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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명천황齊明天皇

일본서기 日本書紀 · 도네리 친왕(舍人親王) 등 · 720년 (일본 요로 4) · 단락 70 · 한자 4,809자 · 낭독 19.2분

「일본서기」 인대 「제명천황」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정사. 신들의 시대부터 지통천황까지 서른 권이다. 신대 상·하는 같은 신화의 다른 판본을 「어떤 책에는 이렇게 되어 있다」로 나란히 실어, 갈리는 이야기를 감추지 않았다. 백제·신라·고구려·임나 기사가 1,379곳에 나와 한국 사서와 맞대 볼 자리가 가장 많은 책이기도 하다.

1제명천황

天豐財重日足姬天皇,初適於橘豐日天皇之孫高向王,而生漢皇子。後適於息長足日廣額天皇,而生二男一女。

아메토요타카라이카시히타라시히메천황은 처음 다치바나노토요히천황의 손자 다카무쿠노오키미에게 시집가 아야노미코를 낳았다. 뒤에 오키나가타라시히히로누카천황에게 시집가 두 사내와 한 계집을 낳았다.

2황후가 되다

二年,立為皇后。見息長足日廣額天皇紀。

이년에 황후로 세워졌다. 오키나가타라시히히로누카천황 기에 보인다.

3앞 임금이 죽다

十三年,冬十月,息長足日廣額天皇崩。

십삼년 겨울 시월에 오키나가타라시히히로누카천황이 죽었다.

4자리에 오르다

明年,正月,皇后即天皇位。

이듬해 정월에 황후가 천황의 자리에 올랐다.

5자리를 물려주다

改元四年,六月,讓位於天萬豐日天皇。稱天豐財重日足姬天皇曰皇祖母尊。

연호를 고친 사년 유월에 자리를 아메요로즈토요히천황에게 물려주었다. 아메토요타카라이카시히타라시히메천황을 일컬어 스메미오야노미코토라 하였다.

6효덕천황이 죽다

天萬豐日天皇,後五年十月,崩。

아메요로즈토요히천황이 뒤 오년 시월에 죽었다.

7다시 자리에 오르다

春正月壬申朔甲戌,皇祖母尊即天皇位於飛鳥板蓋宮。

봄 정월 임신 초하루 갑술일에 스메미오야노미코토가 아스카의 이타부키노미야에서 천황의 자리에 올랐다.

8용을 탄 이

夏五月庚午朔,空中有乘龍者。貌似唐人,著青油笠,而自葛城嶺馳隱膽駒山。及至午時,從於住吉松嶺之上,西向馳去。

여름 오월 경오 초하루에 공중에 용을 탄 이가 있었다. 모습이 당나라 사람 같고 푸른 기름 삿갓을 쓰고 가즈라키 마루에서 달려 이코마산에 숨었다. 오시에 이르러 스미노에의 솔 마루 위에서 서쪽으로 향하여 달려갔다.

9에미시와 백제 사자를 대접하다

秋七月己巳朔己卯,於難波朝饗北蝦夷九十九人,東蝦夷九十五人。并設百濟調使一百五十人。仍授柵養蝦夷九人,津刈蝦夷六人,冠各二階。

가을 칠월 기사 초하루 기묘일에 나니와 조정에서 북쪽 에미시 아흔아홉 사람과 동쪽 에미시 아흔다섯 사람을 대접하였다. 아울러 백제의 조 바치는 사자 백쉰 사람의 자리를 마련하였다.

이어 목책에서 기른 에미시 아홉 사람과 쓰가루 에미시 여섯 사람에게 관위를 각각 두 계단씩 주었다.

협주 2

北,越。

북쪽은 고시다.

東,陸奧。

동쪽은 무쓰다.

10가와베노오미가 돌아오다

八月戊戌朔,河邊臣麻呂等自大唐還。

팔월 무술 초하루에 가와베노오미 마로들이 대당에서 돌아왔다.

11궁을 짓다 그치다

冬十月丁酉朔己酉,於小墾田造起宮闕,擬將瓦覆。又於深山廣谷,擬造宮殿之材,朽濫者多。遂止弗作。

겨울 시월 정유 초하루 기유일에 오하리다에 궁궐을 일으켜 지으며 기와로 덮으려 하였다. 또 깊은 산 넓은 골짜기에서 궁전 지을 재목을 마련하려 하였으나 썩고 문드러진 것이 많았다. 마침내 그쳐 짓지 않았다.

12이타부키노미야에 불이 나다

是冬,災飛鳥板蓋宮。故遷居飛鳥川原宮。

이해 겨울에 아스카의 이타부키노미야에 불이 났다. 그러므로 아스카의 가와라노미야로 옮겨 살았다.

13세 나라가 조를 바치다

是歲,高麗、百濟、新羅,並遣使進調。蝦夷、隼人率眾內屬,詣闕朝獻。新羅別以及飡彌武為質,以十二人為才伎者。彌武遇疾而死。是年也,太歲乙卯。

이해에 고려와 백제와 신라가 아울러 사자를 보내어 조를 바쳤다. 에미시와 하야히토가 무리를 거느리고 안으로 붙어 궁궐에 나아가 조회하고 바쳤다.

신라가 따로 급찬 미무(彌武)를 볼모로 삼고 열두 사람을 재기(才伎)로 삼았다. 미무가 병을 만나 죽었다.

이해는 태세가 을묘다.

협주 1

百濟大使西部達率余宜受,副使東部恩率調信仁,凡一百餘人。

백제 대사 서부 달솔 여의수(余宜受)와 부사 동부 은솔 조신인(調信仁) 무릇 백여 사람이다.

14고려가 조를 바치다

秋八月癸巳朔庚子,高麗遣達沙等進調。

가을 팔월 계사 초하루 경자일에 고려가 달사(達沙)들을 보내어 조를 바쳤다.

협주 1

大使達沙,副使伊利之,總八十一人。

대사 달사와 부사 이리지(伊利之) 아울러 여든한 사람이다.

15고려에 사자를 보내다

九月,遣高麗大使膳臣葉積,副使坂合部連磐鍬,大判官犬上君白麻呂,中判官河內書首,小判官大藏衣縫造麻呂。

구월에 고려에 대사 가시와데노오미 하즈미와 부사 사카아히베노무라지 이와스키와 대판관 이누카미노키미 시로마로와 중판관 가와치노후미노오비토와 소판관 오쿠라노키누누이노미야쓰코 마로를 보냈다.

협주 1

闕名。

이름이 빠졌다.

16미친 도랑

是歲,於飛鳥岡本,更定宮地。時高麗、百濟、新羅並遣使進調。為張紺幕於此宮地而饗焉。遂起宮室。天皇乃遷,號曰後飛鳥岡本宮。於田身嶺冠以周垣。復於嶺上兩槻樹邊起觀,號為兩槻宮,亦曰天宮。時好興事,迺使水工穿渠,自香山西至石上山。以舟二百隻載石上山石,順流控引於宮東山,累石為垣。時人謗曰:「狂心渠。損費,功夫三萬餘矣。費損,造垣功夫七萬餘矣。宮材爛矣。山椒埋矣。」又謗曰:「作石山丘,隨作自破。」又作,吉野宮。西海使佐伯連栲繩、小山下難波吉士國勝等,自百濟還,獻鸚鵡一隻。災,岡本宮。

이해에 아스카의 오카모토에 다시 궁 자리를 정하였다. 그때 고려와 백제와 신라가 아울러 사자를 보내어 조를 바쳤다. 이 궁 자리에 감색 장막을 쳐 대접하였다.

마침내 궁실을 일으켰다. 천황이 이에 옮겨 이름하여 노치노아스카노오카모토노미야라 하였다.

다무 마루에 둘레 담을 둘렀다. 다시 마루 위 두 느티나무 곁에 누각을 일으켜 이름을 후타쓰키노미야라 하고 또 아마쓰미야라 하였다.

그때 일 벌이기를 좋아하여 이에 물 다루는 장인을 시켜 도랑을 뚫되 가구산 서쪽에서 이소노카미산까지 이르게 하였다. 배 이백 척으로 이소노카미산의 돌을 싣고 흐름을 따라 궁 동쪽 산으로 끌어당겨 돌을 쌓아 담을 삼았다.

