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덕천황孝德天皇
1효덕천황
天萬豐日天皇,天豐財重日足姬天皇同母弟也。尊佛法,輕神道。為人柔仁好儒,不擇貴賤,頻降恩敕。
아메요로즈토요히천황(天萬豐日天皇)은 아메토요타카라이카시히타라시히메천황의 동복 아우다. 불법을 높이고 신도를 가벼이 여겼다. 사람됨이 부드럽고 어질며 선비를 좋아하고 귀함과 천함을 가리지 않아 자주 은혜로운 칙명을 내렸다.
협주 1
斮生國魂社樹之類,是也。
이쿠쿠니타마 신사의 나무를 벤 따위가 이것이다.
2자리에 오르다
天豐財重日足姬天皇四年,六月庚戌,天豐財重日足姬天皇思欲傳位於中大兄,而詔曰:「云云。」中大兄退語於中臣鎌子連。中臣鎌子連議曰:「古人大兄,殿下之兄也。輕皇子,殿下之舅也。方今,古人大兄在,而殿下陟天皇位,便違人弟恭遜之心。且立舅以答民望,不亦可乎?」於是,中大兄深嘉厥議,密以奏聞。天豐財重日足姬天皇,授璽綬禪位。策曰:「咨,爾輕皇子。」云云。輕皇子再三固辭,轉讓於古人大兄,曰:「大兄命是昔天皇所生,而又年長。以斯二理,可居天位。」於是古人大兄避座逡巡,拱手辭曰:「奉順天皇聖旨,何勞推讓於臣?臣願出家入于吉野,勤修佛道,奉祐天皇。」辭訖,解所佩刀,投擲於地,亦命帳內皆令解刀。即自詣於法興寺佛殿與塔間,剔除髯髮,披著袈裟。由是輕皇子不得固辭,升壇即祚。于時,大伴長德連,帶金靫,立於壇右。犬上健部君帶金靫,立於壇左。
아메토요타카라이카시히타라시히메천황 사년 유월 경술일에 아메토요타카라이카시히타라시히메천황이 자리를 나카노오에에게 전하고자 하여 조서하였다. "이러이러하다."
나카노오에가 물러나 나카토미노가마코노무라지에게 말하였다.
나카토미노가마코노무라지가 의논하였다. "후루히토노오에는 전하의 형이요 가루 황자는 전하의 외숙입니다. 바야흐로 이제 후루히토노오에가 있는데 전하께서 천황의 자리에 오르시면 곧 아우로서 공손한 마음에 어긋납니다. 또 외숙을 세워 백성의 바람에 답하는 것이 또한 옳지 않겠습니까."
이에 나카노오에가 그 의논을 깊이 아름다이 여겨 몰래 아뢰었다.
아메토요타카라이카시히타라시히메천황이 도장과 인끈을 주어 자리를 물려주며 책서에 이르렀다. "아아, 너 가루 황자여." 이러이러하다.
가루 황자가 두세 번 굳이 사양하고 후루히토노오에에게 옮겨 사양하며 말하였다. "오에노미코토는 옛 천황이 낳으신 이요 또 나이가 위입니다. 이 두 가지 이치로 하늘의 자리에 계실 만합니다."
이에 후루히토노오에가 자리를 피하여 물러서고 손을 맞잡고 사양하였다. "천황의 성스러운 뜻을 받들어 좇겠습니다. 어찌 수고로이 신에게 미루어 사양하십니까. 신은 바라건대 출가하여 요시노에 들어 불도를 부지런히 닦아 천황을 도와 받들겠습니다."
말을 마치고 찬 칼을 풀어 땅에 던지고, 또한 장막 안 사람들에게 명하여 다 칼을 풀게 하였다. 곧 스스로 호코지의 불전과 탑 사이에 나아가 수염과 머리를 깎고 가사를 입었다.
이로 말미암아 가루 황자가 굳이 사양할 수 없어 단에 올라 자리에 나아갔다.
이때 오토모노나가토코노무라지가 금 전동을 차고 단 오른쪽에 서고, 이누카미노타케루베노키미가 금 전동을 차고 단 왼쪽에 섰다.
협주 2
更名,古人大市皇子。
다른 이름은 후루히토노오이치 황자다.
字馬飼。
자는 우마카이다.
3큰 느티나무 아래 맹세
百官臣、連、國造、伴造、百八十部,羅列匝拜。是日,奉號於豐財天皇,曰皇祖母尊。以中大兄為皇太子。以阿倍內麻呂臣為左大臣,蘇我倉山田石川麻呂臣為右大臣。以大錦冠授中臣鎌子連,為內臣,增封若干戶,云云。中臣鎌子連懷至忠之誠,據宰臣之勢,處官司之上。故進退廢置,計從事立,云云。以沙門旻法師、高向史玄理為國博士。辛亥,以金策賜阿倍倉梯麻呂大臣與蘇我山田石川麻呂大臣。乙卯,天皇、皇祖母尊、皇太子於大槻樹之下召集群臣,盟曰。告天神地祇曰:「天覆地載,帝道唯一。而末代澆薄,君臣失序。皇天假手於我,誅殄暴逆。今共瀝心血。而自今以後,君無二政,臣無貳朝。若貳此盟,天災地妖,鬼誅人伐。皎如日月也。」
온갖 벼슬아치와 오미와 무라지와 구니노미야쓰코와 도모노미야쓰코와 백여든 부가 벌여 서서 두루 절하였다.
이날 도요타카라천황에게 이름을 올려 스메미오야노미코토라 하였다. 나카노오에를 황태자로 삼았다. 아베노우치마로노오미를 좌대신으로 삼고 소가노쿠라야마다노이시카와마로노오미를 우대신으로 삼았다.
대금관을 나카토미노가마코노무라지에게 주어 내신으로 삼고 봉한 집을 얼마간 더하였다. 이러이러하다. 나카토미노가마코노무라지가 지극한 충성의 정성을 품고 재상의 세력에 웅거하여 벼슬아치 위에 자리하였다. 그러므로 나아가고 물러남과 폐하고 두는 일이 헤아림을 따르고 일이 서게 되었다. 이러이러하다.
승려 민 법사와 다카무코노후비토 겐리를 나라 박사로 삼았다.
신해일에 금책(金策)을 아베노쿠라하시마로노오오미와 소가노야마다노이시카와마로노오오미에게 주었다.
을묘일에 천황과 스메미오야노미코토와 황태자가 큰 느티나무 아래서 여러 신하를 불러 모아 맹세하였다. 하늘 신과 땅 신에게 고하여 말하였다.
"하늘이 덮고 땅이 실으니 임금의 도는 오직 하나다. 그런데 말세가 엷어져 임금과 신하가 차례를 잃었다. 하늘이 우리에게 손을 빌려 사납고 거스르는 자를 베어 없앴다. 이제 함께 마음의 피를 뿌린다.
이제부터 임금에게 두 정사가 없고 신하에게 두 조정이 없다. 만약 이 맹세를 저버리면 하늘의 재앙과 땅의 요괴가 있고 귀신이 베고 사람이 칠 것이다. 해와 달처럼 밝다."
협주 1
或本云,賜練金。
어떤 판본에는 다듬은 금을 주었다 한다.
4다이카로 고치다
改天豐財重日足姬天皇四年,為大化元年。
아메토요타카라이카시히타라시히메천황 사년을 고쳐 다이카(大化) 원년으로 삼았다.
5백제를 내관가라 하다
秋七月丁卯朔戊辰,立息長足日廣額天皇女間人皇女為皇后。立二妃。元妃,阿倍倉梯麻呂大臣女,曰小足媛。生,有間皇子。次妃,蘇我山田石川麻呂大臣女,曰乳娘。丙子,高麗、百濟、新羅,並遣使進調。百濟調使兼領任那使,進任那調。唯百濟大使佐平緣福,遇病留津館而不入於京。巨勢德太臣詔於高麗使曰:「明神御宇日本天皇詔旨:『天皇所遣之使與高麗神子奉遣之使,既往短而將來長。是故,可以溫和之心,相繼往來而已。』」又詔於百濟使曰:「明神御宇日本天皇詔旨:『始我遠皇祖之世,以百濟國為內官家,譬如三絞之綱。中間以任那國屬賜百濟。後遣三輪栗隈君東人,觀察任那國堺。是故百濟王隨敕悉示其堺。而調有闕。由是卻還其調。任那所出物者,天皇之所明覽。夫自今以後,可具題國與所出調。汝佐平等不易面來,早須明報。今重遣三輪君東人、馬飼造。』」又敕:「可送遣鬼部達率意斯妻子等。
가을 칠월 정묘 초하루 무진일에 오키나가타라시히히로누카천황의 딸 하시히토 황녀를 세워 황후로 삼았다. 두 비를 세웠다. 으뜸 비는 아베노쿠라하시마로노오오미의 딸로 오타라시히메라 한다. 아리마 황자를 낳았다. 다음 비는 소가노야마다노이시카와마로노오오미의 딸로 지노이라쓰메라 한다.
병자일에 고려와 백제와 신라가 아울러 사자를 보내어 조와 부를 바쳤다. 백제의 조 바치는 사자가 임나 사자를 겸하여 거느려 임나의 조를 바쳤다. 오직 백제 대사 좌평 연복(緣福)이 병을 만나 나루의 객관에 머물러 서울에 들어오지 않았다.
고세노토코타노오미가 고려 사자에게 조서하였다.
"밝은 신으로 온 세상을 다스리는 일본 천황의 조지다. '천황이 보내는 사자와 고려 신의 아들이 받들어 보내는 사자는 이미 지난 것이 짧고 앞으로 올 것이 길다. 이 때문에 따뜻하고 화한 마음으로 서로 이어 오갈 뿐이다.'"
또 백제 사자에게 조서하였다.
"밝은 신으로 온 세상을 다스리는 일본 천황의 조지다. '처음 우리 먼 황조 때에 백제국을 내관가(內官家)로 삼았으니 비유하면 세 겹으로 꼰 노와 같다. 중간에 임나국을 백제에 붙여 주었다. 뒤에 미와노쿠리쿠마노키미 아즈마히토를 보내어 임나국의 지경을 살펴보게 하였다. 이 때문에 백제 왕이 칙명에 따라 그 지경을 다 보였다. 그런데 조에 빠짐이 있었다. 이로 말미암아 그 조를 물리쳐 돌려보냈다.
임나에서 나는 물건은 천황이 밝게 보시는 바다. 무릇 이제부터 나라와 나는 조를 갖추어 적을 만하다. 너희 좌평들은 얼굴을 바꾸지 말고 오라. 일찍 밝게 아뢰어야 한다. 이제 거듭 미와노키미 아즈마히토와 우마카이노미야쓰코를 보낸다.'"
또 칙명하였다. "귀부(鬼部) 달솔 의사(意斯)의 처자들을 보내 주라."
협주 1
闕名。
이름이 빠졌다.
6옛 성왕의 자취를 좇으라
」戊寅,天皇詔阿倍倉梯萬侶大臣、蘇我石川萬侶大臣曰:「當遵上古聖王之跡,而治天下。復當有信,可治天下。」己卯,天皇詔阿倍倉梯麻呂大臣、蘇我石川萬侶大臣曰:「可歷問大夫與百伴造等,以悅使民之路。」庚辰,蘇我石川麻呂大臣奏曰:「先以祭鎮神祇,然後應議政事。」是日,遣倭漢直比羅夫於尾張國,忌部首子麻呂於美濃國,課供神之幣。
무인일에 천황이 아베노쿠라하시마로노오오미와 소가노이시카와마로노오오미에게 조를 내렸다. "마땅히 옛 성스러운 임금의 자취를 좇아 천하를 다스려야 한다. 또 마땅히 믿음이 있어야 천하를 다스릴 수 있다."
기묘일에 천황이 아베노쿠라하시마로노오오미와 소가노이시카와마로노오오미에게 조를 내렸다. "대부와 온갖 도모노미야쓰코들에게 두루 물어 백성을 기쁘게 부리는 길을 찾으라."
경진일에 소가노이시카와마로노오오미가 아뢰었다. "먼저 신들을 제사하여 진정한 뒤에 정사를 의논함이 마땅합니다."
이날 야마토노아야노아타이 히라부를 오와리국에, 이무베노오비토 고마로를 미노국에 보내어 신에게 바칠 폐백을 매겼다.
7동국의 구니노쓰카사에게 조를 내리다
八月丙申朔庚子,拜東國等國司。仍詔國司等曰:「隨天神之所奉寄,方今始將修萬國。凡國家所有公民,大小所領人眾,汝等之任,皆作戶籍,及校田畝。其薗池水陸之利與百姓俱。又國司等在國不得判罪。不得取他貨賂,令致民於貧苦。上京之時,不得多從百姓於己。唯得使從國造、郡領。但以公事往來之時,得騎部內之馬,得飡部內之飯。介以上,奉法,必須褒賞。違法,當降爵位。判官以下,取他貨賂,二倍徵之,遂以輕重科罪。其長官從者九人,次官從者七人,主典從者五人。若違限外將者,主與所從之人,並當科罪。若有求名之人,元非國造、伴造、縣稻置,而輙詐訴,言:『自我祖時,領此官家,治是郡縣。』汝等國司不得隨詐便牒於朝。審得實狀,而後可申。又於閑曠之所起造兵庫,收聚國郡刀、甲、弓、矢,邊國近與蝦夷接境處者,可盡數集其兵,而猶假授本主。其於倭國六縣被遣使者,宜造戶籍,并校田畝。
팔월 병신 초하루 경자일에 동국들의 구니노쓰카사를 임명하였다. 이어 구니노쓰카사들에게 조를 내렸다.
"하늘 신이 맡기신 바에 따라 바야흐로 이제 비로소 온 나라를 다스리려 한다. 무릇 나라에 있는 공민과 크고 작은 영지의 사람 무리는 너희 소임이니, 다 호적을 만들고 밭이랑을 헤아려라. 그 동산과 못과 뭍과 물의 이로움은 백성과 함께하라.
또 구니노쓰카사들은 나라에 있으면서 죄를 판결할 수 없다. 남의 재물과 뇌물을 받아 백성을 가난과 괴로움에 이르게 할 수 없다. 서울에 올 때 백성을 제게 많이 딸릴 수 없다. 오직 구니노미야쓰코와 고오리노미야쓰코만 따르게 할 수 있다. 다만 나랏일로 오갈 때는 관내의 말을 타고 관내의 밥을 먹을 수 있다.
차관 이상이 법을 받들면 반드시 기려 상 주고, 법을 어기면 마땅히 벼슬을 낮춘다. 판관 아래가 남의 재물과 뇌물을 받으면 두 배로 물리고, 마침내 가볍고 무거움으로 죄를 매긴다.
그 장관의 따르는 이는 아홉이요, 차관의 따르는 이는 일곱이요, 주전의 따르는 이는 다섯이다. 만약 한도 밖으로 거느리면 주인과 따르는 이를 아울러 죄준다.
만약 이름을 구하는 사람이 있어 본디 구니노미야쓰코나 도모노미야쓰코나 아가타노이나키가 아니면서 문득 거짓으로 하소연하여 '내 조상 때부터 이 관가를 다스리고 이 고을과 현을 다스렸다' 한다면, 너희 구니노쓰카사는 거짓을 따라 문득 조정에 아뢰어서는 안 된다. 실상을 살펴 얻은 뒤에 아뢰어야 한다.
또 한가하고 빈 곳에 무기고를 지어 나라와 고을의 칼과 갑옷과 활과 화살을 거두어 모으라. 변두리 나라로 에미시와 지경이 닿은 곳은 그 무기를 다 모으되 오히려 본주인에게 빌려 주라.
그 야마토국 여섯 현에 보내진 사자는 마땅히 호적을 만들고 아울러 밭이랑을 헤아려라.
8종과 궤를 두다
汝等國司,可明聽退。」即賜帛布,各有差。是日,設鍾、匱於朝,而詔曰:「若憂訴之人,有伴造者,其伴造先勘當而奏。有尊長者,其尊長先勘當而奏。若其伴造、尊長,不審所訴,收牒納匱,以其罪罪之。其收牒者,昧旦執牒,奏於內裏。朕題年月,便示群卿。或懈怠不理,或阿黨有曲,訴者可以撞鍾。由是懸鍾置匱於朝,天下之民咸知朕意。又男女之法者,良男、良女共所生子配其父。若良男娶婢所生子配其母,若良女嫁奴所生子配其父,若兩家奴婢所生子配其母。若寺家仕丁之子者,如良人法。若別入奴婢者,如奴婢法。今克見人為制之始。」癸卯,遣使於大寺,喚聚僧尼而詔曰:「於磯城嶋宮御宇天皇十三年中,百濟明王奉傳佛法於我大倭。是時群臣俱不欲傳,而蘇我稻目宿禰獨信其法。天皇乃詔稻目宿禰,使奉其法。於譯語田宮御宇天皇之世,蘇我馬子宿禰追遵考父之風,猶重能仁之教。
너희 구니노쓰카사는 밝게 듣고 물러가라."
곧 비단과 베를 주되 각각 차등이 있었다.
이날 조정에 종과 궤를 두고 조를 내렸다.
"만약 근심하여 하소연하는 사람이 도모노미야쓰코가 있으면 그 도모노미야쓰코가 먼저 살펴 아뢰라. 높은 어른이 있으면 그 어른이 먼저 살펴 아뢰라. 만약 그 도모노미야쓰코나 어른이 하소연한 바를 살피지 않으면 문서를 거두어 궤에 넣고 그 죄로 죄준다.
그 문서를 거두는 이는 이른 새벽에 문서를 잡고 궁 안에 아뢰라. 짐이 해와 달을 적어 곧 여러 대신에게 보이고 살펴 처리하게 한다. 혹 게을러 다스리지 않거나 혹 무리 지어 굽음이 있으면, 하소연하는 이가 종을 칠 수 있다. 이로 말미암아 종을 달고 궤를 조정에 두니 천하 백성이 다 짐의 뜻을 알라.
