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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공천황允恭天皇

일본서기 日本書紀 · 도네리 친왕(舍人親王) 등 · 720년 (일본 요로 4) · 단락 23 · 한자 3,298자 · 낭독 13.2분

「일본서기」 인대 「윤공천황」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정사. 신들의 시대부터 지통천황까지 서른 권이다. 신대 상·하는 같은 신화의 다른 판본을 「어떤 책에는 이렇게 되어 있다」로 나란히 실어, 갈리는 이야기를 감추지 않았다. 백제·신라·고구려·임나 기사가 1,379곳에 나와 한국 사서와 맞대 볼 자리가 가장 많은 책이기도 하다.

1병들어 자리를 사양하다

雄朝津間稚子宿禰天皇。瑞齒別天皇同母弟也。天皇自岐嶷至於總角。仁惠儉下。及壯篤病。容止不便。五年春正月。瑞齒別天皇崩。爰群卿議之曰。方今。大鷦鷯天皇之子。雄朝津間稚子宿禰皇子。與大草香皇子。然雄朝津間稚子宿禰皇子長之仁孝。即選吉曰。跪上天皇之璽。雄朝津間稚子宿禰皇子謝曰。我之不天。久離篤疾。不能歩行。且我既欲除病。獨非奏言。而密破身治病猶勿差。由是先皇責之曰。汝雖患病。縱破身。不孝孰甚於茲矣。其長生之遂不得繼業。亦我兄二天皇。愚我而輕之。群卿共所知。夫天下者大器也。帝位者鴻業也。且民之父母。斯則聖賢之職。豈下愚之任乎。更選賢王宜立矣寡人弗敢當。羣臣再拜言。夫帝位不可以久曠。天命不可以謙距。今大王留時逆衆。不正號位。臣等恐百姓望絶也。願大王雖勞。猶即天皇位。雄朝津間稚子宿禰皇子曰。奉宗廟社稷重事也。寡人篤疾不足以稱。猶辭而不聽。於是羣臣皆固請曰。臣伏計之。大王奉皇祖宗廟最宜稱。雖天下萬民皆以爲宜。願大王聽之。

오아사즈마와쿠고노스쿠네천황(雄朝津間稚子宿禰天皇)은 미즈하와케천황의 동모제다. 천황이 어린 나이부터 더벅머리에 이르도록 어질고 은혜로우며 아랫사람에게 검소하였다. 장성하매 병이 깊어 몸가짐이 편치 않았다.

오년 봄 정월에 미즈하와케천황이 죽었다. 이에 여러 대신이 의논하였다. "이제 오사자키천황의 아들로 오아사즈마와쿠고노스쿠네 황자와 오쿠사카 황자가 있다. 그러나 오아사즈마와쿠고노스쿠네 황자가 맏이요 어질고 효성스럽다."

곧 좋은 날을 가려 꿇어앉아 천황의 도장을 올렸다.

오아사즈마와쿠고노스쿠네 황자가 사양하였다.

"나는 하늘의 도움을 받지 못하여 오래 깊은 병에 매여 걸을 수 없다. 또 내가 이미 병을 없애고자 하여 홀로 아뢰지 않고 몰래 몸을 상하며 병을 다스렸으나 오히려 낫지 않았다. 이로 말미암아 앞 임금이 나무라시기를 '네가 비록 병을 앓으나 함부로 몸을 상하였으니 불효가 이보다 심한 것이 무엇이냐. 그 오래 살더라도 마침내 업을 잇지 못하리라' 하셨다. 또 내 두 형 천황이 나를 어리석다 하여 가벼이 여긴 것은 여러 대신이 함께 아는 바다.

무릇 천하는 큰 그릇이요 임금 자리는 큰 업이다. 또 백성의 어버이 되는 것은 성스럽고 어진 이의 직분이다. 어찌 아래 어리석은 이가 맡을 바이겠는가. 다시 어진 왕을 가려 세움이 마땅하다. 나는 감히 감당하지 못하겠다."

여러 신하가 두 번 절하고 말하였다. "무릇 임금 자리는 오래 비울 수 없고 하늘의 명은 겸손으로 물리칠 수 없습니다. 이제 대왕께서 때를 끌고 뭇사람을 거스르시어 이름과 자리를 바로 하지 않으시니 신들은 백성의 바람이 끊길까 두렵습니다. 바라건대 대왕께서 비록 수고로우시더라도 오히려 천황의 자리에 오르소서."

오아사즈마와쿠고노스쿠네 황자가 말하였다. "종묘와 사직을 받드는 것은 무거운 일이다. 나는 병이 깊어 일컫기에 모자란다." 오히려 사양하고 듣지 않았다.

이에 여러 신하가 다 굳이 청하였다. "신들이 엎드려 헤아리건대 대왕께서 황조의 종묘를 받드심이 가장 마땅히 일컬을 만합니다. 비록 천하 만민이라도 다 마땅하다 여깁니다. 바라건대 대왕께서는 들어주소서."