그때 사람들이 헐뜯어 말하였다. "미친 마음의 도랑이다. 잃고 쓴 인부가 삼만 남짓이다. 담 짓느라 잃고 쓴 인부가 칠만 남짓이다. 궁 재목이 문드러졌다. 산마루가 묻혔다."

또 헐뜯어 말하였다. "돌 산과 언덕을 지으니 짓는 대로 절로 무너진다."

또 요시노노미야를 지었다.

서해 사자 사에키노무라지 다쿠나와와 소산하 나니와노키시 구니카쓰들이 백제에서 돌아와 앵무 한 마리를 바쳤다.

오카모토노미야에 불이 났다.

협주 3

田身,山名。此云大務。

다무(田身)는 산 이름이다. 오무라 읽는다.

若據未成之時,作此謗乎。

아마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에 이런 헐뜯음을 지은 것인가.

闕位階級。

벼슬 계단이 빠졌다.

17도화라 사람이 표류해 오다

秋七月丁亥朔己丑,覩貨邏國男二人、女四人,漂泊于筑紫,言:「臣等初漂泊于海見嶋。」乃以驛召。辛丑,作須彌山像於飛鳥寺西,且設盂蘭瓮會。暮,饗覩貨邏人。

가을 칠월 정해 초하루 기축일에 도화라국(覩貨邏國) 사내 둘과 여인 넷이 쓰쿠시에 표류해 닿아 말하였다. "신들이 처음에 우미미섬에 표류해 닿았습니다." 이에 역말로 불렀다.

신축일에 수미산 모양을 아스카데라 서쪽에 만들고 또 우란분회를 베풀었다. 저녁에 도화라 사람을 대접하였다.

협주 1

或本云,墮羅人。

어떤 판본에는 타라(墮羅) 사람이라 한다.

18아리마 황자가 미친 척하다

九月,有間皇子性黠陽狂,云云。往牟婁溫湯,偽療病來,讚國體勢曰:「纔觀彼地,病自蠲消。」云云。天皇聞悅,思欲往觀。

구월에 아리마 황자가 성품이 약아 거짓으로 미친 척하였다. 이러이러하다.

무로의 온탕에 가서 거짓으로 병을 고치고 와서 그 나라의 모습을 기려 말하였다. "겨우 저 땅을 보기만 하여도 병이 절로 사라집니다." 이러이러하다.

천황이 듣고 기뻐하여 가서 보고자 생각하였다.

19신라가 보내기를 듣지 않다

是歲,使使於新羅曰:「欲將沙門智達、間人連御廄、依網連稚兒等,付汝國使,令送到大唐。」新羅不肯聽送。由是沙門智達等還歸。西海使小花下阿曇連頰垂、小山下津臣傴僂,自百濟還,獻駱駝一箇、驢二箇。石見國言:「白狐見。」

이해에 신라에 사자를 보내어 말하였다. "승려 지달(智達)과 하시히토노무라지 미마야와 요사미노무라지 와카고들을 너희 나라 사자에게 붙여 대당에 보내고자 한다."

신라가 보내 주기를 즐겨 듣지 않았다. 이로 말미암아 승려 지달들이 돌아왔다.

서해 사자 소화하 아즈미노무라지 쓰라타리와 소산하 쓰노오미 구쓰마가 백제에서 돌아와 낙타 하나와 나귀 둘을 바쳤다.

이와미국이 말하였다. "흰 여우가 보였습니다."

협주 1

傴僂,此云俱豆磨。

구루(傴僂)는 구쓰마라 읽는다.

20좌대신이 죽다

春正月甲申朔丙申,左大臣巨勢德太臣薨。

봄 정월 갑신 초하루 병신일에 좌대신 고세노토코타노오미가 죽었다.

21에미시를 치다

夏四月,阿倍臣,率船師一百八十艘伐蝦夷。齶田、渟代二郡蝦夷,望怖乞降。於是勒軍陳船於齶田浦。齶田蝦夷恩荷進而誓曰:「不為官軍故持弓矢,但奴等性食肉故持。若為官軍,以儲弓矢,齶田浦神知矣。將清白心仕官朝矣。」仍授恩荷以小乙上,定渟代、津輕二郡郡領。遂於有間濱召聚渡嶋蝦夷等,大饗而歸。

여름 사월에 아베노오미가 수군 배 백여든 척을 거느리고 에미시를 쳤다. 아기타와 누시로 두 고을의 에미시가 바라보고 두려워 항복을 빌었다.

이에 군사를 다잡아 아기타 갯가에 배를 벌였다.

아기타의 에미시 오가가 나아가 맹세하였다. "관군을 막으려고 활과 화살을 가진 것이 아닙니다. 다만 저희 성품이 고기를 먹는 까닭에 가졌습니다. 만약 관군을 막으려고 활과 화살을 마련하였다면 아기타 갯가의 신이 아실 것입니다. 맑고 흰 마음으로 관가와 조정을 섬기겠습니다."

이어 오가에게 소을상을 주고 누시로와 쓰가루 두 고을의 고오리노미야쓰코를 정하였다. 마침내 아리마 갯가에서 와타리시마의 에미시들을 불러 모아 크게 대접하고 돌아왔다.

협주 1

闕名。

이름이 빠졌다.

22다케루노오키미가 죽다

五月,皇孫建王,年八歲薨。今城谷上,起殯而收。天皇本以皇孫有順而器重之,故不忍哀傷慟極甚。詔群臣曰:「萬歲千秋之後,要合葬於朕陵。」迺作歌曰:

오월에 황손 다케루노오키미가 나이 여덟에 죽었다. 이마키 골짜기 위에 빈소를 일으켜 거두었다.

천황이 본디 황손이 순하다 하여 그릇으로 무겁게 여겼다. 그러므로 차마 슬픔을 견디지 못하여 서러워함이 몹시 심하였다.

여러 신하에게 조를 내렸다. "만세천추 뒤에 요컨대 짐의 능에 합장하라."

이에 노래를 지었다.

23노래 — 천황

今城なる小丘が上に雲だにも著くし立たば何か歎かむ

「이마키의 작은 언덕 위에 구름이라도 뚜렷이 서면 무엇을 탄식하랴(今城なる小丘が上に雲だにも著くし立たば何か歎かむ)」

— 이 저본은 이 노래를 만요가나 원문 대신 일본어 읽기로 실었다. 소리를 적은 것이라 뜻으로 옮기지 않는다.

협주 1

其一。

그 첫째다.

24노래 — 천황

射ゆ鹿豬を認ぐ川上の若草の若く在きと吾が思は無くに

「쏘인 사슴과 멧돼지를 뒤쫓는 냇가의 어린 풀처럼 어리다고 내가 여기지 않았거늘(射ゆ鹿豬を認ぐ川上の若草の若く在きと吾が思は無くに)」

— 이 저본은 이 노래를 만요가나 원문 대신 일본어 읽기로 실었다. 소리를 적은 것이라 뜻으로 옮기지 않는다.

협주 1

其二。

그 둘째다.

25노래 — 천황

飛鳥川漲らひつつ行水の間も無くも思ほゆるかも

「아스카 강이 넘실거리며 가는 물처럼 사이도 없이 생각나는구나(飛鳥川漲らひつつ行水の間も無くも思ほゆるかも)」

— 이 저본은 이 노래를 만요가나 원문 대신 일본어 읽기로 실었다. 소리를 적은 것이라 뜻으로 옮기지 않는다.

협주 1

其三。

그 셋째다.

26때때로 부르며 울다

天皇時時唱而悲哭。

천황이 때때로 부르며 슬피 울었다.

27에미시에게 벼슬을 주다

秋七月辛巳朔甲申,蝦夷二百餘詣闕朝獻。饗賜贍給,有加於常。仍授柵養蝦夷二人位一階,渟代郡大領沙尼具那小乙下,少領宇婆左建武,勇建者二人位一階。別賜沙尼具那等鮹旗二十頭、鼓二面、弓矢二具、鎧二領。授津輕郡大領馬武大乙上,少領青蒜小乙下,勇建者二人位一階。別賜馬武等鮹旗二十頭、鼓二面、弓矢二具、鎧二領。授都岐沙羅柵造位二階,判官位一階。授渟足柵造大伴君稻積小乙下。又詔渟代郡大領沙尼具那,檢覆蝦夷戶口與虜戶口。

가을 칠월 신사 초하루 갑신일에 에미시 이백여 사람이 궁궐에 나아가 조회하고 바쳤다. 대접하고 넉넉히 주기를 늘 하던 것보다 더하였다.

