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명천황舒明天皇
1서명천황
息長足日廣額天皇,渟中倉太珠敷天皇孫,彥人大兄皇子之子也。母曰糠手姬皇女。
오키나가타라시히히로누카천황(息長足日廣額天皇)은 누나쿠라노후토타마시키천황의 손자요 히코히토노오에 황자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누카데히메 황녀라 한다.
2태자가 죽다
豐御食炊屋姬天皇二十九年,皇太子豐聰耳尊薨,而未立皇太子。
도요미케카시키야히메천황 이십구년에 황태자 도요토미미노미코토가 죽고 아직 황태자를 세우지 않았다.
3이을 자리가 정해지지 않다
以三十六年,三月,天皇崩。九月,葬禮畢之。嗣位未定。
삼십육년 삼월에 천황이 죽었다. 구월에 장례를 마쳤다. 이을 자리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4대신이 여러 신하에게 묻다
當是時,蘇我蝦夷臣為大臣,獨欲定嗣位,顧畏群臣不從,則與阿倍麻呂臣議,而聚群臣,饗於大臣家。食訖將散,大臣令阿倍臣,語群臣曰:「今天皇既崩無嗣。若急不計,畏有亂乎。今以詎王為嗣。天皇臥病之日,詔田村皇子曰:『天下大任,本非輙言。爾田村皇子,慎以察之,不可緩。』次詔山背大兄王曰:『汝獨莫諠讙。必從群言,慎以勿違。』則是天皇遺言焉。今,誰為天皇?」時群臣嘿之無答。亦問之。非答。強且問之。於是,大伴鯨連進曰:「既從天皇遺命耳,更不可待群言。」阿倍臣則問曰:「何謂也?開其意。」對曰:「天皇曷思歟,詔田村皇子,曰:『天下大任也,不可緩。』因此而言,皇位既定。誰人異言?」時采女臣摩禮志、高向臣宇摩、中臣連彌氣、難波吉士身刺,四臣曰:「隨大伴連言,更無異。」許勢臣大摩呂、佐伯連東人、紀臣鹽手,三人進曰:「山背大兄王,是宜為天皇。」唯蘇我倉摩呂臣,獨曰:「臣也當時不得便言。更思之後啟。」爰大臣知群臣不和,而不能成事,退之。先是,大臣獨問境部摩理勢臣曰:「今天皇崩,無嗣。誰為天皇?」對曰:「舉山背大兄為天皇。」
이때를 맞아 소가노에미시노오미가 대신이 되어 홀로 이을 자리를 정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여러 신하가 따르지 않을까 돌아보아 두려워하여, 아베노마로노오미와 의논하고 여러 신하를 모아 대신의 집에서 잔치하였다.
먹기를 마치고 흩어지려 할 때 대신이 아베노오미를 시켜 여러 신하에게 말하게 하였다.
"이제 천황이 이미 죽고 뒤이을 이가 없다. 만약 급히 헤아리지 않으면 어지러움이 있을까 두렵다. 이제 어느 왕으로 뒤를 삼겠는가.
천황이 병들어 누우신 날에 다무라 황자에게 조서하기를 '천하의 큰 임무는 본디 함부로 말할 것이 아니다. 너 다무라 황자는 삼가 살피고 늦추지 마라' 하셨다. 다음으로 야마시로노오에노오키미에게 조서하기를 '너는 홀로 떠들지 마라. 반드시 여럿의 말을 따르고 삼가 어기지 마라' 하셨다. 곧 이것이 천황의 유언이다. 이제 누가 천황이 되겠는가."
그때 여러 신하가 잠잠하고 답이 없었다. 또 물었으나 답하지 않았다. 억지로 또 물었다.
이에 오토모노쿠지라노무라지가 나아가 말하였다. "이미 천황의 유명을 따를 뿐이니 다시 여럿의 말을 기다릴 것이 없습니다."
아베노오미가 곧 물었다. "무슨 말인가. 그 뜻을 열어 보라."
대답하였다. "천황이 무엇을 생각하셨겠습니까. 다무라 황자에게 조서하여 '천하의 큰 임무이니 늦추지 마라' 하셨습니다. 이로 인하여 말하면 임금 자리가 이미 정해졌습니다. 누가 다른 말을 하겠습니까."
그때 우네메노오미 마레시와 다카무코노오미 우마와 나카토미노무라지 미케와 나니와노키시 무자시 네 신하가 말하였다. "오호토모노무라지의 말대로 하고 다름이 없습니다."
고세노오미 오마로와 사에키노무라지 아즈마히토와 기노오미 시오테 세 사람이 나아가 말하였다. "야마시로노오에노오키미가 마땅히 천황이 되어야 합니다."
오직 소가노쿠라마로노오미만 홀로 말하였다. "신은 지금 당장 말할 수 없습니다. 다시 생각한 뒤에 아뢰겠습니다."
이에 대신이 여러 신하가 화합하지 않아 일을 이룰 수 없음을 알고 물러났다.
이보다 앞서 대신이 홀로 사카이베노마리세노오미에게 물었다. "이제 천황이 죽고 뒤이을 이가 없다. 누가 천황이 되겠는가."
대답하였다. "야마시로노오에를 들어 천황으로 삼으십시오."
