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무천황 상天武天皇上
1천무천황
天渟中原瀛真人天皇,天命開別天皇同母弟也。幼曰大海人皇子,生而有岐嶷之姿。及壯,雄拔神武,能天文、遁甲。納天命開別天皇女菟野皇女,為正妃。天命開別天皇元年,立為東宮。
아메노누나하라오키노마히토천황(天渟中原瀛真人天皇)은 아메미코토히라카스와케천황의 동복 아우다. 어려서 오아마 황자라 하였다.
나면서 우뚝한 모습이 있었다. 장성하매 씩씩하게 빼어나고 신령하게 굳세며 천문과 둔갑에 능하였다. 아메미코토히라카스와케천황의 딸 우노 황녀를 들여 정비로 삼았다. 아메미코토히라카스와케천황 원년에 동궁으로 세워졌다.
협주 1
渟中,此云農難。
누나(渟中)는 누나라 읽는다.
2요시노에 들다
冬十月庚辰,天皇臥病,以痛之甚矣。於是,遣蘇賀臣安麻侶,召東宮,引入大殿。時安摩侶素東宮所好,密顧東宮曰:「有意而言矣。」東宮於茲,疑有隱謀而慎之。天皇敕東宮,授鴻業。乃辭讓之曰:「臣之不幸,元有多病。何能保社稷?願陛下舉天下附皇后,仍立大友皇子宜為儲君。臣今日出家,為陛下欲修功德。」天皇聽之。即日,出家法服。因以收私兵器,悉納於司。壬午,入吉野宮。時左大臣蘇賀赤兄臣、右大臣中臣金連及大納言蘇賀果安臣等送之,自菟道返焉。或曰:「虎著翼放之。」是夕,御嶋宮。癸未,至吉野而居之。是時,聚諸舍人,謂之曰:「我今入道修行,故隨欲修道者留之。若仕欲成名者,還仕於司。」然无退者。更聚舍人,而詔如前。是以舍人等,半留半退。
겨울 시월 경진일에 천황이 병들어 누워 아픔이 심하였다.
이에 소가노오미 야스마로를 보내어 동궁을 불러 큰 전각에 이끌어 들였다. 그때 야스마로가 본디 동궁이 좋아하던 이라 몰래 동궁을 돌아보며 말하였다. "뜻을 두고 말씀하십시오."
동궁이 이에 숨은 꾀가 있는가 의심하여 삼갔다.
천황이 동궁에게 칙명하여 큰 업을 주려 하였다. 이에 사양하여 말하였다. "신이 불행하여 본디 병이 많습니다. 어찌 능히 사직을 지키겠습니까. 바라건대 폐하께서는 천하를 들어 황후에게 붙이시고, 이어 오토모 황자를 세워 마땅히 뒤이을 임금으로 삼으소서. 신은 오늘 출가하여 폐하를 위하여 공덕을 닦고자 합니다."
천황이 들어주었다. 그날로 출가하여 법복을 입었다. 이로 인하여 사사로운 병기를 거두어 다 관청에 들였다.
임오일에 요시노노미야에 들었다. 그때 좌대신 소가노아카에노오미와 우대신 나카토미노카네노무라지와 대납언 소가노하타야스노오미들이 보내고 우지에서 돌아갔다.
어떤 이가 말하였다. "범에게 날개를 달아 놓아 주었다."
이 저녁에 시마노미야에 나아갔다. 계미일에 요시노에 이르러 살았다.
이때 여러 도네리를 모아 일렀다. "내가 이제 도에 들어 수행한다. 그러므로 도 닦기를 바라는 이는 머물러라. 만약 벼슬하여 이름을 이루고자 하는 이는 돌아가 관청에 벼슬하라."
그러나 물러나는 이가 없었다. 다시 도네리를 모아 앞서와 같이 조서하였다. 이로써 도네리들이 반은 머물고 반은 물러났다.
3천지천황이 죽다
十二月,天命開別天皇崩。
십이월에 아메미코토히라카스와케천황이 죽었다.
4곽무종에게 상을 알리다
春三月壬辰朔己酉,遣內小七位阿曇連稻敷於筑紫,告天皇喪於郭務悰等。於是郭務悰等咸著喪服,三遍舉哀,向東稽首。壬子,郭務悰等再拜,進書函與信物。
봄 삼월 임진 초하루 기유일에 내소칠위 아즈미노무라지 이나시키를 쓰쿠시에 보내어 천황의 상을 곽무종들에게 알렸다.
이에 곽무종들이 다 상복을 입고 세 번 슬픔을 들어 동쪽을 향하여 머리를 조아렸다.
임자일에 곽무종들이 두 번 절하고 글함과 신물을 올렸다.
5반란의 조짐
夏五月辛卯朔壬寅,以甲、冑、弓矢賜郭務悰等。是日,賜郭務悰等物,總合絁一千六百七十三匹、布二千八百五十二端、綿六百六十六斤。戊午,高麗遣前部富加抃等進調。庚申,郭務悰等罷歸。是月,朴井連雄君奏天皇曰:「臣以有私事,獨至美濃。時朝庭宣美濃、尾張兩國司曰:『為造山陵,豫差定人夫。』則人別令執兵。臣以為:『非為山陵,必有事矣。』若不早避,當有危歟!」或有人奏曰:「自近江京至于倭京,處處置侯。亦命菟道守橋者,遮皇大弟宮舍人運私糧事。」天皇惡之,因令問察,以知事已實。於是詔曰:「朕所以讓位遁世者,獨治病全身,永終百年。然今不獲已,應承禍。何默亡身耶!」
여름 오월 신묘 초하루 임인일에 갑옷과 투구와 활과 화살을 곽무종들에게 주었다.
이날 곽무종들에게 물건을 주니 모두 굵은 명주 천육백일흔세 필과 베 이천팔백쉰두 끝과 솜 육백예순여섯 근이었다.
무오일에 고려가 전부 부가변(富加抃)들을 보내어 조를 바쳤다. 경신일에 곽무종들이 돌아갔다.
이달에 에노이노무라지 오키미가 천황에게 아뢰었다.
"신이 사사로운 일이 있어 홀로 미노에 이르렀습니다. 그때 조정이 미노와 오와리 두 나라 구니노쓰카사에게 이르기를 '산릉을 지으려 하니 미리 인부를 가려 정하라' 하였습니다. 곧 사람마다 무기를 잡게 하였습니다. 신이 생각하기에 '산릉을 위함이 아니라 반드시 일이 있다' 하였습니다. 만약 일찍 피하지 않으면 마땅히 위태로움이 있을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이 아뢰었다. "오미의 서울에서 야마토의 서울까지 곳곳에 파수를 두었습니다. 또 우지의 다리 지키는 이에게 명하여 황대제 궁의 도네리가 사사로운 양식 나르는 일을 막게 하였습니다."
천황이 이를 미워하여 이로 인하여 물어 살피게 하고 일이 이미 사실임을 알았다.
이에 조를 내렸다. "짐이 자리를 물려주고 세상을 피한 까닭은 홀로 병을 다스려 몸을 온전히 하고 길이 백 해를 마치려 함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만둘 수 없어 마땅히 화를 받게 되었다. 어찌 잠잠히 몸을 잃겠는가."
