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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극천황皇極天皇

일본서기 日本書紀 · 도네리 친왕(舍人親王) 등 · 720년 (일본 요로 4) · 단락 58 · 한자 5,434자 · 낭독 21.7분

「일본서기」 인대 「황극천황」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정사. 신들의 시대부터 지통천황까지 서른 권이다. 신대 상·하는 같은 신화의 다른 판본을 「어떤 책에는 이렇게 되어 있다」로 나란히 실어, 갈리는 이야기를 감추지 않았다. 백제·신라·고구려·임나 기사가 1,379곳에 나와 한국 사서와 맞대 볼 자리가 가장 많은 책이기도 하다.

1황극천황

天豐財重日足姫天皇。渟中倉太珠敷天皇曾孫、押坂彦人大兄皇子孫,茅渟王女也。母曰吉備姫王。天皇順考古道而爲政也。息長足日廣額天皇二年,立爲皇后。十三年十月,息長足日廣額天皇崩。

아메토요타카라이카시히타라시히메천황(天豐財重日足姫天皇)은 누나쿠라노후토타마시키천황의 증손이요 오시사카노히코히토노오에 황자의 손녀요 지누노오키미의 딸이다. 어머니는 기비쓰히메노오키미라 한다.

천황이 옛길을 좇아 살펴 정사를 하였다. 오키나가타라시히히로누카천황 이년에 황후로 세워졌다. 십삼년 시월에 오키나가타라시히히로누카천황이 죽었다.

협주 1

重日,此云伊柯之比。

중일(重日)은 이카시히라 읽는다.

2자리에 오르다

春正月丁巳朔辛未。皇后即天皇位,以蘇我臣蝦夷爲大臣如故。大臣兒入鹿自執國政,威勝於父。由是盜賊恐懾,路不拾遺。乙酉。百濟使人大仁阿曇連比羅夫,從筑紫國乘驛馬來言:「百濟國聞天皇崩,奉遣予使。臣随予使,共到筑紫,而臣望仕於葬,故先獨來也。然其國者,今大亂矣。」

봄 정월 정사 초하루 신미일에 황후가 천황의 자리에 올랐다. 소가노오미 에미시를 대신으로 삼으니 전과 같았다.

대신의 아들 이루카가 스스로 나라 정사를 잡아 위엄이 아비보다 나았다. 이로 말미암아 도적이 두려워 떨어 길에 떨어진 것을 줍지 않았다.

을유일에 백제 사자 대인 아즈미노무라지 히라부가 쓰쿠시국에서 역말을 타고 와서 말하였다. "백제국이 천황이 죽었다는 말을 듣고 조문 사자를 보냈습니다. 신이 조문 사자를 따라 함께 쓰쿠시에 이르렀으나, 신은 장례에 섬기기를 바랐으므로 먼저 홀로 왔습니다. 그런데 그 나라는 이제 크게 어지럽습니다."

협주 1

更名鞍作。

다른 이름은 구라쓰쿠리다.

3백제와 고려의 정변

二月丁亥朔戊子。遣阿曇山背連比羅夫、草壁吉士磐金、倭漢書直縣,遣百濟予使所,問彼消息。予使報言:「百濟國主謂臣言:『塞上恒作惡之,請付還使。』」天朝不許。百濟予傔人等言:「去年十一月,大佐平智積卒。又,百濟使人擲崐崘使於海裏。今年正月,國主母薨。又,弟王子兒翹岐及其母妹女子四人,内佐平岐味、有高名之人册餘,被放於嶋。」壬辰。高麗使人泊難波津。丁未。遣諸大夫於難波郡,檢高麗國所貢金銀等并其獻物。使人貢獻既訖而諮云:「去年六月,弟王子薨。秋九月,大臣伊梨柯須彌殺大王,并殺伊梨渠世斯等百八十餘人,仍以弟王子兒爲王,以己同姓都須流、金流爲大臣。」戊申。饗高麗、百濟於難波郡。詔大臣曰:「以津守連大海可使於高麗;以國勝吉士水鷄可使於百濟;以草壁吉士真跡可使於新羅;以坂本吉士長兄可使於任那。」庚戌。召翹岐,安置於安曇山背連家。辛亥。饗高麗、百濟客。癸丑。高麗使人、百濟使人並罷歸。

이월 정해 초하루 무자일에 아즈미노야마시로노무라지 히라부와 구사카베노키시 이와카네와 야마토노아야노후미노아타이 아가타를 백제 조문 사자가 있는 곳에 보내어 저쪽 소식을 물었다.

조문 사자가 답하였다. "백제 국주가 신에게 이르기를 '새상(塞上)이 늘 모진 짓을 하니 청컨대 돌아가는 사자에게 붙여 달라' 하였습니다." 천조가 허락하지 않았다.

백제 조문 사자의 딸린 사람들이 말하였다.

"지난해 십일월에 대좌평 지적(智積)이 죽었습니다. 또 백제 사자가 곤륜(崐崘) 사자를 바다에 던졌습니다. 올해 정월에 국주의 어머니가 죽었습니다. 또 아우 왕자의 아들 교기(翹岐)와 그 어미 누이와 여자 넷과 내좌평 기미(岐味)와 이름 높은 사람 마흔 남짓이 섬으로 쫓겨났습니다."

임진일에 고려 사자가 나니와 나루에 닿았다.

정미일에 여러 대부를 나니와의 고을에 보내어 고려국이 바친 금은들과 아울러 그 바친 물건을 살피게 하였다.

사자가 바치기를 마치고 여쭈어 말하였다. "지난해 유월에 아우 왕자가 죽었습니다. 가을 구월에 대신 이리가수미(伊梨柯須彌)가 대왕을 죽이고 아울러 이리거세사(伊梨渠世斯)들 백여든 남짓 사람을 죽였습니다. 이어 아우 왕자의 아들로 왕을 삼고, 제 같은 성의 도수류(都須流)와 금류(金流)로 대신을 삼았습니다."

무신일에 고려와 백제를 나니와의 고을에서 대접하였다.

대신에게 조를 내렸다. "쓰모리노무라지 오아마로 고려에 사자로 보내고, 구니카쓰노키시 구히나로 백제에 사자로 보내고, 구사카베노키시 마아토로 신라에 사자로 보내고, 사카모토노키시 나가에로 임나에 사자로 보내라."

경술일에 교기를 불러 아즈미노야마시로노무라지의 집에 두었다.

신해일에 고려와 백제 손님을 대접하였다.

계축일에 고려 사자와 백제 사자가 아울러 돌아갔다.

협주 1

水鷄,此云倶比那

수계(水鷄)는 구히나라 읽는다.

4신라 사자

三月丙辰朔戊午。無雲而雨。辛酉。新羅遣賀騰極使與予喪使。庚午。新羅使人罷歸。是月,霖雨。

삼월 병진 초하루 무오일에 구름 없이 비가 왔다. 신유일에 신라가 자리에 오름을 하례하는 사자와 조문 사자를 보냈다. 경오일에 신라 사자가 돌아갔다. 이달에 장맛비가 내렸다.

5교기에게 말을 주다

夏四月丙戌朔癸巳。大使翹岐將其從者拜朝。乙未。蘇我大臣於畝傍家喚百濟翹岐等,親對語話,仍賜良馬一匹、鐵廿廷,唯不喚塞上。是月,霖雨。

여름 사월 병술 초하루 계사일에 대사 교기가 그 따르는 이를 거느리고 조정에 절하였다.

을미일에 소가노오오미가 우네비의 집에서 백제 교기들을 불러 몸소 마주하여 말하고, 이어 좋은 말 한 필과 쇠 스무 덩이를 주었다. 오직 새상은 부르지 않았다.

이달에 장맛비가 내렸다.

6교기의 아들이 죽다

五月乙卯朔己未。於河内國依網屯倉前,召翹岐等,令觀射獵。庚午。百濟國調使船與吉士船倶泊于難波津。壬申。百濟使人進調,吉士服命。乙亥。翹岐從者一人死去。丙子。翹岐兒死去。是時,翹岐與妻畏忌兒死,果不臨喪。凡百濟、新羅風俗,有死亡者,雖父母、兄弟、夫婦、姉妹,永不自看。以此而觀,無慈之甚,豈别禽獸。丁丑。熟稻始見。戊寅。翹岐將其妻子移於百濟大井家,乃遣人葬兒於石川。

오월 을묘 초하루 기미일에 가와치국 요사미의 둔창 앞에서 교기들을 불러 활 쏘고 사냥하는 것을 보게 하였다.

