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1 — 광종과 성종高麗 一
1기자의 나라에서 고려까지
高麗,本曰高句驪。禹別九州,屬冀州之地,周為箕子之國,漢之玄菟郡也。在遼東,蓋扶餘之別種,以平壤城為國邑。漢、魏以來,常通職貢,亦屢為邊寇。隋煬帝再舉兵,唐太宗親駕伐之,皆不克。高宗命李勣征之,遂拔其城,分其地為郡縣。唐末,中原多事,遂自立君長。後唐同光、天成中,其主高氏累奉職貢。長興中,權知國事王建承高氏之位,遣使朝貢,以建為玄菟州都督,充大義軍使,封高麗國王。晉天福中,復來朝貢。開運二年,建死,子武襲位。漢乾祐末,武死,子昭權知國事。周廣順元年,遣使朝貢,以昭為特進、檢校太保、使持節、玄菟州都督、大義軍使、高麗國王。顯德二年,又遣使來貢,加開府儀同三司、檢校太尉,又加太師。
고려는 본디 고구려라 한다. 우임금이 구주를 나눌 때 기주에 속한 땅이요, 주나라 때는 기자의 나라였고 한나라의 현도군이다. 요동에 있으니 대개 부여의 별종으로, 평양성을 나라 도읍으로 삼았다. 한·위 이래 늘 직공을 통했으나 또한 여러 번 변경의 도적이 되었다. 수 양제가 두 번 군사를 일으키고 당 태종이 친히 거둥해 쳤으나 다 이기지 못했다. 고종이 이적에게 명해 정벌하여 드디어 그 성을 빼앗고 그 땅을 나누어 군현으로 삼았다. 당나라 말에 중원에 일이 많자 드디어 스스로 군장을 세웠다.
후당 동광·천성 연간에 그 임금 고씨가 여러 번 직공을 받들었다. 장흥 연간에 권지국사 왕건이 고씨의 자리를 이어 사신을 보내 조공하니, 건을 현도주도독으로 삼아 대의군사에 충임하고 고려국왕에 봉하였다. 후진 천복 연간에 다시 와서 조공하였다. 개운 이년에 건이 죽고 아들 무(혜종)가 자리를 이었다. 후한 건우 말에 무가 죽고 아들 소(광종)가 권지국사가 되었다. 후주 광순 원년에 사신을 보내 조공하니, 소를 특진·검교태보·사지절·현도주도독·대의군사·고려국왕으로 삼았다. 현덕 이년에 또 사신을 보내 조공하니 개부의동삼사·검교태위를 더하고 또 태사를 더하였다.
2광종의 조공
建隆三年十月,昭遣其廣評侍郎李興祐、副使李勵希、判官李彬等來朝貢。
건륭 삼년 10월에 소가 광평시랑 이흥우, 부사 이려희, 판관 이빈 등을 보내 조공하였다.
3식읍 칠천 호의 제서
四年春,降制曰:「古先哲后,奄宅中區,曷嘗不同文軌於萬方,覃聲教於四海?顧予涼德,猥被鴻名,爰致賓王,宜優錫命。開府儀同三司、檢校太師、玄菟州都督、充大義軍使、高麗國王昭,日邊鍾粹,遼左推雄,習箕子之餘風,撫朱蒙之舊俗。而能占雲候海,奉贄充庭,言念傾輸,實深嘉尚。是用賜之懿號,醻以公田,載推柔遠之恩,式奬拱辰之志。於戲!來朝萬里,美愛戴之有孚。柔撫四封,庶混并之無外。永保東裔,聿承天休。可加食邑七千戶,仍賜推誠順化保義功臣。」其年九月,遣使時贊等來貢,涉海,值大風,船破,溺死者七十餘人,贊僅免,詔加勞恤。
4년 봄에 제서를 내렸다. 「옛 밝은 임금들은 중원에 자리 잡고서 어찌 일찍이 만방에 문자와 수레바퀴를 같이하고 사해에 성교를 펴지 않았으랴. 돌아보건대 나는 얇은 덕으로 외람되이 큰 이름을 입었는데, 이에 손님으로 조회하는 왕을 오게 하였으니 마땅히 석명(錫命)을 두터이 해야 하리라. 개부의동삼사·검교태사·현도주도독·충대의군사·고려국왕 소는 해 뜨는 곳의 정수를 모아 요동에서 영웅으로 추대되어, 기자의 남긴 풍교를 익히고 주몽의 옛 풍속을 어루만진다. 구름을 살피고 바다를 헤아려 폐백을 받들고 뜰에 나오니, 기울여 바치는 정성을 생각하면 실로 가상함이 깊다. 이에 아름다운 칭호를 내리고 공전(公田)으로 갚아, 먼 데를 품는 은혜를 펴고 북극성을 두르는 뜻을 장려한다. 아, 만 리에 조회해 오니 사랑하고 떠받드는 미더움이 아름답다. 사방 지경을 부드럽게 어루만져 안팎 없이 하나 되기를 바라노라. 길이 동쪽 변방을 보전하여 하늘의 아름다움을 이으라. 식읍 칠천 호를 더하고 아울러 추성순화보의공신을 내린다.」
그해 9월에 사신 시찬 등을 보내 조공하는데, 바다를 건너다 큰 바람을 만나 배가 부서져 빠져 죽은 자가 칠십여 명이요 찬은 겨우 면하니, 조서로 위로하고 도타이 구휼하였다.
