흠명천황欽明天皇
1흠명천황
天國排開廣庭天皇。男大迹天皇嫡子也。母曰手白香皇后。天皇愛之。常置左右。天皇幼時夢。有人云。天皇寵愛秦大津父者。及壯大。必有天下。寤驚遣使普求。得自山背國紀伊郡深草里。姓字果如所夢。於是忻喜遍身。歎夫曾夢。乃告之曰。汝有何事。答云。無也。但臣向伊勢。商價來還。山逢二狼相鬪■血。乃下馬洗漱口手。祈請曰。汝是貴神。而樂麁行。儻逢獵士。見禽尤速。乃抑止相鬪。拭洗血毛。遂遣放之。倶令全命。天皇曰。必此報也。乃令近侍。優寵日新。大致饒富。及至踐祚。拜大藏省。四年冬十月。武小廣國押盾天皇崩。皇子天國排開廣庭天皇令群臣曰。余幼年淺識。未閑政事。山田皇后明閑百揆。請就而決。山田皇后怖謝曰。妾蒙恩寵。山海■同。萬機之難。婦女安預。今皇子者。敬老慈少禮下賢者。日中不食。以待士。加以幼而穎脱早擅嘉聲。性是寛和。務存矜宥。請諸臣等。早令臨登位光臨天下。冬十二月庚辰朔甲申。天國排開廣庭皇子。即天皇位。時年若干。尊皇后曰皇太后。大伴金村大連。物部尾與大連爲大連。及蘇我稻目宿禰大臣爲大臣。並如故。
아메쿠니오시하라키히로니와천황(天國排開廣庭天皇)은 오도천황의 적자다. 어머니는 다시라카 황후라 한다. 천황이 사랑하여 늘 좌우에 두었다.
천황이 어릴 때 꿈에 어떤 사람이 말하였다. "천황이 하타노오쓰치를 사랑하고 아끼면 장성하여 반드시 천하를 가지리라."
깨어 놀라 사자를 보내어 널리 찾으니 야마시로국 기이군 후카쿠사 마을에서 얻었다. 성과 이름이 과연 꿈과 같았다. 이에 기쁨이 온몸에 퍼져 그 꿈을 놀라워하였다.
이에 그에게 알렸다. "너에게 무슨 일이 있었느냐."
답하였다. "없습니다. 다만 신이 이세로 향하여 장사하고 돌아오다가 산에서 두 이리가 서로 싸워 피를 흘리는 것을 만났습니다. 이에 말에서 내려 입과 손을 씻고 빌었습니다. '너희는 귀한 신인데 거친 짓을 즐긴다. 만약 사냥꾼을 만나면 잡히기가 더욱 빠를 것이다.' 이에 싸움을 말리고 피 묻은 털을 닦아 씻어 마침내 놓아 보내어 함께 목숨을 온전히 하게 하였습니다."
천황이 말하였다. "반드시 이 갚음이다."
이에 가까이 모시게 하니 사랑함이 날로 새롭고 크게 넉넉하고 부유하게 되었다. 자리에 오르기에 미쳐 대장성을 맡겼다.
사년 겨울 시월에 다케오히로쿠니오시타테천황이 죽었다.
황자 아메쿠니오시하라키히로니와천황이 여러 신하에게 영을 내렸다. "나는 어린 나이에 아는 것이 얕아 아직 정사에 익숙하지 않다. 야마다 황후가 온갖 일에 밝고 익숙하니 청컨대 나아가 결단하게 하라."
야마다 황후가 두려워 사양하였다. "제가 은혜와 사랑을 입은 것이 산과 바다와 같습니다. 온갖 정사의 어려움에 아녀자가 어찌 끼어들겠습니까. 이제 황자께서는 늙은이를 공경하고 어린이를 사랑하며 어진 이에게 몸을 낮추고, 한낮에 밥도 먹지 않으며 선비를 기다리십니다. 게다가 어려서부터 빼어나 일찍이 아름다운 이름을 얻으셨습니다. 성품이 너그럽고 화하여 가엾이 여겨 용서함에 힘쓰십니다. 청컨대 여러 신하들은 일찍 자리에 오르게 하시어 천하에 빛나게 임하시게 하소서."
겨울 십이월 경진 초하루 갑신일에 아메쿠니오시하라키히로니와 황자가 천황의 자리에 올랐다. 그때 나이는 얼마인지 알 수 없다. 황후를 높여 황태후라 하였다. 오토모노카나무라노오무라지와 모노노베노오코시노오무라지를 오무라지로 삼고 소가노이나메노스쿠네노오오미를 대신으로 삼으니 아울러 전과 같았다.
2황후를 세우다
元年春正月庚戌朔甲子。有司請立皇后。詔曰。立正妃武小廣國押盾天皇女石姫爲皇后。是生二男。一女。長曰箭田珠勝大兄皇子。仲曰譯語田渟中倉太珠敷尊。少曰笠縫皇女。
원년 봄 정월 경술 초하루 갑자일에 맡은 관청이 황후 세우기를 청하였다.
조를 내렸다. "정비 다케오히로쿠니오시타테천황의 딸 이시히메를 세워 황후로 삼는다."
이가 두 사내와 한 계집을 낳았다. 맏이는 야타노타마카쓰노오에 황자요, 가운데는 오사다노누나쿠라노후토타마시키노미코토요, 막내는 가사누이 황녀다.
협주 1
更名狹田毛皇女。
다른 이름은 사타케 황녀다.
3백제 사람이 오다
二月。百濟人己知部投化。置倭國添上郡山村。今山村己知部之先也。
이월에 백제 사람 기지부(己知部)가 귀화하였다. 야마토국 소후노카미군 야마무라에 두었다. 이제 야마무라 기지부의 조상이다.
4에미시와 하야히토가 붙다
三月。蝦夷。隼人。並率衆歸附。
삼월에 에미시와 하야히토가 아울러 무리를 거느리고 와서 붙었다.
5시키시마노카나사시노미야
秋七月丙子朔己丑。遷都倭國磯城郡磯城嶋。仍號爲磯城嶋金刺宮。
가을 칠월 병자 초하루 기축일에 도읍을 야마토국 시키군의 시키시마로 옮겼다. 이어 시키시마의 가나사시노미야라 불렀다.
6네 나라가 사자를 보내다
八月。高麗。百濟。新羅。任那。並遣使獻。並修貢職。召集秦人。漢人等諸蕃投化者。安置國郡。編貫戸籍。秦人戸數惣七千五十三戸。以大藏掾爲秦伴造。
팔월에 고려와 백제와 신라와 임나가 아울러 사자를 보내어 바치고 아울러 바치는 직분을 닦았다.
하타 사람과 아야 사람들 여러 나라에서 귀화한 이들을 불러 모아 나라와 고을에 두고 호적에 엮어 올렸다. 하타 사람의 호수가 모두 칠천오십삼 호였다. 대장의 벼슬아치를 하타노토모노미야쓰코로 삼았다.
7신라를 칠 군사를 묻다
九月乙亥朔己卯。幸難波祝津宮。大伴大連金村。許勢臣稻持。物部大連尾與等從焉。天皇問諸臣曰。幾許軍卒伐得新羅。物部大連尾與等奏曰。少許軍卒不可易征。襄者男大迹天皇六年。百濟遣使表請任那上■■。下■■。娑陀。牟婁四縣。大伴大連金村輙依表請許賜所求。由是新羅怨曠積年。不可輕爾而伐。於是大伴大連金村居住吉宅。稱疾不朝。天皇遣青海夫勾子。慰問慇懃。大連怖謝曰。臣所疾者非餘事也。今諸臣等謂臣滅任那。故恐怖不朝耳。乃以鞍馬贈使厚相資敬。青海夫人依實顯奏。詔曰。久竭忠誠。莫恤衆口。遂不爲罪。優寵彌深。是年也太歳庚申。
구월 을해 초하루 기묘일에 나니와의 하후리쓰노미야에 거둥하였다. 오토모노오무라지 가나무라와 고세노오미 이나모치와 모노노베노오무라지 오코시들이 따랐다.
천황이 여러 신하에게 물었다. "얼마쯤의 군사면 신라를 쳐서 얻겠는가."
모노노베노오무라지 오코시들이 아뢰었다. "적은 군사로는 쉬이 칠 수 없습니다. 지난날 오도천황 육년에 백제가 사자를 보내어 표를 올려 임나의 상다리·하다리·사타·모루 네 현을 청하였습니다. 오토모노오무라지 가나무라가 문득 표의 청에 따라 구하는 바를 주었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신라의 원망이 여러 해 쌓였으니 가벼이 칠 수 없습니다."
이에 오토모노오무라지 가나무라가 스미노에의 집에 머물러 병이라 일컫고 조회하지 않았다.
천황이 아오미노오토지를 보내어 은근히 위문하였다. 오무라지가 두려워 사양하였다. "신이 앓는 것은 다른 일이 아닙니다. 이제 여러 신하들이 신이 임나를 멸하였다 하므로 두려워 조회하지 않을 뿐입니다."
이에 안장과 말을 사자에게 주고 두터이 대접하였다. 아오미노오토지가 사실대로 드러내어 아뢰었다.
조를 내렸다. "오래 충성을 다하였으니 뭇사람의 입을 근심하지 마라." 마침내 죄주지 않고 사랑함이 더욱 깊었다.
이해는 태세가 경신이다.
8다섯 비
二年春三月。納五妃。元妃。皇后弟曰稚綾姫皇女。是生石上皇子。次有皇后弟。曰日影皇女。是生倉皇子。次蘇我大臣稻目宿禰女曰堅鹽媛。生七男。六女。其一曰大兄皇子。是爲橘豐日尊。其二曰磐隈皇女。初侍祀於伊勢大神。後坐奸皇子茨城解。其三曰臈嘴鳥皇子。其四曰豐御食炊屋姫尊。其五曰椀子皇子。其六曰大宅皇女。其七曰石上部皇子。其八曰山背皇子。其九曰大伴皇女。其十曰櫻井皇子。其十一曰肩野皇女。其十二曰橘本稚皇子。其十三曰舎人皇女。次堅鹽媛同母弟曰小姉君。生四男。一女。其一曰茨城皇子。其二曰葛城皇子。其三曰渥部穴穗部皇女。其四曰泥部穴穗部皇子。其五曰泊瀬部皇子。
이년 봄 삼월에 다섯 비를 들였다.
으뜸 비는 황후의 아우로 와카아야히메 황녀라 한다. 이가 이소노카미 황자를 낳았다.
다음으로 황후의 아우가 있어 히카게 황녀라 한다. 이가 구라 황자를 낳았다.
다음으로 소가노오오미 이나메노스쿠네의 딸은 기타시히메라 하니 일곱 사내와 여섯 계집을 낳았다. 그 하나는 오에 황자니 이가 다치바나노토요히노미코토다. 그 둘은 이와쿠마 황녀니 처음에 이세의 대신에게 제사를 모셨다가 뒤에 이바라키 황자와 통한 일로 걸려 그만두었다. 그 셋은 아토리 황자요, 그 넷은 도요미케카시키야히메노미코토요, 그 다섯은 마로코 황자요, 그 여섯은 오야케 황녀요, 그 일곱은 이소노카미베 황자요, 그 여덟은 야마시로 황자요, 그 아홉은 오토모 황녀요, 그 열은 사쿠라이 황자요, 그 열하나는 가타노 황녀요, 그 열둘은 다치바나노모토노와카 황자요, 그 열셋은 도네리 황녀다.
다음으로 기타시히메의 동복 아우는 오아네노키미라 하니 네 사내와 한 계집을 낳았다. 그 하나는 이바라키 황자요, 그 둘은 가즈라키 황자요, 그 셋은 하시우도노아나호베 황녀요, 그 넷은 하시우도노아나호베 황자요, 그 다섯은 하쓰세베 황자다.
협주 4
此曰皇后弟。明是桧隈高田天皇女。而列后妃之名。不見母妃姓與皇女名字。不知出何書。後勘者知之。
여기서 황후의 아우라 한 것은 히노쿠마노타카타천황의 딸임이 분명하다. 그런데 후비의 이름을 벌이면서 어머니 비의 성과 황녀의 이름이 보이지 않는다. 어느 책에서 나왔는지 알 수 없다. 뒤에 살피는 이가 알 것이다.
堅鹽。此云岐施志。
견염(堅鹽)은 기타시라 읽는다.
更名夢皇女。
다른 이름은 유메 황녀다.
更名天香子皇子。一書云。更名住迹皇子。
다른 이름은 아마카고 황자다. 어떤 책에는 다른 이름이 스미토 황자라 한다.
9가스가노누카코
次春日日柧臣女曰糠子。生春日山田皇女。與橘麻呂皇子。
다음으로 가스가노히쓰메노오미의 딸은 누카코라 하니 가스가노야마다 황녀와 다치바나노마로 황자를 낳았다.
협주 1
一書云。其一曰茨城皇子。其二曰泥部穴穗部皇女。其三曰泥部穴穗部皇子。更名住迹皇子。其四曰葛城皇子。其五曰泊瀬部皇子。一書云。其一曰茨城皇子。其二曰住迹皇子。其三曰泥部穴穗部皇女。其四曰泥部穴穗部皇子。更名天香子。其五曰泊瀬部皇子。帝王本紀多有古字。撰集之人。屡經遷易。後人習讀。以意刊改。傳冩既多。遂致舛雜。前後失次。兄弟參差。今則孝覆古今。歸其眞正。一往難識者。且依一撰而注詳其異。他皆效此。
어떤 책에는 그 하나는 이바라키 황자요 그 둘은 하시우도노아나호베 황녀요 그 셋은 하시우도노아나호베 황자니 다른 이름은 스미토 황자요 그 넷은 가즈라키 황자요 그 다섯은 하쓰세베 황자라 한다. 어떤 책에는 그 하나는 이바라키 황자요 그 둘은 스미토 황자요 그 셋은 하시우도노아나호베 황녀요 그 넷은 하시우도노아나호베 황자니 다른 이름은 아마카고요 그 다섯은 하쓰세베 황자라 한다. 제왕본기(帝王本紀)에 옛 글자가 많이 있는데, 가려 모은 사람이 여러 번 옮기고 바꾸었다. 뒷사람이 익혀 읽으며 뜻으로 깎고 고쳤다. 옮겨 베낀 것이 이미 많아 마침내 어긋나고 뒤섞임에 이르렀다. 앞뒤가 차례를 잃고 형과 아우가 들쭉날쭉하다. 이제 옛것과 이제 것을 견주어 살펴 그 참되고 바른 데로 돌린다. 한 번에 알기 어려운 것은 또한 한 가지 가려낸 것을 따르고 그 다른 것을 주로 자세히 적는다. 나머지도 다 이를 따랐다.
10임나를 다시 세우는 의논
夏四月。安羅次旱岐夷呑奚。大不孫。久取柔利。加羅上首位古殿奚。卒麻旱岐。散半奚旱岐兒。多羅下旱岐夷他。斯二岐旱岐兒。子他旱岐等。與任那日本府吉備臣。往赴百濟倶聽詔書。百濟聖明王謂任那旱岐等言。日本天皇所詔者。全以復建任那。今用何策起建任那。盍各盡忠奉展聖懷。任那旱岐等對曰。前再三廻與新羅議而無答報所圖之旨。更告新羅尚無所報。今宜倶遣使徃奏天皇。夫建任那者。爰在大王之意。祗承教旨。誰敢間言。然任那境接新羅。恐致卓淳等禍。聖明王曰。昔我先祖速古王。貴首王之世。安羅。加羅。卓淳旱岐等。初遣使相通。厚結親好。以爲子弟。冀可恒隆。而今被誑新羅使天皇忿怒而任那憤恨。寡人之過也。我深懲悔。而遣下部中佐平麻鹵。城方甲背昧奴等赴加羅會干任那日本府相盟。以後繋念。
여름 사월에 안라(安羅)의 차한기(次旱岐) 이탄해(夷呑奚)와 대불손(大不孫)과 구취유리(久取柔利), 가라(加羅)의 상수위(上首位) 고전해(古殿奚), 졸마(卒麻)의 한기, 산반해(散半奚) 한기의 아들, 다라(多羅)의 하한기(下旱岐) 이타(夷他), 사이기(斯二岐) 한기의 아들, 자타(子他) 한기들이 임나일본부(任那日本府)의 기비노오미와 함께 백제에 가서 조서를 들었다.
백제 성명왕(聖明王)이 임나의 한기들에게 일렀다. "일본 천황이 조서로 내리신 바는 오로지 임나를 다시 세우라는 것이다. 이제 무슨 계책으로 임나를 일으켜 세우겠는가. 어찌 각각 충성을 다하여 성스러운 뜻을 펴지 않겠는가."
임나의 한기들이 대답하였다. "앞서 두세 번 신라와 의논하였으나 꾀하는 뜻에 답하는 바가 없었습니다. 다시 신라에 알렸으나 아직 답하는 바가 없습니다. 이제 마땅히 함께 사자를 보내어 천황께 아뢰어야 합니다. 무릇 임나를 세우는 일은 대왕의 뜻에 달렸습니다. 삼가 가르치시는 뜻을 받들면 누가 감히 사이에 말을 하겠습니까. 그러나 임나의 지경이 신라에 닿아 있으니 탁순들의 화를 부를까 두렵습니다."
성명왕이 말하였다. "옛적에 우리 선조 속고왕(速古王)과 귀수왕(貴首王) 때에 안라와 가라와 탁순의 한기들이 처음 사자를 보내어 서로 통하고 두터이 친하고 좋은 사이를 맺어 자식과 아우로 삼았다. 늘 융성하기를 바랐다.
그런데 이제 신라에게 속아 천황이 성내시고 임나가 분히 여기게 되었으니 과인의 허물이다. 내가 깊이 뉘우쳐, 하부 중좌평 마로(麻鹵)와 성방 갑배 매노(昧奴)들을 보내어 가라에 가서 임나일본부와 만나 서로 맹세하게 하였다. 이 뒤로 마음에 두고
협주 2
闕名字。
이름이 빠졌다.
等謂喙己呑加羅。言卓淳等國有敗亡之禍。
「들」이라 한 것은 탁기탄과 가라를 이른다. 탁순들의 나라에 무너져 망하는 화가 있음을 말한 것이다.
11세 나라가 망한 까닭
相續圖建任那。旦夕無忘。今天皇詔稱。速建任那。由是欲共爾曹謨計。樹立任那國。宜善圖之。又於任那境。徴召新羅。問聽與不。乃倶遣使奏聞天皇。恭承示教。儻如使人未還之際。新羅候隙侵逼任那。我當往救。不足爲憂。然善守備。謹警無忘。別汝所道。恐致卓淳等禍。非新羅自強故所能爲也。其■己呑。居加羅與新羅境際。而被連年攻敗。任那無能救援。由是見亡。其南加羅。■爾狹小。不能卒備。不知所託。由是見亡。其卓淳上下携貳。主欲自附。内應新羅。由是見亡。因斯而觀三國之敗。良有以也。昔新羅請援於高麗。而攻撃任那與百濟。尚不剋之。新羅安獨滅任那乎。今寡人與汝戮力并心。翳頼天皇。任那必起。因贈物各有差。忻忻而還。
이어 임나 세울 일을 꾀하기를 아침저녁으로 잊지 않았다. 이제 천황의 조서에 '빨리 임나를 세우라' 하셨다. 이로 말미암아 너희와 함께 꾀하여 임나국을 세우고자 한다. 마땅히 잘 꾀하라.