협주 1
更名雄當。
다른 이름은 오마사다.
5야마시로노오에가 뜻을 묻다
是時,山背大兄居於斑鳩宮,漏聆是議,即遣三國王、櫻井臣和慈古二人,密謂大臣曰:「傳聞之,叔父以田村皇子欲為天皇。我聞此言,立思矣,居思矣,未得其理。願分明欲知叔父之意。」於是,大臣得山背大兄之告,而不能獨對。則喚阿倍臣、中臣連、紀臣、河邊臣、高向臣、采女臣、大伴連、許勢臣等,仍曲舉山背大兄之語。既而便且,謂大夫等曰:「汝大夫等共詣於斑鳩宮,當啟山背大兄王曰:『賤臣何之獨輙定嗣位?唯舉天皇之遺詔,以告于群臣。群臣並言:『如遺言,田村皇子自當嗣位。更詎異言。』是群卿言也,特非臣心。但雖有臣私意,而惶之不得傳啟,乃面日親啟焉。』」爰群大夫等,受大臣之言,共詣于斑鳩宮,使三國王、櫻井臣,以大臣之辭啟於山背大兄。時大兄王使傳問群大夫等曰:「天皇遺詔奈之何?」對曰:「臣等不知其深。唯得大臣語狀稱:『天皇臥病之日,詔田村皇子曰:「非輕輙言來國政。
이때 야마시로노오에가 이카루가노미야에 있으면서 이 의논을 새어 듣고, 곧 미쿠니노오키미와 사쿠라이노오미 와지코 두 사람을 보내어 몰래 대신에게 일렀다.
"전해 들으니 아저씨가 다무라 황자로 천황을 삼고자 한다 합니다. 내가 이 말을 듣고 서서 생각하고 앉아 생각하여도 그 이치를 얻지 못하였습니다. 바라건대 아저씨의 뜻을 분명히 알고자 합니다."
이에 대신이 야마시로노오에의 알림을 받고 홀로 답할 수 없었다. 곧 아베노오미와 나카토미노무라지와 기노오미와 가와베노오미와 다카무코노오미와 우네메노오미와 오호토모노무라지와 고세노오미들을 불러, 이어 야마시로노오에의 말을 자세히 들었다.
이윽고 곧 대부들에게 일렀다.
"너희 대부들은 함께 이카루가노미야에 나아가 마땅히 야마시로노오에노오키미에게 아뢰어라. '천한 신이 어찌 홀로 문득 이을 자리를 정하겠습니까. 오직 천황의 유조를 들어 여러 신하에게 알렸을 뿐입니다. 여러 신하가 아울러 말하기를 「유언대로 다무라 황자가 스스로 마땅히 자리를 이어야 한다. 다시 무슨 다른 말이 있겠는가」 하였습니다. 이는 여러 대신의 말이요 특별히 신의 마음이 아닙니다. 다만 신에게 사사로운 뜻이 있더라도 두려워 전하여 아뢰지 못하니, 이에 뵙는 날에 몸소 아뢰겠습니다.'"
이에 여러 대부들이 대신의 말을 받아 함께 이카루가노미야에 나아갔다. 미쿠니노오키미와 사쿠라이노오미를 시켜 대신의 말로 야마시로노오에에게 아뢰게 하였다.
그때 오에노오키미가 전하여 여러 대부에게 물었다. "천황의 유조가 어떠하였는가."
대답하였다. "신들은 그 깊은 것을 알지 못합니다. 오직 대신의 말을 얻으니 '천황이 병들어 누우신 날에 다무라 황자에게 조서하기를 「나라 정사를 가벼이 함부로 말할 것이 아니다.
6유조를 두고 다투다
是以爾田村皇子慎以言之,不可緩。」次詔大兄王曰:「汝肝稚,而勿諠言,必宜從群臣言。」是乃近侍諸女王及采女等悉知之,且大王所察。』」於是,大兄王且令問之曰:「是遺詔也,專誰人聆焉?」答曰:「臣等不知其密。」既而更亦,令告群大夫等曰:「愛之叔父勞思,非一介之使,遣重臣等而教覺。是大恩也。然今群卿所噵天皇遺命者,小小違我之所聆。吾聞天皇臥病,而馳上之,侍于門下。時中臣連彌氣,自禁省出之曰:『天皇命以喚之。』則參進向于閤門。亦栗隈采女黑女,迎於庭中,引入大殿。於是,近習者栗下女王為首,女孺鮪女等八人并數十人,侍於天皇之側,且田村皇子在焉。時天皇沈病,不能覩我。乃栗下女王奏曰:『所喚山背大兄王參赴。』即天皇起臨之詔曰:『朕以寡薄,久勞大業。今曆運將終,以病不可諱。故汝本為朕之心腹,愛寵之情,不可為比。其國家大基,是非朕世,自本務之。汝雖肝稚,慎以言。
이 때문에 너 다무라 황자는 삼가 말하고 늦추지 마라」 하시고, 다음으로 오에노오키미에게 조서하기를 「너는 아직 어리니 떠들어 말하지 말고 반드시 여러 신하의 말을 따르라」 하셨다. 이는 곧 가까이 모시던 여러 여왕과 우네메들이 다 아는 바요 또 대왕께서 살피시는 바다' 하였습니다."
