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덕천황仁徳天皇
1형제가 자리를 사양하다
大鷦鷯天皇。譽田天皇之第四子也。母曰仲姫命。五百城入彦皇子之孫也。天皇幼而聰明叡智。貌容美麗。及壯仁寛慈惠。四十一年春二月。譽田天皇崩。時太子菟道稚郎子。讓位于大鷦鷯尊、未即帝位。仍諮大鷦鷯尊。夫君天下以治萬民者。盖之如天。容之如地。上有驩心。以使百姓。百姓欣然。天下安矣。今我也弟之。且文獻不足。何敢繼嗣位登天業乎。大王者風姿岐嶷。仁孝達聆。以齒且長。足爲天下之君。其先帝立我爲太子。豈有能才乎。唯愛之者也。亦奉宗廟社稷重。事也。僕之不侫。不足以稱。夫昆上而季下。聖君而愚臣古今之常典焉。願王勿疑。須即帝位。我則爲臣之助耳。大鷦鷯尊對言。先皇謂。皇位者一日之不可空。故預選明徳。立王爲貳。祚之以嗣。授之以民。崇其寵章。令聞於國。我雖不賢。豈棄先帝之命。輙從弟王之願乎。固辭不承。各相讓之。是時額田大中彦皇子。
오사자키천황(大鷦鷯天皇)은 호무타천황의 넷째 아들이다. 어머니는 나카쓰히메노미코토라 하니 이오키이리비코 황자의 손녀다. 천황이 어려서 총명하고 슬기로우며 얼굴과 모습이 아름다웠다. 장성하매 어질고 너그러우며 자애롭고 은혜로웠다.
사십일년 봄 이월에 호무타천황이 죽었다. 그때 태자 우지노와키이라쓰코가 오사자키노미코토에게 자리를 사양하고 아직 임금 자리에 오르지 않았다. 이어 오사자키노미코토에게 말하였다.
"무릇 천하에 임금이 되어 만민을 다스리는 이는 덮기를 하늘같이 하고 담기를 땅같이 합니다. 위에 기뻐하는 마음이 있어야 백성을 부리고, 백성이 기뻐하여야 천하가 편안합니다. 이제 저는 아우요 또 글과 배움이 넉넉하지 못합니다. 어찌 감히 자리를 이어 하늘의 업에 오르겠습니까.
대왕께서는 풍채와 자태가 우뚝하시고 어질고 효성스러우며 듣고 통달하십니다. 나이도 또한 위이시니 천하의 임금이 되기에 넉넉합니다. 앞 임금이 저를 태자로 세우신 것이 어찌 재주가 있어서였겠습니까. 다만 사랑하셨을 뿐입니다. 또 종묘와 사직을 받드는 것은 무거운 일입니다. 제가 재주 없어 일컫기에 모자랍니다.
무릇 형이 위에 있고 아우가 아래에 있으며 임금이 성스럽고 신하가 어리석은 것은 예나 이제나 떳떳한 법입니다. 바라건대 왕께서는 의심하지 마시고 모름지기 임금 자리에 오르소서. 저는 곧 신하가 되어 도울 뿐입니다."
오사자키노미코토가 대답하였다. "앞 임금이 이르시기를 '임금 자리는 하루도 비울 수 없다' 하시고, 그러므로 미리 밝은 덕을 가려 왕을 버금으로 세워 복을 이으시고 백성을 주시며 그 사랑하는 표를 높여 나라에 들리게 하셨다. 내가 비록 어질지 못하나 어찌 앞 임금의 명을 버리고 문득 아우 왕의 바람을 좇겠는가."
굳이 사양하고 받지 않아 각각 서로 사양하였다.
이때 누카타노오나카쓰히코 황자가
2야마토의 둔전을 두고 다투다
將掌倭屯田及屯倉。而謂其屯田司出雲臣之祖淤宇宿禰曰。是屯田者。自本山守地。是以今吾將治矣。爾之不可掌。時淤宇宿禰啓于皇太子。皇太子謂之曰。汝便啓大鷦鷯尊。於是淤宇宿禰啓大鷦鷯尊曰。臣所任屯田者大中彦皇子距不令治。大鷦鷯尊問倭直祖麻呂曰。倭屯田者元謂山守地。是如何。對言。臣之不知。唯臣弟吾子篭知也。適是時。吾子篭遣於韓國。而未還。爰大鷦鷯尊謂淤宇曰。爾躬往於韓國。以喚吾子篭。其兼日夜而急徃。乃差淡路之海人八十。爲水手。爰淤宇往于韓國。即率子篭而來之。因問倭屯田。對言。傳聞之。於纒向玉城宮御宇天皇之世。科太子大足彦尊定倭屯田也。勅旨。凡倭屯田者。毎御宇帝皇之屯田也。其雖帝皇之子。非御宇者不得掌矣。是謂山守地非之也。時大鷦鷯尊遣吾子篭於額田大中彦皇子而令知状。大中彦皇子更無如何焉。
야마토의 둔전(屯田)과 둔창을 맡으려 하였다. 그 둔전 맡은 이즈모노오미의 조상 오우노스쿠네에게 일렀다. "이 둔전은 본디 산지기의 땅이다. 이 때문에 이제 내가 다스리겠다. 네가 맡아서는 안 된다."
그때 오우노스쿠네가 황태자에게 아뢰었다. 황태자가 일렀다. "너는 곧 오사자키노미코토에게 아뢰어라."
이에 오우노스쿠네가 오사자키노미코토에게 아뢰었다. "신이 맡은 둔전을 오나카쓰히코 황자가 막아 다스리지 못하게 합니다."
오사자키노미코토가 야마토노아타이의 조상 마로에게 물었다. "야마토의 둔전을 본디 산지기의 땅이라 한다니 어찌 된 일이냐."
대답하였다. "신은 알지 못합니다. 오직 신의 아우 아고코가 압니다."
마침 이때 아고코가 한국(韓國)에 보내져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이에 오사자키노미코토가 오우에게 일렀다. "네가 몸소 한국에 가서 아고코를 불러 오너라. 밤낮을 아울러 급히 가라." 이에 아와지의 어부 여든 사람을 뽑아 사공으로 삼았다.
이에 오우가 한국에 가서 곧 아고코를 데리고 왔다. 이어 야마토의 둔전을 물었다.
대답하였다. "전해 듣기로 마키무쿠의 다마키노미야에서 천하를 다스리던 천황 때에 태자 오타라시히코노미코토에게 명하여 야마토의 둔전을 정하게 하셨습니다. 칙지에 이르기를 '무릇 야마토의 둔전은 천하를 다스리는 임금마다의 둔전이다. 비록 임금의 아들이라도 천하를 다스리는 이가 아니면 맡을 수 없다' 하셨습니다. 이것을 산지기의 땅이라 이르는 것은 그릅니다."
그때 오사자키노미코토가 아고코를 누카타노오나카쓰히코 황자에게 보내어 사정을 알게 하였다. 오나카쓰히코 황자가 다시 어찌하지 못하였다.
3오야마모리 황자가 물에 빠지다
乃知其惡。而赦之勿罪。然後大山守皇子毎恨先帝廢之非立。而重有是怨。則謀之曰。我殺太子遂登帝位。爰大鷦鷯尊預聞其謀。密告太子。備兵令守。時太子設兵待之。大山守皇子不知其備兵。獨領數百兵士。夜半發而行之。會明詣菟道。將渡河。時太子服布袍。取楫櫓。密接度子。以載大山守皇子而濟。至于河中。誂度子蹈船而傾。於是大山守皇子墮河而沒。更浮流之。歌曰。知破揶臂苔。于施能和多利珥。佐烏刀利珥。破揶鷄務臂苔辭。和餓毛胡珥虚務。然伏兵多起。不得著岸。遂沈而死焉。令求其屍。泛於考羅濟。時太子視其屍。歌之曰。智破揶臂等。于泥能和多利珥。和多利涅珥。多■屡。阿豆瑳由瀰。摩由彌。伊枳羅牟苔。虚虚呂破望閇耐。伊斗羅牟苔。虚虚呂破望閇耐。望苔弊破。枳濔烏於望臂泥。須惠弊破。伊暮烏於望比泥。伊羅那鷄區。曾虚珥於望比。伽那志鷄區。虚虚珥於望臂。
이에 그 잘못을 알고 용서하여 죄주지 않았다.
그런 뒤에 오야마모리 황자가 늘 앞 임금이 저를 물리치고 세우지 않은 것을 한하다가 거듭 이 원망이 있어 곧 꾀하였다. "내가 태자를 죽이고 마침내 임금 자리에 오르겠다."
이에 오사자키노미코토가 미리 그 꾀를 듣고 몰래 태자에게 알려 군사를 갖추어 지키게 하였다. 그때 태자가 군사를 두고 기다렸다.
오야마모리 황자가 그 군사 갖춘 것을 알지 못하고 홀로 수백 군사를 거느려 밤중에 떠나 갔다. 날이 밝을 무렵 우지에 이르러 강을 건너려 하였다.
그때 태자가 베옷을 입고 노와 삿대를 잡아 몰래 나룻배 사공에 섞였다. 오야마모리 황자를 태우고 건너다가 강 가운데 이르러 사공을 시켜 배를 밟아 기울이게 하였다.
이에 오야마모리 황자가 강에 떨어져 잠겼다가 다시 떠 흘러가며 노래하였다.
「지하야히토 우지노와타리니 사오토리니 하야켐히토시 와가모코니콤(知破揶臂苔。于施能和多利珥。佐烏刀利珥。破揶鷄務臂苔辭。和餓毛胡珥虚務)」
그러나 숨은 군사가 많이 일어나 언덕에 닿지 못하였다. 마침내 잠겨 죽었다.