또 남녀의 법은, 양민 사내와 양민 계집이 함께 낳은 자식은 그 아비에게 붙인다. 만약 양민 사내가 계집종에게 장가들어 낳은 자식은 그 어미에게 붙이고, 만약 양민 계집이 사내종에게 시집가 낳은 자식은 그 아비에게 붙이고, 만약 두 집 종끼리 낳은 자식은 그 어미에게 붙인다. 만약 절집 심부름꾼의 자식은 양민의 법과 같이 한다. 만약 따로 종에 든 이는 종의 법과 같이 한다. 이제 사람들이 보게 하여 법의 시작으로 삼는다."
계묘일에 큰 절에 사자를 보내어 승려와 비구니를 불러 모아 조를 내렸다.
"시키시마노미야에서 천하를 다스리던 천황 십삼년에 백제 명왕(明王)이 불법을 우리 큰 야마토에 받들어 전하였다. 이때 여러 신하가 다 전하기를 바라지 않았으나 소가노이나메노스쿠네만 홀로 그 법을 믿었다. 천황이 이에 이나메노스쿠네에게 조서하여 그 법을 받들게 하였다.
오사다노미야에서 천하를 다스리던 천황 때에 소가노우마코노스쿠네가 아비의 풍모를 좇아 오히려 능인(能仁)의 가르침을 무겁게 하였다.
협주 1
謂檢覈墾田頃畝及民戶口年紀。
개간한 밭의 넓이와 백성의 호구와 나이를 살펴 밝히는 것을 이른다.
9열 스승을 두다
而餘臣不信,此典幾亡。天皇詔馬子宿禰,而使奉其法。於小墾田宮御宇天皇之世,馬子宿禰奉為天皇,造丈六繡像、丈六銅像,顯揚佛教,恭敬僧尼。朕更復思崇正教,光啟大猷。故以沙門狛大法師、福亮、惠雲、常安、靈雲、惠至、僧旻、道登、惠鄰、惠妙,而為十師。別以惠妙法師,為百濟寺寺主。此十師等,宜能教導眾僧,修行釋教,要使如法。凡自天皇至于伴造所造之寺,不能營者,朕皆助作。今拜寺司等與寺主。巡行諸寺,驗僧尼、奴婢、田畝之實,而盡顯奏。」即以來目臣、三輪色夫君、額田部連甥為法頭。
그러나 다른 신하가 믿지 않아 이 법이 거의 없어질 뻔하였다. 천황이 우마코노스쿠네에게 조서하여 그 법을 받들게 하였다.
오하리다노미야에서 천하를 다스리던 천황 때에 우마코노스쿠네가 천황을 위하여 장륙 수놓은 상과 장륙 구리 상을 만들어 불교를 드러내 높이고 승려와 비구니를 공경하였다.
짐이 다시 또 바른 가르침을 높이고 큰 도를 빛내어 열고자 한다. 그러므로 승려 고마노다이호시와 복량(福亮)과 혜운과 상안(常安)과 영운과 혜지(惠至)와 승민과 도등(道登)과 혜린(惠鄰)과 혜묘(惠妙)로 열 스승을 삼는다. 따로 혜묘 법사로 구다라데라의 절 맡은 이를 삼는다.
이 열 스승들은 마땅히 여러 승려를 잘 가르쳐 이끌어 부처의 가르침을 수행하되 요컨대 법대로 하게 하라.
무릇 천황부터 도모노미야쓰코가 지은 절에 이르기까지 다스리지 못하는 것은 짐이 다 도와 짓겠다. 이제 절 맡은 이들과 절 주인을 임명한다. 여러 절을 두루 다니며 승려와 비구니와 종과 밭이랑의 실상을 조사하여 다 드러내어 아뢰라."
곧 구메노오미와 미와노시코부노키미와 누카타베노무라지 오히를 법두로 삼았다.
협주 2
寺主。
절 주인이다.
闕名。
이름이 빠졌다.
10후루히토 황자의 모반
九月丙寅朔,遣使者於諸國,治兵。戊辰,古人皇子,與蘇我田口臣川堀、物部朴井連椎子、吉備笠臣垂、倭漢文直麻呂、朴市秦造田來津,謀反。丁丑,吉備笠臣垂,自首於中大兄曰:「吉野古人皇子與蘇我田口臣川堀等謀反。臣預其徒。」中大兄即使菟田朴室古、高麗宮知,將兵若干,討古人大市皇子等。甲申,遣使者於諸國,錄民元數。仍詔曰:「自古以降,每天皇時,置標代民,垂名於後。
구월 병인 초하루에 사자를 여러 나라에 보내어 군사를 다스렸다.
무진일에 후루히토 황자가 소가노타구치노오미 가와호리와 모노노베노에노이노무라지 시이와 기비노카사노오미 시다루와 야마토노아야노후미노아타이 마로와 에치노하타노미야쓰코 다쿠쓰와 함께 모반하였다.
정축일에 기비노카사노오미 시다루가 나카노오에에게 스스로 자수하였다. "요시노의 후루히토 황자가 소가노타구치노오미 가와호리들과 모반합니다. 신이 그 무리에 끼었습니다."
나카노오에가 곧 우다노에노무로노후루와 고마노미야치를 시켜 군사 얼마를 거느리고 후루히토노오이치 황자들을 치게 하였다.
갑신일에 사자를 여러 나라에 보내어 백성의 본디 수를 적게 하였다. 이어 조를 내렸다.
"예로부터 내려오며 천황마다 표로 삼는 백성을 두어 이름을 뒤에 드리웠다.
협주 6
或本云:從六月至九月,遣使者於四方國,集種種兵器。
어떤 판본에는 유월부터 구월까지 사자를 사방 나라에 보내어 온갖 무기를 모았다 한다.
或本云,古人太子。或本云,古人大兄。此皇子入吉野山,故或云吉野太子。
어떤 판본에는 후루히토 태자라 하고, 어떤 판본에는 후루히토노오에라 한다. 이 황자가 요시노산에 들었으므로 혹 요시노 태자라 한다.
垂,此云之娜屢。
시다루(垂)는 시다루라 읽는다.
或本云:吉備笠臣垂,言於阿倍大臣與蘇武大臣曰:「臣預於吉野皇子謀反之徒。故今自首也。」
어떤 판본에는 기비노카사노오미 시다루가 아베노오오미와 소가노오오미에게 말하기를 「신이 요시노 황자의 모반하는 무리에 끼었으므로 이제 스스로 자수합니다」 하였다 한다.
或本云:十一月甲午三十日,中大兄使阿倍渠曾倍臣、佐伯部子麻呂二人,將兵三十人,攻古人大兄,斬古人大兄與子。其妃妾自經死。
어떤 판본에는 십일월 갑오 삼십일에 나카노오에가 아베노코소베노오미와 사에키베노코마로 두 사람에게 군사 서른을 거느려 후루히토노오에를 쳐 후루히토노오에와 아들을 베게 하니 그 비와 첩이 스스로 목매어 죽었다 한다.
或本云:十一月,吉野大兄王謀反,事覺伏誅也。
어떤 판본에는 십일월에 요시노노오에노오키미가 모반하다가 일이 드러나 죽임을 받았다 한다.
11땅을 팔지 마라
其臣、連等,伴造、國造,各置己民,恣情駈使,又割國縣山海、林野、池田,以為己財,爭戰不已。或者兼并數萬頃田,或者全無容針少地。進調賦時,其臣、連、伴造等,先自收斂,然後分進。修治宮殿,築造園陵,各率己民,隨事而作。易曰:『損上益下。節以制度,不傷財,不害民。』方今百姓猶乏。而有勢者,分割水陸,以為私地,賣與百姓,年索其價。從今以後,不得賣地。勿妄作主兼并劣弱。」百姓大悅。
그 오미와 무라지들과 도모노미야쓰코와 구니노미야쓰코가 각각 제 백성을 두고 마음대로 부리며, 또 나라와 현의 산과 바다와 숲과 들과 못과 밭을 갈라 제 재물로 삼아 다투어 싸우기를 그치지 않았다.
더러는 수만 이랑의 밭을 아울러 가지고, 더러는 아예 바늘 하나 꽂을 땅도 없다. 조와 부를 바칠 때 그 오미와 무라지와 도모노미야쓰코들이 먼저 스스로 거두고 그런 뒤에 나누어 바친다. 궁전을 고쳐 다스리고 동산과 능을 지음에 각각 제 백성을 거느려 일에 따라 짓는다.
역(易)에 이르기를 '위를 덜어 아래를 더한다. 제도로 마디를 지으면 재물을 상하지 않고 백성을 해치지 않는다' 하였다.
바야흐로 이제 백성이 오히려 모자란다. 그런데 세력 있는 이가 물과 뭍을 갈라 사사로운 땅으로 삼고 백성에게 팔아 해마다 그 값을 요구한다.
이제부터 땅을 팔 수 없다. 함부로 주인이 되어 약한 이를 아울러 삼키지 마라."
백성이 크게 기뻐하였다.
12나니와로 도읍을 옮기다
冬十二月乙未朔癸卯,天皇遷都難波長柄豐碕。老人等相謂之曰:「自春至夏,鼠向難波。遷都之兆也。」戊午,越國言:「海畔,枯查向東移去。沙上有跡,如耕田狀。」是年也,太歲乙巳。
겨울 십이월 을미 초하루 계묘일에 천황이 나니와의 나가라노토요사키로 도읍을 옮겼다.
늙은이들이 서로 일렀다. "봄부터 여름까지 쥐가 나니와로 향하였다. 도읍을 옮길 조짐이다."
무오일에 고시국이 말하였다. "바닷가에 마른 뗏목이 동쪽으로 옮겨 갔습니다. 모래 위에 자취가 있어 밭 가는 모양 같습니다."
이해는 태세가 을사다.
13개신의 조서
春正月甲子朔,賀正禮畢,即宣改新之詔曰:
봄 정월 갑자 초하루에 새해 하례하는 예를 마치고 곧 개신(改新)의 조서를 펴 내렸다.
14개신 제일조 — 옛 소유를 없애다
其一曰:「罷昔在天皇等所立子代之民、處處屯倉,及別臣、連、伴造、國造、村首所有部曲之民、處處田莊。仍賜食封大夫以上,各有差。降以布帛賜官人、百姓有差。」又曰:「大夫所使治民也,能盡其治則民賴之。故重其祿,所以為民也。」
그 첫째에 이르렀다.
"옛적 천황들이 세운 고시로의 백성과 곳곳의 둔창과, 따로 오미와 무라지와 도모노미야쓰코와 구니노미야쓰코와 무라노오비토가 가진 부곡의 백성과 곳곳의 밭 장원을 없앤다. 이어 봉한 집을 대부 이상에게 주되 각각 차등이 있다. 낮추어 베와 비단을 벼슬아치와 백성에게 주되 차등이 있다."
또 말하였다. "대부는 백성을 다스리게 하는 바다. 능히 그 다스림을 다하면 백성이 그를 믿는다. 그러므로 그 녹을 무겁게 하는 것은 백성을 위한 까닭이다."
15개신 제이조 — 서울과 기내를 정하다
其二曰:「初修京師,置畿內國司、郡司、關塞、斥候、防人、驛馬、傳馬,及造鈴契,定山河。凡京,每坊置長一人,四坊置令一人。掌按檢戶口,督察姧非。其坊令,取坊內明廉強直,堪時務者宛。里坊長,並取里坊百姓清正強幹者宛。若當里坊無人,聽於比里坊簡用。凡畿內,東自名墾橫河以來,南自紀伊兄山以來,西自赤石櫛淵以來,北自近江狹狹波合坂山以來為畿內國。凡郡以四十里為大郡,三十里以下四里以上為中郡,三里為小郡。其郡司,並取國造性識清廉,堪時務者,為大領、少領。強幹聰敏工書算者,為主政、主帳。凡給驛馬、傳馬、皆依鈴、傳符剋數。凡諸國及關,給鈴契,並長官執。無,次官執。」
그 둘째에 이르렀다.
"처음으로 서울을 닦고 기내의 구니노쓰카사와 고오리노쓰카사와 관문과 요새와 척후와 사키모리와 역마와 전마를 두고, 방울과 부신을 만들며 산과 내를 정한다.
무릇 서울은 방(坊)마다 어른 하나를 두고 네 방에 영(令) 하나를 둔다. 호구를 살피고 간사한 짓을 살펴 다스림을 맡는다. 그 방령은 방 안에서 밝고 청렴하고 굳세고 곧아 그때의 일을 감당할 이를 뽑아 맡긴다. 이(里)와 방의 어른은 아울러 이와 방의 백성 가운데 맑고 바르고 굳센 이를 뽑아 맡긴다. 만약 그 이와 방에 사람이 없으면 가까운 이와 방에서 가려 쓰기를 허락한다.
무릇 기내는 동쪽으로 나바리의 요코카와부터, 남쪽으로 기이의 세노야마부터, 서쪽으로 아카시의 구시부치부터, 북쪽으로 오미의 사사나미의 아후사카산부터를 기내국으로 삼는다.
무릇 고을은 마흔 이(里)를 큰 고을로 삼고, 서른 이 아래 네 이 위를 가운데 고을로 삼고, 세 이를 작은 고을로 삼는다. 그 고오리노쓰카사는 아울러 구니노미야쓰코 가운데 성품과 앎이 맑고 청렴하여 그때의 일을 감당할 이를 뽑아 대령과 소령으로 삼는다. 굳세고 총명하며 글과 셈을 잘하는 이를 주정과 주장으로 삼는다.
무릇 역마와 전마를 주는 것은 다 방울과 전부(傳符)의 새김 수에 따른다. 무릇 여러 나라와 관문에 방울과 부신을 주되 아울러 장관이 잡는다. 없으면 차관이 잡는다."
협주 1
兄,此云制。
형(兄)은 세라 읽는다.
16개신 제삼조 — 호적과 반전수수
其三曰:「初造戶籍、計帳、班田收授之法。凡五十戶為里,每里置長一人。掌按檢戶口,課執農桑,禁察非違,催駈賦役。若山谷阻險,地遠人稀之處,隨便量置。凡田長三十步,廣十二步為段,十段為町。段租稻二束二把,町租稻二十二束。」
그 셋째에 이르렀다.
"처음으로 호적과 계장(計帳)과 반전수수(班田收授)의 법을 만든다.
무릇 오십 호를 이(里)로 삼고 이마다 어른 하나를 둔다. 호구를 살피고 농사와 누에 치기를 매겨 잡으며 그름과 어긋남을 금하고 살피며 부역을 재촉하는 일을 맡는다. 만약 산골이 험하고 땅이 멀며 사람이 드문 곳은 형편에 따라 헤아려 둔다.
무릇 밭은 길이 서른 걸음, 너비 열두 걸음을 단(段)으로 삼고 열 단을 정(町)으로 삼는다. 단의 조는 벼 두 묶음 두 줌이요 정의 조는 벼 스물두 묶음이다."
17개신 제사조 — 부역과 조를 고치다
其四曰:「罷舊賦役,而行田之調。凡絹、絁、絲、綿,並隨鄉土所出。田一町絹一丈,四町成疋。長四丈,廣二尺半。絁二丈,二町成疋,長、廣同絹。布四丈,長、廣同絹、絁。一町成端。別收戶別之調,一戶貲布一丈二尺。凡調副物鹽贄,亦隨鄉土所出。凡官馬者,中馬每一百戶輸一疋,若細馬每兩百戶輸一疋。其買馬直者,一戶布一丈二尺。凡兵者人身輸刀、甲、弓、矢、幡、鼓。凡仕丁者改舊每三十戶一人,而每五十戶一人,以宛諸司。以五十戶宛仕丁一人之糧。一戶庸布一丈二尺,庸米五斗。凡采女者貢郡少領以上姊妹及子女形容端正者。以一百戶宛采女一人糧。庸布、庸米,皆准仕丁。」
그 넷째에 이르렀다.
"옛 부역을 없애고 밭의 조를 행한다.
무릇 명주와 굵은 명주와 실과 솜은 아울러 그 고장에서 나는 바를 따른다. 밭 한 정에 명주 한 장이니 네 정이 한 필을 이룬다. 길이 넉 장, 너비 두 자 반이다. 굵은 명주는 두 장이니 두 정이 한 필을 이루고 길이와 너비는 명주와 같다. 베는 넉 장이니 길이와 너비가 명주와 굵은 명주와 같고 한 정이 한 끝을 이룬다.
따로 집집의 조를 거두되 한 집에 자포(貲布) 한 장 두 자다.
무릇 조에 딸린 물건인 소금과 진지는 또한 그 고장에서 나는 바를 따른다.
무릇 관가의 말은 가운데 말은 백 집마다 한 필을 내고, 좋은 말은 이백 집마다 한 필을 낸다. 그 말 사는 값은 한 집에 베 한 장 두 자다.
무릇 군사는 사람마다 칼과 갑옷과 활과 화살과 기와 북을 낸다.
무릇 심부름꾼은 옛적에 서른 집마다 하나이던 것을 고쳐 쉰 집마다 하나로 하여 여러 관청에 맡긴다. 쉰 집으로 심부름꾼 하나의 양식을 삼는다. 한 집에 용포(庸布) 한 장 두 자, 용미(庸米) 다섯 말이다.
무릇 우네메는 고을 소령 이상의 누이와 딸로 얼굴이 단정한 이를 바친다. 백 집으로 우네메 하나의 양식을 삼는다. 용포와 용미는 다 심부름꾼에 견준다."
협주 4
絲、綿絇屯,諸處不見。
실과 솜의 묶음 단위는 여러 곳에 보이지 않는다.
以一人宛廝也。
한 사람을 종으로 딸린다.
以一人宛廝。
한 사람을 종으로 딸린다.
從丁一人,從女二人。
따르는 사내 하나, 따르는 여인 둘이다.