경오일에 백제국의 조 바치는 사자 배와 기시의 배가 함께 나니와 나루에 닿았다. 임신일에 백제 사자가 조를 바치고 기시가 명을 아뢰었다.

을해일에 교기의 따르는 이 하나가 죽었다. 병자일에 교기의 아들이 죽었다.

이때 교기와 아내가 아들이 죽은 것을 두려워하고 꺼려 과연 상에 임하지 않았다. 무릇 백제와 신라 풍속에 죽은 이가 있으면 비록 부모와 형제와 부부와 자매라도 길이 스스로 보지 않는다. 이로써 보면 자애 없음이 심하니 어찌 새와 짐승과 다르겠는가.

정축일에 익은 벼가 처음 보였다.

무인일에 교기가 그 처자를 거느리고 백제의 오이 집으로 옮겼다. 이에 사람을 보내어 아들을 이시카와에 장사 지냈다.

협주 1

盖吉士前奉使於百濟乎

아마 기시가 앞서 백제에 사자로 갔던 것인가.

7큰 가뭄

六月乙酉朔庚子。微雨。是月,大旱。

유월 을유 초하루 경자일에 가는 비가 왔다. 이달에 크게 가물었다.

8비를 빌다

秋七月甲寅朔壬戌。客星入月。乙亥。饗百濟使人大佐平智積等於朝。乃命健兒相撲於翹岐前。智積等宴畢,而退拜翹岐門。丙子。蘇我臣人鹿豎者獲白雀子。是日,同時有人以白雀納籠而送蘇我大臣。戊寅。羣臣相謂之曰:「随村々祝部所教,或殺牛馬祭諸社神,或頻移市,或禱河伯,既無所効。」蘇我大臣報曰:「可於寺々轉讀大乘經典,悔過如佛所說,敬而祈雨。」庚辰。於大寺南庭嚴佛菩薩像與四天王像,屈請衆僧讀《大雲經》等。于時,蘇我大臣手執香鑪,燒香發願。辛巳。微雨。壬午。不能祈雨,故停讀經。

가을 칠월 갑인 초하루 임술일에 객성이 달에 들었다.

을해일에 백제 사자 대좌평 지적들을 조정에서 대접하였다. 이에 씩씩한 사내에게 명하여 교기 앞에서 씨름하게 하였다. 지적들이 잔치를 마치고 물러나 교기의 문에 절하였다.

병자일에 소가노오미 이루카의 하인이 흰 참새 새끼를 얻었다. 이날 같은 때에 어떤 사람이 흰 참새를 우리에 넣어 소가노오오미에게 보냈다.

무인일에 여러 신하가 서로 일렀다. "마을마다 축(祝)이 가르치는 대로 더러는 소와 말을 죽여 여러 신사의 신에게 제사하고, 더러는 자주 저자를 옮기고, 더러는 하백에게 빌었으나 이미 효험이 없다."

소가노오오미가 답하였다. "절마다 대승 경전을 돌려 읽고 부처가 설한 대로 허물을 뉘우쳐 공경히 비를 비는 것이 좋겠다."

경진일에 큰 절 남쪽 뜰에 부처와 보살상과 사천왕상을 엄히 모시고 여러 승려를 굽혀 청하여 대운경(大雲經)들을 읽게 하였다. 이때 소가노오오미가 손에 향로를 잡고 향을 사르며 발원하였다.

신사일에 가는 비가 왔다. 임오일에 비를 빌 수 없어 경 읽기를 그쳤다.

협주 1

或本云:百濟使人大佐平智積及兒達率,闕名,恩率軍善

어떤 판본에는 백제 사자 대좌평 지적과 아들 달솔 — 이름이 빠졌다 — 과 은솔 군선(軍善)이라 한다.

9천황이 빌어 비가 오다

八月甲申朔。天皇幸南淵河上,跪拜四方,仰天而祈,即雷大雨,遂雨五日,傳潤天下。於是,天下百姓倶稱萬歳,曰:「至德天皇。」己丑。百濟使參官等罷歸,仍賜大舶與同船三艘。是日,夜半雷鳴於西南角而風雨,參官等所乘船舶觸岸而破。丙申。以小德授百濟質達率長福,中客以下授位一級,賜物各有差。戊戌。以船賜百濟參官等發遣。己亥。高麗使人罷歸。己酉。百濟、新羅使人罷歸。

팔월 갑신 초하루에 천황이 미나부치 냇가에 나아가 사방에 꿇어 절하고 하늘을 우러러 빌었다. 곧 우레가 치고 큰비가 내려 마침내 닷새를 비가 와 두루 천하를 적셨다.

이에 천하 백성이 함께 만세를 일컬어 말하였다. "지극한 덕의 천황이시다."

기축일에 백제 사자 참관(參官)들이 돌아갔다. 이어 큰 배와 같은 배 세 척을 주었다. 이날 밤중에 서남쪽에서 우레가 울고 바람과 비가 쳐 참관들이 탄 배가 언덕에 부딪혀 깨졌다.

병신일에 소덕을 백제의 볼모 달솔 장복(長福)에게 주고, 중객 아래에게 벼슬 한 계단을 주고 물건을 주되 각각 차등이 있었다.

무술일에 배를 백제 참관들에게 주어 보냈다. 기해일에 고려 사자가 돌아갔다. 기유일에 백제와 신라 사자가 돌아갔다.

협주 2

或本云:五日連雨,九穀登熟

어떤 판본에는 닷새를 이어 비가 와 아홉 곡식이 익었다 한다.

同般母慮紀舟

같은 배는 모로키부네라 한다.

10큰 절과 궁실

九月癸丑朔乙卯。天皇詔大臣曰:「朕思欲起造大寺,宜發近江與越之丁。」復課諸國使造船舶。辛未。皇天詔大臣曰:「起是月限十二月以來,欲營宫室。可於國々取殿屋材,然東限遠江,西限安藝,發造宫丁。」癸酉。越邊蝦夷、數千内附。

구월 계축 초하루 을묘일에 천황이 대신에게 조를 내렸다. "짐이 큰 절을 일으켜 지으려 생각하니 마땅히 오미와 고시의 장정을 내라." 다시 여러 나라에 매겨 배를 짓게 하였다.

신미일에 천황이 대신에게 조를 내렸다. "이달부터 십이월까지를 기한으로 궁실을 지으려 한다. 나라마다 전각 재목을 가져오게 하되, 동쪽은 도토우미를 끝으로 하고 서쪽은 아키를 끝으로 하여 궁 짓는 장정을 내라."

계유일에 고시 가의 에미시 수천이 안으로 붙었다.

협주 1

百濟寺大

백제대사다.

11땅이 흔들리다

冬十月癸未朔庚寅。地震而雨。辛卯。地震。是夜,地震而風。甲午。饗蝦夷於朝。丁酉。蘇我大臣設蝦夷於家,而躬慰問。是日,新羅予使船與賀騰極使船泊于壹藝嶋。丙午。夜中,地震。是月,行夏令,無雲而雨。

겨울 시월 계미 초하루 경인일에 땅이 흔들리고 비가 왔다. 신묘일에 땅이 흔들렸다. 이날 밤 땅이 흔들리고 바람이 불었다.

갑오일에 에미시를 조정에서 대접하였다. 정유일에 소가노오오미가 에미시를 집에서 대접하고 몸소 위문하였다.

이날 신라 조문 사자의 배와 자리에 오름을 하례하는 사자의 배가 이키섬에 닿았다.

병오일에 밤중에 땅이 흔들렸다. 이달에 여름의 영을 행하여 구름 없이 비가 왔다.

12우레와 따뜻함

十一月壬子朔癸丑。大雨雷。丙辰。夜半雷一鳴於西北角。己未。雷五鳴於西北角。庚申。天暖如春氣。辛酉。雨下。壬戌。天暖如春氣。甲子。雷一鳴於北方而風發。丁卯。天皇御新嘗。是曰,皇子、大臣各自新嘗。

십일월 임자 초하루 계축일에 큰비와 우레가 쳤다. 병진일에 밤중에 서북쪽에서 우레가 한 번 울었다. 기미일에 서북쪽에서 우레가 다섯 번 울었다. 경신일에 하늘이 봄기운처럼 따뜻하였다. 신유일에 비가 내렸다. 임술일에 하늘이 봄기운처럼 따뜻하였다. 갑자일에 북쪽에서 우레가 한 번 울고 바람이 일었다.

정묘일에 천황이 새 곡식 올리는 제사를 지냈다. 이날 황자와 대신이 각각 스스로 새 곡식 제사를 지냈다.