6동국으로 들어가다
六月辛酉朔壬午,詔村國連男依、和珥部臣君手、身毛君廣,曰:「今聞:『近江朝庭之臣等,為朕謀害。』是以汝等三人急往美濃國,告安八磨郡湯沐令多臣品治,宣示機要,而先發當郡兵。仍經國司等,差發諸軍,急塞不破道。朕今發路。」甲申,將入東。時有一臣奏曰:「近江群臣元有謀心,必造天下。則道路難通。何無一人兵,徒手入東。臣恐事不就矣。」天皇從之,思欲返召男依等。即遣大分君惠尺、黃書造大伴、逢臣志摩于留守司高坂王,而令乞驛鈴。因以謂惠尺等曰:「若不得鈴,迺志摩還而復奏。惠尺馳之往於近江,喚高市皇子、大津皇子,逢於伊勢。」既而惠尺等至留守司,舉東宮之命,乞驛鈴於高坂王。然不聽矣。時惠尺往近江。志摩乃還之,復奏曰:「不得鈴也。」是日,發途入東國。事急不待駕而行之。儵遇縣犬養連大伴鞍馬,因以御駕。乃皇后載輿從之。逮于津振川,車駕始至,便乘焉。
유월 신유 초하루 임오일에 무라쿠니노무라지 오요리와 와니베노오미 기미테와 무게노키미 히로에게 조를 내렸다.
"이제 들으니 '오미 조정의 신하들이 짐을 해치려 꾀한다' 한다. 이 때문에 너희 세 사람은 급히 미노국에 가서 안파치마군의 유노우나가시 오노오미 혼지에게 알리고 기틀과 요점을 펴 보여, 먼저 그 고을의 군사를 내라. 이어 구니노쓰카사들을 거쳐 여러 군사를 내어 급히 후와의 길을 막으라. 짐이 이제 길을 떠난다."
갑신일에 동쪽으로 들어가려 하였다. 그때 한 신하가 아뢰었다. "오미의 여러 신하가 본디 꾀하는 마음이 있어 반드시 천하를 그르칠 것입니다. 곧 길이 통하기 어렵습니다. 어찌 한 사람의 군사도 없이 맨손으로 동쪽에 드십니까. 신은 일이 이루어지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천황이 이를 따라 오요리들을 돌이켜 부르고자 하였다. 곧 오키다노키미 에사카와 기부미노미야쓰코 오토모와 오후노오미 시마를 남아 지키는 다카사카노오키미에게 보내어 역말 방울을 빌게 하였다.
이로 인하여 에사카들에게 일렀다. "만약 방울을 얻지 못하면 시마는 돌아와 다시 아뢰라. 에사카는 달려 오미에 가서 다케치 황자와 오쓰 황자를 불러 이세에서 만나라."
이윽고 에사카들이 남아 지키는 관청에 이르러 동궁의 명을 들어 다카사카노오키미에게 역말 방울을 빌었다. 그러나 들어주지 않았다.
그때 에사카는 오미로 갔다. 시마가 이에 돌아와 다시 아뢰었다. "방울을 얻지 못하였습니다."
이날 길을 떠나 동국에 들었다. 일이 급하여 수레를 기다리지 않고 갔다. 홀연히 아가타노이누카이노무라지 오토모의 안장 얹은 말을 만나 이로 인하여 탔다. 이에 황후가 가마를 타고 따랐다.
쓰부리강에 이르러 수레가 비로소 이르매 곧 탔다.
7따르는 이들
是時元從者草壁皇子、忍壁皇子及舍人朴井連雄君、縣犬養連大伴、佐伯連大目、大伴連友國、稚櫻部臣五百瀨、書首根摩呂、書直智德、山背直小林、山背部小田、安斗連智德、調首淡海之類,二十有餘人,女孺十有餘人也。即日,到菟田吾城。大伴連馬來田、黃書造大伴從吉野宮追至。於此時,屯田司舍人土師連馬手供從駕者食。過甘羅村,有獵者二十餘人。大伴朴本連大國,為獵者之首。則悉喚令從駕。亦徵美濃王,乃參赴而從矣。運湯沐之米伊勢國駄五十匹,遇於菟田郡家頭。仍皆棄米,而令乘步者。到大野以日落也,山暗不能進行,則壞取當邑家籬為燭。及夜半,到隱郡,焚隱驛家。因唱邑中曰:「天皇入東國。故人夫諸參赴。」然一人不肯來矣。將及橫河,有黑雲,廣十餘丈經天。時天皇異之,則舉燭親秉式,占曰:「天下兩分之祥也。然朕遂得天下歟。」即急行到伊賀郡,焚伊賀驛家。
이때 처음부터 따른 이는 구사카베 황자와 오사카베 황자와 도네리 에노이노무라지 오키미와 아가타노이누카이노무라지 오토모와 사에키노무라지 오메와 오호토모노무라지 도모쿠니와 와카사쿠라베노오미 이오세와 후미노오비토 네마로와 후미노아타이 지토코와 야마시로노아타이 오바야시와 야마시로베노오다와 아토노무라지 지토코와 쓰키노오비토 오미 따위 스무 남짓 사람이요, 여관이 열 남짓 사람이었다.
그날로 우다의 아키에 이르렀다. 오호토모노무라지 마쿠타와 기부미노미야쓰코 오토모가 요시노노미야에서 뒤쫓아 이르렀다.
이때 둔전 맡은 도네리 하지노무라지 우마테가 수레 따르는 이들에게 밥을 대었다.
간라 마을을 지날 때 사냥꾼 스무 남짓 사람이 있었다. 오토모노에노모토노무라지 오쿠니가 사냥꾼의 우두머리였다. 곧 다 불러 수레를 따르게 하였다.
또 미노노오키미를 부르니 이에 나아와 따랐다.
유노우나가시의 쌀을 나르던 이세국의 짐말 쉰 필을 우다군 관가 앞에서 만났다. 이어 다 쌀을 버리고 걷는 이를 태웠다.
오노에 이르매 해가 저물었다. 산이 어두워 나아갈 수 없어 그 마을 집의 울타리를 헐어 횃불로 삼았다.
밤중에 이르러 나바리군에 이르러 나바리의 역참 집을 태웠다. 이로 인하여 마을 안에 외쳤다. "천황이 동국에 드신다. 그러므로 인부들은 다 나아오라." 그러나 한 사람도 즐겨 오지 않았다.
요코강에 이를 즈음에 검은 구름이 있어 너비 열 남짓 길로 하늘을 가로질렀다.
그때 천황이 이상히 여겨 곧 횃불을 들고 몸소 점판을 잡아 점쳐 말하였다. "천하가 둘로 갈릴 조짐이다. 그러나 짐이 마침내 천하를 얻겠는가."
곧 급히 가서 이가군에 이르러 이가의 역참 집을 태웠다.