그 주검을 찾게 하니 고라의 나루에 떠올랐다. 그때 태자가 그 주검을 보고 노래하였다.
「지하야히토 우지노와타리니 와타리제니 다테루(智破揶臂等。于泥能和多利珥。和多利涅珥。多■屡) 아즈사유미 마유미 이키라무토 고코로와모헤도 이토라무토 고코로와모헤도 모토헤와 기미오오모히데 스에헤와 이모오오모히데 이라나케쿠 소코니오모히 가나시케쿠 고코니오모히(阿豆瑳由瀰。摩由彌。伊枳羅牟苔。虚虚呂破望閇耐。伊斗羅牟苔。虚虚呂破望閇耐。望苔弊破。枳濔烏於望臂泥。須惠弊破。伊暮烏於望比泥。伊羅那鷄區。曾虚珥於望比。伽那志鷄區。虚虚珥於望臂)」
4태자가 스스로 죽다
伊枳羅儒層區屡。阿豆瑳由瀰。摩由瀰。乃葬于那羅山。既而興宮室於菟道而居之。猶由讓位於大鷦鷯尊。以久不即皇位。爰皇位空之既經三載。時有海人。齎鮮魚之苞苴獻于菟道宮也。太子令海人曰。我非天皇。乃返之令進難波。大鷦鷯尊亦返以令獻菟道。於是海人之苞苴、■於往還。更返之取他鮮魚而獻焉。讓如前日。鮮魚亦。海人苦於屡還。乃棄鮮魚而哭。故諺曰。有海人耶。因己物以泣。其是之縁也。太子曰。我知不可奪兄王之志。豈久生之煩天下乎。乃自死焉。時大鷦鷯尊聞太子薨以驚之。從難波馳之。到菟道宮。爰太子薨之經三日。時大鷦鷯尊■■■哭。不知所如。乃解髮跨屍。以三乎曰。我弟皇子。乃應時而活。自起以居。爰大鷦鷯尊語太子曰。悲兮。惜兮。何所以歟自逝之。若死者有知。先帝何謂我乎。乃太子啓兄王曰。天命也。誰能留焉。若有向天皇之御所。具奏兄王聖之且有讓矣。
「이키라즈소쿠루 아즈사유미 마유미(伊枳羅儒層區屡。阿豆瑳由瀰。摩由彌)」
— 위 세 노래는 다 소리를 적은 것이라 뜻으로 옮기지 않는다.
이에 나라산에 장사 지냈다.
이윽고 우지에 궁실을 일으켜 머물렀다. 오히려 오사자키노미코토에게 자리를 사양하느라 오래도록 임금 자리에 오르지 않았다. 이에 임금 자리가 빈 지 이미 세 해가 지났다.
그때 어부가 있어 싱싱한 물고기 꾸러미를 우지노미야에 바쳤다. 태자가 어부에게 명하였다. "나는 천황이 아니다." 이에 돌려보내어 나니와에 올리게 하였다. 오사자키노미코토도 또한 돌려보내어 우지에 바치게 하였다.
이에 어부의 꾸러미가 오가는 사이에 상하였다. 다시 돌아가 다른 싱싱한 물고기를 가져다 바쳤으나 사양하기가 지난날과 같았다. 싱싱한 물고기가 또 상하였다. 어부가 자주 돌아다니기에 괴로워 이에 물고기를 버리고 울었다. 그러므로 속담에 "어부가 있어 제 물건 때문에 운다" 하는 것이 이 때문이다.
태자가 말하였다. "내가 형님 왕의 뜻을 빼앗을 수 없음을 안다. 어찌 오래 살아 천하를 번거롭게 하겠는가." 이에 스스로 죽었다.
그때 오사자키노미코토가 태자가 죽었다는 말을 듣고 놀라 나니와에서 달려 우지노미야에 이르렀다. 이에 태자가 죽은 지 사흘이 지났다.
그때 오사자키노미코토가 가슴을 치며 울부짖어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하였다. 이에 머리를 풀고 주검을 타고 앉아 세 번 불렀다. "내 아우 황자여."
곧 그때 살아나 스스로 일어나 앉았다. 이에 오사자키노미코토가 태자에게 말하였다. "슬프다, 아깝다. 어찌하여 스스로 갔느냐. 만약 죽은 이에게 앎이 있다면 앞 임금이 나를 무어라 하시겠느냐."
이에 태자가 형님 왕에게 아뢰었다. "하늘의 명입니다. 누가 능히 머물게 하겠습니까. 만약 천황 계신 곳으로 향하거든 형님 왕이 성스러우시고 또 사양하심이 있었다고 갖추어 아뢰겠습니다.
5야타 황녀를 드리고 죽다
然聖王聞我死。以急馳遠路。豈得無勞乎。乃進同母妹八田皇女曰。雖不足納采。僅充掖庭之數。乃且伏棺而薨。於是大鷦鷯尊素服。爲之發哀。哭之甚慟。仍葬於菟道山上。
그러나 성스러운 왕께서 제가 죽었다는 말을 듣고 급히 먼 길을 달려오셨으니 어찌 수고가 없으시겠습니까."
이에 동복 누이 야타 황녀를 드리며 말하였다. "비록 예를 갖추어 드리기에 모자라나 겨우 궁의 수를 채우소서."
이에 또 널에 엎드려 죽었다.
이에 오사자키노미코토가 흰옷을 입고 슬픔을 드러내어 울기를 몹시 서럽게 하였다. 이어 우지산 위에 장사 지냈다.
6자리에 오르다
元年春正月丁丑朔己卯。大鷦鷯尊即天皇位。尊皇后曰皇太后。都難波。是謂高津宮。即宮垣室屋弗堊色也。桶梁柱楹弗藻餝也。茅茨之蓋弗割齊也。此不以私曲之故留耕績之時者也。初天皇生日。木菟入于産殿。明旦譽田天皇喚大臣武内宿禰。語之曰。是何瑞也。大臣對言。吉祥也。復當昨日臣妻産時。鷦鷯入于産屋。是亦異焉。爰天皇曰。今朕之子與大臣之子同日共産。並有瑞。是天之表焉。以爲取其鳥名。各相易名子。爲後葉之契也。則取鷦鷯名。以名太子。曰大鷦鷯皇子。取木菟名號大臣之子。曰木菟宿禰。是平群臣之始祖也。是年也。太歳癸酉。
원년 봄 정월 정축 초하루 기묘일에 오사자키노미코토가 천황의 자리에 올랐다. 황후를 높여 황태후라 하였다. 나니와에 도읍하니 이를 다카쓰노미야라 한다.
곧 궁의 담과 방과 집을 흰 흙으로 칠하지 않고, 서까래와 들보와 기둥을 무늬로 꾸미지 않으며, 띠로 인 지붕을 가지런히 자르지 않았다. 이는 사사로운 일 때문에 밭 갈고 길쌈할 때를 빼앗지 않으려 함이었다.
처음 천황이 나던 날 부엉이가 산실에 들었다. 이튿날 아침 호무타천황이 대신 다케우치노스쿠네를 불러 말하였다. "이 무슨 조짐인가."
대신이 대답하였다. "길한 조짐입니다. 또 마침 어제 신의 아내가 낳을 때 굴뚝새가 산실에 들었으니 이 또한 남다릅니다."
이에 천황이 말하였다. "이제 짐의 아들과 대신의 아들이 같은 날 함께 나고 아울러 조짐이 있으니 이는 하늘의 표다. 그 새 이름을 따서 각각 서로 아들의 이름을 바꾸어 뒷세상의 언약으로 삼자."
곧 굴뚝새(鷦鷯) 이름을 따서 태자의 이름을 지어 오사자키 황자라 하고, 부엉이(木菟) 이름을 따서 대신의 아들을 쓰쿠노스쿠네라 하였다. 이가 헤구리노오미의 시조다.
이해는 태세가 계유다.
7황후와 자식들
二年春三月辛未朔戊寅。立磐之媛命爲皇后。后生大兄去來穗別天皇。住吉仲皇子。瑞齒別天皇。雄朝津間稚子宿禰天皇。又妃日向髮長媛生大草香皇子。幡梭皇女。
이년 봄 삼월 신미 초하루 무인일에 이와노히메노미코토를 세워 황후로 삼았다. 황후가 오에노이자호와케천황과 스미노에노나카쓰미코와 미즈하와케천황과 오아사즈마와쿠고노스쿠네천황을 낳았다.
또 비 히무카의 가미나가히메가 오쿠사카 황자와 하타비 황녀를 낳았다.
8연기가 오르지 않는다
四年春二月己未朔甲子。詔羣臣曰。朕登高臺以遠望之。烟氣不起於域中。以爲百姓既貧。而家無炊者。朕聞。古聖王之世。人人誦詠徳之音。家家有康哉之歌。今朕臨億兆。於茲三年。頌音不聆。炊烟轉踈。即知。五穀不登。百姓窮乏也。封畿之内。尚有不給者。况乎畿外諸國耶。
사년 봄 이월 기미 초하루 갑자일에 여러 신하에게 조를 내렸다.
"짐이 높은 대에 올라 멀리 바라보니 지경 안에 연기가 일지 않는다. 백성이 이미 가난하여 집에 밥 짓는 이가 없는가 한다. 짐이 듣건대 옛 성스러운 임금의 세상에는 사람마다 덕을 기리는 소리를 읊고 집집이 편안하다는 노래가 있었다 한다. 이제 짐이 억조에 임한 지 세 해에 기리는 소리가 들리지 않고 밥 짓는 연기가 더욱 성기다. 곧 알겠다. 오곡이 익지 않아 백성이 궁핍한 것이다. 도읍 안 지경에도 오히려 넉넉하지 못한 이가 있으니 하물며 지경 밖 여러 나라이겠는가."