13앞 임금을 장사 지내다

十二月壬午朔。天暖如春氣。甲申。雷五鳴於晝,二鳴於夜。甲午。初發息長足曰廣額天皇喪。是日,小德巨勢臣德大代大派皇子而誄;次,小德粟田臣細目代輕皇子而誄;次,小德大伴連馬飼代大臣而誄。乙未。息長山田公奉誄日嗣。辛丑。雷三鳴於東北角。庚寅。雷二鳴於東而風雨。壬寅。葬息長足日廣額天皇于滑谷崗。是日,天皇遷移於小墾田宫。甲辰。雷一鳴於夜,其聲若裂。辛亥。天暖如春氣。是歳。蘇我大臣蝦夷立己祖廟於葛城高宫,而爲八佾之儛,遂作歌曰:

십이월 임오 초하루에 하늘이 봄기운처럼 따뜻하였다. 갑신일에 우레가 낮에 다섯 번, 밤에 두 번 울었다.

갑오일에 처음으로 오키나가타라시히히로누카천황의 상을 냈다. 이날 소덕 고세노오미 도코가 오마타 황자를 대신하여 조사를 읽고, 다음으로 소덕 아와타노오미 호소메가 가루 황자를 대신하여 조사를 읽고, 다음으로 소덕 오호토모노무라지 우마카이가 대신을 대신하여 조사를 읽었다.

을미일에 오키나가노야마다노키미가 왕위 이음을 조사로 읽어 받들었다.

신축일에 동북쪽에서 우레가 세 번 울었다. 경인일에 동쪽에서 우레가 두 번 울고 바람과 비가 쳤다.

임인일에 오키나가타라시히히로누카천황을 나메하자마노오카에 장사 지냈다. 이날 천황이 오하리다노미야로 옮겼다.

갑진일에 밤에 우레가 한 번 울었는데 그 소리가 찢어지는 듯하였다. 신해일에 하늘이 봄기운처럼 따뜻하였다.

이해에 소가노오오미 에미시가 제 조상의 사당을 가즈라키의 다카미야에 세우고 여덟 줄 춤을 추었다. 마침내 노래를 지었다.

협주 1

或本云:遷於東宫南庭之權宫

어떤 판본에는 동궁 남쪽 뜰의 임시 궁으로 옮겼다 한다.

14노래 — 소가노에미시

「野麻騰能。飫斯能毗稜栖鳴。倭施羅務騰。阿庸比阤豆矩梨。擧始豆矩羅符母。」

「야마토노 오시노히로세오 와타사무토 아유히다즈쿠리 고시즈쿠라후모(野麻騰能。飫斯能毗稜栖鳴。倭施羅務騰。阿庸比阤豆矩梨。擧始豆矩羅符母)」

— 소리를 적은 것이라 뜻으로 옮기지 않는다.

15두 무덤을 미리 만들다

又盡發擧國之民并百八十部曲,預造雙墓於今來。一曰大陵,爲大臣墓;一曰小陵,爲入鹿臣墓。望死之後勿使勞人,更悉聚上宫乳部之民,役使塋垗所。於是,上宫大娘姫王發憤而歎曰:「蘇我臣專擅國政,多行無禮。天無二日,國無二王,何由任意悉役封民。自茲結恨,遂取倶亡。」是年也,太歳壬寅。

또 온 나라의 백성과 아울러 백여든 부곡을 다 내어 미리 이마키에 쌍 무덤을 만들었다. 하나는 오미사사기(大陵)라 하여 대신의 무덤으로 삼고, 하나는 고미사사기(小陵)라 하여 이루카노오미의 무덤으로 삼았다. 죽은 뒤에 사람을 수고롭게 하지 않기를 바란 것이다.

다시 가미쓰미야의 미부의 백성을 다 모아 무덤 짓는 곳에 부렸다.

이에 가미쓰미야의 오이라쓰메노히메미코가 성내어 탄식하였다. "소가노오미가 나라 정사를 오로지 마음대로 하고 무례한 짓을 많이 행한다. 하늘에 두 해가 없고 나라에 두 왕이 없는데, 무슨 까닭으로 뜻대로 봉한 백성을 다 부리는가."

이로부터 한을 맺어 마침내 함께 망하기에 이르렀다.

이해는 태세가 임인이다.

협주 1

乳部,此云美父

미부(乳部)는 미부라 읽는다.

16다섯 빛 큰 구름

春正月壬子朔旦。五色大雲滿覆於天,而闕於寅;一色青霧周起於地。辛酉。大風。

봄 정월 임자 초하루 아침에 다섯 빛 큰 구름이 하늘을 가득 덮었으나 동북쪽만 비었다. 한 빛 푸른 안개가 땅에서 두루 일었다. 신유일에 큰바람이 불었다.

17무당들

二月辛己朔庚子。桃花始見。乙巳。雹傷草木花葉。是月,風雷雨冰,行冬令。國内巫覡等折取枝葉,縣挂木綿,伺候大臣渡橋之時,爭陳神語入微之説,其巫甚多,不可悉聽。

이월 신사 초하루 경자일에 복숭아꽃이 처음 보였다. 을사일에 우박이 내려 풀과 나무의 꽃과 잎을 상하였다.

이달에 바람과 우레와 비와 얼음이 있어 겨울의 영을 행하였다. 나라 안의 무당들이 나뭇가지와 잎을 꺾어 무명을 걸고, 대신이 다리를 건너는 때를 엿보아 다투어 신의 말이라며 그윽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그 무당이 매우 많아 다 들을 수 없었다.

18백제 객관에 불이 나다

三月辛亥朔癸亥。灾難波百濟客舘堂與民家屋。乙亥。霜傷草木花葉。是月,風雷雨冰,行冬令。

삼월 신해 초하루 계해일에 나니와의 백제 객관 집과 민가에 불이 났다. 을해일에 서리가 내려 풀과 나무의 꽃과 잎을 상하였다. 이달에 바람과 우레와 비와 얼음이 있어 겨울의 영을 행하였다.

19이타부키노미야로 옮기다

夏四月庚辰朔丙戌。大風而雨。丁亥。風起天寒。己亥。西風而雹。天寒,人着綿袍三領。庚子。筑紫大宰馳驛奏曰:「百濟國主兒翹岐弟王子共調使來。」丁未。自權宫移幸飛鳥板盖新宫。甲辰。近江國言:「雹下,其大徑一寸。」

여름 사월 경진 초하루 병술일에 큰바람이 불고 비가 왔다. 정해일에 바람이 일고 하늘이 추웠다. 기해일에 서풍이 불고 우박이 내렸다. 하늘이 추워 사람들이 솜옷 세 벌을 입었다.

경자일에 쓰쿠시의 오미코토모치가 역말로 달려 아뢰었다. "백제 국주의 아들 교기의 아우 왕자가 조 바치는 사자와 함께 왔습니다."

정미일에 임시 궁에서 아스카의 이타부키노미야로 옮겨 나아갔다. 갑진일에 오미국이 말하였다. "우박이 내렸는데 그 크기가 지름 한 치입니다."

20달이 먹히다

五月庚戌朔乙丑。月有蝕之。

오월 경술 초하루 을축일에 달이 먹혔다.

21고려와 백제 사자

六月己卯朔辛卯。筑紫大宰馳驛奏曰:「高麗遣使來朝。」羣卿聞而相謂之曰:「高麗自己亥年不朝,而今年朝也。」辛丑。百濟進調船泊于難波津。

유월 기묘 초하루 신묘일에 쓰쿠시의 오미코토모치가 역말로 달려 아뢰었다. "고려가 사자를 보내어 와서 조회합니다."

여러 대신이 듣고 서로 일렀다. "고려가 기해년부터 조회하지 않다가 올해에 조회한다."

신축일에 백제의 조 바치는 배가 나니와 나루에 닿았다.

22조가 예에 못 미치다

秋七月己酉朔辛亥。遣數大夫於難波郡,檢百濟國調與獻物。於是大夫問調使曰:「所進國調欠少前例,送大臣物不改去年所還之色,送羣卿物亦全不將來,皆違前例,其状何也。」大使達率自斯、副使恩率軍善倶答諮曰:「即今可備。」自斯,質達率武子之子也。是月。茨田池水大臰,小虫覆水,其虫口黑而身白。

가을 칠월 기유 초하루 신해일에 여러 대부를 나니와의 고을에 보내어 백제국의 조와 바친 물건을 살피게 하였다.

이에 대부가 조 바치는 사자에게 물었다. "바친 나라의 조가 앞 예보다 모자라고, 대신에게 보내는 물건은 지난해 돌려보낸 것과 빛깔이 바뀌지 않았으며, 여러 대신에게 보내는 물건은 아예 가져오지 않았다. 다 앞 예와 어긋나니 그 사정이 무엇인가."