이어 목책에서 기른 에미시 두 사람에게 벼슬 한 계단을 주고, 누시로군 대령 사니구나에게 소을하를, 소령 우바사에게 건무를, 용맹한 이 두 사람에게 벼슬 한 계단을 주었다. 따로 사니구나들에게 문어 기 스무 자루와 북 둘과 활과 화살 두 벌과 갑옷 두 벌을 주었다.

쓰가루군 대령 마무에게 대을상을, 소령 아오히루에게 소을하를, 용맹한 이 두 사람에게 벼슬 한 계단을 주었다. 따로 마무들에게 문어 기 스무 자루와 북 둘과 활과 화살 두 벌과 갑옷 두 벌을 주었다.

쓰키사라의 목책 미야쓰코에게 벼슬 두 계단을, 판관에게 벼슬 한 계단을 주었다. 누타리의 목책 미야쓰코 오토모노키미 이나즈미에게 소을하를 주었다.

또 누시로군 대령 사니구나에게 조를 내려 에미시의 호구와 사로잡힌 이의 호구를 살펴 밝히게 하였다.

협주 2

或所,云授位二階,使檢戶口。

어떤 곳에는 벼슬 두 계단을 주어 호구를 살피게 하였다 한다.

闕名。

이름이 빠졌다.

28지통과 지달이 당에 가다

是月,沙門智通、智達奉敕乘新羅船往大唐國,受無性眾生義於玄奘法師所。

이달에 승려 지통(智通)과 지달이 칙명을 받들어 신라 배를 타고 대당국에 가서, 현장 법사가 있는 곳에서 무성중생(無性衆生)의 뜻을 받았다.

29기이 온탕에 나아가다

冬十月庚戌朔甲子,幸紀溫湯。天皇憶皇孫建王,愴爾悲泣,乃口號曰:

겨울 시월 경술 초하루 갑자일에 기이 온탕에 나아갔다. 천황이 황손 다케루노오키미를 생각하여 슬퍼 울며 이에 입으로 읊었다.

30노래 — 천황

山越えて海渡るとも面白き今城內は忘らゆましじ

「산을 넘고 바다를 건너도 어여쁜 이마키 안은 잊히지 않으리(山越えて海渡るとも面白き今城內は忘らゆましじ)」

— 이 저본은 이 노래를 만요가나 원문 대신 일본어 읽기로 실었다. 소리를 적은 것이라 뜻으로 옮기지 않는다.

협주 1

其一。

그 첫째다.

31노래 — 천황

水門の潮下り海下り後も暗に置きてか行かむ

「어귀의 물이 내리고 바다가 내리듯 뒤에도 어둠 속에 두고 가려는가(水門の潮下り海下り後も暗に置きてか行かむ)」

— 이 저본은 이 노래를 만요가나 원문 대신 일본어 읽기로 실었다. 소리를 적은 것이라 뜻으로 옮기지 않는다.

협주 1

其二。

그 둘째다.

32노래 — 천황

愛しき吾が若子を置きて行かむ

「사랑스러운 내 어린것을 두고 가려는가(愛しき吾が若子を置きて行かむ)」

— 이 저본은 이 노래를 만요가나 원문 대신 일본어 읽기로 실었다. 소리를 적은 것이라 뜻으로 옮기지 않는다.

협주 1

其三。

그 셋째다.

33노래를 전하라

詔秦大藏造萬里,曰:「傳斯歌,勿令忘於世。」

하타노오쿠라노미야쓰코 요로즈에게 조를 내렸다. "이 노래를 전하여 세상에 잊히지 않게 하라."

34아리마 황자가 죽다

十一月庚辰朔壬午,留守官蘇我赤兄臣,語有間皇子曰:「天皇所治政事有三失矣。大起倉庫,積聚民財,一也。長穿渠水,損費公糧,二也。於舟載石,運積為丘,三也。」有間皇子乃知赤兄之善己,而欣然報答之曰:「吾,年始可用兵時矣。」甲申,有間皇子向赤兄家,登樓而謀。夾膝自斷。於是知相之不祥,俱盟而止。皇子歸而宿之。是夜半,赤兄遣物部朴井連鮪,率造宮丁,圍有間皇子於市經家。便遣驛使,奏天皇所。戊子,捉有間皇子與守君大石、坂合部連藥、鹽屋連鯯魚,送紀溫湯。舍人新田部米麻呂從焉。於是,皇太子親問有間皇子曰:「何故謀反?」答曰:「天與赤兄知,吾全不解。」庚寅,遣丹比小澤連國襲,絞有間皇子於藤白坂。是日,斬鹽屋連鯯魚、舍人新田部連米麻呂於藤白坂。鹽屋連鯯魚臨誅,言:「願令右手作國寶器。」流守君大石於上毛野國,坂合部藥於尾張國。或本云:有間皇子與蘇我臣赤兄、鹽屋連小戈、守君大石、坂合部連藥,取短籍卜謀反之事。

십일월 경진 초하루 임오일에 남아 지키던 벼슬아치 소가노아카에노오미가 아리마 황자에게 말하였다.

"천황이 다스리는 정사에 세 가지 잘못이 있습니다. 곳간을 크게 일으켜 백성의 재물을 모으는 것이 하나요, 도랑물을 길게 뚫어 나라의 양식을 잃고 쓰는 것이 둘이요, 배에 돌을 실어 날라 쌓아 언덕을 삼는 것이 셋입니다."

아리마 황자가 이에 아카에가 저를 좋아하는 줄 알고 기뻐하며 답하였다. "내가 나이가 비로소 군사를 쓸 만한 때다."

갑신일에 아리마 황자가 아카에의 집에 가서 다락에 올라 꾀하였다. 걸상의 다리가 저절로 끊어졌다. 이에 조짐이 상서롭지 않음을 알고 함께 맹세하고 그쳤다.

황자가 돌아가 잤다. 이날 밤중에 아카에가 모노노베노에노이노무라지 시비를 보내어 궁 짓는 장정을 거느리고 아리마 황자를 이치후의 집에서 에워쌌다. 곧 역말 사자를 보내어 천황이 있는 곳에 아뢰었다.

무자일에 아리마 황자와 모리노키미 오이시와 사카아히베노무라지 구스리와 시오야노무라지 고노시로를 잡아 기이 온탕으로 보냈다. 도네리 니이타베노메마로가 따랐다.

이에 황태자가 몸소 아리마 황자에게 물었다. "무슨 까닭으로 모반하였는가."

답하였다. "하늘과 아카에가 알 뿐이요 나는 도무지 알지 못한다."

경인일에 다지히노오사와노무라지 구니소를 보내어 아리마 황자를 후지시로 고개에서 목매었다. 이날 시오야노무라지 고노시로와 도네리 니이타베노무라지 메마로를 후지시로 고개에서 베었다.

시오야노무라지 고노시로가 죽임에 임하여 말하였다. "바라건대 오른손으로 나라의 보배 그릇을 만들게 하소서."

모리노키미 오이시를 고즈케국에 귀양 보내고 사카아히베노구스리를 오와리국에 귀양 보냈다.

어떤 판본에는 이르기를, 아리마 황자와 소가노오미 아카에와 시오야노무라지 오가와 모리노키미 오이시와 사카아히베노무라지 구스리가 짧은 산가지를 뽑아 모반할 일을 점쳤다 한다.

35다르게 전하는 이야기

或本云:有間皇子曰:「先燔宮室,以五百人,一日兩夜邀牟婁津,疾以船師斷淡路國,使如牢圄,其事易成。」或人諫曰:「不可也。所計既然而無德矣。方今皇子年始十九,未及成人。可至成人而得其德。」他日,有間皇子與一判事謀反之時,皇子案机之腳,無故自斷。其謨不止,遂被誅戮也。

어떤 판본에는 이렇게 이른다.