2오시사카노오나카쓰히메가 물을 받들다

元年冬十有二月。妃忍坂大中姫命。苦羣臣之憂吟。而親執洗手水。進于皇子前。仍啓之曰。大王辭而不即位。位空之。既經年月。羣臣百寮愁之不知所爲願大王從群望。強即帝位。然皇子不欲聽。而背居不言。於是大中姫命惶之。不知退而侍之。經四五剋。當于此時。季冬之節。風亦烈寒。大中姫所捧鋺水溢而腕凝。不堪寒以將死。皇子顧之驚。則扶起謂之曰。嗣位重事。不得輙就。是以。於今不從。然今羣臣之請。事理灼然。何遂謝耶。爰大中姫命仰歡。則謂群卿曰。皇子將聽羣臣之請。今當上天皇璽符。於是羣臣大喜。即日捧天皇之璽符。再拜上焉。皇子曰。群卿共爲天下請寡人。寡人何敢遂辭。乃即帝位。是年也。太歳壬子。

원년 겨울 십이월에 비 오시사카노오나카쓰히메노미코토가 여러 신하가 근심하여 앓는 소리를 하는 것을 괴로이 여겨, 몸소 손 씻을 물을 들고 황자 앞에 나아갔다. 이어 아뢰었다.

"대왕께서 사양하시고 자리에 오르지 않으시어 자리가 빈 채로 이미 여러 해와 달이 지났습니다. 여러 신하와 온갖 벼슬아치가 근심하여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합니다. 바라건대 대왕께서는 뭇사람의 바람을 좇아 억지로라도 임금 자리에 오르소서."

그러나 황자가 들으려 하지 않고 등을 돌리고 앉아 말하지 않았다. 이에 오나카쓰히메노미코토가 두려워 물러나지 못하고 모시고 있었다. 네댓 시각이 지났다.

이때는 늦겨울철이라 바람 또한 매섭고 차가웠다. 오나카쓰히메가 받든 사발의 물이 넘쳐 팔이 얼었다. 추위를 견디지 못하여 죽을 지경이 되었다.

황자가 돌아보고 놀라 곧 부축해 일으키며 일렀다. "자리를 잇는 것은 무거운 일이라 문득 나아갈 수 없다. 이 때문에 이제까지 좇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 여러 신하의 청이 사리에 환하니 어찌 끝내 사양하겠는가."

이에 오나카쓰히메노미코토가 우러러 기뻐하며 여러 대신에게 일렀다. "황자께서 여러 신하의 청을 들으시려 합니다. 이제 마땅히 천황의 도장을 올리소서."

이에 여러 신하가 크게 기뻐하였다. 그날로 천황의 도장을 받들어 두 번 절하고 올렸다.

황자가 말하였다. "여러 대신이 함께 천하를 위하여 나에게 청한다. 내가 어찌 감히 끝내 사양하겠는가."

이에 임금 자리에 올랐다. 이해는 태세가 임자다.

3황후와 지난날의 무례

二年春二月丙申朔己酉。立忍坂大中姫。爲皇后。是日爲皇后定刑部。皇后生木梨輕皇子。名形大娘皇女。境黒彦皇子。穴穂天皇。輕大娘皇女。八釣白彦皇子。大泊瀬稚武天皇。但馬橘大娘皇女。酒見皇女。初皇后随母在家。獨遊苑中。時闘鶏國造從傍徑行之。乗馬而莅籬謂皇后嘲之曰。能作園乎。汝者也且曰。壓乞戸母。其蘭一莖焉。皇后則採一根蘭。與於乘馬者。因以問曰。何用求蘭耶。乘馬者對曰。行山撥■也。時皇后結之意裏乘馬者辭旡禮即謂之曰。首也。余不忘矣。是後。皇后登祚之年。覓乘馬乞蘭者。而數昔日之罪。以欲殺。爰乞蘭者搶地叩頭曰。臣之罪實當萬死。然當其日不知貴者。於是。皇后赦死刑。貶其姓謂稻置。

이년 봄 이월 병신 초하루 기유일에 오시사카노오나카쓰히메를 세워 황후로 삼았다. 이날 황후를 위하여 오사카베를 정하였다.

황후가 기나시노카루 황자와 나가타노오이라쓰메 황녀와 사카이노쿠로히코 황자와 아나호천황과 가루노오이라쓰메 황녀와 야쓰리노시로히코 황자와 오하쓰세노와카타케천황과 다지마노타치바나노오이라쓰메 황녀와 사카미 황녀를 낳았다.

처음에 황후가 어머니를 따라 집에 있으면서 홀로 뜰에서 놀았다. 그때 쓰게노쿠니노미야쓰코가 곁길로 지나가다가 말을 타고 울타리에 다가와 황후를 놀리며 말하였다. "동산을 잘 만드는구나, 너는." 또 말하였다. "여보시오 아낙네, 그 난초 한 줄기를 주시오."

황후가 곧 난초 한 뿌리를 캐어 말 탄 이에게 주었다. 이어 물었다. "난초를 무엇에 쓰려 하오."

말 탄 이가 대답하였다. "산에 다니며 등에를 쫓으려 하오."

그때 황후가 마음속에 맺었다. '말 탄 이의 말이 무례하다.' 곧 일렀다. "그대여, 내가 잊지 않겠다."

이 뒤에 황후가 자리에 오른 해에 말 타고 난초를 빌던 이를 찾아 지난날의 죄를 헤아려 죽이려 하였다.