대사 달솔 자사(自斯)와 부사 은솔 군선이 함께 답하였다. "곧 이제 갖추겠습니다."

자사는 볼모 달솔 무자(武子)의 아들이다.

이달에 마무타 못의 물이 크게 썩어 작은 벌레가 물을 덮었다. 그 벌레는 입이 검고 몸이 희었다.

23못물이 쪽빛으로 변하다

八月戊申朔壬戌。茨田池水變如藍汁,死虫覆水。溝瀆之流亦復凝結,厚三四寸。大小魚臰如夏爛死,由是不中喫焉。

팔월 무신 초하루 임술일에 마무타 못의 물이 쪽물처럼 변하고 죽은 벌레가 물을 덮었다. 도랑의 흐름도 또한 엉겨 두께가 서너 치였다. 크고 작은 물고기가 여름에 썩어 죽은 것처럼 냄새가 나 먹을 수 없었다.

24황조모명이 죽다

九月丁丑朔壬午。葬息長足日廣額天皇于押坂陵。丁亥。吉備嶋皇祖母命薨。癸巳。詔土師娑婆連猪手,視皇祖母命喪。天皇自皇祖母命卧病,及至發喪,不避床側,視養無倦。乙未。葬皇祖母命于檀弓㟵。是日,大雨而雹。丙午。罷造皇祖母命墓役,仍賜臣、連、伴造帛布各有差。是月。茨田池水漸々變成白色,亦無臰氣。

구월 정축 초하루 임오일에 오키나가타라시히히로누카천황을 오시사카 능에 장사 지냈다.

정해일에 기비시마노스메미오야노미코토가 죽었다.

계사일에 하지노사바노무라지 이노테에게 조를 내려 황조모명의 상을 보게 하였다. 천황이 황조모명이 병들어 누울 때부터 상을 낼 때까지 자리 곁을 떠나지 않고 보살펴 기르기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을미일에 황조모명을 마유미노오카에 장사 지냈다. 이날 큰비가 오고 우박이 내렸다.

병오일에 황조모명의 무덤 짓는 부역을 그치고, 이어 오미와 무라지와 도모노미야쓰코에게 비단과 베를 주되 각각 차등이 있었다.

이달에 마무타 못의 물이 차츰 흰빛으로 변하고 또한 냄새가 없어졌다.

협주 1

或本云:呼廣額天皇爲高市天皇也

어떤 판본에는 히로누카천황을 다케치천황이라 부른다 한다.

25이루카가 자관을 받다

冬十月丁未朔己酉。饗賜羣臣伴造於朝堂庭,而議授位之事。遂詔國司:「如前所勅,更無改換,宜之厥任,慎爾所治。」壬子。蘇我大臣蝦、緣病不朝,私授紫冠於子入鹿,擬大臣位。復呼其弟曰,物部大臣。大臣之祖母物部弓削大連之妹,故因母財取威於世。戊午。蘇我臣入鹿獨謀將廢上宫王等,而立古人大兄爲天皇。于時有童謠曰:

겨울 시월 정미 초하루 기유일에 여러 신하와 도모노미야쓰코를 조당 뜰에서 대접하고 벼슬 주는 일을 의논하였다. 마침내 구니노쓰카사에게 조를 내렸다. "앞서 칙명한 대로 다시 고쳐 바꾸지 않는다. 마땅히 네 소임에 나아가 삼가 네가 다스릴 바를 하라."

임자일에 소가노오오미 에미시가 병으로 말미암아 조회하지 않고, 사사로이 자관(紫冠)을 아들 이루카에게 주어 대신의 자리에 견주었다. 다시 그 아우를 불러 모노노베노오오미라 하였다. 대신의 할머니가 모노노베노유게노오무라지의 누이였다. 그러므로 어머니의 재물로 말미암아 세상에 위엄을 취하였다.

무오일에 소가노오미 이루카가 홀로 가미쓰미야의 왕들을 없애고 후루히토노오에를 세워 천황으로 삼기를 꾀하였다. 이때 동요가 있었다.

26노래 — 동요

「伊波能杯你。古佐屢渠梅野倶。渠梅多你母。多礙底騰衰囉栖。歌麻之之能烏膩。」

「이하노헤니 고사루코메야쿠 고메다니모 다게테토호라세 야마시시노오지(伊波能杯你。古佐屢渠梅野倶。渠梅多你母。多礙底騰衰囉栖。歌麻之之能烏膩)」

— 소리를 적은 것이라 뜻으로 옮기지 않는다.

협주 1

蘇我臣入鹿深忌上宫王等威名振於天下,獨謨僣立。

소가노오미 이루카가 가미쓰미야의 왕들의 위엄과 이름이 천하에 떨치는 것을 깊이 꺼려 홀로 참람히 세우기를 꾀하였다.

27못물이 맑아지다

是月。茨田池水還清。

이달에 마무타 못의 물이 도로 맑아졌다.

28야마시로노오에가 쫓기다

十一月丙子朔。蘇我臣入鹿遣小德巨勢德太臣、大仁土師娑婆連,掩山背大兄王等於斑鳩。於是奴三成與數十舎人出而拒戰,土師娑婆連中箭而死。軍衆恐退。軍中之人相謂之曰:「一人當千,謂三成歟。」山背大兄仍取馬骨投置内寢,遂率其妃并子弟等,得間逃出,隱膽駒山。三輪文屋君、舎人田目連及其女菟田諸石、伊勢阿部堅經從焉。巨勢德太臣等燒斑鳩宫,灰中見骨,誤謂王死,解圍退去。由是,山背大兄王等四五日間淹留於山,不得喫飯。三輪文屋君進而勸曰:「請移向於深草屯倉,從茲乘馬,詣東國以乳部爲本興師還戰,其勝必矣。」山背大兄王等對曰:「如卿所道,其勝必然。但吾情冀十年不役百姓,以一身之故豈煩勞萬民?又於後世不欲民言:『由吾之故喪己父母。』豈其戰勝之後方言丈夫哉?夫損身固國,不亦丈夫者歟。

십일월 병자 초하루에 소가노오미 이루카가 소덕 고세노토코타노오미와 대인 하지노사바노무라지를 보내어 야마시로노오에노오키미들을 이카루가에서 덮쳤다.

이에 종 미나리와 도네리 수십이 나와 막아 싸워 하지노사바노무라지가 화살에 맞아 죽었다. 군사가 두려워 물러났다.

군중의 사람이 서로 일렀다. "한 사람이 천을 당한다 함은 미나리를 이름인가."

야마시로노오에가 이어 말 뼈를 가져다 안방에 던져 두고, 마침내 그 비와 아들과 아우들을 거느리고 틈을 얻어 도망해 나와 이코마산에 숨었다. 미와노후미야노키미와 도네리 다메노무라지와 그 딸 우다노모로시와 이세노아베노가타부가 따랐다.

고세노토코타노오미들이 이카루가노미야를 태우고 재 속에서 뼈를 보고 왕이 죽은 줄 그르쳐 여겨 에움을 풀고 물러갔다.

이로 말미암아 야마시로노오에노오키미들이 나흘 닷새 사이 산에 머물러 밥을 먹지 못하였다.

미와노후미야노키미가 나아가 권하였다. "청컨대 후카쿠사의 둔창으로 옮겨 향하시고, 여기서 말을 타고 동국에 나아가 미부를 밑천으로 군사를 일으켜 돌아와 싸우면 그 이김이 반드시 그러할 것입니다."

야마시로노오에노오키미들이 대답하였다.

"경이 말한 대로 그 이김이 반드시 그러하리라. 다만 내 마음은 열 해 동안 백성을 부리지 않기를 바란다. 한 몸 때문에 어찌 만민을 번거로이 수고롭게 하겠는가. 또 뒷세상에 백성이 '나 때문에 제 부모를 잃었다' 말하기를 바라지 않는다. 어찌 그 싸움에 이긴 뒤에 바야흐로 사내라 말하겠는가. 무릇 몸을 덜어 나라를 굳게 하는 것이 또한 사내가 아니겠는가."

협주 1

或本云:以巨勢德太臣、倭馬飼首爲將軍

어떤 판본에는 고세노토코타노오미와 야마토노우마카이노오비토를 장군으로 삼았다 한다.

