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체천황繼體天皇
1계체천황
男大迹天皇更名彦太尊。譽田天皇五世孫、彦主人王之子也。母曰振媛。振媛、活目天皇七世之孫也。天皇父聞振媛顏容姝妙甚有媺色、自近江國高嶋郡三尾之別業、遣使聘于三國坂中井、中、此云那。納以爲妃。遂産天皇。天皇幼年、父王薨。振媛廼歎曰、妾今遠離桑梓。安能得膝養。余歸寧高向、高向者、越前國邑名。奉養天皇。天皇壯大、愛士禮賢、意豁如也。天皇年五十七歲、八年冬十二月己亥、小泊瀬天皇崩。元無男女、可絶繼嗣。
오도천황(男大迹天皇) — 다른 이름은 히코후토노미코토다. — 은 호무타천황의 오대손이요 히코우시노오키미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후리히메라 한다. 후리히메는 이쿠메천황의 칠대손이다.
천황의 아버지가 후리히메의 얼굴이 곱고 묘하며 아름다운 빛이 있다는 말을 듣고, 오미국 다카시마군 미오의 별장에서 사자를 보내어 미쿠니의 사카나위 — 나(中)는 나라 읽는다. — 에 청하여 맞아들여 비로 삼았다. 마침내 천황을 낳았다.
천황이 어린 나이에 아버지 왕이 죽었다. 후리히메가 이에 탄식하였다. "내가 이제 고향을 멀리 떠났으니 어찌 무릎에 두고 기를 수 있겠는가. 내가 다카무쿠로 돌아가겠다." — 다카무쿠는 에치젠국의 마을 이름이다. — 그리하여 천황을 받들어 길렀다.
천황이 장성하매 선비를 아끼고 어진 이를 예로 대하며 뜻이 넓었다.
천황의 나이 쉰일곱 살 되던 팔년 겨울 십이월 기해일에 오하쓰세천황이 죽었다. 본디 아들딸이 없어 뒤이을 이가 끊길 만하였다.
2야마토히코노오키미가 달아나다
壬子、大伴金村大連議曰、方今絶無繼嗣。天下何所繋心。自古迄今、禍由斯起。今足仲彦天皇五世孫倭彦王、在丹波國桑田郡。請、試設兵仗、夾衞乘輿、就而奉迎、立爲人主。大臣大連等、一皆隨焉、奉迎如計。於是、倭彦王、遙望迎兵、懼然失色。仍遁山壑、不知所詣。
임자일에 오토모노카나무라노오무라지가 의논하여 말하였다.
"이제 뒤이을 이가 끊겨 없다. 천하가 어디에 마음을 매겠는가. 예로부터 이제까지 화가 이로 말미암아 일어났다. 이제 다라시나카쓰히코천황의 오대손 야마토히코노오키미가 다니와국 구와타군에 있다. 청컨대 시험 삼아 병장기를 갖추어 수레를 좌우에서 호위하고 나아가 맞아 받들어 임금으로 세우자."
대신과 오무라지들이 하나같이 다 따라 계책대로 맞으러 갔다.
이에 야마토히코노오키미가 멀리 맞으러 오는 군사를 바라보고 두려워 낯빛을 잃었다. 이어 산골짜기로 달아나 간 곳을 알 수 없었다.
3오도왕을 맞이하다
元年春正月辛酉朔甲子、大伴金村大連、更籌議曰、男大迹王、性慈仁孝順。可承天緒。冀慇懃勸進、紹隆帝業。物部麁鹿火大連・許勢男人大臣等、僉曰、妙簡枝孫、賢者唯男大迹王也。丙寅、遣臣連等、持節以備法駕、奉迎三國。夾衞兵仗、肅整容儀、警蹕前駈、奄然而至。於是、男大迹天皇、晏然自若、踞坐胡床。齊列陪臣、既如帝坐。持節使等、由是敬憚、傾心委命、冀盡忠誠。然天皇、意裏尚疑、久而不就。適知河內馬飼首荒籠。密奉遣使、具述大臣大連等所以奉迎本意。留二日三夜、遂發。乃喟然而歎曰、懿哉、馬飼首。汝若無遣使來告、殆取蚩於天下。世云、勿論貴賤。但重其心。蓋荒籠之謂乎。及至踐祚、厚加荒籠寵待。甲申、天皇行至樟葉宮。
원년 봄 정월 신유 초하루 갑자일에 오토모노카나무라노오무라지가 다시 헤아려 의논하였다. "오도왕은 성품이 자애롭고 어질며 효성스럽고 순하다. 하늘의 실마리를 이을 만하다. 바라건대 은근히 권하여 나아오게 하여 임금의 업을 이어 융성하게 하자."
모노노베노아라카히노오무라지와 고세노오히토노오오미들이 다 말하였다. "가지와 손자를 잘 가리건대 어진 이는 오직 오도왕이다."
병인일에 오미와 무라지들을 보내어 부절을 가지고 법식대로 수레를 갖추어 미쿠니에 맞으러 갔다. 좌우에 병장기로 호위하고 몸가짐을 엄숙히 갖추며 앞길을 물리치는 이가 달려, 홀연히 이르렀다.
이에 오도천황이 편안하고 태연하여 걸상에 걸터앉았다. 배신들을 가지런히 벌여 놓은 것이 이미 임금의 자리 같았다. 부절을 가진 사자들이 이로 말미암아 공경하고 꺼려 마음을 기울여 목숨을 맡기고 충성을 다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천황이 속으로는 오히려 의심하여 오래도록 나아가지 않았다.
마침 가와치노우마카이노오비토 아라코를 알고 있었다. 몰래 사자를 보내어 대신과 오무라지들이 맞으러 온 본뜻을 갖추어 알렸다. 이틀 낮 사흘 밤을 머물다가 마침내 떠났다.
이에 한숨 쉬며 탄식하였다. "아름답구나, 우마카이노오비토여. 네가 만약 사자를 보내어 알리지 않았다면 하마터면 천하에 웃음을 살 뻔하였다. 세상에 이르기를 '귀함과 천함을 논하지 말고 다만 그 마음을 무겁게 여기라' 하였으니, 아마 아라코를 두고 이른 말인가."
자리에 오르기에 미쳐 아라코를 두터이 사랑하고 대접하였다.
갑신일에 천황이 구스바노미야에 이르렀다.
4자리에 오르다
二月辛卯朔甲午、大伴金村大連、乃跪上天子鏡劒璽符再拜。男大迹天皇謝曰、子民治國重事也。寡人不才、不足以稱。願請、𢌞慮擇賢者。寡人不敢當。大伴大連、伏地固請。男大迹天皇、西向讓者三。南向讓者再。大伴大連等皆曰、臣伏計之、大王子民治國、最宜稱。臣等、爲宗廟社稷、計不敢忽。幸藉衆願、乞垂聽納。男大迹天皇曰、大臣大連、將相諸臣、咸推寡人。寡人敢不乖、乃受璽符。是日、卽天皇位。以大伴金村大連爲大連、許勢男人大臣爲大臣、物部麁鹿火大連爲大連、並如故。是以、大臣大連等、各依職位焉。
이월 신묘 초하루 갑오일에 오토모노카나무라노오무라지가 이에 꿇어앉아 천자의 거울과 칼과 도장을 올리고 두 번 절하였다.
오도천황이 사양하였다. "백성을 자식으로 삼고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무거운 일이다. 나는 재주가 없어 일컫기에 모자란다. 바라건대 생각을 돌려 어진 이를 가리라. 나는 감히 감당하지 못하겠다."
오토모노오무라지가 땅에 엎드려 굳이 청하였다. 오도천황이 서쪽을 향하여 세 번 사양하고 남쪽을 향하여 두 번 사양하였다.
오토모노오무라지들이 다 말하였다. "신들이 엎드려 헤아리건대 대왕께서 백성을 자식으로 삼고 나라를 다스리심이 가장 마땅히 일컬을 만합니다. 신들이 종묘와 사직을 위하여 헤아림에 감히 소홀하지 않았습니다. 바라건대 뭇사람의 바람에 힘입어 들어 받아들이소서."
오도천황이 말하였다. "대신과 오무라지와 장수와 재상과 여러 신하가 다 나를 미니 내가 감히 어기지 못하겠다." 이에 도장을 받았다.
이날 천황의 자리에 올랐다. 오토모노카나무라노오무라지를 오무라지로 삼고 고세노오히토노오오미를 대신으로 삼고 모노노베노아라카히노오무라지를 오무라지로 삼으니 아울러 전과 같았다. 이로써 대신과 오무라지들이 각각 직위에 따랐다.