또 임나의 지경에서 신라를 불러 듣는지 아닌지 물어라. 이에 함께 사자를 보내어 천황께 아뢰고 공경히 가르침을 받들라.
만약 사자가 돌아오기 전에 신라가 틈을 엿보아 임나를 침노한다면 내가 마땅히 가서 구할 것이니 근심할 것이 못 된다. 그러나 잘 지켜 삼가 경계하고 잊지 마라.
따로 너희가 말한 '탁순들의 화를 부를까 두렵다' 한 것은, 신라가 스스로 강해서 능히 할 수 있었던 바가 아니다.
저 탁기탄은 가라와 신라의 지경 사이에 있어 해마다 쳐서 깨뜨림을 당하였는데 임나가 능히 구하지 못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망하였다.
저 남가라는 땅이 좁고 작아 갑작스러움에 대비하지 못하고 의탁할 바를 알지 못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망하였다.
저 탁순은 위아래가 두 마음을 품고 임금이 스스로 붙고자 하여 안에서 신라에 응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망하였다.
이로 보면 세 나라가 무너진 데는 참으로 까닭이 있다.
옛적에 신라가 고려에 구원을 청하여 임나와 백제를 쳤으나 오히려 이기지 못하였다. 신라가 어찌 홀로 임나를 멸하겠는가.
이제 과인이 너희와 힘을 모으고 마음을 합하여 천황께 힘입으면 임나가 반드시 일어날 것이다."
이어 물건을 주되 각각 차등이 있었다. 기뻐하며 돌아갔다.
12안라의 일본부를 나무라다
秋七月。百濟聞安羅日本府與新羅通計。遣前部奈率鼻利莫古。奈率宣文。中部奈率木州昧淳。紀臣奈率彌麻沙等。使于安羅。召到新羅任那執事謨建任那。別以安羅日本府河内直通計新羅。深責罵之。乃謂任那曰。昔我先祖速古王。貴首王。與故旱岐等。始約和親。式爲兄弟。於是我以汝爲子弟。汝以我爲父兄。共事天皇。倶距強敵。安國全家至于今日。言念先祖與舊旱岐。和親之詞。有如■日。自茲以降。勤修隣好。遂敦與國。恩踰骨肉。善始有終。寡人之所恒願。未審何縁輕用浮辭。數歳之間。慨然失志。古人云。追悔無及。此之謂也。上達雲際。下及泉中。誓神乎今。改咎乎菖。一無隠匿。發露所爲。請誠通靈。深自克責。亦所宜取。盖聞。爲人後者。
가을 칠월에 백제가 안라의 일본부가 신라와 통하여 꾀한다는 말을 듣고, 전부 나솔 비리막고(鼻利莫古)와 나솔 선문(宣文)과 중부 나솔 목주매순(木州昧淳)과 기신 나솔 미마사(彌麻沙)들을 안라에 사자로 보냈다. 신라에 가 있는 임나의 집사를 불러 오게 하여 임나 세울 일을 꾀하였다.
따로 안라의 일본부 가와치노아타이가 신라와 통하여 꾀한 것을 깊이 나무라고 꾸짖었다.
이에 임나에 일렀다.
"옛적에 우리 선조 속고왕과 귀수왕이 옛 한기들과 처음 화친을 약속하여 형과 아우가 되었다. 이에 나는 너희를 자식과 아우로 삼고 너희는 나를 아비와 형으로 삼아, 함께 천황을 섬기고 함께 강한 적을 막아 나라를 편안히 하고 집을 온전히 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선조와 옛 한기들의 화친하던 말을 생각하면 밝은 해와 같다. 이로부터 내려와 이웃과 좋은 사이를 부지런히 닦아 마침내 더불어 하는 나라를 도타이 하였다. 은혜가 골육을 넘었다. 처음을 잘하고 끝을 두는 것이 과인이 늘 바라던 바다.
무슨 까닭으로 가벼이 뜬말을 써서 몇 해 사이에 개연히 뜻을 잃었는지 알지 못하겠다. 옛사람이 이르기를 '뉘우침을 좇아도 미치지 못한다' 하였으니 이를 두고 이른 말이다.
위로 구름 끝에 닿고 아래로 샘 속에 미치도록 이제 신에게 맹세하고 지난 허물을 고쳐, 하나도 숨김없이 한 바를 드러내라. 정성이 신령에 통하기를 청하여 깊이 스스로 꾸짖어라. 또한 마땅히 취할 바다.
무릇 듣건대 남의 뒤가 된 이는
협주 2
紀臣奈率者。盖是紀臣娶韓婦所生。因留百濟爲奈率者也。未詳其父。他皆效此也。
기신 나솔이라 한 것은 아마 기노오미가 한(韓)의 여인에게 장가들어 낳은 이로, 백제에 머물러 나솔이 된 이일 것이다. 그 아비는 자세하지 않다. 나머지도 다 이를 따랐다.
百濟本記云。加不至費直阿賢移那斯佐魯麻都等。未詳也。
백제본기에 이르기를 가불지 비직 아현 이나사 좌로 마도들이라 한다. 자세하지 않다.
13선왕의 자취를 이으라
貴能負荷先軌。克昌堂構。以成勲業也。故今追崇先世和親之好。敬順天皇詔勅之詞。拔取新羅所折之國。南加羅。■己呑等。還屬本貫。遷實任那。永作父兄。恒朝日本。此寡人之所食不甘味。寢不安席。悔往戒今之所勞想也。夫新羅甘言希誑。天下之所知也。汝等妄信既堕人權。方今任那境接新羅。宜常設備。豈能弛柝。爰恐陷羅誣欺網穽。喪國亡家。爲人繋虜。寡人念茲。勞想而不能自安矣。竊聞。任那與新羅運策席際。現蜂蛇恠。亦衆所知。且夫妖祥所以戒行。災異所以悟人。當是明天告戒。先靈之徴表者也。禍至追悔。滅後思興。孰云及矣。今汝遵余。聽天皇勅。可立任那。何患不成。若欲長存本土。永御舊民。其謨在茲。可不愼也。聖明王更謂任那日本府曰。天皇詔稱。任那若滅。汝則無資。任那若興。汝則有援。今宜興建任那。使如舊日。以爲汝助。撫養黎民。謹承詔勅悚懼填胸。誓効丹誠。
앞 자취를 이어받아 능히 집안의 얼개를 밝혀 공과 업을 이루는 것을 귀히 여긴다 한다.
그러므로 이제 앞 세대의 화친하던 좋은 사이를 좇아 높이고, 천황의 조칙의 말씀을 공경히 따라, 신라가 꺾어 가진 나라 남가라와 탁기탄들을 되찾아 본디 자리로 돌리고 임나로 옮겨 채워, 길이 아비와 형이 되어 늘 일본에 조회하게 하리라. 이것이 과인이 먹어도 맛이 달지 않고 자도 자리가 편치 않으며, 지난 일을 뉘우치고 이제를 경계하며 애써 생각하는 바다.
무릇 신라가 달콤한 말로 속이는 것은 천하가 아는 바다. 너희가 함부로 믿어 이미 남의 손아귀에 떨어졌다.
바야흐로 이제 임나의 지경이 신라에 닿아 있으니 마땅히 늘 대비를 두어야 한다. 어찌 딱따기를 늦출 수 있겠는가. 이에 신라의 속임수 그물과 함정에 빠져 나라를 잃고 집이 망하며 남에게 사로잡힐까 두렵다. 과인이 이를 생각하면 애써 생각해도 스스로 편안할 수 없다.
가만히 들으니 임나와 신라가 자리에서 계책을 꾸밀 때 벌과 뱀의 괴이함이 나타났다 한다. 또한 여럿이 아는 바다.
또 무릇 요사한 조짐은 행실을 경계하는 바요 재앙과 이변은 사람을 깨우치는 바다. 이는 밝은 하늘이 알려 경계하는 것이요 앞선 넋이 드러내는 표다. 화가 이른 뒤에 뉘우치고 망한 뒤에 일으키기를 생각한들 누가 미친다 하겠는가.
이제 너희가 나를 좇아 천황의 칙명을 들으면 임나를 세울 수 있으니 어찌 이루지 못할까 근심하겠는가. 만약 본디 땅에 길이 있고 옛 백성을 길이 다스리고자 한다면 그 꾀가 여기에 있다. 삼가지 않을 수 있겠는가."
성명왕이 다시 임나일본부에 일렀다.
"천황의 조서에 이르시기를 '임나가 만약 망하면 너는 곧 밑천이 없고, 임나가 만약 일어나면 너는 곧 도움이 있다. 이제 마땅히 임나를 일으켜 세워 옛날과 같이 하여 너의 도움으로 삼고 백성을 어루만져 기르라' 하셨다.
삼가 조칙을 받들매 두려움이 가슴에 가득하다. 붉은 정성을 다하기로 맹세하고
14일본부를 깨우치다
冀隆任那。永事天皇。猶如徃日。先慮未然。然後康樂。今日本府復能依詔。救助任那。是爲天皇所必襄讚。汝身所當賞祿。又日本卿等。久住任那之國。近接新羅之境。新羅情状。亦是所知。毒害任那。謨防日本。其來尚矣。匪唯今年。而不敢動者。近羞百濟。遠恐天皇。誘事朝廷。僞和任那。如斯感激任那日本府者。以未禽任那之間僞示伏從之状。願今候其間隙。■其不備。一擧兵而取之。天皇詔勅勸立南加羅。■己呑非但數十年。而新羅一不聽命。亦卿所知。且夫信敬天皇。爲立任那。豈若是乎。恐卿等輙信甘言。輕被謾語。滅任那國。奉辱天皇。卿其戒之。勿爲他欺。
임나가 융성하여 길이 천황을 섬기기를 지난날과 같이 하기를 바란다. 먼저 아직 그러하지 않은 일을 헤아린 뒤에야 편안하고 즐겁다.
이제 일본부가 다시 조서에 따라 임나를 구하여 돕는다면, 이는 천황이 반드시 기려 도우실 바요 그대 몸이 마땅히 상과 녹을 받을 바다.
또 일본의 경들이 오래 임나의 나라에 살아 신라의 지경에 가까이 닿았으니 신라의 사정 또한 아는 바다. 임나를 해치고 일본을 막을 꾀를 낸 것이 그 유래가 오래다. 다만 올해뿐이 아니다. 그런데 감히 움직이지 못한 것은, 가까이는 백제를 부끄러워하고 멀리는 천황을 두려워하여 조정을 꾀어 섬기고 임나와 거짓으로 화친한 것이다.
이같이 임나일본부를 감격하게 하는 것은, 아직 임나를 사로잡지 못한 사이에 거짓으로 복종하는 모양을 보이는 것이다. 바라건대 이제 그 틈을 엿보아 그 대비 없음을 타서 한 번에 군사를 들어 취하라.
천황의 조칙이 남가라와 탁기탄을 세우기를 권한 지 다만 수십 년이 아닌데, 신라가 한 번도 명을 듣지 않은 것 또한 경들이 아는 바다. 또 무릇 천황을 믿고 공경하여 임나를 세우려 한다면 어찌 이와 같겠는가.
경들이 문득 달콤한 말을 믿고 가벼이 속이는 말에 넘어가 임나국을 멸하고 천황을 욕되게 할까 두렵다. 경들은 경계하여 남에게 속지 마라."
15하한과 임나의 정사를 아뢰다
秋七月。百濟遣紀臣奈率彌麻沙。中部奈率己連。來奏下韓任那之政。并上表之。
가을 칠월에 백제가 기신 나솔 미마사와 중부 나솔 기련(己連)을 보내어 와서 하한(下韓)과 임나의 정사를 아뢰고 아울러 표를 올렸다.
16미마사들이 돌아가다
四年夏四月。百濟紀臣奈率彌麻沙等罷之。
사년 여름 사월에 백제의 기신 나솔 미마사들이 돌아갔다.
17부남의 재물을 바치다
秋九月。百濟聖明王。遣前部奈率眞牟貴文。護徳己州己婁。與物部施徳麻奇牟等來獻扶南財物與奴二口。
가을 구월에 백제 성명왕이 전부 나솔 진모귀문(眞牟貴文)과 호덕 기주기루(己州己婁)와 모노노베노세토쿠 마키무들을 보내어 와서 부남(扶南)의 재물과 종 둘을 바쳤다.
18하한의 군령과 성주를 두고 다투다
冬十一月丁亥朔甲午。遣津守連。沼百濟曰。在任那之下韓。百濟郡令。城主。宜附日本府。并持詔書。宣曰。爾屡抗表。稱當建任那十餘年矣。表奏如此。尚未成之。且夫任那者爲爾國之棟梁。如折棟梁。誰成屋宇。朕念在茲。爾須早建。汝若早建任那。河内直等自當止退。豈足云乎。是日。聖明王聞宣勅已。歴問三佐平内頭及諸臣曰。詔勅如是。當復何如。三佐平等答曰。在下韓之我郡令。城主。不可出之。建國之事宜早聽聖勅。
겨울 십일월 정해 초하루 갑오일에 쓰모리노무라지를 보내어 백제에 조를 내렸다. "임나의 하한에 있는 백제의 군령(郡令)과 성주(城主)를 마땅히 일본부에 붙여라."
아울러 조서를 가지고 알렸다. "너는 여러 번 표를 올려 임나를 세우겠다 한 지 십여 년이다. 표에 아뢴 것이 이와 같은데 아직 이루지 못하였다. 또 무릇 임나는 너희 나라의 마룻대와 들보다. 마룻대와 들보가 꺾이면 누가 지붕을 이루겠는가. 짐의 생각이 여기 있으니 너는 모름지기 일찍 세워라. 네가 만약 일찍 임나를 세우면 가와치노아타이들은 절로 물러날 것이니 어찌 말할 것이 있겠는가."
이날 성명왕이 알리는 칙명을 다 듣고 세 좌평과 내두와 여러 신하에게 두루 물었다. "조칙이 이와 같으니 마땅히 다시 어찌하겠는가."
세 좌평들이 답하였다. "하한에 있는 우리 군령과 성주는 내보낼 수 없습니다. 나라를 세우는 일은 마땅히 일찍 성스러운 조칙을 들어야 합니다."
협주 1
河内直已見上文
가와치노아타이들은 이미 위 글에 보인다.
19여러 신하가 의논하다
十二月。百濟聖明王。復以前詔普示群臣曰。天皇詔勅如是。當復何如。上佐平沙宅己婁。中佐平木州麻那。下佐平木尹貴。徳率鼻利莫古。徳率東城道天。徳率木州昧淳。徳率國雖多。奈率燕比善那等。同議曰。臣等禀性愚闇。都無智略。詔建任那。早須奉勅。今宜召任那執事。國國旱岐等。倶謀同計。抗表述志。又河内直移那斯。麻都等猶住安羅。任那恐難建之。故亦并表乞移本處也。聖明王曰。群臣所議。甚稱寡人之心。
십이월에 백제 성명왕이 다시 앞의 조서를 여러 신하에게 널리 보이며 말하였다. "천황의 조칙이 이와 같으니 마땅히 다시 어찌하겠는가."
상좌평 사택기루(沙宅己婁)와 중좌평 목주마나(木州麻那)와 하좌평 목윤귀(木尹貴)와 덕솔 비리막고와 덕솔 동성도천(東城道天)과 덕솔 목주매순과 덕솔 국수다(國雖多)와 나솔 연비선나(燕比善那)들이 함께 의논하여 말하였다.
"신들은 타고난 성품이 어리석고 어두워 도무지 지략이 없습니다. 임나를 세우라 조서하셨으니 일찍 칙명을 받들어야 합니다. 이제 마땅히 임나의 집사와 나라마다의 한기들을 불러 함께 꾀하고 같이 계책하여, 표를 올려 뜻을 펴야 합니다.
또 가와치노아타이 이나사(移那斯)와 마도(麻都)들이 아직 안라에 머물러 있으니 임나를 세우기 어려울까 두렵습니다. 그러므로 또한 아울러 표를 올려 본디 있던 곳으로 옮기기를 빌어야 합니다."
성명왕이 말하였다. "여러 신하가 의논한 바가 몹시 과인의 마음에 맞는다."
20집사를 부르다
是月。乃遣施徳高分。召任那執事與日本府執事。倶答言。過正旦而往聽焉。
이달에 이에 시덕 고분(高分)을 보내어 임나의 집사와 일본부의 집사를 불렀다. 함께 답하여 말하였다. "설을 지내고 가서 듣겠습니다."
21다시 부르다
五年春正月。百濟國遣使召任那執事與日本府執事。倶答言。祭神時到。祭了而往。
오년 봄 정월에 백제국이 사자를 보내어 임나의 집사와 일본부의 집사를 불렀다. 함께 답하여 말하였다. "신에게 제사할 때가 되었습니다. 제사를 마치고 가겠습니다."
22낮은 이만 보내다
是月。百濟復遣使召任那執事與日本府執事。日本府。任那。倶不遣執事。而遣微者。由是百濟不得倶謀建任那國。
이달에 백제가 다시 사자를 보내어 임나의 집사와 일본부의 집사를 불렀다. 일본부와 임나가 함께 집사를 보내지 않고 지위 낮은 이를 보냈다. 이로 말미암아 백제가 함께 임나국 세울 일을 꾀할 수 없었다.
23가와치노아타이를 꾸짖다
二月。百濟遣施徳馬武。施徳高分屋。施徳斯那奴次酒等。使于任那。謂日本府與任那旱岐等曰。我遣紀臣奈率彌麻沙。奈率己連。物部連奈率用歌多。朝謁天皇。彌麻沙等還自日本。以詔書宣曰。汝等宜共在彼日本府早建良圖副朕所望。爾其戒之。勿被他誑。又津守連從日本來。宣詔勅而問任那之政。故將欲共日本府任那執事。議定任那之政。奉奏天皇。遺召三廻尚不來到。由是不得共論圖計任那之政。奉奏天皇矣。今欲請留津守連。別以疾使。具申情状遣奏天皇。當以三月十日發遣使於日本。此使便到。天皇必須問汝。汝日本府卿。任那旱岐等。各宜發使共我使人。往聽天皇所宣之詔。別謂河内直。自昔迄今。唯聞汝悪。汝先祖等。倶懷奸僞。
이월에 백제가 시덕 마무(馬武)와 시덕 고분옥(高分屋)과 시덕 사나노차주(斯那奴次酒)들을 임나에 사자로 보내어 일본부와 임나의 한기들에게 일렀다.