18무기고를 닦다
是月,天皇御子代離宮。遣使者,詔郡國修營兵庫。蝦夷親附。
이달에 천황이 고시로의 이궁에 나아갔다. 사자를 보내어 고을과 나라에 무기고를 닦아 짓기를 조서하였다. 에미시가 가까이 붙었다.
협주 1
或本云:壞難波狹屋部邑子代屯倉,而起行宮。
어떤 판본에는 나니와의 사야베 마을 고시로의 둔창을 헐어 행궁을 일으켰다 한다.
19종과 궤에 든 글
二月甲午朔戊申,天皇幸宮東門,使蘇我右大臣詔曰:「明神御宇日本倭根子天皇,詔於集侍卿等、臣、連、國造、伴造及諸百姓:『朕聞:「明哲之御民者,懸鍾於門而觀百姓之憂,作屋於衢而聽路行之謗。雖蒭蕘之說,親問為師。」由是朕前下詔曰:「古之治天下,朝有進善之旌,誹謗之木。所以通治道,而來諫者也。皆所以廣詢于下也。管子曰:『黃帝立明堂之議者,上觀於賢也。堯有衢室之問者,下聽於民也。舜有告善之旌,而主不蔽也。禹立建鼓於朝,而備訊望也。湯有總街之庭,以觀民非也。武王有靈台之囿,而賢者進也。此故聖帝明王所以有而勿失,得而勿亡也。』所以懸鍾設匱,拜收表人。使憂諫人,納表于匱,詔收表人,每旦奏請。朕得奏請,仍示群卿,便使勘當。庶無留滯。如群卿等,或懈怠不懃,或阿黨比周,朕復不肯聽諫,憂訴之人當可撞鍾。」詔已如此。既而有民明直心,懷國土之風,切諫陳疏納於設匱。
이월 갑오 초하루 무신일에 천황이 궁 동문에 나아가 소가노우다이진을 시켜 조서하였다.
"밝은 신으로 온 세상을 다스리는 야마토네코천황이 모여 모신 경들과 오미와 무라지와 구니노미야쓰코와 도모노미야쓰코와 여러 백성에게 조서한다.
'짐이 듣건대 밝고 슬기롭게 백성을 다스리는 이는 문에 종을 달아 백성의 근심을 보고, 네거리에 집을 지어 길 가는 이의 헐뜯음을 듣는다. 비록 나무꾼의 말이라도 몸소 물어 스승으로 삼는다 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짐이 앞서 조서하여 말하기를 「옛적에 천하를 다스릴 때 조정에 착함을 나아가게 하는 깃발과 헐뜯음을 적는 나무가 있었다. 다스리는 길을 통하게 하고 간하는 이를 오게 하는 바니, 다 아래에 널리 묻는 까닭이다.
관자(管子)에 이르기를 『황제가 명당의 의논을 세운 것은 위로 어진 이를 보려 함이요, 요임금이 거리의 방에서 물은 것은 아래로 백성에게 들으려 함이요, 순임금이 착함을 알리는 깃발을 둔 것은 임금이 가리지 않으려 함이요, 우임금이 조정에 북을 세운 것은 물음을 갖추려 함이요, 탕임금이 온 거리의 뜰을 둔 것은 백성의 그름을 보려 함이요, 무왕이 영대의 동산을 둔 것은 어진 이를 나아오게 하려 함이다. 이런 까닭에 성스러운 임금과 밝은 왕이 가지고도 잃지 않고 얻고도 잃지 않았다』 하였다.
그러므로 종을 달고 궤를 두어 글 거두는 사람을 임명한다. 근심하여 간하는 이로 하여금 글을 궤에 넣게 하고, 글 거두는 이에게 조서하여 아침마다 아뢰어 청하게 한다. 짐이 아뢰어 청한 것을 얻어 곧 여러 대신에게 보이고 살펴 처리하게 한다. 바라건대 머물러 막힘이 없게 하라. 만약 여러 대신이 게을러 부지런하지 않거나 무리 지어 두루 하거나, 짐이 다시 간함을 즐겨 듣지 않으면, 근심하여 하소연하는 이가 마땅히 종을 칠 수 있다」 하였다. 조서가 이미 이와 같았다.
이윽고 백성 가운데 밝고 곧은 마음으로 나라의 풍습을 걱정하여 간절히 간하고 글을 펴 마련한 궤에 넣은 이가 있었다.
20잡역을 없애다
故今顯示集在黎民。其表稱:「緣奉國政,到於京民,官官留使於雜役。」云云。朕猶以之傷惻,民豈復思至此。然遷都未久,還似于賓。猶是不得不使,而強役之。每念於斯,未嘗安寢。朕觀此表,嘉歎難休。故隨所諫之言,罷處處之雜役。昔詔曰:「諫者題名。」而不隨詔命者,自非求利,而將助國。不言題不,諫朕廢忘。』」又詔:「集在國民,所訴多在。今將解理,諦聽所宣。其欲決疑,入京朝集者,且莫退散,聚侍於朝。」高麗、百濟、任那、新羅,並遣使,貢獻調賦。乙卯,天皇還自子代離宮。
그러므로 이제 모여 있는 백성에게 드러내 보인다. 그 글에 일컫기를 「나라 정사를 받드는 일로 서울에 이른 백성을, 관청마다 잡역에 머물러 부린다」 하였다. 이러이러하다.
짐이 오히려 이를 마음 아파한다. 백성이 어찌 다시 여기에 이르기를 생각하겠는가. 그러나 도읍을 옮긴 지 오래지 않아 도리어 손님과 같다. 오히려 이는 부리지 않을 수 없어 억지로 부린 것이다. 이를 생각할 때마다 일찍이 편히 잠들지 못하였다.
짐이 이 글을 보고 아름다이 여겨 탄식하기를 그치기 어렵다. 그러므로 간한 말대로 곳곳의 잡역을 없앤다.
옛적에 조서하기를 「간하는 이는 이름을 적으라」 하였다. 그런데 조서의 명을 따르지 않은 것은 스스로 이익을 구함이 아니라 나라를 도우려 함이다. 이름을 적었는지 아닌지를 말하지 말고 짐이 잊고 버린 것을 간하라.'"
또 조서하였다. "모여 있는 나라 백성이 하소연할 바가 많이 있다. 이제 풀어 다스리려 하니 살펴 알리는 바를 들으라. 그 의심을 풀고자 서울에 들어와 조정에 모인 이는 또한 물러나 흩어지지 말고 조정에 모여 모시라."
고려와 백제와 임나와 신라가 아울러 사자를 보내어 조와 부를 바쳤다.
을묘일에 천황이 고시로의 이궁에서 돌아왔다.
21동국 구니노쓰카사에게 조서하다
三月癸亥朔甲子,詔東國國司等曰:「集侍群卿大夫及臣、連、國造、伴造并諸百姓等,咸可聽之。夫君於天地之間而宰萬民者,不可獨制,要須臣翼。由是代代之我皇祖等,共卿祖考俱治。朕復思欲蒙神護力,共卿等治。故前以良家大夫使治東方八道。既而國司之任,六人奉法,二人違令,毀譽各聞。朕便美厥奉法,疾斯違令。凡將治者,若君如臣,先當正己而後正他。如不自正,何能正人?是以不自正者,不擇君臣,乃可受殃。豈不慎矣。汝率而正,孰敢不正。今隨前敕,而處斷之。」辛巳,詔東國朝集使等曰:「集侍群臣大夫及國造、伴造并諸百姓等,咸可聽之。以去年八月,朕親誨曰:『莫因官勢,取公私物。可喫部內之食,可騎部內之馬。若違所誨,次官以上降其爵位,主典以下決其笞、杖。入己物者,倍而徵之。』詔既若斯。今問朝集使及諸國造等:『國司至任,奉所誨不?』於是朝集使等具陳其狀:『穗積臣咋所犯者,於百姓中每戶求索,仍悔還物,而不盡與。
삼월 계해 초하루 갑자일에 동국의 구니노쓰카사들에게 조를 내렸다.
"모여 모신 여러 경과 대부와 오미와 무라지와 구니노미야쓰코와 도모노미야쓰코와 여러 백성들은 다 들으라.
무릇 하늘과 땅 사이에 임금이 되어 만민을 다스리는 이는 홀로 할 수 없고 반드시 신하의 도움이 있어야 한다. 이로 말미암아 대대로 우리 황조들이 경들의 조상과 함께 다스렸다. 짐도 다시 신의 지키는 힘을 입어 경들과 함께 다스리려 생각한다.
그러므로 앞서 좋은 집안의 대부로 동쪽 여덟 길을 다스리게 하였다. 이윽고 구니노쓰카사의 소임에 여섯 사람은 법을 받들고 두 사람은 영을 어겨, 헐뜯음과 기림이 각각 들렸다. 짐이 곧 저 법 받든 것을 아름다이 여기고 이 영 어긴 것을 미워한다.
무릇 다스리려는 이는 임금이든 신하든 먼저 마땅히 저를 바르게 한 뒤에 남을 바르게 한다. 만약 스스로 바르지 않으면 어찌 남을 바르게 하겠는가. 이 때문에 스스로 바르지 않은 이는 임금과 신하를 가리지 않고 곧 재앙을 받을 만하다. 어찌 삼가지 않겠는가. 네가 앞서 바르면 누가 감히 바르지 않겠는가. 이제 앞서의 칙명에 따라 처단한다."
신사일에 동국의 조집사들에게 조를 내렸다.
"모여 모신 여러 신하와 대부와 구니노미야쓰코와 도모노미야쓰코와 여러 백성들은 다 들으라.
지난해 팔월에 짐이 몸소 가르쳐 말하였다. '관가의 세력을 빌려 공사의 물건을 가지지 마라. 관내의 밥을 먹고 관내의 말을 탈 수 있다. 만약 가르친 바를 어기면 차관 이상은 그 벼슬을 낮추고 주전 아래는 볼기와 매를 친다. 제 물건으로 들인 이는 두 배로 물린다.' 조서가 이미 이와 같았다.
이제 조집사와 여러 구니노미야쓰코들에게 묻는다. '구니노쓰카사가 소임에 이르러 가르친 바를 받들었는가.'
이에 조집사들이 그 사정을 갖추어 늘어놓았다.
'호즈미노오미 구이가 범한 것은, 백성 가운데 집집이 구하여 찾고 이어 뉘우쳐 물건을 돌려주면서 다 주지 않은 것입니다.
22구니노쓰카사들의 허물
其介富制臣、巨勢臣紫檀二人之過者,不正其上,云云。凡以下官人,咸有過也。其巨勢德禰臣所犯者,於百姓中每戶求索,仍悔還物,而不盡與,復取田部之馬。其介朴井連、押坂連二人者,不正其上所失,而翻共求己利,復取國造之馬。臺直須彌,初雖諫上,而遂俱濁。凡以下官人,咸有過也。其紀麻利耆拖臣所犯者,使人於朝倉君、井上君,二人之所,而為牽來其馬視之。復使朝倉君作刀,復得朝倉君之弓、布。復以國造所送兵代之物,不明還主,妄傳國造。復於所任之國被他偷刀,復於倭國被他偷刀。是其紀臣、其介三輪君大口、河邊臣百依等過也。其以下官人,河邊臣磯泊、丹比深目、百舌鳥長兄、葛城福草、難波癬龜、犬養五十君、伊岐史麻呂、丹比大眼,凡是八人等,咸有過也。其阿曇連所犯者,和德史有所患時,言於國造,使送官物。復取湯部之馬。
그 차관 후세노오미와 고세노오미 시탄 두 사람의 허물은 그 윗사람을 바로잡지 않은 것입니다. 이러이러합니다. 무릇 아래 벼슬아치도 다 허물이 있습니다.
고세노토쿠네노오미가 범한 것은, 백성 가운데 집집이 구하여 찾고 이어 뉘우쳐 물건을 돌려주면서 다 주지 않고 다시 다베의 말을 가진 것입니다. 그 차관 에노이노무라지와 오사카노무라지 두 사람은 그 윗사람의 잘못을 바로잡지 않고 도리어 함께 제 이익을 구하며 다시 구니노미야쓰코의 말을 가졌습니다. 우테나노아타이 스미가 처음에는 위를 간하였으나 마침내 함께 흐려졌습니다. 무릇 아래 벼슬아치도 다 허물이 있습니다.
기노마리키타노오미가 범한 것은, 사람을 아사쿠라노키미와 이노우에노키미 두 사람이 있는 곳에 보내어 그 말을 끌어 오게 하여 보고, 다시 아사쿠라노키미에게 칼을 만들게 하고, 다시 아사쿠라노키미의 활과 베를 얻은 것입니다. 다시 구니노미야쓰코가 보낸 병기 대신의 물건을 밝게 주인에게 돌려주지 않고 함부로 구니노미야쓰코에게 전하였습니다. 다시 맡은 나라에서 남에게 칼을 도둑맞고, 다시 야마토국에서 남에게 칼을 도둑맞았습니다. 이는 그 기노오미와 그 차관 미와노키미 오구치와 가와베노오미 모모요리들의 허물입니다. 그 아래 벼슬아치 가와베노오미 이소도마리와 다지히노후카메와 모즈노나가에와 가즈라키노후쿠쿠사와 나니와노구히카메와 이누카이노이키미와 이키노후비토 마로와 다지히노오마나코 무릇 이 여덟 사람도 다 허물이 있습니다.
아즈미노무라지가 범한 것은, 와토코노후비토가 앓는 바가 있을 때 구니노미야쓰코에게 말하여 관가의 물건을 보내게 한 것입니다. 다시 유베의 말을 가졌습니다.
협주 4
闕名。
이름이 빠졌다.
闕名。
이름이 빠졌다.
癬龜,此云俱毘柯梅。
구히카메(癬龜)는 구히카메라 읽는다.
闕名。
이름이 빠졌다.
23다스림을 삼가라
其介膳部臣百依所犯者,草代之物收置於家,復取國造之馬,而換他馬來。河邊臣磐管、湯麻呂兄弟二人亦有過也。大市連所犯者,違於前詔。前詔曰:「國司等,莫於任所自斷民之所訴。」輙違斯詔,自判菟礪人之所訴及中臣德之奴事。中臣德亦是同罪。涯田臣之過者,在於倭國被偷官刀,是不謹也。小綠臣、丹波臣是拙而無犯。忌部木菓、中臣連正月二人,亦有過也。羽田臣、田口臣二人並無過也。平群臣所犯者,三國人所訴有而未問。』以此觀之,紀麻利耆拖臣、巨勢德彌臣、穗積咋臣,汝等三人所怠拙也。念斯違詔,豈不勞情。夫為君臣以牧民者,自率而正,孰敢不直。若君或臣,不正心者,當受其罪。追悔何及。是以凡諸國司,隨過輕重,考而罰之。又諸國造違詔送財於己國司,遂俱求利,恒懷穢惡。不可不治。念雖若是,始處新宮將幣諸神,屬乎今歲。
그 차관 가시와데베노오미 모모요리가 범한 것은, 풀 대신의 물건을 집에 거두어 두고, 다시 구니노미야쓰코의 말을 가져 다른 말과 바꾸어 온 것입니다. 가와베노오미 이와쿠다와 유마로 형제 두 사람도 또한 허물이 있습니다.
오이치노무라지가 범한 것은 앞서의 조서를 어긴 것입니다. 앞서 조서하기를 「구니노쓰카사들은 맡은 곳에서 백성이 하소연한 바를 스스로 판결하지 마라」 하였습니다. 문득 이 조서를 어기고 우토리 사람이 하소연한 바와 나카토미노토코의 종에 관한 일을 스스로 판결하였습니다. 나카토미노토코 또한 이는 같은 죄입니다.
기시타노오미의 허물은 야마토국에서 관가의 칼을 도둑맞은 것이니 이는 삼가지 않은 것입니다. 오미도리노오미와 다니와노오미는 서투르나 범한 것이 없습니다. 이무베노고노미와 나카토미노무라지 무쓰키 두 사람도 또한 허물이 있습니다. 하타노오미와 다구치노오미 두 사람은 아울러 허물이 없습니다. 헤구리노오미가 범한 것은 세 나라 사람이 하소연한 바가 있는데 아직 묻지 않은 것입니다.'
이로써 보면 기노마리키타노오미와 고세노토쿠네노오미와 호즈미노쿠이노오미 너희 세 사람이 게으르고 서툰 바다. 이 조서 어김을 생각하면 어찌 마음이 수고롭지 않겠는가.
무릇 임금과 신하가 되어 백성을 기르는 이는 스스로 앞서 바르면 누가 감히 곧지 않겠는가. 만약 임금이나 신하가 마음을 바르게 하지 않으면 마땅히 그 죄를 받는다. 뉘우쳐도 어찌 미치겠는가.
이 때문에 무릇 여러 구니노쓰카사는 허물의 가볍고 무거움에 따라 살펴 벌한다. 또 여러 구니노미야쓰코가 조서를 어기고 제 구니노쓰카사에게 재물을 보내어 마침내 함께 이익을 구하며 늘 더러운 악을 품으니 다스리지 않을 수 없다.
생각건대 비록 이와 같으나 새 궁에 처음 자리하여 여러 신에게 폐백을 드릴 일이 올해에 걸렸다.
협주 5
闕名。
이름이 빠졌다.
闕名。
이름이 빠졌다.
並闕名。
아울러 이름이 빠졌다.
並闕名。
아울러 이름이 빠졌다.
闕名。
이름이 빠졌다.
