐다. 황태후가 섭정한 지 삼년에 황태자로 세워졌다.
처음에 천황이 뱃속에 있을 때 하늘 신과 땅 신이 삼한을 주었다. 이미 나매 살이 팔뚝 위에 돋았는데 그 모양이 활팔찌(鞆) 같았다. 이는 황태후가 사내 차림을 하며 찬 활팔찌를 닮은 것이다. 그러므로 그 이름을 일컬어 호무타천황이라 하였다.
협주 3
時年三
그때 나이 셋이었다.
肖,此云阿叡
초(肖)는 아에라 읽는다.
上古時俗,號鞆謂褒武多焉。一云,初天皇爲太子,行于越國,拜祭角鹿笥飯大神。時大神與太子名相易,故號大神曰去來紗別神,太子名譽田別尊。然則可謂大神本名譽田別神,太子元名去來紗別尊,然無所見也,未詳
옛적 세속에서 활팔찌를 호무타라 하였다. 일설에는 이러하다. 처음에 천황이 태자였을 때 고시국에 가서 쓰누가의 게히노오카미에 절하여 제사하였다. 그때 큰 신과 태자가 이름을 서로 바꾸었다. 그러므로 큰 신을 이자사와케노카미라 하고 태자의 이름을 호무타와케노미코토라 하였다. 그렇다면 큰 신의 본디 이름이 호무타와케노카미요 태자의 본디 이름이 이자사와케노미코토라 할 만하다. 그러나 보이는 바가 없어 자세하지 않다.
2황태후가 죽다
攝政六十九年夏四月,皇太后崩。
섭정 육십구년 여름 사월에 황태후가 죽었다.
협주 1
時年百歳
그때 나이 백 살이었다.
3자리에 오르다
元年春正月丁亥朔,皇太子即位。是年也,太歳庚寅。
원년 봄 정월 정해 초하루에 황태자가 자리에 올랐다. 이해는 태세가 경인이다.
4황후와 스무 왕
二年春三月庚戌朔壬子,立仲姫爲皇后。后生荒田皇女、大鷦鷯天皇、根鳥皇子。先是,天皇以皇后姊高城入姫爲妃,生額田大中彦皇子、大山守皇子、去來真稚皇子、大原皇女、澇來田皇女。又妃皇后弟弟姫,生阿倍皇女、淡路御原皇女、紀之菟野皇女。次妃和珥臣祖日觸使主之女宮主宅媛,生菟道稚郎子皇子、矢田皇女、雌鳥皇女。次妃宅媛之弟小甂媛,生菟道稚郎姫皇女。次妃河派仲彦女弟媛,生稚野毛二派皇子。次妃櫻井田部連男鉏之妹糸媛,生隼総別皇子。次妃日向泉長媛,生大葉枝皇子、小葉枝皇子。凡是天皇男女并廿王也。根鳥皇子,是大田君之始祖也。大山守皇子,是土形君、榛原君,凡二族之始祖也。去來真稚皇子,是深河別之始祖也。
이년 봄 삼월 경술 초하루 임자일에 나카쓰히메를 세워 황후로 삼았다. 황후가 아라타 황녀와 오사자키천황과 네토리 황자를 낳았다.
이보다 앞서 천황이 황후의 언니 다카키이리비메를 비로 삼아 누카타노오나카쓰히코 황자와 오야마모리 황자와 이자노마와카 황자와 오하라 황녀와 고무쿠타 황녀를 낳았다.
또 비 황후의 아우 오토히메가 아베 황녀와 아와지노미하라 황녀와 기노우노 황녀를 낳았다.
다음 비 와니노오미의 조상 히후레노오미의 딸 미야누시야카히메가 우지노와키이라쓰코 황자와 야타 황녀와 메토리 황녀를 낳았다.
다음 비 야카히메의 아우 오나베히메가 우지노와키이라쓰메 황녀를 낳았다.
다음 비 가와마타노나카쓰히코의 딸 오토히메가 와카누케후타마타 황자를 낳았다.
다음 비 사쿠라이노타베노무라지 오사비의 누이 이토히메가 하야부사와케 황자를 낳았다.
다음 비 히무카의 이즈미노나가히메가 오하에 황자와 오바에 황자를 낳았다.
무릇 이 천황의 아들딸이 아울러 스무 왕이다.
네토리 황자는 오타노키미의 시조다. 오야마모리 황자는 히지카타노키미와 하리하라노키미 무릇 두 겨레의 시조다. 이자노마와카 황자는 후카와와케의 시조다.
협주 2
小甂,此云烏儺謎
오나베(小甂)는 오나베라 읽는다.
派,此云摩多
마타(派)는 마타라 읽는다.
5에미시가 조공하다
三年冬十月辛未朔癸酉,東蝦夷悉朝貢,即役蝦夷而作廐坂道。
삼년 겨울 시월 신미 초하루 계유일에 동쪽 에미시가 다 조공하였다. 곧 에미시를 부려 우마야사카의 길을 만들었다.
6어부들이 소란하다
十一月,處々海人訕哤之不從命。則遣阿曇連祖大濱宿禰平其訕哤,因爲海人之宰。故俗人諺曰「佐麼阿摩」者,其是緣也。
십일월에 곳곳의 어부가 시끄럽게 떠들며 명을 좇지 않았다. 곧 아즈미노무라지의 조상 오하마노스쿠네를 보내어 그 소란을 평정하였다. 이로 인하여 어부의 우두머리로 삼았다. 그러므로 세속 사람의 속담에 「사바아마」라 하는 것이 이 때문이다.