이에 오에노오키미가 또 묻게 하였다. "이 유조를 오로지 누가 들었는가."
답하였다. "신들은 그 은밀한 것을 알지 못합니다."
이윽고 다시 또 여러 대부에게 알리게 하였다.
"사랑하는 아저씨가 애써 생각하시어 한 사람의 사자가 아니라 무거운 신하들을 보내어 가르쳐 깨우쳐 주시니 이는 큰 은혜입니다. 그러나 이제 여러 대신이 말하는 천황의 유명은 내가 들은 바와 조금 어긋납니다.
내가 천황이 병들어 누우셨다는 말을 듣고 달려 올라와 문 아래에 모셨습니다. 그때 나카토미노무라지 미케가 궁 안에서 나와 '천황이 명하여 부르신다' 하였습니다. 곧 나아가 협문으로 향하였습니다. 또 구리쿠마노우네메 구로메가 뜰 가운데서 맞아 큰 전각으로 이끌어 들였습니다.
이에 가까이 모시는 이로 구리시타노히메미코를 우두머리로 하고, 여관 시비메들 여덟 사람과 아울러 수십 사람이 천황 곁에 모셨고 또 다무라 황자가 있었습니다.
그때 천황이 병에 잠겨 나를 보지 못하셨습니다. 이에 구리시타노히메미코가 아뢰기를 '부르신 야마시로노오에노오키미가 나아왔습니다' 하였습니다.
곧 천황이 일어나 임하여 조서하셨습니다. '짐이 적고 엷은 몸으로 오래 큰 업에 애썼다. 이제 운수가 다하려 하고 병으로 숨길 수 없다. 그러므로 너는 본디 짐의 심복이 되어 사랑하는 정을 견줄 데가 없었다. 저 나라의 큰 터는 이것이 짐의 대만의 일이 아니요 본디부터 힘쓸 바다. 너는 비록 아직 어리나 삼가 말하라.'
7야마시로노오에가 물러서다
』乃當時侍之近習者,悉知焉。故我蒙是大恩,而一則以懼,一即以悲,踊躍歡喜,不知所如。仍以為:『社稷宗廟,重事也。我眇少以不賢,何敢當焉。』當事時,思欲語叔父及群卿等,然未有可噵之時,於今非言耳。我曾將訊叔父之病,向京而居豐浦寺。是日,天皇遣八口采女鮪女,詔之曰:『汝叔父大臣常為汝愁言,百歲之後,嗣位非當汝乎?故慎以自愛矣。』既分明有是事,何疑也?然我豈餮天下,唯顯聆事耳,則天神地祇共証之。是以冀正欲知天皇之遺敕,亦大臣所遣群卿者,從來如嚴茅取中事,而奏請人等也。故能宜白叔父。」既而,泊瀨仲王別喚中臣連、河邊臣,謂之曰:「我等父子,並自蘇我出之,天下所知,是以如高山恃之。願嗣位勿輙言。」則令三國王、櫻井臣,副群卿而遣之曰:「欲聞還言。」時大臣,遣紀臣、大伴連,謂三國王、櫻井臣曰:「先日言訖,更無異矣。然臣敢之輕誰王也,重誰王也?」於是數日之後,山背大兄亦遣櫻井臣,告大臣曰:「先日之事,陳聞耳。
곧 그때 모시던 가까운 이들이 다 압니다. 그러므로 내가 이 큰 은혜를 입고 한편으로 두렵고 한편으로 슬퍼, 뛰며 기뻐하여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하였습니다.
이에 생각하기를 '사직과 종묘는 무거운 일이다. 나는 작고 어질지 못하니 어찌 감히 감당하겠는가' 하였습니다. 그때 아저씨와 여러 대신에게 말하고자 하였으나 아직 말할 만한 때가 없어 이제까지 말하지 않았을 뿐입니다.
내가 일찍이 아저씨의 병을 물으러 서울로 향하여 도유라데라에 머물렀습니다. 이날 천황이 야쿠치노우네메 시비메를 보내어 조서하셨습니다. '네 아저씨 대신이 늘 너를 위하여 근심하여 말하기를, 백 해 뒤에 이을 자리가 네가 아니면 누구겠느냐 한다. 그러므로 삼가 스스로 아껴라.'
이미 분명히 이런 일이 있었으니 무엇을 의심하겠습니까. 그러나 내가 어찌 천하를 탐하겠습니까. 오직 들은 일을 드러낼 뿐이니 곧 하늘 신과 땅 신이 함께 증거합니다.
이 때문에 바라건대 천황의 유칙을 바르게 알고자 합니다. 또 대신이 보낸 여러 대신은 예로부터 신성한 띠풀에서 가운데 것을 뽑는 일처럼 아뢰어 청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능히 아저씨에게 잘 아뢰어 주십시오."
이윽고 하쓰세노나카쓰오키미가 따로 나카토미노무라지와 가와베노오미를 불러 일렀다. "우리 부자가 아울러 소가에서 나왔음은 천하가 아는 바다. 이 때문에 높은 산처럼 믿는다. 바라건대 이을 자리를 함부로 말하지 마라."