8이세에 이르다
逮于伊賀中山,而當國郡司等,率數百眾歸焉。會明,至莿荻野,暫停駕而進食。到積殖山口,高市皇子自鹿深越以遇之。民直大火、赤染造德足、大藏直廣隅、坂上直國麻呂、古市黑麻呂、竹田大德、膽香瓦臣安倍從焉。越大山,至伊勢鈴鹿。爰國司守三宅連石床、介三輪君子首及湯沐令田中臣足麻呂、高田首新家等參遇于鈴鹿郡。則且發五百軍,塞鈴鹿山道。到川曲坂下,而日暮也。以皇后疲之,暫留輿而息。然夜曀欲雨,不得淹息而進行。於是寒之雷雨已甚。從駕者衣裳濕,以不堪寒。乃到三重郡家,焚屋一間,而令熅寒者。是夜半,鈴鹿關司遣使奏言:「山郡王、石川王,並來歸之。故置關焉。」天皇便使路直益人徵。丙戌旦,於朝明郡跡太川邊,望拜天照大神。是時,益人到之奏曰:「所置關者非山部王、石川王。是大津皇子也。」便隨益人參來矣。大分君惠尺、難波吉士三綱、駒田勝忍人、山邊君安摩呂、小墾田豬手、埿部胝枳、大分君稚臣、根連金身、漆部友背之輩從之。
이가의 나카야마에 이르매 그 나라의 고오리노쓰카사들이 수백 무리를 거느리고 돌아와 붙었다.
날이 밝으매 다라노에 이르러 잠시 수레를 멈추고 밥을 먹었다.
쓰게산 어귀에 이르매 다케치 황자가 가후카에서 넘어와 만났다. 다미노아타이 오히와 아카소메노미야쓰코 도코타리와 오쿠라노아타이 히로스미와 사카노우에노아타이 구니마로와 후루이치노쿠로마로와 다케다노다이토쿠와 이카고노오미 아베가 따랐다.
큰 산을 넘어 이세의 스즈카에 이르렀다. 이에 구니노쓰카사노카미 미야케노무라지 이와토코와 스케 미와노키미 고비토와 유노우나가시 다나카노오미 다리마로와 다카타노오비토 니노미들이 스즈카군에서 나아와 만났다. 곧 또 오백 군사를 내어 스즈카산 길을 막았다.
가와와노사카시타에 이르매 해가 저물었다. 황후가 지친 까닭에 잠시 가마를 멈추고 쉬었다. 그러나 밤이 흐려 비가 오려 하매 오래 쉬지 못하고 나아갔다.
이에 추위와 우레와 비가 이미 심하였다. 따르는 이들의 옷이 젖어 추위를 견디지 못하였다. 이에 미에군 관가에 이르러 집 한 칸을 태워 추운 이를 덥히게 하였다.
이 밤중에 스즈카의 관문 맡은 이가 사자를 보내어 아뢰었다. "야마베노오키미와 이시카와노오키미가 아울러 와서 돌아와 붙었습니다. 그러므로 관문을 두었습니다."
천황이 곧 미치노아타이 마스히토를 시켜 부르게 하였다.
병술일 아침에 아사케군의 도오강 가에서 아마테라스오미카미을 바라보고 절하였다.
이때 마스히토가 이르러 아뢰었다. "관문을 둔 까닭은 야마베노오키미와 이시카와노오키미가 아니라 오쓰 황자입니다."
곧 마스히토를 따라 나아왔다. 오키다노키미 에사카와 나니와노키시 미쓰나와 고마다노스구리 오시히토와 야마베노키미 야스마로와 오하리다노이노테와 하시베노히키와 오키다노키미 와카오미와 네노무라지 가네미와 누리베노도모세 따위가 따랐다.
9오미 조정이 놀라다
天皇大喜,將及郡家,男依乘驛來奏曰:「發美濃師三千人,得塞不破道。」於是天皇美雄依之務,既到郡家,先遣高市皇子於不破,令監軍事。遣山背部小田、安斗連阿加布,發東海軍。又遣稚櫻部臣五百瀨、土師連馬手,發東山軍。是日,天皇宿于桑名郡家,即停以不進。是時,近江朝聞大皇弟入東國,其群臣悉愕,京內震動。或遁欲入東國,或退將匿山澤。爰大友皇子謂群臣曰:「將何計?」一臣進曰:「遲謀將後。不如,急聚驍騎,乘跡而逐之。」皇子不從。則以韋那公磐鍬、書直藥、忍坂直大摩侶,遣于東國;以穗積臣百足及弟五百枝、物部首日向,遣于倭京;且遣佐伯連男於筑紫,遣樟使主磐手於吉備國,並悉令興兵。仍謂男與磐手曰:「其筑紫大宰栗隈王與吉備國守當摩公廣嶋二人,元有隸大皇弟。疑有反歟。若有不服色,即殺之。」於是,磐手到吉備國,授符之日,紿廣嶋令解刀。磐手乃拔刀以殺也。
천황이 크게 기뻐하였다. 군의 관가에 이를 즈음에 오요리가 역말을 타고 와서 아뢰었다. "미노의 군사 삼천 사람을 내어 후와의 길을 막을 수 있었습니다."
이에 천황이 오요리의 힘씀을 아름다이 여겼다. 이미 군의 관가에 이르러 먼저 다케치 황자를 후와에 보내어 군사 일을 살피게 하였다.
야마시로베노오다와 아토노무라지 아카후를 보내어 도카이의 군사를 내게 하였다. 또 와카사쿠라베노오미 이오세와 하지노무라지 우마테를 보내어 도산의 군사를 내게 하였다.
이날 천황이 구와나군 관가에 묵고 곧 멈추어 나아가지 않았다.
이때 오미 조정이 대황제가 동국에 들었다는 말을 듣고 그 여러 신하가 다 놀라 서울 안이 흔들렸다. 더러는 달아나 동국에 들려 하고 더러는 물러나 산과 못에 숨으려 하였다.
이에 오토모 황자가 여러 신하에게 일렀다. "장차 무슨 계책을 쓰겠는가."
한 신하가 나아가 말하였다. "꾀함이 늦으면 뒤처집니다. 급히 날랜 기병을 모아 자취를 밟아 쫓는 것만 못합니다."
황자가 따르지 않았다. 곧 이나노키미 이와스키와 후미노아타이 구스리와 오사카노아타이 오마로를 동국에 보내고, 호즈미노오미 모모타리와 아우 이오에와 모노노베노오비토 히무카를 야마토 서울에 보냈다. 또 사에키노무라지 오토코를 쓰쿠시에 보내고 구스노오미 이와테를 기비국에 보내어 아울러 다 군사를 일으키게 하였다.
이어 오토코와 이와테에게 일렀다. "저 쓰쿠시의 오미코토모치 구리쿠마노오키미와 기비국의 가미 다기마노키미 히로시마 두 사람은 본디 대황제에게 딸린 이들이다. 배반이 있을까 의심스럽다. 만약 복종하지 않는 낯빛이 있거든 곧 죽여라."
이에 이와테가 기비국에 이르러 부신을 주는 날에 히로시마를 속여 칼을 풀게 하였다. 이와테가 이에 칼을 뽑아 죽였다.