5다시라카 황녀를 황후로 청하다
庚子、大伴大連奏請曰、臣聞、前王之宰世也、非維城之固、無以鎭其乾坤。非掖庭之親、無以繼其趺萼。是故、白髮天皇無嗣、遣臣祖父大伴大連室屋、毎州安置三種白髮部、言三種者、一白髮部舍人、二白髮部供膳、三白髮部靫負也。以留後世之名。嗟夫、可不愴歟。請、立手白香皇女、納爲皇后、遣神祗伯等、敬祭神祗、求天皇息。允答民望。天皇曰、可矣。
경자일에 오토모노오무라지가 아뢰어 청하였다.
"신이 듣건대 앞 임금들이 세상을 다스릴 때 담 같은 굳음이 아니면 하늘과 땅을 눌러 진정할 수 없고, 궁의 친함이 아니면 그 꽃받침을 이을 수 없다 하였습니다.
이 때문에 시라카천황이 뒤이을 이가 없으매 신의 할아비 오토모노오무라지 무로야를 보내어 고을마다 세 가지 시라카베를 두게 하시고 — 세 가지라 한 것은 하나는 시라카베노토네리요 둘은 시라카베노가시와데요 셋은 시라카베노유게이다. — 뒷세상에 이름을 남기게 하셨습니다. 아아, 슬프지 않겠습니까.
청컨대 다시라카 황녀를 세워 황후로 들이시고 신들의 벼슬아치를 보내어 공경히 신들에게 제사하여 천황의 아들을 구하시어, 백성의 바람에 진실로 답하소서."
천황이 말하였다. "옳다."
6황후를 세우고 농사를 권하다
三月庚申朔、詔曰、神祗不可乏主。宇宙不可無君。天生黎庶、樹以元首、使司助養、令全性命。大連憂朕無息、被誠款、以國家、世々盡忠。豈唯朕日歟。宜備禮儀、奉迎手白香皇女。甲子、立皇后手白香皇女、修教于內。遂生一男。是爲天國排開廣庭尊。開、此云波羅企。是嫡子而幼年。於二兄治後、有其天下。二兄者、廣國排武金日尊、與武小廣國押盾尊也。見下文。戊辰、詔曰、朕聞、土有當年而不耕者、則天下或受其飢矣。女有當年而不績者、天下或受其寒矣。故、帝王躬耕、而勸農業、后妃親蠶、而勉桑序。況厥百寮、曁于萬族、廢棄農績、而至殷富者乎。有司普告天下、令識朕懷。
삼월 경신 초하루에 조를 내렸다.
"신들에게 주인이 없을 수 없고 온 세상에 임금이 없을 수 없다. 하늘이 백성을 내고 우두머리를 세워, 맡아 도와 기르게 하여 목숨을 온전히 하게 한다. 오무라지가 짐에게 자식이 없음을 근심하여 정성을 다하고 나라를 위하여 대대로 충성을 다하니, 어찌 짐의 대에만 그러하겠는가. 마땅히 예의를 갖추어 다시라카 황녀를 받들어 맞으라."
갑자일에 황후 다시라카 황녀를 세워 안을 가르쳐 다스리게 하였다. 마침내 한 사내를 낳았다. 이가 아메쿠니오시하라키히로니와노미코토다. — 개(開)는 하라키라 읽는다. — 이는 적자이나 나이가 어렸다. 두 형이 다스린 뒤에 그 천하를 가졌다. — 두 형은 히로쿠니오시타케카나히노미코토와 다케오히로쿠니오시타테노미코토다. 아래 글에 보인다.
무진일에 조를 내렸다. "짐이 듣건대 땅에 그해에 갈지 않는 데가 있으면 천하가 혹 그 주림을 받고, 여인에 그해에 길쌈하지 않는 이가 있으면 천하가 혹 그 추위를 받는다 한다. 그러므로 임금이 몸소 밭을 갈아 농사를 권하고 후비가 몸소 누에를 쳐서 뽕나무 일에 힘쓴다. 하물며 저 온갖 벼슬아치와 만백성이 농사와 길쌈을 버리고 넉넉하고 부유해질 수 있겠는가. 맡은 관청은 천하에 널리 알려 짐의 마음을 알게 하라."
7여덟 비
癸酉、納八妃。納八妃、雖有先後、而此曰癸酉納者、據卽天位、占擇良日、初拜後宮、爲文。他皆效此。元妃、尾張連草香女曰目子媛。更名色部。生二子。皆有天下。其一曰勾大兄皇子。是爲廣國排武金日尊。其二曰檜隈高田皇子。是爲武小廣國排盾尊。次妃、三尾角折君妹曰稚子媛。生大郎皇子、與出雲皇女。次、坂田大跨王女曰廣媛。生三女。長曰神前皇女。仲曰茨田皇女。少曰馬來田皇女。次、息長眞手王女曰麻績娘子。生荳角皇女。荳角、此云娑佐礙。是侍伊勢大神祠。次、茨田連小望女或曰妹。曰關媛。生三女。長曰茨田大娘皇女。仲曰白坂活日姬皇女。少曰小野稚郎皇女。更名長石姬。次、三尾君堅楲女曰倭媛。生二男二女。其一曰大娘子皇女。其二曰椀子皇子。是三國公之先也。其三曰耳皇子。其四曰赤姬皇女。次、和珥臣河內女曰荑媛。生一男二女。其一曰稚綾姬皇女。其二曰圓娘皇女。其三曰厚皇子。次、根王女曰廣媛。生二男。長曰兔皇子。是酒人公之先也。少曰中皇子。是坂田公之先也。是年也、太歲丁亥。
계유일에 여덟 비를 들였다. — 여덟 비를 들인 것이 비록 앞뒤가 있으나 여기서 계유일에 들였다 한 것은, 임금 자리에 오른 때에 좋은 날을 가려 처음으로 후궁에 절한 것에 따라 글로 적은 것이다. 나머지도 다 이를 따랐다.
으뜸 비는 오와리노무라지 구사카의 딸로 메노코히메라 한다. — 다른 이름은 시코베다. — 두 아들을 낳으니 다 천하를 가졌다. 그 하나는 마가리노오에 황자니 이가 히로쿠니오시타케카나히노미코토다. 그 둘은 히노쿠마노타카타 황자니 이가 다케오히로쿠니오시타테노미코토다.
다음 비 미오노쓰노오리노키미의 누이는 와카코히메라 하니 오이라쓰코 황자와 이즈모 황녀를 낳았다.
다음으로 사카타노오마타노오키미의 딸은 히로히메라 하니 세 계집을 낳았다. 맏이는 가무사키 황녀요, 가운데는 마무타 황녀요, 막내는 우마쿠타 황녀다.
다음으로 오키나가노마테노오키미의 딸은 오미노이라쓰메라 하니 사사게 황녀를 낳았다. — 두각(荳角)은 사사게라 읽는다. — 이가 이세의 대신 사당을 모셨다.
다음으로 마무타노무라지 오모치의 딸 — 혹은 누이라 한다. — 은 세키히메라 하니 세 계집을 낳았다. 맏이는 마무타노오이라쓰메 황녀요, 가운데는 시라사카노이쿠히히메 황녀요, 막내는 오노노와카이라쓰메 황녀니 다른 이름은 나가이시히메다.
다음으로 미오노키미 가타히의 딸은 야마토히메라 하니 두 사내와 두 계집을 낳았다. 그 하나는 오이라쓰메 황녀요, 그 둘은 마로코 황자니 이가 미쿠니노키미의 조상이다. 그 셋은 미미 황자요, 그 넷은 아카히메 황녀다.
다음으로 와니노오미 가와치의 딸은 하에히메라 하니 한 사내와 두 계집을 낳았다. 그 하나는 와카아야히메 황녀요, 그 둘은 쓰부라노이라쓰메 황녀요, 그 셋은 아쓰 황자다.
다음으로 네노오키미의 딸은 히로히메라 하니 두 사내를 낳았다. 맏이는 우사기 황자니 이가 사카히토노키미의 조상이요, 막내는 나카쓰 황자니 이가 사카타노키미의 조상이다.
이해는 태세가 정해다.
8탐라가 백제에 처음 통하다
二年冬十月辛亥朔癸丑、葬小泊瀬稚鷦鷯天皇于傍丘磐杯丘陵。十二月、南海中耽羅人、初通百濟國。
이년 겨울 시월 신해 초하루 계축일에 오하쓰세노와카사자키천황을 가타오카의 이하쓰키노오카 능에 장사 지냈다.