"우리가 기신 나솔 미마사와 나솔 기련과 모노노베노무라지 나솔 요카타를 보내어 천황께 조회하고 뵈었다. 미마사들이 일본에서 돌아와 조서로 알리기를 '너희는 마땅히 저기 일본부와 함께 일찍 좋은 꾀를 세워 짐이 바라는 바에 맞추라. 너희는 경계하여 남에게 속지 마라' 하셨다.
또 쓰모리노무라지가 일본에서 와서 조칙을 알리고 임나의 정사를 물었다. 그러므로 일본부와 임나의 집사와 함께 임나의 정사를 의논하여 정하고 천황께 아뢰고자 하였다. 세 번을 보내어 불러도 오히려 오지 않았다. 이로 말미암아 함께 임나의 정사를 논하여 꾀하고 천황께 아뢸 수 없었다.
이제 쓰모리노무라지를 머물러 두기를 청하고, 따로 빠른 사자로 사정을 갖추어 아뢰어 천황께 보내려 한다. 마땅히 삼월 열흘에 사자를 일본에 보낼 것이다. 이 사자가 이르면 천황이 반드시 너희에게 물으실 것이다. 너희 일본부의 경과 임나의 한기들은 각각 마땅히 사자를 내어 우리 사자와 함께 가서 천황이 알리시는 조서를 들으라."
따로 가와치노아타이에게 일렀다. "옛적부터 이제까지 오직 너의 나쁜 짓만 들었다. 너의 선조들이 함께 간사하고 거짓됨을 품고
협주 3
百濟本記云。津守連己麻奴跪。而語訛不正。未詳。
백제본기에 이르기를 쓰모리노무라지 고마누코라 한다. 그런데 말이 잘못되어 바르지 않아 자세하지 않다.
百濟本記云。河内直移那斯。麻都。而語訛未詳其正也。
백제본기에 이르기를 가와치노아타이 이나사와 마도라 한다. 그런데 말이 잘못되어 그 바름을 자세히 알 수 없다.
百濟本記云。汝先那干陀甲背。加臘直岐甲背。亦云。那哥陀甲背。鷹哥岐彌。語訛未詳。
백제본기에 이르기를 「너의 선조 나간타 갑배와 가랍직기 갑배」라 하고, 또 「나가타 갑배와 응가기미」라 한다. 말이 잘못되어 자세하지 않다.
24일본부가 답하다
誘説。爲哥可君專信其言不憂國難。乖背吾心縱肆暴虐。由是見逐。職汝之由。汝等來住任那。恒行不善。任那日損。職汝之由。汝是雖微。譬猶小火燒焚山野。連延村邑。由汝行惡。當敗任那。遂使海西諸國官家。不得長奉天皇之闕。今遣奏天皇。乞移汝等。還其本處。汝亦往聞。又謂日本府卿。任那旱岐等曰。夫建任那之國。不假天皇之威。誰能建也。故我思欲就天皇。請將士。而助任那之國。將士之粮我當須運。將士之數未限若干。運粮之處亦難自決。願居一處。倶論可不。擇從其善。將奏天皇。故頻遣召。汝猶不來。不得議也。日本府答曰。任那執事不赴召者。是由吾不遣。不得往之。吾遣奏天皇。還使宣曰。朕當以印哥臣。遣於新羅。以津守連。遺於百濟。汝待聞勅際。莫自勞徃新羅。百濟也。宣勅如是。會聞印哥臣使於新羅。乃追遣問天皇所宣詔。
꾀어 말하였다. 위가기미가 오로지 그 말을 믿어 나라의 어려움을 근심하지 않고 내 마음을 어기고 등져 사납고 모진 짓을 마음대로 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쫓겨났으니 오로지 너의 탓이다.
너희가 임나에 와서 살며 늘 좋지 않은 짓을 행하여 임나가 나날이 줄었으니 오로지 너의 탓이다.
네가 비록 미미하나 비유하자면 작은 불이 산과 들을 태워 마을에 잇달아 번지는 것과 같다. 너의 나쁜 행실로 말미암아 마땅히 임나가 무너질 것이다. 마침내 바다 서쪽 여러 나라의 관가가 길이 천황의 궁궐을 받들지 못하게 하였다.
이제 천황께 아뢰어 너희를 옮겨 본디 있던 곳으로 돌리기를 빌겠다. 너 또한 가서 들으라."
또 일본부의 경과 임나의 한기들에게 일렀다.
"무릇 임나의 나라를 세우는 데 천황의 위엄을 빌리지 않고 누가 능히 세우겠는가. 그러므로 나는 천황께 나아가 장수와 군사를 청하여 임나의 나라를 돕고자 한다. 장수와 군사의 양식은 내가 마땅히 날라야 한다. 장수와 군사의 수를 아직 얼마로 정하지 못하였고 양식 나를 곳도 스스로 결단하기 어렵다. 바라건대 한자리에 모여 옳고 그름을 함께 논하여 그 좋은 바를 가려 따라 천황께 아뢰고자 한다. 그러므로 자주 불렀으나 너희가 오히려 오지 않아 의논할 수 없었다."
일본부가 답하였다.
"임나의 집사가 부름에 나아가지 않은 것은 내가 보내지 않았기 때문이니 갈 수 없었다. 내가 천황께 아뢰매 돌아온 사자가 알리기를 '짐이 마땅히 이키노오미를 신라에 보내고 쓰모리노무라지를 백제에 보내겠다. 너는 칙명 듣기를 기다리고 스스로 애써 신라나 백제에 가지 마라' 하셨다.
칙명을 알린 것이 이와 같은데, 마침 이키노오미가 신라에 사자로 갔다는 말을 듣고 이에 뒤쫓아 보내어 천황이 알리신 조서를 물었다.
협주 2
百濟本記云。爲哥岐彌。名有非岐。
위가기미는 백제본기에 위가기미라 하고 이름이 유비기라 한다.
語訛未詳。
말이 잘못되어 자세하지 않다.
25쓰모리노무라지가 지나가다
曰。日本臣與任那執事。應就新羅。聽天皇勅。而不宣就百濟聽命也。後津守連遂來。過此。謂之曰。今余被遣於百濟者。將出在下韓之百濟郡令。城主。唯聞此説。不聞任那與日本府。會於百濟。聽天皇勅。故不徃焉。非任那意。於是任那旱岐等曰。由使來召、便欲徃參。日本府卿不肯發遣。故不徃焉。大王爲建任那。觸情曉示。覩茲忻喜難可具申。
답하기를 '일본 신하와 임나 집사는 마땅히 신라에 나아가 천황의 칙명을 들으라' 하였고, 백제에 나아가 명을 들으라고는 하지 않았다.
뒤에 쓰모리노무라지가 마침내 와서 여기를 지나가며 일렀다. '이제 내가 백제에 보내진 것은 하한에 있는 백제의 군령과 성주를 내보내려는 것이다.'
오직 이 말만 들었을 뿐 임나와 일본부가 백제에 모여 천황의 칙명을 들으라는 말은 듣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가지 않았다. 임나의 뜻이 아니다."
이에 임나의 한기들이 말하였다. "사자가 와서 부름에 곧 가서 참여하고자 하였으나 일본부의 경이 보내려 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가지 않았다. 대왕께서 임나를 세우려고 마음을 다하여 깨우쳐 보이시니, 이를 보매 기쁨을 다 아뢰기 어렵습니다."
26두 사람을 옮겨 달라 아뢰다
三月。百濟遺奈率阿■得文。許勢奈率哥麻。物部奈率哥非等。上表曰。奈率彌麻沙。奈率己連等至臣蕃。奉詔書曰。爾等宜共在彼日本府同謀善計。早建任那。爾其戒之。勿被他誑。又津守連等至臣蕃。奉勅書。問建任那。恭承來勅。不敢停時。爲欲共謀。乃遣使召日本府與任那。倶對言。新年既至。願過而徃。久而不就。復遣使召。倶對言。祭時既至。願過而往。久而不就。復遣使召。而由遣微者。不得同計。夫任那之不赴召者。非其意焉。是阿賢移那斯。佐魯麻都。奸佞之所作也。夫任那者以安羅爲兄。唯從其意。安羅人者。以日本府爲天。唯從其意。今的臣。吉備臣。河内直等。咸從移那斯。麻都指■而已。移那斯。麻都。雖是小家微者。專擅日本府之政。又制任那。障而勿遣。由是不得同計奏答天皇。
삼월에 백제가 나솔 아탁득문(阿■得文)과 고세노나솔 가마(哥麻)와 모노노베노나솔 가비(哥非)들을 보내어 표를 올렸다.
"나솔 미마사와 나솔 기련들이 신의 나라에 이르러 조서를 받들어 이르기를 '너희는 마땅히 저기 일본부와 함께 좋은 계책을 꾀하여 일찍 임나를 세우라. 너희는 경계하여 남에게 속지 마라' 하셨습니다.
또 쓰모리노무라지들이 신의 나라에 이르러 칙서를 받들어 임나 세울 일을 물었습니다. 삼가 내리신 칙명을 받들어 감히 때를 늦추지 않았습니다. 함께 꾀하고자 이에 사자를 보내어 일본부와 임나를 불렀습니다.
함께 답하기를 '새해가 이미 이르렀으니 지나고 가기를 바랍니다' 하였습니다. 오래도록 나아오지 않아 다시 사자를 보내어 불렀습니다. 함께 답하기를 '제사 때가 이미 이르렀으니 지나고 가기를 바랍니다' 하였습니다. 오래도록 나아오지 않아 다시 사자를 보내어 불렀으나 지위 낮은 이를 보낸 까닭에 함께 계책할 수 없었습니다.
무릇 임나가 부름에 나아가지 않은 것은 그 뜻이 아닙니다. 이는 아현 이나사와 좌로 마도의 간사하고 아첨함이 지은 바입니다.
무릇 임나는 안라를 형으로 삼아 오직 그 뜻을 좇고, 안라 사람은 일본부를 하늘로 삼아 오직 그 뜻을 좇습니다. 이제 이쿠하노오미와 기비노오미와 가와치노아타이들이 다 이나사와 마도가 가리키는 대로 할 뿐입니다.
이나사와 마도가 비록 작은 집안의 미천한 이나 일본부의 정사를 오로지 마음대로 하고 또 임나를 막아 보내지 않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함께 계책하여 천황께 아뢰어 답할 수 없습니다.
협주 3
百済本記云。遣召烏胡跛臣。盖是的臣也。
사자를 보내어 일본부를 불렀다는 것을 백제본기에는 오코하노오미를 불렀다 한다. 아마 이쿠하노오미일 것이다.
二人名也。巳見上文。
두 사람의 이름이다. 이미 위 글에 보인다.
百濟本記云。以安羅爲父。以日本府爲本也。
백제본기에는 안라를 아비로 삼고 일본부를 근본으로 삼는다 한다.
27신라의 밭갈이
故留己麻奴跪。別遣疾使迅如飛烏。奉奏天皇。假使二人。在於安羅。多行奸佞。任那難建。海西諸國。必不獲事。伏請移此二人。還其本處。勅唹日本府與任那。而圖建任那。故臣遣奈率彌麻沙。奈率己連等。副己麻奴跪上表以聞。於是詔曰。的臣等。往來新羅非朕心也。襄者。印支彌與阿鹵旱岐在時。爲新羅所逼。而不得耕種。百済路迥。不能救急。由的臣等往來新羅。方得耕種。朕所曾聞。若已建任那。移那斯。麻都。自然却退。豈足云乎。伏承此詔。喜懼兼懷。而新羅誑朝。知匪天勅。新羅春取■淳。仍擯出我久禮山戍。而遂有之。近安羅處。安羅耕種。近久禮山處。新羅耕種。各自耕之不相侵奪。而移那斯。麻都。過耕他界。六月逃去。於印支彌後來許勢臣時。新羅無復侵逼他境。
그러므로 고마누코를 머물러 두고 따로 빠른 사자를 나는 새처럼 급히 보내어 천황께 아뢰옵니다.
만약 두 사람이 안라에 있어 간사하고 아첨함을 많이 행하면 임나를 세우기 어렵고 바다 서쪽 여러 나라가 반드시 섬기지 못할 것입니다. 엎드려 청컨대 이 두 사람을 옮겨 본디 있던 곳으로 돌리소서.
일본부와 임나에 조칙을 내리시어 임나 세울 일을 꾀하게 하소서. 그러므로 신이 나솔 미마사와 나솔 기련들을 보내어 고마누코에 딸려 표를 올려 아룁니다."
이에 조를 내렸다.
"이쿠하노오미들이 신라에 오간 것은 짐의 마음이 아니다. 지난날 이키미와 아로한기가 있을 때 신라에게 다그침을 받아 밭갈이를 하지 못하였다. 백제는 길이 멀어 급함을 구할 수 없었다. 이쿠하노오미들이 신라에 오감으로 말미암아 바야흐로 밭갈이를 할 수 있었다. 짐이 일찍이 들은 바다. 만약 이미 임나를 세우면 이나사와 마도는 절로 물러날 것이니 어찌 말할 것이 있겠는가."
엎드려 이 조서를 받들매 기쁨과 두려움이 함께 마음에 듭니다. 그런데 신라가 조정을 속인 것은 하늘의 칙명이 아님을 압니다.
신라가 봄에 탁순을 취하고 이어 우리 구례산의 지킴이를 몰아내고 마침내 차지하였습니다. 안라에 가까운 곳은 안라가 밭 갈고 구례산에 가까운 곳은 신라가 밭 갈아, 각각 스스로 갈며 서로 침노하여 빼앗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나사와 마도가 남의 지경을 넘어 밭 갈다가 유월에 달아났습니다.
이키미 뒤에 온 고세노오미 때에는 신라가 다시 남의 지경을 침노하여 다그치지 않았습니다.
협주 4
蓋是津守連也。
아마 쓰모리노무라지일 것이다.
二人者。移那斯與麻都也。
두 사람은 이나사와 마도다.
等者謂吉備弟君臣。河内直等也。
「들」이란 기비노오토키미노오미와 가와치노아타이들을 이른다.
百濟本記云。我留印支彌之後。至既酒臣時。皆未詳。
백제본기에 「우리가 이키미를 머물게 한 뒤 기수신 때에 이르러」라 한다. 다 자세하지 않다.
28마도가 신라의 관을 쓰다
安羅不言爲新羅逼不得耕種。臣甞聞。新羅毎春秋。多聚兵甲。欲襲安羅與荷山。或聞。當襲加羅。頃得書信。便遣將士。擁守任那。無懈怠也。頻發鋭兵。應時往救。是以任那随序耕種。新羅不敢侵逼。而奏百濟路迥。不能救急。由的臣等往來新羅。方得耕種。是上欺天朝。轉成奸佞也。曉然若是。尚欺天朝。自餘虚妄。必多有之。的臣等猶住安羅。任那之國恐難建立。宜早退却。臣深懼之。佐魯麻都雖是韓腹。位居大連。廁日本執事之間。入榮班貴盛之之例。而今反著新羅奈麻禮冠。即身心歸附。於他易照。熟觀所作。都無怖畏。故前奏惡行。具録聞訖。今猶著他服。日赴新羅域。公私往還。都無所憚。夫喙國之滅。匪由他也。喙國之凾跛旱岐。貳心加羅國。而内應新羅。加羅自外合戰。由是滅焉。若使凾跛旱岐不爲内應。喙國雖小。未必亡也。至於卓淳。亦復然之。假使卓淳國主不爲内應新羅招冦。
안라가 신라에게 다그침을 받아 밭 갈지 못한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신이 일찍이 들으니 신라가 봄가을마다 군사와 갑옷을 많이 모아 안라와 하산(荷山)을 습격하려 한다 하고, 혹은 가라를 습격하려 한다고 들었습니다. 요사이 서신을 얻어 곧 장수와 군사를 보내어 임나를 지키게 하고 게을리하지 않았습니다. 자주 날랜 군사를 내어 때에 맞추어 가서 구하였습니다. 이 때문에 임나가 철을 따라 밭 갈고 신라가 감히 침노하여 다그치지 못하였습니다.
그런데 '백제는 길이 멀어 급함을 구할 수 없고 이쿠하노오미들이 신라에 오감으로 말미암아 바야흐로 밭 갈 수 있었다'고 아뢴 것은, 위로 천조를 속이는 것이요 굴러 간사하고 아첨함을 이루는 것입니다. 이토록 뚜렷한데도 오히려 천조를 속이니, 그 나머지 헛되고 거짓된 것이 반드시 많이 있을 것입니다.
이쿠하노오미들이 아직 안라에 머무르면 임나의 나라를 세우기 어려울까 두렵습니다. 마땅히 일찍 물러나게 하소서. 신이 이를 깊이 두려워합니다.
좌로 마도는 비록 한(韓)의 배에서 났으나 자리가 오무라지에 있어 일본 집사의 사이에 끼고 영화롭고 귀한 반열에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도리어 신라의 나마례(奈麻禮) 관을 쓰니, 곧 몸과 마음이 남에게 돌아가 붙은 것이 쉬이 드러납니다.
그 하는 바를 익히 보니 도무지 두려워함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앞서 나쁜 행실을 아뢰어 갖추어 적어 들려 드렸습니다. 이제도 오히려 남의 옷을 입고 날마다 신라 땅에 나아가며 공사에 오가기를 도무지 꺼리는 바가 없습니다.
무릇 탁국(喙國)이 멸한 것은 다른 까닭이 아닙니다. 탁국의 함파한기(凾跛旱岐)가 가라국에 두 마음을 품고 안에서 신라에 응하였고, 가라가 밖에서 함께 싸웠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멸하였습니다. 만약 함파한기가 안에서 응하지 않았더라면 탁국이 비록 작으나 반드시 망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탁순에 이르러서도 또한 그러합니다. 만약 탁순의 임금이 안에서 신라에 응하여 도적을 부르지 않았더라면
29안에서 응한 이가 나라를 망친다
豈至滅乎。歴觀諸國敗亡之禍。皆由内應貳心人者。今麻都等腹心新羅。遂着其服。徃還旦夕。陰搆■心。乃恐、任那由茲永滅。任那若滅。臣國孤危。思欲朝之。豈復得耶。伏願天皇玄鑒遠察。速移本處。以安任那。
어찌 멸함에 이르렀겠습니까.
여러 나라가 무너져 망한 화를 두루 보면 다 안에서 응하고 두 마음을 품은 사람으로 말미암았습니다.
이제 마도들이 신라를 마음에 두고 마침내 그 옷을 입으며 아침저녁으로 오가며 몰래 도적의 마음을 얽습니다. 이에 임나가 이로 말미암아 길이 멸할까 두렵습니다. 임나가 만약 멸하면 신의 나라가 외롭고 위태로워집니다. 조회하고자 한들 어찌 다시 할 수 있겠습니까.
엎드려 바라건대 천황께서 그윽이 살피고 멀리 살피시어 빨리 본디 있던 곳으로 옮기시어 임나를 편안케 하소서."
30사자가 돌아가다
冬十月。百濟使人奈率得文。奈率哥麻等罷歸。
겨울 시월에 백제 사자 나솔 득문과 나솔 가마들이 돌아갔다.