10구리쿠마노오키미가 거절하다
男至筑紫。時栗隈王承符對曰:「筑紫國者,元戍邊賊之難也。其峻城深隍,臨海守者,豈為內賊耶?今畏命而發軍,則國空矣。若不意之外,有倉卒之事,頓社稷傾之。然後雖百殺臣,何益焉?豈敢背德耶?輙不動兵者,其是緣也。」時栗隈王二子三野王、武家王佩劍立于側而無退。於是男按劍欲進,還恐見亡。故不能成事,而空還之。東方驛使磐鍬等將及不破,磐鍬獨疑山中有兵,以後之緩行。時伏兵自山出,遮藥等之後。磐鍬見之,知藥等見捕,則返逃走,僅得脫。當是時,大伴連馬來田、弟吹負並見時否,以稱病退於倭家。然知其登嗣位者,必所居吉野大皇弟矣。是以馬來田先從天皇。唯吹負留謂:「立名于一時,欲寧艱難。」即招一二族及諸豪傑,僅得數十人。丁亥,高市皇子遣使於桑名郡家以奏言:「遠居御所,行政不便。宜御近處。」即日,天皇留皇后,而入不破。比及郡家,尾張國司守小子部連鉏鉤率二萬眾歸之。
오토코가 쓰쿠시에 이르렀다. 그때 구리쿠마노오키미가 부신을 받고 답하였다.
"쓰쿠시국은 본디 변두리 도적의 어려움을 지키는 곳입니다. 그 높은 성과 깊은 해자로 바다에 임하여 지키는 것이 어찌 안의 적을 위함이겠습니까. 이제 명을 두려워하여 군사를 내면 곧 나라가 빕니다. 만약 뜻하지 않은 밖에서 갑작스러운 일이 있으면 문득 사직이 기웁니다. 그런 뒤에 비록 신을 백 번 죽인들 무슨 보람이 있겠습니까. 어찌 감히 덕을 등지겠습니까. 문득 군사를 움직이지 않는 것이 그 까닭입니다."
그때 구리쿠마노오키미의 두 아들 미노노오키미와 다케이헤노오키미가 칼을 차고 곁에 서서 물러나지 않았다.
이에 오토코가 칼을 어루만지며 나아가려 하다가 도리어 죽임을 당할까 두려워하였다. 그러므로 일을 이루지 못하고 헛되이 돌아갔다.
동쪽 길의 역말 사자 이와스키들이 후와에 이를 즈음에, 이와스키가 홀로 산속에 군사가 있을까 의심하여 뒤처져 느리게 갔다. 그때 숨은 군사가 산에서 나와 구스리들의 뒤를 막았다. 이와스키가 이를 보고 구스리들이 잡힌 줄 알고 곧 돌이켜 달아나 겨우 벗어났다.
이때를 맞아 오호토모노무라지 마쿠타와 아우 후케히가 아울러 때가 아님을 보고 병이라 일컫고 야마토의 집에 물러났다. 그러나 그 자리를 이을 이가 반드시 요시노에 있는 대황제임을 알았다.
이 때문에 마쿠타가 먼저 천황을 따랐다. 오직 후케히만 머물러 말하였다. "한때에 이름을 세워 어려움을 편안케 하고자 한다." 곧 한두 겨레와 여러 호걸을 불러 겨우 수십 사람을 얻었다.
정해일에 다케치 황자가 사자를 구와나군 관가에 보내어 아뢰었다. "임금 계신 곳이 멀어 정사를 행하기에 편치 않습니다. 마땅히 가까운 곳에 계시소서."
그날로 천황이 황후를 남기고 후와에 들었다. 군의 관가에 이를 즈음에 오와리의 구니노쓰카사노카미 지이사코베노무라지 사히치가 이만 무리를 거느리고 돌아와 붙었다.
11다케치 황자가 군사를 맡다
天皇即美之,分其軍,塞處處道也。到于野上,高市皇子自和蹔參迎,以便奏言:「昨夜,自近江朝驛使馳至。因以伏兵而捕者,則書直藥、忍坂直大麻呂也。問何所往,答曰:『為所居吉野大皇弟,而遣發東國軍韋那公磐鍬之徒也。然磐鍬見兵起,乃逃還之。』」既而天皇謂高市皇子曰:「其近江朝,左右大臣及智謀群臣共定議。今朕無與計事者,唯有幼少孺子耳。奈之何?」皇子攘臂按劍奏言:「近江群臣雖多,何敢逆天皇之靈哉。天皇雖獨,則臣高市賴神祇之靈,請天皇之命,引率諸將而征討。豈有距乎?」爰天皇譽之,攜手撫背曰:「慎,不可怠。」因賜鞍馬,悉授軍事。皇子則還和蹔。天皇於茲,行宮興野上而居焉。此夜,雷電雨甚。天皇祈之曰:「天地神祇扶朕者,雷雨息矣。」言訖即雷雨止之。戊子,天皇往於和蹔,檢校軍事而還。己丑,天皇往和蹔,命高市皇子,號令軍眾。天皇亦還于野上而居之。是日,大伴連吹負密與留守司坂上直熊毛議之,謂一二漢直等曰:「我詐稱高市皇子,率數十騎,自飛鳥寺北路出之臨營。
천황이 곧 아름다이 여겨 그 군사를 나누어 곳곳의 길을 막았다.
노가미에 이르매 다케치 황자가 와자미에서 나아와 맞으며 곧 아뢰었다.
"어젯밤에 오미 조정에서 역말 사자가 달려 이르렀습니다. 이로 인하여 숨은 군사로 잡으니 곧 후미노아타이 구스리와 오사카노아타이 오마로였습니다. 어디로 가느냐 물으니 답하기를 '요시노에 계신 대황제를 위하여 동국의 군사를 내러 가는 이나노키미 이와스키의 무리다. 그러나 이와스키가 군사가 일어나는 것을 보고 이에 도망해 돌아갔다' 하였습니다."
이윽고 천황이 다케치 황자에게 일렀다. "저 오미 조정에는 좌우 대신과 지혜와 꾀 있는 여러 신하가 함께 의논을 정한다. 이제 짐에게는 함께 일을 헤아릴 이가 없고 오직 어린아이가 있을 뿐이다. 어찌하겠는가."
황자가 팔을 걷고 칼을 어루만지며 아뢰었다. "오미의 여러 신하가 비록 많으나 어찌 감히 천황의 신령을 거스르겠습니까. 천황이 비록 홀로시나 곧 신 다케치가 신들의 신령에 힘입고 천황의 명을 청하여 여러 장수를 이끌고 정벌하겠습니다. 어찌 막음이 있겠습니까."
이에 천황이 기려 손을 잡고 등을 어루만지며 말하였다. "삼가고 게을리하지 마라."
이로 인하여 안장과 말을 주고 군사 일을 다 맡겼다. 황자가 곧 와자미로 돌아갔다.
천황이 이에 행궁을 노가미에 일으켜 살았다. 이 밤에 우레와 번개와 비가 심하였다. 천황이 빌었다. "하늘과 땅의 신들이 짐을 도우신다면 우레와 비가 그치리라." 말을 마치매 곧 우레와 비가 그쳤다.
무자일에 천황이 와자미에 가서 군사 일을 살피고 돌아왔다.
기축일에 천황이 와자미에 가서 다케치 황자에게 명하여 군사를 호령하게 하였다. 천황은 또한 노가미로 돌아와 살았다.
이날 오호토모노무라지 후케히가 몰래 남아 지키는 관청의 사카노우에노아타이 구마케와 의논하고 한두 아야노아타이들에게 일렀다.
"내가 거짓으로 다케치 황자라 일컫고 수십 기를 거느려 아스카데라 북쪽 길에서 나와 진영에 임하겠다.