29야마시로노오에가 스스로 죽다

」有人遥見上宫王等於山中,還噵蘇我臣入鹿。入鹿聞而大懼,速發軍旅,述王所在於高向臣國押曰:「速可向山,求捉彼王。」國押報曰:「僕守天皇宫,不敢出外。」入鹿即將自徃。于時古人大兄皇子喘息而來問:「向何處?」入鹿具説所由。古人皇子曰:「鼠伏穴而生,失穴而死。」入鹿由是止行,遣軍將等求於膽駒,竟不能覓。於是山背大兄王等自山還入斑鳩寺,軍將等即以兵圍寺。於是山背大兄王使三輪文屋君謂軍將等曰:「吾起兵伐入鹿者,其勝定之,然由一身之故不欲殘害百姓,是以吾之一身賜於入鹿,終與子弟妃妾一時自經倶死也。」于時五色幡蓋、種種伎樂照灼於空,臨垂於寺,衆人仰觀稱嘆,遂指示於入鹿。其幡蓋等變爲黑雲,由是入鹿不能得見。蘇我大臣蝦夷聞山背大兄王等捴被亡於入鹿,而嗔罵曰:「噫!入鹿極甚愚癡,專行暴惡,你之身命不亦殆乎。」時人説前謡之應曰:「以『伊波能杯你』而喻上宫,以『古佐屢』而喻林臣,以『渠梅野倶』而喻燒上宫,以『渠梅柂你母陁礙底騰褒羅栖柯麻之之能鳴膩』而喻山背王之頭髮班雜毛似山羊。又棄捨其宫匿深山相也。」

어떤 사람이 멀리 가미쓰미야의 왕들을 산속에서 보고 돌아가 소가노오미 이루카에게 말하였다.

이루카가 듣고 크게 두려워하여 빨리 군사를 내고, 왕이 있는 곳을 다카무코노오미 구니오시에게 알렸다. "빨리 산으로 향하여 저 왕을 찾아 잡으라."

구니오시가 답하였다. "저는 천황의 궁을 지키니 감히 밖에 나가지 못합니다."

이루카가 곧 스스로 가려 하였다.

이때 후루히토노오에 황자가 숨을 헐떡이며 와서 물었다. "어디로 향하는가."

이루카가 까닭을 갖추어 말하였다.

후루히토 황자가 말하였다. "쥐는 구멍에 엎드려 살고 구멍을 잃으면 죽는다."

이루카가 이로 말미암아 가기를 그치고, 군사 장수들을 보내어 이코마에서 찾게 하였으나 마침내 찾지 못하였다.

이에 야마시로노오에노오키미들이 산에서 돌아와 이카루가데라에 들었다. 군사 장수들이 곧 군사로 절을 에워쌌다.

이에 야마시로노오에노오키미가 미와노후미야노키미를 시켜 군사 장수들에게 일렀다. "내가 군사를 일으켜 이루카를 치면 그 이김이 정해졌다. 그러나 한 몸 때문에 백성을 해치고 싶지 않다. 이 때문에 내 한 몸을 이루카에게 준다."

마침내 아들과 아우와 비와 첩과 함께 한때에 스스로 목매어 다 죽었다.

이때 오색 번과 일산과 온갖 기악이 허공에 빛나 절에 드리워졌다. 여러 사람이 우러러보고 감탄하여 마침내 이루카에게 가리켜 보였다. 그 번과 일산들이 변하여 검은 구름이 되었다. 이로 말미암아 이루카가 보지 못하였다.

소가노오오미 에미시가 야마시로노오에노오키미들이 이루카에게 다 죽임을 당하였다는 말을 듣고 성내어 꾸짖었다. "아아, 이루카가 몹시 어리석어 오로지 사납고 악한 짓을 행하니 네 목숨이 또한 위태롭지 않겠는가."

그때 사람들이 앞서의 동요가 들어맞았다고 풀이하였다. "「이하노헤니」로 가미쓰미야를 견주고, 「고사루」로 하야시노오미를 견주고, 「고메야쿠」로 가미쓰미야를 태움을 견주고, 「고메다니모 다게테토호라세 야마시시노오지」로 야마시로노오키미의 머리털이 얼룩져 산양을 닮은 것을 견주었다. 또 그 궁을 버리고 깊은 산에 숨는 모양이다."

협주 1

林臣入鹿也

하야시노오미는 이루카다.

30여풍이 꿀벌을 놓아 기르다

是歳。百濟太子餘豐以蜜蜂房四枚放養於三輪山,而終不蕃息。

이해에 백제 태자 여풍(餘豐)이 꿀벌 통 네 개를 미와산에 놓아 길렀으나 끝내 붇지 않았다.

31나카토미노가마코가 나카노오에를 만나다

春正月乙亥朔。以中臣鎌子連拜神祗伯,再三固辭不就,稱疾退居三嶋。于時,輕皇子患脚不朝。中臣鎌子連曾善於輕皇子,故詣彼宫而將侍宿。輕皇子深識中臣鎌子連之意氣高逸、容止難犯,乃使寵妃寵阿倍氏淨掃别殿,高鋪新蓐,靡不具給,敬重特異。中臣鎌子連便感所遇,而語舎人曰:「殊奉恩澤,過前所望,誰能不使王天下耶。」舎人便以所語陳於皇子,皇子大悦。中臣鎌子連爲人忠正,有匡濟心,乃憤蘇我臣入鹿失君臣長幼之序,挾𨶳𨵦社稷之權。歴試接於王宗之中,而求可立功名哲主,便附心於中大兄,疏然未獲展其幽抱。偶預中大兄於法興寺槻樹之下打毱之侶,而候皮鞋隨毱脱落,取置掌中,前跪恭奉。中大兄對跪敬執,自茲相善,倶述所懷,既無所匿。後恐他嫌頻接,而倶手把黄卷,自學周孔之教於南淵先生所,遂於路上徃還之間並肩潜圖,無不相協。

봄 정월 을해 초하루에 나카토미노가마코노무라지를 신들 맡은 벼슬아치로 삼았으나, 두세 번 굳이 사양하고 나아가지 않았다. 병이라 일컫고 미시마에 물러나 살았다.

이때 가루 황자가 다리를 앓아 조회하지 않았다. 나카토미노가마코노무라지가 일찍이 가루 황자와 사이가 좋았으므로 그 궁에 나아가 모시고 자려 하였다.

가루 황자가 나카토미노가마코노무라지의 뜻과 기운이 높고 빼어나며 몸가짐이 범하기 어려움을 깊이 알고, 이에 사랑하는 비 아베씨를 시켜 딴 전각을 깨끗이 쓸고 새 자리를 높이 깔아 갖추어 주지 않는 것이 없었다. 공경하고 무겁게 여김이 남달랐다.

나카토미노가마코노무라지가 곧 대접받음에 감동하여 도네리에게 말하였다. "남달리 은택을 받아 앞서 바라던 바를 넘었다. 누가 능히 천하에 왕 노릇 하지 못하게 하겠는가."

도네리가 곧 말한 바를 황자에게 아뢰니 황자가 크게 기뻐하였다.

나카토미노가마코노무라지는 사람됨이 충성스럽고 바르며 바로잡아 건질 마음이 있었다. 이에 소가노오미 이루카가 임금과 신하, 어른과 아이의 차례를 잃고 사직을 엿보는 권세를 낀 것을 분히 여겼다. 왕족 가운데를 두루 시험 삼아 사귀며 공과 이름을 세울 만한 밝은 주인을 구하였다.

곧 나카노오에에게 마음을 붙였으나 서먹하여 아직 그 깊은 뜻을 펴지 못하였다.

마침 나카노오에가 호코지 느티나무 아래에서 공차기를 하는 무리에 끼었다가, 가죽신이 공을 따라 벗겨 떨어지는 것을 살펴 손바닥에 받아 두었다. 앞에 꿇어앉아 공경히 바쳤다. 나카노오에가 마주 꿇어앉아 공경히 받았다.

이로부터 서로 좋아져 함께 품은 바를 말하고 이미 숨기는 바가 없었다.

뒤에 남이 자주 만나는 것을 꺼릴까 두려워하여, 함께 손에 누런 두루마리를 잡고 미나부치 선생이 있는 곳에서 주공과 공자의 가르침을 스스로 배웠다. 마침내 길 위를 오가는 사이에 어깨를 나란히 하고 몰래 꾀하여 서로 맞지 않는 것이 없었다.

협주 1

謂宛舎人爲駈使也。

도네리를 부리는 이로 삼은 것을 이른다.

