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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천황天智天皇

일본서기 日本書紀 · 도네리 친왕(舍人親王) 등 · 720년 (일본 요로 4) · 단락 97 · 한자 5,441자 · 낭독 21.8분

「일본서기」 인대 「천지천황」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정사. 신들의 시대부터 지통천황까지 서른 권이다. 신대 상·하는 같은 신화의 다른 판본을 「어떤 책에는 이렇게 되어 있다」로 나란히 실어, 갈리는 이야기를 감추지 않았다. 백제·신라·고구려·임나 기사가 1,379곳에 나와 한국 사서와 맞대 볼 자리가 가장 많은 책이기도 하다.

1천지천황

天命開別天皇,息長足日廣額天皇太子也。母曰天豐財重日足姬天皇。天豐財重日足姬天皇四年,讓位於天萬豐日天皇。立天皇為皇太子。

아메미코토히라카스와케천황(天命開別天皇)은 오키나가타라시히히로누카천황의 태자다. 어머니는 아메토요타카라이카시히타라시히메천황이라 한다.

아메토요타카라이카시히타라시히메천황 사년에 자리를 아메요로즈토요히천황에게 물려주고 천황을 세워 황태자로 삼았다.

2효덕천황이 죽다

天萬豐日天皇後五年,十月,崩。

아메요로즈토요히천황이 뒤 오년 시월에 죽었다.

3제명천황이 자리에 오르다

明年,皇祖母尊即天皇位。

이듬해에 스메미오야노미코토가 천황의 자리에 올랐다.

4상중에 정사를 잡다

七年,七月丁巳,崩。皇太子素服稱制。是月,蘇將軍與突厥王子契苾加力等,水陸二路至于高麗城下。皇太子遷居于長津宮,稍聽水表之軍政。

칠년 칠월 정사일에 죽었다. 황태자가 흰옷을 입고 정사를 잡았다.

이달에 소 장군과 돌궐 왕자 계필가력(契苾加力)들이 물과 뭍 두 길로 고려성 아래에 이르렀다. 황태자가 나가쓰노미야로 옮겨 살며 차츰 바다 밖의 군사 정사를 들었다.

5백제를 구하러 보내다

八月,遣前將軍大花下阿曇比邏夫連、小花下河邊百枝臣等,後將軍大花下阿倍引田比邏夫臣、大山上物部連熊、大山上守君大石等,救於百濟。仍送兵杖、五榖。

팔월에 앞 장군 대화하 아즈미노히라부노무라지와 소화하 가와베노모모에노오미들과, 뒤 장군 대화하 아베노히케타노히라부노오미와 대산상 모노노베노무라지 구마와 대산상 모리노키미 오이시들을 보내어 백제를 구하게 하였다. 이어 무기와 오곡을 보냈다.

협주 1

或本,續此末云:「別使大山下狹井連檳榔、小山下秦造田來津,守護百濟。」

어떤 판본에는 이 끝에 이어 「따로 대산하 사이노무라지 아지마사와 소산하 하타노미야쓰코 다쿠쓰를 사자로 삼아 백제를 지키게 하였다」 한다.

6풍장을 백제로 보내다

九月,皇太子御長津宮,以織冠授於百濟王子豐璋。復以多臣蔣敷之妹,妻之焉。乃遣大山下狹井連檳榔、小山下秦造田來津,率軍五千餘,衛送於本鄉。於是,豐璋入國之時,福信迎來,稽首奉國朝政,皆悉委焉。

구월에 황태자가 나가쓰노미야에 나아가 직관(織冠)을 백제 왕자 풍장에게 주었다. 다시 오노오미 고모시키의 누이를 아내로 삼게 하였다.

이에 대산하 사이노무라지 아지마사와 소산하 하타노미야쓰코 다쿠쓰를 보내어 군사 오천여를 거느리고 본 고향까지 호위하여 보내게 하였다.

이에 풍장이 나라에 들어갈 때 복신이 맞이하러 와서 머리를 조아리고 나라의 조정 정사를 받들어 다 맡겼다.

7고려가 당군을 막다

十二月,高麗言:「惟十二月,於高麗國寒極浿凍。故唐軍雲車、衝輣,鼓鉦吼然。高麗士卒膽勇雄壯。故更取唐二壘,唯有二塞。亦備夜取之計,唐兵抱膝而哭。銳鈍力竭,而不能拔。」噬臍之恥,非此而何?釋道顯云:「言春秋之志,正起于高麗,而先聲百濟。百濟近侵甚苦急,故爾也。」

십이월에 고려가 말하였다.

"오직 십이월에 고려국에 추위가 극심하여 패수가 얼었습니다. 그러므로 당나라 군사가 구름사다리와 충차로 북과 징을 울리며 소리쳤습니다. 고려 군사가 담과 용기가 씩씩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다시 당나라 보루 둘을 빼앗고 오직 성채 둘만 남았습니다. 또한 밤에 빼앗을 계책을 갖추매 당나라 군사가 무릎을 안고 울었습니다. 날카로움이 무디어지고 힘이 다하여 함락하지 못하였습니다."

배꼽을 물어뜯을 부끄러움이 이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승려 도현이 말하였다. "춘추의 뜻은 바로 고려에서 일어났으나 먼저 백제에 소리를 낸 것이다. 백제가 가까이 침노하여 몹시 괴롭고 급하였던 까닭에 그러하였다."

8망할 조짐

是歲,播磨國司岸田臣麻呂等獻寶劍言:「於狹夜郡人禾田穴內獲焉。」又,日本救高麗將軍等,泊于百濟加巴利濱而然火焉。灰變為孔,有細響,如鳴鏑。或曰:「高麗、百濟終亡之徵乎。」

이해에 하리마의 구니노쓰카사 기시다노오미 마로들이 보검을 바치며 말하였다. "사요군 사람의 곡식밭 구멍 안에서 얻었습니다."

또 일본이 고려를 구하러 간 장군들이 백제의 가바리 갯가에 닿아 불을 피웠다. 재가 변하여 구멍이 되고 가는 소리가 났는데 우는 화살 같았다.

어떤 이는 말하였다. "고려와 백제가 마침내 망할 조짐인가."

9복신에게 물자를 주다

春正月辛卯朔丁巳,賜百濟佐平鬼室福信矢十萬枝、絲五百斤、綿一千斤、布一千端、韋一千張、稻種三千斛。

봄 정월 신묘 초하루 정사일에 백제 좌평 귀실복신에게 화살 십만 자루와 실 오백 근과 솜 천 근과 베 천 끝과 무두질한 가죽 천 장과 볍씨 삼천 섬을 주었다.

10소류성에 웅거하다

三月庚寅朔癸巳,賜百濟王布三百端。是月,唐人、新羅人伐高麗。高麗乞救國家。仍遣軍將,據疏留城。由是,唐人不得略其南堺,新羅不獲輸其西壘。

삼월 경인 초하루 계사일에 백제 왕에게 베 삼백 끝을 주었다.

이달에 당나라 사람과 신라 사람이 고려를 쳤다. 고려가 나라에 구원을 빌었다. 이어 군사 장수를 보내어 소류성(疏留城)에 웅거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당나라 사람이 그 남쪽 지경을 노략하지 못하고 신라가 그 서쪽 보루로 군량을 나르지 못하였다.

11쥐가 말 꼬리에 새끼를 낳다

夏四月,鼠產於馬尾。釋道顯占曰:「北國之人將附南國。蓋高麗破,而屬日本乎。」

여름 사월에 쥐가 말 꼬리에 새끼를 낳았다. 승려 도현이 점쳐 말하였다. "북쪽 나라 사람이 장차 남쪽 나라에 붙을 것이다. 아마 고려가 깨어져 일본에 붙는가."

12풍장이 자리를 잇다

五月,大將軍大錦中阿曇比邏夫連等,率船師一百七十艘,送豐璋等於百濟國,宣敕,以豐璋等使繼其位。又予金策於福信,而撫其背,褒賜爵祿。于時,豐璋等與福信稽首受敕,眾為流涕。

오월에 대장군 대금중 아즈미노히라부노무라지들이 배와 군사 백일흔 척을 거느리고 풍장들을 백제국에 보냈다. 칙명을 펴서 풍장들로 그 자리를 잇게 하였다.

또 금책을 복신에게 주고 그 등을 어루만지며 벼슬과 녹을 기려 주었다. 이때 풍장들과 복신이 머리를 조아려 칙명을 받으매 여럿이 눈물을 흘렸다.