협주 1
訕哤,此云佐麼賣玖
산맹(訕哤)은 사바메쿠라 읽는다.
7백제가 진사왕을 죽이다
是歳,百濟辰斯王立之,失禮於貴國天皇。故遣紀角宿禰、羽田矢代宿禰、石川宿禰、木菟宿禰,嘖讓其无禮状。由是,百濟國煞辰斯王以謝之。紀角宿禰等便立阿菟爲王而歸。
이해에 백제 진사왕(辰斯王)이 즉위하여 귀국(貴國)의 천황에게 예를 잃었다. 그러므로 기노쓰노노스쿠네와 하타노야시로노스쿠네와 이시카와노스쿠네와 쓰쿠노스쿠네를 보내어 그 무례한 사정을 꾸짖었다. 이로 말미암아 백제국이 진사왕을 죽여 사죄하였다. 기노쓰노노스쿠네들이 곧 아화(阿菟)를 세워 왕으로 삼고 돌아왔다.
8어부와 산지기를 정하다
五年秋八月庚寅朔壬寅,令諸國定海人及山守部。
오년 가을 팔월 경인 초하루 임인일에 여러 나라에 명하여 어부와 야마모리베를 정하였다.
9가라노라는 배
冬十月,科伊豆國令造舩,長十丈。舩既成之,試浮于海,便輕泛疾行如馳,故名其舩曰枯野。
겨울 시월에 이즈국에 명하여 배를 짓게 하니 길이가 열 길이었다. 배가 이미 이루어져 시험 삼아 바다에 띄우니 곧 가볍게 떠서 달리듯 빨리 갔다. 그러므로 그 배를 가라노(枯野)라 이름하였다.
협주 1
由舩輕疾名枯野,是義違焉。若謂輕野,後人訛歟
배가 가볍고 빠르다 하여 가라노라 이름한 것은 뜻이 어긋난다. 혹 가루노(輕野)라 하던 것을 뒷사람이 잘못 옮긴 것인가.
10우지노를 지나며 노래하다
六年春二月,天皇幸近江國,至菟道野上而歌之曰:
육년 봄 이월에 천황이 오미국에 나아가 우지노 위에 이르러 노래하였다.
11노래 — 천황
知麼能伽豆怒塢彌例麼、茂々智儾蘆夜珥波母彌喻、區珥能朋母彌喻。
「지바노 가즈누오미레바 모모치다루 야니와모미유 구니노호모미유(知麻能伽豆怒塢彌例麼、茂々智儾蘆夜珥波母彌喩、區珥能朋母彌喩)」
— 소리를 적은 것이라 뜻으로 옮기지 않는다.
12가라히토 못
七年秋九月,高麗人、百濟人、任那人、新羅人,並來朝。時命武内宿禰,領諸韓人等作池,因以名池號韓人池。
칠년 가을 구월에 고려 사람과 백제 사람과 임나 사람과 신라 사람이 아울러 와서 조회하였다. 그때 다케우치노스쿠네에게 명하여 여러 한인(韓人)을 거느려 못을 만들게 하였다. 이로 인하여 못 이름을 가라히토 못(韓人池)이라 하였다.
13백제 사람이 오다
八年春三月,百濟人來朝。
팔년 봄 삼월에 백제 사람이 와서 조회하였다.
협주 1
百濟記云,阿花王立,旡禮於貴國,故奪我枕彌多禮、及峴南、支侵、谷那、東韓之地。是以遣王子直支于天朝,以脩先王之好也
백제기(百濟記)에 이르기를, 아화왕(阿花王)이 즉위하여 귀국에 무례하였다. 그러므로 우리 침미다례(枕彌多禮)와 현남(峴南)·지침(支侵)·곡나(谷那)·동한(東韓)의 땅을 빼앗겼다. 이 때문에 왕자 직지(直支)를 천조에 보내어 앞 임금 때의 좋은 사이를 닦았다 한다.
14다케우치노스쿠네가 참소를 벗다
九年夏四月,遣武内宿禰於筑紫以監察百姓。時武内宿禰弟甘美内宿禰,欲廢兄,即讒言于天皇曰:「武内宿禰常有望天下之情。今聞在筑紫而密謀之曰:『獨裂筑紫,招三韓令朝於己,遂將有天下。』」於是,天皇則遣使以令煞武内宿禰。時武内宿禰歎之曰:「吾元無貳心,以忠事君。今何禍矣?無罪而死耶?」於是,有壹伎直祖真根子者,其爲人能似武内宿禰之形,獨惜武内宿禰無罪而空死,便語武内宿禰曰:「今大臣以忠事君,既無黒心,天下共知。願密避之,參赴于朝,親辨無罪,而後死不晩也。且時人毎云,僕形似大臣。故今我代大臣而死之,以明大臣之丹心。」則伏劒自死焉。時武内宿禰,獨大悲之,竊避筑紫浮海,以從南海廻之,泊於紀水門,僅得逮朝,乃辨無罪。天皇則推問武内宿禰(與)甘美内宿禰。於是二人各堅執而爭之,是非難決。天皇勅之,令請神祇探湯。是以,武内宿禰與甘美内宿禰,共出于磯城川湄爲探湯。武内宿禰勝之,便執横刀以毆仆甘美内宿禰,遂欲煞矣。天皇勅之令釋,仍賜紀伊直等之祖也。
구년 여름 사월에 다케우치노스쿠네를 쓰쿠시에 보내어 백성을 살피게 하였다.