십이월에 남해 가운데 탐라(耽羅) 사람이 처음으로 백제국에 통하였다.
9임나의 백제 백성을 백제에 붙이다
三年春二月、遣使于百濟。百濟本記云、久羅麻致支彌、從日本來。未詳也。括出在任那日本縣邑、百濟百姓、浮逃絶貫、三四世者、並遷百濟附貫也。
삼년 봄 이월에 사자를 백제에 보냈다. — 백제본기(百濟本記)에 이르기를, 구라마치키미(久羅麻致支彌)가 일본에서 왔다 한다. 자세하지 않다. — 임나의 일본 현과 마을에 있는 백제 백성으로 떠돌아 달아나 호적이 끊긴 지 서너 대 된 이를 가려내어, 아울러 백제로 옮겨 호적에 붙였다.
10쓰쓰키로 옮기다
五年冬十月、遷都山背筒城。
오년 겨울 시월에 도읍을 야마시로의 쓰쓰키로 옮겼다.
11임나 네 현을 백제에 주다
六年夏四月辛酉朔丙寅、遣穗積臣押山、使於百濟。仍賜筑紫國馬卌匹。冬十二月、百濟遣使貢調。別表請任那國上哆唎・下哆唎・娑陀・牟婁、四縣。哆唎國守穗積臣押山奏曰、此四縣、近連百濟、遠隔日本。旦暮易通、鶏犬難別。今賜百濟、合爲同國、固存之策、無以過此。然縱賜合國、後世猶危。況爲異場、幾年能守。大伴大連金村、具得是言、同謨而奏。廼以物部大連麁鹿火、宛宣勅使。物部大連、方欲發向難波館、宣勅於百濟客。其妻固要曰、夫住吉大神、初以海表金銀之國、高麗・百濟・新羅・任那等、授記胎中譽田天皇。故大后息長足姬尊、與大臣武內宿禰、毎國初置官家、爲海表之蕃屏、其來尚矣。抑有由焉。縱削賜他、違本區域。綿世之刺、詎離於口。大連報曰、教示合理、恐背天勅。其妻切諫云、稱疾莫宣。大連依諫。由是、改使而宣勅。付賜物幷制旨、依表賜任那四縣。大兄皇子、前有縁事、不關賜國、晩知宣勅。
육년 여름 사월 신유 초하루 병인일에 호즈미노오미 오시야마를 백제에 사자로 보냈다. 이어 쓰쿠시국의 말 마흔 필을 주었다.
겨울 십이월에 백제가 사자를 보내어 조를 바쳤다. 따로 표를 올려 임나국의 상다리(上哆唎)·하다리(下哆唎)·사타(娑陀)·모루(牟婁) 네 현을 청하였다.
다리국수 호즈미노오미 오시야마가 아뢰었다. "이 네 현은 백제에 가까이 이어지고 일본에서는 멀리 떨어졌습니다. 아침저녁으로 오가기 쉽고 닭과 개를 가리기 어렵습니다. 이제 백제에 주어 합하여 한 나라로 삼는 것이 굳게 지키는 계책으로 이보다 나은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설령 주어 나라를 합하더라도 뒷세상에 오히려 위태롭습니다. 하물며 다른 자리로 두면 몇 해나 지킬 수 있겠습니까."
오토모노오무라지 가나무라가 이 말을 갖추어 듣고 함께 꾀하여 아뢰었다. 이에 모노노베노오무라지 아라카히를 칙사로 삼았다.
모노노베노오무라지가 바야흐로 나니와의 객관으로 떠나 백제 손님에게 칙명을 알리려 하였다. 그 아내가 굳이 붙들며 말하였다.
"무릇 스미노에의 큰 신이 처음에 바다 밖 금은의 나라 고려와 백제와 신라와 임나들을 태중의 호무타천황에게 주기로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대후 오키나가타라시히메노미코토와 대신 다케우치노스쿠네가 나라마다 처음 관가를 두어 바다 밖의 울타리로 삼은 것이 그 유래가 오랩니다. 또한 까닭이 있는 것입니다. 설령 깎아 남에게 준다면 본디 지경을 어기는 것입니다. 대대로 이어질 나무람이 어찌 입에서 떠나겠습니까."
오무라지가 답하였다. "가르쳐 보이는 것이 이치에 맞으나 하늘의 칙명을 등질까 두렵다."
그 아내가 간절히 간하였다. "병이라 일컫고 알리지 마십시오."
오무라지가 간하는 대로 따랐다. 이로 말미암아 사자를 바꾸어 칙명을 알렸다. 내리는 물건과 아울러 조서를 붙여 표에 따라 임나의 네 현을 주었다.
오에 황자가 앞서 다른 일이 있어 나라를 주는 일에 관여하지 않았다가 뒤늦게 칙명을 알렸다는 것을 알고
12뇌물 소문이 돌다
驚悔欲改。令曰、自胎中之帝、置官家之國、輕隨蕃乞、輙爾賜乎。乃遣日鷹吉士、改宣百濟客。使者答啓、父天皇、圖計便宜、勅賜既畢。子皇子、豈違帝勅、妄改而令。必是虛也。縱是實者、持杖大頭打、孰與持杖小頭打痛乎。遂罷。於是、或有流言曰、大伴大連、與哆唎國守穗積臣押山、受百濟之賂矣。
놀라 뉘우쳐 고치고자 하였다. 영을 내렸다. "태중의 임금 때부터 관가를 둔 나라를 가벼이 오랑캐의 청을 따라 문득 주었느냐."
이에 히타카노키시를 보내어 백제 손님에게 고쳐 알렸다.
사자가 답하여 아뢰었다. "아버지 천황께서 마땅함을 헤아려 칙명으로 주기를 이미 마치셨습니다. 아들 황자께서 어찌 임금의 칙명을 어기고 함부로 고쳐 영을 내리겠습니까. 반드시 이는 헛말입니다. 설령 사실이라 하더라도, 지팡이의 큰 쪽으로 맞는 것과 작은 쪽으로 맞는 것 가운데 어느 쪽이 아프겠습니까."
마침내 그만두었다.
이에 어떤 이가 떠도는 말을 하였다. "오토모노오무라지와 다리국수 호즈미노오미 오시야마가 백제의 뇌물을 받았다."
13오경박사가 오다
七年夏六月、百濟遣姐彌文貴將軍・洲利卽爾將軍、副穗積臣押山、百濟本記云、委意斯移麻岐彌。貢五經博士段楊爾。別奏云、伴跛國略奪臣國己汶之地。伏願、天恩判還本屬。秋八月癸未朔戊申、百濟太子淳陀薨。九月、勾大兄皇子、親聘春日皇女。於是、月夜淸談、不覺天曉。斐然之藻、忽形於言。乃口唱曰、
칠년 여름 유월에 백제가 저미문귀(姐彌文貴) 장군과 주리즉이(洲利卽爾) 장군을 보내며 호즈미노오미 오시야마를 딸려 — 백제본기에 이르기를 이시이마키미(委意斯移麻岐彌)라 한다. — 오경박사 단양이(段楊爾)를 바쳤다.
따로 아뢰었다. "반파국(伴跛國)이 신의 나라 기문(己汶)의 땅을 빼앗았습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하늘의 은혜로 판단하시어 본디 속하던 데로 돌려주소서."
가을 팔월 계미 초하루 무신일에 백제 태자 순타(淳陀)가 죽었다.
구월에 마가리노오에 황자가 몸소 가스가 황녀에게 장가들었다. 이에 달밤에 맑게 이야기하다가 날이 새는 줄 몰랐다. 아름다운 글이 홀연히 말로 드러났다. 이에 입으로 읊었다.