13백제가 조를 바치다

六月己未朔丙戌,百濟遣達率萬智等,進調獻物。

유월 기미 초하루 병술일에 백제가 달솔 만지(萬智)들을 보내어 조를 바치고 물건을 바쳤다.

14피성으로 옮기다

冬十二月丙戌朔,百濟王豐璋,其臣佐平福信等,與狹井連、朴市田來津議曰:「此州柔者,遠隔田畝,土地磽确,非農桑之地,是拒戰之場。此焉久處,民可飢饉。今可遷於避城。避城者,西北帶以古連旦涇之水,東南據深泥巨堰之防。繚以周田,決渠降雨。華實之毛則三韓之上腴焉。衣食之源則二儀之隩區矣。雖曰地卑,豈不遷歟?」於是,朴市田來津獨進而諫曰:「避城與敵所在之間,一夜可行,相近茲甚。若有不虞,其悔難及者矣。夫飢者後也,亡者先也。今敵所以不妄來者,州柔設置山險,盡為防禦,山峻高而谿隘,守易而攻難之故也。若處卑地,何以固居,而不搖動及今日乎。」遂不聽諫,而都避城。

겨울 십이월 병술 초하루에 백제 왕 풍장과 그 신하 좌평 복신들이 사이노무라지와 에치노하타노타쿠쓰와 의논하였다.

"이 주유(州柔)는 밭이랑에서 멀리 떨어지고 땅이 메말라 농사와 누에 치는 땅이 아니요 싸움을 막는 자리다. 여기 오래 있으면 백성이 굶주릴 만하다.

이제 피성(避城)으로 옮길 만하다. 피성은 서북으로 고련단경(古連旦涇)의 물을 띠고 동남으로 깊은 진흙의 큰 둑을 웅거하였다. 두른 것이 밭이라 도랑을 터 비를 내린다. 꽃과 열매의 풍성함이 곧 삼한에서 가장 기름지다. 옷과 밥의 근원이 곧 하늘과 땅의 깊은 곳이다. 비록 땅이 낮다 하나 어찌 옮기지 않겠는가."

이에 에치노하타노타쿠쓰가 홀로 나아가 간하였다.

"피성과 적이 있는 데 사이는 하룻밤에 갈 수 있어 서로 가까움이 몹시 심합니다. 만약 뜻하지 않은 일이 있으면 그 뉘우침이 미치기 어렵습니다.

무릇 굶주림은 뒤의 일이요 망함은 앞의 일입니다. 이제 적이 함부로 오지 않는 까닭은 주유가 산의 험함을 두어 다 막고 지키기 때문이요, 산이 높고 험하며 골이 좁아 지키기 쉽고 치기 어려운 까닭입니다. 만약 낮은 땅에 자리하면 무엇으로 굳게 살며 오늘까지 흔들리지 않겠습니까."

마침내 간함을 듣지 않고 피성에 도읍하였다.

협주 1

闕名。

이름이 빠졌다.

15배와 무기를 갖추다

是歲,為救百濟,修繕兵甲,備具船舶,儲設軍糧。是年也,太歲壬戌。

이해에 백제를 구하기 위하여 무기와 갑옷을 고쳐 다스리고 배를 갖추어 마련하며 군량을 쌓아 마련하였다. 이해는 태세가 임술이다.

16다시 주유로 돌아가다

春二月乙酉朔丙戌,百濟遣達率金受等進調。新羅人燒燔百濟南畔四州,并取安德等要地。於是,避城去賊近,故勢不能居。乃還居於州柔。如田來津之所計。是月,佐平福信上送唐俘續守言等。

봄 이월 을유 초하루 병술일에 백제가 달솔 김수(金受)들을 보내어 조를 바쳤다.

신라 사람이 백제 남쪽 가의 네 고을을 불사르고 아울러 안덕(安德)들 요긴한 땅을 빼앗았다.

이에 피성이 적에게 가까운 까닭에 형세가 살 수 없었다. 이에 주유로 돌아와 살았다. 다쿠쓰가 헤아린 바와 같았다.

이달에 좌평 복신이 당나라 포로 속수언들을 올려 보냈다.

17신라를 치다

三月,遣前將軍上毛野君稚子、間人連大蓋,中將軍巨勢神前臣譯語、三輪君根麻呂,後將軍阿倍引田臣比邏夫、大宅臣鎌柄,率二萬七千人,打新羅。

삼월에 앞 장군 가미쓰케노노키미 와카코와 하시히토노무라지 오후타, 가운데 장군 고세노카무자키노오미 오사와 미와노키미 네마로, 뒤 장군 아베노히케타노오미 히라부와 오야케노오미 가마쓰카를 보내어 이만 칠천 사람을 거느리고 신라를 쳤다.

18규해가 복신의 죄를 말하다

夏五月癸丑朔,犬上君,馳告兵事於高麗而還。見糺解於石城。糺解仍語福信之罪。

여름 오월 계축 초하루에 이누카미노키미가 군사 일을 고려에 달려 알리고 돌아왔다. 규해를 석성(石城)에서 보았다. 규해가 이어 복신의 죄를 말하였다.

협주 1

闕名。

이름이 빠졌다.

19복신이 죽다

六月,前將軍上毛野君稚子等取新羅沙鼻、岐奴江二城。百濟王豐璋,嫌福信有謀反心,以革穿掌而縛。時難自決,不知所為。乃問諸臣曰:「福信之罪,既如此焉。可斬以不?」於是達率德執得曰:「此惡逆人,不合放捨。」福信即唾於執得,曰:「腐狗癡奴!」王勒健兒,斬而醢首。

유월에 앞 장군 가미쓰케노노키미 와카코들이 신라의 사비(沙鼻)와 기노강(岐奴江) 두 성을 빼앗았다.

백제 왕 풍장이 복신에게 모반할 마음이 있다고 꺼려 가죽으로 손바닥을 뚫어 묶었다. 그때 스스로 결단하기 어려워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하였다. 이에 여러 신하에게 물었다. "복신의 죄가 이미 이와 같다. 베어야 하겠는가 아니겠는가."

이에 달솔 덕집득(德執得)이 말하였다. "이 악하고 거스르는 사람은 놓아둘 수 없습니다."

복신이 곧 집득에게 침을 뱉으며 말하였다. "썩은 개, 어리석은 종놈아."

왕이 씩씩한 군사를 시켜 베어 머리를 젓 담갔다.

20백강 싸움

秋八月壬午朔甲午,新羅以百濟王斬己良將,謀直入國先取州柔。於是百濟知賊所計,謂諸將曰:「今聞:『大日本國之救將廬原君臣,率健兒萬餘,正當越海而至。』願諸將軍等應預圖之。我欲自往待饗白村。」戊戌,賊將至於州柔,繞其王城。大唐軍將率戰船一百七十艘,陣烈於白村江。戊申,日本船師初至者與大唐船師合戰。日本不利而退,大唐堅陣而守。己酉,日本諸將與百濟王,不觀氣象,而相謂之曰:「我等爭先,彼應自退。」更率日本亂伍中軍之卒,進打大唐堅陣之軍。大唐便自左右夾船繞戰。須臾之際,官軍敗績。赴水溺死者眾。艫舳不得迴旋。朴市田來津仰天而誓,切齒而嗔,殺數十人,於焉戰死。是時,百濟王豐璋與數人,乘船逃去高麗。

가을 팔월 임오 초하루 갑오일에 신라가 백제 왕이 제 좋은 장수를 벤 까닭에, 곧바로 나라에 들어가 먼저 주유를 빼앗기를 꾀하였다.

이에 백제가 적이 꾀한 바를 알고 여러 장수에게 일렀다. "이제 들으니 '큰 일본국의 구원 장수 이오하라노키미노오미가 씩씩한 군사 만여를 거느리고 바야흐로 바다를 건너 이른다' 한다. 바라건대 여러 장군들은 마땅히 미리 꾀하라. 나는 스스로 가서 백촌(白村)에서 기다려 대접하려 한다."

무술일에 적장이 주유에 이르러 그 왕성을 에워쌌다. 대당의 군장이 싸움배 백일흔 척을 거느리고 백촌강(白村江)에 진을 벌였다.

무신일에 일본의 배와 군사로 처음 이른 이들이 대당의 배와 군사와 맞붙어 싸웠다. 일본이 이롭지 못하여 물러나고 대당이 진을 굳게 하여 지켰다.