24크게 사면하다
又於農月,不合使民,緣造新宮,固不獲己。深感二途,大赦天下。自今以後,國司、郡司勉之勗之,勿為放逸。宜遣使者,諸國流人及獄中囚,一皆放捨。別鹽屋鯯魚、神社福草、朝倉君、椀子連、三河大伴直、蘆尾直,此六人奉順天皇。朕深讚美厥心,宜罷官司處處屯田及吉備嶋皇祖母處處貸稻,以其屯田班賜群臣及伴造等。又於脫籍寺,入田與山。」壬午,皇太子使使奏請曰:「昔在天皇等世,混齊天下而治。及逮于今,分離失業。屬天皇我皇可牧萬民之運,天人合應厥政維新。是故慶之尊之,頂戴伏奏。現為明神御八嶋國天皇,問於臣曰:『其群臣、連及伴造、國造所有昔在天皇日所置子代入部,皇子等私有御名入部,皇祖大兄御名入部,及其屯倉,猶如古代而置以不?』臣即恭承所詔,奉答而曰:『天無雙日,國無二王。是故兼并天下可使萬民,唯天皇耳。
또 농사철에 백성을 부리는 것이 맞지 않으나 새 궁을 짓는 까닭에 참으로 그만둘 수 없다. 두 길을 깊이 느껴 천하에 크게 사면한다.
이제부터 구니노쓰카사와 고오리노쓰카사는 힘쓰고 힘써 함부로 놓아 버리지 마라. 마땅히 사자를 보내어 여러 나라의 귀양 간 이와 옥 안의 죄수를 하나같이 다 놓아 버리라.
따로 시오야노고노시로와 가무야시로노후쿠쿠사와 아사쿠라노키미와 마로코노무라지와 미카와노오토모노아타이와 아시오노아타이 이 여섯 사람은 천황을 받들어 따랐다. 짐이 그 마음을 깊이 기려 아름다이 여긴다. 마땅히 관청 곳곳의 둔전과 기비시마노스메미오야의 곳곳에 빌려 준 벼를 없애고, 그 둔전을 여러 신하와 도모노미야쓰코들에게 나누어 주라. 또 호적을 벗은 절에 밭과 산을 들이라."
임오일에 황태자가 사자를 시켜 아뢰어 청하였다.
"옛적 천황들의 세상에는 천하를 섞어 고르게 하여 다스렸습니다. 이제에 이르러 나뉘고 떨어져 업을 잃었습니다. 천황 우리 임금께서 만민을 기르실 운수에 붙어 하늘과 사람이 합하여 응하매 그 정사가 새로워졌습니다. 이 때문에 기뻐하고 높이며 머리에 이고 엎드려 아뢰옵니다.
밝은 신으로 여덟 섬 나라를 다스리시는 천황께서 신에게 물으셨습니다. '그 여러 신하와 무라지와 도모노미야쓰코와 구니노미야쓰코가 가진, 옛적 천황 때에 둔 고시로의 입부와 황자들이 사사로이 가진 이름의 입부와 황조 오에의 이름의 입부와 그 둔창을 오히려 옛 시대와 같이 두어야 하겠는가.'
신이 곧 공경히 조서하신 바를 받들어 대답하여 아뢰었습니다. '하늘에 두 해가 없고 나라에 두 왕이 없습니다. 이 때문에 천하를 아울러 만민을 부릴 수 있는 이는 오직 천황뿐입니다.
협주 4
鯯魚,此云舉能之慮。
고노시로(鯯魚)는 고노시로라 읽는다.
四人並闕名。
네 사람이 아울러 이름이 빠졌다.
謂國業也。
나라의 업을 이른다.
謂彥人大兄也。
히코히토노오에를 이른다.
25입부와 둔창을 바치다
別以入部及所封民,簡宛仕丁,從前處分。自餘以外,恐私駈役。故獻入部五百二十四口、屯倉一百八十一所。』」三月癸亥朔甲子,詔東國國司等曰:「集侍群卿大夫及臣、連、國造、伴造并諸百姓等,咸可聽之。夫君於天地之間而宰萬民者,不可獨制,要須臣翼。由是代代之我皇祖等,共卿祖考俱治。朕復思欲蒙神護力,共卿等治。故前以良家大夫使治東方八道。既而國司之任,六人奉法,二人違令,毀譽各聞。朕便美厥奉法,疾斯違令。凡將治者,若君如臣,先當正己而後正他。如不自正,何能正人?是以不自正者,不擇君臣,乃可受殃。豈不慎矣。汝率而正,孰敢不正。今隨前敕,而處斷之。」辛巳,詔東國朝集使等曰:「集侍群臣大夫及國造、伴造并諸百姓等,咸可聽之。以去年八月,朕親誨曰:『莫因官勢,取公私物。可喫部內之食,可騎部內之馬。若違所誨,次官以上降其爵位,主典以下決其笞、杖。
따로 입부와 봉한 백성으로 심부름꾼을 가려 맡기는 것은 앞서의 처분을 따르겠습니다. 그 나머지 밖의 것은 사사로이 부릴까 두렵습니다. 그러므로 입부 오백스물넷 사람과 둔창 백여든한 곳을 바칩니다.'"
삼월 계해 초하루 갑자일에 동국의 구니노쓰카사들에게 조를 내렸다.
"모여 모신 여러 경과 대부와 오미와 무라지와 구니노미야쓰코와 도모노미야쓰코와 여러 백성들은 다 들으라.
무릇 하늘과 땅 사이에 임금이 되어 만민을 다스리는 이는 홀로 할 수 없고 반드시 신하의 도움이 있어야 한다. 이로 말미암아 대대로 우리 황조들이 경들의 조상과 함께 다스렸다. 짐도 다시 신의 지키는 힘을 입어 경들과 함께 다스리려 생각한다.
그러므로 앞서 좋은 집안의 대부로 동쪽 여덟 길을 다스리게 하였다. 이윽고 구니노쓰카사의 소임에 여섯 사람은 법을 받들고 두 사람은 영을 어겨, 헐뜯음과 기림이 각각 들렸다. 짐이 곧 저 법 받든 것을 아름다이 여기고 이 영 어긴 것을 미워한다.
무릇 다스리려는 이는 임금이든 신하든 먼저 마땅히 저를 바르게 한 뒤에 남을 바르게 한다. 만약 스스로 바르지 않으면 어찌 남을 바르게 하겠는가. 이 때문에 스스로 바르지 않은 이는 임금과 신하를 가리지 않고 곧 재앙을 받을 만하다. 어찌 삼가지 않겠는가. 네가 앞서 바르면 누가 감히 바르지 않겠는가. 이제 앞서의 칙명에 따라 처단한다."
신사일에 동국의 조집사들에게 조를 내렸다.
"모여 모신 여러 신하와 대부와 구니노미야쓰코와 도모노미야쓰코와 여러 백성들은 다 들으라.
지난해 팔월에 짐이 몸소 가르쳐 말하였다. '관가의 세력을 빌려 공사의 물건을 가지지 마라. 관내의 밥을 먹고 관내의 말을 탈 수 있다. 만약 가르친 바를 어기면 차관 이상은 그 벼슬을 낮추고 주전 아래는 볼기와 매를 친다.
26조집사들이 아뢰다
入己物者,倍而徵之。』詔既若斯。今問朝集使及諸國造等:『國司至任,奉所誨不?』於是朝集使等具陳其狀:『穗積臣咋所犯者,於百姓中每戶求索,仍悔還物,而不盡與。其介富制臣、巨勢臣紫檀二人之過者,不正其上,云云。凡以下官人,咸有過也。其巨勢德禰臣所犯者,於百姓中每戶求索,仍悔還物,而不盡與,復取田部之馬。其介朴井連、押坂連二人者,不正其上所失,而翻共求己利,復取國造之馬。臺直須彌,初雖諫上,而遂俱濁。凡以下官人,咸有過也。其紀麻利耆拖臣所犯者,使人於朝倉君、井上君,二人之所,而為牽來其馬視之。復使朝倉君作刀,復得朝倉君之弓、布。復以國造所送兵代之物,不明還主,妄傳國造。復於所任之國被他偷刀,復於倭國被他偷刀。是其紀臣、其介三輪君大口、河邊臣百依等過也。其以下官人,河邊臣磯泊、丹比深目、百舌鳥長兄、葛城福草、難波癬龜、犬養五十君、伊岐史麻呂、丹比大眼,凡是八人等,咸有過也。
제 물건으로 들인 이는 두 배로 물린다.' 조서가 이미 이와 같았다.
이제 조집사와 여러 구니노미야쓰코들에게 묻는다. '구니노쓰카사가 소임에 이르러 가르친 바를 받들었는가.'
이에 조집사들이 그 사정을 갖추어 늘어놓았다.
'호즈미노오미 구이가 범한 것은, 백성 가운데 집집이 구하여 찾고 이어 뉘우쳐 물건을 돌려주면서 다 주지 않은 것입니다. 그 차관 후세노오미와 고세노오미 시탄 두 사람의 허물은 그 윗사람을 바로잡지 않은 것입니다. 이러이러합니다. 무릇 아래 벼슬아치도 다 허물이 있습니다.
고세노토쿠네노오미가 범한 것은, 백성 가운데 집집이 구하여 찾고 이어 뉘우쳐 물건을 돌려주면서 다 주지 않고 다시 다베의 말을 가진 것입니다. 그 차관 에노이노무라지와 오사카노무라지 두 사람은 그 윗사람의 잘못을 바로잡지 않고 도리어 함께 제 이익을 구하며 다시 구니노미야쓰코의 말을 가졌습니다. 우테나노아타이 스미가 처음에는 위를 간하였으나 마침내 함께 흐려졌습니다. 무릇 아래 벼슬아치도 다 허물이 있습니다.
기노마리키타노오미가 범한 것은, 사람을 아사쿠라노키미와 이노우에노키미 두 사람이 있는 곳에 보내어 그 말을 끌어 오게 하여 보고, 다시 아사쿠라노키미에게 칼을 만들게 하고, 다시 아사쿠라노키미의 활과 베를 얻은 것입니다. 다시 구니노미야쓰코가 보낸 병기 대신의 물건을 밝게 주인에게 돌려주지 않고 함부로 구니노미야쓰코에게 전하였습니다. 다시 맡은 나라에서 남에게 칼을 도둑맞고, 다시 야마토국에서 남에게 칼을 도둑맞았습니다. 이는 그 기노오미와 그 차관 미와노키미 오구치와 가와베노오미 모모요리들의 허물입니다. 그 아래 벼슬아치 가와베노오미 이소도마리와 다지히노후카메와 모즈노나가에와 가즈라키노후쿠쿠사와 나니와노구히카메와 이누카이노이키미와 이키노후비토 마로와 다지히노오마나코 무릇 이 여덟 사람도 다 허물이 있습니다.
협주 3
闕名。
이름이 빠졌다.
闕名。
이름이 빠졌다.
癬龜,此云俱毘柯梅。
구히카메(癬龜)는 구히카메라 읽는다.
27다시 허물을 아뢰다
其阿曇連所犯者,和德史有所患時,言於國造,使送官物。復取湯部之馬。其介膳部臣百依所犯者,草代之物收置於家,復取國造之馬,而換他馬來。河邊臣磐管、湯麻呂兄弟二人亦有過也。大市連所犯者,違於前詔。前詔曰:「國司等,莫於任所自斷民之所訴。」輙違斯詔,自判菟礪人之所訴及中臣德之奴事。中臣德亦是同罪。涯田臣之過者,在於倭國被偷官刀,是不謹也。小綠臣、丹波臣是拙而無犯。忌部木菓、中臣連正月二人,亦有過也。羽田臣、田口臣二人並無過也。平群臣所犯者,三國人所訴有而未問。』以此觀之,紀麻利耆拖臣、巨勢德彌臣、穗積咋臣,汝等三人所怠拙也。念斯違詔,豈不勞情。夫為君臣以牧民者,自率而正,孰敢不直。若君或臣,不正心者,當受其罪。追悔何及。是以凡諸國司,隨過輕重,考而罰之。又諸國造違詔送財於己國司,遂俱求利,恒懷穢惡。
아즈미노무라지가 범한 것은, 와토코노후비토가 앓는 바가 있을 때 구니노미야쓰코에게 말하여 관가의 물건을 보내게 한 것입니다. 다시 유베의 말을 가졌습니다.
그 차관 가시와데베노오미 모모요리가 범한 것은, 풀 대신의 물건을 집에 거두어 두고, 다시 구니노미야쓰코의 말을 가져 다른 말과 바꾸어 온 것입니다. 가와베노오미 이와쿠다와 유마로 형제 두 사람도 또한 허물이 있습니다.
오이치노무라지가 범한 것은 앞서의 조서를 어긴 것입니다. 앞서 조서하기를 「구니노쓰카사들은 맡은 곳에서 백성이 하소연한 바를 스스로 판결하지 마라」 하였습니다. 문득 이 조서를 어기고 우토리 사람이 하소연한 바와 나카토미노토코의 종에 관한 일을 스스로 판결하였습니다. 나카토미노토코 또한 이는 같은 죄입니다.
기시타노오미의 허물은 야마토국에서 관가의 칼을 도둑맞은 것이니 이는 삼가지 않은 것입니다. 오미도리노오미와 다니와노오미는 서투르나 범한 것이 없습니다. 이무베노고노미와 나카토미노무라지 무쓰키 두 사람도 또한 허물이 있습니다. 하타노오미와 다구치노오미 두 사람은 아울러 허물이 없습니다. 헤구리노오미가 범한 것은 세 나라 사람이 하소연한 바가 있는데 아직 묻지 않은 것입니다.'
이로써 보면 기노마리키타노오미와 고세노토쿠네노오미와 호즈미노쿠이노오미 너희 세 사람이 게으르고 서툰 바다. 이 조서 어김을 생각하면 어찌 마음이 수고롭지 않겠는가.
무릇 임금과 신하가 되어 백성을 기르는 이는 스스로 앞서 바르면 누가 감히 곧지 않겠는가. 만약 임금이나 신하가 마음을 바르게 하지 않으면 마땅히 그 죄를 받는다. 뉘우쳐도 어찌 미치겠는가.
이 때문에 무릇 여러 구니노쓰카사는 허물의 가볍고 무거움에 따라 살펴 벌한다. 또 여러 구니노미야쓰코가 조서를 어기고 제 구니노쓰카사에게 재물을 보내어 마침내 함께 이익을 구하며 늘 더러운 악을 품는다.
협주 6
闕名。
이름이 빠졌다.
闕名。
이름이 빠졌다.
闕名。
이름이 빠졌다.
並闕名。
아울러 이름이 빠졌다.
並闕名。
아울러 이름이 빠졌다.
闕名。
이름이 빠졌다.
28다시 크게 사면하다
不可不治。念雖若是,始處新宮將幣諸神,屬乎今歲。又於農月,不合使民,緣造新宮,固不獲己。深感二途,大赦天下。自今以後,國司、郡司勉之勗之,勿為放逸。宜遣使者,諸國流人及獄中囚,一皆放捨。別鹽屋鯯魚、神社福草、朝倉君、椀子連、三河大伴直、蘆尾直,此六人奉順天皇。朕深讚美厥心,宜罷官司處處屯田及吉備嶋皇祖母處處貸稻,以其屯田班賜群臣及伴造等。又於脫籍寺,入田與山。」壬午,皇太子使使奏請曰:「昔在天皇等世,混齊天下而治。及逮于今,分離失業。屬天皇我皇可牧萬民之運,天人合應厥政維新。是故慶之尊之,頂戴伏奏。現為明神御八嶋國天皇,問於臣曰:『其群臣、連及伴造、國造所有昔在天皇日所置子代入部,皇子等私有御名入部,皇祖大兄御名入部,及其屯倉,猶如古代而置以不?』臣即恭承所詔,奉答而曰:『天無雙日,國無二王。
다스리지 않을 수 없다. 생각건대 비록 이와 같으나 새 궁에 처음 자리하여 여러 신에게 폐백을 드릴 일이 올해에 걸렸다.
또 농사철에 백성을 부리는 것이 맞지 않으나 새 궁을 짓는 까닭에 참으로 그만둘 수 없다. 두 길을 깊이 느껴 천하에 크게 사면한다.
이제부터 구니노쓰카사와 고오리노쓰카사는 힘쓰고 힘써 함부로 놓아 버리지 마라. 마땅히 사자를 보내어 여러 나라의 귀양 간 이와 옥 안의 죄수를 하나같이 다 놓아 버리라.
따로 시오야노고노시로와 가무야시로노후쿠쿠사와 아사쿠라노키미와 마로코노무라지와 미카와노오토모노아타이와 아시오노아타이 이 여섯 사람은 천황을 받들어 따랐다. 짐이 그 마음을 깊이 기려 아름다이 여긴다. 마땅히 관청 곳곳의 둔전과 기비시마노스메미오야의 곳곳에 빌려 준 벼를 없애고, 그 둔전을 여러 신하와 도모노미야쓰코들에게 나누어 주라. 또 호적을 벗은 절에 밭과 산을 들이라."
임오일에 황태자가 사자를 시켜 아뢰어 청하였다.
"옛적 천황들의 세상에는 천하를 섞어 고르게 하여 다스렸습니다. 이제에 이르러 나뉘고 떨어져 업을 잃었습니다. 천황 우리 임금께서 만민을 기르실 운수에 붙어 하늘과 사람이 합하여 응하매 그 정사가 새로워졌습니다. 이 때문에 기뻐하고 높이며 머리에 이고 엎드려 아뢰옵니다.
밝은 신으로 여덟 섬 나라를 다스리시는 천황께서 신에게 물으셨습니다. '그 여러 신하와 무라지와 도모노미야쓰코와 구니노미야쓰코가 가진, 옛적 천황 때에 둔 고시로의 입부와 황자들이 사사로이 가진 이름의 입부와 황조 오에의 이름의 입부와 그 둔창을 오히려 옛 시대와 같이 두어야 하겠는가.'
신이 곧 공경히 조서하신 바를 받들어 대답하여 아뢰었습니다. '하늘에 두 해가 없고 나라에 두 왕이 없습니다.
협주 4
鯯魚,此云舉能之慮。
고노시로(鯯魚)는 고노시로라 읽는다.
四人並闕名。
네 사람이 아울러 이름이 빠졌다.
謂國業也。
나라의 업을 이른다.
謂彥人大兄也。
히코히토노오에를 이른다.