협주 1
百濟本記云。冬十月奈率得文。奈率哥麻等還自日本曰。所奏河内直移那斯。麻都等事。無報勅也。
백제본기에 이르기를, 겨울 시월에 나솔 득문과 나솔 가마들이 일본에서 돌아와 말하기를 「아뢴 가와치노아타이 이나사와 마도들의 일에 답하는 칙명이 없었다」 하였다 한다.
31세 가지 계책 — 첫째
十一月。百濟遣使召日本府臣。任那執事曰。遺朝天皇。奈率得文。許勢奈率哥麻。物部奈率哥非等還自日本。今日本府臣及任那國執事。宜來聽勅同議任那。日本吉備臣。安羅下旱岐大不孫。久取柔利。加羅上首位古殿奚。卒麻君。斯二岐君。散半奚君兒。多羅二首位訖乾智。子他旱岐。久嵯旱岐。仍赴百濟。於是百濟王聖明略以詔書示曰。吾遣奈率彌麻佐。奈率己連。奈率用哥多等。朝於日本。詔曰。早建任那。又津守連奉勅問成任那。故遣召之。當復何如能建任那。請各陳謀。吉備臣。任那旱岐等曰。夫建任那國。唯在大王。欲冀遵王。倶奏聽勅。聖明王謂之曰。任那之國。與吾百濟。自古以來約爲子弟。今日本府印岐彌既討新羅。更將伐我。又樂聽新羅虚誕謾語也。夫遣印支彌於任那者。本非侵害其國。往古來今新羅无導。食言違信。而滅卓淳股肱之國。
십일월에 백제가 사자를 보내어 일본부의 신하와 임나의 집사를 불러 말하였다. "천황께 조회하러 보낸 나솔 득문과 고세노나솔 가마와 모노노베노나솔 가비들이 일본에서 돌아왔다. 이제 일본부의 신하와 임나국의 집사는 마땅히 와서 칙명을 듣고 함께 임나를 의논하라."
일본의 기비노오미와 안라의 하한기 대불손과 구취유리와 가라의 상수위 고전해와 졸마군과 사이기군과 산반해군의 아들과 다라의 이수위 흘건지(訖乾智)와 자타한기와 구차(久嵯)한기가 이에 백제로 갔다.
이에 백제 왕 성명이 조서를 대강 보이며 말하였다. "내가 나솔 미마사와 나솔 기련과 나솔 요카타들을 보내어 일본에 조회하매 조서에 이르시기를 '일찍 임나를 세우라' 하셨다. 또 쓰모리노무라지가 칙명을 받들어 임나 이루는 일을 물었다. 그러므로 불렀다. 마땅히 다시 어찌하면 능히 임나를 세우겠는가. 청컨대 각각 꾀를 펴라."
기비노오미와 임나의 한기들이 말하였다. "무릇 임나국을 세우는 것은 오직 대왕에게 달렸습니다. 바라건대 왕을 좇아 함께 아뢰고 칙명을 듣고자 합니다."
성명왕이 일렀다.
"임나의 나라는 우리 백제와 예로부터 자식과 아우가 되기로 약속하였다. 이제 일본부의 이키미가 이미 신라를 치고 다시 우리를 치려 한다. 또 신라의 헛되고 속이는 말을 즐겨 듣는다.
무릇 이키미를 임나에 보낸 것은 본디 그 나라를 침노하여 해치려는 것이 아니었다. 예로부터 이제까지 신라가 도가 없어 말을 먹고 믿음을 어겨 팔다리 같은 나라 탁순을 멸하였다.
협주 1
謂在任那日本臣名也。
일본부의 이키미는 임나에 있는 일본 신하의 이름을 이른다.
32세 가지 계책 — 둘째와 셋째
欲快返悔。故遣召到倶承恩詔。欲冀興繼任那之國。猶如舊日永爲兄弟。竊聞。新羅。安羅兩國之境有大江水。要害之地也。吾欲據此脩繕六城。謹請天皇三千兵士。毎城充以五百。并我兵士勿使作田。而逼悩者。久禮山之五城、庶自投兵降首。卓淳之國。亦復當興。所請兵士吾給衣粮。欲奏天皇。其策一也。猶於南韓。置郡令。城主者。豈欲違背天皇遮斷貢調之路。唯庶尅濟多難殲撲強敵。凡厥凶黨。誰不謀附。北敵強大。我國微弱。若不置南韓郡領。城主修理防護。不可以禦此強敵。亦不可以制新羅。故猶置之攻逼新羅撫存任那。若不爾者。恐見滅亡不得朝聘。欲奏天皇。其策二也。又吉備臣。河内直。移那斯。麻都。猶在那國者。天皇雖詔建成任那。不可得也。請移此四人。各遣還其本邑。奏於天皇。其策三也。宜與日本臣。任那旱岐等。倶奉遣使。同奏天皇。乞聽恩詔。於是吉備臣。旱岐等曰。
빨리 뉘우침을 시원히 하고자 하여 불러 이르게 하고 함께 은혜로운 조서를 받들어, 임나의 나라를 일으켜 이어 옛날과 같이 길이 형과 아우가 되기를 바란다.
가만히 들으니 신라와 안라 두 나라의 지경에 큰 강물이 있어 요해의 땅이라 한다. 나는 여기를 웅거하여 여섯 성을 고쳐 쌓고자 한다. 삼가 천황께 군사 삼천을 청하여 성마다 오백씩 채우고, 아울러 우리 군사로 밭을 짓지 못하게 하여 다그쳐 괴롭히면, 구례산의 다섯 성은 아마 스스로 무기를 던지고 머리를 조아려 항복할 것이다. 탁순의 나라 또한 다시 마땅히 일어날 것이다. 청하는 군사의 옷과 양식은 내가 대겠다. 이를 천황께 아뢰고자 하니 그 계책이 하나다.
오히려 남한(南韓)에 군령과 성주를 두는 것이 어찌 천황을 등지고 조공하는 길을 끊고자 함이겠는가. 오직 여러 어려움을 이겨 건너고 강한 적을 무찌르기를 바랄 뿐이다. 무릇 저 흉한 무리가 누군들 붙기를 꾀하지 않겠는가. 북쪽 적은 강하고 크며 우리 나라는 미약하다. 만약 남한에 군령과 성주를 두어 방비를 닦아 지키지 않으면 이 강한 적을 막을 수 없고 또한 신라를 누를 수 없다. 그러므로 오히려 두어 신라를 쳐 다그치고 임나를 어루만져 보존한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으면 멸망하여 조회하고 방문하지 못할까 두렵다. 이를 천황께 아뢰고자 하니 그 계책이 둘이다.
또 기비노오미와 가와치노아타이와 이나사와 마도가 아직 저 나라에 있으면 천황이 비록 임나를 이루라 조서하셔도 얻을 수 없다. 청컨대 이 네 사람을 옮겨 각각 그 본디 마을로 돌려보내기를 천황께 아뢰고자 하니 그 계책이 셋이다.
마땅히 일본 신하와 임나 한기들과 함께 사자를 보내어 같이 천황께 아뢰어 은혜로운 조서를 듣기를 빌자."
이에 기비노오미와 한기들이 말하였다.
33천 해에 한 번 만나는 때
大王所述三策。亦協愚情而已。今願歸以敬諮日本大臣。安羅王。加羅王。倶遣使同奏天皇。此誠千載一會之期。可不深思而熟計歟。
"대왕께서 말씀하신 세 가지 계책이 또한 어리석은 저희 뜻에도 맞습니다. 이제 바라건대 돌아가 일본의 대신과 안라 왕과 가라 왕에게 공경히 여쭈어, 함께 사자를 보내어 같이 천황께 아뢰고자 합니다. 이는 참으로 천 해에 한 번 만나는 때이니 깊이 생각하고 익히 헤아리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협주 1
謂在任那日本府之大臣也。
임나 일본부의 대신을 이른다.
34사도섬의 미시하세 사람
十二月。越國言。於佐渡嶋北御名部之碕岸有肅愼人。乘一船舶而淹留。春夏捕魚充食。彼嶋之人言非人也。亦言鬼魅。不敢近之。嶋東禹武邑人採拾椎子。爲欲熟喫。著灰裏炮。其皮甲化成二人。飛騰火上一尺餘許。經時相闘。邑人深以爲異。取置於庭。亦如前飛相闘不已。有人占云。是邑人必爲魃鬼所迷惑。不久如言被其抄掠。於是肅愼人移就瀬波河浦。浦神嚴忌。人敢近。渇飮其水。死者且半。骨積於巖岫。俗呼肅愼隈也。
십이월에 고시국이 말하였다.
"사도섬 북쪽 미나베 곶 언덕에 미시하세(肅愼) 사람이 있어 배 한 척을 타고 와서 오래 머물렀습니다. 봄과 여름에 고기를 잡아 먹을 것으로 삼았습니다. 저 섬 사람이 사람이 아니라 하고 또 도깨비라 하며 감히 가까이하지 않았습니다.
섬 동쪽 우무 마을 사람이 상수리를 주워 익혀 먹으려고 재 속에 넣어 구웠습니다. 그 껍질이 두 사람으로 변하여 불 위 한 자 남짓 날아올라 한동안 서로 싸웠습니다. 마을 사람이 몹시 이상히 여겨 가져다 뜰에 두었습니다. 또 앞서와 같이 날아 서로 싸우기를 그치지 않았습니다.
어떤 사람이 점쳐 말하기를 '이 마을 사람이 반드시 도깨비에게 홀릴 것이다' 하였는데, 오래지 않아 말대로 노략질을 당하였습니다.
이에 미시하세 사람이 세나미 강 갯가로 옮겨 갔습니다. 갯가의 신이 몹시 꺼려 사람이 감히 가까이하지 않았습니다. 목말라 그 물을 마시고 죽은 이가 또한 반이었습니다. 뼈가 바위 굴에 쌓여 세속에 미시하세 굽이라 부릅니다."
35하데비를 백제에 보내다
六年春三月。遣膳臣巴提便使于百濟。
육년 봄 삼월에 가시와데노오미 하데비를 백제에 사자로 보냈다.
36백제가 표를 올리다
夏五月。百濟遣奈率其悛。奈率用哥多。施徳次酒等上表。
여름 오월에 백제가 나솔 기준(其悛)과 나솔 요카타와 시덕 차주들을 보내어 표를 올렸다.
37오나라 재물을 주다
秋九月。百濟遣中部護徳菩提等使于任那。贈呉財於日本府臣及諸旱岐各有差。
가을 구월에 백제가 중부 호덕 보리(菩提)들을 임나에 사자로 보내어 오나라 재물을 일본부의 신하와 여러 한기에게 주되 각각 차등이 있었다.
38장륙 불상을 만들다
是月。百濟造丈六佛像。製願文曰。盖聞。造丈六佛功徳甚大。今敬造。以此功徳。願天皇獲勝善之徳。天皇所用彌移居國倶蒙福祐。又願普天之下一切衆生皆蒙解脱。故造之矣。
이달에 백제가 장륙(丈六) 불상을 만들고 발원문을 지어 말하였다.
"무릇 듣건대 장륙 불상을 만드는 공덕이 몹시 크다 한다. 이제 공경히 만든다. 이 공덕으로 천황이 뛰어나고 착한 덕을 얻으시고, 천황이 다스리시는 미야케의 나라가 다 복과 도움을 입기를 바란다. 또 넓은 하늘 아래 일체 중생이 다 벗어남을 얻기를 바란다. 그러므로 만든다."
39하데비가 범을 죽이다
冬十一月。膳臣巴提便還自百濟言。臣被遣使。妻子相逐去。行至百濟濱。日晩停宿。小兒忽亡不知所之。其夜大雪。天曉始求有虎連跡。臣乃帶刀■甲。尋至巖岫。拔刀曰。敬受絲綸、劬勞陸海、櫛風沐雨、藉草班荊者。爲愛其子令紹父業也。惟汝威神。愛子一也。今夜兒亡。追蹤覓至。不畏亡命。欲報故來。既而其虎進前開口欲噬。巴提便忽申左手。執其虎舌。右手刺殺。剥取皮還。
겨울 십일월에 가시와데노오미 하데비가 백제에서 돌아와 말하였다.
"신이 사자로 보내지매 아내와 자식이 서로 따라갔습니다. 가서 백제의 바닷가에 이르러 날이 저물어 묵었습니다. 어린아이가 홀연히 없어져 간 곳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그날 밤 큰 눈이 내렸습니다. 하늘이 밝아 비로소 찾으니 범이 이어 간 자취가 있었습니다.
신이 이에 칼을 차고 갑옷을 입고 찾아 바위 굴에 이르러 칼을 뽑고 말하였습니다. '공경히 임금의 명을 받아 뭍과 바다에 애쓰고 바람에 머리 빗고 비에 목욕하며 풀을 깔고 가시나무를 벌여 자는 것은, 그 자식을 사랑하여 아비의 업을 잇게 하려는 것이다. 오직 너 위엄 있는 신이여, 자식을 사랑함은 한가지다. 오늘 밤 아이가 없어져 자취를 좇아 찾아 이르렀다. 목숨을 잃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갚고자 왔다.'
이윽고 그 범이 앞으로 나아와 입을 벌려 물려 하였습니다. 하데비가 홀연히 왼손을 펴 그 범의 혀를 잡고 오른손으로 찔러 죽였습니다. 가죽을 벗겨 가지고 돌아왔습니다."
협주 1
濱。海濱也。
빈(濱)은 바닷가다.
40고려가 크게 어지럽다
是歳。高麗大亂被誅殺者衆。
이해에 고려가 크게 어지러워 죽임을 당한 이가 많았다.
협주 1
百濟本記云。十二月甲午。《廿》高麗國細群與麁群戰于宮門。伐鼓戰闘。細群敗不解兵。三日。盡捕誅細群子孫。戊戌。《廿四》狛鵠香岡上王薨也。
백제본기에 이르기를, 십이월 갑오일에 고려국의 세군(細群)과 추군(麁群)이 궁문에서 싸웠다. 북을 치며 싸웠다. 세군이 져서 사흘 동안 군사를 풀지 않았다. 세군의 자손을 다 잡아 베었다. 무술일에 고려의 고쿠코노오카노우헤 왕이 죽었다 한다.
41백제 사자가 돌아가다
七年春正月甲辰朔丙午。百濟使人中部奈率己連等罷歸。仍賜以良馬七十匹。船一十隻。
칠년 봄 정월 갑진 초하루 병오일에 백제 사자 중부 나솔 기련들이 돌아갔다. 이어 좋은 말 일흔 필과 배 열 척을 주었다.
42조를 바치다
夏六月壬申朔癸未。百濟遣中部奈率掠葉禮等獻調。
여름 유월 임신 초하루 계미일에 백제가 중부 나솔 약엽례(掠葉禮)들을 보내어 조를 바쳤다.
43좋은 말
秋七月。倭國今來郡言。於五年春。川原民直宮登樓騁望。乃見良駒。睨影高鳴。輕超母脊。就而買取。襲養兼年。及壯鴻驚龍■。別輩越群。服御随心。馳驟合度。超渡大内丘之壑十八丈焉。川原民直宮。桧隈邑人也。
가을 칠월에 야마토국 이마키군이 말하였다.
"오년 봄에 가와하라노타미노아타이 미야가 다락에 올라 멀리 바라보다가 좋은 망아지를 보았습니다. 그림자를 흘겨보며 높이 울고 가벼이 어미의 등을 뛰어넘었습니다. 나아가 사서 여러 해를 이어 길렀습니다. 자라매 기러기가 놀라고 용이 나는 듯하여 무리에서 빼어났습니다. 부리는 대로 마음을 따르고 달림이 법도에 맞았습니다. 오우치노오카의 골짜기 열여덟 길을 뛰어 건넜습니다."
가와하라노타미노아타이 미야는 히노쿠마 마을 사람이다.
협주 1
紀伊國漁者負贄草馬之子也。
기이국 어부가 지고 온 폐백 암말의 새끼다.
44고려가 크게 어지럽다
是歳。高麗大亂。凡闘死者二千餘。
이해에 고려가 크게 어지러워 무릇 싸워 죽은 이가 이천이 넘었다.
협주 1
百濟本記云。高麗以正月丙午。立中夫人子爲王。年八歳。狛王有三夫人。正夫人無子。中夫人生世子。其舅氏麁群也。小夫人生子。其舅氏細群也。及狛王疾篤。細群。麁群。各欲立其夫人之子。故細群死者二千餘人也。
백제본기에 이르기를, 고려가 정월 병오일에 중부인의 아들을 세워 왕으로 삼으니 나이 여덟이었다. 고려 왕에게 세 부인이 있었다. 정부인은 아들이 없고 중부인이 세자를 낳으니 그 외가가 추군이다. 소부인이 아들을 낳으니 그 외가가 세군이다. 고려 왕의 병이 깊어지매 세군과 추군이 각각 제 부인의 아들을 세우려 하였다. 그러므로 세군에서 죽은 이가 이천이 넘었다 한다.
45구원병을 청하다
八年夏四月。百濟遣前部徳率眞慕宣文。奈率哥麻等。乞救軍。仍貢下部東城子言代徳率■休麻那。
팔년 여름 사월에 백제가 전부 덕솔 진모선문(眞慕宣文)과 나솔 가마들을 보내어 구원병을 빌었다. 이어 하부 동성자언(東城子言)을 바쳐 덕솔 문휴마나(■休麻那)를 대신하게 하였다.
46구원병을 보내겠다 하다
春正月癸巳朔乙未。百濟使人前部徳率眞慕宣文等請罷。因詔曰。所乞救軍必當遣救。宜速報王。
봄 정월 계사 초하루 을미일에 백제 사자 전부 덕솔 진모선문들이 돌아가기를 청하였다. 이어 조를 내렸다. "빈 구원병은 반드시 마땅히 보내어 구하겠다. 마땅히 빨리 왕에게 알려라."
47마진성 싸움
九年夏四月壬戌朔甲子。百濟遣中部柾率掠葉禮等奏曰。徳率宣文等奉勅至臣蕃曰。所乞救兵應時遣送。祗承恩詔。喜慶無限。然馬津城之役虜謂之曰。由安羅國與日本府招來勸罰罸。以事准況。寔當相似。然三廻欲審其言遣召。而並不來。故深勞念。伏願。可畏天皇先爲勘當。躄停所乞救兵。待臣遣報。詔曰。式聞呈奏。爰覿所憂。日本府與安羅不救隣難。亦朕所疾也。又復密使于高麗者。不可信也。朕命即自遣之。不命何容可得。願王開襟緩帶。恬然自安。勿深疑懼。宜共任那依前勅。戮力倶防北敵。各守所封。朕當遣送若干人。充實安羅逃亡空地。
구년 여름 사월 임술 초하루 갑자일에 백제가 중부 나솔 약엽례들을 보내어 아뢰었다.
"덕솔 선문들이 칙명을 받들어 신의 나라에 이르러 말하기를 '빈 구원병을 때맞추어 보내겠다' 하셨습니다. 삼가 은혜로운 조서를 받들매 기쁨과 경사가 그지없습니다.