기유일에 일본의 여러 장수와 백제 왕이 날씨와 형세를 보지 않고 서로 일렀다. "우리가 다투어 먼저 나아가면 저들이 마땅히 절로 물러갈 것이다."

다시 일본의 대오 어지러운 가운뎃군 군졸을 거느려 나아가 대당의 굳은 진의 군사를 쳤다.

대당이 곧 좌우에서 배를 끼고 둘러 싸웠다. 잠깐 사이에 관군이 무너졌다. 물에 뛰어들어 빠져 죽은 이가 많았다. 이물과 고물을 돌릴 수 없었다.

에치노하타노타쿠쓰가 하늘을 우러러 맹세하고 이를 갈며 성내어 수십 사람을 죽이고 이에 싸우다 죽었다.

이때 백제 왕 풍장이 몇 사람과 함께 배를 타고 고려로 달아났다.

21백제라는 이름이 끊기다

九月辛亥朔丁巳,百濟州柔城,始降於唐。是時,國人相謂之曰:「州柔降矣,事無奈何。百濟之名,絕于今日。丘墓之所,豈能復往。但可往於弖禮城,會日本軍將等,相謀事機所要。」遂教本在枕服岐城之妻子等,令知去國之心。辛酉,發途於牟弖。癸亥,至弖禮。甲戌,日本船師及佐平余自信、達率木素貴子、谷那晉首、憶禮福留并國民等至於弖禮城。明日,發船始向日本。

구월 신해 초하루 정사일에 백제의 주유성이 비로소 당나라에 항복하였다.

이때 나라 사람이 서로 일렀다.

"주유가 항복하였다. 일을 어찌할 수 없다. 백제라는 이름이 오늘로 끊긴다. 무덤이 있는 곳에 어찌 다시 갈 수 있겠는가. 다만 저례성(弖禮城)으로 가서 일본의 군사 장수들을 만나 일의 기틀에 요긴한 바를 서로 꾀할 뿐이다."

마침내 본디 침복기성(枕服岐城)에 있던 처자들을 가르쳐 나라를 떠날 마음을 알게 하였다.

신유일에 모저(牟弖)에서 길을 떠났다. 계해일에 저례에 이르렀다. 갑술일에 일본의 배와 군사와 좌평 여자신(余自信)과 달솔 목소귀자(木素貴子)와 곡나진수(谷那晉首)와 억례복류(憶禮福留)와 아울러 나라 백성들이 저례성에 이르렀다.

이튿날 배를 띄워 비로소 일본으로 향하였다.

22관위 스물여섯 계단

春二月已卯朔丁亥,天皇命大皇弟,宜增換冠位階名及氏上、民部、家部等事。其冠有二十六階。大織、小織、大縫、小縫、大紫、小紫、大錦上、大錦中、大錦下、小錦上、小錦中、小錦下、大山上、大山中、大山下、小山上、小山中、小山下、大乙上、大乙中、大乙下、小乙上、小乙中、小乙下、大建、小建,是為二十六階焉。改前花曰錦,從錦至乙,加十階。又加換前初位一階,為大建、小建二階。以此為異,餘並依前。其大氏之氏上賜大刀,小氏之氏上賜小刀,其伴造等之氏上賜干楯、弓矢。亦定其民部、家部。

봄 이월 기묘 초하루 정해일에 천황이 천황의 아우(大皇弟)에게 명하여, 관위 계단의 이름과 우지노카미와 민부와 가부들 일을 늘리고 바꾸게 하였다.

그 관에 스물여섯 계단이 있다. 대직·소직·대봉(大縫)·소봉·대자·소자·대금상·대금중·대금하·소금상·소금중·소금하·대산상·대산중·대산하·소산상·소산중·소산하·대을상·대을중·대을하·소을상·소을중·소을하·대건(大建)·소건이니 이것이 스물여섯 계단이다.

앞서의 화(花)를 고쳐 금(錦)이라 하고, 금에서 을까지 열 계단을 더하였다. 또 앞서의 초위 한 계단을 더하고 바꾸어 대건과 소건 두 계단으로 삼았다. 이것을 다르게 하고 나머지는 아울러 앞과 같이 하였다.

그 큰 씨의 우지노카미에게 큰 칼을 주고, 작은 씨의 우지노카미에게 작은 칼을 주고, 그 도모노미야쓰코들의 우지노카미에게 방패와 활과 화살을 주었다. 또한 그 민부와 가부를 정하였다.

23선광왕이 나니와에 살다

三月,以百濟王善光王等居于難波。有星殞于京北。是春,地震。

삼월에 백제 왕 선광왕(善光王)들을 나니와에 살게 하였다. 별이 서울 북쪽에 떨어졌다. 이 봄에 땅이 흔들렸다.

24유인원이 사자를 보내다

夏五月戊申朔甲子,百濟鎮將劉仁願,遣朝散大夫郭務悰等,進表函與獻物。是月,大紫蘇我連大臣,薨。

여름 오월 무신 초하루 갑자일에 백제 진장 유인원(劉仁願)이 조산대부 곽무종(郭務悰)들을 보내어 표함과 바치는 물건을 올렸다.

이달에 대자 소가노무라지노오오미가 죽었다.

협주 1

或本,大臣薨注五月。

어떤 판본에는 대신이 죽은 것을 오월에 주로 달았다.

25시마노스메미오야가 죽다

六月,嶋皇祖母命薨。

유월에 시마노스메미오야노미코토가 죽었다.

26개금이 죽다

冬十月乙亥朔,宣發遣郭務悰等敕。是日,中臣內臣遣沙門智祥,賜物於郭務悰。戊寅,饗賜郭務悰等。是月,高麗大臣蓋金,終於其國。遺言於兒等曰:「汝等兄弟,和如魚水,勿爭爵位。若不如是,必為鄰咲。」

겨울 시월 을해 초하루에 곽무종들을 보내는 칙명을 폈다. 이날 나카토미노우치노오미가 승려 지상(智祥)을 보내어 곽무종에게 물건을 주었다. 무인일에 곽무종들을 대접하였다.

이달에 고려 대신 개금(蓋金)이 그 나라에서 죽었다. 아들들에게 유언하였다. "너희 형제는 물과 고기처럼 화합하고 벼슬자리를 다투지 마라. 만약 그렇게 하지 않으면 반드시 이웃의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27곽무종이 돌아가다

十二月甲戌朔乙酉,郭務悰等罷歸。是月,淡海國言:「坂田郡人小竹田史身之豬槽水中,忽然稻生。身取而收,日日致富。栗太郡人磐城村主殷之新婦床席頭端,一宿之間,稻生而穗。其旦垂穎而熟。明日之夜,更生一穗。新婦出庭,兩箇鑰匙自天落前。婦取而與殷,殷得始富。」

십이월 갑술 초하루 을유일에 곽무종들이 돌아갔다.

이달에 오미국이 말하였다.

"사카타군 사람 시노다노후비토 미의 돼지 구유 물속에 홀연히 벼가 났습니다. 미가 가져다 거두어 날마다 부유해졌습니다.

구리모토군 사람 이와키노스구리 인의 새 며느리의 잠자리 머리맡에 하룻밤 사이에 벼가 나 이삭이 되었습니다. 그 아침에 이삭을 드리워 익었습니다. 이튿날 밤에 다시 한 이삭이 났습니다. 새 며느리가 뜰에 나가매 두 자루 열쇠가 하늘에서 앞에 떨어졌습니다. 며느리가 가져다 인에게 주니 인이 얻어 비로소 부유해졌습니다."

28미즈키를 쌓다

是歲,於對馬嶋、壹岐嶋、筑紫國等,置防與烽。又於筑紫,築大堤貯水,名曰水城。

이해에 쓰시마섬과 이키섬과 쓰쿠시국들에 방어와 봉수를 두었다. 또 쓰쿠시에 큰 둑을 쌓아 물을 담고 이름을 미즈키(水城)라 하였다.

29백제 사람을 오미에 살게 하다

春二月癸酉朔丁酉,間人大后薨。是月,勘校百濟國官位階級。仍以佐平福信之功,授鬼室集斯小錦下。復以百濟百姓男女四百餘人,居于近江國神前郡。

봄 이월 계유 초하루 정유일에 하시히토노오키사키가 죽었다.

이달에 백제국의 관위 계단을 견주어 살폈다. 이어 좌평 복신의 공으로 귀실집사(鬼室集斯)에게 소금하를 주었다.

다시 백제 백성 남녀 사백여 사람을 오미국 간자키군에 살게 하였다.