12아스카데라의 계략
乃汝內應之。」既而繕兵於百濟家,自南門出之。先秦造熊令犢鼻,而乘馬馳之,俾謂於寺西營中曰:「高市皇子自不破至。軍眾多從。」爰留守司高坂王及興兵使者穗積臣百足等據飛鳥寺西槻下為營。唯百足居小墾田兵庫,運兵於近江。時營中軍眾聞熊叫聲,悉散走。仍大伴連吹負率數十騎劇來。則熊毛及諸直等共與連和。軍士亦從。乃舉高市皇子之命,喚穗積臣百足於小墾田兵庫。爰百足乘馬緩來,逮于飛鳥寺西槻下。有人曰:「下馬也。」時百足下馬遲之。便取其襟以引墮,射中一箭。因拔刀斬而殺之。乃禁穗積臣五百枝、物部首日向。俄而赦之置軍中。且喚高坂王、稚狹王,而令從軍焉。既而遣大伴連安麻呂、坂上直老、佐味君宿那麻呂等於不破宮,令奏事狀。天皇大喜之。因乃令吹負拜將軍。是時三輪君高市麻呂、鴨君蝦夷等及群豪傑者,如響悉會將軍麾下,乃規襲近江。因以撰眾中之英俊,為別將及軍監。庚寅,初向乃樂。
곧 너희가 안에서 응하라."
이윽고 백제의 집에서 군사를 갖추고 남문에서 나왔다. 먼저 하타노미야쓰코 구마를 시켜 잠방이만 입고 말을 타고 달려, 절 서쪽 진영 안에 외치게 하였다. "다케치 황자가 후와에서 이르렀다. 군사가 많이 따른다."
이에 남아 지키는 다카사카노오키미와 군사 일으키는 사자 호즈미노오미 모모타리들이 아스카데라 서쪽 느티나무 아래에 웅거하여 진영을 삼았다. 오직 모모타리만 오하리다의 무기고에 있으면서 무기를 오미로 날랐다.
그때 진영 안의 군사가 구마의 외치는 소리를 듣고 다 흩어져 달아났다.
이에 오호토모노무라지 후케히가 수십 기를 거느리고 사납게 왔다. 곧 구마케와 여러 아타이들이 함께 화합하고 군사 또한 따랐다.
이에 다케치 황자의 명을 들어 호즈미노오미 모모타리를 오하리다의 무기고에서 불렀다. 이에 모모타리가 말을 타고 느리게 와서 아스카데라 서쪽 느티나무 아래에 이르렀다.
어떤 사람이 말하였다. "말에서 내려라." 그때 모모타리가 말에서 늦게 내렸다. 곧 그 옷깃을 잡아 끌어 떨어뜨리고 화살 하나를 쏘아 맞혔다. 이로 인하여 칼을 뽑아 베어 죽였다.
이에 호즈미노오미 이오에와 모노노베노오비토 히무카를 가두었다가 이윽고 놓아주어 군중에 두었다. 또 다카사카노오키미와 와카사노오키미를 불러 군사를 따르게 하였다.
이윽고 오호토모노무라지 야스마로와 사카노우에노아타이 오키나와 사미노키미 스쿠나마로들을 후와노미야에 보내어 일의 사정을 아뢰게 하였다. 천황이 크게 기뻐하였다. 이로 인하여 곧 후케히를 장군으로 임명하였다.
이때 미와노키미 다케치마로와 가모노키미 에미시들과 여러 호걸이 메아리처럼 다 장군의 깃발 아래 모였다. 이에 오미를 습격하기를 꾀하였다. 이로 인하여 무리 가운데 뛰어난 이를 가려 딴 장수와 군감으로 삼았다.
경인일에 처음으로 나라로 향하였다.
13여러 길로 나아가다
秋七月庚寅朔辛卯,天皇遣紀臣阿閉麻呂、多臣品治、三輪君子首、置始連菟,率數萬眾,自伊勢大山越之向倭。且遣村國連男依、書首根麻呂、和珥部臣君手、膽香瓦臣安倍,率數萬眾,自不破出,直入近江。恐其眾與近江師難別,以赤色著衣上。然後別命多臣品治,率三千眾屯于莿荻野,遣田中臣足麻呂,令守倉歷道。時近江命山部王、蘇賀臣果安、巨勢臣比等,率數萬眾,將襲不破,而軍于犬上川濱。山部王為蘇賀臣果安、巨勢臣比等見殺。由是亂,以軍不進。乃蘇賀臣果安自犬上返,刺頸而死。是時,近江將軍羽田公矢國,其子大人等,率己族來降。因授斧鉞,拜將軍,即北入越。先是,近江放精兵,忽衝玉倉部邑。則遣出雲臣狛,擊追之。壬辰,將軍吹負屯于乃樂山上。時荒田尾直赤麻呂啟將軍曰:「古京是本營處也,宜固守。」將軍從之。則遣赤麻呂、紀部首子人,令戍古京。於是,赤麻呂等詣古京,而解取道路橋板,作楯,豎於京邊衢以守之。
가을 칠월 경인 초하루 신묘일에 천황이 기노오미 아헤마로와 오노오미 혼지와 미와노키미 고비토와 오키소메노무라지 우사기를 보내어 수만 무리를 거느리고 이세의 큰 산을 넘어 야마토로 향하게 하였다.
또 무라쿠니노무라지 오요리와 후미노오비토 네마로와 와니베노오미 기미테와 이카고노오미 아베를 보내어 수만 무리를 거느리고 후와에서 나와 곧바로 오미에 들게 하였다. 그 무리가 오미 군사와 가리기 어려울까 두려워 붉은빛을 옷 위에 붙였다.
그런 뒤에 따로 오노오미 혼지에게 명하여 삼천 무리를 거느리고 다라노에 진 치게 하고, 다나카노오미 다리마로를 보내어 구라후의 길을 지키게 하였다.
그때 오미가 야마베노오키미와 소가노오미 하타야스와 고세노오미 히토에게 명하여 수만 무리를 거느리고 후와를 습격하게 하여 이누카미강 갯가에 진 쳤다. 야마베노오키미가 소가노오미 하타야스와 고세노오미 히토에게 죽임을 당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어지러워져 군사가 나아가지 못하였다. 이에 소가노오미 하타야스가 이누카미에서 돌아와 목을 찔러 죽었다.
이때 오미의 장군 하타노키미 야쿠니와 그 아들 우시들이 제 겨레를 거느리고 와서 항복하였다. 이로 인하여 도끼를 주어 장군으로 임명하니 곧 북으로 고시에 들었다.
이보다 앞서 오미가 날랜 군사를 놓아 홀연히 다마쿠라베 마을을 찔렀다. 곧 이즈모노오미 고마를 보내어 쳐 쫓게 하였다.
임진일에 장군 후케히가 나라산 위에 진 쳤다. 그때 아라타오노아타이 아카마로가 장군에게 아뢰었다. "옛 서울이 이 본디 진 칠 곳이니 마땅히 굳게 지켜야 합니다."
장군이 따랐다. 곧 아카마로와 기베노오비토 고히토를 보내어 옛 서울을 지키게 하였다. 이에 아카마로들이 옛 서울에 나아가 길의 다리 널을 풀어 가져다 방패를 만들어 서울 가의 거리에 세워 지켰다.