29장례를 검소히 하라
是故兼并天下可使萬民,唯天皇耳。別以入部及所封民,簡宛仕丁,從前處分。自餘以外,恐私駈役。故獻入部五百二十四口、屯倉一百八十一所。』」甲申,詔曰:「朕聞:『西土之君戒其民曰:「古之葬者,因高為墓。不封不樹。棺槨足以朽骨,衣衿足以朽宍而已。故吾營此丘墟不食之地,欲使易代之後,不知其所。無藏金、銀、銅、鐵。一以瓦器,合古塗車、蒭靈之義。棺漆際會三過,飯含無以珠玉。無施珠襦、玉柙。諸愚俗所為也。」又曰:「夫葬者藏也,欲人之不得見也。」』迺者我民貧絕,專由營墓。爰陳其制,尊卑使別。夫王以上之墓者,其內長九尺,濶五尺,其外域,方九尋,高五尋,役一千人,七日使訖。其葬時帷帳等用白布。有轜車。上臣之墓者,其內長、濶及高,皆准於上。其外域方七尋,高三尋,役五百人,五日使訖。其葬時帷帳等用白布,擔而行之。下臣之墓者,其內長、濶及高,皆准於上。
이 때문에 천하를 아울러 만민을 부릴 수 있는 이는 오직 천황뿐입니다. 따로 입부와 봉한 백성으로 심부름꾼을 가려 맡기는 것은 앞서의 처분을 따르겠습니다. 그 나머지 밖의 것은 사사로이 부릴까 두렵습니다. 그러므로 입부 오백스물넷 사람과 둔창 백여든한 곳을 바칩니다.'"
갑신일에 조를 내렸다.
"짐이 듣건대 '서쪽 땅의 임금이 그 백성을 경계하여 말하기를 「옛적에 장사 지내는 이는 높은 데를 따라 무덤을 삼고 봉하지도 나무 심지도 않았다. 널과 덧널은 뼈를 썩히기에 넉넉하고 옷과 깃은 살을 썩히기에 넉넉할 뿐이다. 그러므로 내가 이 언덕의 먹지 못하는 땅을 마련하여, 대가 바뀐 뒤에 그 자리를 알지 못하게 하고자 한다. 금과 은과 구리와 쇠를 넣지 마라. 하나같이 질그릇으로 하여 옛적의 진흙 수레와 짚 인형의 뜻에 맞추라. 널은 옻칠을 세 번만 하고, 입에 넣는 것은 구슬과 옥으로 하지 마라. 구슬 저고리와 옥 갑을 쓰지 마라. 여러 어리석은 세속이 하는 바다」 하였다. 또 말하기를 「무릇 장사란 감추는 것이니 사람이 보지 못하게 하고자 함이다」 하였다' 한다.
요사이 우리 백성이 가난하여 끊어진 것이 오로지 무덤을 지음으로 말미암는다. 이에 그 제도를 늘어놓아 높고 낮음을 가리게 한다.
무릇 왕 이상의 무덤은 그 안이 길이 아홉 자, 너비 다섯 자다. 그 바깥 지경은 모 아홉 발, 높이 다섯 발이요 천 사람을 부려 이레에 마친다. 그 장사할 때 휘장들은 흰 베를 쓰고 상여 수레가 있다.
상신의 무덤은 그 안의 길이와 너비와 높이가 다 위에 견준다. 그 바깥 지경은 모 일곱 발, 높이 세 발이요 오백 사람을 부려 닷새에 마친다. 그 장사할 때 휘장들은 흰 베를 쓰고 메어 간다.
하신의 무덤은 그 안의 길이와 너비와 높이가 다 위에 견준다.
협주 1
蓋此以肩擔輿而送之乎。
아마 이는 어깨로 가마를 메어 보내는 것인가.
30옛 풍속을 끊으라
其外域方五尋,高二尋半,役二百五十人,三日使訖。其葬時帷帳等用白布,亦准於上。大仁、小仁之墓者,其內長九尺,高、濶各四尺,不封使平,役一百人,一日使訖。大禮以下小智以上之墓者,皆准大仁。役五十人,一日使訖。凡王以下小智以上之墓者,宜用小石。其帷帳等宜用白布。庶人亡時,收埋於地。其帷帳等可用麤布。一日莫停。凡王以下及至庶民,不得營殯。凡自畿內及諸國等,宜定一所而使收埋,不得汙穢散埋處處。凡人死亡之時,若經自殉,或絞人殉,及強殉亡人之馬,或為亡人藏寶於墓,或為亡人斷髮刺股而誄。如此舊俗,一皆悉斷。縱有違詔犯所禁者,必罪其族。復有見言不見,不見言見,聞言不聞,不聞言聞。都無正語正見,巧詐者多。復有奴婢欺主貧困,自託勢家求活。勢家仍強留買,不送本主者多。
그 바깥 지경은 모 다섯 발, 높이 두 발 반이요 이백쉰 사람을 부려 사흘에 마친다. 그 장사할 때 휘장들은 흰 베를 쓰고 또한 위에 견준다.
대인과 소인의 무덤은 그 안이 길이 아홉 자요 높이와 너비가 각각 넉 자다. 봉하지 않고 평평하게 하며 백 사람을 부려 하루에 마친다.
대례 아래 소지 위의 무덤은 다 대인에 견준다. 쉰 사람을 부려 하루에 마친다.
무릇 왕 아래 소지 위의 무덤은 마땅히 작은 돌을 쓴다. 그 휘장들은 마땅히 흰 베를 쓴다.
서인이 죽었을 때는 땅에 거두어 묻는다. 그 휘장들은 거친 베를 쓸 만하다. 하루도 멈추지 마라.
무릇 왕 아래 서민에 이르기까지 빈소를 차릴 수 없다.
무릇 기내부터 여러 나라까지 마땅히 한 곳을 정하여 거두어 묻게 하고, 곳곳에 더럽게 흩어 묻지 마라.
무릇 사람이 죽었을 때 스스로 목매어 따라 죽거나, 남을 목매어 따라 죽게 하거나, 억지로 죽은 이의 말을 따라 죽이거나, 죽은 이를 위하여 보배를 무덤에 감추거나, 죽은 이를 위하여 머리를 자르고 넓적다리를 찌르며 조사를 읽는 이런 옛 풍속을 하나같이 다 끊는다. 설령 조서를 어기고 금한 바를 범하는 이가 있으면 반드시 그 겨레를 죄준다.
또 본 것을 보지 못하였다 하고 보지 못한 것을 보았다 하며, 들은 것을 듣지 못하였다 하고 듣지 못한 것을 들었다 하는 이가 있다. 도무지 바른 말과 바른 봄이 없이 교묘히 속이는 이가 많다.
또 종이 주인의 가난함을 속여 스스로 세력 있는 집에 붙어 살기를 구하는 이가 있다. 세력 있는 집이 이에 억지로 붙들어 사고 본주인에게 보내지 않는 이가 많다.
협주 1
或本云:「無藏金、銀、錦、綾、五綵。」又曰:「凡自諸臣及至于民,不得用金、銀。」
어떤 판본에는 「금과 은과 비단과 무늬 비단과 다섯 빛깔을 넣지 마라」 하고, 또 「무릇 여러 신하부터 백성에 이르기까지 금과 은을 쓸 수 없다」 한다.
31옛 풍속의 폐단들
復有妻妾為夫被放之日,經年之後,適他恒理。而此前夫三四年後,貪求後夫財物,為己利者甚眾。復有恃勢之男,浪要他女而未納際,女自適人,其浪要者嗔求兩家財物,為己利者甚眾。復有亡夫之婦,若經十年及二十年,適人為婦,并未嫁之女始適人時,於是妬斯夫婦,使祓除多。復有為妻被嫌離者,特由慙愧所惱,強為事瑕之婢。復有屢嫌己婦姧他,好向官司請決。假使得明三証,而俱顯陳,然後可諮。詎生浪訴。復有被役邊畔之民,事了還鄉之日,忽然得疾,臥死路頭。於是路頭之家乃謂之曰:『何故使人死於余路?』因留死者友伴,強使祓除。由是兄雖臥死於路,其弟不收者多。復有百姓溺死於河逢者,乃謂之曰:『何故於我使遇溺人?』因留溺者友伴,強使祓除。由是兄雖溺死於河,其弟不救者眾。復有被役之民,路頭炊飯,於是路頭之家乃謂之曰:『何故任情炊飯余路?』強使祓除。
또 아내와 첩이 지아비에게 버림받은 날로부터 해를 지난 뒤에 남에게 시집가는 것이 늘 있는 이치다. 그런데 이 앞 지아비가 서너 해 뒤에 뒷 지아비의 재물을 탐하여 구하며 제 이익으로 삼는 이가 매우 많다.
또 세력을 믿는 사내가 함부로 남의 딸을 구하고 아직 맞아들이기 전에 그 딸이 스스로 남에게 시집가면, 그 함부로 구하던 이가 성내어 두 집의 재물을 구하여 제 이익으로 삼는 이가 매우 많다.
또 지아비를 잃은 아낙이 열 해나 스무 해를 지나 남에게 시집가 아내가 되거나, 아직 시집가지 않은 딸이 처음 남에게 시집갈 때, 이에 그 부부를 시샘하여 액막이를 하게 하는 일이 많다.
또 아내가 되었다가 미움을 받아 떠난 이가 특히 부끄러움에 시달려 억지로 「일에 흠이 있는 종」이 되는 일이 있다.
또 자주 제 아내가 남과 간음하였다 미워하여 관청에 결판을 청하기를 좋아한다. 설령 세 증거를 밝게 얻어 함께 드러내 늘어놓은 뒤에 여쭐 만한데, 어찌 함부로 하소연을 내는가.
또 변두리에 부역 나간 백성이 일을 마치고 고향에 돌아오는 날 홀연히 병을 얻어 길가에 누워 죽는 일이 있다. 이에 길가의 집이 이르기를 '무슨 까닭으로 사람을 내 길에서 죽게 하는가' 하고, 죽은 이의 벗과 짝을 붙들어 억지로 액막이를 하게 한다. 이로 말미암아 형이 비록 길에 누워 죽어도 그 아우가 거두지 않는 일이 많다.
또 백성이 강에 빠져 죽는 것을 만난 이에게 이르기를 '무슨 까닭으로 나에게 빠진 사람을 만나게 하는가' 하고, 빠진 이의 벗과 짝을 붙들어 억지로 액막이를 하게 한다. 이로 말미암아 형이 비록 강에 빠져 죽어도 그 아우가 구하지 않는 이가 많다.
또 부역하는 백성이 길가에서 밥을 짓는데, 이에 길가의 집이 이르기를 '무슨 까닭으로 마음대로 내 길에서 밥을 짓는가' 하고 억지로 액막이를 하게 한다.
협주 1
事瑕,此云居騰作柯。
일에 흠이 있음(事瑕)은 고토사카라 읽는다.
32어리석은 풍속을 끊다
復有百姓就他借甑炊飯,其甑觸物而覆,於是甑主乃使祓除。如是等類,愚俗所染。今悉除斷,勿使復為。復有百姓,臨向京日,恐所乘馬疲瘦不行,以布二尋、麻二束送參河、尾張兩國之人,雇令養飼,乃入于京。於還鄉日,送鍬一口。而參河人等不能養飼,翻令瘦死。若是細馬,即生貪愛,工作謾語,言被偷失。若是牝馬孕於己家,便使祓除,遂奪其馬。飛聞若是。故今立制,凡養馬於路傍國者,將被雇人,審告村首,方授詶物,其還鄉日,不須更報。如致疲損,不合得物。縱違斯詔,將科重罪。罷市司、要路津濟渡子之調賦,給與田地。凡始畿內及四方國,當農作月,早務營田。不合使喫美物與酒。宜差清廉使者告於畿內。其四方諸國國造等,宜擇善使,依詔催勤。」
또 백성이 남에게 시루를 빌려 밥을 짓는데 그 시루가 물건에 닿아 엎어지면, 이에 시루 주인이 액막이를 하게 한다.
이 같은 무리는 어리석은 풍속이 물든 바다. 이제 다 없애 끊어 다시 하지 못하게 한다.
또 백성이 서울로 향하는 날에 탄 말이 지치고 여위어 가지 못할까 두려워, 베 두 발과 삼 두 묶음을 미카와와 오와리 두 나라 사람에게 보내어 삯을 주고 먹여 기르게 하고 서울에 든다. 고향에 돌아가는 날에 괭이 하나를 보낸다.
그런데 미카와 사람들이 먹여 기르지 못하고 도리어 여위어 죽게 한다. 만약 좋은 말이면 곧 탐내는 마음이 나서 교묘히 거짓말을 지어 도둑맞아 잃었다 한다. 만약 암말이 제 집에서 새끼를 배면 곧 액막이를 하게 하고 마침내 그 말을 빼앗는다. 이런 일이 널리 들린다.
그러므로 이제 제도를 세운다. 무릇 길가 나라에서 말을 기르는 이는 삯 받은 사람과 함께 마을 어른에게 자세히 알리고 바야흐로 갚을 물건을 준다. 그 고향에 돌아가는 날에는 다시 갚을 것이 없다. 만약 지치고 상하게 하면 물건을 얻는 것이 맞지 않다. 설령 이 조서를 어기면 무거운 죄를 매긴다.
저자 맡은 관청과 요긴한 길과 나루의 뱃사공의 조와 부를 없애고 밭을 준다.
무릇 기내부터 사방 나라까지 농사짓는 달을 맞아 일찍 밭 다스리기에 힘쓰라. 좋은 음식과 술을 먹게 함이 맞지 않다. 마땅히 맑고 청렴한 사자를 가려 기내에 알리라. 그 사방 여러 나라의 구니노미야쓰코들은 마땅히 좋은 사자를 가려 조서에 따라 재촉하여 힘쓰게 하라."
협주 1
首,長也。
오비토(首)는 어른이다.
33부(部)를 없애라
秋八月庚申朔癸酉,詔曰:「原夫天地陰陽,不使四時相亂。惟此天地,生乎萬物,萬物之內,人是最靈。最靈之間,聖為人主。是以聖主天皇,則天御㝢,思人獲所,暫不廢胸。而始王之名名,臣、連、伴造、國造,分其品部,別彼名名。復以其民品部,交雜使居國縣。遂使父子易姓,兄弟異宗,夫婦更互殊名,一家五分六割。由是爭競之訟,盈國充朝,終不見治,相亂彌盛。粵以,始於今之御㝢天皇及臣、連等,所有品部,宜悉皆罷,為國家民。其假借王名為伴造,其襲據祖名為臣、連,斯等深不悟情,忽聞若是所宣,當思:『祖名所借滅。』由是預宣,使聽知朕所懷。王者之兒,相續御㝢,信知時帝與祖皇名,不可見忘於世,而以王名輕掛川野呼名。百姓誠可畏焉。凡王者之號將隨日月遠流,祖子之名可共天地長往。如是思故宣之。始於祖子奉仕卿大夫、臣、連、伴造、氏氏人等,咸可聽聞。
가을 팔월 경신 초하루 계유일에 조를 내렸다.
"무릇 하늘과 땅과 음양이 네 철을 서로 어지럽히지 않게 한다. 이 하늘과 땅이 만물을 내는데 만물 가운데 사람이 가장 신령하다. 가장 신령한 것 가운데 성인이 사람의 주인이 된다.
이 때문에 성스러운 주인 천황이 하늘을 본떠 온 세상을 다스리며, 사람이 제자리를 얻기를 생각하여 잠시도 가슴에서 놓지 않는다.
그런데 처음 왕의 이름 이름과 오미와 무라지와 도모노미야쓰코와 구니노미야쓰코가 그 부(部)를 나누고 저 이름 이름을 갈랐다. 다시 그 백성의 부를 뒤섞어 나라와 현에 살게 하였다. 마침내 아비와 자식이 성을 바꾸고 형과 아우가 마루를 달리하며 부부가 서로 다른 이름을 쓰게 하여, 한 집이 다섯으로 나뉘고 여섯으로 갈렸다.
이로 말미암아 다투는 송사가 나라에 가득하고 조정에 차서 마침내 다스려지지 않고 서로 어지러움이 더욱 성하다.
이에 이제 온 세상을 다스리는 천황과 오미와 무라지들에게 있는 부를 다 없애고 나라의 백성으로 삼음이 마땅하다.
그 왕의 이름을 빌려 도모노미야쓰코가 된 이와 조상의 이름을 이어 웅거하여 오미와 무라지가 된 이들은, 깊이 뜻을 깨닫지 못하고 홀연히 이같이 이르는 바를 들으면 마땅히 '조상의 이름 빌린 것이 없어진다' 생각할 것이다. 이로 말미암아 미리 알려 짐이 품은 바를 듣고 알게 한다.
왕 된 이의 아들이 이어 온 세상을 다스리니, 그때의 임금과 조상 임금의 이름이 세상에서 잊혀서는 안 됨을 참으로 안다. 그런데 왕의 이름을 가벼이 내와 들의 이름에 걸어 부른다. 백성이 참으로 두려워할 만하다.
무릇 왕 된 이의 이름은 장차 해와 달을 따라 멀리 흐르고, 조상과 자식의 이름은 하늘땅과 함께 길이 갈 만하다. 이같이 생각하는 까닭에 이른다.
조상과 자식 대대로 섬긴 경과 대부와 오미와 무라지와 도모노미야쓰코와 여러 씨의 사람들은 다 들으라.
협주 1
或本云,名名王民。
어떤 판본에는 「이름 이름의 왕의 백성」이라 한다.
34새 벼슬을 세우라
今以汝等使仕狀者,改去舊職,新設百官,及著位階,以官位敘。今發遣國司,并彼國造,可以奉聞。去年付於朝集之政者,隨前處分,以收數田,均給於民。勿生彼我。凡給田者,其百姓家近接於田,必先於近。如此奉宜。凡調賦者,可收男身之調。凡仕丁者,每五十戶一人,宜觀國國疆堺,或書或圖持來奉示。國縣之名,來時將定。國國可築堤地,可穿溝所,可墾田間,均給使造。當聞解此所宣。」
이제 너희를 부리는 모양은 옛 벼슬을 고쳐 없애고 새로 온갖 벼슬을 두며 관위를 붙여 벼슬과 자리로 차례를 매기는 것이다.
