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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고천황推古天皇

일본서기 日本書紀 · 도네리 친왕(舍人親王) 등 · 720년 (일본 요로 4) · 단락 134 · 한자 7,713자 · 낭독 30.9분

「일본서기」 인대 「추고천황」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정사. 신들의 시대부터 지통천황까지 서른 권이다. 신대 상·하는 같은 신화의 다른 판본을 「어떤 책에는 이렇게 되어 있다」로 나란히 실어, 갈리는 이야기를 감추지 않았다. 백제·신라·고구려·임나 기사가 1,379곳에 나와 한국 사서와 맞대 볼 자리가 가장 많은 책이기도 하다.

1추고천황

豊御食炊屋姫天皇,天國排開廣庭天皇(之)中女也,橘豊日天皇同母妹也。幼曰額田部皇女,姿色端麗,進止軌制。年十八歳,立爲渟中倉太玉敷天皇之皇后。卅四歳,渟中倉太珠敷天皇崩。卅九歳,當于泊瀬部天皇五年十一月,天皇爲大臣馬子宿禰見殺,嗣位既空。羣臣請渟中倉太珠敷天皇之皇后額田部皇女,以將令踐祚。皇后辭譲之。百寮上表勸進至于三,乃從之,因以奉天皇(之)璽印。

도요미케카시키야히메천황(豊御食炊屋姫天皇)은 아메쿠니오시하라키히로니와천황의 가운데 딸이요 다치바나노토요히천황의 동복 누이다. 어려서 누카타베 황녀라 하였다. 모습과 빛이 단정하고 아름다우며 나아가고 멈춤에 법도가 있었다.

나이 열여덟에 누나쿠라노후토타마시키천황의 황후로 세워졌다. 서른넷에 누나쿠라노후토타마시키천황이 죽었다.

서른아홉에 하쓰세베천황 오년 십일월에 이르러 천황이 대신 우마코노스쿠네에게 죽임을 당하고 이을 자리가 이미 비었다. 여러 신하가 누나쿠라노후토타마시키천황의 황후 누카타베 황녀에게 청하여 자리에 오르게 하려 하였다. 황후가 사양하였다. 온갖 벼슬아치가 표를 올려 나아가기를 권하기 세 번에 이르매 이에 따랐다. 이로 인하여 천황의 도장을 받들었다.

2자리에 오르다

冬十二月壬申朔己卯,皇后即天皇位於豐浦宫。

겨울 십이월 임신 초하루 기묘일에 황후가 도유라노미야에서 천황의 자리에 올랐다.

3법흥사의 찰주

春正月壬寅朔丙辰,以佛舍利置于法興寺刹柱礎中。丁巳,建刹柱。

봄 정월 임인 초하루 병진일에 부처의 사리를 호코지의 찰주 주춧돌 안에 두었다. 정사일에 찰주를 세웠다.

4우마야도 황자를 황태자로 삼다

夏四月庚午朔己卯,立廐户豐聰耳皇子爲皇太子,仍録攝政,以萬機悉委焉。橘豐日天皇第二子也,母皇后曰穴穗部間人皇女。皇后懷姙開胎之日,巡行禁中,監察諸司。至于馬官,乃當廐户,而不勞忽産之。生而能言,有聖智。及壯,一聞十人訴,以勿失能辨,兼知未然。且習内教於高麗僧慧慈,學外典於博士覺哿,並悉達矣。父天皇愛之,令居宫南上殿,故稱其名謂上宫廐户豐聰耳太子。

여름 사월 경오 초하루 기묘일에 우마야도노토요토미미 황자를 세워 황태자로 삼고, 이어 섭정을 기록에 올려 온갖 정사를 다 맡겼다.

다치바나노토요히천황의 둘째 아들이요 어머니 황후는 아나호베노하시히토 황녀라 한다. 황후가 아이를 배어 낳는 날에 궁 안을 돌아다니며 여러 관청을 살폈다. 말 맡은 관청에 이르러 마구간 문에 닿아 애쓰지 않고 홀연히 낳았다.

나면서 능히 말하고 성스러운 지혜가 있었다. 장성하매 한 번에 열 사람의 하소연을 듣고 놓치지 않고 능히 가려내며, 아울러 아직 오지 않은 일도 알았다.

또 안의 가르침을 고려 승려 혜자(慧慈)에게 익히고 밖의 글을 박사 각가(覺哿)에게 배워 아울러 다 통달하였다.

아버지 천황이 사랑하여 궁 남쪽 위 전각에 살게 하였다. 그러므로 그 이름을 일컬어 가미쓰미야노우마야도노토요토미미 태자라 한다.

5앞 임금을 옮겨 장사 지내다

秋九月,改葬橘豐日天皇於河内磯長陵。

가을 구월에 다치바나노토요히천황을 가와치의 시나가 능에 옮겨 장사 지냈다.

6시텐노지를 짓다

是歳,始造四天王寺於難波荒陵。是年也,太歳癸丑。

이해에 처음으로 나니와의 아라하카에 시텐노지를 지었다. 이해는 태세가 계축이다.

7삼보를 일으키라

春二月丙寅朔,詔皇太子及大臣,令興隆三寶。是時,諸臣、連等各爲君親之恩,競造佛舍,即是謂寺焉。

봄 이월 병인 초하루에 황태자와 대신에게 조를 내려 삼보를 일으켜 융성하게 하였다. 이때 여러 오미와 무라지들이 각각 임금과 어버이의 은혜를 위하여 다투어 불사(佛舍)를 지으니 곧 이를 절이라 한다.

8침향나무

夏四月,沈水漂著於淡路嶋,其大一圍。嶋人不知沈水,以交薪燒於竃,其烟氣遠薫,則異以獻之。

여름 사월에 침향나무가 아와지섬에 떠 닿았다. 그 굵기가 한 아름이었다. 섬 사람이 침향인 줄 모르고 땔나무에 섞어 부뚜막에 태웠다. 그 연기가 멀리 향기로우매 이상히 여겨 바쳤다.

9혜자가 귀화하다

五月戊午朔丁卯,高麗僧慧慈歸化,則皇太子師之。

오월 무오 초하루 정묘일에 고려 승려 혜자가 귀화하니 곧 황태자가 스승으로 삼았다.

10혜총이 오다

是歳,百濟僧慧聰來之。此兩僧弘演佛教,並爲三寶之棟梁。

이해에 백제 승려 혜총(慧聰)이 왔다. 이 두 승려가 불교를 넓혀 펴 아울러 삼보의 마룻대와 들보가 되었다.

11장군들이 돌아오다

秋七月,將軍等至自筑紫。

가을 칠월에 장군들이 쓰쿠시에서 이르렀다.

12법흥사가 이루어지다

冬十一月,法興寺造竟,則以大臣男善德臣拜寺司。是日,慧慈、慧聰二僧始住於法興寺。

겨울 십일월에 호코지 짓기를 마치매 대신의 아들 젠토쿠노오미를 절 맡은 이로 삼았다. 이날 혜자와 혜총 두 승려가 처음으로 호코지에 살았다.

13왕자 아좌가 오다

夏四月丁丑朔,百濟王遣王子阿佐朝貢。

여름 사월 정축 초하루에 백제 왕이 왕자 아좌(阿佐)를 보내어 조공하였다.

14이와카네를 신라에 보내다

冬十一月癸酉朔甲子,遣吉士磐金於新羅。

겨울 십일월 계유 초하루 갑자일에 기시노이와카네를 신라에 보냈다.

15까치를 바치다

夏四月,難波吉士磐金至自新羅,而獻鵲二隻,乃俾養於難波社,因以巢枝而産之。

여름 사월에 나니와노키시 이와카네가 신라에서 이르러 까치 두 마리를 바쳤다. 이에 나니와의 신사에서 기르게 하니 가지에 둥지를 틀고 새끼를 쳤다.

16신라가 공작을 바치다

秋八月己亥朔,新羅貢孔雀一隻。

가을 팔월 기해 초하루에 신라가 공작 한 마리를 바쳤다.

17흰 사슴

冬十月戊戌朔丁未,越國獻白鹿一頭。

겨울 시월 무술 초하루 정미일에 고시국이 흰 사슴 한 마리를 바쳤다.

18땅이 흔들리다

夏四月乙未朔辛酉,地動,舍屋悉破,則令四方俾祭地震神。

여름 사월 을미 초하루 신유일에 땅이 흔들려 집이 다 부서졌다. 곧 사방에 명하여 지진의 신을 제사하게 하였다.

19백제가 낙타를 바치다

秋九月癸亥朔,百濟貢駱駝一匹、驢一匹、羊二頭、白雉一隻。

가을 구월 계해 초하루에 백제가 낙타 한 마리와 나귀 한 마리와 양 두 마리와 흰 꿩 한 마리를 바쳤다.

20신라와 임나가 싸우다

春二月,新羅與任那相攻,天皇欲救任那。

봄 이월에 신라와 임나가 서로 쳤다. 천황이 임나를 구하고자 하였다.

21신라가 여섯 성을 떼어 주다

是歳,命境部臣爲大將軍,以穗積臣爲副將軍,則將萬餘衆,爲任那撃新羅。於是,直指新羅,以泛海往之,乃到于新羅,攻五城而拔。於是,新羅王惶之,擧白旗到于將軍之麾下,而立割多多羅、素奈羅、弗知鬼、委陀、南加羅、阿羅々六城以請服。時,將軍共議曰:「新羅知罪服之,強撃不可。」則奏上。爰天皇更遣難波吉師神於新羅,復遣難波吉士木蓮子於任那,並檢校事状。爰新羅、任那(王)二國遣使貢調,仍奏表之曰:「天上有神,地有天皇。除是二神,何亦有畏乎?自今以後,不有相攻,且不乾舩柂,毎歳必朝。」則遣使以召還將軍。(將軍)等至自新羅,即新羅亦侵任那。

이해에 사카이베노오미에게 명하여 대장군으로 삼고 호즈미노오미를 부장군으로 삼아, 만여 무리를 거느리고 임나를 위하여 신라를 치게 하였다.

이에 곧바로 신라를 가리켜 바다에 배를 띄워 갔다. 이에 신라에 이르러 다섯 성을 쳐서 함락하였다.

이에 신라 왕이 두려워하여 흰 기를 들고 장군의 깃발 아래 이르러, 다다라(多多羅)와 소나라(素奈羅)와 불지귀(弗知鬼)와 위타(委陀)와 남가라(南加羅)와 아라라(阿羅々) 여섯 성을 떼어 주고 복종하기를 청하였다.

그때 장군이 함께 의논하였다. "신라가 죄를 알고 복종하니 굳이 칠 수 없다." 곧 아뢰어 올렸다.

이에 천황이 다시 나니와노키시 가미를 신라에 보내고 다시 나니와노키시 이타비를 임나에 보내어 아울러 일의 모양을 살피게 하였다.

이에 신라와 임나 두 나라가 사자를 보내어 조를 바치고 이어 표를 아뢰었다. "하늘 위에 신이 있고 땅에 천황이 있습니다. 이 두 신을 빼고 무엇을 또 두려워하겠습니까. 이제부터 서로 치지 않고 또 배의 키를 마르게 하지 않으며 해마다 반드시 조회하겠습니다."

곧 사자를 보내어 장군을 불러 돌아오게 하였다. 장군들이 신라에서 이르매 곧 신라가 또 임나를 침노하였다.

협주 1

並闕名

아울러 이름이 빠졌다.

22이카루가에 궁실을 일으키다

春二月,皇太子初興宫室于斑鳩。

봄 이월에 황태자가 처음 이카루가에 궁실을 일으켰다.