14후케히가 지다
癸巳,將軍吹負與近江將大野君果安,戰于乃樂山,為果安所敗。軍卒悉走,將軍吹負僅得脫身。於是果安追至八口,屳山而視京,每街豎楯。疑有伏兵,乃稍引還之。甲午,近江別將田邊小隅,越鹿深山,而卷幟抱鼓,詣于倉歷。以夜半之,銜梅穿城,劇入營中。則畏己卒與足麻侶眾難別,以每人令言:「金。」仍拔刀而毆之,非言「金」乃斬耳。於是,足摩侶眾悉亂之,事忽起,不知所為。唯足摩侶聰知之,獨言:「金。」以僅得免。乙未,小隅亦進,欲襲莿荻野營而忽到。爰,將軍多臣品治遮之,以精兵追擊之。小隅獨免走焉。以後,遂復不來也。丙申,男依等與近江軍戰息長橫河,破之,斬其將境部連藥。戊戌,男依等討近江將秦友足於鳥籠山,斬之。是日,東道將軍紀臣阿閉麻呂等聞倭京將軍大伴連吹負為近江所敗,則分軍以遣置始連菟,率千餘騎而急馳倭京。壬寅,男依等戰于安河濱,大破。則獲社戶臣大口、土師連千嶋。
계사일에 장군 후케히가 오미 장수 오노노키미 하타야스와 나라산에서 싸워 하타야스에게 졌다. 군졸이 다 달아나고 장군 후케히가 겨우 몸만 벗어났다.
이에 하타야스가 뒤쫓아 야구치에 이르러 산에 올라 서울을 보니 거리마다 방패가 세워져 있었다. 숨은 군사가 있을까 의심하여 이에 차츰 이끌고 돌아갔다.
갑오일에 오미의 딴 장수 다나베노오스미가 가후카산을 넘어 깃발을 말고 북을 안고 구라후에 이르렀다. 밤중에 하무를 입에 물고 성을 뚫어 사납게 진영 안에 들었다. 곧 제 군졸과 다리마로의 무리를 가리기 어려울까 두려워 사람마다 「금(金)」이라 말하게 하였다. 이어 칼을 뽑아 치되 「금」이라 말하지 않으면 베었다.
이에 다리마로의 무리가 다 어지러워졌다. 일이 홀연히 일어나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하였다. 오직 다리마로만 총명하여 알고 홀로 「금」이라 말하여 겨우 면할 수 있었다.
을미일에 오스미가 또 나아가 다라노 진영을 습격하려 하여 홀연히 이르렀다. 이에 장군 오노오미 혼지가 막고 날랜 군사로 뒤쫓아 쳤다. 오스미가 홀로 벗어나 달아났다. 그 뒤로 마침내 다시 오지 않았다.
병신일에 오요리들이 오미 군사와 오키나가의 요코강에서 싸워 깨뜨리고 그 장수 사카이베노무라지 구스리를 베었다.
무술일에 오요리들이 오미 장수 하타노도모타리를 도코산에서 쳐서 베었다.
이날 동쪽 길의 장군 기노오미 아헤마로들이 야마토 서울의 장군 오호토모노무라지 후케히가 오미에게 졌다는 말을 듣고, 곧 군사를 나누어 오키소메노무라지 우사기를 보내어 천여 기를 거느리고 급히 야마토 서울로 달리게 하였다.
임인일에 오요리들이 야스강 갯가에서 싸워 크게 깨뜨렸다. 곧 고소베노오미 오구치와 하지노무라지 지시마를 사로잡았다.
15세타의 다리
丙午,討栗太軍,追之。辛亥,男依等到瀨田。時大友皇子及群臣等共營於橋西,而大成陣,不見其後。旗幟蔽野,埃塵連天,鉦鼓之聲,聞數十里。列弩亂發,矢下如雨。其將智尊率精兵,以先鋒距之。仍切斷橋中須容三丈,置一長板,設有蹋板度者,乃引板將墮。是以不得進襲。於是,有勇敢士,曰大分君稚臣。則棄長矛以重擐甲,拔刀急蹈板度之。便斷著板綱,以被矢入陣。眾悉亂而散走之,不可禁。時將軍智尊,拔刀斬退者。而不能止。因以斬智尊於橋邊。則大友皇子、左右大臣等僅身免以逃之。男依等即軍于粟津岡下。是日,羽田公矢國、出雲臣狛,合共攻三尾城,降之。壬子,男依等斬近江將犬養連五十君及谷直鹽手於粟津市。於是,大友皇子走無所入,乃還隱山前,以自縊焉。時左右大臣及群臣,皆散亡。唯物部連麻呂且一二舍人從之。初將軍吹負向乃樂至稗田之日,有人曰:「自河內,軍多至。
병오일에 구리타의 군사를 쳐서 쫓았다.
신해일에 오요리들이 세타에 이르렀다. 그때 오토모 황자와 여러 신하들이 함께 다리 서쪽에 진 쳐 크게 진을 이루니 그 뒤가 보이지 않았다. 깃발이 들을 덮고 티끌이 하늘에 잇닿았으며 징과 북 소리가 수십 리에 들렸다. 벌여 놓은 쇠뇌가 어지러이 쏘아 화살이 비처럼 떨어졌다.
그 장수 지손(智尊)이 날랜 군사를 거느려 앞장서 막았다. 이어 다리 가운데를 세 길쯤 끊고 긴 널 하나를 놓아, 널을 밟고 건너는 이가 있으면 널을 당겨 떨어뜨리게 하였다. 이 때문에 나아가 습격할 수 없었다.
이에 용감한 군사가 있어 오키다노키미 와카오미라 하였다. 곧 긴 창을 버리고 갑옷을 겹쳐 입고 칼을 뽑아 급히 널을 밟고 건넜다. 곧 널에 붙은 밧줄을 끊고 화살을 맞으며 진에 들었다.
무리가 다 어지러워져 흩어져 달아나 막을 수 없었다. 그때 장군 지손이 칼을 뽑아 물러나는 이를 베었으나 그치게 하지 못하였다. 이로 인하여 지손을 다리 가에서 베었다.
곧 오토모 황자와 좌우 대신들이 겨우 몸만 면하여 달아났다. 오요리들이 곧 아와즈 언덕 아래 진 쳤다.
이날 하타노키미 야쿠니와 이즈모노오미 고마가 함께 미오성을 쳐서 항복시켰다.
임자일에 오요리들이 오미 장수 이누카이노무라지 이키미와 다니노아타이 시오테를 아와즈 저잣거리에서 베었다.
이에 오토모 황자가 달아나 들 곳이 없어 이에 돌아와 야마사키에 숨어 스스로 목매었다. 그때 좌우 대신과 여러 신하가 다 흩어져 달아났다. 오직 모노노베노무라지 마로와 한두 도네리만 따랐다.
처음에 장군 후케히가 나라로 향하여 히에다에 이르렀던 날, 어떤 사람이 말하였다. "가와치에서 군사가 많이 이른다.