협주 1

其本位達率。

그 본디 자리는 달솔이다.

30밭을 주다

三月癸卯朔,為間人大后,度三百三十人。是月,給神前郡百濟人田。

삼월 계묘 초하루에 하시히토노오키사키를 위하여 삼백서른 사람을 출가시켰다.

이달에 간자키군의 백제 사람에게 밭을 주었다.

31백제 사람이 성을 쌓다

秋八月,遣達率答㶱春初,築城於長門國。遣達率憶禮福留、達率四比福夫於筑紫國,築大野及椽二城。耽羅遣使來潮。

가을 팔월에 달솔 답발춘초(答㶱春初)를 보내어 나가토국에 성을 쌓았다. 달솔 억례복류와 달솔 사비복부(四比福夫)를 쓰쿠시국에 보내어 오노(大野)와 기(椽) 두 성을 쌓았다.

탐라가 사자를 보내어 와서 조회하였다.

32유덕고가 오다

九月庚午朔壬辰,唐國遣朝散大夫沂州司馬上柱國劉德高等。

구월 경오 초하루 임진일에 당나라가 조산대부 기주사마 상주국 유덕고(劉德高)들을 보냈다.

협주 1

等謂右戎衛郎將上柱國百濟禰軍朝散大夫柱國郭務悰。凡二百五十四人。七月二十八日,至于對馬。九月二十日,至于筑紫。二十二日,進表函焉。

「들」은 우융위낭장 상주국 백제 예군(禰軍)과 조산대부 주국 곽무종을 이른다. 무릇 이백쉰네 사람이다. 칠월 이십팔일에 쓰시마에 이르고 구월 이십일에 쓰쿠시에 이르렀다. 이십이일에 표함을 올렸다.

33우지에서 크게 사열하다

冬十月己亥朔己酉,大閱于菟道。

겨울 시월 기해 초하루 기유일에 우지에서 크게 사열하였다.

34유덕고를 대접하다

十一月己巳朔辛巳,饗賜劉德高等。

십일월 기사 초하루 신사일에 유덕고들을 대접하였다.

35유덕고가 돌아가다

十二月戊戌朔辛亥,賜物於劉德高等。是月,劉德高等罷歸。

십이월 무술 초하루 신해일에 유덕고들에게 물건을 주었다. 이달에 유덕고들이 돌아갔다.

36당나라에 사자를 보내다

是歲,遣小錦守君大石等於大唐,云云。

이해에 소금 모리노키미 오이시들을 대당에 보냈다. 이러이러하다.

협주 1

等謂,小山坂合部連石積、大乙吉士岐彌、吉士針間。蓋送唐使人乎。

「들」은 소산 사카아히베노무라지 이와쓰미와 대을 기시노키미와 기시노하리마를 이른다. 아마 당나라 사자를 보낸 것인가.

37고려와 탐라가 바치다

春正月戊辰朔戊寅,高麗遣前部能婁等進調。是日,耽羅遣王子姑如等貢獻。

봄 정월 무진 초하루 무인일에 고려가 전부 능루(能婁)들을 보내어 조를 바쳤다. 이날 탐라가 왕자 고여(姑如)들을 보내어 바쳤다.

38병문안

三月,皇太子親往於佐伯子麻呂連家,問其所患,慨歎元從之功。

삼월에 황태자가 몸소 사에키노코마로노무라지의 집에 가서 그 앓는 바를 묻고, 처음부터 따른 공을 개연히 탄식하였다.

39능루가 돌아가다

夏六月乙未朔戊戌,高麗前部能婁等罷歸。

여름 유월 을미 초하루 무술일에 고려 전부 능루들이 돌아갔다.

40큰물

秋七月,大水。

가을 칠월에 큰물이 졌다.

41조를 되돌리다

是秋,復租調。

이 가을에 조(租)와 조(調)를 면하였다.

42고려가 조를 바치다

冬十月甲午朔己未,高麗遣臣乙相奄𨛃等進調。

겨울 시월 갑오 초하루 기미일에 고려가 신하 을상 엄추(奄𨛃)들을 보내어 조를 바쳤다.

협주 1

大使臣乙相奄𨛃、副使達相遁、二位玄武若光等。

대사 신하 을상 엄추와 부사 달상 둔(遁)과 이위 현무약광(玄武若光)들이다.

43백제 사람을 동국에 살게 하다

是冬,京都之鼠向近江移。以百濟男女二千餘人居于東國。凡不擇緇素,起癸亥年至于三歲,並賜官食。倭漢沙門智由,獻指南車。

이해 겨울에 서울의 쥐가 오미로 향하여 옮겼다. 백제 남녀 이천여 사람을 동국에 살게 하였다. 무릇 승려와 속인을 가리지 않고 계해년부터 세 해에 이르도록 아울러 관가의 밥을 주었다.

야마토노아야의 승려 지유(智由)가 지남거를 바쳤다.

44두 임금을 합장하다

春二月壬辰朔戊午,合葬天豐財重日足姬天皇與間人皇女,於小市岡上陵。是日,以皇孫大田皇女葬於陵前之墓。高麗、百濟、新羅,皆奉哀於御路。皇太子謂群臣曰:「我奉皇太后天皇之所敕,憂恤萬民之故,不起石槨之役。所冀永代以為鏡誡焉。」

봄 이월 임진 초하루 무오일에 아메토요타카라이카시히타라시히메천황과 하시히토 황녀를 오치노오카노에 능에 합장하였다. 이날 황손 오타 황녀를 능 앞 무덤에 장사 지냈다.

고려와 백제와 신라가 다 임금의 길에서 슬픔을 받들었다.

황태자가 여러 신하에게 일렀다. "내가 황태후 천황이 칙명하신 바를 받들어 만민을 근심하고 가엾이 여기는 까닭에 돌 덧널의 부역을 일으키지 않는다. 바라건대 길이 대대로 거울과 경계로 삼으라."

45오미로 도읍을 옮기다

三月辛酉朔己卯,遷都于近江。是時,天下百姓不願遷都,諷諫者多,童謠亦眾。日日夜夜,失火處多。

삼월 신유 초하루 기묘일에 도읍을 오미로 옮겼다.

이때 천하 백성이 도읍 옮기기를 바라지 않아 넌지시 간하는 이가 많고 동요 또한 많았다. 날마다 밤마다 불 나는 곳이 많았다.

46흰 제비

六月,葛野郡獻白鷰。

유월에 가도노군이 흰 제비를 바쳤다.

47탐라가 바치다

秋七月己未朔己巳,耽羅遣佐平椽磨等貢獻。

가을 칠월 기미 초하루 기사일에 탐라가 좌평 연마(椽磨)들을 보내어 바쳤다.

48야마토 서울에 나아가다

八月,皇太子幸倭京。

팔월에 황태자가 야마토 서울에 나아갔다.

49남생이 당나라로 달아나다

冬十月,高麗大兄男生,出城巡國。於是城內二弟聞側助士大夫之惡言,拒而勿入。由是男生奔入大唐,謀滅其國。

겨울 시월에 고려의 대형 남생(男生)이 성을 나가 나라를 돌아보았다. 이에 성안의 두 아우가 곁에서 돕는 사대부의 언짢은 말을 듣고 막아 들이지 않았다. 이로 말미암아 남생이 대당에 달아 들어가 그 나라를 멸하기를 꾀하였다.

50성을 쌓다

十一月丁巳朔乙丑,百濟鎮將劉仁願,遣熊津都督府熊山縣令上柱國司馬法聰等,送大山下境部連石積等於筑紫都督府。己巳,司馬法聰等罷歸。以小山下伊吉連博德、大乙下笠臣諸石,為送使。是月,築倭國高安城、讚吉國山田郡屋嶋城、對馬國金田城。

십일월 정사 초하루 을축일에 백제 진장 유인원이 웅진도독부 웅산현령 상주국 사마법총(司馬法聰)들을 보내어, 대산하 사카아히베노무라지 이와쓰미들을 쓰쿠시도독부에 보냈다.

기사일에 사마법총들이 돌아갔다. 소산하 이키노무라지 하카토코와 대을하 가사노오미 모로이시를 보내는 사자로 삼았다.

이달에 야마토국의 다카야스성과 사누키국 야마다군의 야시마성과 쓰시마국의 가네다성을 쌓았다.