9세 해 부역을 면하다
三月己丑朔己酉。詔曰。自今以後。至于三年。悉除課役。以息百姓之苦。是日始之。黼衣■履、不弊盡不更爲也。温飯煖羹不酸■不易也。削心約志。以從事乎無爲。是以宮垣崩而不造。茅茨壌以不。風雨入隙而沾衣被。星辰漏壌而露床蓐。是後風雨順時。五穀豐穰。三稔之問。百姓富寛。頌徳既滿。炊烟亦繁。
삼월 기축 초하루 기유일에 조를 내렸다. "이제부터 세 해에 이르도록 세와 부역을 다 없애 백성의 괴로움을 쉬게 하라."
이날부터 시작하여 옷과 신을 해져 다 못 쓰게 되기 전에는 다시 만들지 않고, 더운밥과 뜨거운 국을 쉬어 상하기 전에는 바꾸지 않았다. 마음을 깎고 뜻을 묶어 아무것도 하지 않는 데를 좇았다.
이 때문에 궁의 담이 무너져도 짓지 않고 띠 지붕이 헐어도 잇지 않았다. 바람과 비가 틈으로 들어 옷과 이불을 적시고, 별빛이 헐린 데로 새어 잠자리에 드러났다.
이 뒤로 바람과 비가 때를 따르고 오곡이 넉넉히 익었다. 세 해 사이에 백성이 넉넉해지고 덕을 기리는 소리가 이미 가득하며 밥 짓는 연기가 또한 잦았다.
10백성이 부유하면 짐이 부유하다
七年夏四月辛未朔。天皇居臺上而遠望之。烟氣多起。是日語皇后曰。朕既富矣。豈有愁乎。皇后對諮。何謂富焉。天皇曰。烟氣滿國。百姓自富歟。皇后且言。宮垣壌而不得脩。殿屋破之衣被露。何謂富乎。天皇曰。其天之立君。是爲百姓。然則君以百姓爲本。是以古聖王者。一人飢寒顧之責身。今百姓貧之。則朕貧也。百姓富之。則朕富也。未之有百姓富之君貧矣。
칠년 여름 사월 신미 초하루에 천황이 대 위에 있으면서 멀리 바라보니 연기가 많이 일었다. 이날 황후에게 말하였다. "짐이 이미 부유하다. 어찌 근심이 있겠는가."
황후가 대답하였다. "무엇을 부유하다 하십니까."
천황이 말하였다. "연기가 나라에 가득하니 백성이 절로 부유해진 것이 아니겠는가."
황후가 또 말하였다. "궁의 담이 헐어도 고치지 못하고 전각이 무너져 옷과 이불이 드러납니다. 어찌 부유하다 하십니까."
천황이 말하였다. "무릇 하늘이 임금을 세우는 것은 백성을 위함이다. 그러한즉 임금은 백성으로 근본을 삼는다. 이 때문에 옛 성스러운 임금은 한 사람이라도 주리고 추우면 돌아보아 제 몸을 나무랐다. 이제 백성이 가난하면 곧 짐이 가난한 것이요, 백성이 부유하면 곧 짐이 부유한 것이다. 백성이 부유한데 임금이 가난한 일은 아직 있지 않았다."
11미부베와 가즈라키베
秋八月己巳朔丁丑。爲大兄去來穗別皇子定壬生部。亦爲皇后定葛城部。
가을 팔월 기사 초하루 정축일에 오에노이자호와케 황자를 위하여 미부베를 정하고, 또 황후를 위하여 가즈라키베를 정하였다.
12여러 나라가 청하다
九月。諸國悉請之曰。課役並免。既經三年。因此以宮殿朽壞。府庫已空。今黔首富饒。而不拾遣。是以里無鰥寡。家有餘儲。若當此時非貢税調以脩理宮室者。懼之其獲罪于天乎。然猶忍之不聽矣。
구월에 여러 나라가 다 청하였다. "세와 부역을 아울러 면한 지 이미 세 해가 지났습니다. 이로 인하여 궁전이 썩어 무너지고 곳간이 이미 비었습니다. 이제 백성이 넉넉해져 길에 떨어진 것을 줍지 않습니다. 이 때문에 마을에 홀아비와 과부가 없고 집에 남은 저축이 있습니다. 만약 이때에 조와 세를 바쳐 궁실을 고치지 않는다면 하늘에 죄를 얻을까 두렵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참고 들어주지 않았다.
13궁실이 이루어지다
十年冬十月。甫科課役。以搆造宮室。於是百姓之不領。而扶老携幼。運材負簣。不問日夜。竭力競作。是以未經幾時。而宮室悉成。故於今稱聖帝也。
십년 겨울 시월에 비로소 세와 부역을 매겨 궁실을 지었다. 이에 백성이 재촉하지 않아도 늙은이를 부축하고 어린것을 이끌며 재목을 나르고 삼태기를 지어 밤낮을 묻지 않고 힘을 다하여 다투어 지었다. 이 때문에 얼마 지나지 않아 궁실이 다 이루어졌다. 그러므로 이제까지 성스러운 임금이라 일컫는다.
14물길을 다스리라
十一年夏四月戊寅朔甲午。詔羣臣曰。今朕視是國者。郊澤曠遠。而田圃少乏。且河水横逝以流末不■。聊逢霖雨。海潮逆上而巷里乘船。道路亦泥。故群臣共視之。決横源而通海。塞逆流以全田宅。
십일년 여름 사월 무인 초하루 갑오일에 여러 신하에게 조를 내렸다.
"이제 짐이 이 나라를 보니 들과 못이 넓고 멀되 밭이 적고 모자란다. 또 냇물이 옆으로 흘러 끝이 빠르지 않다. 조금만 장맛비를 만나면 바닷물이 거슬러 올라 마을에서 배를 타고 길 또한 진창이 된다. 그러므로 여러 신하는 함께 살펴 옆으로 흐르는 근원을 터서 바다로 통하게 하고, 거스르는 물을 막아 밭과 집을 온전히 하라."
15마무타의 둑
冬十月。掘宮北之郊原。引南水以入西海。因以號其水曰堀江。又將防北河之。以築茨田堤。是時有兩處之築而乃壌之難塞。時天皇夢。有神誨之曰。武藏人強頚。河内人茨田連衫子。二人以祭於河伯。必獲塞。則覓二人而得之。因以祷于河神。爰強頚泣悲之。沒水而死。乃其堤成焉。唯衫子取全匏兩箇。臨于難塞水。乃取兩箇匏投於水中請之曰。河神崇之。以吾爲幣。是以令吾來也。必欲得我者。沈是匏而不令泛。則吾知眞神。親入水中。若不得沈匏者。自知僞神。何徒亡吾身。於是飄風忽起。引匏沒水。匏轉浪上而不沈。則瀚ゝ汎以遠流。是以衫子雖不死。而其堤且成也。是因衫子之幹。其身非亡耳。故時人號其兩處。曰強頚斷間。衫子斷間也。
겨울 시월에 궁 북쪽 들을 파서 남쪽 물을 끌어 서쪽 바다로 들게 하였다. 이로 인하여 그 물을 호리에(堀江)라 이름하였다.
또 북쪽 냇물을 막으려고 마무타의 둑을 쌓았다. 이때 두 곳이 쌓으면 곧 무너져 막기 어려웠다.
그때 천황의 꿈에 신이 있어 가르쳤다. "무사시 사람 고와쿠비와 가와치 사람 마무타노무라지 고로모노코 두 사람으로 하백(河伯)에게 제사하면 반드시 막을 수 있으리라."
곧 두 사람을 찾아 얻었다. 이로 인하여 강의 신에게 빌었다.
이에 고와쿠비가 울며 슬퍼하다 물에 잠겨 죽었다. 이에 그 둑이 이루어졌다.
오직 고로모노코는 온전한 박 두 개를 가져다 막기 어려운 물에 임하였다. 이에 두 박을 물 가운데 던지며 청하였다.
"강의 신이 빌미가 되어 나를 폐백으로 삼았다. 이 때문에 나를 오게 하였다. 반드시 나를 얻고자 한다면 이 박을 가라앉혀 뜨지 못하게 하라. 그러면 내가 참된 신인 줄 알고 몸소 물속에 들겠다. 만약 박을 가라앉히지 못하면 절로 거짓 신인 줄 알겠다. 어찌 헛되이 내 몸을 잃겠는가."
이에 회오리바람이 홀연히 일어 박을 끌어 물에 잠기게 하였다. 그러나 박이 물결 위로 굴러 잠기지 않았다. 곧 넘실넘실 떠서 멀리 흘러갔다. 이 때문에 고로모노코가 죽지 않고도 그 둑이 또한 이루어졌다.
그러므로 그때 사람들이 그 두 곳을 이름하여 고와쿠비의 끊긴 자리와 고로모노코의 끊긴 자리라 하였다.
협주 1
衫子。此云□呂母能古。
삼자(衫子)는 고로모노코라 읽는다.
16신라 사람이 부역하다
是歳。新羅人朝貢。則勞於是役。
이해에 신라 사람이 조회하고 바쳤다. 곧 이 부역에 수고하였다.
17고려가 쇠방패와 쇠과녁을 바치다
十二年秋七月辛未朔癸酉。高麗國貢鐵盾。鐵的。
십이년 가을 칠월 신미 초하루 계유일에 고려국이 쇠방패와 쇠과녁을 바쳤다.