그때 다케우치노스쿠네의 아우 우마시우치노스쿠네가 형을 없애려 하여 곧 천황에게 참소하였다. "다케우치노스쿠네는 늘 천하를 바라는 마음이 있습니다. 이제 들으니 쓰쿠시에 있으면서 몰래 꾀하기를 '홀로 쓰쿠시를 떼어 내고 삼한을 불러 제게 조회하게 하여 마침내 천하를 차지하겠다' 한다 합니다."
이에 천황이 곧 사자를 보내어 다케우치노스쿠네를 죽이게 하였다.
그때 다케우치노스쿠네가 탄식하였다. "내가 본디 두 마음이 없이 충성으로 임금을 섬겼다. 이제 무슨 재앙인가. 죄 없이 죽는가."
이에 이키노아타이의 조상 마네코라는 이가 있어 그 사람됨이 다케우치노스쿠네의 모습과 잘 닮았다. 홀로 다케우치노스쿠네가 죄 없이 헛되이 죽는 것을 아까워하여 곧 다케우치노스쿠네에게 말하였다.
"이제 대신께서 충성으로 임금을 섬겨 이미 검은 마음이 없음은 천하가 함께 압니다. 바라건대 몰래 피하시어 조정에 나아가 몸소 죄 없음을 밝히시고, 그 뒤에 죽어도 늦지 않습니다. 또 그때 사람들이 늘 제 모습이 대신을 닮았다 합니다. 그러므로 이제 제가 대신을 대신하여 죽어 대신의 붉은 마음을 밝히겠습니다."
곧 칼에 엎드려 스스로 죽었다.
그때 다케우치노스쿠네가 홀로 크게 슬퍼하고 몰래 쓰쿠시를 피하여 바다에 떠 남해로 돌아 기이의 미나토에 닿았다. 겨우 조정에 이를 수 있어 이에 죄 없음을 밝혔다.
천황이 곧 다케우치노스쿠네와 우마시우치노스쿠네를 미루어 물었다. 이에 두 사람이 각각 굳게 잡아 다투니 옳고 그름을 가리기 어려웠다.
천황이 칙명하여 신들에게 청하여 구가타치(探湯)를 하게 하였다. 이 때문에 다케우치노스쿠네와 우마시우치노스쿠네가 함께 시키 냇가에 나가 구가타치를 하였다. 다케우치노스쿠네가 이겼다. 곧 큰 칼을 잡아 우마시우치노스쿠네를 쳐 넘어뜨리고 마침내 죽이려 하였다. 천황이 칙명하여 놓아주게 하고, 이어 기이노아타이들의 조상으로 삼았다.
15못을 만들다
十一年冬十月,作劔池、輕池、鹿垣池、廐坂池。
십일년 겨울 시월에 쓰루기 못과 가루 못과 시시가키 못과 우마야사카 못을 만들었다.
16가미나가히메
是歳,有人奏之曰:「日向國有孃子,名髪長媛,即諸縣君牛諸井之女也。是國色之秀者。」天皇悦之,心裏欲覓。
이해에 어떤 사람이 아뢰었다. "히무카국에 아가씨가 있어 이름을 가미나가히메라 하니 곧 모로가타노키미 우시모로이의 딸입니다. 이는 나라 안 미인 가운데 빼어난 이입니다."
천황이 기뻐하여 마음속으로 찾고자 하였다.
17사자를 보내어 부르다
十三年春三月,天皇遣專使以徴髪長媛。
십삼년 봄 삼월에 천황이 전담 사자를 보내어 가미나가히메를 불렀다.
18아들에게 주려 노래하다
秋九月中,髪長媛至自日向,便安置於桑津邑。爰皇子大鷦鷯尊,及見髪長媛,感其形之美麗,常有戀情。於是天皇知大鷦鷯尊感髪長媛而欲配。是以天皇宴于後宮之日,始喚髪長媛,因以上坐於宴席。時撝大鷦鷯尊,以指髪長媛,乃歌之曰:
가을 구월 중에 가미나가히메가 히무카에서 이르매 곧 구와쓰 마을에 두었다.
이에 황자 오사자키노미코토가 가미나가히메를 보고 그 모습의 아름다움에 반하여 늘 그리는 마음이 있었다. 이에 천황이 오사자키노미코토가 가미나가히메에게 반한 줄 알고 짝지어 주고자 하였다.
이 때문에 천황이 후궁에서 잔치하던 날 처음으로 가미나가히메를 불러 잔치 자리에 올려 앉혔다. 그때 오사자키노미코토를 향하여 가미나가히메를 가리키며 이에 노래하였다.
19노래 — 천황
伊奘阿藝怒、珥比蘆菟湄珥、比蘆菟濔珥、和餓喻區濔智珥、伽遇破志、波那多智麼那。辭豆曳羅波、比等未那等利、保菟曳波、等利委餓羅辭、濔菟遇利能、那伽菟曳能、府保語茂利、阿伽例蘆塢等咩、伊奘佐伽麼曳那。
「이자아기노 니히루쓰미니 히루쓰미니 와가유쿠미치니 가구하시 하나타치바나 시즈에라와 히토미나토리 호쓰에와 도리위가라시 미쓰구리노 나카쓰에노 후호고모리 아카레루오토메 이자사카바에나(伊奘阿藝怒、珥比蘆菟湄珥、比蘆菟濔珥、和餓喻區濔智珥、伽遇破志、波那多智麼那。辭豆曳羅波、比等未那等利、保菟曳波、等利委餓羅辭、濔菟遇利能、那伽菟曳能、府保語茂利、阿伽例蘆塢等咩、伊奘佐伽麼曳那)」
— 소리를 적은 것이라 뜻으로 옮기지 않는다.