23임나를 구하라

三月甲申朔戊子,遣大伴連囓于高麗,遺坂本臣糠手于百濟,以詔之曰:「急救任那。」

삼월 갑신 초하루 무자일에 오호토모노무라지 구이를 고려에 보내고 사카모토노오미 누카테를 백제에 보내어 조를 내렸다. "급히 임나를 구하라."

24미미나시 행궁

夏五月,天皇居于耳梨行宫。是時大雨,河水漂蕩,滿于宫庭。

여름 오월에 천황이 미미나시 행궁에 머물렀다. 이때 큰비가 내려 냇물이 넘쳐 궁 뜰에 가득하였다.

25신라 간첩

秋九月辛巳朔戊子,新羅之間諜者迦摩多到對馬,則捕以貢之,流于上野。

가을 구월 신사 초하루 무자일에 신라의 간첩 가마타가 쓰시마에 이르매 잡아 바쳤다. 고즈케에 귀양 보냈다.

26신라를 칠 일을 의논하다

冬十一月庚辰朔甲申,議政新羅。

겨울 십일월 경진 초하루 갑신일에 신라를 칠 정사를 의논하였다.

27구메 황자를 장군으로 삼다

春二月己酉朔,來目皇子爲撃新羅將軍,授諸神部及國造、伴造等,并軍衆二萬五千人。

봄 이월 기유 초하루에 구메 황자를 신라 치는 장군으로 삼고, 여러 간베와 구니노미야쓰코와 도모노미야쓰코들과 아울러 군사 이만 오천 사람을 주었다.

28쓰쿠시에 이르다

夏四月戊申朔,將軍來目皇子到于筑紫,乃進屯嶋郡,而聚舩舶,運軍粮。

여름 사월 무신 초하루에 장군 구메 황자가 쓰쿠시에 이르러 이에 나아가 시마군에 진 치고 배를 모아 군량을 날랐다.

29구메 황자가 병들다

六月丁未朔己酉,大伴連囓、坂本臣糠手共至自百濟。是時,來目皇子臥病,以不果征討。

유월 정미 초하루 기유일에 오호토모노무라지 구이와 사카모토노오미 누카테가 함께 백제에서 이르렀다. 이때 구메 황자가 병들어 누워 치는 일을 이루지 못하였다.

30관륵이 책력과 천문서를 바치다

冬十月,百濟僧觀勒來之,仍貢暦本及天文地理書,并遁甲方術之書也。是時,選書生三四人,以俾學習於觀勒矣。陽胡史祖玉陳習暦法,大友村主高聰學天文遁甲,山背臣日並立學方術,皆學以成業。

겨울 시월에 백제 승려 관륵(觀勒)이 왔다. 이어 책력 책과 천문지리서와 아울러 둔갑 방술의 책을 바쳤다.

이때 글 배울 이 서넛을 가려 관륵에게 배우게 하였다. 야코노후비토의 조상 다마후루는 책력 법을 익히고, 오토모노스구리 다카사토는 천문과 둔갑을 배우고, 야마시로노오미 히타테는 방술을 배워 다 배워 업을 이루었다.

31고려 승려가 오다

閏十月乙亥朔己丑,高麗僧僧隆、雲聰共來歸。

윤시월 을해 초하루 기축일에 고려 승려 승륭(僧隆)과 운총(雲聰)이 함께 왔다.

32구메 황자가 죽다

春二月癸酉朔丙子,來目皇子薨於筑紫,仍驛使以奏上。爰天皇聞之大驚,則召皇太子、蘇我大臣,謂之曰:「征新羅大將軍來目皇子薨之,其臨大事而不遂矣,甚悲乎!」仍殯于周芳娑婆,乃遣土師連猪手令掌殯事。故猪手連之孫曰娑婆連,其是之縁也。後葬於河内埴生山崗上。

봄 이월 계유 초하루 병자일에 구메 황자가 쓰쿠시에서 죽었다. 이어 역말 사자로 아뢰었다.

이에 천황이 듣고 크게 놀라 황태자와 소가노오오미를 불러 일렀다. "신라 치는 대장군 구메 황자가 죽었다. 큰일에 임하여 이루지 못하였으니 몹시 슬프다."

이어 스오의 사바에 빈소를 차리고 하지노무라지 이노테를 보내어 빈소 일을 맡게 하였다. 그러므로 이노테노무라지의 손자를 사바노무라지라 하는 것이 이 때문이다. 뒤에 가와치의 하니우산 언덕 위에 장사 지냈다.

33다이마 황자를 장군으로 삼다

夏四月壬申朔,更以來目皇子之兄當麻皇子爲征新羅將軍。

여름 사월 임신 초하루에 다시 구메 황자의 형 다이마 황자로 신라 치는 장군을 삼았다.

34다이마 황자가 돌아오다

秋七月辛丑朔癸卯,當麻皇子自難波發舩。丙午,當麻皇子到播磨。時,從妻舍人姫王薨於赤石,仍葬于赤石檜笠岡上,乃當麻皇子返之,遂不征討。

가을 칠월 신축 초하루 계묘일에 다이마 황자가 나니와에서 배를 띄웠다. 병오일에 다이마 황자가 하리마에 이르렀다. 그때 따라간 아내 도네리노히메미코가 아카시에서 죽었다. 이어 아카시의 히카사노오카 위에 장사 지냈다. 이에 다이마 황자가 돌아와 마침내 치지 않았다.

35오하리다노미야로 옮기다

冬十月己巳朔壬申,遷于小墾田宫。

겨울 시월 기사 초하루 임신일에 오하리다노미야로 옮겼다.

36하치오카데라

十一月己亥朔,皇太子謂諸大夫曰:「我有尊佛像,誰得是像,以恭拜?」時,秦造河勝進曰:「臣拜之。」便受佛像,因以造蜂岡寺。

십일월 기해 초하루에 황태자가 여러 대부에게 일렀다. "나에게 높은 불상이 있다. 누가 이 상을 얻어 공경히 절하겠는가."

그때 하타노미야쓰코 가와카쓰가 나아가 말하였다. "신이 절하겠습니다." 곧 불상을 받아 이로 인하여 하치오카데라를 지었다.

37방패와 기를 만들다

是月,皇太子請于天皇,以作大楯及靫,又繪于旗幟。

이달에 황태자가 천황에게 청하여 큰 방패와 유키를 만들고 또 깃발에 그림을 그렸다.

협주 1

靫。此云由岐

채(靫)는 유키라 읽는다.

38관위 열두 계단

十二月戊辰朔壬申,始行冠位。大德、小德、大仁、小仁、大禮、小禮、大信、小信、大義、小義、大智、小智,并十二階。並以當色絁縫之,頂撮總如嚢,而著縁焉。唯元日著髻華。

십이월 무진 초하루 임신일에 처음으로 관위를 행하였다. 대덕(大德)·소덕·대인(大仁)·소인·대례(大禮)·소례·대신(大信)·소신·대의(大義)·소의·대지(大智)·소지 아울러 열두 계단이다.

아울러 그 빛깔에 맞는 명주로 지어 정수리에 모아 자루처럼 하고 가장자리를 붙였다. 오직 설날에만 우즈를 달았다.

협주 1

髻華、此云于孺

계화(髻華)는 우즈라 읽는다.

39관위를 주다

春正月戊戌朔,始賜冠位於諸臣,各有差。

봄 정월 무술 초하루에 처음으로 여러 신하에게 관위를 주되 각각 차등이 있었다.

40헌법 열일곱 조를 짓다

夏四月丙寅朔戊辰,皇太子親肇作憲法十七條。

여름 사월 병인 초하루 무진일에 황태자가 몸소 처음으로 헌법 열일곱 조를 지었다.

41헌법 제일조 — 화합

一曰:以和爲貴,無忤爲宗。人皆有黨,亦少達者。是以或不順君父,乍違于隣里。然上和下睦,諧於論事,則事理自通,何事不成?

첫째, 화합을 귀하게 여기고 거스름이 없음을 으뜸으로 삼으라.

사람에게 다 무리가 있고 또한 통달한 이가 적다. 이 때문에 더러는 임금과 아비를 따르지 않고 이웃 마을과 어긋난다. 그러나 위가 화합하고 아래가 화목하여 일을 의논함에 어울리면, 곧 일의 이치가 절로 통하니 무슨 일인들 이루지 못하겠는가.

42헌법 제이조 — 삼보

二曰:篤敬三寶。三寶者,佛法僧也,則四生之終歸,萬國之極宗。何世何人,非貴是法?人鮮尤惡,能教從之。其不歸三寶,何以直枉?

둘째, 삼보를 도타이 공경하라.

삼보란 부처와 법과 승려다. 곧 네 가지로 나는 것의 마지막 돌아갈 데요 온 나라의 지극한 마루다. 어느 세상 어느 사람인들 이 법을 귀히 여기지 않겠는가.

사람으로 몹시 악한 이가 드무니 능히 가르치면 따른다. 삼보에 돌아가지 않고 무엇으로 굽은 것을 바로잡겠는가.

43헌법 제삼조 — 조서를 삼가라

三曰:承詔必謹。君則天之,臣則地之。天覆地載,四時順行,万氣得通。地欲覆天,則致壞耳。是以君言臣承,上行下靡。故承詔必慎,不謹自敗。

셋째, 조서를 받들면 반드시 삼가라.

임금은 곧 하늘이요 신하는 곧 땅이다. 하늘이 덮고 땅이 실어 네 철이 순히 가고 온갖 기운이 통한다. 땅이 하늘을 덮으려 하면 곧 무너짐에 이를 뿐이다.

이 때문에 임금이 말하면 신하가 받들고 위가 행하면 아래가 쏠린다. 그러므로 조서를 받들면 반드시 삼가라. 삼가지 않으면 절로 무너진다.

44헌법 제사조 — 예를 근본으로

四曰:羣卿百寮,以禮爲本。其治民之本,要在乎禮。上不禮而下非齊,下無禮以必有罪。是以羣臣有禮,位次不亂,百姓有禮,國家自治。

넷째, 여러 대신과 온갖 벼슬아치는 예를 근본으로 삼으라.

백성을 다스리는 근본이 요컨대 예에 있다. 위가 예가 없으면 아래가 가지런하지 않고, 아래가 예가 없으면 반드시 죄가 있다.

이 때문에 여러 신하에게 예가 있으면 자리의 차례가 어지럽지 않고, 백성에게 예가 있으면 나라가 절로 다스려진다.

45헌법 제오조 — 송사를 밝게

五曰:絶餮棄欲,明辨訴訟。其百姓之訟,一日千事。一日尚爾,况乎累歳?須治訟者,得利爲常,見賄聽讞。便有財之訟,如石投水,乏者之訴,似水投石。是以貧民則不知所由,臣道亦於焉闕。

다섯째, 탐식을 끊고 욕심을 버려 송사를 밝게 가려라.

백성의 송사가 하루에 천 가지다. 하루도 오히려 그러한데 하물며 해를 거듭함이겠는가.

모름지기 송사를 다스리는 이가 이익 얻기를 늘 하는 일로 삼아, 뇌물을 보고 판결을 들어 준다. 그러면 재물 있는 이의 송사는 돌을 물에 던지는 것 같고 가난한 이의 하소연은 물을 돌에 던지는 것 같다.

이 때문에 가난한 백성은 곧 말미암을 바를 알지 못하고 신하의 도리 또한 여기서 이지러진다.

46헌법 제육조 — 악을 징계하고 선을 권하라

六曰:懲惡勸善,古之良典。是以無匿人善,見惡必匡。其諂詐者,則爲覆國家之利器,爲絶人民之鋒釰。亦佞媚者,對上則好説下過,逢下則誹謗上失。其如此人,皆無忠於君,無仁於民,是大亂之本也。

여섯째, 악을 징계하고 선을 권하는 것은 옛적의 좋은 법이다.