곧 미쿠니노오키미와 사쿠라이노오미를 여러 대신에 딸려 보내며 말하였다. "돌아오는 말을 듣고자 한다."
그때 대신이 기노오미와 오호토모노무라지를 보내어 미쿠니노오키미와 사쿠라이노오미에게 일렀다. "지난날 말을 마쳤으니 다시 다름이 없다. 그러나 신이 감히 어느 왕을 가벼이 하고 어느 왕을 무겁게 하겠는가."
이에 며칠 뒤에 야마시로노오에가 또 사쿠라이노오미를 보내어 대신에게 알렸다. "지난날의 일은 들은 것을 아뢰었을 뿐입니다.
협주 1
嚴茅,此云伊箇之倍虛。
신성한 띠풀(嚴茅)은 이카시호코라 읽는다.
8마리세가 따르지 않다
寧違叔父哉?」是日,大臣病動,以不能面言於櫻井臣。明日,大臣喚櫻井臣,即遣阿倍臣、中臣連、河邊臣、小墾田臣、大伴連,啟山背大兄言:「自磯城嶋宮御宇天皇之世及近世者,群卿皆賢哲也。唯今臣不賢,而遇當乏人時,誤居群臣上耳。是以不得定基。然是事重也,不能傳噵。故老臣雖勞,面啟之。其唯不誤遺敕者也,非臣私意。」既而大臣傳阿倍臣、中臣連,更問境部臣曰:「誰王為天皇?」對曰:「先是大臣親問之日,僕啟既訖之。今何更亦傳以告耶?」乃大忿而起行之。適是時,蘇我氏諸族等悉集,為嶋大臣造墓,而次于墓所。爰摩理勢臣壞墓所之廬,退蘇我田家而不仕。時大臣慍之,遣身狹君勝牛、錦織首赤豬,而誨曰:「吾知汝言之非,以干支之義,不得害。唯他非汝是,我必忤他從汝。若他是汝非,我當乖汝從他。是以汝遂有不從者,我與汝有瑕,則國亦亂。然乃後生言之,吾二人破國也。
어찌 아저씨를 어기겠습니까."
이날 대신이 병이 도져 사쿠라이노오미에게 얼굴을 마주하고 말할 수 없었다.
이튿날 대신이 사쿠라이노오미를 불러, 곧 아베노오미와 나카토미노무라지와 가와베노오미와 오하리다노오미와 오호토모노무라지를 보내어 야마시로노오에에게 아뢰었다.
"시키시마노미야에서 천하를 다스리던 천황 때부터 요사이까지 여러 대신이 다 어질고 밝았습니다. 오직 이제 신이 어질지 못한데 마침 사람이 모자란 때를 만나 그르쳐 여러 신하 위에 있을 뿐입니다. 이 때문에 터를 정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이 일이 무거워 전하여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늙은 신이 비록 애쓰나 얼굴을 마주하고 아뢰겠습니다. 그 오직 유칙을 그르치지 않는 것이요 신의 사사로운 뜻이 아닙니다."
이윽고 대신이 아베노오미와 나카토미노무라지를 통하여 다시 사카이베노오미에게 물었다. "어느 왕이 천황이 되겠는가."
대답하였다. "앞서 대신이 몸소 물으신 날에 제가 이미 아뢰기를 마쳤습니다. 이제 어찌 다시 전하여 알리십니까."
이에 크게 성내어 일어나 갔다.
마침 이때에 소가씨의 여러 겨레가 다 모여 시마노오오미를 위하여 무덤을 짓고 무덤 있는 곳에 머물렀다. 이에 마리세노오미가 무덤 있는 곳의 오두막을 헐고 소가의 밭집으로 물러가 섬기지 않았다.
그때 대신이 노하여 무사노키미 가쓰우시와 니시고리노오비토 아카이를 보내어 깨우쳤다.
"내가 네 말이 그른 줄 안다. 그러나 겨레의 의리로 해칠 수 없다. 오직 남이 그르고 네가 옳으면 내가 반드시 남을 거스르고 너를 따르겠다. 만약 남이 옳고 네가 그르면 내가 마땅히 너를 등지고 남을 따르겠다.
이 때문에 네가 끝내 따르지 않으면 나와 네가 흠이 있게 되고 곧 나라 또한 어지러워진다. 그러면 뒷사람이 말하기를 '우리 두 사람이 나라를 깨뜨렸다' 할 것이다.
9마리세와 그 아들이 죽다
是後葉之惡名也。汝慎以勿起逆心。」然猶不從,而遂赴于斑鳩,住於泊瀨王宮。於是大臣益怒,乃遣群卿,請于山背大兄曰:「頃者,摩理勢違臣匿於泊瀨王宮。願得摩理勢,欲推其所由。」爰大兄王答曰:「摩理勢素聖皇所好,而暫來耳。豈違叔父之情耶?願勿瑕。」則謂摩理勢曰:「汝不忘先王之恩而來,甚愛矣。然其因汝一人,而天下應亂。亦先王臨沒,謂諸子等曰:『諸惡莫作,諸善奉行。』余承斯言,以為永戒。是以雖有私情,忍以無怨。復我不能違叔父。願自今以後,勿憚改意,從群而無退。」是時,大夫等且誨摩理勢臣之曰:「不可違大兄王之命。」於是摩理勢臣進無所歸。乃泣哭更還之居於家十餘日,泊瀨王忽發病薨。爰摩理勢臣曰:「我生之誰恃矣?」大臣將殺境部臣,而興兵遣之。境部臣聞軍至,率仲子阿椰,出于門,坐胡床而待。時軍至,乃令來目物部伊區比以絞之,父子共死。乃埋同處。唯兄子毛津,逃匿于尼寺瓦舍,即姧一二尼。於是,一尼嫉妒令顯。圍寺將捕。乃出之入畝傍山。因以探山,毛津走無所入,刺頸而死山中。時人歌曰:
이는 뒷세상의 나쁜 이름이다. 너는 삼가 거스르는 마음을 일으키지 마라."