20오사자키노미코토가 답하다
於是大鷦鷯尊蒙御歌,便知得賜髪長媛而大悦之,報歌曰:
이에 오사자키노미코토가 임금의 노래를 입고 곧 가미나가히메를 얻은 줄 알아 크게 기뻐하며 답하여 노래하였다.
21노래 — 오사자키노미코토
濔豆多摩蘆、豫佐濔能伊戒珥、奴那波區利、破陪鷄區辭羅珥、委愚比菟區、伽破摩多曳能、比辭餓羅能、佐辭鶏區辭羅珥、阿餓許居呂辭、伊夜于古珥辭氐。
「미즈타마루 요사미노이케니 누나와쿠리 하헤케쿠시라니 위구히쓰쿠 가와마타에노 히시가라노 사시케쿠시라니 아가코코로시 이야우코니시테(濔豆多摩蘆、豫佐濔能伊戒珥、奴那波區利、破陪鷄區辭羅珥、委愚比菟區、伽破摩多曳能、比辭餓羅能、佐辭鶏區辭羅珥、阿餓許居呂辭、伊夜于古珥辭氐)」
— 소리를 적은 것이라 뜻으로 옮기지 않는다.
22홀로 마주하여 노래하다
大鷦鷯尊與髪長媛,既得交慇懃,獨對髪長媛歌之曰:
오사자키노미코토가 가미나가히메와 이미 정을 나누고 홀로 가미나가히메를 마주하여 노래하였다.
23노래 — 오사자키노미코토
彌知能之利、古破儾塢等綿、塢伽未能語等、枳虚曳之介逎、阿比摩區羅摩區。
「미치노시리 고하다오토메 오카미노고토 기코에시카도 아히마쿠라마쿠(彌知能之利、古破儾塢等綿、塢伽未能語等、枳虚曳之介逎、阿比摩區羅摩區)」
— 소리를 적은 것이라 뜻으로 옮기지 않는다.
24또 노래하다
又歌之曰:
또 노래하였다.
25노래 — 오사자키노미코토
濔知能之利、古波儾塢等綿、阿羅素破儒、泥辭區塢之叙、于蘆波辭彌茂布。
「미치노시리 고하다오토메 아라소하즈 네시쿠오시조 우루하시미모후(濔知能之利、古波儾塢等綿、阿羅素破儒、泥辭區塢之叙、于蘆波辭彌茂布)」
— 소리를 적은 것이라 뜻으로 옮기지 않는다.
협주 1
一云,日向諸縣君牛仕于朝庭,年既耆耇之不能仕,仍致仕,退於本土,則貢上己女髪長媛。始至播磨,時天皇幸淡路嶋而遊獵之。於是天皇西望之,數十麋鹿浮海來之,便入于播磨鹿子水門。天皇謂左右曰:「其何麋鹿也?泛巨海多來。」爰左右共視而奇,則遣使令察。使者至見皆人也,唯以着角鹿皮爲衣服耳。間曰:「誰人也?」對曰:「諸縣君牛,是年耆之,雖致仕,不得忘朝,故以己女髪長媛而貢上矣。」天皇悦之,即喚令從御舩。是以時人號其着岸之處,曰鹿子水門也。凡水手曰鹿子,盖始起於是時也
일설에는 이러하다. 히무카의 모로가타노키미 우시가 조정에 섬기다가 나이가 이미 늙어 섬길 수 없게 되어 이에 벼슬을 그만두고 본토로 물러났다. 곧 제 딸 가미나가히메를 바쳐 올렸다. 처음 하리마에 이르렀을 때 천황이 아와지섬에 나아가 사냥하며 놀았다. 이에 천황이 서쪽을 바라보니 수십 마리 사슴이 바다에 떠서 왔다. 곧 하리마의 가코노미나토로 들어왔다. 천황이 좌우에게 일렀다. "저 무슨 사슴인가. 큰 바다에 떠서 많이 온다." 이에 좌우가 함께 보고 이상히 여겨 곧 사자를 보내어 살피게 하였다. 사자가 이르러 보니 다 사람이었다. 다만 뿔 달린 사슴 가죽을 입어 옷으로 삼았을 뿐이었다. 사이에 물었다. "누구냐." 답하였다. "모로가타노키미 우시는 나이가 늙어 비록 벼슬을 그만두었으나 조정을 잊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제 딸 가미나가히메를 바쳐 올립니다." 천황이 기뻐하여 곧 불러 임금의 배를 따르게 하였다. 이 때문에 그때 사람들이 그 언덕에 닿은 곳을 가코노미나토라 이름하였다. 무릇 사공을 가코라 하는 것이 아마 이때에 비롯되었다.
26바느질하는 여인이 오다
十四年春二月,百濟王貢縫衣工女,曰真毛津,是今來目衣縫之始祖也。
십사년 봄 이월에 백제 왕이 바느질하는 여인을 바쳤으니 마케쓰라 한다. 이가 이제 구메의 기누누이의 시조다.
27궁월군이 오다
是歳,弓月君自百濟來歸,因以奏之曰:「臣領己國之人夫百廿縣而歸化,然因新羅人之拒,皆留加羅國。」爰遣葛城襲津彦,而召弓月之人夫於加羅。然經三年而襲津彦不來焉。
이해에 궁월군(弓月君)이 백제에서 와서 귀순하였다. 이로 인하여 아뢰었다. "신이 제 나라 사람 백스무 현을 거느리고 귀화하려 하였습니다. 그러나 신라 사람이 막은 까닭에 다 가라국에 머물러 있습니다."