18쇠과녁을 꿰뚫다
八月庚子朔己酉。饗高麗客於朝。是日集群臣及百寮。令射高麗所献之鐵盾的。諸人不得射通的。唯的臣祖盾人宿禰。射鐵的而通焉。時高麗客等見之。畏其射之勝巧。共起以拜朝。明日。美盾人宿禰。而賜名曰的戸田宿禰。同日。小泊瀬造祖宿禰臣賜名曰賢遺臣也。
팔월 경자 초하루 기유일에 고려 손님을 조정에서 대접하였다. 이날 여러 신하와 온갖 벼슬아치를 모아 고려가 바친 쇠방패와 쇠과녁을 쏘게 하였다. 여러 사람이 과녁을 꿰뚫지 못하였다. 오직 이쿠하노오미의 조상 다테히토노스쿠네가 쇠과녁을 쏘아 꿰뚫었다.
그때 고려 손님들이 이를 보고 그 쏘는 솜씨가 뛰어남을 두려워하여 함께 일어나 조정에 절하였다.
이튿날 다테히토노스쿠네를 아름다이 여겨 이름을 주어 이쿠하노토다노스쿠네라 하였다. 같은 날 오하쓰세노미야쓰코의 조상 스쿠네노오미에게 이름을 주어 사카시노코리노오미라 하였다.
협주 1
賢遺。此云左河之能□里
현유(賢遺)는 사카시노코리라 읽는다.
19구리쿠마의 도랑
冬十月。掘大溝於山背栗隈縣以潤田。是以其百姓毎年豐之。
겨울 시월에 야마시로의 구리쿠마현에 큰 도랑을 파서 밭을 적셨다. 이 때문에 그 백성이 해마다 넉넉하였다.
20마무타의 둔창
十三年秋九月。始立茨田屯倉。因定春米部。
십삼년 가을 구월에 비로소 마무타의 둔창을 세웠다. 이로 인하여 쓰키시네베를 정하였다.
21와니 못
冬十月。造和珥池。
겨울 시월에 와니 못을 만들었다.
22요코노의 둑
是月。築横野堤。
이달에 요코노의 둑을 쌓았다.
23오바시
十四年冬十一月。爲橋於猪甘津。即號其處曰小橋也。
십사년 겨울 십일월에 이카이 나루에 다리를 놓았다. 곧 그곳을 오바시(小橋)라 이름하였다.
24큰길과 큰 도랑
是歳。作大道置於京中。自南門直指之至丹比邑。又掘大溝於感玖。乃引石河水而潤上鈴鹿。下鈴鹿。上豐浦。下豐浦。四處郊原。以墾之得四萬餘頃之田。故其處百姓寛饒之無凶年之患。
이해에 큰길을 내어 서울 안에 두었다. 남문에서 곧바로 다지히 마을에 이르렀다.
또 고무쿠에 큰 도랑을 파서 이에 이시카와의 물을 끌어 가미스즈카와 시모스즈카와 가미토유라와 시모토유라 네 곳 들을 적셨다. 이로써 개간하여 사만여 이랑의 밭을 얻었다. 그러므로 그곳 백성이 넉넉하여 흉년의 근심이 없었다.
25구가히메
十六年秋七月戊寅朔。天皇以宮人桑田玖賀媛。示近習舍人等曰。朕欲愛是婦女。苦皇后之妬不能合。以經多年。何徒妨其盛年乎。仍以歌問之曰。瀰儺曾虚赴。於瀰能烏苔■烏。多例揶始儺播務。於是播磨國造祖速待獨進之。歌曰。瀰箇始報。破利摩波揶摩智。以播區娜輸。伽之古倶等望。阿例揶始儺破務。即日。以玖賀媛賜速待。明日之夕。速待詣于玖賀媛之家。而玖賀媛不和。乃強近帷内。時玖賀媛曰。妾之寡婦以終年。何能爲君之妻乎。於是天皇聞之。欲遂速待之志。以玖賀媛副速待送遣於桑田。則玖賀媛發病死于道中。故於今有玖賀媛之墓也。
십육년 가을 칠월 무인 초하루에 천황이 궁인 구와타노쿠가히메를 가까이 모시는 도네리들에게 보이며 말하였다. "짐이 이 여인을 사랑하고자 하나 황후의 시샘이 괴로워 어울리지 못한 채 여러 해가 지났다. 어찌 헛되이 그 한창때를 막겠는가."
이어 노래로 물었다.
「미나소코후 오미노오토메오 다레야시나함(瀰儺曾虚赴。於瀰能烏苔■烏。多例揶始儺播務)」
이에 하리마노쿠니노미야쓰코의 조상 하야마치가 홀로 나아가 노래하였다.
「미카시호 하리마하야마치 이하쿠다스 가시코쿠토모 아레야시나함(瀰箇始報。破利摩波揶摩智。以播區娜輸。伽之古倶等望。阿例揶始儺破務)」
— 두 노래는 소리를 적은 것이라 뜻으로 옮기지 않는다.
그날로 구가히메를 하야마치에게 주었다. 이튿날 저녁에 하야마치가 구가히메의 집에 나아갔으나 구가히메가 따르지 않았다. 이에 억지로 휘장 안에 다가갔다.
그때 구가히메가 말하였다. "저는 과부로 해를 마치려 합니다. 어찌 능히 그대의 아내가 되겠습니까."
이에 천황이 이를 듣고 하야마치의 뜻을 이루어 주고자 하여 구가히메를 하야마치에게 딸려 구와타에 보냈다. 곧 구가히메가 병이 나서 길 가운데서 죽었다. 그러므로 이제도 구가히메의 무덤이 있다.
26신라가 조공하지 않다
十七年。新羅不朝貢。
십칠년에 신라가 조공하지 않았다.
27사자를 보내어 묻다
秋九月。遣的臣祖砥田宿禰。小泊瀬造祖祖賢遺臣。而問闕貢之事。於是新羅人懼之。乃貢獻調絹一千四百六十疋及種種雜物丼八十艘。
가을 구월에 이쿠하노오미의 조상 도다노스쿠네와 오하쓰세노미야쓰코의 조상 사카시노코리노오미를 보내어 조공을 빠뜨린 일을 물었다.
이에 신라 사람이 두려워하여 곧 조(調)로 비단 천사백육십 필과 온갖 잡물을 아울러 여든 척 배에 실어 바쳤다.
28야타 황녀를 두고 노래를 주고받다
廿二年春正月。天皇語皇后曰。納八田皇女將爲妃。時皇后不聽。爰天皇歌以乞於皇后曰。于磨臂苔能。多菟屡虚等太■。于磋由豆流。多曳麼菟餓務珥。奈羅陪■毛餓望。皇后答歌曰。虚呂望虚曾。赴多弊茂豫耆。瑳用廼虚烏。那羅陪務耆瀰破。箇辭古耆呂箇茂。天皇又歌曰。於辭■屡。那珥破能瑳耆能。那羅弭破莽。那羅陪務苔虚層。曾能古破阿利鷄梅。皇后答歌曰。那菟務始能。譬務始能虚呂望。赴多弊耆■。箇區瀰夜利破。阿珥豫區望阿羅儒。天皇又歌曰。阿佐豆磨能。避箇能烏瑳箇烏。箇多那耆珥。瀰致喩區茂能茂。多遇譬■序豫枳。皇后遂謂不聽。故默之亦不答言。
이십이년 봄 정월에 천황이 황후에게 말하였다. "야타 황녀를 들여 비로 삼고자 한다." 그때 황후가 듣지 않았다.
이에 천황이 노래로 황후에게 빌었다.
「우마히토노 다쓰루고토다테 우사유즈루 다에바쓰가무니 나라베테모가모(于磨臂苔能。多菟屡虚等太■。于磋由豆流。多曳麼菟餓務珥。奈羅陪■毛餓望)」
황후가 답하여 노래하였다.
「고로모코소 후타헤모요키 사요도코오 나라베무키미와 가시코키로카모(虚呂望虚曾。赴多弊茂豫耆。瑳用廼虚烏。那羅陪務耆瀰破。箇辭古耆呂箇茂)」
천황이 또 노래하였다.
「오시테루 나니와노사키노 나라비하마 나라베무토코소 소노코와아리케메(於辭■屡。那珥破能瑳耆能。那羅弭破莽。那羅陪務苔虚層。曾能古破阿利鷄梅)」
황후가 답하여 노래하였다.
「나쓰무시노 히무시노고로모 후타헤키테 가쿠미야리와 아니요쿠모아라즈(那菟務始能。譬務始能虚呂望。赴多弊耆■。箇區瀰夜利破。阿珥豫區望阿羅儒)」
천황이 또 노래하였다.
「아사즈마노 히카노오사카오 가타나키니 미치유쿠모노모 다구히테조요키(阿佐豆磨能。避箇能烏瑳箇烏。箇多那耆珥。瀰致喩區茂能茂。多遇譬■序豫枳)」
— 다섯 노래는 소리를 적은 것이라 뜻으로 옮기지 않는다.
황후가 마침내 듣지 않겠다 하였다. 그러므로 잠잠하고 또한 답하여 말하지 않았다.