51연마에게 물건을 주다

閏十一月丁亥朔丁酉,以錦十四匹、纈十九匹、緋二十四匹、紺布二十四端、桃染布五十八端、斧二十六、釤六十四、刀子六十二枚,賜椽磨等。

윤십일월 정해 초하루 정유일에 비단 열네 필과 홀치기 비단 열아홉 필과 붉은 비단 스물넉 필과 감색 베 스물넉 끝과 복숭아빛 베 쉰여덟 끝과 도끼 스물여섯과 낫 예순넷과 작은 칼 예순두 자루를 연마들에게 주었다.

52자리에 오르다

春正月丙戌朔戊子,皇太子即天皇位。壬辰,宴群臣於內裏。戊申,送使博德等服命。

봄 정월 병술 초하루 무자일에 황태자가 천황의 자리에 올랐다. 임진일에 여러 신하에게 궁 안에서 잔치하였다. 무신일에 보내는 사자 하카토코들이 명을 아뢰었다.

협주 1

或本云:六年歲次丁卯三月,即位。

어떤 판본에는 육년 정묘년 삼월에 자리에 올랐다 한다.

53황후와 여러 비

二月丙辰朔戊寅,立古人大兄皇子女倭姬王為皇后。遂納四嬪。有,蘇我山田石川麻呂大臣女,曰遠智娘。生一男二女。其一曰,大田皇女。其二曰,鸕野皇女。及有天下,居于飛鳥淨御原宮,後移宮于藤原。其三曰,建皇子。啞不能語。其一曰,建皇子。其二曰,大田皇女。其三曰,鸕野皇女。生,大田皇女與娑羅羅皇女。次有,遠智娘弟,曰姪娘。生,御名部皇女與阿陪皇女。阿陪皇女及有天下,居于藤原宮,後移都乃樂。次有,阿倍倉梯麻呂大臣女,曰橘娘。生,飛鳥皇女與新田部皇女。次有,蘇我赤兄大臣女,曰常陸娘。生,山邊皇女。又有,宮人生男女者四人。有,忍海造小龍女,曰色夫古娘。生一男二女。其一曰,大江皇女。其二曰,川嶋皇子。其三曰,泉皇女。又有,栗隈首德萬女,曰黑媛娘。生,水主皇女。又有,越道君伊羅都賣。生,施基皇子。又有,伊賀采女宅子娘。生,伊賀皇子。後字曰,大友皇子。

이월 병진 초하루 무인일에 후루히토노오에 황자의 딸 야마토히메노오키미를 세워 황후로 삼았다. 마침내 네 빈을 들였다.

소가노야마다노이시카와마로노오오미의 딸이 있어 오치노이라쓰메라 한다. 한 사내와 두 계집을 낳았다. 그 하나는 오타 황녀요, 그 둘은 우노 황녀니 천하를 가지매 아스카의 기요미하라노미야에 살다가 뒤에 궁을 후지와라로 옮겼다. 그 셋은 다케루 황자니 벙어리로 말하지 못하였다.

다음으로 오치노이라쓰메의 아우가 있어 메이노이라쓰메라 한다. 미나베 황녀와 아헤 황녀를 낳았다. 아헤 황녀는 천하를 가지매 후지와라노미야에 살다가 뒤에 도읍을 나라로 옮겼다.

다음으로 아베노쿠라하시마로노오오미의 딸이 있어 다치바나노이라쓰메라 한다. 아스카 황녀와 니이타베 황녀를 낳았다.

다음으로 소가노아카에노오오미의 딸이 있어 히타치노이라쓰메라 한다. 야마베 황녀를 낳았다.

또 궁인으로 아들딸을 낳은 이가 넷이다. 오시누미노미야쓰코 오타쓰의 딸이 있어 시코부코노이라쓰메라 한다. 한 사내와 두 계집을 낳았다. 그 하나는 오에 황녀요, 그 둘은 가와시마 황자요, 그 셋은 이즈미 황녀다.

또 구리쿠마노오비토 도코마로의 딸이 있어 구로히메노이라쓰메라 한다. 미누시 황녀를 낳았다.

또 고시노미치노키미 이라쓰메가 있어 시키 황자를 낳았다.

또 이가의 우네메 야카코노이라쓰메가 있어 이가 황자를 낳았다. 뒤에 자를 오토모 황자라 하였다.

협주 4

或本云,美濃津子娘。

어떤 판본에는 미노쓰코노이라쓰메라 한다.

或本云:遠智娘生一男二女。

어떤 판본에는 오치노이라쓰메가 한 사내와 두 계집을 낳았다 한다.

或本云:蘇我山田麻呂大臣女,曰茅渟娘。

어떤 판본에는 소가노야마다마로노오오미의 딸로 지누노이라쓰메라 한다 한다.

或本云:名姪娘曰,櫻井娘。

어떤 판본에는 메이노이라쓰메의 이름을 사쿠라이노이라쓰메라 한다 한다.

54백제가 조를 바치다

夏四月乙卯朔庚申,百濟遣末都師父等進調。庚午,末都師父等罷歸。

여름 사월 을묘 초하루 경신일에 백제가 마쓰시후들을 보내어 조를 바쳤다. 경오일에 마쓰시후들이 돌아갔다.

55가마후노에서 사냥하다

五月五日,天皇縱獦於蒲生野。于時大皇弟、諸王、內臣及群臣,皆悉從焉。

오월 오일에 천황이 가마후노에서 사냥하였다. 이때 천황의 아우와 여러 왕과 우치노오미와 여러 신하가 다 따랐다.

56이세노오키미 형제가 죽다

六月,伊勢王與其弟王,接日而薨。

유월에 이세노오키미와 그 아우 왕이 잇달아 죽었다.

협주 1

未詳官位。

벼슬과 자리가 자세하지 않다.

57고려 사자가 오다

秋七月,高麗從越之路遣使進調。風浪高,故不得歸。以栗前王拜筑紫率。于時,近江國講武,又多置牧而放馬。又越國獻燃土與燃水。又於濱臺之下,諸魚覆水而至。又饗蝦夷。又命舍人等,為宴於所所。時人曰:「天皇天命將及乎!」

가을 칠월에 고려가 고시 길로 사자를 보내어 조를 바쳤다. 바람과 물결이 높은 까닭에 돌아가지 못하였다.

구리쿠마노오키미를 쓰쿠시노소치로 임명하였다.

이때 오미국에서 무예를 익히고 또 목장을 많이 두어 말을 놓았다. 또 고시국이 타는 흙과 타는 물을 바쳤다. 또 물가 누대 아래에 여러 고기가 물을 덮고 이르렀다. 또 에미시를 대접하였다. 또 도네리들에게 명하여 곳곳에서 잔치하게 하였다.

그때 사람들이 말하였다. "천황의 하늘 명이 다하려는가."

58김유신에게 배를 주다

秋九月壬午朔癸巳,新羅遣沙㖨級飡金東嚴等進調。丁未,中臣內臣使沙門法辨、秦筆,賜新羅上臣大角干庾信船一隻,付東嚴等。庚戌,使布勢臣耳麻呂,賜新羅王輸御調船一隻,付東嚴等。

가을 구월 임오 초하루 계사일에 신라가 사탁 급찬 김동엄(金東嚴)들을 보내어 조를 바쳤다.

정미일에 나카토미노우치노오미가 승려 법변(法辨)과 진필(秦筆)을 시켜, 신라 상신 대각간 유신(庾信)에게 배 한 척을 주어 동엄들에게 붙였다.

경술일에 후세노오미 미미마로를 시켜 신라 왕에게 조를 나르는 배 한 척을 주어 동엄들에게 붙였다.

59고려가 무너지다

冬十月,大唐大將軍英公,打滅高麗。高麗仲牟王初建國時,欲治千歲也。母夫人云:「若善治國,可得也。但當有七百年之治也。」今此國亡者,當在七百年之末也。

겨울 시월에 대당의 대장군 영공(英公)이 고려를 쳐서 멸하였다.

고려의 중모왕(仲牟王)이 처음 나라를 세울 때 천 해를 다스리고자 하였다. 어머니 부인이 말하였다. "만약 나라를 잘 다스리면 얻을 수 있다. 다만 마땅히 칠백 해의 다스림이 있을 것이다."

이제 이 나라가 망한 것은 마땅히 칠백 해의 끝에 있다.

협주 1

若或本,有不可得也。

어떤 판본에는 얻을 수 없다는 말이 있다.