이에 가즈라키노소쓰히코를 보내어 궁월의 사람들을 가라에서 부르게 하였다. 그러나 세 해가 지나도록 소쓰히코가 오지 않았다.
28아직기가 오다
十五年秋八月壬戌朔丁卯,百濟王遣阿直岐,貢良馬二匹,即養於輕坂上廐,因以以阿直岐令掌飼,故號其養馬之處曰廐坂也。阿直岐亦能讀經典,即太子菟道稚郎子師焉。於是天皇問阿直岐曰:「如勝汝博士亦有耶?」對曰:「有王仁者,是秀也。」時遣上毛野君祖荒田別、巫於百濟,仍徴王仁也。其阿直岐者,阿直岐史之始祖也。
십오년 가을 팔월 임술 초하루 정묘일에 백제 왕이 아직기(阿直岐)를 보내어 좋은 말 두 필을 바쳤다. 곧 가루사카 위의 마구간에서 기르고, 이로 인하여 아직기에게 기르는 일을 맡게 하였다. 그러므로 그 말 기르는 곳을 우마야사카라 이름하였다.
아직기가 또한 경전을 잘 읽었다. 곧 태자 우지노와키이라쓰코의 스승이 되었다.
이에 천황이 아직기에게 물었다. "혹 너보다 나은 박사가 또 있느냐."
대답하였다. "왕인(王仁)이라는 이가 있으니 이가 빼어납니다."
그때 가미쓰케노노키미의 조상 아라타와케와 가무나기를 백제에 보내어 이어 왕인을 불렀다.
그 아직기는 아지키노후비토의 시조다.
29왕인이 오다
十六年春二月,王仁來之,則太子菟道稚郎子師之,習諸典籍於王仁,莫不通達。(故)所謂王仁者,是書首等之始祖也。
십육년 봄 이월에 왕인이 왔다. 곧 태자 우지노와키이라쓰코가 그를 스승으로 삼아 여러 전적을 왕인에게 배워 통달하지 못한 것이 없었다. 이른바 왕인은 후미노오비토들의 시조다.
30직지왕을 돌려보내다
是歳,百濟阿花王薨。天皇召直支王謂之曰:「汝返於國以嗣位。」仍且賜東韓之地而遣之。
이해에 백제 아화왕이 죽었다. 천황이 직지왕(直支王)을 불러 일렀다. "너는 나라로 돌아가 자리를 이어라." 이어 또 동한(東韓)의 땅을 주어 보냈다.
협주 1
東韓者,甘羅城、高難城、爾林城是也
동한이란 감라성(甘羅城)·고난성(高難城)·이림성(爾林城)이 이것이다.
31신라를 쳐 길을 열다
八月,遣平羣木菟宿禰、的戸田宿禰於加羅,仍授精兵詔之曰:「襲津彦久之不還,必由新羅人拒而滞之。汝等急往之,撃新羅,披其道路。」於是木菟宿禰等進精兵,莅于新羅之境。新羅王愕之,服其罪,乃率弓月之人夫,與襲津彦共來焉。
팔월에 헤구리노쓰쿠노스쿠네와 이쿠하노토다노스쿠네를 가라에 보냈다. 이어 날랜 군사를 주며 조를 내렸다. "소쓰히코가 오래도록 돌아오지 않는 것은 반드시 신라 사람이 막아 지체된 까닭이다. 너희는 급히 가서 신라를 치고 그 길을 열어라."
이에 쓰쿠노스쿠네들이 날랜 군사를 이끌고 신라의 지경에 임하였다. 신라 왕이 놀라 그 죄에 복종하였다. 이에 궁월의 사람들을 거느리고 소쓰히코와 함께 왔다.
32구즈 사람이 술을 바치다
十九年冬十月戊戌朔,幸吉野宮。時國樔人來朝之,因以醴酒獻于天皇,而歌之曰:
십구년 겨울 시월 무술 초하루에 요시노노미야에 나아갔다. 그때 구즈(國樔) 사람이 와서 조회하였다. 이로 인하여 단술을 천황에게 바치고 노래하였다.
33노래 — 구즈 사람
伽辭能輔珥、豫區周塢菟區利、豫區周珥、伽綿蘆淤朋濔枳、宇摩羅珥、枳虚之茂知塢勢、磨呂俄智。
「가시노후니 요쿠스오쓰쿠리 요쿠스니 가메루오호미키 우마라니 기코시모치오세 마로가치(伽辭能輔珥、豫區周塢菟區利、豫區周珥、伽綿蘆淤朋濔枳、宇摩羅珥、枳虚之茂知塢勢、磨呂俄智)」
— 소리를 적은 것이라 뜻으로 옮기지 않는다.
34구즈 사람의 풍속
歌之既訖,則打口以仰咲。今國樔獻土毛之日,歌訖即撃口仰咲者,蓋上古之遣則也。夫國樔者,其爲人甚淳朴也,毎山取果食,亦煮蝦蟆爲上味,名曰毛瀰。其土自京東南之,隔山而居于吉野河上,峯嶮谷深,道路狹巘,故雖不遠於京,本希朝來。然自此之後,屡參赴以獻土毛。其土毛者,栗、菌及年魚之類焉。
노래가 끝나매 곧 입을 치며 우러러 웃었다. 이제 구즈가 토산물을 바치는 날에 노래가 끝나면 곧 입을 치고 우러러 웃는 것은 아마 옛적에 남은 법일 것이다.
무릇 구즈는 그 사람됨이 몹시 순박하다. 늘 산에서 열매를 따 먹고 또 개구리를 삶아 좋은 맛으로 삼으니 이름을 모미라 한다.