29황후가 야마시로로 가다
卅年秋九月乙卯朔乙丑。皇后遊行紀國到熊野岬。即取其處之御綱葉而還。於是曰。天皇伺皇后不在。而娶八田皇女納於宮中。時皇后到難波濟。聞天皇合八田皇女而大恨之。則其所採御綱葉投於海而不着岸。故時人號散葉之海曰葉濟也。爰天皇不知皇后忿不着岸。親幸大津待皇后之船。而歌曰。那珥波譬苔。須儒赴泥苔羅齊。許辭那豆瀰。曾能赴尼苔羅齊。於朋瀰赴泥苔禮。時皇后不泊于大津。更引之泝江。自山背廻而向倭。明日。天皇遣舍人鳥山令還皇后。乃歌之曰。夜莽之呂珥。伊辭鷄苔利夜莽。伊辭鷄之鷄。阿餓茂赴菟摩珥。伊辭枳阿波牟伽茂。皇后不還猶行之。至山背河而歌曰。菟藝泥赴。揶莽之呂餓波烏。箇破能朋利。餓能朋例麼。箇波區莽珥。多知瑳箇踰屡。毛毛多羅儒。揶素麼能紀破。於朋耆瀰呂箇茂。即越那羅山望葛城歌之曰。菟藝泥赴。揶莽之呂餓波烏。濔揶能朋利。和餓能朋例麼。阿烏珥豫辭。儺羅烏輸疑。烏陀■。夜莽苔烏輸疑。和餓瀰餓朋辭區珥波。箇豆羅紀多伽瀰揶。和藝弊能阿多利。更還山背。興宮室於筒城岡南而居之。
삼십년 가을 구월 을묘 초하루 을축일에 황후가 기이국에 놀러 가서 구마노 곶에 이르렀다. 곧 그곳의 미쓰나가시와를 가지고 돌아왔다.
이에 천황이 황후가 없는 틈을 엿보아 야타 황녀에게 장가들어 궁 안에 들였다.
그때 황후가 나니와 나루에 이르러 천황이 야타 황녀와 어울렸다는 말을 듣고 크게 한하였다. 곧 캐 온 미쓰나가시와를 바다에 던지고 언덕에 닿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때 사람들이 잎이 흩어진 바다를 하노와타리(葉濟)라 이름하였다.
이에 천황이 황후가 노하여 언덕에 닿지 않는 줄 알지 못하고 몸소 오쓰에 나아가 황후의 배를 기다리며 노래하였다.
「나니와히토 스즈후네토라세 고시나즈미 소노후네토라세 오호미후네토레(那珥波譬苔。須儒赴泥苔羅齊。許辭那豆瀰。曾能赴尼苔羅齊。於朋瀰赴泥苔禮)」
그때 황후가 오쓰에 대지 않고 다시 배를 끌어 강을 거슬러 올라 야마시로에서 돌아 야마토로 향하였다.
이튿날 천황이 도네리 도리야마를 보내어 황후를 돌아오게 하며 이에 노래하였다.
「야마시로니 이시케토리야마 이시케이시케 아가모후쓰마니 이시키아하무카모(夜莽之呂珥。伊辭鷄苔利夜莽。伊辭鷄之鷄。阿餓茂赴菟摩珥。伊辭枳阿波牟伽茂)」
황후가 돌아오지 않고 오히려 가서 야마시로 강에 이르러 노래하였다.
「쓰기네후 야마시로가와오 가와노보리 와가노보레바 가와쿠마니 다치사카유루 모모타라즈 야소바노키와 오호키미로카모(菟藝泥赴。揶莽之呂餓波烏。箇破能朋利。餓能朋例麼。箇波區莽珥。多知瑳箇踰屡。毛毛多羅儒。揶素麼能紀破。於朋耆瀰呂箇茂)」
곧 나라산을 넘어 가즈라키를 바라보며 노래하였다.
「쓰기네후 야마시로가와오 미야노보리 와가노보레바 아오니요시 나라오스기 오다테 야마토오스기 와가미가호시쿠니와 가즈라키다카미야 와기헤노아타리(菟藝泥赴。揶莽之呂餓波烏。濔揶能朋利。和餓能朋例麼。阿烏珥豫辭。儺羅烏輸疑。烏陀■。夜莽苔烏輸疑。和餓瀰餓朋辭區珥波。箇豆羅紀多伽瀰揶。和藝弊能阿多利)」
— 네 노래는 소리를 적은 것이라 뜻으로 옮기지 않는다.
다시 야마시로로 돌아와 쓰쓰키 언덕 남쪽에 궁실을 일으켜 머물렀다.
협주 1
葉。此云箇始婆。
엽(葉)은 가시와라 읽는다.
30구치모치노오미가 뜰에 엎드리다
冬十月甲申朔。遣的臣祖口持臣喚皇后。爰口持臣至筒城宮。雖謁皇后而默之不答。時口持臣沾雪雨。以經日夜。伏于皇后殿前而不避。於是口持臣之妹國依媛仕于皇后。適是時侍皇后之側。見其兄沾雨而流涕之。歌曰。揶莽辭呂能。菟菟紀能瀰揶珥。茂能莽烏輸。和餓齊烏瀰例麼。那瀰多遇摩辭茂。時皇后謂國依媛曰。何爾泣之。對言。今伏庭請謁者妾兄也。沾雨不避。猶伏將謁。是以泣悲耳。時皇后謂之曰。告汝兄令速還。吾遂不返焉。口持則返之復奏于天皇。
겨울 시월 갑신 초하루에 이쿠하노오미의 조상 구치모치노오미를 보내어 황후를 불렀다.
이에 구치모치노오미가 쓰쓰키노미야에 이르러 황후를 뵈었으나 잠잠하고 답하지 않았다. 그때 구치모치노오미가 눈비에 젖으며 밤낮을 지나 황후의 전각 앞에 엎드려 피하지 않았다.
이에 구치모치노오미의 누이 구니요리히메가 황후를 섬기고 있었다. 마침 이때 황후 곁에 모시다가 그 오라비가 비에 젖는 것을 보고 눈물을 흘리며 노래하였다.
「야마시로노 쓰쓰키노미야니 모노마오스 와가세오미레바 나미다구마시모(揶莽辭呂能。菟菟紀能瀰揶珥。茂能莽烏輸。和餓齊烏瀰例麼。那瀰多遇摩辭茂)」
— 소리를 적은 것이라 뜻으로 옮기지 않는다.
그때 황후가 구니요리히메에게 일렀다. "어찌 네가 우느냐."
대답하였다. "이제 뜰에 엎드려 뵙기를 청하는 이가 제 오라비입니다. 비에 젖어도 피하지 않고 오히려 엎드려 뵈려 합니다. 이 때문에 울며 슬퍼할 뿐입니다."
그때 황후가 일렀다. "네 오라비에게 알려 빨리 돌아가게 하라. 나는 끝내 돌아가지 않겠다."
구치모치가 곧 돌아가 천황에게 다시 아뢰었다.
협주 1
一云。和珥臣祖口子臣。
일설에는 와니노오미의 조상 구치코노오미라 한다.
31천황이 몸소 가다
十一月甲寅朔庚申。天皇浮江幸山背。時桑枝水而流之。天皇視桑枝歌之曰。菟怒瑳破赴以破能臂謎餓。飫朋呂伽珥枳許瑳。怒。于羅愚破能紀。豫屡麻志枳。箇破能區莽愚莽。豫呂朋譬喩玖伽茂。于羅愚破能紀。明日、乘輿詣于筒城宮喚皇后。皇后不肯參見。時天皇歌曰。菟藝泥赴。揶摩之呂謎能。許久波茂知。于智辭於朋泥。佐和佐和珥。儺餓伊弊劑虚曾。于知和多須。椰餓波曳儺須。企以利摩韋區例。亦歌曰。菟藝泥赴。夜莽之呂謎能。許玖波茂知。于智辭於朋泥。泥士漏辭漏多娜武枳。摩箇儒鷄麼虚曾。辭羅儒等茂伊波梅。時皇后令奏言。陛下納八田皇女爲妃。其不欲副皇女而爲后。遂不奉見。乃車駕還宮。天皇於是恨皇后大忿。而猶有戀思。
십일월 갑인 초하루 경신일에 천황이 배를 띄워 야마시로에 나아갔다. 그때 뽕나무 가지가 물에 떠 흘러왔다. 천황이 뽕나무 가지를 보고 노래하였다.
「쓰누사하후 이하노히메가 오호로카니 기코사누 우라구하노키 요루마시키 가와노쿠마구마 요로보히유쿠카모 우라구하노키(菟怒瑳破赴以破能臂謎餓。飫朋呂伽珥枳許瑳。怒。于羅愚破能紀。豫屡麻志枳。箇波能區莽愚莽。豫呂朋譬喩玖伽茂。于羅愚破能紀)」
이튿날 임금의 수레가 쓰쓰키노미야에 나아가 황후를 불렀다. 황후가 나와 보려 하지 않았다.
그때 천황이 노래하였다.
「쓰기네후 야마시로메노 고쿠와모치 우치시오호네 사와사와니 나가이헤세코소 우치와타스 야가하에나스 기이리마위쿠레(菟藝泥赴。揶摩之呂謎能。許久波茂知。于智辭於朋泥。佐和佐和珥。儺餓伊弊劑虚曾。于知和多須。椰餓波曳儺須。企以利摩韋區例)」
또 노래하였다.
「쓰기네후 야마시로메노 고쿠와모치 우치시오호네 네지로시로타다무키 마카즈케바코소 시라즈토모이하메(菟藝泥赴。夜莽之呂謎能。許玖波茂知。于智辭於朋泥。泥士漏辭漏多娜武枳。摩箇儒鷄麼虚曾。辭羅儒等茂伊波梅)」
— 세 노래는 소리를 적은 것이라 뜻으로 옮기지 않는다.
그때 황후가 아뢰게 하였다. "폐하께서 야타 황녀를 들여 비로 삼으셨습니다. 그 황녀와 나란히 황후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마침내 뵙지 않았다.
이에 임금의 수레가 궁으로 돌아왔다. 천황이 이에 황후를 한하여 크게 노하였으나 오히려 그리는 마음이 있었다.
32황태자를 세우다
卅一年春正月癸丑朔丁卯。立大兄去來穂別尊爲皇太子。
삼십일년 봄 정월 계축 초하루 정묘일에 오에노이자호와케노미코토를 세워 황태자로 삼았다.