32소가노쿠라야마다의 딸

於是,中臣鎌子連議曰:「謀大事者,不如有輔。請納蘇我倉山田麻呂長女爲妃而成婚姻之昵,然後陳説欲與計事,成功之路莫近於兹。」中大兄聞而大悦,曲從所議。中臣鎌子連即自徃媒要訖,而長女所期之夜被偷於挨。由是,倉山田臣憂惶,仰臥不知所爲。少女恠父憂色,就而問曰:「憂悔何也?」父陳其由。少女曰:「願勿爲憂,以我奉進亦復不晩。」父便大悦,遂進其女,奉以赤心,更無所忌。中臣鎌子連擧佐伯連子麻呂、葛木稚犬養連網田於中大兄曰:「云々。」

이에 나카토미노가마코노무라지가 의논하였다. "큰일을 꾀하는 이는 도움이 있는 것만 못합니다. 청컨대 소가노쿠라야마다노마로의 맏딸을 들여 비로 삼아 혼인의 친함을 이루고, 그런 뒤에 말을 펴 함께 일을 꾀하고자 합니다. 공을 이루는 길이 이보다 가까운 것이 없습니다."

나카노오에가 듣고 크게 기뻐하여 의논한 바를 굽혀 따랐다.

나카토미노가마코노무라지가 곧 스스로 가서 중매하기를 마쳤다. 그런데 맏딸이 기약한 날 밤에 겨레붙이에게 훔쳐졌다.

이로 말미암아 구라야마다노오미가 근심하고 두려워하여 누워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하였다.

작은딸이 아비의 근심하는 낯빛을 괴이히 여겨 나아가 물었다. "무엇을 근심하고 뉘우치십니까."

아비가 그 까닭을 말하였다.

작은딸이 말하였다. "바라건대 근심하지 마십시오. 저를 바쳐 올려도 또한 늦지 않습니다."

아비가 곧 크게 기뻐하여 마침내 그 딸을 바쳤다. 붉은 마음으로 받들어 다시 꺼리는 바가 없었다.

나카토미노가마코노무라지가 사에키노무라지 고마로와 가즈라키노와카이누카이노무라지 아미타를 나카노오에에게 천거하며 말하였다. "이러이러합니다."

협주 1

挨,謂身狹臣也

겨레붙이란 무사노오미를 이른다.

33눈 속의 버섯

三月。休留産子於豐浦大臣大津宅倉。倭國言:頃者菟田郡人押坂直將一童子欣遊雪上,登菟田山,便見紫菌挺雪而生,高六寸餘,滿四町許。乃使童子採取還示隣家,捴言不知,且疑毒物。於是押坂直與童子煮而食之,大有氣味。明日徃見,都不在焉。押坂直與童子由喫菌羹,無病而壽。或人云:「盖俗不知芝草,而妄言菌乎。」

삼월에 부엉이가 도유라노오오미의 오쓰 집 곳간에서 새끼를 쳤다.

야마토국이 말하였다.

"요사이 우다군 사람 오사카노아타이가 한 아이를 데리고 눈 위에서 놀기를 즐겨 우다산에 올랐습니다. 곧 자줏빛 버섯이 눈을 뚫고 난 것을 보았는데, 높이가 여섯 치 남짓이요 네 정쯤 가득하였습니다.

이에 아이를 시켜 캐어 돌아와 이웃집에 보였으나 다 알지 못한다 하고 또 독한 물건인가 의심하였습니다.

이에 오사카노아타이와 아이가 삶아 먹으니 크게 맛이 있었습니다. 이튿날 가서 보니 도무지 있지 않았습니다.

오사카노아타이와 아이가 버섯국을 먹은 까닭에 병 없이 오래 살았습니다."

어떤 사람이 말하였다. "아마 세속에서 지초(芝草)를 알지 못하여 함부로 버섯이라 말한 것인가."

협주 2

休留,茅鴟也

휴류(休留)는 부엉이다.

闕名

이름이 빠졌다.

34원숭이의 노래

夏六月癸卯朔。大伴馬飼連獻百合花,其莖長八尺,其本異而末連。乙巳。志紀上郡言,有人於三輪山見猿晝睡,竊執其臂,不害其身。猿猶合眼歌曰:

여름 유월 계묘 초하루에 오토모노우마카이노무라지가 백합꽃을 바쳤다. 그 줄기 길이가 여덟 자요 밑동은 다르나 끝이 이어졌다.

을사일에 시키노카미군이 말하였다. "어떤 사람이 미와산에서 원숭이가 낮에 자는 것을 보고 몰래 그 팔을 잡았으나 그 몸을 해치지 않았습니다. 원숭이가 오히려 눈을 감고 노래하였습니다."

35노래 — 원숭이

「武舸都烏爾。陁底屢制囉我。你古泥擧曾。倭我底烏騰羅毎。拖我佐基泥。作基泥曾母野。倭我底騰羅須謀野。」

「무카쓰오니 다테루세라가 니고데코소 와가테오토라메 다가사키데 사키데조모야 와가테토라스모야(武舸都烏爾。陁底屢制囉我。你古泥擧曾。倭我底烏騰羅毎。拖我佐基泥。作基泥曾母野。倭我底騰羅須謀野)」

— 소리를 적은 것이라 뜻으로 옮기지 않는다.

36한 줄기 두 꽃받침

其人驚恠猿歌,放捨而去。此是經歴數年,上宫王等爲蘇我鞍作圍於膽馰山之兆也。戊申。於劔池蓮中有一莖二萼者。豐浦大臣妄推曰:「是蘇我臣將榮之瑞也。」即以金墨書而獻大法興寺丈六佛。

그 사람이 원숭이의 노래를 놀랍고 괴이히 여겨 놓아 버리고 갔다. 이것이 몇 해를 지나 가미쓰미야의 왕들이 소가노쿠라쓰쿠리에게 이코마산에서 에워싸이는 조짐이었다.

무신일에 쓰루기 못의 연꽃 가운데 한 줄기에 두 꽃받침이 있는 것이 있었다.

도유라노오오미가 함부로 미루어 말하였다. "이는 소가노오미가 장차 번영할 상서다." 곧 금물로 써서 큰 호코지의 장륙 불상에 바쳤다.

37노래 세 수

是月。國内巫覡等折取枝葉懸掛木綿,伺大臣渡橋之時爭陳神語入微之説,其巫甚多,不可具聽。老人等曰:「移風之兆也。」于時有謠歌三首:

이달에 나라 안의 무당들이 나뭇가지와 잎을 꺾어 무명을 걸고, 대신이 다리를 건너는 때를 엿보아 다투어 신의 말이라며 그윽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그 무당이 매우 많아 다 들을 수 없었다.

늙은이들이 말하였다. "풍속이 바뀌는 조짐이다."

이때 떠도는 노래 세 수가 있었다.

38그 첫째

其一曰:

그 첫째에 이르렀다.

39노래 — 첫째

「波魯波魯你渠騰曾枳舉喻屢。之麻能野父播羅。」

「하로바로니 고토조키코유루 시마노야부하라(波魯波魯你渠騰曾枳舉喻屢。之麻能野父播羅)」

— 소리를 적은 것이라 뜻으로 옮기지 않는다.

40그 둘째

其二曰:

그 둘째에 이르렀다.

41노래 — 둘째

「烏智可拖能。阿娑努能枳枳始騰余謀佐儒。倭例播禰始柯騰。比騰曾騰余謀須。」

「오치카타노 아사노노키기시 도요모사즈 와레와네시카도 히토조도요모스(烏智可拖能。阿娑努能枳枳始騰余謀佐儒。倭例播禰始柯騰。比騰曾騰余謀須)」

— 소리를 적은 것이라 뜻으로 옮기지 않는다.

42그 셋째

其三曰:

그 셋째에 이르렀다.

43노래 — 셋째

「烏磨野始你。倭例烏比岐例底。制始比騰能。於謀提母始羅孺。伊弊母始羅孺母也。」

「오마야시니 와레오히키레테 세시히토노 오모테모시라즈 이헤모시라즈모야(烏磨野始你。倭例烏比岐例底。制始比騰能。於謀提母始羅孺。伊弊母始羅孺母也)」

— 소리를 적은 것이라 뜻으로 옮기지 않는다.

44도코요의 신

秋七月。東國不盡河邊人,大生部多勸祭虫於村里之人曰:「此者常世神也,祭此神者致富與壽。」巫覡等遂詐託於神語曰:「祭常世神者,貧人致富,老人還少。」由是加勸捨民家財寶,陳酒陳菜、六畜於路側,而使呼曰:「新富入來。」都鄙之人取常世虫置於清座,歌儛求福。棄捨珍財,都無所益,損費極甚。於是葛野秦造河勝惡民所惑,打大生部多,其巫覡等恐休其勸祭。時人便作歌曰:

가을 칠월에 동국 후지 냇가 사람 오후베노오가 마을 사람들에게 벌레를 제사하기를 권하며 말하였다. "이는 도코요의 신이다. 이 신을 제사하는 이는 부유함과 목숨을 얻는다."