아리마 황자가 말하였다. "먼저 궁실을 태우고 오백 사람으로 하루 두 밤에 무로의 나루를 맞아 막고, 빨리 배와 군사로 아와지국을 끊어 옥 같게 하면 그 일이 이루기 쉽다."

어떤 사람이 간하였다. "안 됩니다. 헤아린 바가 이미 그러하나 덕이 없습니다. 바야흐로 이제 황자의 나이 비로소 열아홉이라 아직 어른에 이르지 못하였습니다. 어른에 이르러 그 덕을 얻을 만합니다."

다른 날 아리마 황자가 한 판사와 모반을 꾀할 때 황자가 짚은 상의 다리가 까닭 없이 저절로 끊어졌다. 그 꾀를 그치지 않아 마침내 죽임을 당하였다.

36백제가 망할 조짐

是歲,越國守阿倍引田臣比羅夫討肅慎,獻生羆二、羆皮七十枚。沙門智踰造指南車。出雲國言:「於北海濱魚死而積。厚三尺許,其大如鮐,雀啄、針鱗。鱗長數寸。俗曰:『雀入於海,化而為魚。名曰雀魚。』」或本云:至庚申年七月,百濟遣使奏言:「大唐、新羅并力伐我。既以義慈王、王后、太子為虜而去。」由是國家以兵士甲卒陣西北畔,繕修城柵。斷塞山川之兆也。又西海使小花下阿曇連頰垂自百濟還言:「百濟伐新羅還時,馬自行道於寺金堂,晝夜勿息。唯食草時止。」或本云:至庚申年,為敵所滅之應也。

이해에 고시국의 가미 아베노히케타노오미 히라부가 미시하세를 치고 산 큰곰 둘과 곰 가죽 일흔 장을 바쳤다. 승려 지유(智踰)가 지남거를 만들었다.

이즈모국이 말하였다. "북쪽 바닷가에 고기가 죽어 쌓였습니다. 두께가 석 자쯤이요 그 크기가 복어 같고 참새 부리에 바늘 비늘입니다. 비늘 길이가 몇 치입니다. 세속에 이르기를 '참새가 바다에 들어 변하여 고기가 되었다. 이름을 참새고기라 한다' 합니다."

어떤 판본에는 이렇게 이른다. 경신년 칠월에 이르러 백제가 사자를 보내어 아뢰었다. "대당과 신라가 힘을 아울러 우리를 쳤습니다. 이미 의자왕과 왕후와 태자를 사로잡아 갔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나라에서 군사와 갑옷 입은 병졸을 서북쪽 지경에 벌이고 성과 목책을 고쳐 닦았다. 산과 내를 끊어 막을 조짐이었다.

또 서해 사자 소화하 아즈미노무라지 쓰라타리가 백제에서 돌아와 말하였다. "백제가 신라를 치고 돌아올 때 말이 절로 절의 금당을 밤낮으로 쉬지 않고 돌았습니다. 오직 풀을 먹을 때만 그쳤습니다."

어떤 판본에는 경신년에 이르러 적에게 멸함을 당한 데 응한 것이라 한다.

37온탕에서 돌아오다

春正月己卯朔辛巳,天皇至自紀溫湯。

봄 정월 기묘 초하루 신사일에 천황이 기이 온탕에서 이르렀다.

38요시노와 오미

三月戊寅朔,天皇幸吉野而肆宴焉。庚辰,天皇幸近江之平浦。丁亥,吐火羅人共妻舍衛婦人來。甲午,甘檮丘東之川上,造須彌山,而饗陸奧與越蝦夷。

삼월 무인 초하루에 천황이 요시노에 나아가 잔치를 베풀었다. 경진일에 천황이 오미의 히라 갯가에 나아갔다.

정해일에 도화라 사람이 아내 사위(舍衛) 여인과 함께 왔다.

갑오일에 아마카시노오카 동쪽 냇가에 수미산을 만들고 무쓰와 고시의 에미시를 대접하였다.

협주 2

平,此云毘羅。

히라(平)는 히라라 읽는다.

檮,此云柯之。川上,此云箇播羅。

가시(檮)는 가시라 읽는다. 가와카미(川上)는 가와라라 읽는다.

39에미시국을 치다

是月,遣阿倍臣,率船師一百八十艘,討蝦夷國。阿倍臣,簡集飽田、渟代二郡蝦夷二百四十一人,其虜三十一人,津輕郡蝦夷一百二十人,其虜四人,膽振鉏蝦夷二十人於一所,而大饗賜祿。即以船一隻與五色綵帛,祭彼地神。至肉入籠時,問菟蝦夷膽鹿嶋、菟穗名,二人進曰:「可以後方羊蹄為政所焉。」隨膽鹿嶋等語,遂置郡領而歸。授道奧與越國司位各二階,郡領與主政各一階。或本云:阿倍引田臣比羅夫與肅慎戰而歸,獻虜四十九人。

이달에 아베노오미를 보내어 수군 배 백여든 척을 거느리고 에미시국을 치게 하였다.

아베노오미가 아기타와 누시로 두 고을의 에미시 이백마흔한 사람과 그 사로잡힌 이 서른한 사람, 쓰가루군의 에미시 백스무 사람과 그 사로잡힌 이 넷, 이부리사헤의 에미시 스무 사람을 한곳에 모아 크게 대접하고 녹을 주었다. 곧 배 한 척과 다섯 빛깔 비단으로 그 땅의 신에게 제사하였다.

시시리코에 이르렀을 때 도비우의 에미시 이카시마와 우호나 두 사람에게 물으니 나아가 말하였다. "시리베시를 다스리는 곳으로 삼을 만합니다."

이카시마들의 말에 따라 마침내 고오리노미야쓰코를 두고 돌아왔다.

미치노쿠와 고시의 구니노쓰카사에게 벼슬 각각 두 계단, 고오리노미야쓰코와 주정에게 각각 한 계단을 주었다.

어떤 판본에는 아베노히케타노오미 히라부가 미시하세와 싸우고 돌아와 사로잡은 이 마흔아홉 사람을 바쳤다 한다.

협주 3

闕名。

이름이 빠졌다.

膽振鉏,此云伊浮梨娑陛。

이부리사헤(膽振鉏)는 이부리사헤라 읽는다.

肉入籠,此云之之梨姑。問菟,此云塗毘宇。菟穗名,此云宇保那。後方羊蹄,此云斯梨蔽之。政所,蓋蝦夷郡乎。

시시리코(肉入籠)는 시시리코라 읽는다. 도비우(問菟)는 도비우라 읽는다. 우호나(菟穗名)는 우호나라 읽는다. 시리베시(後方羊蹄)는 시리베시라 읽는다. 다스리는 곳은 아마 에미시의 고을인가.

40당나라에 사자를 보내다

秋七月丙子朔戊寅,遣小錦下坂合部連石布、大仙下津守連吉祥,使於唐國。仍以道奧蝦夷男女二人示唐天子。『伊吉連博德書』曰:同天皇之世,小錦下坂合部石布連、大山下津守吉祥連等二船,奉使吳唐之路。以己未年七月三日,發自難波三津之浦。

가을 칠월 병자 초하루 무인일에 소금하 사카아히베노무라지 이와시키와 대선하 쓰모리노무라지 기치소를 당나라에 사자로 보냈다. 이어 미치노쿠의 에미시 남녀 두 사람을 당나라 천자에게 보였다.

이키노무라지 하카토코의 글에 이르렀다.

같은 천황 때에 소금하 사카아히베노이와시키노무라지와 대산하 쓰모리노기치소노무라지들 두 배가 오나라와 당나라 길에 사자로 갔다. 기미년 칠월 삼일에 나니와의 미쓰 갯가에서 떠났다.

41쓰쿠시에서 떠나다

八月十一日,發自筑紫大津之浦。

팔월 십일일에 쓰쿠시의 오쓰 갯가에서 떠났다.