그러나 오히려 따르지 않고 마침내 이카루가로 가서 하쓰세노오키미의 궁에 머물렀다.
이에 대신이 더욱 노하여, 여러 대신을 보내어 야마시로노오에에게 청하였다. "요사이 마리세가 신을 어기고 하쓰세노오키미의 궁에 숨었습니다. 바라건대 마리세를 얻어 그 까닭을 미루어 묻고자 합니다."
이에 오에노오키미가 답하였다. "마리세는 본디 성스러운 임금이 좋아하던 이라 잠시 왔을 뿐입니다. 어찌 아저씨의 뜻을 어기겠습니까. 바라건대 흠하지 마십시오."
곧 마리세에게 일렀다.
"네가 앞 임금의 은혜를 잊지 않고 왔으니 몹시 아깝다. 그러나 너 한 사람으로 인하여 천하가 어지러워질 것이다.
또 앞 임금이 죽음에 임하여 여러 아들에게 이르기를 '모든 악을 짓지 말고 모든 선을 받들어 행하라' 하셨다. 내가 이 말을 받아 길이 경계로 삼는다. 이 때문에 사사로운 정이 있으나 참고 원망하지 않는다. 또 내가 아저씨를 어길 수 없다.
바라건대 이제부터 뜻을 고치기를 꺼리지 말고 여럿을 좇아 물러나지 마라."
이때 대부들이 또 마리세노오미를 깨우쳤다. "오에노오키미의 명을 어길 수 없다."
이에 마리세노오미가 나아가도 돌아갈 데가 없었다. 이에 울며 다시 돌아가 집에 있은 지 열 남짓 날에 하쓰세노오키미가 홀연히 병이 나 죽었다.
이에 마리세노오미가 말하였다. "내가 살아 누구를 믿겠는가."
대신이 사카이베노오미를 죽이려 하여 군사를 일으켜 보냈다. 사카이베노오미가 군사가 온다는 말을 듣고 가운데 아들 아야를 거느리고 문을 나와 걸상에 앉아 기다렸다.
그때 군사가 이르매 곧 구메노모노노베노이쿠히를 시켜 목매게 하여 아비와 아들이 함께 죽었다. 이에 같은 곳에 묻었다.
오직 맏아들 게쓰가 비구니 절의 기와집에 도망해 숨어 한둘 비구니를 범하였다. 이에 한 비구니가 시샘하여 드러나게 하였다. 절을 에워싸 잡으려 하매 곧 나와 우네비산에 들었다.
이로 인하여 산을 뒤지니 게쓰가 달아나도 들 곳이 없어 목을 찔러 산속에서 죽었다. 그때 사람들이 노래하였다.
10노래 — 그때 사람들
畝傍山木立薄けど賴みかも毛津若子の籠らせりけむ
「우네비산 나무숲이 성기건만 믿었던가 게쓰노와쿠고가 숨어 있었으랴(畝傍山木立薄けど賴みかも毛津若子の籠らせりけむ)」
— 이 저본은 이 노래를 만요가나 원문 대신 일본어 읽기로 실었다. 소리를 적은 것이라 뜻으로 옮기지 않는다.
11자리에 오르다
春正月癸卯朔丙午,大臣及群卿,共以天皇之璽印,獻於田村皇子。則辭之曰:「宗廟,重事矣。寡人不賢,何敢當乎?」群臣伏固請曰:「大王,先朝鍾愛,幽顯屬心。宜纂皇綜,光臨億兆。」即日,即天皇位。
봄 정월 계묘 초하루 병오일에 대신과 여러 대신이 함께 천황의 도장을 다무라 황자에게 바쳤다.
곧 사양하였다. "종묘는 무거운 일이다. 과인이 어질지 못하니 어찌 감히 감당하겠는가."
여러 신하가 엎드려 굳이 청하였다. "대왕은 앞 조정이 사랑을 모으신 바요 그윽한 데와 드러난 데가 마음을 붙인 바입니다. 마땅히 임금의 계통을 이어 억조에 빛나게 임하소서."
그날로 천황의 자리에 올랐다.
12야쿠에 사자를 보내다
夏四月辛未朔,遣田部連,於掖玖。是年也,太歲己丑。
여름 사월 신미 초하루에 다베노무라지를 야쿠에 보냈다. 이해는 태세가 기축이다.
협주 1
闕名。
이름이 빠졌다.