이 때문에 남의 착함을 숨기지 말고 악함을 보면 반드시 바로잡으라.

아첨하고 속이는 이는 곧 나라의 이로움을 뒤엎는 그릇이 되고 사람과 백성을 끊는 칼날이 된다.

또 알랑거리는 이는 위를 만나면 아랫사람의 허물 말하기를 좋아하고, 아래를 만나면 윗사람의 잘못을 헐뜯는다. 이와 같은 사람은 다 임금에게 충성이 없고 백성에게 어짊이 없으니 이는 큰 어지러움의 근본이다.

47헌법 제칠조 — 사람마다 맡은 바

七曰:人各有任,掌宜不濫。其賢哲任官,頌音則起,姦者有官,禍亂則繁。世少生知,尅念作聖。事無大少,得人必治,時無急緩,遇賢自寛。因此國家永久,社稷勿危。故古聖王,爲官以求人,爲人不求官。

일곱째, 사람에게 각각 맡은 바가 있으니 다스림이 넘치지 않게 하라.

어질고 밝은 이가 벼슬을 맡으면 기리는 소리가 일고, 간사한 이가 벼슬을 가지면 재앙과 어지러움이 잦다.

세상에 나면서부터 아는 이가 드무니 능히 생각하여 성인이 된다. 일에 크고 작음이 없고 사람을 얻으면 반드시 다스려지며, 때에 급하고 느림이 없고 어진 이를 만나면 절로 너그러워진다. 이로 인하여 나라가 길이 오래고 사직이 위태롭지 않다.

그러므로 옛 성스러운 임금은 벼슬을 위하여 사람을 구하고 사람을 위하여 벼슬을 구하지 않았다.

48헌법 제팔조 — 일찍 나오고 늦게 물러가라

八曰:羣卿百寮,早朝晏退。公事靡監,終日難盡。是以遲朝不逯于急,早退必事不盡。

여덟째, 여러 대신과 온갖 벼슬아치는 아침 일찍 나오고 늦게 물러가라.

나라의 일은 살필 겨를이 없고 온종일 하여도 다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늦게 나오면 급한 일에 미치지 못하고 일찍 물러가면 반드시 일이 다하지 못한다.

49헌법 제구조 — 믿음

九曰:信是義本,毎事有信。其善惡成敗,要在于信。羣臣共信,何事不成?羣臣無信,萬事悉敗。

아홉째, 믿음은 의로움의 근본이니 일마다 믿음이 있게 하라.

착하고 악하며 이루고 그르치는 것이 요컨대 믿음에 있다. 여러 신하가 함께 믿으면 무슨 일인들 이루지 못하겠으며, 여러 신하에게 믿음이 없으면 온갖 일이 다 그르친다.

50헌법 제십조 — 노여움을 끊으라

十曰:絶忿棄瞋,不怒人違。人皆有心,心各有執。彼是則我非,我是則彼非。我必非聖,彼必非愚,共是凡夫耳。是非之理,詎能可定?相共賢愚,如鐶无端。是以彼人雖瞋,還恐我失,我獨雖得,從衆同舉。

열째, 분함을 끊고 성냄을 버려 남이 어긋난다고 노하지 마라.

사람에게 다 마음이 있고 마음마다 각각 잡은 바가 있다. 저가 옳으면 내가 그르고 내가 옳으면 저가 그르다. 나도 반드시 성인이 아니요 저도 반드시 어리석은 이가 아니니 함께 범부일 뿐이다.

옳고 그름의 이치를 누가 능히 정하겠는가. 서로 함께 어질고 어리석음이 고리처럼 끝이 없다.

이 때문에 저 사람이 비록 성내더라도 도리어 내 잘못을 두려워하고, 나 홀로 얻은 바가 있더라도 여럿을 좇아 함께 들어 행하라.

51헌법 제십일조 — 공과 허물

十一曰:明察功過,賞罸必當。日者賞不在功,罸不在罪。執事羣卿,宜明賞罸。

열한째, 공과 허물을 밝게 살펴 상과 벌을 반드시 마땅하게 하라.

요사이 상이 공에 있지 않고 벌이 죄에 있지 않다. 일을 잡은 여러 대신은 마땅히 상과 벌을 밝게 하라.

52헌법 제십이조 — 백성에게 거두지 마라

十二曰:國司、國造,勿斂百姓。國非二君,民無兩主。率土兆民,以王爲主。所任官司,皆是王臣。何敢與公,賦斂百姓?

열두째, 구니노쓰카사와 구니노미야쓰코는 백성에게 거두지 마라.

나라에 두 임금이 없고 백성에게 두 주인이 없다. 온 땅의 억조 백성이 왕으로 주인을 삼는다. 맡은 벼슬아치가 다 왕의 신하다. 어찌 감히 나라와 함께 백성에게 거두겠는가.

53헌법 제십삼조 — 맡은 일을 함께 알라

十三曰:諸任官者,同知職掌。或病或使,有闕於事。然得知之日,和如曾識。其以非與聞,勿防公務。

열셋째, 벼슬을 맡은 이는 맡은 바를 함께 알라.

더러는 병들고 더러는 사자로 가서 일에 빈자리가 있다. 그러나 알게 된 날에는 일찍이 알던 것처럼 화합하라. 알지 못한다는 것으로 나랏일을 막지 마라.

54헌법 제십사조 — 시샘하지 마라

十四曰:羣臣百寮,無有嫉妬。我既嫉人,人亦嫉我。嫉妬之患,不知其極。所以智勝於己則不悦,才優於己則嫉妬。是以五百之(後)乃令遇賢,千載以難待一聖。其不得賢聖,何以治國?

열넷째, 여러 신하와 온갖 벼슬아치는 시샘함이 없게 하라.

내가 이미 남을 시샘하면 남도 또한 나를 시샘한다. 시샘의 근심은 그 끝을 알 수 없다.

그러므로 지혜가 제게서 나으면 기뻐하지 않고 재주가 제게서 뛰어나면 시샘한다. 이 때문에 오백 해 뒤에야 어진 이를 만나고 천 해에 한 성인을 기다리기 어렵다. 어질고 성스러운 이를 얻지 못하면 무엇으로 나라를 다스리겠는가.

55헌법 제십오조 — 사사로움을 등지고 공을 향하라

十五曰:背私向公,是臣之道矣。凡(夫)人有私必有恨,有憾必非同。非同則以私妨公,憾起則違制、害法。故初章云「上下和諧」,其亦是情歟?

열다섯째, 사사로움을 등지고 공을 향하는 것이 신하의 도리다.

무릇 사람에게 사사로움이 있으면 반드시 한이 있고, 한이 있으면 반드시 함께하지 못한다. 함께하지 못하면 사사로움으로 공을 막고, 한이 일면 제도를 어기고 법을 해친다.

그러므로 첫 조에 「위아래가 화합하여 어울리라」 한 것이 또한 이 뜻인가.

56헌법 제십육조 — 때를 가려 백성을 부려라

十六曰:使民以時,古之良典(也)。故冬月有間,以可使民。從春至秋,農桑之節,不可使民。其不農何食?不桑何服?

열여섯째, 때를 가려 백성을 부리는 것이 옛적의 좋은 법이다.

그러므로 겨울철에 틈이 있으니 백성을 부릴 만하다. 봄부터 가을까지는 농사와 누에 치는 철이니 백성을 부릴 수 없다. 농사짓지 않으면 무엇을 먹고 누에 치지 않으면 무엇을 입겠는가.

57헌법 제십칠조 — 홀로 결단하지 마라

十七曰:夫事不可獨断,必與衆宜論。少事是輕,不可必衆。唯逯論大事,若疑有失,故與衆相辨,辭則得理。

열일곱째, 무릇 일은 홀로 결단할 수 없으니 반드시 여럿과 마땅히 의논하라.

작은 일은 가벼우니 반드시 여럿일 것이 없다. 오직 큰일을 의논함에 이르러서는, 만약 잘못이 있을까 의심스러우면 여럿과 서로 가려라. 그러면 말이 곧 이치를 얻는다.

58조정의 예를 고치다

秋九月,改朝禮。因以詔之曰:「凡出入宫門,以兩手押地,兩脚跪之。越梱則立行。」

가을 구월에 조정의 예를 고쳤다. 이로 인하여 조를 내렸다. "무릇 궁문에 드나들 때 두 손을 땅에 짚고 두 다리로 꿇어라. 문지방을 넘으면 일어나 걸어라."

59화사를 정하다

是月,始定黄書畫師、山背畫師。

이달에 처음으로 기부미노에시와 야마시로노에시를 정하였다.

60장륙 불상을 만들기 시작하다

夏四月辛酉朔,天皇詔皇太子、大臣及諸王、諸臣,共同發誓願,以始造銅繍丈六佛像各一軀,乃命鞍作鳥爲造佛之工。是時,高麗國大興王聞日本國天皇造佛像,貢上黄金三百兩。

여름 사월 신유 초하루에 천황이 황태자와 대신과 여러 왕과 여러 신하에게 조를 내려 함께 서원을 내고, 구리와 수놓은 장륙 불상 각 한 구를 만들기 시작하였다. 이에 구라쓰쿠리노토리에게 명하여 불상 만드는 장인으로 삼았다.

이때 고려국 대흥왕(大興王)이 일본국 천황이 불상을 만든다는 말을 듣고 황금 삼백 냥을 바쳤다.

61주름옷을 입게 하다

閏七月己未朔,皇太子命諸王、諸臣,俾著褶。

윤칠월 기미 초하루에 황태자가 여러 왕과 여러 신하에게 명하여 주름옷을 입게 하였다.

62이카루가노미야

冬十月,皇太子居斑鳩宫。

겨울 시월에 황태자가 이카루가노미야에 살았다.

63장륙 불상이 이루어지다

夏四月乙酉朔壬辰,銅繍丈六佛像並造竟。是日也,丈六銅像坐於元興寺金堂。時,佛像高於金堂户,以不得納堂。於是,諸工人等議曰:「破堂户而納之。」然鞍作鳥之秀工,以不壞户得入堂。即日設齋。於是,會集人衆不可勝數。自是年初,毎寺四月八日、七月十五日設齊。

여름 사월 을유 초하루 임진일에 구리와 수놓은 장륙 불상이 아울러 이루어졌다. 이날 장륙 구리 불상이 간고지(元興寺)의 금당에 앉았다.

그때 불상이 금당 문보다 높아 당에 들일 수 없었다. 이에 여러 장인이 의논하였다. "당의 문을 부수고 들이자."

그러나 구라쓰쿠리노토리의 빼어난 솜씨로 문을 부수지 않고 당에 들일 수 있었다.

그날로 재를 베풀었다. 이에 모여든 사람이 헤아릴 수 없었다. 이해부터 절마다 사월 팔일과 칠월 십오일에 재를 베풀었다.

64구라쓰쿠리노토리에게 상 주다

五月甲寅朔戊午,勅鞍作鳥曰:「朕欲興隆内典,方將建佛刹,肇求舍利。時,汝祖父司馬達等便獻舍利。又於國無僧尼,於是,汝父多須那爲橘豐日天皇出家,恭敬佛法。又汝姨嶋女,初出家爲諸尼導者,以修行釋教。今朕爲造丈六佛,以求好佛像,汝之所獻佛本,則合朕心。又造佛像既訖,不得入堂,諸工人不能計,以將破堂户,然汝不破户而得入,此皆汝之功也。」即賜大仁位,因以給近江國坂田郡水田廿町焉。鳥以此田爲天皇作金剛寺,是今謂南淵坂田尼寺。

오월 갑인 초하루 무오일에 구라쓰쿠리노토리에게 칙명하였다.