그러나 마진성(馬津城) 싸움에서 사로잡힌 이가 말하기를 '안라국과 일본부가 불러들여 치기를 권하였다' 하였습니다. 일로 미루어 견주어 보면 참으로 마땅히 서로 닮았습니다.
그러나 세 번을 그 말을 살피려고 불렀으나 아울러 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깊이 애써 생각합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두려운 천황께서 먼저 조사하시고, 빈 구원병을 잠시 멈추시어 신이 알리기를 기다리소서."
조를 내렸다.
"올린 아룀을 듣고 이에 근심하는 바를 보았다. 일본부와 안라가 이웃의 어려움을 구하지 않은 것 또한 짐이 미워하는 바다. 또 몰래 고려에 사자를 보냈다는 것은 믿을 수 없다. 짐이 명하면 곧 스스로 보내겠으나 명하지 않았으니 어찌 얻을 수 있겠는가.
바라건대 왕은 옷깃을 열고 띠를 늦추어 편안히 스스로 안심하고 깊이 의심하고 두려워하지 마라. 마땅히 임나와 함께 앞서의 칙명에 따라 힘을 모아 함께 북쪽 적을 막고 각각 봉한 바를 지켜라. 짐이 마땅히 얼마간의 사람을 보내어 안라의 도망하여 빈 땅을 채우겠다."
협주 2
正月辛丑。高麗卒衆圍馬津城。
정월 신축일에 고려가 군사를 거느려 마진성을 에워쌌다.
西蕃皆稱日本天皇爲可畏天皇。
서쪽 여러 나라가 다 일본 천황을 두려운 천황이라 일컫는다.
48함께 막으라
六月辛酉朔壬戌。遣使詔于百濟曰。徳率宣文取歸以後。當復何如。消憩何如。朕聞。汝國爲狛賊所害。宜共任那策勵。同謀如前防距。
유월 신유 초하루 임술일에 사자를 보내어 백제에 조를 내렸다. "덕솔 선문이 돌아간 뒤에 다시 어떠한가. 소식이 어떠한가. 짐이 듣건대 너희 나라가 고려 도적에게 해를 입었다 한다. 마땅히 임나와 함께 힘써 서로 권하고 앞서와 같이 함께 꾀하여 막아라."
49사자가 돌아가다
閏七月庚申朔辛未。百濟使人掠葉禮等罷歸。
윤칠월 경신 초하루 신미일에 백제 사자 약엽례들이 돌아갔다.
50성 쌓기를 돕다
冬十月。遣三百七十人於百濟助築城於得爾辛。
겨울 시월에 삼백칠십 사람을 백제에 보내어 득이신(得爾辛)에 성 쌓는 것을 돕게 하였다.
51구원병을 멈추다
夏六月乙酉朔辛卯。將徳久貴。固徳馬次文等請罷歸。因詔曰。延那斯。麻都。陰私遣使高麗者。朕當遣問虚實。所乞軍者依願停之。
여름 유월 을유 초하루 신묘일에 장덕 구귀(久貴)와 고덕 마차문(馬次文)들이 돌아가기를 청하였다. 이어 조를 내렸다. "연나사(延那斯)와 마도가 몰래 사사로이 고려에 사자를 보낸 일은 짐이 마땅히 사람을 보내어 헛됨과 참됨을 묻겠다. 빈 군사는 원하는 대로 멈춘다."
52화살 서른 벌을 주다
十一春二月辛巳朔庚寅。遣使詔于百濟曰。朕依將徳久貴。固徳馬進文等所上表意一一教示如視掌中。思欲具情。冀將盡抱。大市頭歸後。如常無異。今但欲審報辭。故遣使之。又復朕聞。奈率馬武是王之股肱臣也。納上傳下。甚協王心而爲王佐。若欲國家無事。長作官家永奉天皇。宜以馬武爲大使。遣朝而已。重詔曰。朕聞。北敵強暴。故賜矢卅具。庶防一處。
십일년 봄 이월 신사 초하루 경인일에 사자를 보내어 백제에 조를 내렸다.
"짐이 장덕 구귀와 고덕 마진문들이 올린 표의 뜻에 따라 하나하나 가르쳐 보이기를 손바닥 안을 보는 듯하겠다. 뜻을 갖추고자 하니 바라건대 품은 바를 다 펴라.
오이치노오비토가 돌아온 뒤로 늘 하던 대로 다름이 없다. 이제 다만 답하는 말을 살피고자 하여 사자를 보낸다.
또 짐이 듣건대 나솔 마무(馬武)는 왕의 팔다리 같은 신하로, 위를 받들고 아래에 전하여 왕의 마음에 몹시 맞아 왕의 도움이 된다 한다. 만약 나라에 일이 없고 길이 관가가 되어 길이 천황을 받들고자 한다면, 마땅히 마무를 대사로 삼아 조회하러 보낼 뿐이다."
거듭 조를 내렸다. "짐이 듣건대 북쪽 적이 강하고 사납다 한다. 그러므로 화살 서른 벌을 준다. 한 곳이라도 막기를 바란다."
협주 1
百濟本記云。三月十二日辛酉。日本使人阿比多率三舟來至都下。
백제본기에 이르기를, 삼월 십이일 신유일에 일본 사자 아히타가 배 셋을 거느리고 서울에 이르렀다 한다.
53고려 종을 바치다
夏四月庚辰朔。在百濟日本王人方欲還之。百濟王聖明謂王人曰。任那之事奉勅堅守。延那斯。麻都之事。問與不問唯從勅之。因獻高麗奴六口別贈王人奴一口。
여름 사월 경진 초하루에 백제에 있던 일본의 왕인(王人)이 바야흐로 돌아가려 하였다.
백제 왕 성명이 왕인에게 일렀다. "임나의 일은 칙명을 받들어 굳게 지키겠습니다. 연나사와 마도의 일은 묻든 묻지 않든 오직 칙명을 좇겠습니다."
이어 고려 종 여섯을 바치고 따로 왕인에게 종 하나를 주었다.
협주 2
百濟本記云。四月一日庚辰。日本阿比多還也。
백제본기에 이르기를, 사월 초하루 경진일에 일본 아히타가 돌아갔다 한다.
皆攻爾林所禽奴也。
다 이림을 쳐서 사로잡은 종이다.
54다시 고려 포로를 바치다
乙未。百濟遣中部奈率皮久斤。下部施徳灼干那等。獻狛虜十口。
을미일에 백제가 중부 나솔 피구근(皮久斤)과 하부 시덕 작간나(灼干那)들을 보내어 고려 포로 열을 바쳤다.
55보리 씨를 주다
十二年春三月。以麥種一千斛賜百濟王。
십이년 봄 삼월에 보리 씨 천 섬을 백제 왕에게 주었다.
56백제가 한성과 평양을 얻다
是歳。百濟聖明王親率衆及二國兵往伐高麗。獲漠城之地。又進軍討平壌。凡六郡之地。遂復故地。
이해에 백제 성명왕이 몸소 무리와 두 나라 군사를 거느리고 가서 고려를 쳐서 한성(漢城)의 땅을 얻었다. 또 군사를 나아가 평양(平壤)을 쳐서 무릇 여섯 고을의 땅을 마침내 옛 땅으로 되찾았다.
협주 1
二國謂新羅。任那也。
두 나라는 신라와 임나를 이른다.
57오에 황자가 죽다
十三年夏四月。箭田珠勝大兄皇子薨。
십삼년 여름 사월에 야타노타마카쓰노오에 황자가 죽었다.
58세 나라가 구원병을 청하다
五月戊辰朔乙亥。百濟。加羅。安羅。遣中部徳率木州今敦。河内部阿斯比多等。奏曰。高麗與新羅。通和并勢。謀滅臣國與任那。故謹求請救兵。先攻不意。軍之多少隨天皇勅。詔曰。今百濟王。安羅王。加羅王。與日本府臣等。倶遣使奏状聞訖。亦宜共任那。并心一力。猶尚若茲。必蒙上天擁護之福。亦頼可畏天皇之靈也。
오월 무진 초하루 을해일에 백제와 가라와 안라가 중부 덕솔 목주금돈(木州今敦)과 하내부 아사비다(阿斯比多)들을 보내어 아뢰었다.
"고려와 신라가 서로 화친하여 세력을 아울러, 신의 나라와 임나를 멸하려 꾀합니다. 그러므로 삼가 구원병을 구하여 청합니다. 먼저 뜻하지 않은 데를 치고자 합니다. 군사의 많고 적음은 천황의 칙명을 따르겠습니다."
조를 내렸다. "이제 백제 왕과 안라 왕과 가라 왕이 일본부의 신하들과 함께 사자를 보내어 아뢴 사정을 다 들었다. 또한 마땅히 임나와 함께 마음을 아우르고 힘을 하나로 하라. 오히려 이와 같이 하면 반드시 하늘이 감싸 주는 복을 입고 또한 두려운 천황의 신령에 힘입을 것이다."
59불교가 전해지다
冬十月。百濟聖明王遣西部姫氏達率怒■斯致契等。獻釋迦佛金銅像一躯。幡盖若干・經論若干卷。別表讃流通禮拜功徳云。是法於諸法中最爲殊勝。難解難入。周公。孔子尚不能知。此法能生無量無邊福徳果報。乃至成辨無上菩提。譬如人懷隨意寶。逐所須用。盡依情。此妙法寶亦復然。祈願依情無所乏。且夫遠自天竺。爰■三韓。依教奉持。無不尊敬。由是百濟王臣明謹遣陪臣怒■斯致契。奉傳帝國。流通畿内。果佛所記我法東流。是日。天皇聞已歡喜踊躍。詔使者云。朕從昔來未曾得聞如是微妙之法。然朕不自决。乃歴問群臣曰。西蕃獻佛相貌端嚴。全未曾看。可禮以不。蘇我大臣稻目宿禰奏曰。西蕃諸國一皆禮之。豐秋日本豈獨背也。物部大連尾輿。中臣連鎌子同奏曰。我國家之王天下者。恒以天地社稷百八十神。春夏秋冬祭拜爲事。方今改拜蕃神。恐致國神之怒。
겨울 시월에 백제 성명왕이 서부 희씨(姫氏) 달솔 노리사치계(怒■斯致契)들을 보내어 석가불 금동상 한 구와 번개(幡盖) 얼마와 경론(經論) 몇 권을 바쳤다.
따로 표를 올려 널리 펴고 예배하는 공덕을 기려 말하였다.
"이 법은 여러 법 가운데 가장 뛰어납니다. 알기 어렵고 들기 어려워 주공과 공자도 오히려 알지 못하였습니다. 이 법은 능히 헤아릴 수 없고 가없는 복덕과 과보를 내며, 마침내 위없는 깨달음을 이루어 갖추게 합니다.
비유하자면 사람이 뜻대로 되는 보배를 품어 쓰고자 하는 대로 좇아 다 뜻에 따르는 것과 같습니다. 이 묘한 법의 보배 또한 그러하여, 빌고 원하는 것이 뜻대로 되어 모자란 바가 없습니다.
또 무릇 멀리 천축에서 이에 삼한에 이르도록 가르침에 따라 받들어 지녀 높이 공경하지 않는 이가 없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백제 왕 신 명(明)이 삼가 배신 노리사치계를 보내어 제국(帝國)에 받들어 전하여 기내에 널리 펴게 합니다. 부처가 '내 법이 동쪽으로 흐르리라' 하고 적으신 바를 이루는 것입니다."
이날 천황이 듣고 기뻐 뛰며 사자에게 조를 내렸다. "짐이 예로부터 이제까지 아직 일찍이 이같이 미묘한 법을 듣지 못하였다. 그러나 짐이 스스로 결단하지 않겠다."
이에 여러 신하에게 두루 물었다. "서쪽 나라가 바친 부처의 모습이 단정하고 엄숙하여 도무지 일찍이 본 적이 없다. 예배할 만한가 아닌가."
소가노오오미 이나메노스쿠네가 아뢰었다. "서쪽 여러 나라가 하나같이 다 예배합니다. 도요아키쓰 일본이 어찌 홀로 등지겠습니까."
모노노베노오무라지 오코시와 나카토미노무라지 가마코가 함께 아뢰었다. "우리 나라의 천하에 왕 노릇 하는 이는 늘 하늘과 땅과 사직의 백여든 신을 봄여름가을겨울로 제사하고 절하는 것을 일로 삼았습니다. 이제 바야흐로 고쳐 오랑캐의 신에게 절하면 나라 신의 노여움을 부를까 두렵습니다."
협주 1
更名聖王。
다른 이름은 성왕(聖王)이다.
60불상을 물에 버리다
天皇曰。宜付情願人稻目宿禰。試令禮拜。大臣跪受而忻悦安置小墾田家。懃脩出世業爲因。淨捨向原家爲寺。於後國行疫氣。民致夭殘。久而愈多。不能治療。物部大連尾輿。中臣連鎌子同奏曰。昔日不須臣計致斯病死。今不遠而復。必當有慶。宜早投弃。懃求後福。天皇曰。依奏。有司乃以佛像流弃難波堀江。復縱火於伽藍。燒燼更無餘。於是天無風雲忽炎大殿。
천황이 말하였다. "마음으로 원하는 사람 이나메노스쿠네에게 붙여 시험 삼아 예배하게 하라."
대신이 꿇어앉아 받고 기뻐하여 오하리다의 집에 모셨다. 부지런히 세상을 벗어나는 업을 닦아 인연으로 삼고, 무카하라의 집을 깨끗이 버려 절로 삼았다.
그 뒤에 나라에 돌림병 기운이 돌아 백성이 일찍 죽음에 이르고 오래되어 더욱 많아져 다스릴 수 없었다.
모노노베노오무라지 오코시와 나카토미노무라지 가마코가 함께 아뢰었다. "지난날 신의 계책을 쓰지 않아 이런 병으로 죽음에 이르렀습니다. 이제 멀리 가지 않아 돌이키면 반드시 마땅히 경사가 있을 것입니다. 마땅히 일찍 던져 버리고 부지런히 뒷날의 복을 구하소서."
천황이 말하였다. "아뢴 대로 하라."
맡은 관청이 이에 불상을 나니와의 호리에에 흘려 버리고, 다시 절에 불을 놓아 태워 남은 것이 없게 하였다. 이에 하늘에 바람과 구름이 없는데 홀연히 큰 전각이 불탔다.
61백제가 한성과 평양을 버리다
是歳。百濟棄漢城與平壤。新羅因此入居漢城。今新羅之牛頭方。尼彌方也。
이해에 백제가 한성과 평양을 버렸다. 신라가 이로 인하여 한성에 들어가 살았다. 이제 신라의 우두방(牛頭方)과 이미방(尼彌方)이다.
협주 1
地名未詳。
땅 이름은 자세하지 않다.
62다시 군사를 빌다
十四年春正月甲子朔乙亥。百濟遣上部徳率科野次酒。杆率禮塞敦等、乞軍兵。
십사년 봄 정월 갑자 초하루 을해일에 백제가 상부 덕솔 과야차주(科野次酒)와 간솔 예새돈(禮塞敦)들을 보내어 군사를 빌었다.
63사자가 돌아가다
正月戊寅。百濟使人中部徳率木■今敦。河内部阿斯比多等罷歸。
정월 무인일에 백제 사자 중부 덕솔 목협금돈과 하내부 아사비다들이 돌아갔다.
64요시노데라의 녹나무 상
夏五月戊辰朔。河内國言。泉郡茅渟海中有梵音。震響若雷聲。光彩晃曜如日色。天皇心異之。遣溝邊直入海求訪。是月。溝邊直入海果見樟木浮海玲瓏。遂取而獻。天皇命畫工造佛像二躯。今吉野寺放光樟像也。
여름 오월 무진 초하루에 가와치국이 말하였다. "이즈미군 지누의 바다 가운데서 범음(梵音)이 나 우렛소리처럼 울리고, 빛깔이 밝게 빛나 햇빛 같습니다."
천황이 마음에 이상히 여겨 미조베노아타이를 보내어 바다에 들어가 찾게 하였다.
이달에 미조베노아타이가 바다에 들어가 과연 녹나무가 바다에 떠서 영롱한 것을 보았다. 마침내 가져다 바쳤다. 천황이 화공에게 명하여 불상 두 구를 만들게 하였다. 이제 요시노데라의 빛을 놓는 녹나무 상이다.
협주 1
此但曰直不書名字。蓋是傳寫誤失矣。
여기서 다만 아타이라 하고 이름을 적지 않았다. 아마 옮겨 베끼며 그르쳐 잃은 것이다.
65의박사와 역박사를 보내다
六月。遣内臣使於百濟。仍賜良馬二疋。同船二隻。弓五十張。箭五十具。勅云。所請軍者。隨王所須。別勅醫博士。易博士。暦博士等。宜依番上下。今上件色人正當相代年月。宜付還使相代。又卜書。暦本種種藥物可付送。
유월에 우치노오미를 백제에 사자로 보냈다. 이어 좋은 말 두 필과 같은 배 두 척과 활 오십 장과 화살 오십 벌을 주었다.
칙명하였다. "청한 군사는 왕이 쓰고자 하는 대로 하겠다."
따로 칙명하였다. "의박사(醫博士)와 점치는 박사(易博士)와 책력 박사(暦博士)들은 마땅히 차례에 따라 오르내리게 하라. 이제 위에 적은 부류의 사람들이 마침 바꿀 해와 달에 해당하니 마땅히 돌아가는 사자에 붙여 바꾸어 보내라. 또 점치는 책과 책력 책과 온갖 약물을 붙여 보낼 만하다."
협주 1
闕名。
이름이 빠졌다.
66후네노후비토
秋七月辛酉朔甲子。幸樟勾宮。蘇我大臣稻目宿禰奉勅遣王辰爾數録船賦。即以王辰爾爲船長。因賜姓爲船史。今般連之先也。
가을 칠월 신유 초하루 갑자일에 구스마가리노미야에 거둥하였다.
소가노오오미 이나메노스쿠네가 칙명을 받들어 왕진이(王辰爾)를 보내어 배에 매기는 세를 세어 적게 하였다. 곧 왕진이를 배의 어른으로 삼고, 이로 인하여 성을 주어 후네노후비토라 하였다. 이제 후네노무라지의 조상이다.
67신라와 고려가 함께 꾀하다
八月辛卯朔丁酉。百濟遺上部奈率科野新羅。下部固徳■休帶山等上表曰。去年臣等同議、遣内臣徳率次酒。任那大夫等。奏海表諸彌移居之事。伏待恩詔如春草之仰甘雨也。今年忽聞。新羅與狛國通謀云。百濟與任那頻詣日本。意謂是乞軍兵伐我國歟。事若實者。國之敗亡可企踵而待。庶先日本兵未發之間。伐取安羅絶日本路。其謀若是。臣等聞茲深懷危即遣疾使輕舟。馳表以聞。伏願。天慈速遣前軍後軍。相續來救。逮于秋節以固海表彌移居也。若遲晩者噬臍無及矣。所遣軍衆來到臣國。衣糧之費。臣當充給。來到任那亦復如是。若不堪給。臣必助充令無乏少。別的臣敬受天勅。來撫臣蕃。夙夜乾乾勤修庶務。由是海表諸蕃皆稱其善。謂當萬歳肅清海表。不幸云亡。深用追痛。今任那之事誰可修治。伏願天慈速遣其代。以鎭任那。又復海表諸國、甚乏弓馬。自古迄今。受之天皇。以禦強敵。伏願天慈多■弓馬。
팔월 신묘 초하루 정유일에 백제가 상부 나솔 과야신라(科野新羅)와 하부 고덕 문휴대산(■休帶山)들을 보내어 표를 올렸다.