13황후와 자식들
春正月丁卯朔戊寅,立寶皇女為皇后。后生二男一女。一曰,葛城皇子。二曰,間人皇女。三曰,大海皇子。夫人,蘇我嶋大臣女法提郎媛。生,古人皇子。又娶,吉備國蚊屋采女。生,蚊屋皇子。
봄 정월 정묘 초하루 무인일에 다카라 황녀를 세워 황후로 삼았다. 황후가 두 사내와 한 계집을 낳았다. 하나는 가즈라키 황자요, 둘은 하시히토 황녀요, 셋은 오아마 황자다.
부인은 소가노시마노오오미의 딸 호테이노이라쓰메다. 후루히토 황자를 낳았다.
또 기비국의 가야노우네메에게 장가들어 가야 황자를 낳았다.
협주 3
近江大津宮御宇天皇。
오미의 오쓰노미야에서 천하를 다스린 천황이다.
淨御原宮御宇天皇。
기요미하라노미야에서 천하를 다스린 천황이다.
更名,大兄皇子。
다른 이름은 오에 황자다.
14고려와 백제가 조공하다
三月丙寅朔,高麗大使宴子拔、小使若德,百濟大使恩率素子、小使德率武德,共朝貢。
삼월 병인 초하루에 고려 대사 연자발(宴子拔)과 소사 약덕(若德)과 백제 대사 은솔 소자(素子)와 소사 덕솔 무덕(武德)이 함께 조공하였다.
15당나라에 사자를 보내다
秋八月癸巳朔丁酉,以大仁犬上君三田耜、大仁藥師惠日,遣於大唐。庚子,饗高麗、百濟客於朝。
가을 팔월 계사 초하루 정유일에 대인 이누카미노키미 미타스키와 대인 구스시 에니치를 대당에 보냈다.
경자일에 고려와 백제 손님을 조정에서 대접하였다.
16손님이 돌아가다
九月癸亥朔丙寅,高麗、百濟客歸于國。是月,田部連等至自掖玖。
구월 계해 초하루 병인일에 고려와 백제 손님이 나라로 돌아갔다. 이달에 다베노무라지들이 야쿠에서 이르렀다.
17오카모토노미야
冬十月壬辰朔癸卯,天皇遷於飛鳥岡傍。是謂岡本宮。
겨울 시월 임진 초하루 계묘일에 천황이 아스카노오카 곁으로 옮겼다. 이를 오카모토노미야라 한다.
18삼한관을 고치다
是歲,改修理難波大郡及三韓館。
이해에 나니와의 오코리와 삼한(三韓)의 객관을 고쳐 다스렸다.
19야쿠 사람이 귀화하다
春二月辛卯朔庚子,掖玖人歸化。
봄 이월 신묘 초하루 경자일에 야쿠 사람이 귀화하였다.
20백제가 왕자 풍장을 볼모로 들이다
三月庚申朔,百濟王義慈,入王子豐章為質。
삼월 경신 초하루에 백제 왕 의자(義慈)가 왕자 풍장(豐章)을 들여 볼모로 삼았다.
21아리마 온탕
秋九月丁巳朔乙亥,幸于津國有間溫湯。
가을 구월 정사 초하루 을해일에 쓰노쿠니의 아리마 온탕에 나아갔다.
22온탕에서 돌아오다
冬十二月丙戌朔戊戌,天皇至自溫湯。
겨울 십이월 병술 초하루 무술일에 천황이 온탕에서 이르렀다.
23고표인이 오다
秋八月,大唐遣高表仁,送三田耜。共泊于對馬。是時,學問僧靈雲、僧旻及勝鳥養,新羅送使等,從之。
가을 팔월에 대당이 고표인(高表仁)을 보내어 미타스키를 보냈다. 함께 쓰시마에 닿았다. 이때 학문승 영운(靈雲)과 승려 민(旻)과 스구리노토리카이와 신라의 보내는 사자들이 따랐다.
24나니와에서 맞다
冬十月辛亥朔甲寅,唐國使人高表仁等,泊于難波津。則遣大伴連馬養,迎於江口。船三十二艘及鼓、吹、旗幟,皆具整飾。便告高表仁等曰:「聞天子所命之使,到于天皇朝。迎之。」時高表仁對曰:「風寒之日,飾整船艘以賜迎之,歡愧也。」於是令難波吉士小槻、大河內直矢伏為導者,到館前也。乃遣伊岐史乙等、難波吉士八牛,引客等入於館。即日,給神酒。
겨울 시월 신해 초하루 갑인일에 당나라 사자 고표인들이 나니와 나루에 닿았다. 곧 오호토모노무라지 우마카이를 보내어 강 어귀에서 맞았다. 배 서른두 척과 북과 피리와 깃발을 다 갖추어 꾸몄다.
곧 고표인들에게 알렸다. "천자가 명하신 사자가 천황의 조정에 이르렀다 들었으므로 맞습니다."
그때 고표인이 답하였다. "바람이 찬 날에 배를 꾸며 갖추어 맞아 주시니 기쁘고 부끄럽습니다."
이에 나니와노키시 오쓰키와 오시코우치노아타이 야부시를 이끄는 이로 삼아 객관 앞에 이르게 하였다. 곧 이키노후비토 오토들과 나니와노키시 야우시를 보내어 손님들을 이끌어 객관에 들였다. 그날로 신주를 주었다.