그 땅은 서울에서 동남으로 산을 사이에 두고 요시노 냇가에 산다. 봉우리가 험하고 골이 깊으며 길이 좁고 가파르다. 그러므로 서울에서 멀지 않으나 본디 조회하러 오는 일이 드물었다. 그러나 이 뒤로는 자주 나아와 토산물을 바쳤다. 그 토산물은 밤과 버섯과 은어 따위다.
35아지노오미가 오다
廿年秋九月,倭漢直祖阿知使主、其子都加使主,並率己之黨類十七縣而來歸焉。
이십년 가을 구월에 야마토노아야노아타이의 조상 아지노오미(阿知使主)와 그 아들 쓰카노오미(都加使主)가 아울러 제 무리 열일곱 현을 거느리고 와서 귀순하였다.
36오스미노미야
廿二年春三月甲申朔戊子,天皇幸難波,居於大隅宮。
이십이년 봄 삼월 갑신 초하루 무자일에 천황이 나니와에 나아가 오스미노미야에 머물렀다.
37에히메가 고향을 그리다
丁酉,登高臺而遠望。時妃兄媛侍之,望西以大歎。於是天皇問兄媛曰:「何爾歎之甚也?」對曰:「近日妾有戀父母之情,便因西望而自歎矣。冀暫還之,得省親歟。」爰天皇愛兄媛篤温清之情,則謂之曰:「爾不視二親,既經多年,還欲定省,於理灼然。」則聽之,仍喚淡路御原之海人八十人爲水手,送于吉備。
정유일에 높은 대에 올라 멀리 바라보았다. 그때 비 에히메가 모시다가 서쪽을 바라보고 크게 탄식하였다.
이에 천황이 에히메에게 물었다. "어찌 네 탄식이 심하냐."
대답하였다. "요사이 제게 어버이를 그리는 마음이 있어 곧 서쪽을 바라보다 절로 탄식하였습니다. 바라건대 잠시 돌아가 어버이를 살필 수 있게 하소서."
이에 천황이 에히메가 어버이를 도타이 모시는 마음을 어여삐 여겨 곧 일렀다. "네가 어버이를 뵙지 못한 지 이미 여러 해가 지났다. 돌아가 살피고자 함이 이치에 환하다."
곧 들어주고, 이어 아와지의 미하라 어부 여든 사람을 불러 사공으로 삼아 기비로 보냈다.
협주 1
兄媛者,吉備臣祖御友別之妹也
에히메는 기비노오미의 조상 미토모와케의 누이다.
38배를 바라보며 노래하다
夏四月,兄媛自大津發舩而往之。天皇居高臺,望兄媛之舩以歌曰:
여름 사월에 에히메가 오쓰에서 배를 띄워 갔다. 천황이 높은 대에 있으면서 에히메의 배를 바라보고 노래하였다.
39노래 — 천황
阿波旎辭摩、異椰敷多那羅珥、阿豆枳辭摩、異椰敷多那羅珥、豫呂辭枳辭摩之魔、儾伽多佐例阿羅智之、吉備那流伊慕塢、阿比瀰菟流慕能。
「아와지시마 이야후타나라비 아즈키시마 이야후타나라비 요로시키시마시마 다카타사레아라치시 기비나루이모오 아히미쓰루모노(阿波旎辭摩、異椰敷多那羅珥、阿豆枳辭摩、異椰敷多那羅珥、豫呂辭枳辭摩之魔、儾伽多佐例阿羅智之、吉備那流伊慕塢、阿比瀰菟流慕能)」
— 소리를 적은 것이라 뜻으로 옮기지 않는다.
40아와지와 기비에 놀다
秋九月辛巳朔丙戌,天皇狩于淡路嶋。是嶋者横海,在難波之西,峯巌紛錯,陵谷相續,芳草薈蔚,長瀾潺湲,亦糜鹿鳧鴈多在其嶋,故乘輿屡遊之。天皇便自淡路轉以幸吉備,遊于小豆嶋。
가을 구월 신사 초하루 병술일에 천황이 아와지섬에서 사냥하였다. 이 섬은 바다를 가로질러 나니와의 서쪽에 있다. 봉우리와 바위가 어지러이 섞이고 언덕과 골이 서로 이어졌으며, 향기로운 풀이 우거지고 긴 물결이 잔잔히 흐른다. 또한 사슴과 오리와 기러기가 그 섬에 많이 있다. 그러므로 임금의 수레가 자주 놀았다.
천황이 곧 아와지에서 옮겨 기비에 나아가 쇼도섬에서 놀았다.
41기비를 자식들에게 나누어 봉하다
庚寅,亦移居於葉田葦守宮。時御友別參赴之,則以其兄弟子孫,爲膳夫而奉饗焉。天皇於是看御友別謹惶侍奉之状,而有悦情,因以割吉備國封其子等也。則分川嶋縣封長子稻速別,是下道臣之始祖也。次以上道縣封中子仲彦,是上道臣、香屋臣之始祖也。次以三野縣封弟彦,是三野臣之始祖也。復以波區藝縣封御友別弟鴨別,是笠臣之祖也。即以苑縣封兄浦凝別,是苑臣之始祖也。即以織部縣賜兄媛。是以其子孫於今在于吉備國,是其緣也。
경인일에 또 하다의 아시모리노미야로 옮겨 머물렀다. 그때 미토모와케가 나아와 곧 그 형제와 자손으로 요리 맡은 이를 삼아 잔치를 받들었다.