이에 난초를 빌던 이가 땅에 엎드려 머리를 조아리며 말하였다. "신의 죄가 참으로 만 번 죽어 마땅합니다. 그러나 그날에는 귀하신 분인 줄 알지 못하였습니다."

이에 황후가 죽을 형벌을 놓아주고 그 성을 낮추어 이나키라 하였다.

협주 3

汝。此云那鼻苔也。

여(汝)는 나비토라 읽는다.

壓乞。此云異提。戸母。此云覩自。

압걸(壓乞)은 이데라 읽는다. 호모(戸母)는 도지라 읽는다.

□。此云摩愚那岐。

등에(■)는 마구나기라 읽는다.

4신라에 의원을 구하다

三年春正月辛酉朔。遺使求良醫於新羅。

삼년 봄 정월 신유 초하루에 사자를 보내어 신라에 좋은 의원을 구하였다.

5신라 의원이 병을 고치다

秋八月。醫至自新羅。則令治天皇病。未經幾時。病已差也。天皇歡之。厚賞醫以歸于國。

가을 팔월에 의원이 신라에서 이르렀다. 곧 천황의 병을 다스리게 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병이 이미 나았다. 천황이 기뻐하여 의원에게 두터이 상 주고 제 나라로 돌려보냈다.

6씨와 성을 바로잡으라

四年秋九月辛已朔己丑。詔曰。上古之治。人民得所。姓名勿錯。今朕踐祚於茲四年矣。上下相爭。百姓不安。或誤失己姓。或故認高氏。其不至於治者。蓋由是也。朕雖不賢。豈非正其錯乎。羣臣議定奏之。群臣皆言。陛下擧失正枉而定氏姓者。臣等冒死。奏可。

사년 가을 구월 신사 초하루 기축일에 조를 내렸다.

"옛적의 다스림은 백성이 제자리를 얻어 성과 이름이 어지럽지 않았다. 이제 짐이 자리에 오른 지 네 해다. 위아래가 서로 다투고 백성이 편안하지 않다. 어떤 이는 제 성을 그르쳐 잃고 어떤 이는 짐짓 높은 씨를 사칭한다. 다스림에 이르지 못하는 것이 아마 이 때문일 것이다. 짐이 비록 어질지 못하나 어찌 그 어지러움을 바로잡지 않겠는가. 여러 신하는 의논하여 정하여 아뢰라."

여러 신하가 다 말하였다. "폐하께서 잃은 것을 들고 굽은 것을 바로하여 씨와 성을 정하신다면 신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옳다고 아뢰겠습니다."

7구가타치로 가리다

戊申。詔曰。羣卿百寮及諸國造等皆各言。或帝皇之裔。或異之天降。然三才顯分以來。多歴萬歳。是以一氏蕃息。更爲萬姓。難知其實。故諸氏姓人等。沐浴齋戒各爲盟神探湯。則於味橿丘之辭禍戸。坐探湯瓮而引諸人令赴曰。得實則全。僞者必害。於是諸人各著木綿手繦而赴釜探湯。則得實者自全。不得實者皆傷。是以故詐者愕然之。豫退無進。自是之後。氏姓自定。更無詐人。

무신일에 조를 내렸다.

"여러 대신과 온갖 벼슬아치와 여러 구니노미야쓰코들이 다 각각 말하기를 어떤 이는 임금의 후예라 하고 어떤 이는 하늘에서 내려왔다 한다. 그러나 하늘과 땅과 사람 셋이 드러나 갈린 이래로 만 해를 지났다. 이 때문에 한 씨가 불어나 다시 만 성이 되었으니 그 실상을 알기 어렵다. 그러므로 여러 씨와 성을 가진 이들은 목욕하고 재계하여 각각 구가타치(盟神探湯)를 하라."

곧 우마카시 언덕의 고토노마가쓰히에 구가타치 항아리를 놓고 여러 사람을 이끌어 나아가게 하며 말하였다. "실상을 얻은 이는 온전하고 거짓된 이는 반드시 다칠 것이다."

이에 여러 사람이 각각 무명 어깨끈을 매고 가마에 나아가 끓는 물을 더듬었다. 곧 실상을 얻은 이는 절로 온전하고 실상을 얻지 못한 이는 다 다쳤다. 이 때문에 짐짓 속인 이들이 놀라 미리 물러나고 나아가지 않았다. 이로부터 뒤로 씨와 성이 절로 정해지고 다시 속이는 사람이 없었다.

협주 1

盟神探湯。此云區訶陀智。或泥納釜煮沸攘手探湯泥。或燒斧火色置于掌。

맹신탐탕(盟神探湯)은 구가타치라 읽는다. 혹은 진흙을 가마에 넣어 끓여 손을 걷고 끓는 진흙을 더듬는다. 혹은 도끼를 불에 달구어 손바닥에 놓는다.