25고표인이 돌아가다
春正月己卯朔甲辰,大唐客高表仁等歸國。送使吉士雄摩呂、黑麻呂等,到對馬而還之。
봄 정월 기묘 초하루 갑진일에 대당 손님 고표인들이 나라로 돌아갔다. 보내는 사자 기시노오마로와 구로마로들이 쓰시마에 이르러 돌아왔다.
26살별
秋八月,長星見南方。時人曰篲星。
가을 팔월에 긴 별이 남쪽에 보였다. 그때 사람들이 살별이라 하였다.
27살별이 동쪽에
春三月,篲星迴見于東。
봄 삼월에 살별이 돌아 동쪽에 보였다.
28백제가 조공하다
夏六月乙丑朔甲戌,百濟遣達率柔等,朝貢。
여름 유월 을축 초하루 갑술일에 백제가 달솔 유(柔)들을 보내어 조공하였다.
29백제 손님을 대접하다
秋七月乙未朔辛丑,饗百濟客於朝。
가을 칠월 을미 초하루 신축일에 백제 손님을 조정에서 대접하였다.
30한 줄기 두 꽃
是月,瑞蓮生於劍池。一莖二花。
이달에 상서로운 연꽃이 쓰루기 못에 났다. 한 줄기에 두 꽃이었다.
31해가 먹히다
春正月壬辰朔,日蝕。
봄 정월 임진 초하루에 해가 먹혔다.
32우네메 일을 다스리다
三月,悉劾姧采女者,皆罪之。是時,三輪君小鷦鷯,苦其推鞫,刺頸而死。
삼월에 우네메를 범한 이를 다 다스려 죄주었다. 이때 미와노키미 오사자키가 그 미루어 묻는 것을 괴로워하여 목을 찔러 죽었다.
33장맛비와 큰물
夏五月,霖雨大水。
여름 오월에 장맛비가 내려 큰물이 졌다.
34오카모토노미야에 불이 나다
六月,災岡本宮。天皇遷居田中宮。
유월에 오카모토노미야에 불이 났다. 천황이 다나카노미야로 옮겨 살았다.
35조회 시각을 정하자 하다
秋七月己丑朔,大派王謂豐浦大臣曰:「群卿及百寮,朝參已懈。自今以後,卯始朝之,巳後退之。因以鍾為節。」然大臣不從。
가을 칠월 기축 초하루에 오마타노오키미가 도유라노오오미에게 일렀다. "여러 대신과 온갖 벼슬아치가 조회에 나오기를 이미 게을리한다. 이제부터 묘시에 조회를 시작하고 사시 뒤에 물러가게 하라. 이로 인하여 종으로 마디를 삼으라."
그러나 대신이 따르지 않았다.
36큰 가뭄
是歲,大旱,天下飢之。
이해에 크게 가물어 천하가 굶주렸다.
37하늘의 개
春二月丙辰朔戊寅,大星從東流西,便有音似雷。時人曰:「流星之音。」亦曰:「地雷。」於是僧旻僧曰:「非流星,是天狗也。其吠聲似雷耳。」
봄 이월 병진 초하루 무인일에 큰 별이 동쪽에서 서쪽으로 흘렀다. 곧 소리가 있어 우레 같았다. 그때 사람들이 "별똥별의 소리다" 하고 또 "땅 우레다" 하였다.
이에 승려 민이 말하였다. "별똥별이 아니라 이는 하늘의 개다. 그 짖는 소리가 우레 같을 뿐이다."
38해가 먹히다
三月乙酉朔丙戌,日蝕之。
삼월 을유 초하루 병술일에 해가 먹혔다.
39에미시가 배반하다
是歲,蝦夷叛以不朝。即拜大仁上毛野君形名,為將軍,令討。還為蝦夷見敗,而走入壘,遂為賊所圍。軍眾悉漏城空之,將軍迷,不知所如。
이해에 에미시가 배반하여 조회하지 않았다. 곧 대인 가미쓰케노노키미 가타나를 장군으로 삼아 치게 하였다.
도리어 에미시에게 패하여 보루에 달아 들었다가 마침내 도적에게 에워싸였다. 군사가 다 새어 나가 성이 비었다. 장군이 헤매어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하였다.
40장군의 아내
時日暮,踰垣欲逃。爰方名君妻歎曰:「慷哉,為蝦夷將見殺。」則謂夫曰:「汝祖等渡蒼海,跨萬里,平水表政,以威武傳於後葉。今汝頓屈先祖之名,必為後世見嗤。」乃酌酒,強之令飲夫,而親佩夫之劍,張十弓,令女人數十,俾鳴弦。既而夫更起之,取仗而進之。蝦夷以為:「軍眾猶多。」而稍引退之。於是散卒更聚,亦振旅焉。擊蝦夷大敗,以悉虜。
그때 해가 저물어 담을 넘어 달아나려 하였다.
이에 가타나노키미의 아내가 탄식하였다. "슬프다, 에미시에게 죽임을 당하겠구나."