42표류하다

九月十三日,行到百濟南畔之嶋。嶋名毋分明。以十四日,寅時,二船相從,放出大海。十五日,日入之時,石布連船,橫遭逆風,飄到南海之嶋。嶋名爾加委。仍為嶋人所滅。便東漢長直阿利麻、坂合部連稻積等五人,盜乘嶋人之船,逃到括州。州縣官人送到洛陽之京。十六日,夜半之時,吉祥連船,行到越州會稽縣須岸山。東北風,風太急。二十三日,行到餘姚縣。所乘大船及諸調度之物留著彼處。

구월 십삼일에 백제 남쪽 가의 섬에 이르렀다. 섬 이름은 분명하지 않다.

십사일 인시에 두 배가 서로 따라 큰 바다로 놓아 나갔다.

십오일 해 질 때에 이와시키노무라지의 배가 옆으로 거스르는 바람을 만나 남해의 섬에 떠 이르렀다. 섬 이름은 이카위다. 이어 섬 사람에게 멸함을 당하였다.

곧 야마토노아야노나가노아타이 아리마와 사카아히베노무라지 이나즈미들 다섯 사람이 섬 사람의 배를 훔쳐 타고 괄주(括州)에 도망해 이르렀다. 주와 현의 관인이 낙양의 서울로 보냈다.

십육일 밤중에 기치소노무라지의 배가 월주(越州) 회계현 수안산에 이르렀다. 동북풍이 불어 바람이 몹시 급하였다. 이십삼일에 여요현에 이르렀다. 탄 큰 배와 여러 차림 물건은 그곳에 남겨 두었다.

43당나라 천자가 묻다

潤十月一日,行到越州之底。十月十五日,乘驛入京。二十九日,馳到東京。天子在東京。三十日,天子相見問訊之:「日本國天皇,平安以不?」使人謹答:「天地合德,自得平安。」天子問曰:「執事卿等,好在以不?」使人謹答:「天皇憐重,亦得好在。」天子問曰:「國內平不?」使人謹答:「治稱天地,萬民無事。」天子問曰:「此等蝦夷國有何方?」使人謹答:「國有東北。」天子問曰:「蝦夷幾種?」使人謹答:「類有三種。遠者名都加留,次者麤蝦夷,近者名熟蝦夷。今此熟蝦夷。每歲,入貢本國之朝。」天子問曰:「其國有五榖?」使人謹答:「無之。食肉存活。」天子問曰:「國有屋舍?」使人謹答:「無之。深山之中,止住樹本。」天子重曰:「朕見蝦夷身面之異,極理喜怪。使人遠來辛苦。退在館裏,後更相見。」

윤시월 초하루에 월주의 밑에 이르렀다. 시월 십오일에 역말을 타고 서울에 들었다. 이십구일에 동경에 달려 이르렀다. 천자가 동경에 있었다.

삼십일에 천자가 만나 물었다. "일본국 천황이 평안한가."

사자가 삼가 답하였다. "하늘과 땅이 덕을 합하여 절로 평안함을 얻었습니다."

천자가 물었다. "일 맡은 경들이 잘 있는가."

사자가 삼가 답하였다. "천황이 가엾이 여기고 무겁게 여겨 또한 잘 있음을 얻었습니다."

천자가 물었다. "나라 안이 평안한가."

사자가 삼가 답하였다. "다스림이 하늘과 땅에 맞아 만민에게 일이 없습니다."

천자가 물었다. "이 에미시 나라는 어느 쪽에 있는가."

사자가 삼가 답하였다. "나라가 동북에 있습니다."

천자가 물었다. "에미시가 몇 갈래인가."

사자가 삼가 답하였다. "무리가 세 갈래 있습니다. 먼 것은 이름이 쓰가루요, 다음은 아라에미시요, 가까운 것은 이름이 니키에미시입니다. 이제 이는 니키에미시입니다. 해마다 본국의 조정에 들어와 바칩니다."

천자가 물었다. "그 나라에 오곡이 있는가."

사자가 삼가 답하였다. "없습니다. 고기를 먹고 삽니다."

천자가 물었다. "나라에 집이 있는가."

사자가 삼가 답하였다. "없습니다. 깊은 산 가운데 나무 밑동에 머물러 삽니다."

천자가 거듭 말하였다. "짐이 에미시의 몸과 얼굴이 다름을 보니 이치를 다하여 기이함을 기뻐한다. 사자가 멀리 와서 수고롭다. 물러나 객관에 있으라. 뒤에 다시 서로 보겠다."

44왜의 손님이 가장 나았다

十一月一日,朝有冬至之會。會日亦覲。所朝諸蕃之中,倭客最勝。後由出火之亂,棄而不復檢。十二月三日,韓智興傔人西漢大麻呂,枉讒我客。客等獲罪唐朝,已決流罪。前流智興於三千里之外。客中有伊吉連博德奏。因即免罪。事了之後敕旨:「國家,來年必有海東之政。汝等倭客,不得東歸。」遂逗西京,幽置別處。閉戶防禁,不許東西。困苦經年。『難波吉士男人書』曰:向大唐大使,觸嶋而覆。副使親覲天子,奉示蝦夷。於是蝦夷以白鹿皮一、弓三、箭八十獻于天子。庚寅,詔群臣:「於京內諸寺,勸講盂蘭盆經,使報七世父母。」

십일월 초하루 아침에 동지의 모임이 있었다. 모임 날에 또한 뵈었다. 조회한 여러 나라 가운데 왜의 손님이 가장 나았다. 뒤에 불이 난 어지러움으로 말미암아 버려두고 다시 살피지 않았다.

십이월 삼일에 한지흥(韓智興)의 딸린 사람 니시고리노아야노오마로가 우리 손님을 굽혀 참소하였다. 손님들이 당나라 조정에서 죄를 얻어 이미 귀양 보내는 죄로 결정되었다. 앞서 지흥을 삼천 리 밖으로 귀양 보냈다. 손님 가운데 이키노무라지 하카토코가 있어 아뢰었다. 이로 인하여 곧 죄를 면하였다.

일이 끝난 뒤에 칙지가 있었다. "나라가 오는 해에 반드시 바다 동쪽의 정벌이 있다. 너희 왜의 손님은 동쪽으로 돌아갈 수 없다." 마침내 서경에 머물러 딴 곳에 가두었다. 문을 닫아 막고 동서로 다니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괴로움에 시달리며 해를 지났다.

나니와노키시 오히토의 글에 이르렀다. 대당으로 향한 대사가 섬에 부딪혀 엎어졌다. 부사가 몸소 천자를 뵙고 에미시를 받들어 보였다. 이에 에미시가 흰 사슴 가죽 하나와 활 셋과 화살 여든을 천자에게 바쳤다.

경인일에 여러 신하에게 조를 내렸다. "서울 안 여러 절에서 우란분경을 강하기를 권하여 일곱 대 부모에게 갚게 하라."

45곰 가죽 값

是歲,命出雲國造,修嚴神之宮。狐嚙斷於友郡役丁所執葛末而去。又狗嚙置死人手臂於言屋社。又高麗使人持羆皮一枚,稱其價曰:「綿六十斤。」市司咲而避去。高麗畫師子麻呂,設同姓賓於私家日,借官羆皮七十枚,而為賓席。客等羞怪而退。

이해에 이즈모의 구니노미야쓰코에게 명하여 신의 궁을 엄히 닦게 하였다.

여우가 도모군의 부역 장정이 잡은 칡 끝을 물어 끊고 갔다. 또 개가 죽은 사람의 팔을 이후야 신사에 물어다 두었다.

또 고려 사자가 곰 가죽 한 장을 가지고 그 값을 일컬어 말하였다. "솜 예순 근입니다." 저자 맡은 이가 웃고 피하여 갔다.

고려의 화공 자마려(子麻呂)가 같은 성의 손님을 제 집에서 대접하던 날, 관가의 곰 가죽 일흔 장을 빌려 손님 자리로 삼았다. 손님들이 부끄럽고 괴이히 여겨 물러갔다.

협주 2

闕名。

이름이 빠졌다.

言屋,此云伊浮瑘。天子崩兆。

이후야(言屋)는 이후야라 읽는다. 천자가 죽을 조짐이다.

46고려 사자가 오다

春正月壬寅朔,高麗使人乙相賀取文等一百餘,泊于筑紫。

봄 정월 임인 초하루에 고려 사자 을상 하취문(賀取文)들 백여 사람이 쓰쿠시에 닿았다.