14노래 — 마가리노오에 황자
野絁磨倶儞、都磨々祁哿泥底、播屢比能、哿須我能倶儞々、倶婆絁謎鳴、阿利等枳々底、與慮志謎鳴、阿利等枳々底、莽紀佐倶、避能伊陀圖鳴、飫斯毗羅枳、倭例以梨魔志、阿都圖唎、都麼怒唎絁底、魔倶囉圖唎、都麼怒唎絁底、伊慕我堤鳴、倭例儞魔柯斯毎、倭我堤嗚麼、伊慕儞魔柯絁毎、麼左棄逗囉、多々企阿藏播梨、矢泪矩矢慮、于魔伊禰矢度儞、儞播都等唎、柯稽播儺倶儺梨、奴都等利、枳蟻矢播等余武、婆絁稽矩謨、伊麻娜以幡孺底、阿開儞啓梨倭蟻慕。
「야시마쿠니 쓰마마케카네테 하루히노 가스가노쿠니니 구하시메오 아리토키키테 요로시메오 아리토키키테 마키사쿠 히노이타도오 오시히라키 와레이리마시 아토토리 쓰마도리시테 마쿠라토리 쓰마도리시테 이모가테오 와레니마카시메 와가테오바 이모니마카시메 마사키즈라 다타키아자하리 시쿠시쿠시로 우마이네시도니 니와쓰토리 가케와나쿠나리 누쓰토리 기기시와도요무 하시케쿠모 이마다이하즈테 아케니케리와기모(野絁磨倶儞、都磨々祁哿泥底、播屢比能、哿須我能倶儞々、倶婆絁謎鳴、阿利等枳々底、與慮志謎鳴、阿利等枳々底、莽紀佐倶、避能伊陀圖鳴、飫斯毗羅枳、倭例以梨魔志、阿都圖唎、都麼怒唎絁底、魔倶囉圖唎、都麼怒唎絁底、伊慕我堤鳴、倭例儞魔柯斯毎、倭我堤嗚麼、伊慕儞魔柯絁毎、麼左棄逗囉、多々企阿藏播梨、矢泪矩矢慮、于魔伊禰矢度儞、儞播都等唎、柯稽播儺倶儺梨、奴都等利、枳蟻矢播等余武、婆絁稽矩謨、伊麻娜以幡孺底、阿開儞啓梨倭蟻慕)」
— 소리를 적은 것이라 뜻으로 옮기지 않는다.
15비가 답하다
妃和唱曰、
비가 화답하여 노래하였다.
16노래 — 가스가 황녀
莒母唎矩能、簸覩細能哿波庾、那峨例倶屢、駄開能、以矩美娜開余嚢開、謨等陛嗚麼、莒等儞都倶唎、須衞陛嗚麼、府曳儞都倶唎、府企儺須、美母慮我紆陪儞、能朋梨陀致、倭我彌細麼、都奴娑播符、以簸例能伊聞能、美那矢駄府、紆嗚謨、紆陪儞堤々那皚矩、野須美矢々、倭我於朋枳美能、於魔細屢、娑佐羅能美於寐能、武須彌陀例、駄例夜矢比等母、紆陪儞泥堤那皚矩。
「고모리쿠노 하쓰세노가와유 나가레쿠루 다케노 이쿠미다케요다케 모토헤오바 고토니쓰쿠리 스에헤오바 후에니쓰쿠리 후키나스 미모로가우헤니 노보리타치 와가미세바 쓰누사하후 이하레노이케노 미나시타후 우오모 우헤니데테나게쿠 야스미시시 와가오호키미노 오바세루 사사라노미오비노 무스비타레 다레야시히토모 우헤니데테나게쿠(莒母唎矩能、簸覩細能哿波庾、那峨例倶屢、駄開能、以矩美娜開余嚢開、謨等陛嗚麼、莒等儞都倶唎、須衞陛嗚麼、府曳儞都倶唎、府企儺須、美母慮我紆陪儞、能朋梨陀致、倭我彌細麼、都奴娑播符、以簸例能伊聞能、美那矢駄府、紆嗚謨、紆陪儞堤々那皚矩、野須美矢々、倭我於朋枳美能、於魔細屢、娑佐羅能美於寐能、武須彌陀例、駄例夜矢比等母、紆陪儞泥堤那皚矩)」
— 소리를 적은 것이라 뜻으로 옮기지 않는다.
17기문과 대사를 백제에 주다
冬十一月辛亥朔乙卯、於朝庭、引列百濟姐彌文貴將軍、斯羅汶得至、安羅辛已奚及賁巴委佐、伴跛既殿奚及竹汶至等、奉宣恩勅。以己汶・帶沙、賜百濟國。是月、伴跛國、遣戢支獻珍寶、乞己汶之地。而終不賜。十二月辛巳朔戊子、詔曰、朕承天緒、獲保宗廟、兢々業々。間者、天下安靜、海內淸平、屢致豐年、頻使饒國。懿哉、摩呂古、示朕心於八方。盛哉、勾大兄、光吾風於萬國。日本邕々、名擅天下。秋津赫々、譽重王畿。所寶惟賢、爲善最樂。聖化憑茲遠扇、玄功藉此長懸。寔汝之力。宜處春宮、助朕於仁、翼吾補闕。
겨울 십일월 신해 초하루 을묘일에 조정에 백제의 저미문귀 장군과 사라(斯羅)의 문득지(汶得至)와 안라(安羅)의 신이해(辛已奚)와 분파위좌(賁巴委佐)와 반파의 기전해(既殿奚)와 죽문지(竹汶至)들을 벌여 세우고 은혜로운 칙명을 펴 알렸다. 기문과 대사(帶沙)를 백제국에 주었다.
이달에 반파국이 즙지(戢支)를 보내어 진귀한 보배를 바치고 기문의 땅을 청하였으나 끝내 주지 않았다.
십이월 신사 초하루 무자일에 조를 내렸다.
"짐이 하늘의 실마리를 이어 종묘를 지킴에 조심하고 조심하였다. 요사이 천하가 편안하고 고요하며 온 세상이 맑고 평안하여 여러 번 풍년을 이루고 자주 나라를 넉넉하게 하였다. 아름답구나 마로코여, 짐의 마음을 여덟 방위에 보였다. 성하구나 마가리노오에여, 나의 풍모를 만 나라에 빛냈다.
일본이 화목하여 이름이 천하에 떨치고 아키즈가 빛나 기림이 왕기에 무겁다. 보배로 여길 바는 오직 어진 이요 착함을 행함이 가장 즐겁다. 성스러운 교화가 이에 힘입어 멀리 부치고 그윽한 공이 이를 빌려 길이 걸린다. 참으로 네 힘이다. 마땅히 춘궁에 있어 짐의 어짊을 돕고 내 모자람을 채워라."
18반파가 성을 쌓다
八年春正月、太子妃春日皇女、晨朝晏出、有異於常。太子意疑、入殿而見。妃臥床涕泣、惋痛不能自勝。太子怪問曰、今旦涕泣、有何恨乎。妃曰、「非餘事也。唯妾所悲者、飛天之鳥、爲愛養兒、樹巓作樔。其愛深矣。伏地之蟲、爲護衞子、土中作窟。其護厚焉。乃至於人、豈得无慮。無嗣之恨、方鍾太子。妾名隨絶。」於是、太子感痛、而奏天皇。詔曰、朕子麻呂古、汝妃之詞、深稱於理。安得空爾無答慰乎。宜賜匝布屯倉、表妃名於萬代。三月、伴跛築城於子呑・帶沙、而連滿奚、置烽候邸閣、以備日本。得築城於爾列比・麻須比、而絙麻且奚・推封。聚士卒兵器、以逼新羅。駈略子女、剥掠村邑。凶勢所加、罕有遺類。夫暴虐奢侈、悩害侵凌、誅殺尤多。不可詳載。
팔년 봄 정월에 태자비 가스가 황녀가 새벽에 늦게 나오니 여느 때와 달랐다. 태자가 마음에 의심하여 전각에 들어가 보았다. 비가 자리에 누워 눈물 흘리며 아파하기를 스스로 이기지 못하였다.
태자가 괴이히 여겨 물었다. "오늘 아침 눈물 흘리니 무슨 한이 있는가."
비가 말하였다. "다른 일이 아닙니다. 오직 제가 슬픈 것은, 하늘을 나는 새도 새끼를 사랑하여 기르려고 나무 꼭대기에 둥지를 짓습니다. 그 사랑이 깊습니다. 땅에 엎드린 벌레도 새끼를 지키려고 흙 속에 굴을 짓습니다. 그 지킴이 두텁습니다. 사람에 이르러 어찌 생각이 없겠습니까. 뒤이을 자식이 없는 한이 바야흐로 태자께 모입니다. 제 이름도 따라 끊깁니다."
이에 태자가 아파하며 천황에게 아뢰었다. 조를 내렸다. "짐의 아들 마로코여, 네 비의 말이 깊이 이치에 맞는다. 어찌 헛되이 답하여 위로하지 않겠는가. 마땅히 삽후의 둔창을 주어 비의 이름을 만대에 드러내라."