천황이 이에 미토모와케가 삼가고 두려워하며 모시는 모습을 보고 기뻐하는 마음이 있었다. 이로 인하여 기비국을 갈라 그 아들들에게 봉하였다.
곧 가와시마현을 나누어 맏아들 이나하야와케에게 봉하니 이가 시모쓰미치노오미의 시조다. 다음으로 가미쓰미치현을 가운데 아들 나카쓰히코에게 봉하니 이가 가미쓰미치노오미와 가야노오미의 시조다. 다음으로 미노현을 아우 오토히코에게 봉하니 이가 미노노오미의 시조다. 다시 하쿠기현을 미토모와케의 아우 가모와케에게 봉하니 이가 가사노오미의 조상이다. 곧 소노현을 형 우라코리와케에게 봉하니 이가 소노노오미의 시조다. 곧 오리베현을 에히메에게 주었다.
이 때문에 그 자손이 이제도 기비국에 있는 것이 이 때문이다.
협주 1
葉田,此云簸𡌈
하다(葉田)는 하다라 읽는다.
42목만치가 나라 정사를 잡다
廿五年,百濟直支王薨,即子久爾辛立爲王。王年幼,木滿致執國政,與王母相婬,多行無禮。天皇聞而召之。
이십오년에 백제 직지왕이 죽고 곧 아들 구이신(久爾辛)이 즉위하였다. 왕이 나이 어려 목만치(木滿致)가 나라 정사를 잡고 왕의 어머니와 서로 음란하여 무례한 짓을 많이 하였다. 천황이 듣고 불렀다.
협주 1
百濟記云,木滿致者,是木羅斤資討新羅時,娶其國婦而所生也。以其父功專於任那,來入我國,往還貴國,承制天朝,執我國政,權重當世。然天皇聞其暴,召之
백제기에 이르기를, 목만치는 목라근자가 신라를 칠 때 그 나라 여인에게 장가들어 낳은 아들이다. 그 아비의 공으로 임나를 오로지하다가 우리 나라에 들어와 귀국을 오가며 천조의 제도를 받들었다. 우리 나라 정사를 잡아 권세가 당대에 무거웠다. 그러나 천황이 그 사나움을 듣고 불렀다 한다.
43고려의 표문을 찢다
廿八年秋九月,高麗王遣使朝貢,因以上表,其表曰:「高麗王教日本國也。」時太子菟道稚郎子讀其表,怒之,責高麗之使以表状無禮,則破其表。
이십팔년 가을 구월에 고려 왕이 사자를 보내어 조공하였다. 이로 인하여 표를 올렸는데 그 표에 이르기를 "고려 왕이 일본국에 가르친다(高麗王教日本國也)" 하였다.
그때 태자 우지노와키이라쓰코가 그 표를 읽고 노하여, 표의 사연이 무례하다 하여 고려의 사자를 꾸짖고 곧 그 표를 찢었다.
44가라노를 태워 거문고를 만들다
卅一年八月,詔羣卿曰:「官舩名枯野者,伊豆國所貢之舩也。是朽之不堪用,然久爲官用,功不可忘。何其舩名勿絶而得傅後葉焉?」羣卿便被詔以令有司,取其舩材爲薪而燒鹽。於是得五百籠鹽,則施之周賜諸國,因令造舩。是以諸國一時貢上五百舩,悉集於武庫水門。當是時,新羅調使共宿武庫。爰於新羅停,忽失火,即引之及于聚舩,而多舩見焚。由是責新羅人。新羅王聞之,讋然大驚,乃貢能匠者,是猪名部等之始祖也。初,枯野舩爲鹽薪燒之日,有餘燼,則奇其不燒而獻之。天皇異以令作琴,其音鏗鏘而遠聆。是時天皇歌之曰:
삼십일년 팔월에 여러 대신에게 조를 내렸다. "관선 가운데 이름이 가라노라 하는 것은 이즈국이 바친 배다. 이것이 썩어 쓸 수 없다. 그러나 오래 관에서 썼으니 공을 잊을 수 없다. 어찌하면 그 배 이름을 끊이지 않게 하여 뒷세상에 전할 수 있겠는가."
여러 대신이 곧 조를 받아 맡은 관청에 명하여 그 뱃재목을 가져다 땔감으로 삼아 소금을 굽게 하였다. 이에 소금 오백 섬을 얻어 곧 여러 나라에 두루 나누어 주고, 이로 인하여 배를 짓게 하였다.
이 때문에 여러 나라가 한꺼번에 배 오백 척을 바쳐 다 무코의 미나토에 모았다.
이때 신라의 조 바치는 사자가 함께 무코에 묵었다. 이에 신라 사람 묵는 데서 홀연히 불이 나 곧 번져 모아 둔 배에 미쳐 많은 배가 탔다. 이로 말미암아 신라 사람을 꾸짖었다. 신라 왕이 이를 듣고 두려워 크게 놀라 이에 솜씨 좋은 장인을 바쳤다. 이가 이나베들의 시조다.
처음에 가라노 배를 소금 땔감으로 태우던 날 타다 남은 것이 있었다. 곧 그것이 타지 않은 것을 기이히 여겨 바쳤다. 천황이 이상히 여겨 거문고를 만들게 하니 그 소리가 쟁쟁하여 멀리 들렸다. 이때 천황이 노래하였다.