곧 지아비에게 일렀다. "그대의 조상들이 푸른 바다를 건너고 만 리를 넘어 바다 밖의 정사를 평정하여 위엄과 무예를 뒷세상에 전하였습니다. 이제 그대가 문득 조상의 이름을 굽히면 반드시 뒷세상에 웃음거리가 될 것입니다."
이에 술을 따라 억지로 지아비에게 먹이고, 몸소 지아비의 칼을 차고 활 열 장을 메기고 여인 수십을 시켜 활시위를 울리게 하였다.
이윽고 지아비가 다시 일어나 무기를 잡고 나아갔다. 에미시가 "군사가 아직 많다" 여겨 차츰 물러났다.
이에 흩어진 군사가 다시 모여 또한 군세를 떨쳤다. 에미시를 쳐서 크게 깨뜨리고 다 사로잡았다.
41큰바람
秋七月丁未朔乙丑,大風之,折木發屋。
가을 칠월 정미 초하루 을축일에 큰바람이 불어 나무가 꺾이고 지붕이 날렸다.
42장맛비
九月,霖雨,桃李華。
구월에 장맛비가 내리고 복숭아와 오얏이 꽃 피었다.
43아리마 온탕궁
冬十月,幸有間溫湯宮。
겨울 시월에 아리마 온탕궁에 나아갔다.
44세 나라가 조공하다
是歲,百濟、新羅、任那,並朝貢。
이해에 백제와 신라와 임나가 아울러 조공하였다.
45별과 바람
春正月乙巳朔壬子,車駕還自溫湯。乙卯,新嘗。蓋因幸有間,以闕新嘗歟。丙辰,無雲而雷。丙寅,大風而雨。己巳,長星見西北。時旻師曰:「彗星也。見則飢之。」
봄 정월 을사 초하루 임자일에 임금의 수레가 온탕에서 돌아왔다.
을묘일에 새 곡식 올리는 제사를 지냈다. 아마 아리마에 나아간 까닭에 새 곡식 제사를 빠뜨린 것인가.
병진일에 구름 없이 우레가 쳤다. 병인일에 큰바람이 불고 비가 왔다. 기사일에 긴 별이 서북에 보였다. 그때 민 스승이 말하였다. "살별이다. 보이면 굶주린다."
46백제천 곁에 궁과 절
秋七月,詔曰:「今年,造作大宮及大寺。則以百濟川側為宮處。」是以西民造宮,東民作寺。便以書直縣為大匠。
가을 칠월에 조를 내렸다. "올해에 큰 궁과 큰 절을 지으라. 곧 백제천(百濟川) 곁을 궁 자리로 삼으라."
이 때문에 서쪽 백성이 궁을 짓고 동쪽 백성이 절을 지었다. 곧 후미노아타이 아가타를 큰 목수로 삼았다.
47학문승이 오다
秋九月,大唐學問僧惠隱、惠雲,從新羅送使入京。
가을 구월에 대당의 학문승 혜은(惠隱)과 혜운(惠雲)이 신라의 보내는 사자를 따라 서울에 들어왔다.
48신라 손님을 대접하다
冬十一月庚子朔,饗新羅客於朝。因給冠位一級。
겨울 십일월 경자 초하루에 신라 손님을 조정에서 대접하였다. 이로 인하여 관위 한 계단을 주었다.
49구중탑
十二月己巳朔壬午,幸于伊豫溫湯宮。是月,於百濟川側建九重塔。
십이월 기사 초하루 임오일에 이요의 온탕궁에 나아갔다. 이달에 백제천 곁에 구중탑(九重塔)을 세웠다.
50별이 달에 들다
春二月戊辰朔甲戌,星入月。
봄 이월 무진 초하루 갑술일에 별이 달에 들었다.
51우마야사카노미야
夏四月丁卯朔壬午,天皇至自伊豫,便居廄坂宮。
여름 사월 정묘 초하루 임오일에 천황이 이요에서 이르러 곧 우마야사카노미야에 머물렀다.
52무량수경을 설하다
五月丁酉朔辛丑,大設齋。因以請惠隱僧,令說無量壽經。
오월 정유 초하루 신축일에 크게 재를 베풀었다. 이로 인하여 혜은 승려를 청하여 무량수경(無量壽經)을 설하게 하였다.
53구다라노미야로 옮기다
冬十月乙丑朔乙亥,大唐學問僧清安、學生高向漢人玄理,傳新羅而至之。仍百濟、新羅朝貢之使共從來之。則各賜爵一級。是月,徙於百濟宮。
겨울 시월 을축 초하루 을해일에 대당의 학문승 청안(清安)과 학생 다카무코노아야히토 겐리가 신라를 거쳐 이르렀다. 이어 백제와 신라의 조공하는 사자가 함께 따라왔다. 곧 각각 벼슬 한 계단을 주었다.
이달에 구다라노미야(百濟宮)로 옮겼다.
54백제대빈
冬十月己丑朔丁酉,天皇崩于百濟宮。丙午,殯於宮北。是謂百濟大殯。是時東宮開別皇子,年十六而誄之。
겨울 시월 기축 초하루 정유일에 천황이 구다라노미야에서 죽었다. 병오일에 궁 북쪽에 빈소를 차렸다. 이를 구다라노오모가리(百濟大殯)라 한다.
이때 동궁 히라카스와케 황자가 나이 열여섯에 조사를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