47미시하세를 치다

三月,遣阿倍臣,率船二百艘,伐肅慎國。阿倍臣以陸奧蝦夷,令乘己船,到大河側。於是渡嶋蝦夷一千餘,屯聚海畔,向河而營。營中二人進而急叫曰:「肅慎船師多來將殺我等之故,願欲濟河而仕官矣。」阿倍臣遣船喚至兩箇蝦夷,問賊隱所與其船數。兩箇蝦夷便指隱所曰:「船二十餘艘。」即遣使喚。而不肯來。阿倍臣乃積綵帛、兵、鐵等於海畔,而令貪嗜。肅慎乃陳船師,繫羽於木,舉而為旗。齊棹近來,停於淺處。從一船裏,出二老翁,迴行,熟視所積綵帛等物。便換著單衫,各提布一端,乘船還去。俄而老翁更來,脫置換衫,并置提布,乘船而退。阿倍臣遣數船使喚,不肯來,復於弊賂辨嶋。食頃乞和。遂不肯聽。據己柵戰。于時,能登臣馬身龍為敵被殺。猶戰未倦之間,賊破殺己妻子。

삼월에 아베노오미를 보내어 배 이백 척을 거느리고 미시하세국을 치게 하였다.

아베노오미가 무쓰의 에미시를 제 배에 태워 큰 강가에 이르렀다.

이에 와타리시마의 에미시 천여 사람이 바닷가에 모여 강을 향하여 진 쳤다. 진 안에서 두 사람이 나아와 급히 외쳤다. "미시하세의 배와 군사가 많이 와서 우리를 죽이려는 까닭에, 바라건대 강을 건너 관가를 섬기고자 합니다."

아베노오미가 배를 보내어 두 에미시를 불러 이르게 하고, 도적이 숨은 곳과 그 배의 수를 물었다. 두 에미시가 곧 숨은 곳을 가리키며 말하였다. "배 스무 남짓 척입니다."

곧 사자를 보내어 불렀으나 즐겨 오지 않았다.

아베노오미가 이에 비단과 무기와 쇠들을 바닷가에 쌓아 탐내게 하였다.

미시하세가 이에 배와 군사를 벌이고 깃을 나무에 매어 들어 기로 삼았다. 노를 가지런히 하여 가까이 와서 얕은 곳에 멈추었다.

한 배 안에서 늙은이 둘이 나와 돌아다니며 쌓아 놓은 비단들을 익히 보았다. 곧 홑적삼으로 갈아입고 각각 베 한 끝을 들고 배를 타고 돌아갔다.

이윽고 늙은이가 다시 와서 갈아입은 적삼을 벗어 두고 아울러 들었던 베를 두고 배를 타고 물러갔다.

아베노오미가 배 몇 척을 보내어 부르게 하였으나 즐겨 오지 않고 다시 헤로베섬으로 갔다. 밥 먹을 참에 화친을 빌었다. 마침내 즐겨 듣지 않고 제 목책에 웅거하여 싸웠다.

이때 노토노오미 마무타쓰가 적에게 죽임을 당하였다. 오히려 싸움이 지치지 않은 사이에 도적이 제 처자를 부수어 죽였다.

협주 2

闕名。

이름이 빠졌다.

弊賂辨,渡嶋之別也。

헤로베는 와타리시마의 딴 갈래다.

48물시계를 만들다

夏五月辛丑朔戊申,高麗使人乙相賀取文等,到難波館。是月,有司奉敕,造一百高座、一百納袈裟,設仁王般若之會。又皇太子初造漏剋,使民知時。又阿倍引田臣,獻夷五十餘。又於石上池邊作須彌山。高如廟塔,以饗肅慎四十七人。又舉國百姓無故持兵,往還於道。

여름 오월 신축 초하루 무신일에 고려 사자 을상 하취문들이 나니와 객관에 이르렀다.

이달에 맡은 관청이 칙명을 받들어 높은 자리 백을 만들고 납가사 백을 지어 인왕반야회를 베풀었다.

또 황태자가 처음으로 물시계를 만들어 백성에게 때를 알게 하였다.

또 아베노히케타노오미가 오랑캐 쉰 남짓을 바쳤다.

또 이소노카미 못가에 수미산을 만들었다. 높이가 사당 탑 같았다. 이로써 미시하세 마흔일곱 사람을 대접하였다.

또 온 나라 백성이 까닭 없이 무기를 가지고 길에 오갔다.

협주 2

闕名。

이름이 빠졌다.

國老言:「百濟國失所之相乎。」

나라의 늙은이가 말하였다. "백제국이 있을 곳을 잃을 조짐인가."

49백제가 망하다

秋七月庚子朔乙卯,高麗使人乙相賀取文等罷歸。又覩貨羅人乾豆波斯達阿欲歸本土,求請送使曰:「願後朝於大國。所以留妻為表。」乃與數十人入于西海之路。高麗沙門道顯『日本世記』曰:七月,云云。春秋智借大將軍蘇定方之手,使擊百濟,亡之。或曰:「百濟自亡。由君大夫人妖女之無道,擅奪國柄,誅殺賢良故,召斯禍矣。可不慎歟,可不慎歟。」其注云:「新羅春秋智,不得願於內臣蓋金。故亦使於唐,捨俗衣冠,請媚於天子,投禍於鄰國,而構斯意行者也。」『伊吉連博德書』云:庚申年八月,百濟已平之後,九月十二日,放客本國。十九日,發自西京。

가을 칠월 경자 초하루 을묘일에 고려 사자 을상 하취문들이 돌아갔다.

또 도화라 사람 건두파사달아(乾豆波斯達阿)가 본토로 돌아가고자 하여 보내는 사자를 구하여 청하였다. "바라건대 뒤에 큰 나라에 조회하겠습니다. 그 까닭에 아내를 남겨 표로 삼습니다." 이에 수십 사람과 서해의 길에 들었다.

고려 승려 도현(道顯)의 일본세기(日本世記)에 이르렀다.

칠월에 이러이러하다. 춘추지(春秋智)가 대장군 소정방(蘇定方)의 손을 빌려 백제를 쳐 멸하였다.

어떤 이는 말하였다. "백제가 스스로 망하였다. 임금의 대부인 요사한 여인이 도가 없어 나라의 권세를 마음대로 빼앗고 어질고 좋은 이를 죽인 까닭에 이 화를 불렀다. 삼가지 않을 수 있겠는가, 삼가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 주에 이르렀다. "신라의 춘추지가 내신 개금(蓋金)에게 바라는 바를 얻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또한 당에 사자로 가서 세속의 옷과 갓을 버리고 천자에게 아첨하기를 청하여, 이웃 나라에 화를 던지고 이 뜻을 얽어 행한 이다."

이키노무라지 하카토코의 글에 이르렀다. 경신년 팔월에 백제가 이미 평정된 뒤 구월 십이일에 손님을 본국으로 놓아주었다. 십구일에 서경에서 떠났다.

50아리마들을 만나다

十月十六日,還到東京,始得相見阿利麻等五人。

시월 십육일에 동경에 돌아 이르러 비로소 아리마들 다섯 사람을 서로 볼 수 있었다.

51백제 왕과 태자를 바치다

十一月一日,為將軍蘇定方等所捉百濟王以下太子隆等諸王子十三人,大佐平沙宅千福、國辨成以下三十七人,并五十許人。奉進朝堂。急引趍向天子。天子恩敕見前放著。十九日,賜勞。二十四日,發自東京。

십일월 초하루에 장군 소정방들에게 잡힌 백제 왕 이하 태자 융(隆)들 여러 왕자 열세 사람과, 대좌평 사택천복(沙宅千福)과 국변성(國辨成) 이하 서른일곱 사람 아울러 쉰 남짓 사람을 조당에 받들어 나아갔다. 급히 이끌어 천자에게로 향하였다. 천자가 은혜로운 칙명으로 앞에서 놓아 두게 하였다.

십구일에 위로하여 주었다. 이십사일에 동경에서 떠났다.