8다마타노스쿠네를 베다

五年秋七月丙子朔己丑。地震。先是命葛城襲津彦之孫玉田宿禰。主瑞齒別天皇之殯。則當地震夕。遣尾張連吾襲。察殯宮之消息。時諸人悉聚無闕。唯玉田宿禰無之也。吾襲奏言。殯宮大夫玉田宿禰非見殯所。則亦遣吾襲於葛城。令視玉田宿禰。是日。玉田宿禰方集男女而酒宴焉。吾襲擧状具告玉田宿禰。宿禰則畏有事。以馬一匹授吾襲爲禮幣。乃密遮吾襲而殺于道路。因以逃隱武内宿禰之墓域。天皇聞之喚玉田宿禰。玉田宿禰疑之。甲服襖中而參赴。甲端自衣中出之。天皇分明欲知其状。乃令小墾田釆女賜酒于玉田宿禰。爰釆女分明瞻衣中有鎧。而具奏于天皇。天皇設兵將殺玉田宿禰。乃密逃出而匿家。天皇更發卒圍玉田家。而捕之乃誅。

오년 가을 칠월 병자 초하루 기축일에 땅이 흔들렸다.

이보다 앞서 가즈라키노소쓰히코의 손자 다마타노스쿠네에게 명하여 미즈하와케천황의 빈소를 맡게 하였다. 곧 땅이 흔들리던 저녁에 오와리노무라지 아소를 보내어 빈궁의 형편을 살피게 하였다. 그때 여러 사람이 다 모여 빠진 이가 없었으나 오직 다마타노스쿠네가 없었다.

아소가 아뢰었다. "빈궁의 대부 다마타노스쿠네가 빈소에 보이지 않습니다."

곧 또 아소를 가즈라키에 보내어 다마타노스쿠네를 보게 하였다. 이날 다마타노스쿠네가 마침 남녀를 모아 술잔치를 하고 있었다. 아소가 사정을 들어 다마타노스쿠네에게 갖추어 알렸다.

스쿠네가 곧 일이 드러날까 두려워 말 한 필을 아소에게 주어 예물로 삼았다. 이에 몰래 아소를 가로막아 길에서 죽였다. 이로 인하여 다케우치노스쿠네의 무덤 지경에 도망해 숨었다.

천황이 이를 듣고 다마타노스쿠네를 불렀다. 다마타노스쿠네가 의심하여 갑옷을 저고리 속에 입고 나아왔다. 갑옷 자락이 옷 속에서 나왔다.

천황이 그 모양을 분명히 알고자 하여 이에 오하리다의 우네메를 시켜 다마타노스쿠네에게 술을 내리게 하였다. 이에 우네메가 옷 속에 갑옷이 있음을 분명히 보고 천황에게 갖추어 아뢰었다.

천황이 군사를 두어 다마타노스쿠네를 죽이려 하였다. 이에 몰래 도망해 나와 집에 숨었다. 천황이 다시 군졸을 내어 다마타의 집을 에워싸 잡아 베었다.

9미미하라 능

冬十有一月甲戌朔甲申。葬瑞齒別天皇于耳原陵。

겨울 십일월 갑술 초하루 갑신일에 미즈하와케천황을 미미하라 능에 장사 지냈다.

10소토오시노이라쓰메를 부르다

七年冬十二月壬戌朔。讌于新室。天皇親之撫琴。皇后起■。々既終而不言禮事。當時風俗。於宴會者、■者■終。則自對座長曰。奉娘子也。時天皇謂皇后曰。何失常禮也。皇后惶之復起■。々竟言。奉娘子。天皇即問皇后曰。所奉娘子者誰也。欲知姓字。皇后不獲已而奏言。妾弟名弟姫焉。弟姫容姿絶妙無比。其艶色徹衣而晃之。是以。時人號曰衣通郎姫也。天皇之志存于衣通郎姫。故強皇后而令進。皇后知之不輙言禮事。爰天皇歡喜。則明日遣使者喚弟姫。時弟姫随母。以在於近江坂田。弟姫畏皇后之情。而不參向。又重七喚。猶固辭以不至。於是天皇不悦。而復勅一舎人中臣烏賦津使主曰。皇后所進之娘子弟姫。喚而不來。汝自往之召將弟姫以來。必敦賞矣。爰烏賦津使主承命退之。糒■■中。到坂田。伏于弟姫庭中言。天皇命以召之。弟姫對曰。豈非懼天皇之命。唯不欲傷皇后之志耳。妾雖身亡不參赴。

칠년 겨울 십이월 임술 초하루에 새 방에서 잔치하였다. 천황이 몸소 거문고를 타고 황후가 일어나 춤추었다. 춤이 이미 끝나매 예의 말을 하지 않았다.

그때 풍속에 잔치 자리에서 춤춘 이는 춤이 끝나면 스스로 마주 앉은 어른에게 "아가씨를 바칩니다" 하였다.

그때 천황이 황후에게 일렀다. "어찌 늘 하던 예를 빠뜨리는가."

황후가 두려워하여 다시 일어나 춤추었다. 춤이 끝나매 말하였다. "아가씨를 바칩니다."

천황이 곧 황후에게 물었다. "바치는 아가씨란 누구냐. 성과 이름을 알고자 한다."

황후가 마지못하여 아뢰었다. "제 아우이니 이름은 오토히메입니다."

오토히메는 얼굴과 모습이 빼어나 견줄 데가 없고, 그 고운 빛이 옷을 뚫고 빛났다. 이 때문에 그때 사람들이 소토오시노이라쓰메(衣通郎姫)라 하였다.