"짐이 안의 가르침을 일으켜 융성하게 하고자 바야흐로 절을 세우려 하여 처음으로 사리를 구하였다. 그때 네 할아버지 시바닷토가 곧 사리를 바쳤다.

또 나라에 승려와 비구니가 없었는데, 이에 네 아비 다스나가 다치바나노토요히천황을 위하여 출가하여 불법을 공경하였다. 또 네 고모 시마메가 처음 출가하여 여러 비구니의 이끄는 이가 되어 부처의 가르침을 수행하였다.

이제 짐이 장륙 불상을 만들려고 좋은 불상을 구하매 네가 바친 불상의 본이 곧 짐의 마음에 맞았다. 또 불상을 이미 만들고 나서 당에 들이지 못하여 여러 장인이 헤아리지 못하고 당의 문을 부수려 하였는데, 네가 문을 부수지 않고 들일 수 있었다. 이는 다 네 공이다."

곧 대인(大仁) 자리를 주고 이어 오미국 사카타군의 논 스무 정을 주었다. 토리가 이 밭으로 천황을 위하여 곤고지(金剛寺)를 지으니, 이것이 이제 이르는 미나부치의 사카타니지다.

65승만경을 강하다

秋七月,天皇請皇太子令講勝鬘經,三日,説竟之。

가을 칠월에 천황이 황태자에게 청하여 승만경(勝鬘經)을 강하게 하니 사흘에 다 설하였다.

66법화경을 강하다

是歳,皇太子亦講法華經於岡本宫。天皇大喜之,播磨國水田百町施于皇太子,因以納于斑鳩寺。

이해에 황태자가 또 오카모토노미야에서 법화경을 강하였다. 천황이 크게 기뻐하여 하리마국의 논 백 정을 황태자에게 베풀었다. 이로 인하여 이카루가데라에 들였다.

67신들에게 제사하라

春二月庚辰朔,定壬生部。戊子,詔曰:「朕聞之,曩者我皇祖天皇等宰世也,跼天蹐地,敦禮神祗,周祠山川,幽通乾坤,是以陰陽開和,造化共調。今當朕世,祭祀祇神,豈有怠乎?故羣臣共爲竭心,宜拜神祗。」甲午,皇太子及大臣率百寮,以祭拜神祗。

봄 이월 경진 초하루에 미부베를 정하였다.

무자일에 조를 내렸다. "짐이 듣건대 지난날 우리 황조 천황들이 세상을 다스릴 때 하늘에 몸을 굽히고 땅에 발끝으로 걸으며, 신들에게 예를 도타이 하고 산과 내에 두루 제사하여 그윽이 하늘땅에 통하였다 한다. 이 때문에 음양이 열려 화하고 조화가 함께 고루었다. 이제 짐의 대에 신들에게 제사함에 어찌 게으름이 있겠는가. 그러므로 여러 신하는 함께 마음을 다하여 마땅히 신들에게 절하라."

갑오일에 황태자와 대신이 온갖 벼슬아치를 거느리고 신들에게 제사하고 절하였다.

68오노노이모코를 수나라에 보내다

秋七月戊申朔庚戌,大禮小野臣妹子遣於大唐,以鞍作福利爲通事。

가을 칠월 무신 초하루 경술일에 대례 오노노오미 이모코를 대당(大唐)에 보내고 구라쓰쿠리노후쿠리를 통역으로 삼았다.

69못을 만들다

是歳冬,於倭國作高市池、藤原池、肩岡池、菅原池。山背國掘大溝於栗隈。且河内國作户苅池、依網池。亦毎國置屯倉。

이해 겨울에 야마토국에 다케치 못과 후지와라 못과 가타오카 못과 스가와라 못을 만들었다. 야마시로국에는 구리쿠마에 큰 도랑을 팠다. 또 가와치국에 헤카리 못과 요사미 못을 만들었다. 또한 나라마다 둔창을 두었다.

70배세청이 오다

夏四月,小野臣妹子至自大唐。唐圀號妹子臣曰蘇因高。即大唐使人裴世清、下客十二人,從妹子臣至於筑紫。遣難波吉士雄成,召大唐客裴世清等,爲唐客更造新舘於難波高麗舘之上。

여름 사월에 오노노오미 이모코가 대당에서 이르렀다. 당나라가 이모코노오미를 소인고(蘇因高)라 불렀다.

곧 대당 사자 배세청(裴世清)과 딸린 손님 열두 사람이 이모코노오미를 따라 쓰쿠시에 이르렀다. 나니와노키시 오나리를 보내어 대당 손님 배세청들을 불렀다. 당나라 손님을 위하여 다시 나니와의 고려 객관 위에 새 객관을 지었다.

71이모코가 국서를 잃다

六月壬寅朔丙辰,客等泊于難波津。是日,以餝舩卅艘迎客等于江口,安置新舘。於是,以中臣宫地連摩呂、大河内直糠手、舩史王平爲掌客。爰妹子臣奏之曰:「臣參還之時,唐帝以書授臣。然經過百濟國之日,百濟人探以掠取,是以不得上。」於是,羣臣議之曰:「夫使人雖死之,不失旨,是使矣。何(矣何)怠之,失大國之書哉?」則坐流刑。時,天皇勅之曰:「妹子雖有失書之罪,輙不可罪。其大國客等聞之,亦不良。」乃赦之不坐也。

유월 임인 초하루 병진일에 손님들이 나니와 나루에 닿았다. 이날 꾸민 배 서른 척으로 손님들을 강 어귀에서 맞아 새 객관에 두었다. 이에 나카토미노미야도코로노무라지 마로와 오시코우치노아타이 누카테와 후네노후비토 오히라를 손님 맡은 이로 삼았다.

이에 이모코노오미가 아뢰었다. "신이 돌아올 때 당나라 임금이 글을 신에게 주었습니다. 그러나 백제국을 지나던 날에 백제 사람이 뒤져 빼앗았습니다. 이 때문에 올리지 못하였습니다."

이에 여러 신하가 의논하였다. "무릇 사자란 죽더라도 뜻을 잃지 않는 것이 사자다. 어찌 게을리하여 큰 나라의 글을 잃었는가." 곧 귀양 보내는 형벌에 놓였다.

그때 천황이 칙명하였다. "이모코가 비록 글을 잃은 죄가 있으나 문득 죄줄 수 없다. 저 큰 나라 손님들이 들으면 또한 좋지 않다." 이에 놓아주고 죄에 놓지 않았다.

72수나라의 국서

秋八月辛丑朔癸卯,唐客入京。是日,遺餝騎七十五疋而迎唐客於海石榴市衢。額田部連比羅夫以告禮辭焉。壬子,召唐客於朝庭,令奏使旨。時,阿倍鳥臣、物部依網連抱二人爲客之導者也。於是,大唐之國信物置於庭中。時,使主裴世清親持書,兩度再拜,言上使旨而立。其書曰:「皇帝問倭皇。使人長吏大禮蘇因高等至,具懷。朕欽承寶命,臨仰區宇,思弘德化,覃被含靈,愛育之情,無隔遐迩。知皇介居海表,撫寧民庶,境内安樂,風俗融和,深氣至誠,達脩朝貢。丹款之美,朕有嘉焉。稍暄,比如常也。故遣鴻臚寺掌客裴世清等,稍宣往意,并送物如別。」時,阿倍臣出進,以受其書而進行。大伴囓連迎出,承書置於大門前机上而奏之。事畢而退焉。是時,皇子、諸王、諸臣悉以金髻華著頭,亦衣服皆用錦、紫、繍、織及五色綾羅。丙辰,饗唐客等於朝。

가을 팔월 신축 초하루 계묘일에 당나라 손님이 서울에 들었다. 이날 꾸민 말 일흔다섯 필을 보내어 당나라 손님을 쓰바키치 거리에서 맞았다. 누카타베노무라지 히라부가 예의 말로 알렸다.

임자일에 당나라 손님을 조정에 불러 사자의 뜻을 아뢰게 하였다. 그때 아베노토리노오미와 모노노베노요사미노무라지 아쿠 두 사람이 손님의 이끄는 이가 되었다.

이에 대당의 나라 예물을 뜰 가운데 두었다. 그때 사자의 우두머리 배세청이 몸소 글을 들고 두 번 두 번 절하고 사자의 뜻을 말하여 올리고 섰다. 그 글에 이르렀다.

"황제가 왜황(倭皇)에게 묻는다. 사자로 온 장리(長吏) 대례 소인고들이 이르러 뜻을 갖추어 알렸다. 짐이 보배로운 명을 공경히 이어받아 온 세상에 임하여 우러르며, 덕과 교화를 넓혀 넋 있는 것에 두루 미치게 하려 생각한다. 사랑하여 기르는 마음에 멀고 가까움의 막힘이 없다.

황(皇)이 바다 밖에 끼어 살면서 백성을 어루만져 편안히 하고 지경 안이 편안하고 즐거우며 풍속이 녹아 화합함을 안다. 깊은 기운과 지극한 정성으로 이르러 조공을 닦았으니, 붉은 정성의 아름다움을 짐이 가상히 여긴다.

차츰 따뜻해지니 요사이 늘 같다. 그러므로 홍려시의 손님 맡은 배세청들을 보내어 차츰 간 뜻을 펴고 아울러 물건을 따로 적은 대로 보낸다."

그때 아베노오미가 나아가 그 글을 받아 나아갔다. 오토모노쿠이노무라지가 맞아 나와 글을 받아 큰 문 앞 상 위에 놓고 아뢰었다. 일이 끝나고 물러났다.

이때 황자와 여러 왕과 여러 신하가 다 금으로 만든 우즈를 머리에 달고, 옷은 다 비단과 자주와 수놓은 것과 짠 것과 오색 무늬 비단을 썼다.

병진일에 당나라 손님들을 조정에서 대접하였다.

협주 1

一云。服色皆用冠色

일설에는 옷 빛깔을 다 관의 빛깔대로 하였다 한다.

73동쪽 천황이 서쪽 황제에게

九月辛末朔乙亥,饗客等於難波大郡。辛巳,唐客裴世清罷歸,則復以小野妹子臣爲大使,吉士雄成爲小使,福利爲通事,副于唐客而遺之。爰天皇聘唐帝,其辭曰:「東天皇敬白西皇帝。使人鴻臚寺掌客裴世清等至,久憶方解。季秋薄冷,尊何如?想清悆,此即如常。今遣大禮蘇因高、大禮乎那利等往。謹白不具。」是時,遣於唐國學生倭漢直福因、奈羅譯語惠明、高向漢人玄理、新漢人大圀、學問僧新漢人日文、南淵漢人請安、志賀漢人慧隱、新漢人廣濟等,并八人也。

구월 신미 초하루 을해일에 손님들을 나니와의 오코리에서 대접하였다.

신사일에 당나라 손님 배세청이 돌아갔다. 곧 다시 오노노이모코노오미를 대사로 삼고 기시노오나리를 소사로 삼고 후쿠리를 통역으로 삼아, 당나라 손님에 딸려 보냈다.

이에 천황이 당나라 임금에게 안부를 전하니 그 말에 이르렀다.

"동쪽 천황이 삼가 서쪽 황제에게 아뢴다(東天皇敬白西皇帝). 사자로 온 홍려시의 손님 맡은 배세청들이 이르러 오랜 그리움이 바야흐로 풀렸다. 늦가을이라 조금 서늘한데 높으신 몸이 어떠하신가. 생각건대 맑고 편안하시리라. 이곳도 곧 늘 같다. 이제 대례 소인고와 대례 오나리들을 보낸다. 삼가 아뢰며 다 갖추지 못한다."