33황후가 죽다
卅五年夏六月。皇后磐之媛命薨於筒城宮。
삼십오년 여름 유월에 황후 이와노히메노미코토가 쓰쓰키노미야에서 죽었다.
34나라산에 장사 지내다
卅七年冬十一月甲戍朔乙酉。葬皇后於那羅山。
삼십칠년 겨울 십일월 갑술 초하루 을유일에 황후를 나라산에 장사 지냈다.
35야타 황녀를 황후로 삼다
卅八年春正月癸酉朔戊寅。立八田皇女爲皇后。
삼십팔년 봄 정월 계유 초하루 무인일에 야타 황녀를 세워 황후로 삼았다.
36사슴 우는 소리
秋七月。天皇與皇后居高臺而避暑。時毎夜自菟餓野有聞鹿鳴。其聲寥亮而悲之。共起可憐之情。及月盡以鹿鳴不聆。爰天皇語皇后曰。當是夕而鹿不鳴。其何由焉。明日猪名。縣佐伯部獻苞苴。天皇令膳夫以問曰。其苞苴何物也。對言。牡鹿也。問之。何處鹿也。曰。菟餓野。時天皇以爲。是苞苴者必其鳴鹿也。因語皇后曰。朕比有懷抱。聞鹿聲而慰之。今推佐伯部獲鹿之日夜及山野。即當鳴鹿。其人雖不知朕之愛以適逢■獲。猶不得已而有恨。故佐伯部不欲近於皇居。乃令有司移郷于安藝渟田。此今渟田佐伯部之祖也。俗曰。昔有一人。往菟餓宿于野中。時二鹿臥傍。將及鷄鳴。牝鹿謂牝鹿曰。吾今夜夢之。白霜多降之覆吾身。是何祥焉。牝鹿答曰。汝之出行。必爲人見射而死。即以白鹽塗其身。如霜素之應也。時宿人心裏異之。未及昧爽。有獵人以射牡鹿而殺。是以時人諺曰。鳴牡鹿矣。隨相夢也。
가을 칠월에 천황과 황후가 높은 대에 있으면서 더위를 피하였다. 그때 밤마다 도가노에서 사슴 우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가 맑고 멀어 슬펐다. 함께 가엾이 여기는 마음이 일었다.
달이 다하도록 사슴 우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이에 천황이 황후에게 말하였다. "이 저녁에 사슴이 울지 않으니 무슨 까닭인가."
이튿날 이나의 아가타 사에키베가 꾸러미를 바쳤다. 천황이 요리 맡은 이를 시켜 물었다. "그 꾸러미가 무엇이냐."
대답하였다. "수사슴입니다."
물었다. "어디 사슴이냐."
말하였다. "도가노입니다."
그때 천황이 생각하였다. '이 꾸러미는 반드시 그 울던 사슴이다.'
이로 인하여 황후에게 말하였다. "짐이 요사이 품은 생각이 있어 사슴 소리를 듣고 위로하였다. 이제 사에키베가 사슴을 잡은 날과 밤과 산과 들을 미루어 보니 곧 그 울던 사슴이 마땅하다. 그 사람이 비록 짐이 아끼는 줄 모르고 마침 만나 잡았다 하나, 오히려 어쩔 수 없이 한이 있다. 그러므로 사에키베를 황거 가까이 두고 싶지 않다."
이에 맡은 관청에 명하여 고을을 아키의 누타로 옮기게 하였다. 이가 이제 누타 사에키베의 조상이다.
세속에 이르기를, 옛적에 한 사람이 도가에 가서 들 가운데 묵었다. 그때 사슴 둘이 곁에 누웠다. 닭이 울 무렵에 이르러 암사슴이 수사슴에게 일렀다. "내가 오늘 밤 꿈을 꾸었소. 흰 서리가 많이 내려 내 몸을 덮었으니 이 무슨 조짐이오."
수사슴이 답하였다. "네가 나가 다니면 반드시 사람에게 쏘여 죽을 것이다. 곧 흰 소금을 그 몸에 바르는 것이 서리처럼 흰 것에 응한 것이다."
그때 묵던 사람이 마음속으로 이상히 여겼다. 아직 날이 새기 전에 사냥꾼이 수사슴을 쏘아 죽였다. 이 때문에 그때 사람들이 속담으로 말하였다. "우는 수사슴이여, 꿈에 맞은 대로로다."
37메토리 황녀와 하야부사와케 황자
四十年春二月。納雌鳥皇女欲爲妃。以隼別皇子爲媒。時隼別皇子密親娶。而久之不復命。於是天皇不知有夫。而親臨雌鳥皇女之殿。時爲皇女織■女人等歌之曰。比佐箇多能。阿梅箇儺麼多。謎迺利餓。於瑠箇儺麼多。波揶歩佐和氣能。瀰於須譬鵝泥。爰天皇知隼別皇子密婚而恨之。然重皇后之言。亦敦友于之義。而忍之勿罪。俄而隼別皇子枕皇女之膝以臥。乃語之曰。孰捷鷦鷯與隼焉。曰。隼捷也。乃皇子曰。是我所先也。天皇聞是言。更亦起恨。時隼別皇子之舍人等歌曰。破夜歩佐波。阿梅珥能朋利。等弭箇慨梨。伊菟岐餓宇倍能。娑弉岐等羅佐泥。天皇聞是歌。而勃然大怒之曰。朕以私恨不欲失親忍之也。何矣私事將及于社稷。則欲殺隼別皇子。時皇子率雌鳥皇女。欲納伊勢神宮而馳。於是天皇聞隼別皇子逃走。即遣吉備品遲部雄■。播磨佐伯直阿俄能胡曰。追之所逮即殺。
사십년 봄 이월에 메토리 황녀를 들여 비로 삼고자 하여 하야부사와케 황자를 중매로 삼았다. 그때 하야부사와케 황자가 몰래 몸소 장가들고 오래도록 명을 아뢰지 않았다.
이에 천황이 지아비가 있는 줄 모르고 몸소 메토리 황녀의 전각에 임하였다. 그때 황녀를 위하여 옷감을 짜던 여인들이 노래하였다.
「히사카타노 아메카나하타 메도리가 오루카나하타 하야부사와케노 미오스히가네(比佐箇多能。阿梅箇儺麼多。謎迺利餓。於瑠箇儺麼多。波揶歩佐和氣能。瀰於須譬鵝泥)」
— 소리를 적은 것이라 뜻으로 옮기지 않는다.
이에 천황이 하야부사와케 황자가 몰래 혼인한 줄 알고 한하였다. 그러나 황후의 말을 무겁게 여기고 또 형제의 의를 도타이 하여 참고 죄주지 않았다.
이윽고 하야부사와케 황자가 황녀의 무릎을 베고 누워 이에 말하였다. "굴뚝새와 매 가운데 어느 것이 빠른가."
말하였다. "매가 빠릅니다."
이에 황자가 말하였다. "이는 내가 앞선다는 것이다."
천황이 이 말을 듣고 다시 또 한을 일으켰다. 그때 하야부사와케 황자의 도네리들이 노래하였다.
「하야부사와 아메니노보리 도비카케리 이쓰키가우헤노 사자키토라사네(破夜歩佐波。阿梅珥能朋利。等弭箇慨梨。伊菟岐餓宇倍能。娑弉岐等羅佐泥)」
— 소리를 적은 것이라 뜻으로 옮기지 않는다.
천황이 이 노래를 듣고 발끈 크게 노하여 말하였다. "짐이 사사로운 한으로 친함을 잃고 싶지 않아 참았다. 어찌 사사로운 일이 사직에 미치겠는가."
곧 하야부사와케 황자를 죽이려 하였다. 그때 황자가 메토리 황녀를 거느리고 이세 신궁에 들이려 하여 달아났다.
이에 천황이 하야부사와케 황자가 도망하였다는 말을 듣고 곧 기비노호무지베노오하리와 하리마노사에키노아타이 아가노코를 보내며 말하였다. "쫓아가 미치는 대로 곧 죽여라."
38소니산에서 죽이다
爰皇后奏言。雌鳥皇女寔當重罪。然其殺之日。不欲露皇女身。乃因勅雄等。莫取皇女所之足玉手玉。雄等追之至菟田。迫於素珥山。時隱草中僅得兔。急走而越山。於是皇子歌曰。破始多■能。佐餓始枳揶摩茂。和藝毛古等。赴駄利古喩例麼。揶須武志呂箇茂。爰雄等知兔。以急追及于伊勢蒋代野而殺之。時雄等探皇女之玉自裳中得之。乃以二王屍埋于廬杵河邊而復命。皇后令問雄等曰。見皇女之玉乎。對言。不見也。
이에 황후가 아뢰었다. "메토리 황녀가 참으로 무거운 죄에 해당합니다. 그러나 그를 죽이는 날에 황녀의 몸을 드러내고 싶지 않습니다."
이에 오하리들에게 칙명하였다. "황녀가 찬 발 구슬과 손 구슬을 가지지 마라."
오하리들이 뒤쫓아 우다에 이르러 소니산에서 다그쳤다. 그때 풀 속에 숨어 겨우 벗어나 급히 달아나 산을 넘었다.
이에 황자가 노래하였다.
「하시타테노 사가시키야마모 와기모코토 후타리코유레바 야스무시로카모(破始多■能。佐餓始枳揶摩茂。和藝毛古等。赴駄利古喩例麼。揶須武志呂箇茂)」
— 소리를 적은 것이라 뜻으로 옮기지 않는다.