천황의 뜻이 소토오시노이라쓰메에게 있었다. 그러므로 황후에게 억지로 시켜 바치게 하였다. 황후가 이를 알고 문득 예의 말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에 천황이 기뻐하여 이튿날 사자를 보내어 오토히메를 불렀다. 그때 오토히메가 어머니를 따라 오미의 사카타에 있었다. 오토히메가 황후의 마음을 두려워하여 나아오지 않았다. 또 거듭 일곱 번 불렀으나 오히려 굳이 사양하고 오지 않았다.

이에 천황이 기뻐하지 않고 다시 한 도네리 나카토미노이카쓰노오미에게 칙명하였다. "황후가 바친 아가씨 오토히메를 불러도 오지 않는다. 네가 몸소 가서 오토히메를 불러 데리고 오너라. 반드시 두터이 상 주겠다."

이에 이카쓰노오미가 명을 받고 물러났다. 마른밥을 품속에 넣고 사카타에 이르러 오토히메의 뜰에 엎드려 말하였다. "천황의 명으로 부르러 왔습니다."

오토히메가 대답하였다. "어찌 천황의 명을 두려워하지 않겠습니까. 다만 황후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 싶지 않을 뿐입니다. 제가 비록 몸이 죽더라도 나아가지 않겠습니다."

11이레를 뜰에 엎드리다

時烏賦津使主對言。臣既被天皇命。必召率來矣。若不將來必罪之。故返被極刑。寧伏庭而死耳。仍經七日。伏於庭中。與飲食而不■。密食懷中之糒。於是弟姫以爲。妾因皇后之嫉。既拒天皇命。且亡君之忠臣。是亦妾罪。則從烏賦津使主而來之。到倭春日食于檪井上。弟姫親賜酒于使主慰其意。使主即日至京。留弟姫於倭直吾子篭之家。復命天皇。天皇大歡之。美烏賊津使主。而敦寵焉。然皇后之色不平。是以勿近宮中。則別構殿屋於藤原而居也。適産大泊瀬天皇之夕。天皇始幸藤原宮。皇后聞之恨曰。妾初自結髮陪於後宮。既經多年。甚哉天皇也。今妾産之死生相半。何故當今夕。必幸藤原。乃自出之燒産殿而將死。天皇聞之大驚曰。朕過也。因慰喩皇后之意焉。

그때 이카쓰노오미가 대답하였다. "신이 이미 천황의 명을 받았으니 반드시 불러 데리고 가겠습니다. 만약 데려가지 못하면 반드시 죄를 받습니다. 그러므로 돌아가 지극한 형벌을 받느니 차라리 뜰에 엎드려 죽겠습니다."

이어 이레를 뜰 가운데 엎드렸다. 마실 것과 먹을 것을 주어도 먹지 않고 몰래 품속의 마른밥을 먹었다.

이에 오토히메가 생각하였다. '내가 황후의 시샘 때문에 이미 천황의 명을 거스르고, 또 임금의 충신을 죽인다면 이 또한 내 죄다.'

곧 이카쓰노오미를 따라왔다. 야마토의 가스가에 이르러 이치이 냇가에서 밥을 먹었다. 오토히메가 몸소 이카쓰노오미에게 술을 내려 그 마음을 위로하였다.

이카쓰노오미가 그날로 서울에 이르러 오토히메를 야마토노아타이 아고코의 집에 머물게 하고 천황에게 명을 아뢰었다.

천황이 크게 기뻐하고 이카쓰노오미를 아름다이 여겨 두터이 사랑하였다.

그러나 황후의 낯빛이 편치 않았다. 이 때문에 궁 안에 가까이 두지 않고 곧 후지와라에 따로 전각을 지어 살게 하였다.

마침 오하쓰세천황을 낳던 저녁에 천황이 처음 후지와라노미야에 나아갔다. 황후가 이를 듣고 한하여 말하였다. "제가 처음 머리를 얹은 뒤로 후궁에 모신 지 이미 여러 해가 지났습니다. 심하십니다, 천황이시여. 이제 제가 낳으매 죽고 삶이 반반인데 무슨 까닭으로 바로 이 저녁에 반드시 후지와라에 가십니까."

이에 스스로 나와 산실을 불사르고 죽으려 하였다.

천황이 이를 듣고 크게 놀라 말하였다. "짐의 허물이다." 이어 황후의 마음을 위로하여 타일렀다.

12후지와라에서 주고받은 노래

八年春二月。幸于藤原。密察衣通郎姫之消息。是夕衣通郎姫戀天皇而獨居。其不知天皇之臨。而歌曰。和餓勢故餓。勾倍枳豫臂奈利。佐瑳餓泥能。區茂能於虚奈比。虚豫比辭流辭毛。天皇聆是歌。則有感情。而歌之曰。佐瑳羅餓多。迩之枳能臂毛弘。等枳舎氣帝。阿麻多絆泥受邇。多比等用能未。明旦。天皇見井傍櫻華而歌之曰。波那具波辭。佐區羅能梅涅。許等梅涅麼。波椰區波梅涅孺。和我梅豆留古羅。皇后聞之且大恨也。於是。衣通郎姫奏言。妾常近王宮。而晝夜相續欲視陛下之威儀。然皇后則妾之姉也。因妾以恒恨陛下。亦爲妾苦。是以。冀離王居而欲遠居。若皇后嫉意少息歟。天皇則更興造宮室於河内茅渟。而衣通郎姫令居。因此以屡遊獵于日根野。

팔년 봄 이월에 후지와라에 나아가 몰래 소토오시노이라쓰메의 형편을 살폈다.