"지난해에 신들이 함께 의논하여 우치노오미 덕솔 차주와 임나의 대부들을 보내어 바다 밖 여러 미야케의 일을 아뢰었습니다. 엎드려 은혜로운 조서를 기다리기를 봄풀이 단비를 우러르듯 하였습니다.
올해 홀연히 들으니 신라와 고려가 서로 꾀하여 이르기를 '백제와 임나가 자주 일본에 나아가니, 뜻은 아마 군사를 빌려 우리 나라를 치려는 것인가. 일이 만약 사실이라면 나라가 무너져 망함을 발돋움하고 기다릴 만하다. 바라건대 일본 군사가 아직 떠나지 않은 사이에 안라를 쳐서 빼앗아 일본 길을 끊자' 하였다 합니다.
그 꾀가 이와 같으니 신들이 이를 듣고 깊이 위태로움을 품어, 곧 빠른 사자에 가벼운 배를 태워 표를 달려 보내어 아룁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하늘의 자애로 빨리 앞 군사와 뒤 군사를 보내시어 잇달아 와서 구하시고, 가을철에 미쳐 바다 밖 여러 미야케를 굳게 하소서. 만약 늦으면 배꼽을 물어도 미치지 못합니다.
보내시는 군사가 신의 나라에 이르면 옷과 양식의 비용은 신이 마땅히 채워 드리겠습니다. 임나에 이르러도 또한 그러합니다. 만약 다 대지 못하면 신이 반드시 도와 채워 모자람이 없게 하겠습니다.
따로 이쿠하노오미가 공경히 천황의 칙명을 받아 신의 나라를 어루만지러 와서, 이른 새벽부터 밤까지 부지런히 여러 일을 닦았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바다 밖 여러 나라가 다 그 착함을 일컬어 마땅히 만세토록 바다 밖을 맑게 하리라 하였습니다. 불행히 죽었으니 깊이 애통합니다. 이제 임나의 일을 누가 닦아 다스리겠습니까. 엎드려 바라건대 하늘의 자애로 빨리 그를 대신할 이를 보내시어 임나를 진정하게 하소서.
또 바다 밖 여러 나라가 활과 말이 몹시 모자랍니다. 예로부터 이제까지 천황께 받아 강한 적을 막았습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하늘의 자애로 활과 말을 많이 주소서."
68여창이 고려와 싸우다
冬十月庚寅朔己酉。百濟王子餘昌悉發國中兵。向高麗國。築百合野塞眠食軍士。是夕觀覽。鉅野墳腴。平原濔■。人跡罕見。犬聲蔑聞。俄而脩忽之際。聞鼓吹之聲。餘昌乃大驚打鼓相應。通夜固守。凌晨起見。曠野之中覆如青山。旌旗充滿。會明有着頚鎧者一騎挿鐃者二騎。珥豹尾者二騎并五騎。連轡到來問曰。小兒等言。於吾野中客人有在。何得不迎禮也。今欲早知。與吾可以禮問答者姓名年位。餘昌對曰。姓是同姓。位是杆率。年廿九矣。百濟反問。亦如前法而對答焉。遂乃立標而合戰。於是。百濟以鉾。刺堕高麗勇士於馬斬首。仍刺擧頭於鉾末。還入示衆。高麗軍將憤怒益甚。是時百濟歡叫之聲可裂天地。復其偏將打鼓疾闘。追却高麗王於東聖山之上。
겨울 시월 경인 초하루 기유일에 백제 왕자 여창(餘昌)이 나라 안 군사를 다 내어 고려국으로 향하였다. 백합야(百合野)에 성채를 쌓고 군사를 자게 하고 먹였다.
이 저녁에 둘러보니 큰 들이 기름지고 벌판이 아득한데 사람 자취가 드물고 개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이윽고 갑자기 북과 피리 소리가 들렸다. 여창이 이에 크게 놀라 북을 쳐 서로 응하고 밤새도록 굳게 지켰다.
새벽에 일어나 보니 넓은 들 가운데가 덮여 푸른 산 같고 깃발이 가득하였다.
날이 밝으매 목가리개를 한 이 한 기와 징을 꽂은 이 두 기와 표범 꼬리를 귀에 단 두 기 아울러 다섯 기가 고삐를 나란히 하고 이르러 물었다. "어린것들이 말하기를 '우리 들 가운데 손님이 있다' 하였다. 어찌 맞아 예를 갖추지 않는가. 이제 일찍 알고자 한다. 우리와 예로 묻고 답할 이의 성과 이름과 나이와 자리는 무엇인가."
여창이 대답하였다. "성은 곧 같은 성이요 자리는 간솔이요 나이는 스물아홉이다."
백제가 되물으니 또한 앞의 법과 같이 대답하였다.
마침내 표를 세우고 맞붙어 싸웠다. 이에 백제가 창으로 고려의 용사를 말에서 찔러 떨어뜨리고 목을 베었다. 이어 그 머리를 창끝에 꿰어 들고 돌아와 무리에게 보였다. 고려의 군장이 분노가 더욱 심하였다.
이때 백제가 기뻐 외치는 소리가 하늘과 땅을 찢을 만하였다. 다시 그 편장이 북을 쳐 빠르게 싸워 고려 왕을 동성산(東聖山) 위로 쫓아 물리쳤다.
협주 2
明王子。威徳王也。
명왕의 아들이니 위덕왕이다.
鐃字未詳。
요(鐃) 자는 자세하지 않다.
69황태자를 세우다
十五年春正月戊子朔甲午。立皇子渟中倉太珠敷尊爲皇太子。
십오년 봄 정월 무자 초하루 갑오일에 황자 누나쿠라노후토타마시키노미코토를 세워 황태자로 삼았다.
70군사 천을 보내다
丙申。百濟遣中部木州施徳文次。前部施徳曰佐分屋等於筑紫。諮内臣佐伯連等曰。徳率次酒。杆率塞敦等以去年閏月四日到來云。臣等以今年正月到。如此■而未審。來不也。又軍數幾何。願聞若干預治營壁。別諮。方奉聞可畏天皇之詔。來詣筑紫看送賜軍。聞之歡喜無能比者。此年之役甚危於前。願遣賜軍使逮正月。於是内臣奉勅而答報曰。即令遣助軍數一千。馬一百疋。船四十隻。
병신일에 백제가 중부 목주 시덕 문차(文次)와 전부 시덕 왈좌분옥(曰佐分屋)들을 쓰쿠시에 보내어 우치노오미 사에키노무라지들에게 여쭈었다.
"덕솔 차주와 간솔 새돈들이 지난해 윤달 나흘에 와서 이르기를 '신들이 올해 정월에 이르겠다' 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말하였으나 오는지 아닌지 아직 살피지 못하였습니다. 또 군사 수는 얼마입니까. 바라건대 얼마쯤인지 들어 미리 진영과 성벽을 다스리고자 합니다."
따로 여쭈었다. "바야흐로 두려운 천황의 조서를 받들어 듣고, 쓰쿠시에 나아와 보내 주시는 군사를 보게 되었습니다. 이를 듣고 기뻐함이 견줄 데가 없습니다. 올해의 싸움이 앞서보다 몹시 위태롭습니다. 바라건대 보내 주시는 군사가 정월에 미치게 하소서."
이에 우치노오미가 칙명을 받들어 답하여 알렸다. "곧 도울 군사 천 명과 말 백 필과 배 마흔 척을 보내게 하겠다."
협주 1
臣等者。謂内臣也。
신들이라 한 것은 우치노오미를 이른다.
71여러 박사를 바꾸어 보내다
二月。百濟遣下部杆率將軍三貴。上部奈率物部烏等乞救兵。仍貢徳率東城子莫古。代前番奈率東城子言。五經博士王柳貴代固徳馬丁安。僧曇慧等九人代僧道深等七人。別奉勅貢易博士施徳王道良。暦博士固徳王保孫。醫博士奈率王有悛陀。採藥師施徳潘量豊。固徳丁有陀。樂人施徳三斤。季徳己麻次。季徳進奴。對徳進陀。皆依請代之。
이월에 백제가 하부 간솔 장군 삼귀(三貴)와 상부 나솔 물부오(物部烏)들을 보내어 구원병을 빌었다.
이어 덕솔 동성자막고(東城子莫古)를 바쳐 앞 차례의 나솔 동성자언을 대신하게 하고, 오경박사 왕류귀(王柳貴)로 고덕 마정안(馬丁安)을 대신하게 하고, 승려 담혜(曇慧)들 아홉 사람으로 승려 도심(道深)들 일곱 사람을 대신하게 하였다.
따로 칙명을 받들어 점치는 박사(易博士) 시덕 왕도량(王道良)과 책력 박사(暦博士) 고덕 왕보손(王保孫)과 의박사(醫博士) 나솔 왕유릉타(王有悛陀)와 채약사(採藥師) 시덕 반량풍(潘量豊)과 고덕 정유타(丁有陀)와 악인(樂人) 시덕 삼근(三斤)과 계덕 기마차(己麻次)와 계덕 진노(進奴)와 대덕 진타(進陀)를 바쳤다. 다 청한 대로 대신하게 하였다.
72사자가 돌아가다
三月丁亥朔。百濟使人中部木州施徳文次等罷歸。
삼월 정해 초하루에 백제 사자 중부 목주 시덕 문차들이 돌아갔다.
73우치노오미가 백제로 가다
夏五月丙戌朔戊子。内臣率舟師詣于百濟。
여름 오월 병술 초하루 무자일에 우치노오미가 수군을 거느리고 백제에 나아갔다.
74함산성을 치다
冬十二月。百濟遣下部杆率■斯干奴上表曰。百濟王臣明及在安羅諸倭臣等。任那諸國旱岐等奏。以斯羅無道。不畏天皇與狛同心欲殘滅海北彌移居。臣等共議遣有至臣等仰乞軍士。征伐斯羅。而天皇遣有至臣帥軍以六月至來。臣等深用歡喜。以十二月九日遣攻斯羅。臣先遣東方領物部莫哥武連。領其方軍士攻函山城。有至臣所將來民竹斯物部莫奇委沙奇能射火箭。蒙天皇威靈。以月九日西時焚城拔之。故遣單使馳船奏聞。別奏。若但斯羅者。有至臣所將軍士亦可足矣。今狛與斯羅。同心戮力。難可成功。伏願速遣竹斯嶋上諸軍士。來助臣國。又助任那。則事可成。又奏。臣別遣軍士萬人助任那。并以奏聞。今事方急。單船遣奏。但奉好錦二疋。■■一領。斧三百口。及所獲城民男二。女五。輕薄追用悚懼。餘昌謀伐新羅。耆老諌曰。天未與。懼禍及。餘昌曰。老矣何怯也。我事大國。
겨울 십이월에 백제가 하부 간솔 문사간노(■斯干奴)를 보내어 표를 올렸다.
"백제 왕 신 명과 안라에 있는 여러 왜신들과 임나 여러 나라의 한기들이 아룁니다.
사라(斯羅)가 도가 없어 천황을 두려워하지 않고 고려와 마음을 같이하여 바다 북쪽 여러 미야케를 무너뜨려 멸하려 합니다. 신들이 함께 의논하여 아리시노오미들을 보내어 우러러 군사를 빌어 사라를 치기를 청하였습니다.
그런데 천황이 아리시노오미를 보내시어 군사를 거느리고 유월에 이르렀습니다. 신들이 깊이 기뻐하였습니다. 십이월 아흐레에 보내어 사라를 쳤습니다.
신이 먼저 동방의 영(領) 모노노베노마카무노무라지를 보내어 그 방면의 군사를 거느리고 함산성(函山城)을 치게 하였습니다. 아리시노오미가 거느리고 온 백성 쓰쿠시의 모노노베노마카이사카노키미가 불화살을 쏘았습니다. 천황의 위엄과 신령을 입어 아흐레 서시(西時)에 성을 불살라 함락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홑사자를 보내어 배를 달려 아뢰옵니다.
따로 아룁니다. 만약 사라뿐이라면 아리시노오미가 거느린 군사로 또한 넉넉할 것입니다. 이제 고려와 사라가 마음을 같이하고 힘을 모으니 공을 이루기 어렵습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빨리 쓰쿠시섬 위의 여러 군사를 보내시어 와서 신의 나라를 돕고 또 임나를 도우면 곧 일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또 아룁니다. 신이 따로 군사 만 사람을 보내어 임나를 돕겠습니다. 아울러 아뢰옵니다. 이제 일이 바야흐로 급하여 홑배로 보내어 아룁니다. 다만 좋은 비단 두 필과 무늬 자리 한 벌과 도끼 삼백 자루와 얻은 성의 백성 사내 둘과 계집 다섯을 받들어 올립니다. 가볍고 엷어 좇아 쓰기에 두렵습니다."
여창이 신라 칠 일을 꾀하매 늙은 이들이 간하였다. "하늘이 아직 함께하지 않으니 화가 미칠까 두렵습니다."
여창이 말하였다. "늙었구나. 어찌 겁내는가. 우리가 큰 나라를 섬기니
75성명왕이 죽다
有何懼也。遂入新羅國築久陀牟羅塞。其父明王憂慮。餘昌長苦行陣久廢眠食。父慈多闕。子孝希成。乃自徃迎慰勞。新羅聞明王親來。悉發國中兵斷道撃破。是時新羅謂佐知村飼馬奴苦都曰。苦都賎奴也。明王名主也。今使賎奴殺名主。冀傅後世莫忘於口。已而苦都乃獲明王。再拜曰。請斬王首。明王對曰。王頭不合受奴手。苦都曰。我國法違背所盟。雖曰國王當受奴手。明王仰天大憩涕泣。許諾曰。寡人毎念。常痛入骨髄。願計不可苟活。乃延首受斬。苦都斬首而殺。堀坎而埋。餘昌遂見圍繞。欲出不得。士卒遑駭不知所圖。有能射人筑紫國造。進而彎弓占擬。射落新羅騎卒最勇壯者。發箭之利通所乘鞍前後橋。及其被甲領會也。
무엇을 두려워하겠는가."
마침내 신라국에 들어가 구타모라(久陀牟羅) 성채를 쌓았다.
그 아비 명왕이 근심하였다. 여창이 오래 진 치는 데 괴로워하고 오래 자고 먹기를 폐하였다. 아비의 사랑에 모자란 것이 많고 자식의 효도가 이루어지기 드물다 하여, 이에 스스로 가서 맞아 위로하였다.
신라가 명왕이 몸소 온다는 말을 듣고 나라 안 군사를 다 내어 길을 끊고 쳐서 깨뜨렸다.
이때 신라가 좌지촌(佐知村)의 말 먹이는 종 고도(苦都)에게 일렀다. "고도는 천한 종이요 명왕은 이름난 임금이다. 이제 천한 종으로 이름난 임금을 죽이게 하여, 뒷세상에 전해져 입에서 잊히지 않기를 바란다."
이윽고 고도가 이에 명왕을 사로잡고 두 번 절하며 말하였다. "청컨대 왕의 머리를 베겠습니다."
명왕이 대답하였다. "왕의 머리는 종의 손에 받는 것이 마땅하지 않다."
고도가 말하였다. "우리 나라 법에 맹세한 바를 어기면 비록 나라의 왕이라 하여도 마땅히 종의 손에 받아야 합니다."
명왕이 하늘을 우러러 크게 탄식하고 눈물 흘리며 허락하여 말하였다. "과인이 생각할 때마다 늘 아픔이 골수에 들었다. 헤아려 보건대 구차히 살 수 없다." 이에 목을 늘여 베임을 받았다.
고도가 목을 베어 죽이고 구덩이를 파 묻었다.
여창이 마침내 에워싸여 나가려 하여도 나갈 수 없었다. 군사가 두려워 놀라 꾀할 바를 알지 못하였다.
활 잘 쏘는 이가 있어 쓰쿠시노쿠니노미야쓰코라 하였다. 나아가 활을 당겨 겨누어 신라 기병 가운데 가장 날래고 굳센 이를 쏘아 떨어뜨렸다. 쏜 화살의 날카로움이 탄 안장의 앞뒤 가지를 뚫고 그 입은 갑옷의 목까지 미쳤다.
협주 3
更名谷智。
다른 이름은 곡지(谷智)다.
一本云。明王乘踞胡床。解授佩刀於谷知令斬。
어떤 판본에는 명왕이 걸상에 걸터앉아 찬 칼을 풀어 곡지에게 주며 베게 하였다 한다.
一本云。新羅留理明王頭骨。而以禮送餘骨於百濟。今新羅王埋明王骨於北廳階下。名此廳曰都堂。
어떤 판본에는 신라가 명왕의 머리뼈를 남겨 두고 나머지 뼈를 예로 백제에 보냈다 한다. 이제 신라 왕이 명왕의 뼈를 북청(北廳) 섬돌 아래 묻고 이 청을 이름하여 도당(都堂)이라 한다.
76구라지노키미
復續發箭如雨。彌■不懈。射却圍軍。由是餘昌及諸將等得從間道逃歸。餘昌讃國造射却圍軍。尊而名曰鞍橋君。於是新羅將等具知百済疲盡。遂欲謀滅無餘。有一將云。不可。日本天皇以任那事。屡責吾國。况復謀滅百濟官家。必招後患。故止之。
다시 잇달아 화살을 비처럼 쏘아 더욱 게을리하지 않아 에워싼 군사를 쏘아 물리쳤다. 이로 말미암아 여창과 여러 장수들이 사잇길로 도망해 돌아갈 수 있었다.
여창이 구니노미야쓰코가 에워싼 군사를 쏘아 물리친 것을 기려 높여 이름하여 구라지노키미라 하였다.
이에 신라의 장수들이 백제가 지치고 다한 것을 다 알고 마침내 멸하여 남김이 없게 하려 하였다.
한 장수가 있어 말하였다. "안 됩니다. 일본 천황이 임나의 일로 여러 번 우리 나라를 나무랐습니다. 하물며 다시 백제의 관가를 멸하기를 꾀하면 반드시 뒷근심을 부를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쳤다.
협주 1
鞍橋。此云矩羅賦。
안교(鞍橋)는 구라지라 읽는다.