무당들이 마침내 거짓으로 신의 말에 의탁하여 말하였다. "도코요의 신을 제사하면 가난한 이가 부유해지고 늙은이가 젊음으로 돌아간다."

이로 말미암아 더욱 권하여 백성이 집의 재물과 보배를 버리게 하고, 술을 벌이고 나물을 벌이고 여섯 가지 가축을 길가에 벌여 놓고 외치게 하였다. "새 부유함이 들어온다."

서울과 시골 사람이 도코요의 벌레를 가져다 깨끗한 자리에 두고 노래하고 춤추며 복을 구하였다. 진귀한 재물을 버려도 도무지 이로운 바가 없고 잃고 쓴 것만 몹시 심하였다.

이에 가도노의 하타노미야쓰코 가와카쓰가 백성이 홀리는 것을 미워하여 오후베노오를 때렸다. 그 무당들이 두려워 그 제사 권함을 그쳤다.

그때 사람들이 곧 노래를 지었다.

45노래 — 그때 사람들

「禹都麻佐波。柯微騰母柯微騰。枳舉曳倶屢。騰舉預能柯微乎。宇智岐多麻須母。」

「우쓰마사와 가미토모카미토 기코에쿠루 도코요노카미오 우치키타마스모(禹都麻佐波。柯微騰母柯微騰。枳舉曳倶屢。騰舉預能柯微乎。宇智岐多麻須母)」

— 소리를 적은 것이라 뜻으로 옮기지 않는다.

46그 벌레

此虫者常生於橘樹,或生於曼椒。其長四寸餘,其大如頭指許,其色緑而有黑點,其貌全似養蠶。

이 벌레는 늘 귤나무에 나고 더러는 산초나무에 난다. 그 길이가 네 치 남짓이요 그 굵기가 엄지손가락만 하다. 그 빛이 푸르고 검은 점이 있으며 그 모양이 온전히 누에를 닮았다.

협주 1

曼椒,此云褒曾紀

만초(曼椒)는 호소키라 읽는다.

47소가씨가 집을 성처럼 짓다

冬十一月。蘇我大臣蝦夷兒入鹿臣雙起家於甘檮崗。呼大臣家曰「宫門」,入鹿家曰「谷宫門」。呼男女曰「王子」。家外作城柵,門傍作兵庫。毎門置盛水舟一,木鈎數十以備火灾。恒使力人持兵守家。大臣使長直於大丹穗山造桙削寺,更起家於畝傍山東,穿池爲城,起庫儲箭。恒將五十兵士繞身出入,名健人曰「東方儐從者」。氏氏人等入侍其門,名曰「祖子孺者」,漢直等全侍二門。

겨울 십일월에 소가노오오미 에미시와 아들 이루카노오미가 아마카시노오카에 집을 나란히 세웠다. 대신의 집을 「미카도(宫門)」라 부르고 이루카의 집을 「하사마노미카도(谷宫門)」라 불렀다. 아들딸을 「왕자(王子)」라 불렀다.

집 밖에 성과 목책을 만들고 문 곁에 무기고를 만들었다. 문마다 물 담은 배 하나와 나무 갈고리 수십을 두어 불에 대비하였다. 늘 힘센 사람에게 무기를 들려 집을 지키게 하였다.

대신이 나가노아타이를 시켜 오니호산에 호코노키데라를 짓게 하고, 다시 우네비산 동쪽에 집을 일으켜 못을 파 성으로 삼고 곳간을 일으켜 화살을 쌓았다.

늘 군사 오십을 거느려 몸을 두르고 드나들었으며, 씩씩한 사람들을 「동방의 따르는 이」라 이름하였다. 여러 씨의 사람들이 그 문에 들어가 모시니 이름하여 「조자유자(祖子孺者)」라 하였다. 아야노아타이들이 온전히 두 문을 모셨다.

협주 1

谷,此云波佐麻

하사마(谷)는 하사마라 읽는다.

48원숭이 소리

春正月。或於阜嶺,或於河邊,或於宫寺之間,遥見有物而聽猴吟。或一十許,或廿許。就而視之,物便不見,尚聞鳴嘯之響,不能獲覩其身。時人曰:「此是伊勢大神之使也。」

봄 정월에 더러는 언덕 마루에서, 더러는 냇가에서, 더러는 궁과 절 사이에서 멀리 무엇이 있어 원숭이 우는 소리가 들렸다. 더러는 열쯤, 더러는 스물쯤이었다. 나아가 보면 물건이 곧 보이지 않고, 오히려 우는 소리의 울림은 들리나 그 몸을 볼 수 없었다.

그때 사람들이 말하였다. "이는 이세 대신의 사자다."

협주 1

舊本云:是歳移京於難波,而板蓋宫爲墟之兆也。

옛 판본에는 이해에 서울을 나니와로 옮겨 이타부키노미야가 빈터가 되는 조짐이라 한다.

49안작득지의 침

夏四月戊戌朔。高麗學問僧等言:「同學鞍作得志,以虎爲友,學取其術;或使枯山變爲青山,或使黄地變爲白水,種々奇術不可殫究。又虎授其針曰:『慎矣慎矣,勿令人知。以此治之,病無不俞。』果如所言,治無不差。得志恒以其針隱置柱中。於後虎折其柱,取針走去。高麗國知得志欲歸之意,與毒殺之。」

여름 사월 무술 초하루에 고려에서 학문하던 승려들이 말하였다.

"같이 배우던 안작득지(鞍作得志)가 범을 벗으로 삼아 그 술법을 배워 얻었습니다. 더러는 마른 산을 푸른 산으로 바꾸고 더러는 누런 땅을 흰 물로 바꾸니 온갖 기이한 술법을 다 궁구할 수 없었습니다.

또 범이 그 침을 주며 말하였습니다. '삼가고 삼가라. 남에게 알리지 마라. 이것으로 다스리면 낫지 않는 병이 없다.' 과연 말한 대로 다스려 낫지 않는 것이 없었습니다.

득지가 늘 그 침을 기둥 속에 숨겨 두었습니다. 뒤에 범이 그 기둥을 꺾어 침을 가지고 달아났습니다.

고려국이 득지가 돌아가려는 뜻을 알고 독을 주어 죽였습니다."

50을사의 변 — 삼한의 표문

六月丁酉朔甲辰。中大兄蜜謂倉山田麻呂臣曰:「三韓進調之日,必將使卿讀唱其表。」遂陳欲斬入鹿之謀。麻呂臣奉許焉。戊申。天皇御大極殿,古人大兄侍焉。中臣鎌子連知蘇我入鹿臣爲人多疑,畫夜持劔,而教俳優方便令解。入鹿臣咲而解劒入侍于座。倉山田麻呂臣進而讀唱三韓表文。於是中大兄戒衞門府,一時倶鎖十二通門,勿使徃來。召聚衞門府於一所,將給禄。時中大兄即自執長槍,隱於殿側。中臣鎌子連等持弓矢而爲助衞,使海犬養連勝麻呂授箱中兩劔於佐伯連子麻呂與葛城稚犬養連網田曰:「努力努力,急須應斬。」子麻呂等以水送飯,恐而反吐。中臣鎌子連嘖而使勵。倉山田麻呂臣恐唱表文將盡而子麻呂等不來,流汗浹身,亂聲動手。鞍作臣恠而問曰:「何故掉戰。」山田麻呂對曰:「恐近天皇,不覺流汗。」中大兄見子麻呂等畏入鹿威,便旋不進,便曰:「咄嗟。

유월 정유 초하루 갑진일에 나카노오에가 몰래 구라야마다노마로노오미에게 일렀다. "삼한이 조를 바치는 날에 반드시 경을 시켜 그 표문을 읽어 외게 하겠다." 마침내 이루카를 베려는 꾀를 말하였다. 마로노오미가 받들어 허락하였다.

무신일에 천황이 대극전에 나아갔다. 후루히토노오에가 모셨다.

나카토미노가마코노무라지가 소가노이루카노오미의 사람됨이 의심이 많아 밤낮으로 칼을 지님을 알고, 광대에게 방편을 가르쳐 풀게 하였다. 이루카노오미가 웃으며 칼을 풀고 들어와 자리에 모셨다.

구라야마다노마로노오미가 나아가 삼한의 표문을 읽어 외었다.

이에 나카노오에가 위문부를 경계하여 한때에 열두 문을 함께 잠가 오가지 못하게 하고, 위문부를 한곳에 불러 모아 녹을 주려 하였다.