이날 저녁 소토오시노이라쓰메가 천황을 그리며 홀로 있었다. 천황이 온 줄 알지 못하고 노래하였다.

「와가세코가 구베키요히나리 사사가네노 구모노오코나히 고요히시루시모(和餓勢故餓。勾倍枳豫臂奈利。佐瑳餓泥能。區茂能於虚奈比。虚豫比辭流辭毛)」

천황이 이 노래를 듣고 곧 감동하는 마음이 있어 노래하였다.

「사사라가타 니시키노히모오 도키사케테 아마타와네즈니 다다히토요노미(佐瑳羅餓多。迩之枳能臂毛弘。等枳舎氣帝。阿麻多絆泥受邇。多比等用能未)」

이튿날 아침에 천황이 우물가의 벚꽃을 보고 노래하였다.

「하나구하시 사쿠라노메데 고토메데바 하야쿠와메데즈 와가메즈루코라(波那具波辭。佐區羅能梅涅。許等梅涅麼。波椰區波梅涅孺。和我梅豆留古羅)」

— 세 노래는 소리를 적은 것이라 뜻으로 옮기지 않는다.

황후가 이를 듣고 또 크게 한하였다.

이에 소토오시노이라쓰메가 아뢰었다. "제가 늘 왕궁 가까이 있어 밤낮으로 이어 폐하의 거동을 뵙고자 합니다. 그러나 황후는 곧 제 언니입니다. 저 때문에 늘 폐하를 한하고 또 저를 위하여 괴로워합니다. 이 때문에 바라건대 왕이 계신 데를 떠나 멀리 살고자 합니다. 그러면 혹 황후의 시샘하는 마음이 조금 그칠까 합니다."

천황이 곧 다시 가와치의 지누에 궁실을 지어 소토오시노이라쓰메를 살게 하였다. 이로 인하여 자주 히네노에 사냥하며 놀았다.

13지누노미야에 나아가다

九年春二月。幸茅渟宮。

구년 봄 이월에 지누노미야에 나아갔다.

14지누에 나아가다

秋八月。幸茅渟。

가을 팔월에 지누에 나아갔다.

15지누에 나아가다

冬十月。幸茅渟。

겨울 시월에 지누에 나아갔다.

16거둥을 줄이다

十年春正月。幸茅渟。於是皇后奏言。妾如毫毛非嫉弟姫。然恐陛下屡幸於茅渟。是百姓之苦歟。仰願宜除車駕之數也。是後希有之幸焉。

십년 봄 정월에 지누에 나아갔다.

이에 황후가 아뢰었다. "제가 터럭만큼도 오토히메를 시샘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폐하께서 자주 지누에 나아가심이 백성의 괴로움이 될까 두렵습니다. 우러러 바라건대 마땅히 거둥의 수를 줄이소서."

이 뒤로 나아가는 일이 드물었다.

17후지와라베를 정하다

十一年春三月癸卯朔丙午。幸於茅渟宮。衣通郎姫歌之曰。等虚辭陪迩。枳彌母阿閇椰毛。異舎儺等利。宇彌能波摩毛能。余留等枳等枳弘。時天皇謂衣通郎姫曰。是歌不可聆他人。皇后聞必大恨故時人號濱藻。謂奈能利曾毛也。先是衣通郎姫居于藤原宮。時天皇詔大伴室屋連曰。朕頃得美麗孃子。是皇后母弟也。朕心異愛之。冀其名欲傳于後葉奈何。室屋連依勅而奏可。則科諸國造等。爲衣通郎姫定藤原部。

십일년 봄 삼월 계묘 초하루 병오일에 지누노미야에 나아갔다. 소토오시노이라쓰메가 노래하였다.

「도코시헤니 기미모아헤야모 이사나토리 우미노하마모노 요루토키토키오(等虚辭陪迩。枳彌母阿閇椰毛。異舎儺等利。宇彌能波摩毛能。余留等枳等枳弘)」

— 소리를 적은 것이라 뜻으로 옮기지 않는다.

그때 천황이 소토오시노이라쓰메에게 일렀다. "이 노래를 다른 사람이 듣게 하지 마라. 황후가 들으면 반드시 크게 한할 것이다."

그러므로 그때 사람들이 바닷말을 나노리소모(말하지 마라 풀)라 하였다.

이보다 앞서 소토오시노이라쓰메가 후지와라노미야에 있을 때 천황이 오토모노무로야노무라지에게 조를 내렸다. "짐이 요사이 아름다운 아가씨를 얻었다. 이는 황후의 동복 아우다. 짐의 마음에 남달리 사랑스럽다. 바라건대 그 이름을 뒷세상에 전하고자 하는데 어찌하면 좋겠는가."