77왕자 혜가 오다
十六年春二月。百濟王子餘昌遣王子惠奏曰。聖明王爲賊見殺。天皇聞而傷恨。廼遣使者迎津慰問。於是許勢臣問王子惠曰。爲當欲留此間。爲當欲向本郷。惠答曰。依憑天皇之徳。冀報考王之讎。若垂哀憐多賜兵革。雪垢復讎。臣之願也。臣之去留敢不唯命是從。俄而蘇我臣問訊曰。聖王妙達天道地理。名流四表八方。意謂。永保安寧。統領海西蕃國。千年萬歳奉事天皇。豈圖一旦眇然昇遐。與水無歸即安玄室。何痛之酷。何悲之哀。凡在含情誰不傷悼。當復何咎致茲禍也。今復何術用鎭國家。惠報答之曰。臣禀性愚蒙不知大計。何况禍福所倚。國家存亡者乎。蘇我卿曰。昔在天皇大泊瀬之世。汝國爲高麗所逼。危甚累卵。於是天皇命神祇伯。敬受策於神祇。祝者廼託神語報曰。屈請建邦之神。徃救將亡之主。必當國家謐靖。人物乂安。由是請神徃救。所以社稷安寧。原夫建邦神者。天地株判之代。草木言語之時。自天降來造立國家之神也。頃聞。汝國輟而不祀。方今悛悔前過。脩理神宮奉祭神靈國可昌盛。汝當莫忘。
십육년 봄 이월에 백제 왕자 여창이 왕자 혜(惠)를 보내어 아뢰었다. "성명왕이 도적에게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천황이 듣고 아파하며 한하였다. 이에 사자를 보내어 나루에서 맞아 위문하였다.
이에 고세노오미가 왕자 혜에게 물었다. "여기 머물고자 하는가, 본 고향으로 향하고자 하는가."
혜가 답하였다. "천황의 덕에 힘입어 돌아가신 아버지 왕의 원수를 갚기를 바랍니다. 만약 가엾이 여기심을 드리워 무기를 많이 주시어 부끄러움을 씻고 원수를 갚게 하시는 것이 신의 바람입니다. 신이 가고 머무는 것은 감히 오직 명을 좇을 뿐입니다."
이윽고 소가노오미가 안부를 물으며 말하였다.
"성왕이 하늘의 도와 땅의 이치에 묘하게 통달하여 이름이 사방 여덟 방위에 흘렀습니다. 뜻으로 생각하기를 길이 편안함을 지키고 바다 서쪽 번국을 거느려 천년만년 천황을 받들어 섬기리라 하였습니다. 어찌 하루아침에 아득히 세상을 떠나 물과 함께 돌아옴이 없이 곧 그윽한 방에 편안히 계실 줄 헤아렸겠습니까. 어찌 아픔이 이토록 모질고 슬픔이 이토록 애달픕니까. 무릇 정을 지닌 이라면 누가 마음 아파하지 않겠습니까. 마땅히 다시 무슨 허물이 이 화를 부른 것입니까. 이제 다시 무슨 꾀로 나라를 진정하겠습니까."
혜가 답하였다. "신은 타고난 성품이 어리석고 어두워 큰 계책을 알지 못합니다. 하물며 화와 복이 기대는 바와 나라의 있고 없음이겠습니까."
소가경이 말하였다.
"옛적에 천황 오하쓰세 때에 너희 나라가 고려에게 다그침을 받아 위태로움이 포갠 알보다 심하였다. 이에 천황이 신들 맡은 벼슬아치에게 명하여 공경히 신들에게 계책을 받게 하였다. 축원하는 이가 이에 신의 말에 실려 답하기를 '건방(建邦)의 신을 굽혀 청하여 망하려는 임금을 가서 구하게 하면 반드시 마땅히 나라가 고요해지고 사람과 물건이 편안하리라' 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신을 청하여 가서 구하매 사직이 편안해졌다.
무릇 건방의 신이란 하늘과 땅이 갈리던 때, 풀과 나무가 말하던 때에 하늘에서 내려와 나라를 세운 신이다.
요사이 들으니 너희 나라가 그만두고 제사하지 않는다 한다. 바야흐로 이제 앞 허물을 뉘우쳐 고쳐 신궁을 닦아 다스리고 신령에게 받들어 제사하면 나라가 창성할 만하다. 너는 마땅히 잊지 마라."
협주 2
王子惠者。威徳王之弟也。
왕자 혜는 위덕왕의 아우다.
十五年爲新羅所殺。故今奏之。
십오년에 신라에게 죽임을 당하였다. 그러므로 이제 아뢴 것이다.
78시라이의 둔창
秋七月己卯朔壬午。遣蘇我大臣稻目宿禰。穗積磐弓臣等。使于吉備五郡置白猪屯倉。
가을 칠월 기묘 초하루 임오일에 소가노오오미 이나메노스쿠네와 호즈미노이와유미노오미들을 보내어 기비의 다섯 고을에 사자로 가서 시라이의 둔창을 두었다.
79여창이 출가하려 하다
八月。百濟餘昌謂諸臣等曰。少子今願奉爲考王出家脩道。諸臣百姓報言。今君王欲得出家修道者。且奉教也。嗟夫前慮不定。後有大患。誰之過歟。夫百濟國者。高麗。新羅之所爭欲滅。自始開國迄于是歳。今此國宗將授何國。要須道理分明應教。縱使能用耆老之言。豈至於此。請悛前過無勞出俗。如欲果願。須度國民。餘昌對曰。諾。即就圖於臣下。臣下遂用相議。爲度百人。多造幡盖種種攻徳云云。
팔월에 백제 여창이 여러 신하에게 일렀다. "어린 내가 이제 돌아가신 아버지 왕을 위하여 출가하여 도를 닦고자 한다."
여러 신하와 백성이 답하였다.
"이제 임금께서 출가하여 도 닦기를 얻고자 하시니 또한 가르침을 받들겠습니다. 아아, 앞서의 헤아림이 정해지지 않아 뒤에 큰 근심이 있으니 누구의 허물입니까.
무릇 백제국은 고려와 신라가 다투어 멸하려 하는 바입니다. 처음 나라를 연 때부터 올해에 이르렀습니다. 이제 이 나라의 마루를 장차 어느 나라에 주려 하십니까. 모름지기 도리를 분명히 하여 마땅히 가르쳐 주셔야 합니다. 설령 능히 늙은이의 말을 썼더라면 어찌 이에 이르렀겠습니까. 청컨대 앞 허물을 뉘우치시고 속세를 떠나기를 애쓰지 마소서. 만약 소원을 이루고자 하시면 모름지기 나라 백성을 승려로 만드소서."
여창이 대답하였다. "좋다."
곧 신하에게 나아가 꾀하였다. 신하가 마침내 서로 의논하여 백 사람을 승려로 만들고, 번(幡)과 개(盖)와 온갖 공덕을 많이 지었다고 한다.
80왕자 혜가 돌아가다
十七年春正月。百濟王子惠請罷。仍賜兵仗。良馬甚多。亦頻賞祿。衆所欽歎。於是遣阿倍臣。佐伯連。播磨直。率筑紫國舟師。衛送達國。別遣筑紫火君率勇士一千衛送彌■。因令守津路要害之地焉。
십칠년 봄 정월에 백제 왕자 혜가 돌아가기를 청하였다. 이어 병장기와 좋은 말을 매우 많이 주고 또 자주 상과 녹을 내리니 여럿이 우러러 감탄하였다.
이에 아베노오미와 사에키노무라지와 하리마노아타이를 보내어 쓰쿠시국의 배와 군사를 거느려 나라에 이르도록 호위하여 보내게 하였다. 따로 쓰쿠시노히노키미를 보내어 날랜 군사 천을 거느리고 미테까지 호위하여 보내고, 이어 나룻길 요해의 땅을 지키게 하였다.
협주 2
百濟本記云。筑紫君兒。火中君弟。
백제본기에 이르기를 쓰쿠시노키미의 아들이요 히노나카노키미의 아우라 한다.
彌□津名
미테는 나루 이름이다.
81고지마의 둔창
秋七月甲戌朔己卯。遣蘇我大臣稻目宿禰等於備前兒嶋郡置屯倉。以葛城山田直瑞子爲田令。
가을 칠월 갑술 초하루 기묘일에 소가노오오미 이나메노스쿠네들을 비젠 고지마군에 보내어 둔창을 두었다. 가즈라키노야마다노아타이 미즈코를 다즈카히로 삼았다.
협주 1
田令。此云陀豆歌毘。
전령(田令)은 다즈카히라 읽는다.
82가라히토의 둔창
冬十月。遣蘇我大臣稻目宿禰等。於倭國高市郡置韓人大身狹屯倉。高麗人小身狹屯倉。紀國置海部屯倉。
겨울 시월에 소가노오오미 이나메노스쿠네들을 야마토국 다케치군에 보내어 가라히토(韓人)의 오무사 둔창과 고려 사람의 오무사 둔창을 두고, 기이국에 아마베의 둔창을 두었다.
협주 2
言韓人者。百濟也。
가라히토라 한 것은 백제다.
一本云。以處處韓人爲大身狹屯倉田部。高麗人爲小身狹屯倉田部。是即以韓人。高麗人爲田部。故因爲屯倉之號也。
어떤 판본에는 곳곳의 가라히토로 오무사 둔창의 다베를 삼고 고려 사람으로 오무사 둔창의 다베를 삼았다 한다. 이는 곧 가라히토와 고려 사람으로 다베를 삼았으므로 이로 인하여 둔창의 이름으로 삼은 것이다.
83위덕왕이 즉위하다
十八年春三月庚子朔。百濟王子餘昌嗣立。是爲威徳王。
십팔년 봄 삼월 경자 초하루에 백제 왕자 여창이 자리를 이어 즉위하였다. 이가 위덕왕(威徳王)이다.
84신라 사자가 말하다
廿一年秋九月。新羅遣彌至己知奈末獻調賦。饗賜邁常。奈末喜歡而罷曰。調賦使者國家之所貴重。而私議之所輕賎。行李者百姓之所懸命。而選用之所卑下。王政之弊。未必不由此也。請差良家子爲使者。不可以卑賎爲使。
이십일년 가을 구월에 신라가 미지기지나말(彌至己知奈末)을 보내어 조와 부를 바쳤다. 잔치를 베풀어 주기를 늘 하던 것보다 낫게 하였다.
나말이 기뻐하며 돌아가면서 말하였다. "조와 부를 바치는 사자는 나라가 귀하고 무겁게 여기는 바인데, 사사로운 의논에서는 가볍고 천하게 여기는 바입니다. 사신은 백성의 목숨이 걸린 바인데 뽑아 쓰는 데서는 낮게 여기는 바입니다. 왕의 정사의 폐단이 반드시 이로 말미암지 않는다 할 수 없습니다. 청컨대 좋은 집안의 자제를 가려 사자로 삼고 낮고 천한 이를 사자로 삼지 마소서."
85신라 사자가 한하다
廿二年。新羅遣久禮叱及伐干貢調賦。司賓饗遇禮數減常。及伐干忿恨而罷。
이십이년에 신라가 구례질급벌간(久禮叱及伐干)을 보내어 조와 부를 바쳤다. 손님 맡은 관청이 대접하는 예의 격식을 늘 하던 것보다 줄였다. 급벌간이 분히 여겨 한하며 돌아갔다.
86신라가 성을 쌓다
是歳。復遣奴■。大舎獻前調賦。於難波大郡序諸蕃。掌客額田部連。葛城直等使列于百濟之下而引導。大舍怒還不入館舍。乘船歸至穴門。於是。脩治穴門舘。大舍問曰。爲誰客造。工匠河内馬飼首押勝欺紿曰。遣問西方無禮使者之所停宿處也。大舍還國告其所言。故新羅築城於阿羅波斯山。以備日本。
이해에 다시 노저(奴■) 대사(大舎)를 보내어 앞서의 조와 부를 바쳤다. 나니와의 오코리에서 여러 나라의 차례를 매길 때, 손님 맡은 누카타베노무라지와 가즈라키노아타이들이 백제 아래에 벌여 세우고 이끌었다.
대사가 노하여 돌아가 객관에 들지 않고 배를 타고 아나토에 이르렀다.
이에 아나토의 객관을 고쳐 짓고 있었다. 대사가 물었다. "누구 손님을 위하여 짓는가."
장인 가와치노우마카이노오비토 오시카쓰가 속여 말하였다. "서쪽에 무례한 사자를 물으러 보내는 이가 머물러 묵을 곳이다."
대사가 나라에 돌아가 그 말한 바를 알렸다. 그러므로 신라가 아라파사산(阿羅波斯山)에 성을 쌓아 일본에 대비하였다.
87신라가 임나를 멸하다
廿三年春正月。新羅打滅任那官家。
이십삼년 봄 정월에 신라가 임나의 관가를 쳐서 멸하였다.
협주 1
一本云。廿一年任那滅焉。忽言任那。別言加羅國。安羅國。斯二岐國。多羅國。卒麻國。古嗟國。子他國。散半下國。乞□國。稔禮國。合十國。
어떤 판본에는 이십일년에 임나가 멸하였다 한다. 통틀어 임나라 하고 따로 말하면 가라국·안라국·사이기국·다라국·졸마국·고차국·자타국·산반하국·걸손국·임례국 아울러 열 나라다.
88신라를 치라는 조서
夏六月。詔曰。新羅西羌小醜。逆天無状。違我恩義。破我官家毒害我黎民。誅殘我郡縣。我氣長足姫尊靈聖聰明。周行天下。劬勞群庶。饗育萬民。哀新羅所窮見歸。全新羅王將戮之首授新羅要害之地。崇新羅非次之榮。我氣長足姫尊於新羅何薄。我百姓於新羅何怨。而新羅長戟強弩。凌蹙任那。距牙鈎爪殘虐含靈。刳肝■趾不厭其快。曝骨焚屍不謂其酷。任那族姓百姓以還。窮刀極爼。既屠且膾。豈有率土之賓。謂爲王臣。乍食人之禾飲人之水孰忍聞此而不悼心。况乎太子。大臣處趺萼之親。泣血御冤之寄。當蕃屏之任。摩頂至踵之恩。世受前朝之徳。身當後代之位。而不能瀝膽抽膓。共誅奸逆雪天地之痛酷。報君父之仇讎。則死有恨臣之子道不成。
여름 유월에 조를 내렸다.
"신라는 서쪽 오랑캐의 작고 추한 것으로 하늘을 거슬러 무엄하다. 우리 은혜와 의를 어기고 우리 관가를 깨뜨렸으며 우리 백성을 독하게 해치고 우리 고을과 현을 베고 무너뜨렸다.
우리 오키나가타라시히메노미코토는 신령하고 거룩하며 총명하시어 천하를 두루 다니며 뭇 백성을 위해 애쓰고 만민을 먹여 기르셨다. 신라가 궁하여 돌아옴을 가엾이 여겨, 죽여야 할 신라 왕의 머리를 온전히 하시고 신라에 요해의 땅을 주셨으며 신라에 차례에 넘는 영화를 높여 주셨다.
우리 오키나가타라시히메노미코토가 신라에 무엇을 박하게 하셨으며 우리 백성이 신라에 무엇을 원망하였는가. 그런데 신라가 긴 창과 강한 활로 임나를 짓밟고, 이빨을 벌리고 발톱을 걸어 넋 있는 것을 모질게 해쳤다. 간을 도려내고 발을 자르고도 그 시원함에 싫증 내지 않고, 뼈를 볕에 말리고 주검을 불사르고도 그 모짊을 말하지 않았다.
임나의 겨레와 백성 이래로 칼과 도마를 끝까지 하여 이미 잡고 또 회 쳤다. 어찌 온 땅의 손님으로 왕의 신하가 되었다 이르며, 남의 곡식을 먹고 남의 물을 마시면서 누가 차마 이를 듣고 마음 아파하지 않겠는가.
하물며 태자와 대신은 꽃받침처럼 가까운 자리에 있어 피눈물로 원통함을 맡은 처지요, 울타리의 소임을 맡아 정수리에서 발꿈치까지 은혜를 입었으며, 대대로 앞 조정의 덕을 받고 몸이 뒷세상의 자리를 맡았다. 그런데 능히 쓸개를 뿌리고 창자를 뽑아 함께 간사하고 거스르는 것을 베어 하늘과 땅의 아프고 모진 것을 씻고 임금과 아비의 원수를 갚지 못한다면, 죽어서도 신하 된 자식의 도리를 이루지 못한 한이 있으리라."
89안장 깔개 일
是月。或有譖馬飼首歌依曰。歌依之妻逢臣讃岐鞍薦有異。熟而熟視。皇后御鞍也。即收廷尉。鞫問極切。馬飼首歌依乃揚言誓曰。虚也。非實。若是實者必被天災。遂因苦問。伏地而死。死未經時。急災於殿。廷尉收縛其子守石與中瀬氷將投火中。咒曰。非吾手投。以祝手投。咒訖欲投火。守石之母祈請曰。投兒火裏。天災果臻。請付祝人使作神奴。乃依母請許沒神奴。
이달에 어떤 이가 우마카이노오비토 가요리를 참소하여 말하였다. "가요리의 아내 오노오미 사누키의 안장 깔개가 남다릅니다."
익히 보니 황후의 안장이었다. 곧 옥에 거두어 국문하기를 몹시 절실히 하였다.
우마카이노오비토 가요리가 이에 소리를 높여 맹세하였다. "헛됩니다. 사실이 아닙니다. 만약 사실이라면 반드시 하늘의 재앙을 입을 것입니다."
마침내 괴로운 물음으로 말미암아 땅에 엎드려 죽었다. 죽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급히 전각에 불이 났다.
옥리가 그 아들 모리시와 나카쓰세히를 잡아 묶어 불 속에 던지려 하며 저주하였다. "내 손으로 던지는 것이 아니라 축원하는 이의 손으로 던진다."
저주를 마치고 불에 던지려 하매 모리시의 어미가 빌며 청하였다. "아이를 불 속에 던지면 하늘의 재앙이 과연 이를 것입니다. 청컨대 축원하는 이에게 붙여 신의 종으로 삼게 하소서."
이에 어미의 청에 따라 신의 종으로 몰수함을 허락하였다.
협주 2
守石。名瀬氷。皆名也。
모리시와 세히는 다 이름이다.
投火爲刑。盖古之制也。
불에 던지는 것을 형벌로 삼은 것은 아마 옛 제도일 것이다.
90신라 사자가 돌아가지 않다
秋七月己巳朔。新羅遣使獻調賦。其使人知新羅滅任那。恥背國恩。不敢請罷。遂留不歸本土。例同國家百姓。今河内國更荒郡■■野邑新羅人之先也。
가을 칠월 기사 초하루에 신라가 사자를 보내어 조와 부를 바쳤다. 그 사자가 신라가 임나를 멸한 것을 알고, 나라의 은혜를 등진 것을 부끄러워하여 감히 돌아가기를 청하지 못하였다. 마침내 머물러 본토로 돌아가지 않고 예를 나라의 백성과 같이하였다. 이제 가와치국 사라라군 우노 마을의 신라 사람의 조상이다.