16가와치 쪽 싸움
」則遣坂本臣財、長尾直真墨、倉墻直麻呂、民直小鮪、谷直根麻呂,率三百軍士,距於龍田。復遣佐味君少麻呂,率數百人,屯大坂。遣鴨君蝦夷,率數百人,守石手道。是日,坂本臣財等次于平石野。時聞近江軍在高安城而登之。乃近江軍知財等來,以悉焚稅倉,皆散亡。仍宿城中。會明,臨見西方,自大津、丹比兩道,軍眾多至,顯見旗幟。有人曰:「近江將壹伎史韓國之師也。」財等自高安城降,以渡衛我河,與韓國戰于河西。財等眾少不能距。先是,遣紀臣大音,令守懼坂道。於是財等退懼坂,而居大音之營。是時,河內國司守來目臣鹽籠,有歸於不破宮之情,以集軍眾。爰韓國到之,密聞其謀,而將殺鹽籠。鹽籠知事漏,乃自死焉。經一日,近江軍當諸道而多至。即並不能相戰,以解退。是日,將軍吹負為近江所敗,以獨率一二騎走之。逮于墨坂,遇逢菟軍至,更還屯金綱井,而招聚散卒。於是,聞近江軍至大坂道,而將軍引軍如西。
" 곧 사카모토노오미 다카라와 나가오노아타이 마스미와 구라카키노아타이 마로와 다미노아타이 오시비와 다니노아타이 네마로를 보내어 군사 삼백을 거느리고 다쓰타에서 막게 하였다. 다시 사미노키미 스쿠나마로를 보내어 수백 사람을 거느리고 오사카에 진 치게 하였다. 가모노키미 에미시를 보내어 수백 사람을 거느리고 이와테 길을 지키게 하였다.
이날 사카모토노오미 다카라들이 히라이시노에 머물렀다. 그때 오미 군사가 다카야스성에 있다는 말을 듣고 올랐다. 이에 오미 군사가 다카라들이 오는 것을 알고 세곡 곳간을 다 태우고 다 흩어져 달아났다. 이어 성안에 묵었다.
날이 밝으매 서쪽을 바라보니 오쓰와 다지히 두 길에서 군사가 많이 이르러 깃발이 뚜렷이 보였다. 어떤 사람이 말하였다. "오미의 장수 이키노후비토 가라쿠니의 군사다."
다카라들이 다카야스성에서 내려와 에가강을 건너 가라쿠니와 강 서쪽에서 싸웠다. 다카라들이 무리가 적어 막을 수 없었다.
이보다 앞서 기노오미 오오토를 보내어 오소사카 길을 지키게 하였다. 이에 다카라들이 오소사카로 물러나 오오토의 진영에 있었다.
이때 가와치의 구니노쓰카사노카미 구메노오미 시오코메가 후와노미야에 돌아갈 뜻이 있어 군사를 모았다. 이에 가라쿠니가 이르러 그 꾀를 몰래 듣고 시오코메를 죽이려 하였다. 시오코메가 일이 새었음을 알고 이에 스스로 죽었다.
하루가 지나 오미 군사가 여러 길에서 많이 이르렀다. 곧 아울러 서로 싸울 수 없어 물러났다.
이날 장군 후케히가 오미에게 져서 홀로 한두 기를 거느리고 달아났다. 스미사카에 이를 즈음에 우사기의 군사가 이른 것을 만나 다시 돌아와 가나쓰나노이에 진 치고 흩어진 군졸을 불러 모았다.
이에 오미 군사가 오사카 길에 이른다는 말을 듣고 장군이 군사를 이끌고 서쪽으로 갔다.
17하시하카의 싸움
到當麻衢,與壹伎史韓國軍戰葦池側。時有勇士來目者,拔刀急馳,直入軍中。騎士繼踵而進之。則近江軍悉走之,追斬甚多。爰將軍令軍中曰:「其發兵之元意,非殺百姓,是為元兇。故莫妄殺。」於是,韓國離軍獨逃也。將軍遙見之,令來目以俾射。然不中,而遂走得免焉。將軍更還本營。時東師頻多臻。則分軍,各當上中下道而屯之。唯將軍吹負親當中道。於是,近江將犬養連五十君,自中道至之留村屋,而遣別將廬井造鯨,率二百精兵,衝將軍營。當時麾下軍少,以不能距。爰有大井寺奴名德麻呂等五人,從軍。即以德麻呂等為先鋒,以進射之。鯨軍不能進。是日,三輪君高市麻呂、置始連菟當上道,戰于箸陵。大破近江軍,而乘勝兼斷鯨軍之後。鯨軍悉解走,多殺士卒。鯨乘白馬以逃之,馬墮泥田,不能進行。則將軍吹負謂甲斐勇者曰:「其乘白馬者,廬井鯨也。急追以射。」於是甲斐勇者馳追之,比及鯨,鯨急鞭馬,馬能拔以出泥,即馳之得脫。
다이마 거리에 이르러 이키노후비토 가라쿠니의 군사와 아시이케 곁에서 싸웠다.
그때 용감한 군사가 있어 구메라 하였다. 칼을 뽑아 급히 달려 곧바로 군중에 들었다. 기병이 발꿈치를 이어 나아갔다. 곧 오미 군사가 다 달아나 뒤쫓아 벤 것이 매우 많았다.
이에 장군이 군중에 영을 내렸다. "저 군사를 낸 본뜻은 백성을 죽이려 함이 아니라 으뜸가는 흉한 이를 치려 함이다. 그러므로 함부로 죽이지 마라."
이에 가라쿠니가 군사를 떠나 홀로 달아났다. 장군이 멀리 보고 구메를 시켜 쏘게 하였다. 그러나 맞지 않아 마침내 달아나 벗어났다.
장군이 다시 본디 진영으로 돌아왔다. 그때 동쪽 군사가 자주 많이 이르렀다. 곧 군사를 나누어 각각 위·가운데·아래 길을 맡아 진 쳤다. 오직 장군 후케히만 몸소 가운데 길을 맡았다.
이에 오미 장수 이누카이노무라지 이키미가 가운데 길에서 무라야에 이르러 머물고, 딴 장수 이오이노미야쓰코 구지라를 보내어 이백 날랜 군사를 거느리고 장군의 진영을 찌르게 하였다.
그때 깃발 아래 군사가 적어 막을 수 없었다. 이에 오이데라의 종 도쿠마로라는 이들 다섯 사람이 군사를 따르고 있었다. 곧 도쿠마로들을 앞장세워 나아가 쏘게 하니 구지라의 군사가 나아가지 못하였다.
이날 미와노키미 다케치마로와 오키소메노무라지 우사기가 위 길을 맡아 하시하카에서 싸웠다. 오미 군사를 크게 깨뜨리고 이긴 기세를 타 아울러 구지라 군사의 뒤를 끊었다. 구지라 군사가 다 흩어져 달아나고 군졸이 많이 죽었다.
구지라가 흰말을 타고 달아났다. 말이 진흙 밭에 빠져 나아갈 수 없었다.
곧 장군 후케히가 가이의 용감한 이에게 일렀다. "저 흰말 탄 이가 이오이노쿠지라다. 급히 쫓아 쏘아라."
이에 가이의 용감한 이가 달려 쫓았다. 구지라에게 미칠 즈음에 구지라가 급히 말에 채찍질하니 말이 능히 빠져나와 곧 달려 벗어났다.