이때 당나라에 보낸 학생은 야마토노아야노아타이 후쿠인과 나라노오사 에묘와 다카무코노아야히토 겐리와 이마키노아야히토 오쿠니요, 학문승은 이마키노아야히토 니치몬과 미나부치노아야히토 쇼안과 시가노아야히토 에온과 이마키노아야히토 고사이니 아울러 여덟 사람이다.

74신라 사람이 많이 오다

是歳,新羅人多化來。

이해에 신라 사람이 많이 귀화해 왔다.

75백제 사람이 표류해 오다

夏四月丁酉朔庚子,筑紫大宰奏上言:「百濟僧道欣、惠彌爲首一十人、俗人七十五人,泊于肥後國葦北津。」是時,遣難波吉士德摩呂、舩史龍以問之曰:「何來也?」對曰:「百濟王命以遣於呉國,其國有亂,不(得)入,更返於本郷。忽逢暴風,漂蕩海中,然有大幸而泊于聖帝之邊境,以歡喜。」

여름 사월 정유 초하루 경자일에 쓰쿠시의 오미코토모치가 아뢰었다. "백제 승려 도흔(道欣)과 혜미(惠彌)를 우두머리로 열 사람과 속인 일흔다섯 사람이 히고국 아시키타 나루에 닿았습니다."

이때 나니와노키시 도쿠마로와 후네노후비토 다쓰를 보내어 물었다. "어찌 왔는가."

답하였다. "백제 왕이 명하여 오나라에 보냈는데, 그 나라에 어지러움이 있어 들어가지 못하고 다시 본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홀연히 사나운 바람을 만나 바다 가운데 떠돌았습니다. 그러나 큰 다행으로 성스러운 임금의 지경에 닿았으니 기쁩니다."

76열한 사람이 남다

五月丁卯朔壬午,德摩呂等復奏之,則返德摩呂、龍二人,而副百濟人等送本國。至于對馬,以道人等十一皆請之欲留,乃上表而留之,因令住元興寺。

오월 정묘 초하루 임오일에 도쿠마로들이 다시 아뢰었다. 곧 도쿠마로와 다쓰 두 사람을 돌려보내어 백제 사람들을 본국까지 딸려 보냈다.

쓰시마에 이르러 도인들 열한 사람이 다 청하여 머무르고자 하였다. 이에 표를 올려 머물게 하고, 이로 인하여 간고지에 살게 하였다.

77이모코가 돌아오다

秋九月,小野臣妹子等至自大唐,唯通事福利不來。

가을 구월에 오노노오미 이모코들이 대당에서 이르렀다. 오직 통역 후쿠리는 오지 않았다.

78담징이 오다

春三月,高麗王貢上僧曇徴、法定。曇徴知五經,且能作彩色及紙墨,并造碾磑。盖造碾磑,始于是時歟。

봄 삼월에 고려 왕이 승려 담징(曇徴)과 법정(法定)을 바쳤다. 담징은 오경을 알고 또 능히 채색과 종이와 먹을 만들며 아울러 연자방아를 만들었다. 아마 연자방아를 만든 것이 이때에 비롯되었는가.

79신라와 임나 사자

秋七月,新羅使人沙喙部奈末竹世士,與任那使人喙部大舍首智買,到于筑紫。

가을 칠월에 신라 사자 사탁부 나말 죽세사(竹世士)와 임나 사자 탁부 대사 수지매(首智買)가 쓰쿠시에 이르렀다.

80사자를 부르다

九月,遣使召新羅、任那使人。

구월에 사자를 보내어 신라와 임나 사자를 불렀다.

81두 나라 사자가 조회하다

冬十月己丑朔丙申,新羅、任那使人臻於京。是日,命額田部連比羅夫爲迎新羅客莊馬之長,以膳臣大伴爲迎任那客莊馬之長,即安置阿斗河邊舘。丁酉,客等拜朝庭。於是,命秦造河勝、土部連菟爲新羅導者,以間人連鹽蓋、阿閇臣大籠爲任那導者,共引以自南門入之,立于庭中。時,大伴咋連、蘇我豐浦蝦夷臣、坂本糠手臣、阿倍鳥子臣,共自位起之,進伏于庭。於是,兩國客等各再拜以奏使旨。乃四大夫起進,啓於大臣。時,大臣自位起,立廳前而聽焉。既而賜禄諸客,各有差。乙巳,饗使人等於朝。以河内漢直贄爲新羅共食者,錦織首久僧爲任那共食者。辛亥,客等禮畢以歸焉。

겨울 시월 기축 초하루 병신일에 신라와 임나 사자가 서울에 이르렀다. 이날 누카타베노무라지 히라부에게 명하여 신라 손님 맞는 말 꾸미는 어른으로 삼고, 가시와데노오미 오토모로 임나 손님 맞는 말 꾸미는 어른으로 삼았다. 곧 아토의 냇가 객관에 두었다.

정유일에 손님들이 조정에 절하였다. 이에 하타노미야쓰코 가와카쓰와 하지노무라지 우를 신라의 이끄는 이로 삼고, 하시히토노무라지 시오부타와 아헤노오미 오코를 임나의 이끄는 이로 삼아, 함께 이끌어 남문으로 들어와 뜰 가운데 세웠다.

그때 오토모노쿠이노무라지와 소가노토유라노에미시노오미와 사카모토노누카테노오미와 아베노토리코노오미가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 나아가 뜰에 엎드렸다.

이에 두 나라 손님들이 각각 두 번 절하고 사자의 뜻을 아뢰었다. 이에 네 대부가 일어나 나아가 대신에게 아뢰었다. 그때 대신이 자리에서 일어나 마루 앞에 서서 들었다. 이윽고 여러 손님에게 녹을 주되 각각 차등이 있었다.

을사일에 사자들을 조정에서 대접하였다. 가와치노아야노아타이 니에를 신라와 함께 먹는 이로 삼고 니시고리노오비토 구소를 임나와 함께 먹는 이로 삼았다.

신해일에 손님들이 예를 마치고 돌아갔다.

82약초 사냥

夏五月五日,藥獦於兎田野。取鷄鳴時集于藤原池上,以會明乃往之。粟田細目臣爲前部領,額田部比羅夫連爲後部領。是日,諸臣服色皆隨冠色,各著髻華。則大德、小德並用金;大仁、小仁用豹尾;大禮以下用鳥尾。

여름 오월 오일에 우다노에서 약초 사냥을 하였다. 닭 우는 때에 후지와라 못 위에 모여 날이 밝으매 갔다.

아와타노호소메노오미가 앞 무리의 어른이 되고 누카타베노히라부노무라지가 뒤 무리의 어른이 되었다.

이날 여러 신하의 옷 빛깔을 다 관의 빛깔에 따르게 하고 각각 우즈를 달았다. 곧 대덕과 소덕은 아울러 금을 쓰고, 대인과 소인은 표범 꼬리를 쓰고, 대례 아래는 새 꼬리를 썼다.

83신라와 임나가 조공하다

秋八月,新羅遣沙喙部奈末北叱智,任那遣習部大舍親智周智,共朝貢。

가을 팔월에 신라가 사탁부 나말 북질지(北叱智)를 보내고 임나가 습부 대사 친지주지(親智周智)를 보내어 함께 조공하였다.

84잔치를 베풀다

春正月辛巳朔丁亥,置酒宴羣卿。是日,大臣上壽。

봄 정월 신사 초하루 정해일에 술자리를 베풀어 여러 대신에게 잔치하였다. 이날 대신이 축수를 올렸다.

85대신이 노래하다

歌曰:

노래하였다.

86노래 — 소가노우마코

夜須瀰志斯。和餓於朋耆瀰能。訶勾理摩須。阿摩能椰蘇河礙。異泥多多須。彌蘇羅烏瀰禮麼。豫呂豆余珥。訶勾志茂餓茂。知余珥茂。訶勾志茂餓茂。訶之胡瀰弖。莬伽陪摩都羅武。烏呂餓瀰弖。莬伽倍摩都羅武。宇多豆紀麻都流。

「야스미시시 와가오호키미노 가쿠리마스 아마노야소카게 이데타타스 미소라오미레바 요로즈요니 가쿠시모가모 지요니모 가쿠시모가모 가시코미테 쓰카헤마쓰라무 오로가미테 쓰카헤마쓰라무 우타즈키마쓰루(夜須瀰志斯。和餓於朋耆瀰能。訶勾理摩須。阿摩能椰蘇河礙。異泥多多須。彌蘇羅烏瀰禮麼。豫呂豆余珥。訶勾志茂餓茂。知余珥茂。訶勾志茂餓茂。訶之胡瀰弖。莬伽陪摩都羅武。烏呂餓瀰弖。莬伽倍摩都羅武。宇多豆紀麻都流)」

— 소리를 적은 것이라 뜻으로 옮기지 않는다.

87천황이 화답하다

天皇和曰:

천황이 화답하였다.

88노래 — 천황

摩蘇餓豫。蘇餓能古羅破。宇摩奈羅麼。譬武伽能古摩。多智奈羅麼。勾禮能摩差比。宇倍之訶茂。蘇餓能古羅烏。於朋枳瀰能。莬伽破須羅志枳。

「마소가요 소가노코라와 우마나라바 히무카노코마 다치나라바 구레노마사히 우베시카모 소가노코라오 오호키미노 쓰카하스라시키(摩蘇餓豫。蘇餓能古羅破。宇摩奈羅麼。譬武伽能古摩。多智奈羅麼。勾禮能摩差比。宇倍之訶茂。蘇餓能古羅烏。於朋枳瀰能。莬伽破須羅志枳)」

— 소리를 적은 것이라 뜻으로 옮기지 않는다.

89기타시히메를 옮겨 장사 지내다

二月辛亥朔庚午,改葬皇太夫人堅鹽媛於檜隈大陵。是日,誄於輕街。第一,阿倍内臣鳥誄天皇之命,則奠靈明器明衣之類萬五千種也。第二,諸皇子等以次第各誄之。第三,中臣宫地連烏摩侶誄大臣之辭。第四,大臣引率八腹臣等,便以境部臣摩理勢令誄氏姓之本矣。時人云:「摩理勢、烏摩侶二人能誄,唯鳥臣不能誄也。」

이월 신해 초하루 경오일에 황태부인 기타시히메를 히노쿠마의 오호노미사사기에 옮겨 장사 지냈다.

이날 가루의 거리에서 조사를 읽었다. 첫째로 아베노우치노오미 도리가 천황의 명으로 조사를 읽고, 곧 신령한 밝은 그릇과 밝은 옷 따위 만 오천 가지를 올렸다. 둘째로 여러 황자들이 차례로 각각 조사를 읽었다. 셋째로 나카토미노미야도코로노무라지 오마로가 대신의 말로 조사를 읽었다. 넷째로 대신이 여덟 겨레의 오미들을 거느리고, 곧 사카이베노오미 마리세로 씨와 성의 뿌리를 조사로 읽게 하였다.

그때 사람들이 말하였다. "마리세와 오마로 두 사람은 조사를 잘 읽었으나 오직 도리노오미는 조사를 읽지 못하였다."

90다시 약초 사냥

夏五月五日,藥獦之,集于羽田,以相連參趣於朝。其裝束如莬田之獵。

여름 오월 오일에 약초 사냥을 하였다. 하타에 모여 서로 이어 조정으로 나아갔다. 그 차림은 우다의 사냥 때와 같았다.