91신라를 물으러 가다
是月。遣大將軍紀男麻呂宿禰。將兵出■■。副將河邊臣瓊缶出居曾山。而欲問新羅攻任那之状。遂到任那。以薦集部首登弭。遣於百濟。約束軍計。登弭仍宿妻家。落印書。弓箭於路。新羅具知軍計。卒起大兵。尋屬敗亡。乞降歸附。紀男麻呂宿禰取勝旋師入百濟營。令軍中曰。夫勝不忘敗。安必慮危。古之善教也。今處彊畔。豺狼交接。而可輕忽不思變難哉。况復平安之世刀劔不離於身。盖君子之武備不可以已。宜深警戒務崇斯令。士卒皆委心而服事焉。河邊臣瓊缶獨進轉闘。所向皆拔。新羅更擧白旗投兵隆首。河邊臣瓊缶元不曉兵。對擧白旗空爾獨進。新羅闘将曰。將軍河邊臣今欲降矣。乃進軍逆戰。盡鋭■攻破之。前鋒所傷甚衆。倭國造手彦自知難救。棄軍遁逃。新羅闘將手持鈎戟。追至城洫。運戟撃之。手彦因騎駿馬超渡城洫。僅以身兔。闘將臨城洫而歎曰。久須尼自利。
이달에 대장군 기노오마로노스쿠네를 보내어 군사를 거느리고 □□에서 나아가게 하고, 부장 가와베노오미 니헤는 거증산(居曾山)에서 나아가게 하여, 신라가 임나를 친 사정을 물으려 하였다.
마침내 임나에 이르러 고모쓰메베노오비토 도미를 백제에 보내어 군사의 계책을 약속하게 하였다. 도미가 이어 아내의 집에서 자다가 도장 찍은 문서와 활과 화살을 길에 떨어뜨렸다.
신라가 군사의 계책을 다 알고 갑자기 큰 군사를 일으켰다. 이어 무너져 망함에 붙어 항복을 빌고 돌아와 붙었다.
기노오마로노스쿠네가 이겨 군사를 돌려 백제 진영에 들어가 군중에 영을 내렸다.
"무릇 이겨도 짐을 잊지 않고 편안해도 반드시 위태로움을 헤아리는 것이 옛적의 좋은 가르침이다. 이제 지경에 있어 승냥이와 이리가 서로 닿아 있는데, 가벼이 여겨 변고와 어려움을 생각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물며 다시 평안한 세상에도 칼을 몸에서 떼지 않는다. 아마 군자의 무기 갖춤은 그만둘 수 없는 것이다. 마땅히 깊이 경계하고 이 영을 높이기에 힘써라."
군사가 다 마음을 맡겨 복종하며 섬겼다.
가와베노오미 니헤가 홀로 나아가 옮겨 싸워 향하는 데마다 다 함락하였다. 신라가 다시 흰 기를 들고 무기를 던지고 항복하였다.
가와베노오미 니헤가 본디 군사를 알지 못하여, 마주 흰 기를 들고 헛되이 홀로 나아갔다.
신라의 싸움 장수가 말하였다. "장군 가와베노오미가 이제 항복하려 한다." 이에 군사를 나아가 맞아 싸워 날랜 군사를 다하여 급히 쳐 깨뜨렸다. 앞선 군사가 상한 이가 매우 많았다.
야마토노쿠니노미야쓰코 데히코가 스스로 구하기 어려움을 알고 군사를 버리고 도망하였다. 신라의 싸움 장수가 손에 갈고리 창을 들고 뒤쫓아 성의 해자에 이르러 창을 휘둘러 쳤다. 데히코가 이로 인하여 준마를 타고 성 해자를 뛰어 건너 겨우 몸으로 벗어났다.
싸움 장수가 성 해자에 임하여 탄식하였다. "구수니자리(久須尼自利)."
92이키나와 오하코
於是。河邊臣遂引兵退急營於野。於是士卒盡相欺蔑。莫有遵承。闘將自就營中悉生虜河邊臣瓊缶等及其隨婦。于時父子夫婦不能相恤。闘將問河邊臣曰。汝命與婦孰與尤愛。答曰。何愛一女以取禍乎。如何不過命也。遂許爲妾。闘將遂於露地奸其婦女。婦女後還。河邊臣欲就談之。婦人甚以慚恨而不隨曰。昔君輕賣妾身。今何面目以相遇。遂不肯言。是婦人者坂本臣女。曰甘美媛。同時所虜調吉士伊企儺。爲人勇烈。終不降服。新羅闘將拔刀欲斬。逼而脱褌。追令以尻臀向日本大號叫曰日本將囓我■■。即號叫曰。新羅王啗我■■。雖被苦逼。尚如前叫■。由是見殺。其子舅子亦抱其父而死。伊企儺辭旨難奪皆如此。由此特爲諸將帥所痛惜。昔妻大葉子亦並見禽。愴然而歌曰。柯羅倶爾能。基能陪爾陀致底。於譜磨故幡。比例甫■須母。耶魔等陛武岐底。或有和曰。柯羅倶爾能。基能陪爾陀陀志。於譜磨故幡。比禮甫羅須彌喩。那爾婆陛武岐底。
이에 가와베노오미가 마침내 군사를 이끌고 물러나 급히 들에 진 쳤다. 이에 군사가 다 서로 속이고 업신여겨 좇아 받드는 이가 없었다.
싸움 장수가 스스로 진영 안에 들어와 가와베노오미 니헤들과 그를 따르던 아내를 다 사로잡았다. 이때 아비와 자식과 지아비와 아내가 서로 돌보지 못하였다.
싸움 장수가 가와베노오미에게 물었다. "네 목숨과 아내 가운데 어느 것을 더 사랑하는가."
답하였다. "어찌 한 여인을 사랑하여 화를 부르겠는가. 어찌 목숨보다 낫겠는가."
마침내 첩 삼기를 허락하였다. 싸움 장수가 마침내 드러난 땅에서 그 아내를 범하였다.
아내가 뒤에 돌아오매 가와베노오미가 나아가 말하려 하였다. 여인이 몹시 부끄러워하고 한하여 따르지 않고 말하였다. "옛적에 그대가 가벼이 제 몸을 팔았습니다. 이제 무슨 낯으로 서로 마주하겠습니까." 마침내 말하려 하지 않았다.
이 여인은 사카모토노오미의 딸로 우마시히메라 한다.
같은 때 사로잡힌 쓰키노키시 이키나는 사람됨이 날래고 굳세어 끝내 항복하지 않았다.
신라 싸움 장수가 칼을 뽑아 베려 하며 다그쳐 잠방이를 벗기고, 뒤쫓아 엉덩이를 일본 쪽으로 향하게 하고 크게 부르짖게 하였다. "일본 장수는 내 엉덩이를 씹어라."
곧 부르짖었다. "신라 왕은 내 엉덩이를 먹어라."
비록 괴로이 다그침을 받아도 오히려 앞서와 같이 부르짖었다. 이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하였다. 그 아들 오지코 또한 그 아비를 안고 죽었다.
이키나의 말과 뜻을 빼앗기 어려움이 다 이와 같았다. 이로 말미암아 특히 여러 장수들이 아파하고 아까워하는 바가 되었다.
그의 아내 오하코 또한 아울러 사로잡혔다. 슬퍼하며 노래하였다.
「가라쿠니노 기노헤니타치테 오호바코와 히레후라스모 야마토헤무키테(柯羅倶爾能。基能陪爾陀致底。於譜磨故幡。比例甫■須母。耶魔等陛武岐底)」
어떤 이가 화답하여 말하였다.
「가라쿠니노 기노헤니타타시 오호바코와 히레후라스미유 나니와헤무키테(柯羅倶爾能。基能陪爾陀陀志。於譜磨故幡。比禮甫羅須彌喩。那爾婆陛武岐底)」
— 두 노래는 소리를 적은 것이라 뜻으로 옮기지 않는다.
협주 2
此新羅語未詳也
이 신라 말은 자세하지 않다.
叫□也
부르짖는다는 뜻이다.
93사데히코가 고려를 치다
八月。天皇遣大將軍大伴連狹手彦。領兵數萬伐于高麗。狹手彦乃用百濟計。打破高麗。其王踰墻而逃。狹手彦遂乘勝以入宮。盡得珍寶■賂。七織帳。鐵屋還來。以七織帳奉獻於天皇。以甲二領。金餝刀二口。銅鏤鍾三口。五色幡二竿。美女媛并其從女吾田子。送於蘇我稻目宿禰大臣。於是。大臣遂納二女以爲妻居輕曲殿。
팔월에 천황이 대장군 오호토모노무라지 사데히코를 보내어 군사 수만을 거느리고 고려를 치게 하였다.
사데히코가 이에 백제의 계책을 써서 고려를 쳐 깨뜨렸다. 그 왕이 담을 넘어 달아났다. 사데히코가 마침내 이긴 기세를 타고 궁에 들어가 진귀한 보배와 재물, 일곱 겹 짠 휘장과 쇠집을 다 얻어 돌아왔다.
일곱 겹 짠 휘장을 천황에게 바치고, 갑옷 두 벌과 금으로 꾸민 칼 두 자루와 구리에 새긴 종 세 개와 오색 기 두 자루와 미녀 히메와 아울러 그 시녀 아타코를 소가노이나메노스쿠네노오오미에게 보냈다.
이에 대신이 마침내 두 여인을 들여 아내로 삼아 가루의 마가리도노에 살게 하였다.
협주 3
舊本云。鐵屋在高麗西高樓上。織帳張於高麗王内寢。
옛 판본에는 쇠집이 고려 서쪽 높은 다락 위에 있고 짠 휘장이 고려 왕의 안 침소에 걸려 있었다 한다.
媛名也。
히메는 이름이다.
鐵屋在長安寺。是寺不知在何國。一本云。十一年大伴狹手彦連共百濟國駈却高麗王陽香於比津留都。
쇠집이 조안지에 있다. 이 절이 어느 나라에 있는지 알지 못한다. 어떤 판본에는 십일년에 오토모노사데히코노무라지가 백제국과 함께 고려 왕 양향(陽香)을 히쓰루쓰에서 몰아냈다 한다.
94신라 사자가 돌아가지 않다
冬十一月。新羅遣使獻并貢調賦。使人悉知國家憤新羅滅任那。不敢請羅。恐致刑戮不歸本土。例同百姓。今攝津國三嶋郡埴廬新羅人之先祖也。
겨울 십일월에 신라가 사자를 보내어 아울러 조와 부를 바쳤다. 사자가 나라에서 신라가 임나를 멸한 것을 성내는 줄 다 알고, 감히 돌아가기를 청하지 못하였다. 형벌을 받을까 두려워 본토로 돌아가지 않고 예를 백성과 같이하였다. 이제 셋쓰국 미시마군 하니이오의 신라 사람의 조상이다.
95고려 사람이 귀화하다
廿六年夏五月。高麗人頭霧■耶陛等投化於筑紫。置山背國。今畝原。奈羅。山村高麗人之先祖也。
이십육년 여름 오월에 고려 사람 두무리야폐(頭霧■耶陛)들이 쓰쿠시에 귀화하였다. 야마시로국에 두었다. 이제 우네하라와 나라와 야마무라 고려 사람의 조상이다.
96큰물과 굶주림
廿八年。郡國大水。飢。或人相食。轉傍郡穀以相救。
이십팔년에 고을과 나라에 큰물이 지고 굶주려 더러는 사람이 서로 잡아먹었다. 곁 고을의 곡식을 옮겨 서로 구하였다.
97다베의 호적을 살피라
卅年春正月辛卯朔。詔曰。量置田部其來尚矣。年甫十餘脱籍兔課者衆。宜遣膽津檢定白猪田部丁籍。
삼십년 봄 정월 신묘 초하루에 조를 내렸다. "다베를 헤아려 둔 지 그 유래가 오래다. 나이가 겨우 열 남짓인데 호적에서 빠져 부역을 면하는 이가 많다. 마땅히 이쓰를 보내어 시라이의 다베 장정의 호적을 살펴 정하라."
협주 1
膽津者。王辰爾之甥也。
이쓰는 왕진이의 조카다.
98시라이노후비토
夏四月。膽津檢閲白猪田部丁者。依詔定籍。果成田戸。天皇嘉膽津定籍之功。賜姓爲白猪史。尋拜田令。爲瑞子之副。
여름 사월에 이쓰가 시라이의 다베 장정을 살펴보고 조서에 따라 호적을 정하였다. 과연 밭 짓는 집을 이루었다.
천황이 이쓰가 호적을 정한 공을 아름다이 여겨 성을 주어 시라이노후비토라 하고, 이어 다즈카히를 맡겨 미즈코의 버금으로 삼았다.
협주 1
瑞子見上。
미즈코는 위에 보인다.
99이나메노스쿠네가 죽다
卅一年春三月甲申朔。蘇我大臣稻目宿禰薨。
삼십일년 봄 삼월 갑신 초하루에 소가노오오미 이나메노스쿠네가 죽었다.
100고려 사자가 표류해 오다
夏四月甲申朔乙酉。幸泊瀬柴籬宮。越人江渟臣裾代詣京奏曰。高麗使人辛苦風浪迷失浦津。任水漂流。忽到着岸。郡司隠匿。故臣顯奏。詔曰。朕承帝業若干年。高麗迷路始到越岸。雖苦漂溺。尚全性命。豈非徽猷廣被。至徳魏魏。仁化傍通。洪恩蕩蕩者哉。有司宜於山背國相樂郡。起舘淨治。厚相資養。
여름 사월 갑신 초하루 을유일에 하쓰세의 시바카키노미야에 거둥하였다.
고시 사람 에누노오미 스소시로가 서울에 나아가 아뢰었다. "고려 사자가 바람과 물결에 괴로워하다가 나루를 잃고 물에 맡겨 떠돌다가 홀연히 언덕에 닿았습니다. 고을 벼슬아치가 숨겼습니다. 그러므로 신이 드러내어 아룁니다."
조를 내렸다. "짐이 임금의 업을 이은 지 얼마 되었는데 고려가 길을 잃어 처음으로 고시의 언덕에 이르렀다. 비록 떠돌고 빠지는 괴로움을 겪었으나 오히려 목숨을 온전히 하였으니, 어찌 아름다운 도가 넓게 미치고 지극한 덕이 높고 높으며 어진 교화가 두루 통하고 큰 은혜가 넓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맡은 관청은 마땅히 야마시로국 사가라카군에 객관을 지어 깨끗이 다스리고 두터이 도와 기르라."
101고려 사자를 맞다
是月。乘輿至自泊瀬柴籬宮。遣東漢氏直糠兒。葛城直難波迎召高麗使人。
이달에 임금의 수레가 하쓰세의 시바카키노미야에서 이르렀다. 야마토노아야우지노아타이 누카고와 가즈라키노아타이 나니와를 보내어 고려 사자를 맞아 부르게 하였다.
102미치노키미의 속임이 드러나다
五月。遣膳臣傾子於越饗高麗使。大使審知膳臣是皇華使。乃謂道君曰。汝非天皇果如我疑。汝既伏拜膳臣。倍復足知百姓。而前詐余取調入己。宜速還之。莫煩餝語。膳臣聞之使人探索其調。具爲與之。還京復命。
오월에 가시와데노오미 가타부코를 고시에 보내어 고려 사자를 대접하게 하였다.
대사가 가시와데노오미가 임금의 빛나는 사자임을 살펴 알고, 이에 미치노키미에게 일렀다. "네가 천황이 아님이 과연 내가 의심한 대로다. 네가 이미 가시와데노오미에게 엎드려 절하니 더욱 백성인 줄 알 만하다. 그런데 앞서 나를 속여 조를 가져다 제 것으로 하였으니 마땅히 빨리 돌려주고 꾸미는 말로 번거롭게 하지 마라."
가시와데노오미가 이를 듣고 사람을 시켜 그 조를 찾게 하여 갖추어 주었다. 서울에 돌아와 명을 아뢰었다.
협주 1
傾子。此云舸陀部古。
경자(傾子)는 가타부코라 읽는다.
103고려 사자가 오미에 이르다
秋七月壬子朔。高麗使到于近江。
가을 칠월 임자 초하루에 고려 사자가 오미에 이르렀다.
104고려 사자를 맞아들이다
是月。遣許勢臣猿與吉士赤鳩發自難波津。控引船於狹狹波山。而裝飾船乃徃迎於近江北山。遂引入山背高威舘。則遣東漢坂上直子麻呂。錦部首大石以爲守護。更饗高麗使者於相樂舘。
이달에 고세노오미 사루와 기시노아카하토를 보내어 나니와 나루에서 떠나 배를 사사나미산으로 끌어당기고, 배를 꾸며 이에 오미 북쪽 산으로 가서 맞았다. 마침내 야마시로의 다카미노 객관으로 이끌어 들였다.
곧 야마토노아야노사카노우에노아타이 고마로와 니시고리노오비토 오이시를 보내어 지키게 하였다. 다시 고려 사자를 사가라카 객관에서 대접하였다.
105임나가 멸한 까닭을 묻다
卅二年春三月戊申朔壬子。遣坂田耳子郎君。使於新羅。問任那滅由。
삼십이년 봄 삼월 무신 초하루 임자일에 사카타노미미코노이라쓰코노키미를 신라에 사자로 보내어 임나가 멸한 까닭을 물었다.
106좋은 날을 기다리다
是月。高麗獻物并表未得呈奏。經歴數旬。占待良日。
이달에 고려가 바친 물건과 아울러 표를 아직 올려 아뢰지 못하였다. 몇 순(旬)을 지나며 점쳐 좋은 날을 기다렸다.
107태자에게 임나를 부탁하다
夏四月戊寅朔壬辰。天皇寢疾不豫。皇太子向外不在。騨馬召到。引入臥内。執其手詔曰。朕疾甚。以後事屬汝。汝須打新羅。封建任那。更造夫婦。惟如舊曰。死無恨之。
여름 사월 무인 초하루 임진일에 천황이 병들어 누워 편치 않았다. 황태자가 밖으로 향하여 있지 않았다. 역말로 불러 이르매 이끌어 누운 안으로 들이고 그 손을 잡고 조를 내렸다.
"짐의 병이 심하다. 뒷일을 너에게 맡긴다. 너는 모름지기 신라를 쳐서 임나를 봉하여 세우고, 다시 부부처럼 되기를 오직 옛날과 같이 하라. 그러면 죽어도 한이 없겠다."
108천황이 죽다
是月。天皇遂崩于内寝。時年若干。
이달에 천황이 마침내 안 침소에서 죽었다. 그때 나이는 얼마인지 알 수 없다.
109빈소를 차리다
五月。殯于河内古市。
오월에 가와치의 후루이치에 빈소를 차렸다.
110신라의 조문 사자
秋八月丙子朔。新羅遣弔使未叱子失消等奉哀於殯。
가을 팔월 병자 초하루에 신라가 조문 사자 미질자실소(未叱子失消)들을 보내어 빈소에서 슬픔을 받들었다.
111조문 사자가 돌아가다
是月。未叱子失消等罷。
이달에 미질자실소들이 돌아갔다.
112히노쿠마의 사카아히 능
九月。葬于桧隈坂合陵。
구월에 히노쿠마의 사카아히 능에 장사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