이에 오하리들이 벗어난 줄 알고 급히 쫓아 이세의 고모시로노에서 미쳐 죽였다. 그때 오하리들이 황녀의 구슬을 찾아 치마 속에서 얻었다. 이에 두 왕의 주검을 이오키 냇가에 묻고 명을 아뢰었다.
황후가 오하리들에게 묻게 하였다. "황녀의 구슬을 보았느냐."
대답하였다. "보지 못하였습니다."
39구슬로 드러나다
是歳。當新甞之月以宴會日賜酒於内外命婦等。於是近江山君稚守山妻與釆女磐坂媛。二女之手有纏良珠。皇后見其珠。既似雌鳥皇女之珠。則疑之命有司。推問其玉所得之由。對言。佐伯直阿俄能胡妻之玉也。仍推鞫阿俄能胡。對曰。誅皇女之日探而取之。即將殺阿俄能胡。於是阿俄能胡乃獻己之私地請兔死。故納其地赦死罪。是以號其地曰玉代。
이해에 새로 지은 곡식을 올리는 달을 맞아 잔치하는 날에 안팎의 명부들에게 술을 내렸다. 이에 오미의 야마노키미 와카모리야마의 아내와 우네메 이와사카히메 두 여인의 손에 좋은 구슬이 감겨 있었다.
황후가 그 구슬을 보니 이미 메토리 황녀의 구슬과 닮았다. 곧 의심하여 맡은 관청에 명하여 그 구슬을 얻은 까닭을 미루어 묻게 하였다.
대답하였다. "사에키노아타이 아가노코의 아내의 구슬입니다."
이어 아가노코를 밀어 물으니 대답하였다. "황녀를 벨 날에 찾아 가졌습니다."
곧 아가노코를 죽이려 하였다. 이에 아가노코가 이에 제 사사로운 땅을 바쳐 죽음을 면하기를 청하였다. 그러므로 그 땅을 받고 죽을죄를 놓아주었다. 이 때문에 그 땅을 다마테(玉代)라 이름하였다.
40사케노키미
四十一年春三月。遣紀角宿禰於百濟。始分國郡場。具録郷土所出。是時百濟王之族酒君无禮。由是紀角宿禰訶責百濟王。時百濟王懼之。以鐵鎖縛酒君。附襲津彦而進上。爰酒君來之。則迅匿于石川錦織首許呂斯之家。則欺之曰。天皇既赦臣罪。故寄汝而活焉。久之天皇遂赦其罪。
사십일년 봄 삼월에 기노쓰노노스쿠네를 백제에 보내어 비로소 나라와 고을의 지경을 나누고 향토에서 나는 것을 갖추어 적었다.
이때 백제 왕의 겨레 사케노키미(酒君)가 무례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기노쓰노노스쿠네가 백제 왕을 꾸짖었다. 그때 백제 왕이 두려워하여 쇠사슬로 사케노키미를 묶어 소쓰히코에게 붙여 올려 보냈다.
이에 사케노키미가 와서 곧 이시카와의 니시고리노오비토 고로시의 집에 재빨리 숨었다. 곧 속여 말하였다. "천황이 이미 신의 죄를 놓아주셨다. 그러므로 너에게 붙여 산다."
오래 지나 천황이 마침내 그 죄를 놓아주었다.
41매사냥
四十三年秋九月庚子朔。依網屯倉阿弭古捕異鳥。獻於天皇曰。臣毎張網捕鳥。未曾得是鳥之類。故奇而獻之。天皇召酒君示鳥曰。是何鳥矣。酒君對言。此鳥之類多在百濟。得馴而能從人。亦捷飛之掠諸鳥。百濟俗號此鳥曰倶知。乃授酒君令養馴。未幾時而得馴。酒君則以韋緡著其足。以小鈴著其尾。居腕上獻于天皇。是日幸百舌鳥野而遊獵。時雌雉多起。乃放鷹令捕。忽獲數十雉。◎是月。甫定鷹甘部。故時人號其養鷹之處。曰鷹甘邑也。
사십삼년 가을 구월 경자 초하루에 요사미의 둔창 아비코가 이상한 새를 잡아 천황에게 바치며 말하였다. "신이 늘 그물을 쳐 새를 잡았으나 아직 이런 새의 무리를 얻은 적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기이히 여겨 바칩니다."
천황이 사케노키미를 불러 새를 보이며 말하였다. "이 무슨 새냐."
사케노키미가 대답하였다. "이 새의 무리가 백제에 많이 있습니다. 길들이면 능히 사람을 따르고 또 빨리 날아 여러 새를 낚아챕니다. 백제 풍속에 이 새를 구치(倶知)라 합니다."
이에 사케노키미에게 주어 길들이게 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길들일 수 있었다. 사케노키미가 곧 가죽끈을 그 발에 매고 작은 방울을 그 꼬리에 달아 팔뚝 위에 앉혀 천황에게 바쳤다.
이날 모즈노에 나아가 놀며 사냥하였다. 그때 암꿩이 많이 날아올랐다. 이에 매를 놓아 잡게 하니 홀연히 수십 마리 꿩을 얻었다.
이달에 비로소 다카카이베를 정하였다. 그러므로 그때 사람들이 그 매 기르는 곳을 다카카이 마을이라 이름하였다.
협주 1
是今時鷹也。
이것이 이제의 매다.
42기러기가 알을 낳다
五十年春三月壬辰朔丙申。河内人奏言。於茨田堤鴈産之。即日遣使令視。曰。既實也。天皇於是歌以問武内宿禰曰。多莽耆破屡。宇知能阿曾。儺虚曾破。豫能等保臂等。儺虚曾波。區珥能那餓臂等。阿耆豆辭莽。揶莽等能區珥珥。箇利古武等。儺波企箇輸揶。武内宿禰答歌曰。夜輸瀰始之。和我於朋枳瀰波。于陪儺于陪儺。和例烏斗波輸儺。阿企菟辭摩。揶莽等能倶珥珥。箇利古武等。和例破■枳箇儒。
오십년 봄 삼월 임진 초하루 병신일에 가와치 사람이 아뢰었다. "마무타의 둑에서 기러기가 알을 낳았습니다."
그날로 사자를 보내어 보게 하니 말하였다. "이미 사실입니다."
천황이 이에 노래로 다케우치노스쿠네에게 물었다.
「다마키하루 우치노아소 나코소와 요노토호히토 나코소와 구니노나가히토 아키즈시마 야마토노쿠니니 가리고묻토 나와기카스야(多莽耆破屡。宇知能阿曾。儺虚曾破。豫能等保臂等。儺虚曾波。區珥能那餓臂等。阿耆豆辭莽。揶莽等能區珥珥。箇利古武等。儺波企箇輸揶)」
다케우치노스쿠네가 답하여 노래하였다.
「야스미시시 와가오호키미와 우베나우베나 와레오토하스나 아키즈시마 야마토노쿠니니 가리고묻토 와레와키카즈(夜輸瀰始之。和我於朋枳瀰波。于陪儺于陪儺。和例烏斗波輸儺。阿企菟辭摩。揶莽等能倶珥珥。箇利古武等。和例破■枳箇儒)」
— 두 노래는 소리를 적은 것이라 뜻으로 옮기지 않는다.
43신라가 조공하지 않다
五十三年。新羅不朝貢。
오십삼년에 신라가 조공하지 않았다.
44다지가 신라를 치다
夏五月。遣上毛野君祖竹葉瀬。令問其闕貢。是道路之間獲白鹿。乃還之献于天皇。更改日而行。俄且重遣竹葉瀬之弟田道。則詔之日。若新羅距者擧兵撃之。仍授精兵。新羅起兵而距之。爰新羅人日日挑戰。田道固塞而不出。時新羅軍卒一人有放于營外。則掠俘之。因問消息。對曰。有強力者。曰百衝。輕捷猛幹。毎爲軍右前鋒。故伺之撃左則敗也。時新羅空左備右。於是。田道連精騎撃其左。新羅軍潰之。因縱兵乘之。殺數百人。即虜四邑之人民以歸焉。
여름 오월에 가미쓰케노노키미의 조상 다카하세를 보내어 그 조공 빠뜨린 일을 묻게 하였다. 이 길 가운데 흰 사슴을 얻었다. 이에 돌아와 천황에게 바쳤다. 다시 날을 고쳐 갔다.
이윽고 또 거듭 다카하세의 아우 다지(田道)를 보내며 곧 조를 내렸다. "만약 신라가 막거든 군사를 들어 쳐라." 이어 날랜 군사를 주었다.
신라가 군사를 일으켜 막았다. 이에 신라 사람이 날마다 싸움을 걸었다. 다지가 굳게 막고 나가지 않았다.
그때 신라 군졸 하나가 진영 밖으로 나온 이가 있어 곧 사로잡았다. 이어 형편을 물었다.
대답하였다. "힘센 이가 있어 백충(百衝)이라 합니다. 가볍고 빠르며 사납고 굳세어 늘 군사의 오른쪽 선봉이 됩니다. 그러므로 엿보아 왼쪽을 치면 곧 무너집니다."
그때 신라가 왼쪽을 비우고 오른쪽을 갖추었다. 이에 다지가 날랜 기병을 이어 그 왼쪽을 쳤다. 신라 군사가 무너졌다. 이로 인하여 군사를 놓아 타고 들어 수백 사람을 죽이고, 곧 네 마을 백성을 사로잡아 돌아왔다.
45다지가 에미시에게 죽다
五十五年。蝦夷叛之。遣田道令撃。則爲蝦夷所敗。以死于伊寺水門。時有從者。取得田道之手纒與其妻。乃抱手纒而縊死。時人聞之流涕矣。是後蝦夷亦襲之略人民。因以掘田道墓。則有大蛇發瞋目自墓出以咋。蝦夷悉被蛇毒而多死亡。唯一二人得兔耳。故時人云。田道雖既亡遂報讎。何死人之無知耶。
오십오년에 에미시가 배반하였다. 다지를 보내어 치게 하였다. 곧 에미시에게 패하여 이지의 미나토에서 죽었다.