91노노코노타쿠미와 미마지

是歳,自百濟國有化來者,其面身皆斑白,若有白癩者乎。惡其異於人,欲棄海中嶋。然其人曰:「若惡臣之斑皮者,白斑牛馬不可畜於國中。亦臣有小才,能構山岳之形。其留臣而用,則爲國有利,何空之棄海嶋耶?」於是,聽其辭以不弃,仍令構須彌山形及呉橋於南庭。時人號其人曰路子工,亦名芝耆摩呂。又百濟人味摩之歸化,曰:「學于呉,得伎樂儛。」則安置櫻井,而集少年令習伎樂儛。於是,眞野首弟子、新漢齊文二人,習之傅其儛。此今大市首、辟田首等祖也。

이해에 백제국에서 귀화해 온 이가 있었다. 그 얼굴과 몸이 다 얼룩지고 희어 흰 문둥병이 있는 듯하였다. 그 남과 다름을 싫어하여 바다 가운데 섬에 버리려 하였다.

그러나 그 사람이 말하였다. "만약 신의 얼룩진 살갗을 싫어하신다면 흰 얼룩 있는 소와 말도 나라 안에 기르지 못할 것입니다. 또 신에게 작은 재주가 있어 능히 산악의 모양을 얽을 수 있습니다. 신을 머물러 쓰시면 나라에 이로움이 있을 것이니 어찌 헛되이 바다 섬에 버리십니까."

이에 그 말을 들어 버리지 않고, 이어 수미산(須彌山) 모양과 오나라 다리를 남쪽 뜰에 얽게 하였다. 그때 사람들이 그를 이름하여 노노코노타쿠미(路子工)라 하고 또 이름을 시키마로라 하였다.

또 백제 사람 미마지(味摩之)가 귀화하여 말하였다. "오나라에서 배워 기악춤(伎樂儛)을 얻었습니다."

곧 사쿠라이에 두고 소년을 모아 기악춤을 익히게 하였다. 이에 마노노오비토 데시와 이마키노아야노사이몬 두 사람이 익혀 그 춤을 전하였다. 이가 이제 오이치노오비토와 사키타노오비토들의 조상이다.

92못과 큰길

冬十一月,作掖上池、畝傍池、和珥池。又自難波至京置大道。

겨울 십일월에 와키노카미 못과 우네비 못과 와니 못을 만들었다. 또 나니와에서 서울까지 큰길을 두었다.

93가타오카의 굶주린 이

十二月庚午朔,皇太子遊行於片岡。時,飢者臥道垂,仍問姓名,而不言。皇太子視之,與飲食,即脱衣裳覆飢者而言:「安臥也。」則歌之曰:

십이월 경오 초하루에 황태자가 가타오카에 놀러 갔다. 그때 굶주린 이가 길가에 누웠다. 이어 성과 이름을 물었으나 말하지 않았다.

황태자가 보고 마실 것과 먹을 것을 주고, 곧 옷을 벗어 굶주린 이를 덮어 주며 말하였다. "편안히 누워라." 곧 노래하였다.

94노래 — 황태자

斯那提流。箇多烏箇夜摩爾。伊比爾惠弖。許夜勢屡。諸能多比等。阿波禮。於夜那斯爾。那禮奈理鷄迷夜。佐須陀氣能。枳彌波夜(那)祗伊比爾惠弖。許夜勢留。諸能多比等阿波禮。

「시나테루 가타오카야마니 이히니에테 고야세루 소노타비토 아하레 오야나시니 나레나리케메야 사스타케노 기미와야나키 이히니에테 고야세루 소노타비토아하레(斯那提流。箇多烏箇夜摩爾。伊比爾惠弖。許夜勢屡。諸能多比等。阿波禮。於夜那斯爾。那禮奈理鷄迷夜。佐須陀氣能。枳彌波夜那祗伊比爾惠弖。許夜勢留。諸能多比等阿波禮)」

— 소리를 적은 것이라 뜻으로 옮기지 않는다.

95굶주린 이가 성인이었다

辛未,皇太子遣使令視飢者。使者還來之曰:「飢者既死。」爰皇太子大悲之,則因以葬埋於當處,墓固封也。數日之後,皇太子召近習(先)者謂之曰:「先日臥于道飢者,其非凡人,(爲)必眞人也。」遣使令視。於是,使者還來之曰:「到於墓所而視之,封埋勿動。乃開以見,屍骨既空,唯衣服疊置棺上。」於是,皇太子復返使者令取其衣,如常且服矣。時人大異之曰:「聖之知聖,其實哉!」逾惶。

신미일에 황태자가 사자를 보내어 굶주린 이를 보게 하였다. 사자가 돌아와 말하였다. "굶주린 이가 이미 죽었습니다."

이에 황태자가 크게 슬퍼하여 곧 그곳에 묻고 무덤을 굳게 봉하였다.

며칠 뒤에 황태자가 가까이 모시는 이를 불러 일렀다. "지난날 길에 누웠던 굶주린 이는 예사 사람이 아니다. 반드시 참사람이다." 사자를 보내어 보게 하였다.

이에 사자가 돌아와 말하였다. "무덤에 이르러 보니 봉하여 묻은 것이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이에 열어 보니 주검과 뼈가 이미 비었고 오직 옷만 접혀 널 위에 놓여 있었습니다."

이에 황태자가 다시 사자를 돌려보내어 그 옷을 가져오게 하여 늘 하던 대로 또 입었다. 그때 사람들이 크게 이상히 여겨 말하였다. "성인이 성인을 아는 것이 참이로다." 더욱 두려워하였다.

96약초 사냥

夏五月五日,藥獦也。

여름 오월 오일에 약초 사냥을 하였다.

97이누카미노키미를 수나라에 보내다

六月丁卯朔己卯,遣犬上君御田鍬、矢田部造於大唐。

유월 정묘 초하루 기묘일에 이누카미노키미 미타스키와 야타베노미야쓰코를 대당에 보냈다.

협주 1

闕名

이름이 빠졌다.

98대신이 병들다

秋八月,大臣臥病,爲大臣而男女并一千人出家。

가을 팔월에 대신이 병들어 누웠다. 대신을 위하여 남녀 아울러 천 사람이 출가하였다.

99미타스키가 돌아오다

秋九月,犬上君御田鍬、矢田部造至自大唐。百濟使則從犬上君而來朝。

가을 구월에 이누카미노키미 미타스키와 야타베노미야쓰코가 대당에서 이르렀다. 백제 사자가 곧 이누카미노키미를 따라 와서 조회하였다.

100혜자가 돌아가다

十一月己丑朔庚寅,饗百濟客矣。癸卯,高麗僧慧慈歸于國。

십일월 기축 초하루 경인일에 백제 손님을 대접하였다. 계묘일에 고려 승려 혜자가 나라로 돌아갔다.

101복숭아와 오얏이 열매 맺다

春正月,桃李實之。

봄 정월에 복숭아와 오얏이 열매를 맺었다.

102야쿠 사람이 오다

三月,掖玖人三口歸化。夏五月,夜勾人七口來之。秋七月,亦掖玖人廿口來之。先後并卅人,皆安置於朴井,未及還皆死焉。

삼월에 야쿠 사람 셋이 귀화하였다. 여름 오월에 야쿠 사람 일곱이 왔다. 가을 칠월에 또 야쿠 사람 스물이 왔다. 앞뒤로 아울러 서른 사람이었다. 다 에노이에 두었는데 돌아가기 전에 다 죽었다.

103신라가 불상을 바치다

秋七月,新羅遣奈末竹世士貢佛像。

가을 칠월에 신라가 나말 죽세사를 보내어 불상을 바쳤다.

104큰 오이

夏六月,出雲國言,於神户郡有苽,大如缶。

여름 유월에 이즈모국이 말하였다. "간베군에 오이가 있어 크기가 두레박만 합니다."

105오곡이 잘 익다

是歳,五穀登之。

이해에 오곡이 잘 익었다.

106고려가 수나라를 물리치다

秋八月癸酉朔,高麗遣使貢方物,因以言:「隋煬帝興卅萬衆攻我,返之爲我所破。故貢獻俘虜貞公、普通二人,及鼓吹、弩、抛石之類十物,并土物駱駝一疋。」

가을 팔월 계유 초하루에 고려가 사자를 보내어 토산물을 바쳤다. 이로 인하여 말하였다.

"수(隋)나라 양제(煬帝)가 삼십만 무리를 일으켜 우리를 쳤는데, 돌이켜 우리에게 깨어졌습니다. 그러므로 사로잡은 포로 정공(貞公)과 보통(普通) 두 사람과, 북과 피리와 쇠뇌와 돌 던지는 기계 따위 열 가지와 아울러 토산물인 낙타 한 마리를 바칩니다."

107벼락 맞은 나무로 배를 만들다

是年,遣河邊臣於安藝國令造舶。至山覓舶材,便得好材,以名將伐。時有人曰:「霹靂木也,不可伐。」河邊臣曰:「其雖雷神,豈逆皇命耶?」多祭弊帛,遣人夫令伐,則大雨雷電之。爰河邊臣案劔曰:「雷神無犯人夫,當傷我身。」而仰待之。雖十餘霹靂,不得犯河邊臣,即化少魚以挾樹枝。即取魚焚之,遂修理其舶。

이해에 가와베노오미를 아키국에 보내어 배를 짓게 하였다. 산에 이르러 뱃재목을 찾아 곧 좋은 재목을 얻어 베려 하였다.

그때 어떤 사람이 말하였다. "벼락나무이니 벨 수 없습니다."

가와베노오미가 말하였다. "그것이 비록 우레 신이라 한들 어찌 임금의 명을 거스르겠는가."

폐백을 많이 올리고 인부를 보내어 베게 하였다. 곧 큰비가 내리고 우레와 번개가 쳤다.

이에 가와베노오미가 칼을 어루만지며 말하였다. "우레 신이여, 인부를 범하지 말고 마땅히 내 몸을 상하게 하라." 그러고는 우러러 기다렸다.

비록 열 남짓 벼락이 쳤으나 가와베노오미를 범하지 못하였다. 곧 작은 물고기로 변하여 나뭇가지에 끼었다. 곧 물고기를 가져다 태우고 마침내 그 배를 지었다.

협주 1

闕名

이름이 빠졌다.

108사람 같은 것

夏四月己亥朔壬寅,近江國言,於蒲生河有物,其形如人。

여름 사월 기해 초하루 임인일에 오미국이 말하였다. "가모의 강에 물건이 있어 그 모양이 사람 같습니다."

109고기도 사람도 아닌 것

秋七月,攝津國有漁父,沈罟於堀江,有物入罟,其形如兒,非魚非人,不知所名。

가을 칠월에 셋쓰국에 어부가 있어 호리에에 그물을 담갔더니 물건이 그물에 들었다. 그 모양이 아이 같은데 고기도 아니고 사람도 아니어서 이름 붙일 바를 알지 못하였다.

110야쿠 사람이 떠 오다

秋八月,掖玖人二口流來於伊豆嶋。

가을 팔월에 야쿠 사람 둘이 이즈섬에 떠 왔다.

111히노쿠마 능

冬十月,以砂礫葺檜隈陵上,則域外積土成山,仍每氏科之,建大柱於土山上。時,倭漢坂上直樹柱,勝之太高,故時人號之曰大柱直也。

겨울 시월에 자갈로 히노쿠마 능 위를 덮고, 곧 지경 밖에 흙을 쌓아 산을 이루었다. 이어 씨마다 매겨 흙산 위에 큰 기둥을 세우게 하였다.

그때 야마토노아야노사카노우에노아타이가 세운 기둥이 뛰어나게 몹시 높았다. 그러므로 그때 사람들이 그를 이름하여 오하시라노아타이라 하였다.

112붉은 기운

十二月庚寅朔,天有赤氣,長一丈餘,形似雉尾。

십이월 경인 초하루에 하늘에 붉은 기운이 있어 길이가 한 길 남짓하고 모양이 꿩의 꼬리 같았다.