무로야노무라지가 칙명에 따라 옳다고 아뢰었다. 곧 여러 구니노미야쓰코들에게 명하여 소토오시노이라쓰메를 위하여 후지와라베를 정하였다.

18오사시가 진주를 얻고 죽다

十四年秋九月癸丑朔甲子。天皇獵于淡路嶋。時麋鹿猿猪莫莫紛紛。盈于山谷。■起蝿散。然終日以下獲一獸。於是。獵止以更卜矣。嶋神祟之曰。不得獸者。是我之心也。赤石海底有眞珠。其珠祠於我。則悉當得獸。爰更集處處之白水郎。以令探赤石海底。海深不能至底。唯有一海人。曰男狹磯。是阿波國長邑之海人也。勝於諸海人。好深探。是腰繋繩入海底。差頃之出曰。於海底有大蝮。其處光也。諸人皆曰。嶋神所請之珠。殆有是蝮腹乎。亦入而探之。爰男狹磯抱大蝮而泛出之。乃息絶以死浪上。既而下繩測海深六十尋。則割蝮實眞珠有腹中。其大如桃子。乃祠嶋神而獵之。多獲獸也。唯悲男狹磯入海死之。則作墓厚葬。其墓猶今存之。

십사년 가을 구월 계축 초하루 갑자일에 천황이 아와지섬에서 사냥하였다. 그때 사슴과 원숭이와 멧돼지가 무리 지어 어지러이 산과 골에 가득하고, 불길처럼 일어나고 파리처럼 흩어졌다. 그러나 온종일 한 마리 짐승도 잡지 못하였다.

이에 사냥을 그치고 다시 점쳤다. 섬의 신이 빌미를 내려 말하였다. "짐승을 얻지 못하는 것은 내 마음이다. 아카시 바다 밑에 진주가 있다. 그 구슬을 나에게 제사하면 곧 다 짐승을 얻을 것이다."

이에 다시 곳곳의 어부를 모아 아카시 바다 밑을 더듬게 하였다. 바다가 깊어 밑에 이르지 못하였다.

오직 한 어부가 있어 오사시라 하였다. 이는 아와국 나가 마을의 어부다. 여러 어부보다 뛰어나 깊이 더듬기를 잘하였다. 이가 허리에 줄을 매고 바다 밑에 들어갔다. 잠시 뒤에 나와 말하였다. "바다 밑에 큰 전복이 있는데 그곳이 빛납니다."

여러 사람이 다 말하였다. "섬의 신이 청한 구슬이 아마 이 전복 배에 있을 것이다."

또 들어가 더듬었다. 이에 오사시가 큰 전복을 안고 떠올랐다. 이에 숨이 끊어져 물결 위에서 죽었다.

이윽고 줄을 내려 바다 깊이를 재니 예순 길이었다. 곧 전복을 가르니 참으로 진주가 배 속에 있었다. 그 크기가 복숭아만 하였다.

이에 섬의 신에게 제사하고 사냥하니 짐승을 많이 얻었다.

오직 오사시가 바다에 들어가 죽은 것을 슬퍼하여 곧 무덤을 만들어 두터이 장사 지냈다. 그 무덤이 지금도 남아 있다.

19태자가 누이와 통하다

廿三年春三月甲午朔庚子。立木梨輕皇子爲太子。容姿佳麗。見者自感。同母妹輕大娘皇女亦艶妙也。太子恒念合大娘皇女。畏有罪而黙之。然感情既盛。殆將至死。爰以爲。徒空死者。雖有罪。何得忍乎。遂竊通。乃悒懷少息。因以歌之曰。阿資臂紀能。椰摩娜烏菟勾利。椰摩娜箇彌。斯■媚烏和之勢。志■那企貳。和餓儺勾菟摩。箇■儺企貳。和餓儺勾兎摩。去樽去曾。椰主區■娜布例。

이십삼년 봄 삼월 갑오 초하루 경자일에 기나시노카루 황자를 세워 태자로 삼았다. 얼굴과 모습이 아름다워 보는 이가 절로 감동하였다. 동복 누이 가루노오이라쓰메 황녀 또한 곱고 묘하였다.

태자가 늘 오이라쓰메 황녀와 어울릴 생각을 하였으나 죄가 있을까 두려워 잠잠하였다. 그러나 마음이 이미 성하여 거의 죽을 지경에 이르렀다. 이에 생각하였다. '헛되이 죽느니 비록 죄가 있은들 어찌 참겠는가.'

마침내 몰래 통하였다. 이에 답답한 마음이 조금 그쳤다. 이로 인하여 노래하였다.

「아시히키노 야마다오쓰쿠리 야마다카미 시타비오와시세 시타나키니 와가나쿠쓰마 가타나키니 와가나쿠쓰마 고조코소 야스쿠하다후레(阿資臂紀能。椰麻娜烏菟勾利。椰麻娜箇彌。斯■媚烏和之勢。志■那企貳。和餓儺勾菟摩。箇■儺企貳。和餓儺勾兎摩。去樽去曾。椰主區■娜布例)」

— 소리를 적은 것이라 뜻으로 옮기지 않는다.