4서희가 상서를 더하다
開寶五年,遣使以方物來獻,制加食邑,賜推誠順化守節保義功臣。進奉使內議侍郎徐熙加檢校兵部尚書,副使內奉卿崔鄴加檢校司農卿並兼御史大夫,判官廣評侍郎康禮試少府少監,錄事廣評員外郎劉隱加檢校尚書、金部郎中,皆厚禮遣之。
개보 오년에 사신을 보내 방물을 바치니, 제서로 식읍을 더하고 추성순화수절보의공신을 내렸다. 진봉사 내의시랑 서희에게 검교병부상서를 더하고, 부사 내봉경 최업에게 검교사농경에 어사대부 겸직을 더하고, 판관 광평시랑 강례를 시소부소감으로, 녹사 광평원외랑 유은에게 검교상서·금부낭중을 더하여, 다 예를 두터이 하여 보냈다.
5경종이 나라를 맡다
昭卒,其子伷權領國事。
소가 죽고 그 아들 주(경종)가 나랏일을 임시로 맡았다.
6왕위를 잇다
九年,伷遣使趙遵禮奉土貢,以父沒當承襲,來聽朝旨。授伷檢校太保、玄菟州都督、大義軍使,封高麗國王。
9년에 주가 사신 조준례를 보내 토공을 바치고, 아버지가 죽어 이어받아야 하므로 와서 조정의 뜻을 들었다. 주에게 검교태보·현도주도독·대의군사를 제수하고 고려국왕에 봉하였다.
7김행성의 유학
太宗即位,加檢校太傅,改大義軍為大順軍,遣左司禦副率于延超、司農寺丞徐昭文使其國。伷遣國人金行成入就學於國子監。
태종이 즉위하자 검교태부를 더하고 대의군을 대순군으로 고쳤으며, 좌사어부솔 우연초와 사농시승 서소문을 그 나라에 사신 보냈다. 주가 나라 사람 김행성을 보내 국자감에 들어가 배우게 하였다.
8진사에 급제하다
太平興國二年,遣其子元輔以良馬、方物、兵器來貢。其年,行成擢進士第。
태평흥국 이년에 그 아들 원보를 보내 좋은 말과 방물과 병기를 바쳤다. 그해에 행성이 진사시에 뽑혔다.
9해마다 잇는 조공
三年,又遣使貢方物、兵器,加伷檢校太師,以太子中允直舍人院張洎、著作郎直史館句中正為使。
3년에 또 사신을 보내 방물과 병기를 바치니 주에게 검교태사를 더하고, 태자중윤 직사인원 장계와 저작랑 직사관 구중정을 사신으로 삼았다.
10왕선의 사행
四年,復遣供奉官、閤門祗候王僎使其國。
4년에 다시 공봉관·합문지후 왕선을 그 나라에 사신 보냈다.
11거듭 방물을 바치다
五年六月,再遣使貢方物。六年,又遣使來貢。
5년 6월에 다시 사신을 보내 방물을 바치고, 6년에 또 사신을 보내 바쳤다.
12성종이 자리를 잇다
七年,伷卒,其弟治知國事,遣使金全奉金銀線罽錦袍褥、金銀飾刀劍弓矢、名馬、香藥來貢,且求襲位。授治檢校太保、玄菟州都督,充大順軍使,封高麗國王,以監察御史李巨源、禮記博士孔維奉使。
7년에 주가 죽고 그 아우 치(성종)가 국사를 맡아, 사신 김전을 보내 금은실 모직에 비단을 댄 도포와 요, 금은으로 꾸민 칼·검·활·화살, 이름난 말, 향약을 바치고 아울러 자리 잇기를 청하였다. 치에게 검교태보·현도주도독을 제수하고 대순군사에 충임하며 고려국왕에 봉하고, 감찰어사 이거원과 예기박사 공유를 사신으로 받들어 보냈다.
13한수령의 조공
雍熙元年,遣使韓遂齡以方物來貢。
옹희 원년에 사신 한수령을 보내 방물을 바쳤다.