삼월에 반파가 자탄(子呑)과 대사에 성을 쌓아 만해(滿奚)에 잇고 봉수와 창고를 두어 일본에 대비하였다. 또 이열비(爾列比)와 마수비(麻須比)에 성을 쌓아 마차해(麻且奚)와 추봉(推封)에 이었다. 군사와 병기를 모아 신라를 다그쳤다. 아들과 딸을 몰아 노략하고 마을을 벗겨 빼앗았다. 흉한 세력이 더해진 곳에는 남은 무리가 드물었다. 무릇 사납고 모질며 사치하고 괴롭히고 해치며 침노하여 죽인 것이 매우 많아 자세히 실을 수 없다.
19모노노베노무라지가 반파에게 쫓기다
九年春二月甲戌朔丁丑、百濟使者文貴將軍等請罷。仍勅、副物部連、闕名。遣罷歸之。百濟本記云、物部至至連。是月、到于沙都嶋、傳聞伴跛人、懷恨銜毒、恃强縱虐。故物部連、率舟師五百、直詣帶沙江。文貴將軍、自新羅去。夏四月、物部連於帶沙江停住六日。伴跛興師往伐。逼脱衣裳、劫掠所齎、盡燒帷幕。物部連等、怖畏逃遁。僅存身命、泊汶慕羅。汶慕羅。嶋名也。
구년 봄 이월 갑술 초하루 정축일에 백제 사자 문귀 장군들이 돌아가기를 청하였다. 이어 칙명하여 모노노베노무라지 — 이름이 빠졌다. — 를 딸려 보내어 돌아가게 하였다. — 백제본기에 이르기를 모노노베노치치노무라지라 한다.
이달에 사도섬에 이르러 반파 사람이 한을 품고 독을 머금어 강함을 믿고 모진 짓을 마음대로 한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그러므로 모노노베노무라지가 수군 오백을 거느리고 곧바로 대사강에 나아갔다. 문귀 장군은 신라에서 갔다.
여름 사월에 모노노베노무라지가 대사강에 엿새를 머물렀다. 반파가 군사를 일으켜 가서 쳤다. 다그쳐 옷을 벗기고 가진 것을 빼앗으며 장막을 다 태웠다. 모노노베노무라지들이 두려워 달아나 겨우 목숨만 부지하여 문모라(汶慕羅)에 닿았다. — 문모라는 섬 이름이다.
20기문의 땅을 사례하다
十年夏五月、百濟遣前部木刕不麻甲背、迎勞物部連等於己汶、而引導入國。群臣各出衣裳斧鐵帛布、助加國物、積置朝廷。慰問慇懃。賞祿優節。秋九月、百濟遺州利卽次將軍、副物部連來、謝賜己汶之地。別貢五經博士漢高安茂、請代博士段楊爾。依請代之。戊寅、百濟遺灼莫古將軍・日本斯那奴阿比多、副高麗使安定等、來朝結好。
십년 여름 오월에 백제가 전부 목협불마갑배(木刕不麻甲背)를 보내어 모노노베노무라지들을 기문에서 맞아 위로하고 이끌어 나라에 들였다. 여러 신하가 각각 옷과 도끼와 쇠와 비단과 베를 내어 나라의 물건에 보태 조정에 쌓아 두었다. 위문하기를 은근히 하고 상과 녹을 넉넉히 하였다.
가을 구월에 백제가 주리즉차(州利卽次) 장군을 보내어 모노노베노무라지를 딸려 와서 기문의 땅을 준 것을 사례하였다. 따로 오경박사 한고안무(漢高安茂)를 바치고 박사 단양이를 대신하기를 청하였다. 청한 대로 대신하게 하였다.
무인일에 백제가 작막고(灼莫古) 장군과 일본의 사나노아비타(斯那奴阿比多)를 보내며 고려 사자 안정(安定)들을 딸려 와서 조회하고 좋은 사이를 맺었다.
21오토쿠니로 옮기다
十二年春三月丙辰朔甲子、遷都弟國。
십이년 봄 삼월 병진 초하루 갑자일에 도읍을 오토쿠니로 옮겼다.
22무령왕이 죽다
十七年夏五月、百濟國王武寧薨。十八年春正月、百濟太子明卽位。
십칠년 여름 오월에 백제국 왕 무령(武寧)이 죽었다.
십팔년 봄 정월에 백제 태자 명(明)이 자리에 올랐다.
23이와레노타마호로 옮기다
廿年秋九月丁酉朔己酉、遷都磐余玉穗。一本云、七年也。
이십년 가을 구월 정유 초하루 기유일에 도읍을 이와레의 다마호로 옮겼다. — 어떤 판본에는 칠년이라 한다.
24이와이가 배반하다
廿一年夏六月壬辰朔甲午、近江毛野臣、率衆六萬、欲往任那、爲復興建新羅所破南加羅・喙己呑、而合任那。於是、筑紫國造磐井、陰謨叛逆、猶預經年。恐事難成、恆伺間隙。新羅知是、密行貨賂于磐井所、而勸防遏毛野臣軍。於是、磐井掩據火豐二國、勿使修職。外邀海路、誘致高麗・百濟・新羅・任那等國年貢職船、內遮遣任那毛野臣軍、亂語揚言曰、今爲使者、昔爲吾伴、摩肩觸肘、共器同食。安得率爾爲使、俾余自伏儞前、遂戰而不受。驕而自矜。是以、毛野臣、乃見防遏、中途淹滯。天皇詔大伴大連金村・物部大連麁鹿火・許勢大臣男人等曰、筑紫磐井反掩、有西戎之地。今誰可將者。大伴大連等僉曰、正直仁勇通於兵事、今無出於麁鹿火右。天皇曰。可。
이십일년 여름 유월 임진 초하루 갑오일에 오미노케나노오미가 무리 육만을 거느리고 임나에 가서, 신라에게 깨어진 남가라(南加羅)와 탁기탄(喙己呑)을 다시 일으켜 세워 임나에 합하고자 하였다.
이에 쓰쿠시노쿠니노미야쓰코 이와이가 몰래 배반을 꾀하였으나 미루며 해를 넘겼다. 일이 이루어지기 어려울까 두려워 늘 틈을 엿보았다.
신라가 이를 알고 몰래 이와이가 있는 곳에 재물을 보내어 케나노오미의 군사를 막으라고 권하였다.
이에 이와이가 히(火)와 도요(豐) 두 나라를 덮어 웅거하고 직분을 닦지 못하게 하였다. 밖으로 바닷길을 막아 고려와 백제와 신라와 임나들의 해마다 바치는 직분의 배를 꾀어 데려가고, 안으로 임나에 보내는 케나노오미의 군사를 막으며 어지러이 큰소리쳤다.
"이제 사자가 되었으나 옛적에는 내 벗이었다. 어깨를 비비고 팔꿈치를 닿으며 한 그릇에 같이 먹었다. 어찌 문득 사자가 되어 나로 하여금 네 앞에 스스로 엎드리게 하겠느냐."
마침내 싸우고 받지 않았다. 교만하여 스스로 자랑하였다. 이 때문에 케나노오미가 곧 막혀 가는 길에 지체되었다.
천황이 오토모노오무라지 가나무라와 모노노베노오무라지 아라카히와 고세노오오미 오히토들에게 조를 내렸다. "쓰쿠시의 이와이가 배반하여 덮으니 서쪽 오랑캐의 땅을 차지하였다. 이제 누가 장수가 될 만한가."
오토모노오무라지들이 다 말하였다. "바르고 곧고 어질고 날래며 군사 일에 통한 이로 이제 아라카히보다 위에 나설 이가 없습니다."
천황이 말하였다. "옳다."
25도끼를 주다
秋八月辛卯朔、詔曰、咨、大連、惟茲磐井弗率。汝徂征。物部麁鹿火大連再拜言、嗟、夫磐井西戎之姧猾。負川阻而不庭。憑山峻而稱亂。敗德反道。侮嫚自賢。在昔道臣、爰及室屋、助帝而罰。拯民塗炭、彼此一時。唯天所贊、臣恆所重。能不恭伐。詔曰、良將之軍也、施恩推惠、恕己治人。攻如河決。戰如風發。重詔曰、大將民之司命。社稷存亡、於是乎在。勗哉。恭行天罰。天皇親操斧鉞、授大連曰、長門以東朕制之。筑紫以西汝制之。專行賞罰。勿煩頻奏。
가을 팔월 신묘 초하루에 조를 내렸다. "아아 오무라지여, 저 이와이가 따르지 않는다. 네가 가서 쳐라."