그때 따르던 이가 있어 다지의 팔찌를 얻어 그 아내에게 주었다. 이에 팔찌를 안고 목매어 죽었다. 그때 사람들이 듣고 눈물을 흘렸다.
이 뒤에 에미시가 또 습격하여 백성을 노략하였다. 이로 인하여 다지의 무덤을 팠다. 곧 큰 뱀이 있어 성난 눈을 뜨고 무덤에서 나와 물었다. 에미시가 다 뱀의 독을 입고 많이 죽었다. 오직 한두 사람만 벗어났을 뿐이다.
그러므로 그때 사람들이 말하였다. "다지가 비록 이미 죽었으나 마침내 원수를 갚았다. 어찌 죽은 사람에게 앎이 없다 하겠는가."
46두 나무가 맞붙다
五十八年夏五月。當荒陵松林之南道忽生兩歴木。挾路而末合。
오십팔년 여름 오월에 아라하카 솔숲 남쪽 길에 홀연히 나무 둘이 나서 길을 끼고 끝이 맞붙었다.
47오나라와 고려가 조공하다
冬十月。呉國。高麗國並朝貢。
겨울 시월에 오나라와 고려국이 아울러 조공하였다.
48시라토리 능지기
六十年冬十月。差白鳥陵守等死役丁。時天皇臨于役所。爰陵守目杵忽化白鹿以走。於是。天皇詔之曰。是陵自本空。故欲除其陵守。而甫差役丁。今視是恠者甚懼之。無動陵守者。則且授土師連等。
육십년 겨울 시월에 시라토리 능지기들을 부역할 장정으로 뽑았다. 그때 천황이 부역하는 곳에 임하였다.
이에 능지기 메키가 홀연히 흰 사슴으로 변하여 달아났다. 이에 천황이 조를 내렸다. "이 능은 본디 비었다. 그러므로 그 능지기를 없애고자 하여 비로소 부역할 장정으로 뽑았다. 이제 이 괴이함을 보니 몹시 두렵다. 능지기를 움직이지 마라." 곧 또 하지노무라지들에게 주었다.
49큰 나무로 배를 만들다
六十二年夏五月。遠江國司表上言。有大樹。自大井河流之停于河曲。其大十圍。本一以末兩。時遣倭直吾子篭令造船。而自南海運之。將來于難波津。以死御船也。
육십이년 여름 오월에 도토우미 국사가 표를 올려 아뢰었다. "큰 나무가 있어 오이 강에서 흘러와 강굽이에 멈추었습니다. 그 굵기가 열 아름이요 밑동은 하나인데 끝이 둘입니다."
그때 야마토노아타이 아고코를 보내어 배를 짓게 하였다. 남해로 옮겨 나니와 나루로 가져와 임금의 배로 삼았다.
50얼음 곳간
是歳。額田大中彦皇子獵于闘鷄。時皇子自山上望之。瞻野中有物。其形如廬。仍遣使者令視。還來之曰。窟也。因喚闘鷄稻置大山主。問之曰。有其野中者何矣。啓之曰。氷室也。皇子曰。其藏如何。亦奚用焉。曰。掘土丈餘。以草蓋其上。敦敷茅荻。取氷以置其上。既經夏月而不■。其用之。即當熱月漬水酒以用也。皇子則將來其氷。獻于御所。天皇歡之。自是以後。毎當季冬必藏氷。至于春分始散氷也。
이해에 누카타노오나카쓰히코 황자가 쓰게에서 사냥하였다. 그때 황자가 산 위에서 바라보니 들 가운데 물건이 있어 그 모양이 오두막 같았다. 이어 사자를 보내어 보게 하였다.
돌아와 말하였다. "굴입니다."
이로 인하여 쓰게의 이나키 오야마누시를 불러 물었다. "저 들 가운데 있는 것이 무엇이냐."
아뢰었다. "얼음 곳간입니다."
황자가 말하였다. "그 갈무리함이 어떠하며 또 어디에 쓰느냐."
말하였다. "흙을 한 길 남짓 파고 풀로 그 위를 덮으며 띠와 갈대를 두터이 깔고, 얼음을 가져다 그 위에 둡니다. 여름철이 지나도 녹지 않습니다. 그 쓰임은 곧 더운 달을 맞아 물과 술에 담가 씁니다."
황자가 곧 그 얼음을 가져와 임금 계신 곳에 바쳤다. 천황이 기뻐하였다. 이로부터 뒤로 늦겨울마다 반드시 얼음을 갈무리하고 춘분에 이르러 비로소 얼음을 나누었다.
51스쿠나
六十五年。飛騨國有一人。曰宿儺。其爲人壹體有兩面。面各相背。頂合無項。各有手足。其有膝而無膕踵。力多以輕捷。左右佩劔。四手並用弓矢。是以不隨皇命。掠略人民爲樂。於是。遣和珥臣祖難波根子武振熊而誅之。
육십오년에 히다국에 한 사람이 있어 스쿠나(宿儺)라 하였다. 그 사람됨이 한 몸에 두 얼굴이 있어 얼굴이 각각 서로 등지고, 정수리가 붙어 목이 없으며, 각각 손발이 있었다. 무릎은 있으나 오금과 뒤꿈치가 없었다. 힘이 세고 가벼우며 빨랐다. 좌우에 칼을 차고 네 손으로 아울러 활과 화살을 썼다.
이 때문에 임금의 명을 좇지 않고 백성을 노략하기를 즐거움으로 삼았다. 이에 와니노오미의 조상 나니와노네코타케후루쿠마를 보내어 베었다.
52능 자리를 정하다
六十七年冬十月庚辰朔甲申。幸河内石津原。以定陵地。
육십칠년 겨울 시월 경진 초하루 갑신일에 가와치의 이시즈하라에 나아가 능 자리를 정하였다.
53모즈미미하라
丁酉始築陵。是日。有鹿忽起野中。走之入民之中而仆死。時異其忽死。以探其痍。即百舌鳥自耳出之飛去。因視耳中悉咋割剥。故號其處。曰百舌鳥耳原者。其是之縁也。
정유일에 비로소 능을 쌓았다. 이날 사슴이 있어 홀연히 들 가운데서 일어나 사람 속으로 달려들어 엎어져 죽었다. 그때 그 갑작스러운 죽음을 이상히 여겨 그 상처를 찾았다. 곧 때까치(百舌鳥)가 귀에서 나와 날아갔다. 이어 귓속을 보니 다 물어 뜯겨 벗겨져 있었다. 그러므로 그곳을 이름하여 모즈미미하라(百舌鳥耳原)라 하는 것이 이 때문이다.
54아가타모리의 못
是歳。於吉備中國川嶋河派有大■令苦人。時路人觸其處而行。必被其毒以多死亡。於是。笠臣祖縣守爲人勇捍而強力。臨派淵以三全瓠投水曰。汝屡吐毒令苦路人。余殺汝■。汝沈是瓠則余避之。不能沈者仍斬汝身。時水■化鹿以引入瓠。瓠不沈。即擧劔入水斬■。更求■之黨類。乃諸■族満淵底之岫穴。悉斬之。河水變血。故號其水曰縣守淵也。當此時妖氣■稍動。叛者一二始起。於是天皇夙興夜寐。輕賦薄斂以寛民萠。布徳施惠。以振困窮。弔死問疾以養孤孀。是以政令流行。天下太平。廿餘年無事矣。
이해에 기비의 나카쓰쿠니 가와시마 강 갈래에 큰 이무기가 있어 사람을 괴롭게 하였다. 그때 길 가는 이가 그곳에 닿아 지나가면 반드시 그 독을 입어 많이 죽었다.
이에 가사노오미의 조상 아가타모리가 사람됨이 용맹하고 힘세었다. 갈래의 못에 임하여 온전한 박 셋을 물에 던지며 말하였다. "네가 자주 독을 뿜어 길 가는 이를 괴롭게 한다. 내가 너 이무기를 죽이겠다. 네가 이 박을 가라앉히면 내가 피하겠다. 가라앉히지 못하면 이에 네 몸을 베겠다."
그때 물속 이무기가 사슴으로 변하여 박을 끌어들였다. 박이 가라앉지 않았다. 곧 칼을 들고 물에 들어가 이무기를 베었다. 다시 이무기의 무리를 찾으니 이에 여러 이무기 겨레가 못 밑 굴에 가득하였다. 다 베니 냇물이 피로 변하였다. 그러므로 그 물을 아가타모리의 못이라 이름하였다.
이때를 맞아 요사한 기운이 차츰 움직여 배반하는 이가 한둘 일기 시작하였다. 이에 천황이 일찍 일어나고 늦게 자며 세를 가벼이 하고 거둠을 엷게 하여 백성을 너그럽게 하였다. 덕을 펴고 은혜를 베풀어 곤궁한 이를 떨쳐 일으키고, 죽은 이를 조상하고 병든 이를 위문하여 외로운 이와 홀로된 이를 길렀다. 이 때문에 정사와 명령이 흘러 행하여 천하가 태평하고 이십여 년 동안 일이 없었다.
55천황이 죽다
八十七年春正月戊子朔癸卯。天皇崩。
팔십칠년 봄 정월 무자 초하루 계묘일에 천황이 죽었다.
56모즈노 능에 장사 지내다
冬十月癸未朔己丑。葬于百舌鳥野陵。
겨울 시월 계미 초하루 기축일에 모즈노 능에 장사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