그때 나카노오에가 곧 스스로 긴 창을 잡고 전각 곁에 숨었다. 나카토미노가마코노무라지들이 활과 화살을 들고 도와 지켰다.

아마노이누카이노무라지 가쓰마로를 시켜 상자 안의 두 칼을 사에키노무라지 고마로와 가즈라키노와카이누카이노무라지 아미타에게 주며 말하였다. "힘써라, 힘써라. 급히 마땅히 베어야 한다."

고마로들이 물로 밥을 넘기다가 두려워 도로 토하였다. 나카토미노가마코노무라지가 꾸짖어 힘내게 하였다.

구라야마다노마로노오미가 표문 읽기가 다하려는데 고마로들이 오지 않는 것을 두려워하여, 흐르는 땀이 온몸을 적시고 소리가 어지럽고 손이 떨렸다.

구라쓰쿠리노오미가 괴이히 여겨 물었다. "무슨 까닭으로 떠는가."

야마다노마로가 대답하였다. "천황께 가까이 있어 두려워 저도 모르게 땀이 흐릅니다."

나카노오에가 고마로들이 이루카의 위엄을 두려워하여 맴돌고 나아가지 않는 것을 보고 곧 말하였다. "얏!"

51이루카가 죽다

」即共子麻呂等出其不意,以劔傷割入鹿頭肩。入鹿驚起,子麻呂運手揮劔傷其一脚。入鹿轉就御座叩頭曰:「當居嗣位天之子也,臣不知罪,乞垂審察。」天皇大驚,詔中大兄曰:「不知所作,有何事耶。」中大兄伏地奏曰:「鞍作盡滅天宗,將傾日位,豈以天孫代鞍作乎。」天皇即起入於殿中。佐伯連子麻呂、稚犬養連網田斬入鹿臣。是日雨下,潦水溢庭。以席障子覆鞍作屍。古人大兄見走入私宫,謂於人曰:「韓人殺鞍作臣。吾心痛矣。」即入臥内,杜門不出。中大兄即入法興寺爲城而備,凡諸皇子、諸王、諸卿大夫、臣連、伴造、國造悉皆随侍。使人賜鞍作臣屍於大臣蝦夷。於是漢直等捴聚眷屬、擐甲持兵,將助大臣處設軍陣。中大兄使將軍巨勢德陁臣,以天地開闢、君臣始有説於賊黨,令知所赴。於是高向臣國押謂漢直等曰:「吾等由君大郎應當被戮,大臣亦於今日明日立俟其誅决矣;然則爲誰空戰,盡被刑乎。

곧 고마로들과 함께 그 뜻하지 않은 틈에 나가 칼로 이루카의 머리와 어깨를 상하여 갈랐다.

이루카가 놀라 일어나매 고마로가 손을 놀려 칼을 휘둘러 그 한쪽 다리를 상하였다.

이루카가 굴러 임금의 자리에 나아가 머리를 조아리며 말하였다. "마땅히 자리를 이을 이는 하늘의 아들입니다. 신은 죄를 알지 못하니 살펴 주시기를 빕니다."

천황이 크게 놀라 나카노오에에게 조를 내렸다. "무슨 일인지 알지 못하겠다. 무슨 일이 있는가."

나카노오에가 땅에 엎드려 아뢰었다. "구라쓰쿠리가 하늘의 겨레를 다 멸하고 해의 자리를 기울이려 합니다. 어찌 하늘 손자로 구라쓰쿠리를 대신하겠습니까."

천황이 곧 일어나 전각 안으로 들어갔다.

사에키노무라지 고마로와 와카이누카이노무라지 아미타가 이루카노오미를 베었다. 이날 비가 내려 괸 물이 뜰에 넘쳤다. 자리와 병풍으로 구라쓰쿠리의 주검을 덮었다.

후루히토노오에가 보고 사사로운 궁으로 달려 들어가 사람에게 일렀다. "한인(韓人)이 구라쓰쿠리노오미를 죽였다. 내 마음이 아프다." 곧 안방에 들어 문을 닫고 나오지 않았다.

나카노오에가 곧 호코지에 들어 성으로 삼고 대비하였다. 무릇 여러 황자와 여러 왕과 여러 경과 대부와 오미와 무라지와 도모노미야쓰코와 구니노미야쓰코가 다 따라 모셨다.

사람을 시켜 구라쓰쿠리노오미의 주검을 대신 에미시에게 주었다.

이에 아야노아타이들이 겨레붙이를 다 모아 갑옷을 입고 무기를 들고 대신이 있는 곳을 도우려 하여 군진을 벌였다.

나카노오에가 장군 고세노토코타노오미를 시켜, 하늘과 땅이 열린 일과 임금과 신하가 처음 있게 된 일을 도적의 무리에게 설명하여 나아갈 바를 알게 하였다.

이에 다카무코노오미 구니오시가 아야노아타이들에게 일렀다. "우리는 우리 임금의 아들 때문에 마땅히 죽임을 당할 것이요, 대신 또한 오늘내일 서서 그 베임을 기다려 정해졌다. 그러한즉 누구를 위하여 헛되이 싸워 다 형벌을 받겠는가.

협주 2

蘇我臣入鹿更名鞍作。

소가노오미 이루카는 다른 이름이 구라쓰쿠리다.

謂因韓政而誅

한(韓)의 정사로 말미암아 죽였음을 이른다.

52천황기와 국기를 태우다

」言畢解釰,投弓捨此而去,賊徒亦随散走。己酉蘇我臣蝦夷等臨誅,悉燒《天皇記》、《國記》、珍寶。船史惠尺即疾取所燒《國記》而奉献中大兄。是日,蘇我臣蝦夷及鞍作屍許葬於墓,復許哭泣。於是或人説第一謡歌曰:

말을 마치고 칼을 풀고 활을 던지고 이곳을 버리고 갔다. 도적의 무리 또한 따라 흩어져 달아났다.

기유일에 소가노오미 에미시들이 죽임에 임하여 천황기(天皇記)와 국기(國記)와 진귀한 보배를 다 태웠다. 후네노후비토 에사카가 곧 빨리 타는 국기를 가져다 나카노오에에게 바쳤다.

이날 소가노오미 에미시와 구라쓰쿠리의 주검을 무덤에 장사 지내기를 허락하고 다시 곡하고 우는 것을 허락하였다.

이에 어떤 사람이 첫째 떠도는 노래를 풀이하였다.

53첫째 노래 풀이

「其歌所謂:『波魯你渠騰曾枳舉喻屢。之麻能野父播羅。』此即宫殿接起於嶋大臣家,而中大兄與中臣鎌子連密圖大義,謀戮入鹿之兆也。」

"그 노래에 이른바 「하로바로니 고토조키코유루 시마노야부하라」라 한 것은, 곧 궁전이 시마노오오미의 집에 잇달아 일어나 나카노오에와 나카토미노가마코노무라지가 몰래 큰 뜻을 꾀하여 이루카를 죽인 조짐이다."

54둘째 노래 풀이

説第二謡歌曰:

둘째 떠도는 노래를 풀이하였다.

55둘째 노래 풀이

「其歌所謂:『烏智可拖能。阿娑努能枳枳始。騰余謀佐儒。倭例播禰始柯騰。比騰曾騰余謀須。』此即上宫王等性順,都無有罪,而爲入鹿見害,雖不自報,天使人誅之兆也。」

"그 노래에 이른바 「오치카타노 아사노노키기시 도요모사즈 와레와네시카도 히토조도요모스」라 한 것은, 곧 가미쓰미야의 왕들이 성품이 순하여 도무지 죄가 없는데 이루카에게 해를 입었으나 스스로 갚지 않으매, 하늘이 사람을 시켜 죽인 조짐이다."

56셋째 노래 풀이

説第三謡歌曰:

셋째 떠도는 노래를 풀이하였다.

57셋째 노래 풀이

「其歌所謂:『烏磨野始你。倭例烏比岐以例底。制始比騰能。於謀提母始羅孺。伊弊母始羅孺母也。』此即入鹿臣忽於宫中,爲佐伯連子麻呂、稚犬養連網田所斬之兆也。」

"그 노래에 이른바 「오마야시니 와레오히키이레테 세시히토노 오모테모시라즈 이헤모시라즈모야」라 한 것은, 곧 이루카노오미가 홀연히 궁 안에서 사에키노무라지 고마로와 와카이누카이노무라지 아미타에게 베임을 당한 조짐이다."

58자리를 물려주다

庚戌。譲位於輕皇子,立中大兄爲皇太子。

경술일에 가루 황자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나카노오에를 세워 황태자로 삼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