이제 구니노쓰카사를 보내며 아울러 저 구니노미야쓰코가 받들어 들을 만하다. 지난해 조집의 정사에 붙인 것은 앞서의 처분에 따라 헤아린 밭을 거두어 백성에게 고루 주고 저와 나를 내지 마라.
무릇 밭을 주는 것은 그 백성의 집이 밭에 가까이 닿으면 반드시 가까운 데를 먼저 한다. 이같이 받들어 마땅히 하라.
무릇 조와 부는 사내 몸의 조를 거둘 만하다. 무릇 심부름꾼은 쉰 집마다 하나다.
마땅히 나라마다 지경을 살펴 혹은 글로 적고 혹은 그림으로 그려 가져와 받들어 보이라. 나라와 현의 이름은 올 때 정하겠다. 나라마다 둑을 쌓을 땅과 도랑을 뚫을 곳과 밭을 일굴 사이를 고르게 주어 짓게 하라. 마땅히 이 이르는 바를 알아들으라."
35임나의 조를 그치다
九月,遣小德高向博士黑麻呂於新羅,而使貢質,遂罷任那之調。是月,天皇御蝦蟇行宮。
구월에 소덕 다카무코노하카세 구로마로를 신라에 보내어 볼모를 바치게 하고 마침내 임나의 조를 그쳤다.
이달에 천황이 가와즈 행궁에 나아갔다.
협주 2
黑麻呂,更名玄理。
구로마로는 다른 이름이 겐리다.
或本云,離宮。
어떤 판본에는 이궁이라 한다.
36쥐가 동쪽으로 옮겨 가다
是歲,越國之鼠,晝夜相連,向東移去。
이해에 고시국의 쥐가 밤낮으로 서로 이어 동쪽으로 옮겨 갔다.
37고려와 신라가 조를 바치다
春正月戊子朔壬寅,射於朝廷。是日,高麗、新羅,並遣使,貢獻調賦。
봄 정월 무자 초하루 임인일에 조정에서 활을 쏘았다. 이날 고려와 신라가 아울러 사자를 보내어 조와 부를 바쳤다.
38씨와 이름의 어지러움
夏四月丁巳朔壬午,詔曰:「惟神,我子應治故寄。是以與天地之初,君臨之國也。自始治國皇祖之時,天下大同,都無彼此者也。既而頃者始於神名、天皇名名,或別為臣、連之氏,或別為造等之色。由是率土民心,固執彼此,深生我汝,各守名名。又拙弱臣、連、伴造、國造,以彼為姓,神名、王名逐自心之所歸,妄付前前處處。爰以神名、王名為人賂物之故,入他奴婢,穢汙清名,遂即民心不整,國政難治。是故今者隨在天神屬可治平之運,使悟斯等,而治國治民,是先是後,今日明日,次而續詔。然素賴天皇聖化而習舊俗之民,未詔之間,必當難待。故始於皇子、群臣及諸百姓,將賜庸調。」
여름 사월 정사 초하루 임오일에 조를 내렸다.
"신의 뜻대로 우리 자식이 마땅히 다스리게 하려 하여 맡기셨다. 이 때문에 하늘과 땅이 열린 처음부터 임금이 임한 나라다. 처음 나라를 다스리던 황조 때부터 천하가 크게 하나 되어 도무지 저와 나가 없었다.
이윽고 요사이 신의 이름과 천황의 이름 이름에서 시작하여, 혹은 따로 오미와 무라지의 씨가 되고 혹은 따로 미야쓰코들의 갈래가 되었다.
이로 말미암아 온 땅의 백성 마음이 저와 나를 굳게 잡아 깊이 나와 너를 내고 각각 제 이름 이름을 지킨다.
또 서투르고 약한 오미와 무라지와 도모노미야쓰코와 구니노미야쓰코가 저것으로 성을 삼아, 신의 이름과 왕의 이름을 제 마음 가는 대로 곳곳 사람마다 함부로 붙인다.
이에 신의 이름과 왕의 이름을 사람이 뇌물 주는 물건으로 삼는 까닭에, 남의 종이 들어와 맑은 이름을 더럽힌다. 마침내 백성의 마음이 가지런하지 않고 나라 정사가 다스리기 어렵다.
이 때문에 이제 하늘 신에게 있는 다스려 평안케 할 운수에 따라 이들을 깨닫게 하여 나라를 다스리고 백성을 다스린다. 이것이 먼저고 저것이 뒤이니 오늘 내일 차례로 이어 조서하겠다.
그러나 본디 천황의 성스러운 교화에 힘입어 옛 풍속에 익은 백성이, 조서하지 않는 사이에는 반드시 기다리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므로 황자와 여러 신하와 여러 백성에게 용과 조를 주겠다."
협주 2
惟神者,謂隨神道。亦謂自有神道也。
신의 뜻대로란 신의 도를 따름을 이른다. 또한 절로 신의 도가 있음을 이른다.
前前,猶謂人人也。
앞앞이란 사람마다를 이른다.
39예법을 정하다
是歲,壞小郡而營宮。天皇處小郡宮,而定禮法。其制曰:「凡有位者,要於寅時,南門之外,左右羅列,候日初出,就庭再拜,乃侍于廳。若晚參者,不得入侍。臨到午時,聽鍾而罷。其擊鍾吏者,垂赤巾於前。其鍾臺者,起於中庭。」工人大山位倭漢直荒田井比羅夫,誤穿溝瀆,控引難波,而改穿疲勞百姓。爰有上疏諫者。天皇詔曰:「妄聽比羅夫所詐,而空穿瀆。朕之過也。」即日罷役。
이해에 오코리를 헐어 궁을 지었다. 천황이 오코리노미야에 자리하여 예법을 정하였다. 그 제도에 이르렀다.
"무릇 자리가 있는 이는 요컨대 인시에 남문 밖에 좌우로 벌여 서서 해가 처음 뜨기를 기다렸다가, 뜰에 나아가 두 번 절하고 이에 마루에 모신다. 만약 늦게 나오는 이는 들어와 모실 수 없다. 오시에 이르러 종을 듣고 물러간다. 그 종 치는 벼슬아치는 붉은 수건을 앞에 드리운다. 그 종대는 가운데 뜰에 세운다."
장인 대산위 야마토노아야노아타이 아라타이노히라부가 그르쳐 도랑을 파 나니와로 끌어당겼다가 다시 파 백성을 지치게 하였다.
이에 글을 올려 간하는 이가 있었다. 천황이 조를 내렸다. "함부로 히라부가 속이는 바를 듣고 헛되이 도랑을 팠다. 짐의 허물이다." 그날로 부역을 그쳤다.
40아리마 온탕
冬十月甲寅朔甲子,天皇幸有馬溫湯。左右大臣、群卿大夫從焉。
겨울 시월 갑인 초하루 갑자일에 천황이 아리마 온탕에 나아갔다. 좌우 대신과 여러 경과 대부가 따랐다.
41황태자 궁에 불이 나다
十二月晦,天皇還自溫湯,而停武庫行宮。是日,災皇太子宮。時人大驚怪。
십이월 그믐에 천황이 온탕에서 돌아와 무코 행궁에 머물렀다. 이날 황태자 궁에 불이 났다. 그때 사람들이 크게 놀라고 괴이히 여겼다.
협주 1
武庫,地名也。
무코는 땅 이름이다.
42일곱 빛 열세 계단의 관
是歲,制七色一十三階之冠。一曰,織冠。有大小二階。以織為之,以繡裁冠之緣。服色並用深紫。二曰,繡冠。有大小二階。以繡為之,其冠之緣、服色,並同織冠。三曰,紫冠。有大小二階。以紫為之,以織裁冠之緣。服色用淺紫。四曰,錦冠。有大小二階。其大錦冠,以大伯仙錦為之,以織裁冠之緣。其小錦冠,以小伯仙錦為之,以大伯仙錦裁冠之緣。服色並用真緋。五曰,青冠。以青絹為之,有大小二階。其大青冠,以大伯仙錦裁冠之緣。其小青冠,以小伯仙錦裁冠之緣。服色並用紺。六曰,黑冠。有大小二階。其大黑冠,以車形錦裁冠之緣。其小黑冠,以菱形錦裁冠之緣。服色並用綠。七曰,建武。以黑絹為之,以紺裁冠之緣。別有鐙冠,以黑絹為之。其冠之背張漆羅,以緣與鈿異其高下,形似於蟬。小錦冠以上之鈿,雜金、銀為之。大小青冠之鈿,以銀為之。大小黑冠之鈿,以銅為之。建武之冠無鈿也。
이해에 일곱 빛 열세 계단의 관을 만들었다.
첫째는 직관(織冠)이니 크고 작은 두 계단이 있다. 짠 것으로 만들고 수놓은 것으로 관의 가장자리를 마른다. 옷 빛깔은 아울러 짙은 자주를 쓴다.
둘째는 수관(繡冠)이니 크고 작은 두 계단이 있다. 수놓은 것으로 만들고 그 관의 가장자리와 옷 빛깔은 아울러 직관과 같다.
셋째는 자관(紫冠)이니 크고 작은 두 계단이 있다. 자주로 만들고 짠 것으로 관의 가장자리를 마른다. 옷 빛깔은 옅은 자주를 쓴다.
넷째는 금관(錦冠)이니 크고 작은 두 계단이 있다. 그 대금관은 큰 하쿠센 비단으로 만들고 짠 것으로 관의 가장자리를 마른다. 그 소금관은 작은 하쿠센 비단으로 만들고 큰 하쿠센 비단으로 관의 가장자리를 마른다. 옷 빛깔은 아울러 참붉은빛을 쓴다.
다섯째는 청관(青冠)이니 푸른 명주로 만들고 크고 작은 두 계단이 있다. 그 대청관은 큰 하쿠센 비단으로 관의 가장자리를 마르고, 그 소청관은 작은 하쿠센 비단으로 관의 가장자리를 마른다. 옷 빛깔은 아울러 감빛을 쓴다.
여섯째는 흑관(黑冠)이니 크고 작은 두 계단이 있다. 그 대흑관은 수레 모양 비단으로 관의 가장자리를 마르고, 그 소흑관은 마름 모양 비단으로 관의 가장자리를 마른다. 옷 빛깔은 아울러 초록을 쓴다.
일곱째는 건무(建武)니 검은 명주로 만들고 감빛으로 관의 가장자리를 마른다.
따로 등관(鐙冠)이 있어 검은 명주로 만든다. 그 관의 등에 옻칠한 비단을 펴고, 가장자리와 비녀로 그 높낮이를 달리하니 모양이 매미를 닮았다. 소금관 이상의 비녀는 금과 은을 섞어 만든다. 대소 청관의 비녀는 은으로 만든다. 대소 흑관의 비녀는 구리로 만든다. 건무의 관에는 비녀가 없다.
협주 1
初位,又名立身。
초위(初位)니 또 다른 이름은 입신(立身)이다.
43김춘추가 오다
此冠者,大會、饗客,四月、七月齋時所著焉。新羅遣上臣大阿飡金春秋等,送博士小德高向黑麻呂、小山中中臣連押熊來,獻孔雀一隻、鸚鵡一隻。仍以春秋為質。春秋美姿顏,善談咲。造渟足柵,置柵戶。老人等相謂之曰:「數年鼠向東行,此造柵之兆乎。」
이 관은 큰 모임과 손님을 대접할 때와 사월과 칠월 재계할 때에 쓴다.
신라가 상신 대아찬 김춘추(金春秋)들을 보내어, 박사 소덕 다카무코노쿠로마로와 소산중 나카토미노무라지 오시쿠마를 보내오며 공작 한 마리와 앵무 한 마리를 바쳤다. 이어 춘추를 볼모로 삼았다. 춘추는 모습과 얼굴이 아름답고 담소를 잘하였다.
누타리의 목책을 짓고 목책 지킬 집을 두었다. 늙은이들이 서로 일렀다. "여러 해 쥐가 동쪽으로 갔으니 이 목책을 지을 조짐인가."
44나니와사키노미야
春正月壬午朔,賀正焉。是夕,天皇幸于難波碕宮。
봄 정월 임오 초하루에 새해를 하례하였다. 이 저녁에 천황이 나니와사키노미야에 나아갔다.
45삼한에 학문승을 보내다
二月壬子朔,於三韓遣學問僧。己未,阿倍大臣請四眾於四天王寺,迎佛像四驅,使坐于塔內。造靈鷲山像,累積鼓為之。
이월 임자 초하루에 삼한에 학문승을 보냈다.
기미일에 아베노오오미가 네 무리를 시텐노지에 청하고 불상 네 구를 맞아 탑 안에 앉게 하였다. 영취산 모양을 만들되 북을 쌓아 올려 만들었다.
협주 1
三韓,謂高麗、百濟、新羅。
삼한은 고려와 백제와 신라를 이른다.
46옛 관을 없애다
夏四月辛亥朔,罷古冠。左右大臣猶著古冠。
여름 사월 신해 초하루에 옛 관을 없앴다. 좌우 대신은 오히려 옛 관을 썼다.
47이와후네의 목책
是歲,新羅遣使貢調。治磐舟柵以備蝦夷。遂選越與信濃之民,始置柵戶。
이해에 신라가 사자를 보내어 조를 바쳤다. 이와후네의 목책을 다스려 에미시에 대비하였다. 마침내 고시와 시나노의 백성을 가려 처음으로 목책 지킬 집을 두었다.
48새해를 하례하다
春正月丙午朔,賀正焉。
봄 정월 병오 초하루에 새해를 하례하였다.
49열아홉 계단의 관
二月,制冠十九階。一曰,大織。二曰,小織。三曰,大繡。四曰,小繡。五曰,大紫。六曰,小紫。七曰,大花上。八曰,大花下。九曰,小花上。十曰,小花下。十一曰,大山上。十二曰,大山下。十三曰,小山上。十四曰,小山下。十五曰,大乙上。十六曰,大乙下。十七曰,小乙上。十八曰,小乙下。十九曰,立身。
이월에 관 열아홉 계단을 만들었다. 첫째는 대직(大織), 둘째는 소직, 셋째는 대수(大繡), 넷째는 소수, 다섯째는 대자(大紫), 여섯째는 소자, 일곱째는 대화상(大花上), 여덟째는 대화하, 아홉째는 소화상, 열째는 소화하, 열한째는 대산상(大山上), 열두째는 대산하, 열셋째는 소산상, 열넷째는 소산하, 열다섯째는 대을상(大乙上), 열여섯째는 대을하, 열일곱째는 소을상, 열여덟째는 소을하, 열아홉째는 입신(立身)이다.
50여덟 성과 백관
是月,詔博士高向玄理與釋僧旻,置八省、百官。
이달에 박사 다카무코노겐리와 승려 민에게 조를 내려 여덟 성(省)과 백관을 두게 하였다.
51구라야마다노오오미가 참소를 입다
三月乙巳朔辛酉,阿倍大臣薨。天皇幸朱雀門,舉哀而慟。皇祖母尊、皇太子等及諸公卿,悉隨哀哭。戊辰,蘇我臣日向,譖倉山田大臣於皇太子曰:「僕之異母兄麻呂,伺皇太子遊於海濱,而將害之。將反,其不久。」皇太子信之。天皇使大伴狛連、三國麻呂公、穗積嚙臣於蘇我倉山田麻呂大臣所,而問反之虛實。大臣答曰:「被問之報,僕面當陳天皇之所。」天皇更遣三國麻呂公、穗積嚙臣,審其反狀。麻呂大臣亦如前答。天皇乃將興軍,圍大臣宅。大臣乃將二子法師與赤豬,自茅渟道逃向於倭國境。大臣長子興志,先是在倭,營造其寺。今忽聞父逃來之事,迎於今來大槻,近就前行入寺。顧謂大臣曰:「興志請,自直進,逆拒來軍。」大臣不許焉。是夜,興志意欲燒宮,猶聚士卒。己巳,大臣謂長子興志曰:「汝愛身乎?」興志對曰:「不愛也。」大臣仍陳說於山田寺眾僧及長子興志,與數十人曰:「夫為人臣者,安構逆於君?何失孝於父?凡此伽藍者,元非自身故造。
삼월 을사 초하루 신유일에 아베노오오미가 죽었다. 천황이 주작문에 나아가 슬픔을 들어 서러워하였다. 스메미오야노미코토와 황태자들과 여러 공경이 다 따라 곡하였다.
무진일에 소가노오미 히무카가 구라야마다노오오미를 황태자에게 참소하였다. "제 배다른 형 마로가 황태자께서 바닷가에 노니시는 것을 엿보아 해치려 합니다. 배반하려 함이 오래지 않을 것입니다."
황태자가 이를 믿었다.
천황이 오토모노코마노무라지와 미쿠니노마로노키미와 호즈미노쿠이노오미를 소가노쿠라야마다노마로노오오미가 있는 곳에 보내어 배반의 헛됨과 참됨을 물었다.
오오미가 답하였다. "물으신 데 대한 답은 제가 얼굴을 마주하여 천황이 계신 곳에서 아뢰겠습니다."
천황이 다시 미쿠니노마로노키미와 호즈미노쿠이노오미를 보내어 그 배반한 모양을 살피게 하였다. 마로노오오미가 또한 앞서와 같이 답하였다.
천황이 이에 군사를 일으켜 오오미의 집을 에워싸려 하였다.
오오미가 이에 두 아들 호시와 아카이를 데리고 지누 길에서 야마토국 지경으로 달아났다.
오오미의 맏아들 오키시가 이보다 앞서 야마토에 있으면서 그 절을 지었다. 이제 홀연히 아비가 도망해 온 일을 듣고 이마키의 큰 느티나무에서 맞아, 가까이 나아가 앞서 걸어 절에 들었다.