60신라 왕에게 물건을 주다

十一月辛巳朔,賜新羅王絹五十匹、綿五百斤、韋一百枚,付金東嚴等。賜東嚴等物,各有差。乙酉,遣小山下道守臣麻呂、吉士小鮪於新羅。是日,金東嚴等罷歸。

십일월 신사 초하루에 신라 왕에게 비단 쉰 필과 솜 오백 근과 무두질한 가죽 백 장을 주어 김동엄들에게 붙였다. 동엄들에게 물건을 주되 각각 차등이 있었다.

을유일에 소산하 지모리노오미 마로와 기시노오시비를 신라에 보냈다. 이날 김동엄들이 돌아갔다.

61도행이 칼을 훔치다

是歲,沙門道行盜草薙劍,逃向新羅。而中路風雨,芒迷而歸。

이해에 승려 도행(道行)이 구사나기 칼을 훔쳐 신라로 달아났다. 그러나 도중에 바람과 비를 만나 아득히 헤매다 돌아왔다.

62아카에를 쓰쿠시노소치로 삼다

春正月庚辰朔戊子,以蘇我赤兄臣拜筑紫率。

봄 정월 경진 초하루 무자일에 소가노아카에노오미를 쓰쿠시노소치로 임명하였다.

63탐라가 바치다

三月己卯朔己丑,耽羅遣王子久麻伎等貢獻。丙申,賜耽羅王五榖種。是日,王子久麻伎等罷歸。

삼월 기묘 초하루 기축일에 탐라가 왕자 구마기(久麻伎)들을 보내어 바쳤다. 병신일에 탐라 왕에게 오곡 씨를 주었다. 이날 왕자 구마기들이 돌아갔다.

64야마시나노에서 사냥하다

夏五月戊寅朔壬午,天皇縱獦於山科野。大皇弟、藤原內大臣及群臣,皆悉從焉。

여름 오월 무인 초하루 임오일에 천황이 야마시나노에서 사냥하였다. 천황의 아우와 후지와라노우치노오오미와 여러 신하가 다 따랐다.

65성 쌓기를 그치다

秋八月丁未朔己酉,天皇登高安嶺,議欲修城。仍恤民疲,止而不作。時人感而歎曰:「寔乃仁愛之德,不亦寬乎。」云云。是秋,霹礰於藤原內大臣家。

가을 팔월 정미 초하루 기유일에 천황이 다카야스 마루에 올라 성 고치기를 의논하려 하였다. 이어 백성이 지친 것을 가엾이 여겨 그치고 짓지 않았다.

그때 사람들이 느껴 탄식하였다. "참으로 어질고 사랑하는 덕이 또한 너그럽지 않은가." 이러이러하다.

이 가을에 후지와라노우치노오오미의 집에 벼락이 쳤다.

66신라가 조를 바치다

九月丁丑朔丁亥,新羅遣沙飡督儒等進調。

구월 정축 초하루 정해일에 신라가 사찬 독유(督儒)들을 보내어 조를 바쳤다.

67가마타리가 죽다

冬十月丙午朔乙卯,天皇幸藤原內大臣家,親問所患。而憂悴極甚。乃詔曰:「天道輔仁,何乃虛說!積善餘慶,猶是無徵!若有所須,便可以聞。」對曰:「臣既不敏,當復何言。但其葬事,宜用輕易。生則無務於軍國,死則何敢重難。」云云。時賢聞而歎曰:「此之一言,竊比於往哲之善言矣。大樹將軍之辭賞,詎可同年而語哉。」庚申,天皇遣東宮大皇弟於藤原內大臣家,授大織冠與大臣位。仍賜姓為藤原氏。自此以後,通曰藤原內大臣。辛酉,藤原內大臣薨。『日本世記』曰:內大臣,春秋五十薨于私第。遷殯於山南。天何不淑,不憖遺耆。嗚呼哀哉。碑曰:春秋五十有六而薨。甲子,天皇幸藤原內大臣家。命大錦上蘇我赤兄臣,奉宣恩詔,仍賜金香鑪。

겨울 시월 병오 초하루 을묘일에 천황이 후지와라노우치노오오미의 집에 나아가 몸소 앓는 바를 물었다. 그러나 근심하고 여윔이 몹시 심하였다.

이에 조를 내렸다. "하늘의 도가 어진 이를 돕는다더니 어찌 헛말인가. 착함을 쌓으면 남은 경사가 있다더니 오히려 증험이 없구나. 만약 바라는 바가 있으면 곧 알릴 만하다."

대답하였다. "신이 이미 민첩하지 못하니 마땅히 다시 무엇을 말하겠습니까. 다만 그 장사 지내는 일은 마땅히 가볍고 쉬이 하소서. 살아서 군사와 나라에 힘쓴 바가 없는데 죽어서 어찌 감히 무겁고 어렵게 하겠습니까." 이러이러하다.

그때 어진 이가 듣고 탄식하였다. "이 한마디는 가만히 옛 밝은 이의 좋은 말에 견줄 만하다. 대수장군이 상을 사양한 것을 어찌 나란히 놓고 말하겠는가."

경신일에 천황이 동궁인 천황의 아우를 후지와라노우치노오오미의 집에 보내어 대직관과 대신의 자리를 주었다. 이어 성을 주어 후지와라씨(藤原氏)라 하였다. 이 뒤로 통틀어 후지와라노우치노오오미라 하였다.

신유일에 후지와라노우치노오오미가 죽었다.

일본세기에 이르렀다. 우치노오오미가 나이 쉰에 사삿집에서 죽었다. 산 남쪽으로 빈소를 옮겼다. 하늘이 어찌 착하지 않아 늙은이를 남겨 두기를 아끼는가. 아아 슬프다. 비석에는 나이 쉰여섯에 죽었다 하였다.

갑자일에 천황이 후지와라노우치노오오미의 집에 나아갔다. 대금상 소가노아카에노오미에게 명하여 은혜로운 조서를 받들어 펴게 하고, 이어 금 향로를 주었다.

68큰 곳간에 불이 나다

十二月,災大藏。

십이월에 큰 곳간에 불이 났다.

69다카야스성을 고치다

是冬,修高安城,收畿內之田稅。于時,災斑鳩寺。

이해 겨울에 다카야스성을 고치고 기내의 밭 세를 거두었다. 이때 이카루가데라에 불이 났다.

70백제 사람을 가모군에 옮기다

是歲,遣小錦中河內直鯨等,使於大唐。又以佐平余自信、佐平鬼室集斯等男女七百餘人,遷居近江國蒲生郡。又大唐遣郭務悰等二千餘人。

이해에 소금중 가와치노아타이 구지라들을 대당에 사자로 보냈다. 또 좌평 여자신과 좌평 귀실집사들 남녀 칠백여 사람을 오미국 가모군에 옮겨 살게 하였다. 또 대당이 곽무종들 이천여 사람을 보냈다.

71조정의 예의를 펴다

春正月乙亥朔辛巳,詔士大夫等,大射宮門內。戊子,宣朝廷之禮儀與行路之相避。復禁斷誣妄、妖偽。

봄 정월 을해 초하루 신사일에 사대부들에게 조를 내려 궁문 안에서 크게 활을 쏘게 하였다.

무자일에 조정의 예의와 길에서 서로 피하는 법을 폈다. 다시 속임과 요망함을 금하여 끊었다.

72호적을 만들다

二月,造戶籍,斷盜賊與浮浪。于時,天皇幸蒲生郡匱迮野,而觀宮地。又修高安城,積榖與鹽。又築長門城一、筑紫城二。

이월에 호적을 만들고 도적과 떠도는 이를 끊었다.

이때 천황이 가모군의 히사쿠사노에 나아가 궁 자리를 보았다. 또 다카야스성을 고치고 곡식과 소금을 쌓았다. 또 나가토에 성 하나, 쓰쿠시에 성 둘을 쌓았다.

73여러 신에게 폐백을 나누다

三月甲戌朔壬午,於山御井傍,敷諸神座,而班幣帛。中臣金連宣祝詞。

삼월 갑술 초하루 임오일에 야마의 우물 곁에 여러 신의 자리를 깔고 폐백을 나누었다. 나카토미노카네노무라지가 축사를 폈다.

74호류지에 불이 나다

夏四月癸卯朔壬申,夜半之後,災法隆寺。一屋無餘。大雨雷震。

여름 사월 계묘 초하루 임신일 밤중 뒤에 호류지(法隆寺)에 불이 났다. 한 집도 남지 않았다. 큰비가 오고 우레가 쳤다.

75동요

五月,童謠曰:

오월에 동요가 있었다.