113천황기와 국기를 적다

是歳,皇太子、嶋大臣共議之,録天皇記及國記、臣連伴造國造百八十部并公民等本記。

이해에 황태자와 시마노오오미가 함께 의논하여, 천황기(天皇記)와 국기(國記)와 오미와 무라지와 도모노미야쓰코와 구니노미야쓰코와 백여든 부와 아울러 공민들의 본기(本記)를 적었다.

114황태자가 죽다

春二月己丑朔癸巳,半夜,廐户豐聰耳皇子命薨于斑鳩宫。是時,諸王、諸臣及天下百姓,悉長老如失愛兒,而鹽酢之味在口不嘗;少幼者如亡慈父母,以哭泣之聲滿於行路。乃耕夫止耜,舂女不杵,皆曰:「日月失輝,天地既崩。自今以後,誰恃哉?」

봄 이월 기축 초하루 계사일 밤중에 우마야도노토요토미미 황자노미코토가 이카루가노미야에서 죽었다.

이때 여러 왕과 여러 신하와 천하 백성이, 늙은이는 다 사랑하는 아이를 잃은 듯하여 소금과 초의 맛이 입에 있어도 맛을 알지 못하고, 젊은이는 자애로운 어버이를 잃은 듯하여 곡하고 우는 소리가 길에 가득하였다.

이에 밭 가는 이가 쟁기를 멈추고 방아 찧는 여인이 공이를 놓고 다 말하였다. "해와 달이 빛을 잃고 하늘땅이 이미 무너졌다. 이제부터 누구를 믿겠는가."

115혜자가 뒤따라 죽다

是月,葬上宫太子於磯長陵。當是時,高麗僧慧慈聞上宫皇太子薨,以大悲之,爲皇太子請僧而設齋。仍親説經之日,誓願曰:「於日本國有聖人,曰上宫豐聰耳皇子。固天攸縱,以玄聖之德生日本之國,苞貫三統,纂先聖之宕猷,恭敬三寶,救黎元之厄。是實大聖也。今太子既薨之,我雖異國,心在断金。某獨生之,(有)何益矣?我以來年二月五日必死,因以遇上宫太子於淨土,以共化衆生。」於是,慧慈當于期日而死之。是以時人之彼此共言:「其獨非上宫太子之聖,慧慈亦聖也。」

이달에 가미쓰미야 태자를 시나가 능에 장사 지냈다.

이때를 맞아 고려 승려 혜자가 가미쓰미야 황태자가 죽었다는 말을 듣고 크게 슬퍼하여, 황태자를 위하여 승려를 청하고 재를 베풀었다.

이어 몸소 경을 설하는 날에 서원하였다.

"일본국에 성인이 있어 가미쓰미야노토요토미미 황자라 하였다. 진실로 하늘이 놓아 주신 이로, 그윽한 성인의 덕으로 일본국에 나셨다. 세 가지 계통을 싸서 꿰고 앞 성인의 큰 꾀를 이으며, 삼보를 공경하고 백성의 괴로움을 구하셨다. 이는 참으로 큰 성인이다.

이제 태자가 이미 죽으셨다. 내가 비록 다른 나라 사람이나 마음은 쇠를 끊을 만큼 하나였다. 나 홀로 살아 무슨 보람이 있겠는가. 나는 오는 해 이월 오일에 반드시 죽어, 이로써 정토에서 가미쓰미야 태자를 만나 함께 중생을 교화하겠다."

이에 혜자가 그 날짜에 맞추어 죽었다.

이 때문에 그때 사람들이 이쪽저쪽에서 함께 말하였다. "가미쓰미야 태자만 성인이 아니라 혜자 또한 성인이다."

116신라가 표를 올리다

是歳,新羅遣奈末伊彌買朝貢,仍以表書奏使旨。凡新羅上表,盖始起于此時歟。

이해에 신라가 나말 이미매(伊彌買)를 보내어 조공하고, 이어 표를 글로 써서 사자의 뜻을 아뢰었다. 무릇 신라가 표를 올린 것이 아마 이때에 비롯되었는가.

117당나라를 늘 오가라

秋七月,新羅遣大使奈末智洗爾、任那遣達率奈末智,並來朝,仍貢佛像一具,及金塔并舍利,且大觀頂幡一具、小幡十二條。即佛像居於葛野秦寺,以餘舍利、金塔、觀頂幡等皆納于四天王寺。是時,大唐學問者僧惠齊、惠光,及醫惠日、福因等,並從智洗爾等來之。於是,惠日等共奏聞曰:「留于唐國學者,皆學以成業,應喚。且其大唐國者,法式備定之珎國也,常須達。」

가을 칠월에 신라가 대사 나말 지세이(智洗爾)를 보내고 임나가 달솔 나말지(奈末智)를 보내어 아울러 와서 조회하였다. 이어 불상 한 벌과 금탑과 아울러 사리와, 또 큰 관정번(觀頂幡) 한 벌과 작은 번 열두 줄을 바쳤다.

곧 불상은 가도노의 하타데라에 두고, 나머지 사리와 금탑과 관정번들은 다 시텐노지에 들였다.

이때 대당에서 학문하던 승려 혜제(惠齊)와 혜광(惠光)과 의원 혜일(惠日)과 복인(福因)들이 아울러 지세이들을 따라왔다.

이에 혜일들이 함께 아뢰었다. "당나라에 머물러 배우는 이들이 다 배워 업을 이루었으니 마땅히 불러야 합니다. 또 저 대당국은 법식이 갖추어 정해진 진귀한 나라이니 늘 오가야 합니다."

118임나가 신라에 붙다

是歳,新羅伐任那,任那附新羅。於是,天皇將討新羅,謀及大臣,詢于羣卿。田中臣對曰:「不可急討。先察状以知逆,後撃之不晩也。請試遣使,覩其消息。」中臣連國曰:「任那是元我内官家,今新羅人伐而有之。請戒戎旅,征伐新羅,以取任那附百濟。寧非益有于新羅乎?」田中臣曰:「不然。百濟是多反覆之國,道路之間尚詐之。凡彼所請皆非之,故不可附百濟。」則不果征焉。爰遣吉士磐金於新羅,遣吉士倉下於任那,令問任那之事。時,新羅國主遣八大夫,啓新羅國事於磐金,且啓任那國於倉下,因以約曰:「任那小國,天皇附庸,何新羅輙有之?随常定内官家,願無煩矣。」則遣奈末智洗遲,副於吉士磐金;復以任那人達率奈末遲,副於吉士倉下,仍貢兩國之調。然磐金等末及于還,即年以大德境部臣雄摩侶、小德中臣連國爲大將軍,以小德河邊臣禰受、小德物部依網連乙等、小德波多臣廣庭、小德近江脚身臣飯葢、小德平羣臣宇志、小德大伴連、小德大宅臣軍爲副將軍,率數萬衆以征討新羅。

이해에 신라가 임나를 치매 임나가 신라에 붙었다.

이에 천황이 신라를 치려 하여 대신에게 꾀하고 여러 대신에게 물었다.

다나카노오미가 대답하였다. "급히 칠 수 없습니다. 먼저 형편을 살펴 거스름을 안 뒤에 쳐도 늦지 않습니다. 청컨대 시험 삼아 사자를 보내어 그 소식을 보십시오."

나카토미노무라지 구니가 말하였다. "임나는 본디 우리 내관가입니다. 이제 신라 사람이 쳐서 차지하였습니다. 청컨대 군사를 다잡아 신라를 쳐서 임나를 얻어 백제에 붙이십시오. 차라리 신라에 두는 것보다 낫지 않겠습니까."

다나카노오미가 말하였다. "그렇지 않습니다. 백제는 뒤집기를 잘하는 나라라 길 사이에서도 오히려 속입니다. 무릇 저들이 청하는 바가 다 그르니 백제에 붙일 수 없습니다."

곧 마침내 치지 않았다.

이에 기시노이와카네를 신라에 보내고 기시노쿠라시타를 임나에 보내어 임나의 일을 묻게 하였다.

그때 신라 국주가 여덟 대부를 보내어 신라 나라 일을 이와카네에게 아뢰고, 또 임나국을 쿠라시타에게 아뢰었다. 이로 인하여 약속하였다. "임나는 작은 나라로 천황에게 딸린 나라입니다. 어찌 신라가 문득 차지하겠습니까. 늘 하던 대로 내관가로 정할 것이니 바라건대 번거로워 마소서."

곧 나말 지세지(智洗遲)를 기시노이와카네에게 딸리고, 다시 임나 사람 달솔 나말지를 기시노쿠라시타에게 딸려 두 나라의 조를 바쳤다.

그러나 이와카네들이 아직 돌아오기 전에, 그해에 대덕 사카이베노오미 오마로와 소덕 나카토미노무라지 구니를 대장군으로 삼고, 소덕 가와베노오미 네즈와 소덕 모노노베노요사미노무라지 오토와 소덕 하타노오미 히로니와와 소덕 오미노아사쿠라노오미 이히카이와 소덕 헤구리노오미 우시와 소덕 오호토모노무라지와 소덕 오야케노오미 이쿠사를 부장군으로 삼아, 수만 무리를 거느리고 신라를 치게 하였다.

협주 1

闕名

이름이 빠졌다.

119신라가 복종을 청하다

時,磐金等共會於津,將發舩,以候風波。於是,舩師滿海多至,兩國使人望瞻之愕然,乃還留焉,更代堪遲大舍爲任那調使而貢上。於是,磐金等相謂之曰:「是軍起之既違前期,是以任那之事今亦不成矣。」則發舩而渡之。唯將軍等始到任那,而議之欲襲新羅。於是,新羅國王聞軍多至,而豫慴之,請服。時,將軍等共議以上表之,天皇聽矣。

그때 이와카네들이 나루에서 함께 만나 배를 띄우려고 바람과 물결을 살폈다.

이에 배와 군사가 바다에 가득 차 많이 이르렀다. 두 나라 사자가 바라보고 놀라 이에 돌아가 머물렀다. 다시 감지 대사(堪遲大舍)로 갈아 임나의 조 바치는 사자로 삼아 바쳤다.

이에 이와카네들이 서로 일렀다. "이 군사가 일어난 것이 이미 앞서 기약한 것과 어긋났다. 이 때문에 임나의 일이 이제 또한 이루어지지 않겠다." 곧 배를 띄워 건넜다.

오직 장군들이 처음 임나에 이르러 신라를 습격하기를 의논하였다. 이에 신라 국왕이 군사가 많이 이르렀다는 말을 듣고 미리 두려워하여 복종하기를 청하였다. 그때 장군들이 함께 의논하여 표를 올리니 천황이 들어주었다.

120뉘우치다

冬十一月,磐金、倉下等至自新羅。時,大臣問其状,對曰:「新羅奉命以驚懼之,則並差專使,因以貢兩國之調。然見舩師至,而朝貢使人更還耳。但調猶貢上。」爰大臣曰:「悔乎,早遣師矣!」時人曰:「是軍事者,境部臣、阿曇連,先多得新羅弊物之故,又勸大臣,是以未待使旨而早征伐耳。」初,磐金等渡新羅之日,比及津,莊舩一艘迎於海浦。磐金問之曰:「是舩者何國迎舩?」對曰:「新羅舩也。」磐金亦曰:「曷無任那之迎舩?」即時更爲任那加一舩。其新羅以迎舩二艘,始于是時歟。自春至秋,霖雨大水,五穀不登焉。

겨울 십일월에 이와카네와 쿠라시타들이 신라에서 이르렀다. 그때 대신이 그 형편을 물으니 대답하였다.

"신라가 명을 받들어 두려워하매 곧 아울러 전담 사자를 보내고 이로 인하여 두 나라의 조를 바치려 하였습니다. 그러나 배와 군사가 이르는 것을 보고 조회하는 사자가 도로 돌아갔을 뿐입니다. 다만 조는 오히려 바쳤습니다."