20국이 얼다

廿四年夏六月。御膳羹汁凝以作氷。天皇異之卜其所由。卜者曰。有内亂。盖親親相奸乎。時有人曰。木梨輕太子同母妹輕大娘皇女。因以推問焉。辭既實也。太子是爲儲君。不得罪。則流輕大娘皇女於伊豫。是時太子歌之曰。於褒企彌烏。志摩珥波夫利。布儺阿摩利。異餓幣利去牟鋤。和餓■■瀰由梅。去等烏許曾。■多瀰等異絆梅。和餓菟摩烏由梅。又歌之曰。阿■摩霧。箇留■等賣。異■儺介縻。臂等資利奴陪瀰。幡舎能夜摩能。波刀能資■儺企迩奈勾。

이십사년 여름 유월에 임금의 밥상에 오른 국이 엉겨 얼음이 되었다. 천황이 이상히 여겨 그 까닭을 점쳤다. 점치는 이가 말하였다. "안에 어지러움이 있습니다. 아마 가까운 이끼리 서로 간음한 것이겠습니다."

그때 어떤 사람이 말하였다. "기나시노카루 태자가 동복 누이 가루노오이라쓰메 황녀와 그러합니다."

이로 인하여 미루어 물으니 말이 이미 사실이었다. 태자는 뒤이을 임금이므로 죄줄 수 없었다. 곧 가루노오이라쓰메 황녀를 이요로 귀양 보냈다.

이때 태자가 노래하였다.

「오호키미오 시마니하부리 후나아마리 이가헤리코무조 와가타타미유메 고토오코소 다타미토이하메 와가쓰마오유메(於褒企彌烏。志摩珥波夫利。布儺阿摩利。異餓幣利去牟鋤。和餓■■瀰由梅。去等烏許曾。■多瀰等異絆梅。和餓菟摩烏由梅)」

또 노래하였다.

「아마타무 가루노오토메 이타나케바 히토시리누베미 하사노야마노 하토노시타나키니나쿠(阿■摩霧。箇留■等賣。異■儺介縻。臂等資利奴陪瀰。幡舎能夜摩能。波刀能資■儺企迩奈勾)」

— 두 노래는 소리를 적은 것이라 뜻으로 옮기지 않는다.

21신라가 조문하다

四十二年春正月乙亥朔戊子。天皇崩。時年若干。於是新羅王聞天皇既崩而驚愁之。貢上調船八十艘及種種樂人八十。是泊對馬而大哭。到筑紫亦大哭。泊于難波津。則皆素服之。悉捧御調。且張種種樂器。自難波至于京。或哭泣或■歌。遂參會於殯宮也。

사십이년 봄 정월 을해 초하루 무자일에 천황이 죽었다. 그때 나이가 얼마인지는 알 수 없다.

이에 신라 왕이 천황이 이미 죽었다는 말을 듣고 놀라 근심하였다. 조(調) 실은 배 여든 척과 온갖 악인 여든 사람을 바쳤다. 이들이 쓰시마에 닿아 크게 울고, 쓰쿠시에 이르러 또 크게 울고, 나니와 나루에 닿아서는 다 흰옷을 입었다. 조를 다 받들어 올리고 또 온갖 악기를 벌였다. 나니와에서 서울에 이르도록 더러는 곡하고 더러는 춤추고 노래하며 마침내 빈궁에 나아가 모였다.

22우네비산과 미미나시산

冬十一月。新羅弔使等喪禮既而還之。爰新羅人恒愛京城傍耳成山。畝傍山。則到琴引坂。顧之曰。宇泥■巴椰。彌彌巴椰。是未習風俗之言語。故訛畝傍山謂宇泥■。訛耳成山謂瀰瀰耳。時倭飼部從新羅人。聞是辭而疑之以爲。新羅人通釆女耳。乃返之啓于大泊瀬皇子。皇子則悉禁固新羅使者而推問時新羅使者啓之曰。無犯釆女。唯愛京傍之兩山而言耳。則知虚言皆原之。於是新羅人大恨。更減貢上之物色及船數。

겨울 십일월에 신라 조문 사절들이 상례를 마치고 돌아갔다.

이에 신라 사람들이 늘 서울 곁의 미미나시산과 우네비산을 사랑하였다. 곧 고토비키 고개에 이르러 돌아보며 말하였다. "우네메하야, 미미하야."

이는 아직 그 나라 풍속의 말에 익숙하지 않아서였다. 그러므로 우네비산을 잘못 옮겨 우네메라 하고, 미미나시산을 잘못 옮겨 미미라 한 것이다.

그때 야마토의 우마카이베가 신라 사람을 따르다가 이 말을 듣고 의심하여 여겼다. '신라 사람이 우네메와 통하였구나.' 이에 돌아와 오하쓰세 황자에게 아뢰었다.

황자가 곧 신라 사자를 다 가두고 미루어 물었다.

그때 신라 사자가 아뢰었다. "우네메를 범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서울 곁의 두 산을 사랑하여 말하였을 뿐입니다."

곧 헛말인 줄 알고 다 놓아주었다.

이에 신라 사람이 크게 한하여 다시 바치는 물건의 종류와 배의 수를 줄였다.

23나가노하라 능

冬十月庚午朔己卯。葬天皇於河内長野原陵。

겨울 시월 경오 초하루 기묘일에 천황을 가와치의 나가노하라 능에 장사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