76노래 — 동요

于知波志能,都梅能阿素弭爾,伊提麻栖古,多麻提能伊鞞能,野鞞古能度珥,伊提麻志能,俱伊播阿羅珥茹,伊提麻西古,多麻提能鞞能,野鞞古能度珥。

「우치하시노 쓰메노아소비니 이데마세코 다마데노이헤노 야헤코노도니 이데마시노 구이와아라니조 이데마세코 다마데노이헤노 야헤코노도니(于知波志能,都梅能阿素弭爾,伊提麻栖古,多麻提能伊鞞能,野鞞古能度珥,伊提麻志能,俱伊播阿羅珥茹,伊提麻西古,多麻提能鞞能,野鞞古能度珥)」

— 소리를 적은 것이라 뜻으로 옮기지 않는다.

77거북을 얻다

六月,邑中獲龜。背書申字,上黃下玄,長六寸許。

유월에 마을 안에서 거북을 얻었다. 등에 신(申) 자가 쓰여 있고 위는 누렇고 아래는 검으며 길이가 여섯 치쯤이었다.

78신라에 사자를 보내다

秋九月辛未朔,遣阿曇連頰垂於新羅。

가을 구월 신미 초하루에 아즈미노무라지 쓰라타리를 신라에 보냈다.

79물방아로 쇠를 다루다

是歲,造水碓而冶鐵。

이해에 물방아를 만들어 쇠를 다루었다.

80백제 사람에게 벼슬을 주다

春正月己亥朔庚子,大錦上蘇我赤兄臣與大錦下巨勢人臣,進於殿前,奉賀正事。癸卯,大錦上中臣金連命宣神事。是日,以大友皇子拜太政大臣。以蘇我赤兄臣為左大臣,以中臣金連為右大臣。以蘇我果安臣、巨勢人臣、紀大人臣為御史大夫。甲辰,東宮太皇弟奉宣,施行冠位、法度之事。大赦天下。丁未,高麗遣上部大相可婁等進調。辛亥,百濟鎮將劉仁願遣李守真等上表。是月,以大錦下授佐平余自信、沙宅紹明。以小錦下授鬼室集斯。以大山下授達率谷那晉首、木素貴子、憶禮福留、答㶱春初、㶱日比子贊波羅金羅金須、鬼室集信。以小山上授達率德頂上、吉大尚、許率母、角服牟。以小山下授餘達率等五十餘人。童謠云:

봄 정월 기해 초하루 경자일에 대금상 소가노아카에노오미와 대금하 고세노히토노오미가 전각 앞에 나아가 새해 하례를 받들었다.

계묘일에 대금상 나카토미노카네노무라지가 신에게 제사하는 일을 명하여 폈다.

이날 오토모 황자를 태정대신으로 임명하고, 소가노아카에노오미를 좌대신으로, 나카토미노카네노무라지를 우대신으로 삼았다. 소가노하타야스노오미와 고세노히토노오미와 기노오히토노오미를 어사대부로 삼았다.

갑진일에 동궁인 천황의 아우가 명을 받들어 관위와 법도의 일을 시행하고 천하에 크게 사면하였다.

정미일에 고려가 상부 대상 가루(可婁)들을 보내어 조를 바쳤다.

신해일에 백제 진장 유인원이 이수진(李守真)들을 보내어 표를 올렸다.

이달에 대금하를 좌평 여자신과 사택소명(沙宅紹明)에게 주었다. 소금하를 귀실집사에게 주었다. 대산하를 달솔 곡나진수와 목소귀자와 억례복류와 답발춘초와 발일비자찬파라금라금수(㶱日比子贊波羅金羅金須)와 귀실집신(鬼室集信)에게 주었다. 소산상을 달솔 덕정상(德頂上)과 길대상(吉大尚)과 허솔모(許率母)와 각복모(角服牟)에게 주었다. 소산하를 나머지 달솔들 쉰 남짓 사람에게 주었다.

동요에 이르렀다.

협주 15

御史,蓋今之大納言乎。

어사는 아마 지금의 대납언인가.

或本云,大友皇子宣命。

어떤 판본에는 오토모 황자가 명을 폈다 한다.

法度、冠位之名,具載於新律令。

법도와 관위의 이름은 새 율령에 갖추어 실려 있다.

法官大輔。

법관대보다.

學職頭。

학직두다.

閑兵法。

병법에 익숙하다.

閑兵法。

병법에 익숙하다.

閑兵法。

병법에 익숙하다.

閑兵法。

병법에 익숙하다.

解藥。

약을 안다.

解藥。

약을 안다.

解藥。

약을 안다.

解藥。

약을 안다.

明五經。

오경에 밝다.

閑於陰陽。

음양에 익숙하다.

81노래 — 동요

多致播那播,於能我曳多曳多。那例例騰母,陀麻爾農矩騰岐,於野兒弘爾農俱。

「다치바나와 오노가에다에다 나레레도모 다마니누쿠토키 오야지오니누쿠(多致播那播,於能我曳多曳多。那例例騰母,陀麻爾農矩騰岐,於野兒弘爾農俱)」

— 소리를 적은 것이라 뜻으로 옮기지 않는다.

82백제가 조를 바치다

二月戊辰朔庚寅,百濟遣臺久用善等進調。

이월 무진 초하루 경인일에 백제가 대구용선(臺久用善)들을 보내어 조를 바쳤다.

83물 재는 기구

三月戊戌朔庚子,黃書造本實,獻水臬。甲寅,常陸國貢中臣部若子。長尺六寸,其生年丙辰至於此歲,十六年也。

삼월 무술 초하루 경자일에 기부미노미야쓰코 혼지쓰가 수얼(水臬)을 바쳤다.

갑인일에 히타치국이 나카토미베노와쿠고를 바쳤다. 키가 한 자 여섯 치요, 그 난 해 병진년부터 이해까지 열여섯 해였다.

84물시계를 새 대에 두다

夏四月丁卯朔辛卯,置漏剋於新臺,始打候時。動鍾鼓,始用漏剋。此漏剋者,天皇為皇太子時,始親所製造也,云云。是月,筑紫言:「八足之鹿,生而即死。」

여름 사월 정묘 초하루 신묘일에 물시계를 새 대에 두고 처음으로 때를 쳐 알렸다. 종과 북을 울리고 처음으로 물시계를 썼다.

이 물시계는 천황이 황태자였을 때 처음 몸소 만든 것이다. 이러이러하다.

이달에 쓰쿠시가 말하였다. "발 여덟인 사슴이 나서 곧 죽었습니다."

85다마이를 추다

五月丁酉朔辛丑,天皇御西小殿。皇太子、群臣侍宴。於是,再奏田儛。

오월 정유 초하루 신축일에 천황이 서쪽 작은 전각에 나아갔다. 황태자와 여러 신하가 잔치에 모셨다. 이에 다마이(田儛)를 두 번 아뢰었다.

86백제 세 부의 청

六月丙寅朔己巳,宣百濟三部使人所請軍事。庚辰,百濟遣羿真子等進調。是月,以栗隈王為筑紫帥。新羅遣使進調。別獻水牛一頭、山雞一隻。

유월 병인 초하루 기사일에 백제 세 부(部) 사자가 청한 군사 일을 폈다.

경진일에 백제가 예진자(羿真子)들을 보내어 조를 바쳤다.

이달에 구리쿠마노오키미를 쓰쿠시노소치로 삼았다. 신라가 사자를 보내어 조를 바쳤다. 따로 물소 한 마리와 산닭 한 마리를 바쳤다.

87이수진이 돌아가다

秋七月丙申朔丙午,唐人李守真等,百濟使人等,並罷歸。

가을 칠월 병신 초하루 병오일에 당나라 사람 이수진들과 백제 사자들이 아울러 돌아갔다.

88가루가 돌아가다

八月乙丑朔丁卯,高麗上部大相可婁等罷歸。壬午,饗賜蝦夷。

팔월 을축 초하루 정묘일에 고려 상부 대상 가루들이 돌아갔다. 임오일에 에미시를 대접하였다.

89천황이 병들다

九月,天皇寢疾不豫。

구월에 천황이 병들어 누워 편치 않았다.

협주 1

或本云:八月,天皇疾病。

어떤 판본에는 팔월에 천황이 병들었다 한다.