모노노베노아라카히노오무라지가 두 번 절하고 말하였다.
"아아, 저 이와이는 서쪽 오랑캐의 간사하고 교활한 자입니다. 냇물의 험함을 믿고 조정에 나오지 않으며 산의 높음에 기대어 난을 일컫습니다. 덕을 무너뜨리고 도를 거스르며 남을 업신여기고 스스로 어질다 합니다. 옛적에 미치노오미가 있었고 이어 무로야에 이르러 임금을 도와 벌하고 도탄에 빠진 백성을 건졌으니, 저때와 이때가 한가지입니다. 오직 하늘이 돕는 바요 신이 늘 무겁게 여기는 바입니다. 어찌 공경히 치지 않겠습니까."
조를 내렸다. "좋은 장수의 군사는 은혜를 베풀고 혜택을 밀며 저를 미루어 남을 다스린다. 치기를 강물이 터지듯 하고 싸우기를 바람이 일듯 한다."
거듭 조를 내렸다. "대장은 백성의 목숨을 맡은 이다. 사직의 있고 없음이 여기에 달렸다. 힘써라. 공경히 하늘의 벌을 행하라."
천황이 몸소 도끼를 잡아 오무라지에게 주며 말하였다. "나가토에서 동쪽은 짐이 맡고 쓰쿠시에서 서쪽은 네가 맡아라. 상과 벌을 오로지 행하고 자주 아뢰기를 번거로워하지 마라."
26이와이를 베다
廿二年冬十一月甲寅朔甲子、大將軍物部大連麁鹿火、親與賊帥磐井、交戰於筑紫御井郡。旗鼓相望、埃塵相接。決機兩陣之間、不避萬死之地。遂斬磐井、果定疆場。十二月、筑紫君葛子、恐坐父誅、獻糟屋屯倉、求贖死罪。
이십이년 겨울 십일월 갑인 초하루 갑자일에 대장군 모노노베노오무라지 아라카히가 몸소 도적의 우두머리 이와이와 쓰쿠시의 미이군에서 싸웠다. 깃발과 북이 서로 바라보이고 티끌이 서로 닿았다. 두 진 사이에서 기틀을 결단하여 만 번 죽을 자리를 피하지 않았다. 마침내 이와이를 베어 과연 지경을 정하였다.
십이월에 쓰쿠시노키미 구즈코가 아비의 죄에 앉을까 두려워 가스야의 둔창을 바치고 죽을죄를 대신하기를 구하였다.
27다사진을 청하다
廿三年春三月、百濟王謂下哆唎國守穗積押山臣曰、夫朝貢使者、恆避嶋曲、謂海中嶋曲崎岸也。俗云美佐祁。毎苦風波。因茲、濕所齎、全壤无色。請、以加羅多沙津、爲臣朝貢津路。是以、押山臣爲請聞奏。
이십삼년 봄 삼월에 백제 왕이 하다리국수 호즈미노오시야마노오미에게 일렀다.
"무릇 조공하는 사자가 늘 섬굽이를 피하다가 — 바다 가운데 섬굽이와 벼랑을 이른다. 세속에 미사케라 한다. — 바람과 물결에 매번 괴로워합니다. 이 때문에 가진 것이 젖어 다 상하고 빛을 잃습니다. 청컨대 가라(加羅)의 다사진(多沙津)으로 신의 조공하는 나룻길을 삼게 하소서."
이로써 오시야마노오미가 청을 듣고 아뢰었다.
28다사진을 백제에 주다
是月、遣物部伊勢連父根・吉士老等、以津賜百濟王。於是、加羅王謂勅使云、此津、從置官家以來、爲臣朝貢津渉、安得輙改賜隣國。違元所封限地。勅使父根等、因斯、難以面賜、却還大嶋。別遣錄史、果賜扶余。由是、加羅結儻新羅、生怨日本。加羅王娶新羅王女、遂有兒息。新羅初送女時、幷遣百人、爲女從。受而散置諸懸、令着新羅衣冠。阿利斯等、嗔其變服、遣使徵還。新羅大羞、翻欲還女曰、前承汝聘、吾便許婚。今既若斯、請、還王女。加羅己富利知伽未詳。報云、配合夫婦、安得更離。亦有息兒、棄之何往。遂於所經、拔刀伽・古跛・布那牟羅、三城。亦拔北境五城。
이달에 모노노베노이세노무라지 지치네와 기시노오유들을 보내어 나루를 백제 왕에게 주었다.
이에 가라 왕이 칙사에게 일렀다. "이 나루는 관가를 둔 이래로 신이 조공하러 건너는 곳입니다. 어찌 문득 고쳐 이웃 나라에 주십니까. 본디 봉한 지경을 어기는 것입니다."
칙사 지치네들이 이 때문에 얼굴을 마주하고 주기 어려워 오시마로 물러 돌아갔다. 따로 서기를 보내어 마침내 부여(扶余)에 주었다.
이로 말미암아 가라가 신라와 무리를 맺고 일본에 원한을 냈다.
가라 왕이 신라 왕의 딸에게 장가들어 마침내 자식을 두었다. 신라가 처음 딸을 보낼 때 아울러 백 사람을 보내어 딸의 시종으로 삼았다. 받아서 여러 현에 흩어 두고 신라의 옷과 갓을 입게 하였다.
아리사등(阿利斯等)이 그 옷 바꾼 것을 성내어 사자를 보내어 불러 돌려보냈다. 신라가 크게 부끄러워하여 도리어 딸을 돌려받고자 하며 말하였다. "앞서 그대의 청혼을 받아 내가 곧 혼인을 허락하였다. 이제 이미 이러하니 청컨대 왕녀를 돌려보내라."
가라의 기부리지가(己富利知伽) — 자세하지 않다. — 가 답하였다. "짝을 지어 부부가 되었는데 어찌 다시 떨어지겠는가. 또한 자식이 있으니 버리고 어디로 가겠는가."
마침내 지나는 곳에서 도가(刀伽)와 고파(古跛)와 포나모라(布那牟羅) 세 성을 함락하였다. 또 북쪽 지경의 다섯 성을 함락하였다.
29안라에서 조칙을 듣다
是月、遣近江毛野臣、使于安羅。勅勸新羅、更建南加羅・喙己呑。百濟遣將軍君尹貴・麻那甲背・麻鹵等、往赴安羅、式聽詔勅。新羅、恐破蕃國官家、不遣大人、而遣夫智奈麻禮・奚奈麻禮等、往赴安羅、式聽詔勅。於是、安羅新起高堂、引昇勅使。國主隨後昇階。國內大人、預昇堂者一二。百濟使將軍君等、在於堂下。凡數月再三、謨謀乎堂上。將軍君等、恨在庭焉。
이달에 오미노케나노오미를 보내어 안라에 사자로 가게 하였다. 칙명으로 신라에 권하여 남가라와 탁기탄을 다시 세우게 하였다.
백제가 장군 군윤귀(君尹貴)와 마나갑배(麻那甲背)와 마로(麻鹵)들을 보내어 안라에 가서 조칙을 듣게 하였다.
신라가 번국의 관가를 깨뜨린 일이 드러날까 두려워 큰 사람을 보내지 않고 부지나마례(夫智奈麻禮)와 해나마례(奚奈麻禮)들을 보내어 안라에 가서 조칙을 듣게 하였다.
이에 안라가 새로 높은 집을 지어 칙사를 이끌어 올렸다. 나라 임금이 뒤를 따라 층계를 올랐다. 나라 안의 큰 사람으로 미리 집에 오른 이가 한둘이었다. 백제 사자 장군군들은 집 아래 있었다.
무릇 몇 달 동안 두세 번 집 위에서 꾀하여 의논하였다. 장군군들이 뜰에 있는 것을 한하였다.
30임나 왕이 오다
夏四月壬午朔戊子、任那王己能末多干岐來朝。言己能末多者、蓋阿利斯等也。啓大伴大連金村曰、夫海表諸蕃、自胎中天皇、置內官家、不棄本土。因封其地、良有以也。今新羅、違元所賜封限、數越境以來侵。請、奏天皇、救助臣國。大伴大連、依乞奏聞。
여름 사월 임오 초하루 무자일에 임나 왕 기능말다간기(己能末多干岐)가 와서 조회하였다. — 기능말다라 한 것은 아마 아리사등일 것이다. —
오토모노오무라지 가나무라에게 아뢰었다. "무릇 바다 밖 여러 나라가 태중천황 때부터 내관가를 두고 본토를 버리지 않았습니다. 그 땅에 봉한 것이 참으로 까닭이 있습니다. 이제 신라가 본디 준 봉한 지경을 어기고 자주 경계를 넘어 침노합니다. 청컨대 천황께 아뢰어 신의 나라를 구해 주소서."