52복신이 일어나다

九月己亥朔癸卯,百濟遣達率沙彌覺從等來奏曰:「今年七月,新羅恃力作勢,不親於鄰。引構唐人,傾覆百濟!君臣總俘,略無噍類!於是,西部恩率鬼室福信赫然發憤,據任射岐山。達率餘自進據中部久麻怒利城。各營一所,誘聚散卒。兵盡前役,故以棓戰。新羅軍破,百濟奪其兵。繼而百濟兵翻銳,唐不敢入。福信等遂鳩集同國,共保王城。國人尊曰:『佐平福信!佐平自進!』唯福信起神武之權,興既亡之國。」

구월 기해 초하루 계묘일에 백제가 달솔 사미각종(沙彌覺從)들을 보내어 와서 아뢰었다.

"올해 칠월에 신라가 힘을 믿고 세력을 지어 이웃과 친하지 않았습니다. 당나라 사람을 끌어들여 백제를 뒤엎었습니다. 임금과 신하가 다 사로잡혀 성한 이가 거의 없습니다.

이에 서부 은솔 귀실복신(鬼室福信)이 발끈 성내어 임사기산(任射岐山)에 웅거하였습니다. 달솔 여자진(餘自進)은 중부의 구마노리성(久麻怒利城)에 웅거하였습니다. 각각 한 곳에 진을 치고 흩어진 군졸을 꾀어 모았습니다.

무기가 앞선 싸움에서 다한 까닭에 몽둥이로 싸웠습니다. 신라 군사가 깨어지매 백제가 그 무기를 빼앗았습니다. 이어 백제 군사가 도리어 날카로워져 당나라가 감히 들어오지 못하였습니다.

복신들이 마침내 같은 나라 사람을 모아 함께 왕성을 지켰습니다. 나라 사람이 높여 말하였습니다. '좌평 복신이여, 좌평 자진이여.' 오직 복신이 신령하고 굳센 권세를 일으켜 이미 망한 나라를 일으켰습니다."

협주 5

闕名。

이름이 빠졌다.

或本云,逃來告難。

어떤 판본에는 도망해 와서 어려움을 알렸다 한다.

或本云,今年七月十日,大唐蘇定方,率船師軍尾資之津,新羅王春秋智率兵馬軍于怒受利之山。夾擊百濟,相戰三日,陷我王城。同月十三日,始破王城。怒受利山,百濟之東堺也。

어떤 판본에는 이렇게 이른다. 올해 칠월 십일에 대당의 소정방이 배와 군사를 거느려 미자(尾資)의 나루에 진 치고, 신라 왕 춘추지가 군마를 거느려 노수리(怒受利)의 산에 진 쳤다. 백제를 끼워 쳐서 사흘을 서로 싸워 우리 왕성을 함락하였다. 같은 달 십삼일에 비로소 왕성을 깨뜨렸다. 노수리산은 백제의 동쪽 지경이다.

或本云,北任敘利山。

어떤 판본에는 북임서리산이라 한다.

或本云,都都岐留山。

어떤 판본에는 도도기루산이라 한다.

53왕자 풍장을 청하다

冬十月,百濟佐平鬼室福信,遣佐平貴智等,來獻唐俘一百餘人。今美濃國不破、片縣二郡唐人等也。又乞師請救。并乞王子餘豐璋曰:「唐人率我蝥賊,來蕩搖我疆場,覆我社稷,俘我君臣。而百濟國遙賴天皇護念,更鳩集以成邦。方今謹願,迎百濟國遣侍天朝王子豐璋,將為國主。」云云。詔曰:「乞師請救,聞之古昔。扶危繼絕,著自恒典。百濟國窮來歸我。『以本邦喪亂,靡依靡告,枕戈嘗膽。必存拯救。』遠來表啟,志有難奪。可分命將軍,百道俱前。雲會雷動,聚集沙㖨,翳其鯨鯢,紓彼倒懸。宜有司具為與之,以禮發遣。」云云。

겨울 시월에 백제 좌평 귀실복신이 좌평 귀지(貴智)들을 보내어 와서 당나라 포로 백여 사람을 바쳤다. 이제 미노국 후와와 가타아가타 두 고을의 당나라 사람들이다.

또 군사를 빌고 구원을 청하였다. 아울러 왕자 여풍장(餘豐璋)을 빌며 말하였다.

"당나라 사람이 우리 도적을 거느리고 와서 우리 지경을 흔들고 우리 사직을 뒤엎고 우리 임금과 신하를 사로잡았습니다. 그런데 백제국이 멀리 천황의 지켜 주심에 힘입어 다시 모여 나라를 이루었습니다. 바야흐로 이제 삼가 바라건대, 백제국이 천조에 보내어 모시게 한 왕자 풍장을 맞아 나라의 주인으로 삼고자 합니다." 이러이러하다.

조를 내렸다.

"군사를 빌고 구원을 청하는 것은 옛적에도 들었다. 위태로움을 붙들고 끊어진 것을 잇는 것은 늘 있는 법에 드러나 있다. 백제국이 궁하여 우리에게 돌아왔다. '본디 나라가 상하고 어지러워 의지할 데 없고 알릴 데 없어, 창을 베고 쓸개를 맛보며 반드시 건져 구하기를 바란다' 하였다. 멀리 와서 표를 올리니 뜻을 빼앗기 어렵다.

마땅히 장군들에게 나누어 명하여 온갖 길로 함께 나아가게 하라. 구름처럼 모이고 우레처럼 움직여 사탁(沙㖨)에 모여, 그 고래를 죽이고 저 거꾸로 매달린 이를 풀어 주라. 마땅히 맡은 관청이 갖추어 주고 예로 보내라." 이러이러하다.

협주 3

或本云,佐平貴智、達率正珍也。

어떤 판본에는 좌평 귀지와 달솔 정진(正珍)이라 한다.

百濟王義慈,其妻恩古,其子隆等,其臣佐平千福、國辨成、孫登等凡五十餘。秋七月十三日,為蘇將軍所捉,而送去於唐國。蓋是無故持兵之徵乎。

백제 왕 의자와 그 아내 은고(恩古)와 그 아들 융들과 그 신하 좌평 천복과 국변성과 손등(孫登)들 무릇 쉰 남짓이다. 가을 칠월 십삼일에 소 장군에게 잡혀 당나라로 보내졌다. 아마 이는 까닭 없이 무기를 가지던 조짐인가.

送王子豐璋及妻子與其叔父忠勝等。其正發遣之時,見于七年。或本云:「天皇立豐璋為王,立塞上為輔,而以禮發遣焉。」

왕자 풍장과 처자와 그 숙부 충승들을 보냈다. 그 바로 보낸 때는 칠년에 보인다. 어떤 판본에는 「천황이 풍장을 세워 왕으로 삼고 새상을 세워 도움으로 삼아 예로 보냈다」 한다.

54나니와노미야에 나아가다

十二月丁卯朔庚寅,天皇幸于難波宮。天皇方隨福信所乞之意,思幸筑紫,將遣救軍,而初幸斯,備諸軍器。

십이월 정묘 초하루 경인일에 천황이 나니와노미야에 나아갔다. 천황이 바야흐로 복신이 빈 뜻을 좇아 쓰쿠시에 나아가 구원군을 보내려 하여, 처음 여기에 나아가 여러 무기를 갖추었다.

55배가 뒤집히다

是歲,欲為百濟,將伐新羅。乃敕駿河國造船。已訖,挽至續麻郊之時,其船夜中無故艫舳相反。眾知終敗。科野國言:「蠅群向西,飛踰巨坂。大十圍許,高至蒼天。」或知救軍敗績之怪。有童謠曰:

이해에 백제를 위하여 신라를 치려 하였다. 이에 스루가국에 칙명하여 배를 짓게 하였다. 이미 마치고 오미노사토로 끌어당길 때에, 그 배가 밤중에 까닭 없이 이물과 고물이 서로 뒤집혔다. 여럿이 마침내 지리라는 것을 알았다.

시나노국이 말하였다. "파리 떼가 서쪽으로 향하여 큰 고개를 넘어 날아갔습니다. 크기가 열 아름쯤이요 높이가 푸른 하늘에 닿았습니다."

어떤 이는 구원군이 패할 괴이함인 줄 알았다.

동요가 있었다.