18세 신의 가르침
將軍亦更還本處而軍之。自此以後,近江軍遂不至。先是軍金綱井之時,高市郡大領高市縣主許梅,儵忽口閉,而不能言也。三日之後,方著神以言:「吾者,高市社所居,名事代主神。又身狹社所居,名生靈神者也。」乃顯之曰:「於神日本磐余彥天皇之陵,奉馬及種種兵器。」便亦言:「吾者,立皇御孫命之前後,以送奉于不破而還焉。今且立官軍中而守護之。」且言:「自西道,軍眾將至之。宜慎也。」言訖則醒矣。故是以便遣許梅,而祭拜御陵,因以奉馬及兵器。又捧幣而禮祭高市、身狹二社之神。然後壹伎史韓國自大坂來。故時人曰:「二社神所教之辭,適是也。」又,村屋神著祝曰:「今自吾社中道,軍眾將至。故宜塞社中道。」故,未經幾日,廬井造鯨軍,自中道至。時人曰:「即神所教之辭是也。」軍政既訖,將軍等舉是三神教言而奏之。即敕登進三神之品以祠焉。辛亥,將軍吹負既定倭地,便越大坂往難波。
장군이 또한 다시 본디 자리로 돌아와 진 쳤다. 이 뒤로 오미 군사가 마침내 이르지 않았다.
이보다 앞서 가나쓰나노이에 진 쳤을 때 다케치군의 대령 다케치노아가타누시 고우메가 갑자기 입이 닫혀 말하지 못하였다. 사흘 뒤에 바야흐로 신에 실려 말하였다. "나는 다케치 신사에 사는 이름이 고토시로누시노카미요, 또 무사 신사에 사는 이름이 이쿠타마노카미다."
이에 드러내어 말하였다. "간야마토이와레비코천황의 능에 말과 온갖 무기를 바쳐라."
곧 또 말하였다. "나는 황손존의 앞뒤에 서서 후와까지 보내어 받들고 돌아왔다. 이제 또 관군 가운데 서서 지켜 주겠다."
또 말하였다. "서쪽 길에서 군사가 이를 것이니 마땅히 삼가라."
말을 마치매 곧 깨어났다.
그러므로 이로써 곧 고우메를 보내어 능에 제사하고 절하며, 이로 인하여 말과 무기를 바쳤다. 또 폐백을 받들어 다케치와 무사 두 신사의 신에게 예로 제사하였다.
그런 뒤에 이키노후비토 가라쿠니가 오사카에서 왔다. 그러므로 그때 사람들이 말하였다. "두 신사 신이 가르친 말이 마침 이것이다."
또 무라야 신이 축원하는 이에게 실려 말하였다. "이제 우리 신사의 가운데 길에서 군사가 이를 것이다. 그러므로 마땅히 신사의 가운데 길을 막으라."
그러므로 며칠이 지나지 않아 이오이노미야쓰코 구지라의 군사가 가운데 길에서 이르렀다. 그때 사람들이 말하였다. "곧 신이 가르친 말이 이것이다."
군사 일이 이미 끝나매 장군들이 이 세 신의 가르친 말을 들어 아뢰었다. 곧 칙명으로 세 신의 품계를 올려 제사하게 하였다.
신해일에 장군 후케히가 이미 야마토 땅을 평정하고 곧 오사카를 넘어 나니와로 갔다.
19오토모 황자의 머리를 바치다
以餘別將等各自三道進,至于山前,屯河南。即將軍吹負,難波小郡而仰以西諸國司等,令進官鑰、驛鈴、傳印。癸丑,諸將軍等悉會於筱浪,而探捕左右大臣及諸罪人等。乙卯,將軍等向於不破宮。因以捧大友皇子頭,而獻于營前。
나머지 딴 장수들이 각각 세 길로 나아가 야마사키에 이르러 강 남쪽에 진 쳤다.
곧 장군 후케히가 나니와의 오코리에서 서쪽 여러 나라의 구니노쓰카사들에게 일러 관가의 열쇠와 역말 방울과 전인(傳印)을 올리게 하였다.
계축일에 여러 장군이 다 사사나미에 모여 좌우 대신과 여러 죄인들을 찾아 잡았다.
을묘일에 장군들이 후와노미야로 향하였다. 이로 인하여 오토모 황자의 머리를 받들어 진영 앞에 바쳤다.
협주 1
筱,此云佐佐。
사사(筱)는 사사라 읽는다.
20죄를 다스리다
八月庚申朔甲申,命高市皇子,宣近江群臣犯狀。則重罪八人坐極刑。仍斬右大臣中臣連金於淺井田根。是日,左大臣蘇我臣赤兄、大納言巨勢臣比等及子孫,并中臣連金之子、蘇我臣果安之子,悉配流。以餘悉赦之。先是,尾張國司守少子部連鉏鉤,匿山自死之。天皇曰:「鉏鉤,有功者也。無罪何自死,其有隱謀歟?」丙戌,恩敕諸有功勳者,而顯寵賞。
팔월 경신 초하루 갑신일에 다케치 황자에게 명하여 오미 여러 신하의 죄상을 펴게 하였다. 곧 무거운 죄 여덟 사람이 극형에 놓였다. 이어 우대신 나카토미노무라지 카네를 아자이의 다네에서 베었다.
이날 좌대신 소가노오미 아카에와 대납언 고세노오미 히토와 자손과, 아울러 나카토미노무라지 카네의 아들과 소가노오미 하타야스의 아들을 다 귀양 보냈다. 나머지는 다 놓아주었다.
이보다 앞서 오와리의 구니노쓰카사노카미 지이사코베노무라지 사히치가 산에 숨어 스스로 죽었다. 천황이 말하였다. "사히치는 공이 있는 이다. 죄가 없는데 어찌 스스로 죽었는가. 숨은 꾀가 있었는가."
병술일에 여러 공훈 있는 이에게 은혜로운 칙명을 내려 사랑과 상을 드러내었다.
21기요미하라노미야
九月己丑朔丙申,車駕還宿伊勢桑名。丁酉,宿鈴鹿。戊戌,宿阿閉。己亥,宿名張。庚子,詣于倭京,而御嶋宮。癸卯,自嶋宮移岡本宮。是歲,營宮室於岡本宮南。即冬,遷以居焉。是謂飛鳥淨御原宮。
구월 기축 초하루 병신일에 임금의 수레가 돌아와 이세의 구와나에 묵었다. 정유일에 스즈카에 묵었다. 무술일에 아헤에 묵었다. 기해일에 나바리에 묵었다.
경자일에 야마토 서울에 나아가 시마노미야에 나아갔다. 계묘일에 시마노미야에서 오카모토노미야로 옮겼다.
이해에 궁실을 오카모토노미야 남쪽에 지었다. 곧 겨울에 옮겨 살았다. 이를 아스카의 기요미하라노미야라 한다.
22신라 손님을 대접하다
冬十一月戊子朔辛亥,饗新羅客金押實等於筑紫。即日,賜祿各有差。
겨울 십일월 무자 초하루 신해일에 신라 손님 김압실(金押實)들을 쓰쿠시에서 대접하였다. 그날로 녹을 주되 각각 차등이 있었다.
23공훈에 관위를 더하다
十二月戊午朔辛酉,選諸有功勳者,增加冠位。仍賜小山位以上,各有差。壬申,船一隻,賜新羅客。癸未,金押實等罷歸。是月,大紫韋那公高見,薨。
십이월 무오 초하루 신유일에 여러 공훈 있는 이를 가려 관위를 더하였다. 이어 소산위 이상에게 주되 각각 차등이 있었다.
임신일에 배 한 척을 신라 손님에게 주었다. 계미일에 김압실들이 돌아갔다.
이달에 대자 이나노키미 다카미가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