오토모노오무라지가 빎에 따라 아뢰어 알렸다.
31신라 상신이 오다
是月、遣使送己能末多干岐。幷詔在任那近江毛野臣、推問所奏、和解相疑。於是、毛野臣、次于熊川、一本云、次于任那久斯牟羅。召集新羅・百濟、二國之王。新羅王佐利遲遣久遲布禮、一本云、久禮爾師知于奈師磨里。百濟遣恩率彌騰利、赴集毛野臣所、而二王不自來參。毛野臣大怒、責問二國使云、以小事大、天之道也。一本云、大木端者以大木續之。小木端者以小木續之。何故二國之王、不躬來集受天皇勅、輕遣使乎。今縱汝王、自來聞勅、吾不肯勅。必追逐退。久遲布禮・恩率彌縢利、心懷怖畏、各歸召王。由是、新羅改遣其上臣伊叱夫禮智干岐、新羅、以大臣爲上臣。一本云、伊叱夫禮知奈末。率衆三千、來請聽勅。毛野臣、遙見兵仗圍繞、衆數千人、自熊川、入任那己叱己利城。伊叱夫禮智干岐、次于多々羅原、不敬歸待三月。頻請聞勅。終不肯宣。伊叱夫禮智所將士卒等、於聚落乞食。
이달에 사자를 보내어 기능말다간기를 보냈다. 아울러 임나에 있는 오미노케나노오미에게 조를 내려 아뢴 바를 미루어 묻고 화해시켜 서로의 의심을 풀게 하였다.
이에 케나노오미가 웅천(熊川)에 머물러 — 어떤 판본에는 임나의 구사모라에 머물렀다 한다. — 신라와 백제 두 나라 왕을 불러 모았다.
신라 왕 좌리지(佐利遲)가 구지포례(久遲布禮)를 보내고 — 어떤 판본에는 구례이사지우나사마리라 한다. — 백제가 은솔 미등리(彌騰利)를 보내어 케나노오미가 있는 곳에 모였으나 두 왕이 몸소 오지 않았다.
케나노오미가 크게 노하여 두 나라 사자를 나무라 물었다. "작은 것이 큰 것을 섬기는 것이 하늘의 도다. — 어떤 판본에는 큰 나무 끝은 큰 나무로 잇고 작은 나무 끝은 작은 나무로 잇는다 한다. — 무슨 까닭으로 두 나라 왕이 몸소 와서 천황의 칙명을 받지 않고 가벼이 사자를 보냈느냐. 이제 설령 너희 왕이 스스로 와서 칙명을 듣더라도 나는 칙명을 내리지 않겠다. 반드시 쫓아 물리치겠다."
구지포례와 은솔 미등리가 마음에 두려움을 품고 각각 돌아가 왕을 불렀다.
이로 말미암아 신라가 고쳐 그 상신(上臣) 이질부례지간기(伊叱夫禮智干岐)를 보내어 — 신라는 대신을 상신이라 한다. 어떤 판본에는 이질부례지나말이라 한다. — 무리 삼천을 거느리고 와서 칙명 듣기를 청하였다.
케나노오미가 멀리 병장기가 에워싸고 무리가 수천인 것을 보고 웅천에서 임나의 기질기리성(己叱己利城)으로 들어갔다.
이질부례지간기가 다다라(多々羅) 벌판에 머물러 공경히 돌아가지 않고 석 달을 기다렸다. 자주 칙명 듣기를 청하였으나 끝내 알리려 하지 않았다.
이질부례지가 거느린 군사들이 마을에서 밥을 빌었다.
32네 마을을 잃다
相過毛野臣傔人河內馬飼首御狩。御狩入隱他門、待乞者過、捲手遙擊。乞者見云、謹待三月、佇聞勅旨、尚不肯宣。悩聽勅使。乃知欺誑、誅戮上臣矣。乃以所見、具述上臣。上臣抄掠四村、金官・背伐・安多・委陀、是爲四村。一本云、多多羅・須那羅・和多・費智爲四村也。盡將人物、入其本國。或曰、多々羅等四村之所掠者、毛野臣之過也。秋九月、巨勢男人大臣薨。
케나노오미의 딸린 사람 가와치노우마카이노오비토 미카리를 지나쳤다. 미카리가 다른 문에 들어가 숨어 비는 이가 지나기를 기다려 주먹을 쥐고 멀리서 쳤다.
비는 이가 보고 말하였다. "삼가 석 달을 기다려 칙지를 들으려 서 있었는데 아직 알리려 하지 않는다. 칙사를 듣고자 함을 괴롭힌다." 이에 속인 줄 알고 상신을 죽이려 하였다.
이에 본 바를 상신에게 갖추어 말하였다. 상신이 네 마을을 노략하였다. — 금관(金官)·배벌(背伐)·안다(安多)·위타(委陀)가 네 마을이다. 어떤 판본에는 다다라·수나라·화다·비지가 네 마을이라 한다. — 사람과 물건을 다 거느려 그 본국에 들였다.
어떤 이는 말하였다. "다다라들 네 마을이 노략된 것은 케나노오미의 허물이다."
가을 구월에 고세노오히토노오오미가 죽었다.
33어진 신하를 구하다
廿四年春二月丁未朔、詔曰、自磐余彦之帝・水間城之王、皆頼博物之臣、明哲之佐。故道臣陳謨、而神日本以盛。大彦申略、而膽瓊殖用隆。及乎繼體之君、欲立中興之功者、曷嘗不頼賢哲之謨謀乎。爰降小泊瀬天皇之王天下、幸承前聖、隆平日久。俗漸蔽而不寤。政浸衰而不改。但須其人各以類進。有大略者、不問其所短。有高才者、不非其所失。故獲奉宗廟、不危社稷。由是觀之、豈非明佐。朕承帝業、於今廿四年、天下淸泰、內外無虞。土壤膏腴、穀稼有實。竊恐元々、由斯生俗、藉此成驕。故令人舉廉節、宣揚大道、流通鴻化、能官之事、自古爲難。爰曁朕身、豈不愼歟。
이십사년 봄 이월 정미 초하루에 조를 내렸다.
"이와레비코의 임금과 미마키의 왕으로부터 다 널리 아는 신하와 밝고 슬기로운 도움에 힘입었다. 그러므로 미치노오미가 꾀를 펴매 가무야마토가 성하였고 오히코가 계략을 아뢰매 이니에가 융성하였다. 계체(繼體)의 임금에 이르러 중흥의 공을 세우고자 한 이가 어찌 일찍이 어질고 밝은 이의 꾀에 힘입지 않았겠는가.
이에 내려와 오하쓰세천황이 천하에 왕 노릇 하매, 다행히 앞 성인을 이어 융성하고 평안한 날이 오래였다. 풍속이 차츰 가려져도 깨닫지 못하고 정사가 점점 쇠하여도 고치지 않았다. 다만 모름지기 그 사람들이 각각 무리대로 나아가게 하고, 큰 꾀가 있는 이는 그 짧은 바를 묻지 않으며, 높은 재주가 있는 이는 그 잃은 바를 그르다 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종묘를 받들고 사직을 위태롭게 하지 않았다. 이로 보면 어찌 밝은 도움이 아니겠는가.
짐이 임금의 업을 이은 지 이제 이십사년이다. 천하가 맑고 태평하며 안팎에 근심이 없다. 흙이 기름지고 곡식이 열매를 맺는다. 가만히 두려운 것은 백성이 이로 말미암아 풍속을 낳고 이를 빌려 교만을 이루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에게 청렴하고 절개 있는 이를 들게 하고 큰 도를 펴 밝히며 큰 교화를 흘려 통하게 한다. 능히 벼슬할 사람을 얻는 일은 예로부터 어려웠다. 이에 짐의 몸에 미쳐 어찌 삼가지 않겠는가."