돌아보며 오오미에게 말하였다. "오키시가 청하건대 스스로 곧바로 나아가 오는 군사를 맞아 막겠습니다."
오오미가 허락하지 않았다.
이 밤에 오키시가 궁을 태우려는 뜻으로 오히려 군사를 모았다.
기사일에 오오미가 맏아들 오키시에게 일렀다. "네가 몸을 아끼느냐."
오키시가 답하였다. "아끼지 않습니다."
오오미가 이어 야마다데라의 여러 승려와 맏아들 오키시와 수십 사람에게 늘어놓아 말하였다.
"무릇 남의 신하 된 이가 어찌 임금에게 거스름을 꾸미겠는가. 어찌 아비에게 효도를 잃겠는가. 무릇 이 절은 본디 제 몸을 위하여 지은 것이 아니다.
협주 4
日向,字身刺。
히무카는 자가 무자시다.
更名秦。
다른 이름은 하타다.
謂,在山田之家。
야마다의 집에 있음을 이른다.
宮,謂小墾田宮。
궁은 오하리다노미야를 이른다.
52오오미가 스스로 죽다
奉為天皇誓作。今我見譖身刺,而恐橫誅。聊望黃泉尚懷忠退。所以來寺,使易終時。」言畢,開佛殿之戶,作發誓曰:「願我生生世世,不怨君王。」誓訖,自經而死。妻子殉死者八。是日,以大伴狛連與蘇我日向臣,為將領眾,使追大臣。將軍大伴連等,及到黑山,土師連身、采女臣使主麻呂,從山田寺馳來告曰:「蘇我大臣既與三男一女俱自經死。」由是將軍等從丹比坂歸。庚午,山田大臣之妻子及隨身者,自經死者眾。穗積臣嚙捉聚大臣伴黨田口臣筑紫等,著枷反縛。是夕,木臣麻呂、蘇我臣日向、穗積臣嚙,以軍圍寺。喚物部二田造鹽,使斬大臣之頭。於是二田鹽仍拔大刀,刺舉其宍,叱詫啼叫,而始斬之。甲戌,坐蘇我山田大臣而被戮者,田口臣筑紫、耳梨道德、高田醜雄、額田部湯坐連、秦吾寺等,凡十四人,被絞者九人,被流者十五人。是月,遣使者收山田大臣資財。
천황을 위하여 맹세하고 지었다. 이제 내가 무자시에게 참소를 입어 뜻밖의 베임을 당할까 두렵다. 잠시 황천을 바라도 오히려 충성을 품고 물러난다. 절에 온 까닭은 마지막 때를 쉽게 하려 함이다."
말을 마치고 불전의 문을 열고 맹세를 내어 말하였다. "바라건대 내가 나고 나는 세상마다 임금을 원망하지 않겠습니다."
맹세를 마치고 스스로 목매어 죽었다. 아내와 자식으로 따라 죽은 이가 여덟이었다.
이날 오토모노코마노무라지와 소가노히무카노오미로 장수를 삼아 무리를 거느려 오오미를 뒤쫓게 하였다.
장군 오호토모노무라지들이 구로산에 이르매, 하지노무라지 무와 우네메노오미 오미마로가 야마다데라에서 달려와 알렸다. "소가노오오미가 이미 세 아들 한 딸과 함께 스스로 목매어 죽었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장군들이 다지히 고개에서 돌아왔다.
경오일에 야마다노오오미의 처자와 몸을 따르던 이로 스스로 목매어 죽은 이가 많았다.
호즈미노오미 구이가 오오미의 무리 다구치노오미 쓰쿠시들을 붙잡아 모아 칼을 씌우고 뒤로 묶었다.
이 저녁에 기노오미 마로와 소가노오미 히무카와 호즈미노오미 구이가 군사로 절을 에워쌌다. 모노노베노후타타노미야쓰코 시오를 불러 오오미의 머리를 베게 하였다.
이에 후타타노시오가 이어 큰 칼을 뽑아 그 살을 찔러 들고 꾸짖으며 부르짖고 울다가 비로소 베었다.
갑술일에 소가노야마다노오오미에 연좌되어 죽임을 당한 이가 다구치노오미 쓰쿠시와 미미나시노미치토코와 다카타노시코오와 누카타베노유에노무라지와 하타노아지 무릇 열네 사람이요, 목매인 이가 아홉이요, 귀양 간 이가 열다섯이었다.
이달에 사자를 보내어 야마다노오오미의 재물을 거두었다.
협주 2
醜,此云之渠。
시코오(醜)는 시코라 읽는다.
闕名。
이름이 빠졌다.
53황태자가 뉘우치다
資財之中,於好書上題:「皇太子書。」於重寶上題:「皇太子物。」使者還申所收之狀。皇太子始知大臣心猶貞淨,追生悔恥,哀歎難休。即拜日向臣於筑紫大宰帥。世人相謂之曰:「是隱流乎。」皇太子妃蘇我造媛,聞父大臣為鹽所斬,傷心痛惋,惡聞鹽名。所以近侍於造媛者,諱稱鹽名,改曰堅鹽。造媛遂因傷心而致死焉。皇太子聞造媛徂逝,愴然傷恒,哀泣極甚。於是,野中川原史滿進而奉歌。歌曰:
재물 가운데 좋은 책 위에 「황태자의 책」이라 적혀 있고, 무거운 보배 위에 「황태자의 물건」이라 적혀 있었다.
사자가 돌아와 거둔 모양을 아뢰었다. 황태자가 비로소 오오미의 마음이 오히려 곧고 깨끗하였음을 알고 뒤늦게 뉘우침과 부끄러움이 나서 슬퍼 탄식하기를 그치기 어려웠다.
곧 히무카노오미를 쓰쿠시의 오미코토모치노소치로 임명하였다. 세상 사람들이 서로 일렀다. "이는 숨은 귀양인가."
황태자의 비 소가노미야쓰코히메가 아비 오오미가 시오에게 베임을 당하였다는 말을 듣고 마음이 상하고 아파, 소금(鹽)이라는 이름 듣기를 싫어하였다. 그러므로 미야쓰코히메를 가까이 모시는 이들이 소금이라는 이름을 꺼려 고쳐 기타시(堅鹽)라 하였다.
미야쓰코히메가 마침내 마음 상함으로 말미암아 죽음에 이르렀다. 황태자가 미야쓰코히메가 세상을 떠났다는 말을 듣고 서러워 마음 상하기가 늘 그러하여 슬피 울기를 몹시 하였다.
이에 노나카노카와라노후비토 미쓰가 나아가 노래를 받들어 올렸다. 노래에 이르렀다.
54노래 — 미쓰
山川に鴛鴦二つ居て偶良く偶へる妹を誰か率にけむ
「산과 내에 원앙 둘이 있어 짝 좋게 짝지은 그대를 누가 데려갔는가(山川に鴛鴦二つ居て偶良く偶へる妹を誰か率にけむ)」
— 이 저본은 이 노래를 만요가나 원문 대신 일본어 읽기로 실었다. 소리를 적은 것이라 뜻으로 옮기지 않는다.
협주 1
其一。
그 첫째다.
55노래 — 미쓰
本每に花は咲けども何とかも愛妹が復咲き出來ぬ
「가지마다 꽃은 피건만 어찌하여 사랑하는 그대는 다시 피어 오지 않는가(本每に花は咲けども何とかも愛妹が復咲き出來ぬ)」
— 이 저본은 이 노래를 만요가나 원문 대신 일본어 읽기로 실었다. 소리를 적은 것이라 뜻으로 옮기지 않는다.
협주 1
其二。
그 둘째다.
56거문고를 주다
皇太子慨然頹歎褒美曰:「善矣,悲矣。」乃授御琴而使唱,賜絹四疋、布二十端、綿二褁。
황태자가 개연히 무너지듯 탄식하고 기려 아름다이 여겨 말하였다. "좋구나, 슬프구나." 이에 거문고를 주어 부르게 하고, 비단 넉 필과 베 스무 끝과 솜 두 꾸러미를 주었다.
57좌우 대신을 세우다
夏四月乙卯朔甲午,於小紫巨勢德陀古臣,授大紫為左大臣。於小紫大伴長德連,授大紫為右大臣。
여름 사월 을묘 초하루 갑오일에 소자 고세노토코타코노오미에게 대자를 주어 좌대신으로 삼았다. 소자 오토모노나가토코노무라지에게 대자를 주어 우대신으로 삼았다.
협주 1
字馬飼。
자는 우마카이다.
58신라에 사자를 보내다
五月癸卯朔,遣小花下三輪君色夫、大山上掃部連角麻呂等於新羅。
오월 계묘 초하루에 소화하 미와노키미 시코부와 대산상 가니모리노무라지 쓰노마로들을 신라에 보냈다.
59김다수가 볼모로 오다
是歲,新羅王遣沙㖨部沙飡金多逐為質。從者三十七人。
이해에 신라 왕이 사탁부 사찬 김다수(金多逐)를 보내어 볼모로 삼았다. 따르는 이가 서른일곱 사람이었다.
협주 1
僧一人,侍郎二人,丞一人,達官郎一人,中客五人,才伎十人,譯語一人,雜傔人十六人,并三十七人也。
승려 하나, 시랑 둘, 승 하나, 달관랑 하나, 중객 다섯, 재기 열, 통역 하나, 잡다한 딸린 사람 열여섯 아울러 서른일곱 사람이다.
60아지후노미야
春正月辛丑朔,車駕幸味經宮,觀賀正禮。是日,車駕還宮。
봄 정월 신축 초하루에 임금의 수레가 아지후노미야에 나아가 새해 하례하는 예를 보았다. 이날 임금의 수레가 궁으로 돌아왔다.
협주 1
味經,此云阿膩賦。
미후네(味經)는 아지후라 읽는다.
61흰 꿩
二月庚午朔戊寅,穴戶國司草壁連醜經,獻白雉曰:「國造首之同族贄,正月九日,於麻山獲焉。」於是問諸百濟君。百濟君曰:「後漢明帝永平十一年,白雉在所見焉。」云云。又問沙門等。沙門對曰:「耳所未聞,目所未覩。宜赦天下,使悅民心。」道登法師曰:「昔高麗欲營伽藍,無地不覽。便於一所白鹿徐行,遂於此地營造伽藍,名白鹿薗寺,住持佛法。又白雀見于一寺田莊。國人僉曰:『休祥。』又遣大唐使者,持死三足烏來。國人亦曰:『休祥。』斯等雖微,尚謂祥物,況復白雉。」僧旻法師曰:「此謂休祥,足為希物。伏聞,王者旁流四表,則白雉見。又王者祭祀不相踰,宴食、衣服有節則至。又王者清素,則山出白雉。又王者仁聖則見。又周成王時,越裳氏來獻白雉曰:『吾聞,國之黃耇曰:「久矣無別風淫雨,江海不波溢,三年於茲矣。」意,中國有聖人乎,盍往朝之。故重三譯而至。』又,晉武帝咸寧元年,見松滋。是則休祥,可赦天下。
이월 경오 초하루 무인일에 아나토국의 구니노쓰카사 구사카베노무라지 시코쓰가 흰 꿩을 바치며 말하였다. "구니노미야쓰코노오비토의 같은 겨레 니에가 정월 아흐레에 오노산에서 잡았습니다."
이에 여러 백제의 귀인에게 물었다. 백제의 귀인이 말하였다. "후한 명제 영평 십일년에 흰 꿩이 곳곳에 보였습니다." 이러이러하다.
또 승려들에게 물으니 승려가 대답하였다. "귀로 아직 듣지 못하고 눈으로 아직 보지 못하였습니다. 마땅히 천하에 사면하여 백성의 마음을 기쁘게 하소서."
도등 법사가 말하였다.
"옛적에 고려가 절을 지으려 하여 땅을 보지 않은 데가 없었습니다. 곧 한 곳에서 흰 사슴이 천천히 다니므로 마침내 이 땅에 절을 지어 이름을 하쿠로쿠온지(白鹿薗寺)라 하고 불법을 지켜 머물렀습니다.
또 흰 참새가 한 절의 밭 장원에 보이매 나라 사람이 다 '좋은 상서다' 하였습니다. 또 대당에 보낸 사자가 죽은 세발까마귀를 가지고 오매 나라 사람이 또한 '좋은 상서다' 하였습니다. 이런 것들이 비록 작으나 오히려 상서로운 물건이라 이르는데 하물며 다시 흰 꿩이겠습니까."
승민 법사가 말하였다.
"이는 좋은 상서라 이르니 드문 물건으로 삼기에 넉넉합니다. 엎드려 듣건대 왕 된 이가 사방에 두루 흐르면 곧 흰 꿩이 보인다 합니다. 또 왕 된 이가 제사에 서로 넘지 않고 잔치와 음식과 옷에 절도가 있으면 이릅니다. 또 왕 된 이가 맑고 검소하면 곧 산에서 흰 꿩이 납니다. 또 왕 된 이가 어질고 성스러우면 보입니다.
또 주나라 성왕 때에 월상씨(越裳氏)가 와서 흰 꿩을 바치며 말하였습니다. '내가 듣건대 나라의 늙은이가 「오래되었다, 별난 바람과 지나친 비가 없고 강과 바다가 물결쳐 넘치지 않은 지 여기서 세 해다」 하였습니다. 생각건대 중국에 성인이 있는가 하여 어찌 가서 조회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세 번 통역을 거듭하여 왔습니다.'
또 진 무제 함녕 원년에 송자에서 보였습니다. 이는 곧 좋은 상서니 천하에 사면할 만합니다."
62흰 꿩을 바치다
」是以白雉使放于園。甲申,朝庭隊仗,如元會儀。左右大臣、百官人等,為四列於紫門外。以粟田臣飯蟲等四人,使執雉輿,而在前去。左右大臣乃率百官及百濟君豐璋,其弟塞城、忠勝,高麗侍醫毛治,新羅侍學士等,而至中庭。使三國公麻呂、豬名公高見、三輪君甕穗、紀臣乎麻呂岐太四人,代執雉輿,而進殿前。時左右大臣就執輿前頭,伊勢王、三國公麻呂、倉臣小屎,執輿後頭,置於御座之前。天皇即召皇太子,共執而觀。皇太子退而再拜,使巨勢大臣奉賀曰:「公卿、百官人等奉賀,陛下以清平之德治天下之故,爰有白雉自西方出。乃是陛下及至千秋萬歲,淨治四方八大嶋,公卿、百官及諸百姓等,冀罄忠誠勤將事。」奉賀訖再拜。詔曰:「聖王出世治天下時,天則應之示其祥瑞。曩者,西土之君周成王世與漢明帝時,白雉爰見。我日本國譽田天皇之世,白烏樔宮。大鷦鷯帝之時,龍馬西見。
이로써 흰 꿩을 동산에 놓게 하였다.
갑신일에 조정의 의장이 새해 모임의 의식과 같았다. 좌우 대신과 온갖 벼슬아치들이 자문 밖에 네 줄로 섰다. 아와타노오미 이하무시들 네 사람으로 꿩 가마를 잡게 하여 앞에 가게 하였다.
좌우 대신이 이에 온갖 벼슬아치와 백제의 귀인 풍장(豐璋)과 그 아우 새성(塞城)과 충승(忠勝)과 고려의 시의(侍醫) 모치(毛治)와 신라의 시학사(侍學士)들을 거느리고 가운데 뜰에 이르렀다.
미쿠니노키미 마로와 이나노키미 다카미와 미와노키미 미카호와 기노오미 오마로기타 네 사람으로 대신 꿩 가마를 잡게 하여 전각 앞으로 나아가게 하였다.
이때 좌우 대신이 나아가 가마 앞머리를 잡고, 이세노오키미와 미쿠니노키미 마로와 구라노오미 오쿠소가 가마 뒷머리를 잡아 임금의 자리 앞에 놓았다.
천황이 곧 황태자를 불러 함께 잡고 보았다. 황태자가 물러나 두 번 절하고 고세노오오미를 시켜 하례를 올렸다.
"공경과 온갖 벼슬아치들이 하례를 올립니다. 폐하께서 맑고 평안한 덕으로 천하를 다스리시는 까닭에, 이에 흰 꿩이 서쪽에서 나왔습니다. 곧 이는 폐하께서 천추만세에 이르도록 사방 여덟 큰 섬을 깨끗이 다스리시고, 공경과 온갖 벼슬아치와 여러 백성이 충성을 다하여 부지런히 일을 받들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하례를 마치고 두 번 절하였다.
조를 내렸다.
"성스러운 왕이 세상에 나와 천하를 다스릴 때 하늘이 곧 응하여 그 상서를 보인다. 지난날 서쪽 땅의 임금 주 성왕 때와 한 명제 때에 흰 꿩이 이에 보였다. 우리 일본국 호무타천황 때에 흰 까마귀가 궁에 둥지를 틀었고, 오사자키천황 때에 용마가 서쪽에 보였다.
63하쿠치로 연호를 고치다
是以自古迄今,祥瑞時見,以應有德,其類多矣。所謂鳳凰、騏驎、白雉、白烏,若斯鳥獸及于草木,有符應者,皆是天地所生休祥嘉瑞也。夫明聖之君獲斯祥瑞,適其宜也。朕惟虛薄,何以享斯。蓋此專由扶翼公卿、臣、連、伴造、國造等,各盡丹誠,奉遵制度之所致也。是故始於公卿及百官等,以清白意,敬奉神祇,並受休祥,令榮天下。」又詔曰:「四方諸國郡等,由天委付之故,朕總臨而御寓。今我親神祖之所知穴戶國中,有此嘉瑞。所以大赦天下,改元白雉。」仍禁放鷹於穴戶堺,賜公卿大夫以下至于令史,各有差。於是褒美國司草壁連醜經,授大山,并大給祿,復穴戶三年調役。
이로써 예로부터 이제까지 상서가 때로 보여 덕 있는 이에게 응하니 그 종류가 많다.