90동궁이 요시노에 들다

冬十月甲子朔庚午,新羅遣沙飡金萬物等進調。辛未,於內裏開百佛眼。是月,天皇遣使,奉袈裟、金鉢、象牙、沉水香、栴檀香及諸珍財於法興寺佛。庚辰,天皇疾病彌留。敕喚東宮,引入臥內,詔曰:「朕疾甚,以後事屬汝。」云云。於是,再拜稱疾固辭,不受曰:「請奉洪業,付屬大后,令大友王,奉宣諸政。臣請願,奉為天皇,出家修道。」天皇許焉。東宮起而再拜,便向於內裏佛殿之南,踞坐胡床,剃除鬢髮,為沙門。於是,天皇遣次田生磐,送袈裟。壬午,東宮見天皇,請之吉野修行佛道。天皇許焉。東宮即入於吉野。大臣等侍送,至菟道而還。

겨울 시월 갑자 초하루 경오일에 신라가 사찬 김만물(金萬物)들을 보내어 조를 바쳤다.

신미일에 궁 안에서 백 부처의 눈을 열었다.

이달에 천황이 사자를 보내어 가사와 금 바리와 상아와 침수향과 전단향과 여러 진귀한 재물을 호코지의 부처에게 바쳤다.

경진일에 천황의 병이 더욱 오래되었다. 칙명으로 동궁을 불러 누운 안에 이끌어 들이고 조서하였다. "짐의 병이 심하니 뒷일을 너에게 맡긴다." 이러이러하다.

이에 두 번 절하고 병이라 일컬어 굳이 사양하며 받지 않고 말하였다. "청컨대 큰 업을 대후에게 맡기시고, 오토모노오키미로 여러 정사를 받들어 펴게 하소서. 신은 청하고 바라건대 천황을 위하여 출가하여 도를 닦겠습니다."

천황이 허락하였다.

동궁이 일어나 두 번 절하고 곧 궁 안 불전 남쪽으로 향하여 걸상에 걸터앉아 살쩍과 머리를 깎고 승려가 되었다.

이에 천황이 스키타노이와를 보내어 가사를 보냈다.

임오일에 동궁이 천황을 뵙고 요시노에 가서 불도를 닦기를 청하였다. 천황이 허락하였다. 동궁이 곧 요시노에 들었다. 대신들이 모시고 보내어 우지에 이르러 돌아왔다.

91여섯 사람이 맹세하다

十一月甲午朔癸卯,對馬國司遣使於筑紫大宰府言:「月生二日,沙門道久、筑紫君薩野馬、韓嶋勝娑婆、布師首磐四人從唐來曰:『唐國使人郭務悰等六百人,送使沙宅孫登等一千四百人,總合二千人,乘船四十七隻,俱泊於比知嶋。相謂之曰:「今吾輩人船數眾。忽然到彼,恐彼防人驚駭射戰。」乃遣道久等,預稍披陳來朝之意。』」丙辰,大友皇子在內裏西殿織佛像前,左大臣蘇我赤兄臣、右大臣中臣金連、蘇我果安臣、巨勢人臣、紀大人臣侍焉。大友皇子手執香鑪,先起誓盟曰:「六人同心,奉天皇詔。若有違者,必被天罰!」云云。於是,左大臣蘇我赤兄臣等手執香鑪,隨次而起,泣血誓盟曰:「臣等五人,隨於殿下,奉天皇詔。若有違者,四天王打!天神地祇,亦復誅罰!三十三天,証知此事。子孫當絕,家門必亡!」云云。丁巳,災近江宮。從大藏省第三倉出。壬戌,五臣奉大友皇子,盟天皇前。是日,賜新羅王絹五十匹、絁五十匹、綿一千斤、韋一百枚。

십일월 갑오 초하루 계묘일에 쓰시마의 구니노쓰카사가 사자를 쓰쿠시의 오미코토모치노쓰카사에 보내어 말하였다.

"달이 난 이틀에 승려 도구(道久)와 쓰쿠시노키미 사치야마와 가라시마노스구리 사바와 누노시노오비토 이와 네 사람이 당나라에서 와서 말하였습니다. '당나라 사자 곽무종들 육백 사람과 보내는 사자 사택손등(沙宅孫登)들 천사백 사람 모두 이천 사람이 배 마흔일곱 척에 타고 함께 비지도(比知嶋)에 닿았습니다. 서로 일러 말하기를 「이제 우리 사람과 배가 수가 많다. 홀연히 저기에 이르면 저 방어하는 사람이 놀라 쏘아 싸울까 두렵다」 하였습니다. 이에 도구들을 보내어 미리 조금씩 조회하러 온 뜻을 펴 알립니다.'"

병진일에 오토모 황자가 궁 안 서쪽 전각의 짠 불상 앞에 있었다. 좌대신 소가노아카에노오미와 우대신 나카토미노카네노무라지와 소가노하타야스노오미와 고세노히토노오미와 기노오히토노오미가 모셨다.

오토모 황자가 손에 향로를 잡고 먼저 일어나 맹세하였다. "여섯 사람이 마음을 같이하여 천황의 조서를 받든다. 만약 어기는 이가 있으면 반드시 하늘의 벌을 받으리라." 이러이러하다.

이에 좌대신 소가노아카에노오미들이 손에 향로를 잡고 차례를 따라 일어나 피눈물로 맹세하였다. "신들 다섯 사람은 전하를 따라 천황의 조서를 받든다. 만약 어기는 이가 있으면 사천왕이 치고 하늘 신과 땅 신이 또한 다시 죽여 벌하리라. 서른세 하늘이 이 일을 증거하여 알리라. 자손이 마땅히 끊기고 집안이 반드시 망하리라." 이러이러하다.

정사일에 오미노미야에 불이 났다. 대장성 셋째 곳간에서 났다.

임술일에 다섯 신하가 오토모 황자를 받들어 천황 앞에서 맹세하였다.

이날 신라 왕에게 비단 쉰 필과 굵은 명주 쉰 필과 솜 천 근과 무두질한 가죽 백 장을 주었다.

92천황이 죽다

十二月癸亥朔乙丑,天皇崩于近江宮。癸酉,殯于新宮。于時童謠曰:

십이월 계해 초하루 을축일에 천황이 오미노미야에서 죽었다. 계유일에 새 궁에 빈소를 차렸다.

이때 동요가 있었다.

93노래 — 동요

美曳之弩能,曳之弩能阿喻,阿喻擧曾播,施麻倍母曳岐,愛俱流之衞,奈疑能母騰,制利能母騰。阿例播俱流之衞

「미에시노노 에시노노아유 아유코소와 시마베모에키 에구루시에 나기노모토 세리노모토 아레와구루시에(美曳之弩能,曳之弩能阿喩,阿喩擧曾播,施麻倍母曳岐,愛俱流之衞,奈疑能母騰,制利能母騰。阿例播俱流之衞)」

— 소리를 적은 것이라 뜻으로 옮기지 않는다.

협주 1

其一。

그 첫째다.

94노래 — 동요

於彌能古能。野陛能比母騰俱,比騰陛多爾,伊麻拕藤柯禰波,美古能比母騰矩

「오미노코노 야헤노히모토쿠 히토헤다니 이마다토카네바 미코노히모토쿠(於彌能古能。野陛能比母騰俱,比騰陛多爾,伊麻拕藤柯禰波,美古能比母騰矩)」

— 소리를 적은 것이라 뜻으로 옮기지 않는다.

협주 1

其二。

그 둘째다.

95노래 — 동요

阿箇悟馬能,以喻企波波箇屢。麻矩儒播羅,奈爾能都底擧騰,多拕尼之曳鷄武

「아카고마노 이유키하바카루 마쿠즈하라 나니노쓰테고토 다다니시에케무(阿箇悟馬能,以喩企波波箇屢。麻矩儒播羅,奈爾能都底擧騰,多拕尼之曳鷄武)」

— 소리를 적은 것이라 뜻으로 옮기지 않는다.

협주 1

其三。

그 셋째다.

96김만물이 돌아가다

己卯,新羅進調使沙飡金萬物等罷歸。

기묘일에 신라의 조 바치는 사자 사찬 김만물들이 돌아갔다.

97여덟 솥이 울다

是歲,讚岐國山田郡人家,有雞子四足者。又大炊省,有八鼎鳴。或一鼎鳴,或二或三俱鳴,或八俱鳴。

이해에 사누키국 야마다군 사람의 집에 발 넷인 병아리가 있었다. 또 오이노쓰카사에 여덟 솥이 우는 일이 있었다. 더러는 한 솥이 울고 더러는 둘이나 셋이 함께 울고 더러는 여덟이 함께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