34케나노오미를 부르다
秋九月、任那使奏云、毛野臣、遂於久斯牟羅、起造舍宅、淹留二歲。一本云三歲者、連去來歲數也。懶聽政焉。爰以日本人與任那人、頻以兒息、諍訟難決、元無能判。毛野臣樂置誓湯曰、實者不爛。虛者必爛。是以、投湯爛死者衆。又殺吉備韓子那多利・斯布利、大日本人、娶蕃女所生、爲韓子也。恆悩人民、終無和解。於是、天皇聞其行狀、遣人徵入。而不肯來。顧以河內母樹馬飼首御狩、奉詣於京而奏曰、臣未成勅旨、還入京郷、勞往虛歸。慙恧安措。伏願、陛下、待成國命、入朝謝罪。奉使之後、更自謨曰、其調吉士、亦是皇華之使。若先吾取歸、依實奏聞、吾之罪過、必應重矣。乃遣調吉士、率衆守伊斯枳牟羅城。於是、阿利斯等、知其細碎爲事、不務所期、頻勸歸朝、尚不聽還。由是、悉知行迹、心生飜背。乃遣久禮斯己母、使于新羅請兵。奴須久利、使于百濟請兵。毛野臣聞百濟兵來、迎討背評。
가을 구월에 임나의 사자가 아뢰었다.
"케나노오미가 마침내 구사모라에 집을 짓고 두 해를 머물러 — 어떤 판본에 세 해라 한 것은 오간 해를 이어 센 것이다. — 정사 듣기를 게을리합니다.
이에 일본 사람과 임나 사람이 자주 아이 낳는 일로 다투어 송사하는데 결단하기 어려워 본디 판단할 수 있는 이가 없습니다. 케나노오미가 즐겨 맹세하는 끓는 물을 두고 말하기를 '사실이면 데지 않고 거짓이면 반드시 덴다' 하였습니다. 이 때문에 물에 던져져 데어 죽은 이가 많습니다.
또 기비의 한자(韓子) 나다리(那多利)와 사포리(斯布利)를 죽였습니다. — 큰 일본 사람이 오랑캐 여인에게 장가들어 낳은 이를 한자라 한다. — 늘 백성을 괴롭게 하여 끝내 화해가 없습니다."
이에 천황이 그 행실을 듣고 사람을 보내어 불러들이려 하였으나 오려 하지 않았다.
도리어 가와치노모노키노우마카이노오비토 미카리를 서울에 나아가게 하여 아뢰었다. "신이 아직 칙지를 이루지 못하고 서울에 돌아간다면, 애써 갔다가 헛되이 돌아오는 것이라 부끄러워 몸 둘 데가 없습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폐하께서는 나라의 명을 이루기를 기다리시면 조정에 들어 죄를 사례하겠습니다."
사자를 보낸 뒤에 다시 스스로 꾀하였다. "저 쓰키노키시 또한 임금의 빛나는 사자다. 만약 나보다 먼저 돌아가 사실대로 아뢰면 내 죄와 허물이 반드시 무거워질 것이다."
이에 쓰키노키시를 보내어 무리를 거느리고 이사기모라성을 지키게 하였다.
이에 아리사등이 그가 자잘한 일을 일삼고 기약한 바에 힘쓰지 않음을 알고, 자주 조정에 돌아가기를 권하였으나 오히려 돌아가려 하지 않았다.
이로 말미암아 그 행적을 다 알고 마음에 등질 뜻을 냈다. 이에 구례사기모(久禮斯己母)를 보내어 신라에 사자로 가서 군사를 청하고, 노수구리(奴須久利)를 백제에 사자로 보내어 군사를 청하였다.
케나노오미가 백제 군사가 온다는 말을 듣고 배평(背評)에서 맞아 쳤다.
35다섯 성을 잃다
背評地名。亦名能備己富里也。傷死者半。百濟、則捉奴須久利、杻械枷鏁、而共新羅圍城。責罵阿利斯等曰、可出毛野臣。毛野臣、嬰城自固。勢不可擒。於是、二國圖度便地、淹留弦晦。筑城而還。號曰久禮牟羅城。還時觸路、拔騰利枳牟羅・布那牟羅・牟雌枳牟羅・阿夫羅・久知波多枳、五城。
— 배평은 땅 이름이다. 또 다른 이름은 능비기부리(能備己富里)다. — 다치고 죽은 이가 반이었다.
백제가 곧 노수구리를 잡아 차꼬와 칼과 사슬을 채우고 신라와 함께 성을 에워쌌다. 아리사등을 꾸짖어 나무라며 말하였다. "케나노오미를 내놓아라."
케나노오미가 성에 기대어 스스로 굳게 지키니 형세가 잡을 수 없었다. 이에 두 나라가 편한 땅을 헤아려 그믐까지 머물다가 성을 쌓고 돌아갔다. 이름하여 구례모라성(久禮牟羅城)이라 하였다.
돌아갈 때 길에 닿는 대로 등리기모라(騰利枳牟羅)와 포나모라(布那牟羅)와 모자기모라(牟雌枳牟羅)와 아부라(阿夫羅)와 구지파다기(久知波多枳) 다섯 성을 함락하였다.
36케나노오미가 죽다
冬十月、調吉士至自任那、奏言、毛野臣爲人傲恨、不閑治體。竟無和解、擾亂加羅。倜儻任意、而思不防患。故遣目頰子、徵召。目頰子。未詳也。是歲、毛野臣、被召到于對馬、逢疾而死。送葬尋河、而入近江。其妻歌曰、
겨울 시월에 쓰키노키시가 임나에서 이르러 아뢰었다. "케나노오미는 사람됨이 거만하고 한이 많으며 다스리는 몸가짐에 익숙하지 않습니다. 마침내 화해함이 없고 가라를 어지럽혔습니다. 뜻대로 방자하여 근심을 막을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메쓰라코를 보내어 불렀다. — 메쓰라코는 자세하지 않다.
이해에 케나노오미가 부름을 받고 쓰시마에 이르러 병을 만나 죽었다. 상여를 보내며 강을 따라가 오미에 들어갔다. 그 아내가 노래하였다.
37노래 — 케나노오미의 아내
比攞哿駄喩、輔曳輔枳能朋樓、阿苻美能野、愷那能倭倶吾伊、輔曳符枳能朋樓。
「히라카타유 후에후키노보루 아후미노야 케나노와쿠고이 후에후키노보루(比攞哿駄喩、輔曳輔枳能朋樓、阿苻美能野、愷那能倭倶吾伊、輔曳符枳能朋樓)」
— 소리를 적은 것이라 뜻으로 옮기지 않는다.
38메쓰라코를 맞은 노래
目頰子、初到任那時、在彼郷家等、贈歌曰、
메쓰라코가 처음 임나에 이르렀을 때 그곳 시골집 사람들이 노래를 보내었다.
39노래 — 임나의 시골집 사람들
柯羅屨儞嗚、以柯儞輔居等所、梅豆羅古枳駄樓、武哿左屨樓、以祇能和駄唎嗚、梅豆羅古枳駄樓。
「가라쿠니오 이카니후코토소 메즈라코키타루 무카사쿠루 이키노와타리오 메즈라코키타루(柯羅屨儞嗚、以柯儞輔居等所、梅豆羅古枳駄樓、武哿左屨樓、以祇能和駄唎嗚、梅豆羅古枳駄樓)」
— 소리를 적은 것이라 뜻으로 옮기지 않는다.
40천황이 죽고, 연대를 백제본기로 정하다
廿五年春二月、天皇病甚。丁未、天皇崩于磐余玉穗宮。時年八十二。冬十二月丙申朔庚子、葬于藍野陵。或本云、天皇、廿八年歲次甲寅崩。而此云廿五年歲次辛亥崩者、取百濟本記爲文。其文云、太歲辛亥三月、軍進至于安羅、營乞乇城。是月、高麗弑其王安。又聞、日本天皇及太子皇子、倶崩薨。由此而言、辛亥之歲、當廿五年矣。後勘校者、知之也。
이십오년 봄 이월에 천황의 병이 심하였다. 정미일에 천황이 이와레의 다마호노미야에서 죽었다. 그때 나이 여든둘이었다.
겨울 십이월 병신 초하루 경자일에 아이노 능에 장사 지냈다.
— 어떤 판본에는 천황이 이십팔년 갑인년에 죽었다 한다. 그런데 여기서 이십오년 신해년에 죽었다 한 것은 백제본기를 취하여 글을 삼은 것이다. 그 글에 이르기를 「태세 신해 삼월에 군사가 나아가 안라에 이르러 걸탁성(乞乇城)에 진 쳤다. 이달에 고려가 그 왕 안(安)을 시해하였다. 또 들으니 일본 천황과 태자와 황자가 함께 죽었다」 하였다. 이로 말하자면 신해년이 이십오년에 해당한다. 뒷날 살펴 헤아리는 이가 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