이른바 봉황과 기린과 흰 꿩과 흰 까마귀 같은 새와 짐승과 풀과 나무에 이르기까지 부합하여 응하는 것은 다 하늘과 땅이 낸 좋은 상서요 아름다운 조짐이다.
무릇 밝고 성스러운 임금이 이 상서를 얻는 것은 그 마땅함에 맞다. 짐은 생각건대 비고 엷은데 무엇으로 이를 누리겠는가. 아마 이는 오로지 도와 붙드는 공경과 오미와 무라지와 도모노미야쓰코와 구니노미야쓰코들이 각각 붉은 정성을 다하여 제도를 받들어 좇은 데서 이른 바다.
이 때문에 공경으로 시작하여 온갖 벼슬아치들에 이르기까지 맑고 흰 뜻으로 신들을 공경히 받들고, 아울러 좋은 상서를 받아 천하를 번영하게 하라."
또 조를 내렸다. "사방 여러 나라와 고을들이 하늘이 맡겨 준 까닭에 짐이 통틀어 임하여 온 세상을 다스린다. 이제 우리 몸소 신령한 조상이 아시는 아나토국 안에 이 아름다운 상서가 있다. 그러므로 천하에 크게 사면하고 연호를 고쳐 하쿠치(白雉)라 한다."
이어 아나토 지경에서 매 놓는 것을 금하고, 공경과 대부 아래 영사에 이르기까지 녹을 주되 각각 차등이 있었다.
이에 구니노쓰카사 구사카베노무라지 시코쓰를 기려 아름다이 여겨 대산을 주고 아울러 녹을 크게 주며, 아나토의 세 해 조와 부역을 면하였다.
64신라가 조를 바치다
夏四月,新羅遣使貢調。
여름 사월에 신라가 사자를 보내어 조를 바쳤다.
협주 1
或本云:是天皇世,高麗、百濟、新羅三國,每年遣使貢獻也。
어떤 판본에는 이 천황 때에 고려와 백제와 신라 세 나라가 해마다 사자를 보내어 바쳤다 한다.
65백제 배 두 척
冬十月,為入宮地,所壞丘墓及被遷人者,賜物各有差。即遣將作大匠荒田井直比羅夫,立宮堺標。是月,始造丈六繡像、俠侍、八部等三十六像。是歲,漢山口直大口,奉詔刻千佛像。遣倭漢直縣、白髮部連鐙、難波吉士胡床於安藝國,使造百濟舶二隻。
겨울 시월에 궁 자리를 만들기 위하여 헐린 언덕과 무덤과 옮겨진 사람에게 물건을 주되 각각 차등이 있었다. 곧 장작대장 아라타이노아타이 히라부를 보내어 궁의 지경 표를 세웠다.
이달에 처음으로 장륙 수놓은 상과 곁에 모신 상과 팔부들 서른여섯 상을 만들었다.
이해에 아야노야마구치노아타이 오구치가 조서를 받들어 천 부처의 상을 새겼다. 야마토노아야노아타이 아가타와 시라카베노무라지 아부미와 나니와노키시 아구라를 아키국에 보내어 백제 배 두 척을 짓게 하였다.
66장륙 수놓은 상이 이루어지다
春三月甲午朔丁未,丈六繡像等成。戊申,皇祖母尊請十師等設齋。
봄 삼월 갑오 초하루 정미일에 장륙 수놓은 상들이 이루어졌다. 무신일에 스메미오야노미코토가 열 스승들을 청하여 재를 베풀었다.
67백제와 신라가 조를 바치다
夏六月,百濟、新羅遣使貢調獻物。
여름 유월에 백제와 신라가 사자를 보내어 조를 바치고 물건을 바쳤다.
68신라 사자가 당나라 옷을 입고 오다
冬十二月晦,於味經宮請二千一百餘僧尼,使讀一切經。是夕,燃二千七百餘燈於朝廷內,使讀安宅、土側等經。於是天皇從於大郡遷,居新宮。號曰難波長柄豐碕宮。是歲,新羅貢調使知萬沙飡等,著唐國服泊于筑紫。朝廷惡恣移俗,訶嘖追還。于時,巨勢大臣奏請之曰:「今方不伐新羅,於後必當有悔。其伐之狀,不須舉力。自難波津至于筑紫海裏,相接浮盈艫舳,召新羅問其罪者,可易得焉。」
겨울 십이월 그믐에 아지후노미야에 승려와 비구니 이천백여 사람을 청하여 일체경을 읽게 하였다. 이 저녁에 이천칠백여 등을 조정 안에 밝히고 안택경(安宅經)과 토측경(土側經)들을 읽게 하였다.
이에 천황이 오코리에서 옮겨 새 궁에 자리하였다. 이름하여 나니와의 나가라노토요사키노미야라 하였다.
이해에 신라의 조 바치는 사자 지만(知萬) 사찬들이 당나라 옷을 입고 쓰쿠시에 닿았다. 조정이 마음대로 풍속을 옮긴 것을 미워하여 꾸짖고 쫓아 돌려보냈다.
이때 고세노오오미가 아뢰어 청하였다. "이제 바야흐로 신라를 치지 않으면 뒤에 반드시 마땅히 뉘우침이 있을 것입니다. 그 치는 모양은 힘을 들일 것이 없습니다. 나니와 나루에서 쓰쿠시 바다까지 서로 이어 배를 띄워 가득 채우고 신라를 불러 그 죄를 물으면 쉽게 얻을 수 있습니다."
69반전이 끝나다
春正月己未朔,元日禮訖,車駕幸大郡宮。自正月至是月,班田既訖。凡田長三十步為段,十段為町。
봄 정월 기미 초하루에 설날 예를 마치고 임금의 수레가 오코리노미야에 나아갔다.
정월부터 이달까지 반전이 이미 끝났다. 무릇 밭은 길이 서른 걸음을 단으로 삼고 열 단을 정으로 삼는다.
협주 1
段租稻一束半,町租稻十五束。
단의 조는 벼 한 묶음 반이요 정의 조는 벼 열다섯 묶음이다.
70호적을 만들다
三月戊午朔丙寅,車駕還宮。夏四月戊子朔壬寅,請沙門惠隱於內裏,使講無量壽經,以沙門惠資為論議者,以沙門一千為作聽眾。丁未,罷講。自於此日初,連雨水。至于九日,損壞宅屋,傷害田苗。人及牛馬溺死者眾。是月,造戶籍。凡五十戶為里,每里長一人。凡戶主皆以家長為之。凡戶皆五家相保,一人為長,以相檢察。新羅、百濟遣使貢調,獻物。
삼월 무오 초하루 병인일에 임금의 수레가 궁으로 돌아왔다.
여름 사월 무자 초하루 임인일에 승려 혜은을 궁 안에 청하여 무량수경을 강하게 하고, 승려 혜자(惠資)를 논의하는 이로 삼고 승려 천 사람을 듣는 무리로 삼았다.
정미일에 강하기를 마쳤다. 이날부터 처음으로 비가 이어 내렸다. 아흐레에 이르러 집이 헐고 무너지며 밭의 싹이 상하였다. 사람과 소와 말이 빠져 죽은 이가 많았다.
이달에 호적을 만들었다. 무릇 쉰 집을 이(里)로 삼고 이마다 어른 하나를 두었다. 무릇 호주는 다 집안 어른으로 삼았다. 무릇 호는 다 다섯 집이 서로 보증하고 한 사람을 어른으로 삼아 서로 살피게 하였다.
신라와 백제가 사자를 보내어 조를 바치고 물건을 바쳤다.
71궁이 이루어지다
秋九月,造宮已訖。其宮殿之狀不可殫論。
가을 구월에 궁 짓기를 이미 마쳤다. 그 궁전의 모양은 다 논할 수 없다.
72당나라에 사자를 보내다
冬十二月晦,請天下僧尼於內裏,設齋,大捨,燃燈。四年,夏五月辛亥朔壬戌,發遣大唐大使小山上吉士長丹,副使小乙上吉士駒,學問僧道嚴、道通、道光、惠施、覺勝、辨正、惠照、僧忍、知聰、道昭、定惠、安達、道觀、學生巨勢臣藥、冰連老人,并一百二十一人,俱乘一船。以室原首御田為送使。又大使大山下高田首根麻呂、副使小乙上掃守連小麻呂,學問僧道福、義向,并一百二十人,俱乘一船。以土師連八手為送使。是月,天皇幸旻法師房,而問其疾,遂口敕恩命。或本,於五年七月云:僧旻法師臥病於阿曇寺。於是天皇幸而問之,仍執其手曰:「若法師今日亡者,朕從明日亡。」
겨울 십이월 그믐에 천하의 승려와 비구니를 궁 안에 청하여 재를 베풀고 크게 보시하며 등을 밝혔다.
사년 여름 오월 신해 초하루 임술일에 대당의 대사 소산상 기시노나가니와 부사 소을상 기시노코마와 학문승 도엄(道嚴)과 도통(道通)과 도광(道光)과 혜시(惠施)와 각승(覺勝)과 변정(辨正)과 혜조(惠照)와 승인(僧忍)과 지총(知聰)과 도소(道昭)와 정혜(定惠)와 안달(安達)과 도관(道觀)과 학생 고세노오미 구스리와 히노무라지 오키나 아울러 백스물한 사람을 보내어 함께 배 한 척에 태웠다. 무로하라노오비토 미타를 보내는 사자로 삼았다.
또 대사 대산하 다카타노오비토 네마로와 부사 소을상 가니모리노무라지 고마로와 학문승 도복(道福)과 의향(義向) 아울러 백스무 사람을 함께 배 한 척에 태웠다. 하지노무라지 야쓰테를 보내는 사자로 삼았다.
이달에 천황이 민 법사의 방에 나아가 그 병을 묻고 마침내 입으로 은혜로운 명을 내렸다.
어떤 판본에는 오년 칠월에 이르기를, 승민 법사가 아즈미데라에 병들어 누웠다. 이에 천황이 나아가 물으며 그 손을 잡고 말하였다. "만약 법사가 오늘 죽으면 짐은 이튿날 죽겠다."
협주 7
駒,更名絲。
고마는 다른 이름이 이토다.
定惠,內大臣之長子也。
정혜는 내대신의 맏아들이다.
安達,中臣渠每連之子。
안달은 나카토미노고고토노무라지의 아들이다.
道觀,春日粟田臣百濟之子。
도관은 가스가노아와타노오미 구다라의 아들이다.
藥,豐足臣之子。
구스리는 도요타리노오미의 아들이다.
老人,真玉之子。或本,以學問僧知辨、義德,學生坂合部連磐積而增焉。
오키나는 마타마의 아들이다. 어떤 판본에는 학문승 지변(知辨)과 의덕(義德)과 학생 사카아히베노무라지 이와쓰미를 더한다.
更名,八掬脛。
다른 이름은 야쓰카하기다.
73황태자가 야마토로 옮기다
是歲,太子奏請曰:「欲冀遷于倭京。」天皇不許焉。皇太子乃奉皇祖母尊、間人皇后,并率皇弟等,往居于倭飛鳥河邊行宮。于時,公卿大夫、百官人等,皆隨而遷。由是天皇恨欲捨於國位,令造宮於山碕,乃送歌於間人皇后曰:
이해에 태자가 아뢰어 청하였다. "바라건대 야마토의 서울로 옮기고자 합니다."
천황이 허락하지 않았다. 황태자가 이에 스메미오야노미코토와 하시히토 황후를 받들고 아울러 아우 되는 황자들을 거느려 야마토의 아스카 냇가 행궁으로 가서 살았다. 이때 공경과 대부와 온갖 벼슬아치들이 다 따라 옮겼다.
이로 말미암아 천황이 한하여 나라 자리를 버리고자 하여 야마사키에 궁을 짓게 하고, 이에 노래를 하시히토 황후에게 보냈다.
74노래 — 천황
金木著け吾が飼駒は引出せず吾が飼駒を人見つらむか
「쇠나무를 채운 내가 기르던 망아지는 끌어내지 못하는데 내가 기르던 망아지를 사람이 보았을까(金木著け吾が飼駒は引出せず吾が飼駒を人見つらむか)」
— 이 저본은 이 노래를 만요가나 원문 대신 일본어 읽기로 실었다. 소리를 적은 것이라 뜻으로 옮기지 않는다.
75자관을 주다
春正月戊申朔,夜,鼠向倭都而遷。壬子,以紫冠授中臣鎌足連,增封若干戶。
봄 정월 무신 초하루 밤에 쥐가 야마토의 서울로 향하여 옮겼다. 임자일에 자관을 나카토미노가마타리노무라지에게 주고 봉한 집을 얼마간 더하였다.
76다시 당나라에 보내다
二月,遣大唐押使大錦上高向史玄理,大使小錦下河邊臣麻呂,副使大山下藥師惠日,判官大乙上書直麻呂、宮首阿彌陀、小乙上岡君宜、置始連大伯、小乙下中臣間人連老、田邊使鳥等,分乘二船,留連數月,取新羅道,泊於萊州。遂到于京,奉覲天子。於是,東宮監門郭丈舉,悉問日本國之地里及國初之神名。皆隨問而答。押使高向玄理,卒於大唐。伊吉博得言:「學問僧惠妙於唐死。知聰於海死。智國於海死。智宗以庚寅年付新羅船歸。覺勝於唐死。義通於海死。定惠以乙丑年付劉德高等船歸。妙位、法勝,學生冰連老人、高黃金,并十二人,別倭種韓智興、趙元寶,今年共使人歸。」
이월에 대당의 압사 대금상 다카무코노후비토 겐리와 대사 소금하 가와베노오미 마로와 부사 대산하 구스시 에니치와 판관 대을상 후미노아타이 마로와 미야노오비토 아미타와 소을상 오카노키미 요로시와 오키소메노무라지 오호쿠와 소을하 나카토미노하시히토노무라지 오유와 다나베노쓰카이 도리들을 나누어 배 두 척에 태웠다. 여러 달을 머물다가 신라 길을 잡아 내주(萊州)에 닿았다.
마침내 서울에 이르러 천자를 뵈었다. 이에 동궁 감문 곽장거(郭丈舉)가 일본국의 지리와 나라 처음의 신 이름을 다 물었다. 다 물음에 따라 답하였다.
압사 다카무코노겐리가 대당에서 죽었다.
이키노하카토코가 말하였다. "학문승 혜묘가 당에서 죽었다. 지총이 바다에서 죽었다. 지국(智國)이 바다에서 죽었다. 지종(智宗)이 경인년에 신라 배에 붙어 돌아왔다. 각승이 당에서 죽었다. 의통(義通)이 바다에서 죽었다. 정혜가 을축년에 유덕고(劉德高)들의 배에 붙어 돌아왔다. 묘위(妙位)와 법승(法勝)과 학생 히노무라지 오키나와 고노코가네 아울러 열두 사람과, 따로 왜의 씨 가라노치코와 조겐포가 올해 함께 사자와 돌아왔다."
협주 3
或本云,夏五月,遣大唐押使大花下高向玄理。
어떤 판본에는 여름 오월에 대당의 압사 대화하 다카무코노겐리를 보냈다 한다.
或本云,判官小山下書直麻呂。
어떤 판본에는 판관 소산하 후미노아타이 마로라 한다.
老,此云於喻。
오유(老)는 오유라 읽는다.
77서해 사자가 돌아오다
夏四月,吐火羅國男二人、女二人,舍衛女一人,被風流來于日向。秋七月甲戌朔丁酉,西海使吉士長丹等,共百濟、新羅送使泊于筑紫。是月,褒美西海使等奉對唐國天子,多得文書、寶物,授小山上大使吉士長丹以少花下,賜封二百戶,賜姓為吳氏。授小乙上副使吉士駒以小山上。
여름 사월에 토화라국(吐火羅國) 사내 둘과 여인 둘과 사위(舍衛) 여인 하나가 바람에 떠밀려 히무카에 왔다.
가을 칠월 갑술 초하루 정유일에 서해 사자 기시노나가니들이 백제와 신라의 보내는 사자와 함께 쓰쿠시에 닿았다.
이달에 서해 사자들이 당나라 천자를 받들어 마주하고 글과 보배 물건을 많이 얻은 것을 기려 아름다이 여겨, 소산상 대사 기시노나가니에게 소화하를 주고 봉한 집 이백을 주며 성을 주어 구레씨(吳氏)라 하였다. 소을상 부사 기시노코마에게 소산상을 주었다.
78천황이 죽다
冬十月癸卯朔,皇太子聞天皇病疾,乃奉皇祖母尊、間人皇后,并率皇弟、公卿等,赴難波宮。壬子,天皇崩于正寢。仍起殯於南庭。以小山上百舌鳥土師連土德,主殯宮之事。
겨울 시월 계묘 초하루에 황태자가 천황이 병들었다는 말을 듣고, 이에 스메미오야노미코토와 하시히토 황후를 받들고 아울러 아우 되는 황자와 공경들을 거느려 나니와노미야에 나아갔다.
임자일에 천황이 정침에서 죽었다. 이어 남쪽 뜰에 빈소를 일으켰다. 소산상 모즈노하지노무라지 하니토코로 빈궁의 일을 맡게 하였다.
79세 나라가 조문하다
十二月壬寅朔已酉,葬于大坂磯長陵。是日,皇太子奉皇祖母尊,遷居倭河邊行宮。老者語之曰:「鼠向倭都,遷都之兆也。」是歲,高麗、百濟、新羅,並遣使奉弔。
십이월 임인 초하루 기유일에 오사카의 시나가 능에 장사 지냈다.
이날 황태자가 스메미오야노미코토를 받들고 야마토의 가와베 행궁으로 옮겨 살았다.
늙은이가 말하였다. "쥐가 야마토의 서울로 향한 것은 도읍을 옮길 조짐이다."
이해에 고려와 백제와 신라가 아울러 사자를 보내어 조문을 받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