이에 대신이 말하였다. "뉘우친다. 군사를 일찍 보냈구나."

그때 사람들이 말하였다. "이 군사 일은 사카이베노오미와 아즈미노무라지가 앞서 신라의 폐물을 많이 얻은 까닭에 또 대신에게 권한 것이다. 이 때문에 사자의 뜻을 기다리지 않고 일찍 쳤을 뿐이다."

처음에 이와카네들이 신라에 건너던 날, 나루에 이를 즈음에 꾸민 배 한 척이 바닷가에서 맞았다. 이와카네가 물었다. "이 배는 어느 나라의 맞이하는 배인가."

답하였다. "신라 배입니다."

이와카네가 또 말하였다. "어찌 임나의 맞이하는 배가 없는가."

곧 그때 다시 임나를 위하여 배 한 척을 더하였다. 저 신라가 배 두 척으로 맞이한 것이 이때에 비롯되었는가.

봄부터 가을까지 장맛비로 큰물이 져 오곡이 익지 않았다.

121승정과 승도를 두다

夏四月丙午朔戊申,有一僧,執斧毆祖父。時,天皇聞之,召大臣詔之曰:「夫出家者,頓歸三寶,具懐戒法。何無懺忌,輙犯惡逆?今朕聞,有僧以毆祖父。故悉聚諸寺僧尼以推問之。若事實者,重罪之。」於是,集諸僧尼而推之,則惡逆僧及諸(僧)尼並將罪。於是,百濟觀勒僧表上以言:「夫佛法自西國至于漢,經三百歳,乃傳之至於百濟國,而僅一百年矣。然我王聞日本天皇之賢哲,而貢上佛像及内典,未滿百歳。故當今時,以僧尼未習法律,輙犯惡逆。是以諸僧尼惶懼以不知所如。仰願其除悪逆者以外,僧尼悉赦而勿罪。是大功德也。」天皇乃聽之。戊午,詔曰:「夫道人尚犯法,何以誨俗人?故自今已後,任僧正、僧都,仍應校檢僧尼。」壬戌,以觀勒僧爲僧正,以鞍部德積爲僧都。即日,以阿曇連爲法頭。

여름 사월 병오 초하루 무신일에 한 승려가 있어 도끼를 잡고 할아비를 때렸다.

그때 천황이 이를 듣고 대신을 불러 조를 내렸다. "무릇 출가한 이는 문득 삼보에 돌아가 계법을 갖추어 품는다. 어찌 뉘우침과 꺼림이 없이 문득 몹쓸 짓을 저지르는가. 이제 짐이 들으니 어떤 승려가 할아비를 때렸다 한다. 그러므로 여러 절의 승려와 비구니를 다 모아 미루어 물으라. 만약 일이 사실이면 무겁게 죄주라."

이에 여러 승려와 비구니를 모아 미루니, 곧 몹쓸 짓을 한 승려와 여러 승려와 비구니를 아울러 죄주려 하였다.

이에 백제의 관륵 승려가 표를 올려 말하였다.

"무릇 불법이 서쪽 나라에서 한(漢)에 이르러 삼백 해를 지나 이에 전하여 백제국에 이르렀고, 겨우 백 해입니다. 그런데 우리 왕이 일본 천황의 어질고 밝음을 듣고 불상과 안의 글을 바친 지 백 해가 차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지금은 승려와 비구니가 아직 법률을 익히지 못하여 문득 몹쓸 짓을 저지릅니다. 이 때문에 여러 승려와 비구니가 두려워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합니다. 우러러 바라건대 몹쓸 짓을 한 이를 빼고 승려와 비구니를 다 놓아주어 죄주지 마소서. 이것이 큰 공덕입니다."

천황이 이에 들어주었다.

무오일에 조를 내렸다. "무릇 도 닦는 이도 오히려 법을 어기니 무엇으로 속인을 가르치겠는가. 그러므로 이제부터 승정(僧正)과 승도(僧都)를 두어 이어 마땅히 승려와 비구니를 살펴 검사하라."

임술일에 관륵 승려를 승정으로 삼고 구라베노도쿠샤쿠를 승도로 삼았다. 그날로 아즈미노무라지를 법두(法頭)로 삼았다.

협주 1

闕名

이름이 빠졌다.

122절과 승려의 수

秋九月甲戌朔丙子,校寺及僧尼,具録其寺所造之縁,亦僧尼入道之縁,及度之年月日也。當是時,有寺册六所,僧八百十六人,尼五百六十九人,并一千三百八十五人。

가을 구월 갑술 초하루 병자일에 절과 승려와 비구니를 조사하여, 그 절을 지은 내력과 승려와 비구니가 도에 든 내력과 출가한 해와 달과 날을 갖추어 적었다.

이때를 맞아 절이 마흔여섯 곳이요 승려가 팔백열여섯 사람이요 비구니가 오백예순아홉 사람이니 아울러 천삼백여든다섯 사람이었다.

123가즈라키현을 청하다

冬十月癸卯朔,大臣遣阿曇連、阿倍臣摩侶二臣,令奏天皇曰:「葛城縣者,元臣之本居也,故因其縣爲姓名。是以冀之,常得其縣,以欲爲臣之封縣。」於是,天皇詔曰:「今朕則自蘇何出之,大臣亦爲朕舅也。故大臣之言,夜言矣夜不明,日言矣則日不晩,何辭不用?然今當朕之世,頓失是縣,後君曰:『愚癡婦人臨天下,以頓亡其縣。』豈獨朕不賢耶?大臣亦不忠。是後葉之惡名。」則不聽。

겨울 시월 계묘 초하루에 대신이 아즈미노무라지와 아베노오미 마로 두 신하를 보내어 천황에게 아뢰게 하였다.

"가즈라키현은 본디 신의 본디 살던 곳입니다. 그러므로 그 현으로 성과 이름을 삼았습니다. 이 때문에 바라건대 늘 그 현을 얻어 신의 봉한 현으로 삼고자 합니다."

이에 천황이 조를 내렸다.

"이제 짐은 곧 소가에서 나왔고 대신 또한 짐의 외숙이다. 그러므로 대신의 말은 밤에 말하면 밤이 새지 않고 낮에 말하면 해가 저물지 않으니, 무슨 말인들 쓰지 않겠는가.

그러나 이제 짐의 대에 문득 이 현을 잃으면, 뒷 임금이 말하기를 '어리석은 아녀자가 천하에 임하여 문득 그 현을 잃었다' 할 것이다. 어찌 홀로 짐이 어질지 못한 것이겠는가. 대신 또한 충성스럽지 못한 것이다. 이는 뒷세상의 나쁜 이름이다."

곧 들어주지 않았다.

124혜관을 승정으로 삼다

春正月壬申朔戊寅,高麗王貢僧惠潅,仍任僧正。

봄 정월 임신 초하루 무인일에 고려 왕이 승려 혜관(惠潅)을 바쳤다. 이어 승정을 맡겼다.

125복숭아와 오얏이 꽃 피다

春正月,桃李華之。三月,寒以霜降。

봄 정월에 복숭아와 오얏이 꽃 피었다. 삼월에 추워 서리가 내렸다.

126시마노오오미가 죽다

夏五月戊子朔丁未,大臣薨,仍葬于桃原墓。大臣則稻目宿禰之子也,性有武略,亦有辨才,以恭敬三寶。家於飛鳥河之傍,乃庭中開小池,仍興小嶋於池中,故時人曰嶋大臣。

여름 오월 무자 초하루 정미일에 대신이 죽었다. 이어 모모하라 무덤에 장사 지냈다.

대신은 곧 이나메노스쿠네의 아들이다. 성품에 무략이 있고 또한 말재주가 있어 삼보를 공경하였다. 아스카강 곁에 집을 짓고, 이에 뜰 가운데 작은 못을 파고 못 가운데 작은 섬을 일으켰다. 그러므로 그때 사람들이 시마노오오미(嶋大臣)라 하였다.

127유월에 눈

六月,雪也。

유월에 눈이 왔다.

128큰 굶주림

是歳,自三月至七月霖雨,天下大飢之。老者噉草根而死于道垂,幼者含乳以母子共死。又強盜、竊盜並大起之,不可止。

이해에 삼월부터 칠월까지 장맛비가 내려 천하가 크게 굶주렸다. 늙은이는 풀뿌리를 씹다가 길가에서 죽고, 어린것은 젖을 물고 어미와 자식이 함께 죽었다. 또 강도와 좀도둑이 아울러 크게 일어나 그치게 할 수 없었다.

129오소리가 사람으로 변하다

春二月,陸奥國有狢化人以歌之。

봄 이월에 무쓰국에 오소리가 사람으로 변하여 노래하였다.

130파리 떼

夏五月,有蝿聚集,其凝累十丈之浮虚,以越信濃坂,鳴音如雷,則東至上野國而自散。

여름 오월에 파리가 모여들어 그 엉긴 것이 열 길 남짓 허공에 떠서 시나노 고개를 넘었다. 우는 소리가 우레 같았다. 곧 동쪽으로 고즈케국에 이르러 절로 흩어졌다.

131천황이 병들다

春二月戊寅朔甲辰,天皇臥病。

봄 이월 무인 초하루 갑진일에 천황이 병들어 누웠다.

132천황이 죽다

三月丁未朔戊申,日有蝕盡之。壬子,天皇痛甚之不可諱,則召田村皇子謂之曰:「昇天位而經綸鴻基,馭萬機以亭育黎元,本非輙言,恒之所重。故汝愼以察之,不可輕言。」即日,召山背大兄教之曰:汝肝稚之。若雖心望,而勿諠言,必待羣言以宜從。」癸丑,天皇崩之,即殯於南庭。

삼월 정미 초하루 무신일에 해가 다 먹혔다.

임자일에 천황의 아픔이 심하여 숨길 수 없었다. 곧 다무라 황자를 불러 일렀다. "하늘의 자리에 올라 큰 터를 다스리고 온갖 정사를 몰아 백성을 기르는 일은 본디 함부로 말할 것이 아니요 늘 무겁게 여길 바다. 그러므로 너는 삼가 살피고 가벼이 말하지 마라."

그날로 야마시로노오에를 불러 가르쳤다. "너는 아직 어리다. 만약 마음에 바라는 바가 있더라도 떠들어 말하지 말고, 반드시 여럿의 말을 기다려 마땅히 따르라."

계축일에 천황이 죽었다. 곧 남쪽 뜰에 빈소를 차렸다.

협주 1

時年七十五

그때 나이 일흔다섯이었다.

133우박과 가뭄

夏四月壬午朔辛卯,雹零,大如桃子。壬辰,雹零,大如桃子。自春至夏,旱之。

여름 사월 임오 초하루 신묘일에 우박이 내렸는데 크기가 복숭아만 하였다. 임진일에 우박이 내렸는데 크기가 복숭아만 하였다. 봄부터 여름까지 가물었다.

134두터이 장사 지내지 마라

秋九月己巳朔戊子,始起天皇喪禮。是時,羣臣各誄於殯宫。先是,天皇遺詔於羣臣曰:「比年五穀不登,百姓太飢。其爲朕興陵,以勿厚葬,便宜葬于竹田皇子之陵。」壬辰,葬竹田皇子之陵。

가을 구월 기사 초하루 무자일에 처음으로 천황의 상례를 일으켰다. 이때 여러 신하가 각각 빈궁에서 조사를 읽었다.

이보다 앞서 천황이 여러 신하에게 유조를 내렸다. "요사이 오곡이 익지 않아 백성이 몹시 굶주린다. 짐을 위하여 능을 일으켜 두터이 장사 지내지 말고, 마땅히 다케다 황자의 능에 장사 지내라."

임진일에 다케다 황자의 능에 장사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