45노래 — 천황
訶羅怒烏、之褒珥椰枳、之餓阿摩離、虚等珥菟句離、訶枳譬句椰、由羅能斗能、斗那訶能異句離珥、敷例多菟、那豆能紀能佐々椰々。
「가라노오 시호니야키 시가아마리 고토니쓰쿠리 가키히쿠야 유라노토노 도나카노이쿠리니 후레타쓰 나즈노키노사야사야(訶羅怒烏、之褒珥椰枳、之餓阿摩離、虚等珥菟句離、訶枳譬句椰、由羅能斗能、斗那訶能異句離珥、敷例多菟、那豆能紀能佐々椰々)」
— 소리를 적은 것이라 뜻으로 옮기지 않는다.
46오나라에 바느질 여인을 구하러 보내다
卅七年春二月戊午朔,遣阿知使主、都加使主於呉,令求縫工女。爰阿知使主等,渡高麗國欲逹于呉,則至高麗,更不知道路,乞知道者於高麗。高麗王乃副久禮波、久禮志二人爲導者,由是得通呉。呉王於是與工女兄媛、弟媛、呉織、穴織,四婦女。
삼십칠년 봄 이월 무오 초하루에 아지노오미와 쓰카노오미를 오(呉)나라에 보내어 바느질하는 여인을 구하게 하였다.
이에 아지노오미들이 고려국을 건너 오나라에 이르고자 하였다. 곧 고려에 이르렀으나 다시 길을 알지 못하여 고려에 길 아는 이를 빌었다. 고려 왕이 이에 구례파(久禮波)와 구례지(久禮志) 두 사람을 딸려 길잡이로 삼았다. 이로 말미암아 오나라에 통할 수 있었다.
오나라 왕이 이에 바느질하는 여인 에히메와 오토히메와 구레하토리와 아나하토리 네 여인을 주었다.
47신제도원이 오다
卅九年春二月,百濟直支王,遣其妹新齊都媛以令任。爰新齊都媛率七婦女而來歸焉。
삼십구년 봄 이월에 백제 직지왕이 그 누이 신제도원(新齊都媛)을 보내어 섬기게 하였다. 이에 신제도원이 일곱 여인을 거느리고 와서 귀순하였다.
48두 아들에게 묻다
四十年春正月辛丑朔戊申,天皇召大山守命、大鷦鷯尊,問之曰:「汝等者愛子耶?」對言:「甚愛也。」亦問之:「長與少孰尤焉?」大山守命對言:「不逮于長子。」於是天皇有不悦之色。時大鷦鷯尊預察天皇之色,以對言:「長者多經寒暑,既爲成人,更無悒矣。唯少子者,未知其成不,是以少子甚憐之。」天皇大悦曰:「汝言寔合朕之心。」是時,天皇常有立菟道稚郎子爲太子之情,然欲知二皇子之意,故發是問,是以不悦大守山命之對言也。
사십년 봄 정월 신축 초하루 무신일에 천황이 오야마모리노미코토와 오사자키노미코토를 불러 물었다. "너희는 자식을 사랑하느냐."
대답하였다. "몹시 사랑합니다."
또 물었다. "맏이와 어린 것 가운데 누가 더하냐."
오야마모리노미코토가 대답하였다. "맏아들에 미치지 못합니다."
이에 천황이 기뻐하지 않는 낯빛이 있었다.
그때 오사자키노미코토가 미리 천황의 낯빛을 살피고 대답하였다. "맏이는 추위와 더위를 많이 지나 이미 어른이 되었으니 다시 걱정이 없습니다. 오직 어린 자식은 그 자라날지 아닐지를 알지 못합니다. 이 때문에 어린 자식이 몹시 가엾습니다."
천황이 크게 기뻐하며 말하였다. "네 말이 참으로 짐의 마음에 맞는다."
이때 천황이 늘 우지노와키이라쓰코를 태자로 세울 마음이 있었다. 그러나 두 황자의 뜻을 알고자 하여 이 물음을 낸 것이다. 이 때문에 오야마모리노미코토의 대답을 기뻐하지 않았다.
49후사를 세우다
甲子,立菟道稚郎子爲嗣。即日任大守山命令掌山川林野,以大鷦鷯尊太子輔之,令知國事。
갑자일에 우지노와키이라쓰코를 세워 뒤를 잇게 하였다. 그날로 오야마모리노미코토에게 산과 내와 숲과 들을 맡게 하고, 오사자키노미코토를 태자의 도움으로 삼아 나라 일을 알게 하였다.
50백열에 죽다
四十一年春二月甲午朔戊申,天皇崩于明宮,時年一百一十歳。
사십일년 봄 이월 갑오 초하루 무신일에 천황이 아키라노미야에서 죽었다. 그때 나이 백열 살이었다.
협주 1
一云,崩于大隅宮
일설에는 오스미노미야에서 죽었다 한다.
51바느질 여인이 이르다
是月,阿知使主等自呉至筑紫。時胸形大神有乞工女等,故以兄媛奉於胸形大神,是則今在筑紫國御使君之祖支。既而率其三婦女以至津國,及于武庫,而天皇崩之不及,即獻于大鷦鷯尊。是女人等之後,今呉衣縫、蚊屋衣縫是也。
이달에 아지노오미들이 오나라에서 쓰쿠시에 이르렀다. 그때 무나카타노오카미가 바느질하는 여인을 달라 하였다. 그러므로 에히메를 무나카타노오카미에게 바쳤다. 이가 곧 이제 쓰쿠시국에 있는 미쓰카이노키미의 조상이다.
이윽고 그 세 여인을 거느리고 쓰노쿠니에 이르러 무코에 미쳤으나 천황이 죽어 미치지 못하였다. 곧 오사자키노미코토에게 바쳤다. 이 여인들의 뒤가 이제 구레노키누누이와 가야노키누누이가 이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