56노래 — 동요

摩比邏矩都能俱例豆例於能幣陀乎邏賦倶能理歌理鵝美和陀騰能理歌美烏能陛陀烏邏賦倶能理歌理鵝甲子騰和與騰美烏能陛陀烏邏賦俱能理歌理鵝

「마히라쿠 쓰노쿠레 즈레 오노헤다오 라후쿠노 리카리가 미와다 도노리카미 오노헤다오 라후쿠노 리카리가 가후시토 와요토 미오노헤다오 라후쿠노 리카리가(摩比邏矩都能俱例豆例於能幣陀乎邏賦倶能理歌理鵝美和陀騰能理歌美烏能陛陀烏邏賦倶能理歌理鵝甲子騰和與騰美烏能陛陀烏邏賦俱能理歌理鵝)」

— 소리를 적은 것이라 뜻으로 옮기지 않는다. 예로부터 뜻을 풀지 못한 노래로 알려져 있다.

57서쪽으로 가다

春正月丁酉朔壬寅,御船西征,始就于海路。甲辰,御船到于大伯海。時大田姬皇女產女焉。仍名是女曰大伯皇女。庚戌,御船泊于伊豫熟田津石湯行宮。

봄 정월 정유 초하루 임인일에 임금의 배가 서쪽을 치러 비로소 바닷길에 올랐다.

갑진일에 임금의 배가 오쿠의 바다에 이르렀다. 그때 오타노히메미코가 딸을 낳았다. 이어 이 딸을 이름하여 오쿠 황녀라 하였다.

경술일에 임금의 배가 이요의 니키타쓰의 이와유 행궁에 닿았다.

협주 1

熟田津,此云儞枳柁豆。

니키타쓰(熟田津)는 니키타쓰라 읽는다.

58나노오쓰에 이르다

三月丙申朔庚申,御船還至于娜大津。居于磐瀨行宮。天皇改此,名曰長津。

삼월 병신 초하루 경신일에 임금의 배가 나노오쓰에 돌아 이르렀다. 이와세 행궁에 머물렀다. 천황이 이 이름을 고쳐 나가쓰라 하였다.

59규해를 청하다

夏四月,百濟福信遣使上表,乞迎其王子糺解。釋道顯『日本世記』曰:百濟福信獻書,祈其君糺解於東朝。或本云:四月,天皇遷居于朝倉宮。

여름 사월에 백제 복신이 사자를 보내어 표를 올려, 그 왕자 규해(糺解)를 맞기를 빌었다.

승려 도현의 일본세기에 이르기를, 백제 복신이 글을 바쳐 그 임금 규해를 동쪽 조정에 빌었다 한다.

어떤 판본에는 사월에 천황이 아사쿠라노미야로 옮겨 살았다 한다.

60아사쿠라노미야

五月乙未朔癸卯,天皇遷居于朝倉橘廣庭宮。是時,斮除朝倉社木,而作此宮之故,神忿壞殿。亦見宮中鬼火。由是大舍人及諸近侍病死者眾。丁巳,耽羅始遣王子阿波伎等貢獻。『伊吉連博得書』云:辛酉年,正月二十五日,還到越州。

오월 을미 초하루 계묘일에 천황이 아사쿠라의 다치바나노히로니와노미야로 옮겨 살았다.

이때 아사쿠라 신사의 나무를 베어 없애고 이 궁을 지은 까닭에 신이 성내어 전각을 무너뜨렸다. 또 궁 안에 도깨비불이 보였다. 이로 말미암아 오토네리와 여러 가까이 모시는 이 가운데 병들어 죽은 이가 많았다.

정사일에 탐라(耽羅)가 처음으로 왕자 아파기(阿波伎)들을 보내어 바쳤다.

이키노무라지 하카토코의 글에 이르렀다. 신유년 정월 이십오일에 월주에 돌아 이르렀다.

61탐라 사람을 만나다

四月一日,從越州上路,東歸。七日,行到檉岸山明。以八日雞鳴之時,順西南風,放船大海。海中迷途,漂蕩辛苦。九日八夜,僅到耽羅之嶋。便即招慰嶋人王子阿波伎等九人,同載客船,擬獻帝朝。

사월 초하루에 월주에서 길에 올라 동쪽으로 돌아갔다. 칠일에 정안산명에 이르렀다. 팔일 닭 우는 때에 서남풍을 따라 배를 큰 바다에 놓았다. 바다 가운데서 길을 잃어 떠돌며 괴로웠다. 아흐레 여덟 밤에 겨우 탐라의 섬에 이르렀다. 곧 섬 사람 왕자 아파기들 아홉 사람을 불러 위로하고 함께 손님 배에 태워 제국 조정에 바치려 하였다.

62탐라가 처음 조회하다

五月二十三日,奉進朝倉之朝。耽羅入朝,始於此時。又為智興傔人東漢草直足嶋所讒,使人等不蒙寵命。使人等怨,徹于上天之神,震死足嶋。時人稱曰:「大倭天報之近。」

오월 이십삼일에 아사쿠라의 조정에 받들어 나아갔다. 탐라가 조회에 든 것이 이때에 비롯되었다.

또 지흥의 딸린 사람 야마토노아야노카야노아타이 다루시마에게 참소를 입어 사자들이 사랑하는 명을 입지 못하였다. 사자들이 원망하여 위 하늘의 신에게 사무치매 다루시마가 벼락에 맞아 죽었다. 그때 사람들이 일컬어 말하였다. "큰 야마토의 하늘 갚음이 가깝다."

63이세노오키미가 죽다

六月,伊勢王薨。

유월에 이세노오키미가 죽었다.

64천황이 죽다

秋七月甲午朔丁巳,天皇崩于朝倉宮。

가을 칠월 갑오 초하루 정사일에 천황이 아사쿠라노미야에서 죽었다.

65상여가 이와세노미야에 이르다

八月甲子朔,皇太子奉徙天皇喪,還至磐瀨宮。

팔월 갑자 초하루에 황태자가 천황의 상여를 받들어 옮겨 이와세노미야에 돌아 이르렀다.

66도깨비가 내려다보다

是夕,於朝倉山上有鬼,著大笠,臨視喪儀。眾皆嗟怪。

이 저녁에 아사쿠라산 위에 도깨비가 있어 큰 삿갓을 쓰고 상례를 내려다보았다. 여럿이 다 탄식하고 괴이히 여겼다.

67황태자가 노래하다

冬十月癸亥朔己巳,天皇之喪歸就于海。於是皇太子泊於一所,哀慕天皇,乃口號曰:

겨울 시월 계해 초하루 기사일에 천황의 상여가 바다로 돌아갔다. 이에 황태자가 한곳에 머물러 천황을 슬퍼 그리워하며 이에 입으로 읊었다.

68노래 — 황태자

君が目の戀しきからに泊てて居て斯くや戀ひむも君が目を欲り

「그대의 눈이 그리운 까닭에 여기 머물러 이렇게 그리워하는가, 그대의 눈을 보고자(君が目の戀しきからに泊てて居て斯くや戀ひむも君が目を欲り)」

— 이 저본은 이 노래를 만요가나 원문 대신 일본어 읽기로 실었다. 소리를 적은 것이라 뜻으로 옮기지 않는다.

69나니와에 닿다

乙酉,天皇之喪,還泊于難波。

을유일에 천황의 상여가 나니와에 돌아 닿았다.

70아스카 가와라에 빈소를 차리다

十一月壬辰朔戊戌,以天皇喪殯于飛鳥川原。自此發哀,至于九日。『日本世記』云:十一月,福信所獲唐人續守言等,至于筑紫。或本云:辛酉年,百濟佐平福信所獻唐俘一百六口,居于近江國墾田。庚申年,既云福信獻唐俘。故今存注,其決焉。

십일월 임진 초하루 무술일에 천황의 상여를 아스카의 가와라에 빈소로 모셨다. 이로부터 슬픔을 내어 아흐레에 이르렀다.

일본세기에 이르기를, 십일월에 복신이 사로잡은 당나라 사람 속수언(續守言)들이 쓰쿠시에 이르렀다 한다.

어떤 판본에는 신유년에 백제 좌평 복신이 바친 당나라 포로 백여섯 사람이 오미국의 개간한 밭에 살았다 한다. 경신년에 이미 복신이 당나라 포로를 바쳤다 하였다. 그러므로 이제 주로 남겨 그것을 결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