14검교태부를 더하다
二年,加治檢校太傅,遣翰林侍書王著、侍讀呂文仲充使。
2년에 치에게 검교태부를 더하고, 한림시서 왕저와 시독 여문중을 사신으로 보냈다.
15북벌을 알리는 조서
三年,出師北伐,以其國接契丹境,常為所侵,遣監察御史韓國華賷詔諭之曰:「朕誕膺丕構,奄宅萬方,華夏蠻貊,罔不率俾。蠢茲北裔,侵敗王略,幽薊之地,中朝土疆,晉、漢多虞,夤緣盜據。今國家照臨所及,書軌大同,豈使齊民陷諸獷俗?今已董齊師旅,殄滅妖氛。惟王久慕華風,素懷明略,效忠純之節,撫禮義之邦。而接彼邊疆,罹於蠆毒,舒泄積憤,其在茲乎!可申戒師徒,迭相掎角,協比隣國,同力盪平。奮其一鼓之雄,戡此垂亡之寇,良時不再,王其圖之!應俘獲生口、牛羊、財物、器械,並給賜本國將士,用申賞勸。」
3년에 군사를 내어 북벌하는데, 그 나라가 거란 지경에 접하여 늘 침노당하므로 감찰어사 한국화를 보내 조서를 지니고 타이르게 하였다. 「짐이 큰 기업을 이어받아 만방을 차지하니 화하와 만맥이 따르지 않음이 없다. 꿈틀대는 저 북쪽 오랑캐가 왕의 강토를 침노해 무너뜨리니, 유주·계주 땅은 중조의 강토인데 진(晉)·한(漢)이 근심 많던 때를 틈타 연줄로 훔쳐 차지하였다. 이제 국가의 비침이 미치는 곳마다 문자와 수레바퀴가 크게 같으니, 어찌 백성들을 사나운 풍속에 빠진 채 두랴. 이제 이미 군사를 정돈하여 요망한 기운을 없애려 한다. 왕은 오래 중화의 풍교를 사모하고 본디 밝은 계략을 품어, 충순한 절개를 바치고 예의의 나라를 어루만진다. 그런데 저 변경에 접하여 독한 해를 입었으니, 쌓인 분함을 풀 날이 바로 이때가 아닌가! 군사를 경계해 서로 기각을 이루고 이웃 나라와 힘을 합쳐 함께 쓸어 평정하라. 한 번 북 울리는 기세를 떨쳐 다 죽어 가는 도적을 이기라. 좋은 때는 다시 오지 않으니 왕은 도모하라! 사로잡는 생구와 소·양·재물·기계는 다 본국 장사들에게 주어 상과 권면을 펴게 하리라.」
16여진의 무고
先是,契丹伐女真國,路由高麗之界,女真意高麗誘導構禍,因貢馬來愬于朝,且言高麗與契丹結好,倚為勢援,剽略其民,不復放還。洎高麗使韓遂齡入貢,太宗因出女真所上告急木契以示遂齡,仍令歸白本國,還其所俘之民。治聞之憂懼,及國華至,令人言於國華曰:
이보다 앞서 거란이 여진국을 칠 때 길이 고려 지경을 지났는데, 여진은 고려가 꾀어 이끌어 화를 얽었다 여겨, 말을 바치러 온 김에 조정에 하소연하며 아울러 고려가 거란과 우호를 맺어 세력의 도움으로 기대며 제 백성을 노략하고 돌려보내지 않는다고 말하였다. 고려 사신 한수령이 조공하러 오자, 태종이 여진이 올린 급보의 목계(木契)를 꺼내 수령에게 보이고, 돌아가 본국에 아뢰어 사로잡은 백성을 돌려보내게 하라 하였다. 치가 듣고 근심하고 두려워하다가, 국화가 이르자 사람을 시켜 국화에게 말하게 하였다.
17성종의 해명 — 매하의 급보
:前歲冬末,女真馳木契來告,稱契丹興兵入其封境,恐當道未知,宜豫為之備。當道與女真雖為隣國,而路途遐遠,彼之情偽,素知之矣,貪而多詐,未之信也。其後又遣人告曰,契丹兵騎已濟梅河。當道猶疑不實,未暇營救。俄而契丹雲集,大擊女真,殺獲甚眾,餘族敗散逃遁,而契丹壓背追捕,及于當道西北德昌、德成、威化、光化之境,俘擒而去。時有契丹一騎至德米河北,大呼關城戍卒而告曰:「我契丹之騎也,女真寇我邊鄙,率以為常,今則復仇已畢,整兵回矣。」當道雖聞師退,猶憂不測,乃以女真避兵來奔二千餘眾,資給而歸之。
「지난해 겨울 끝에 여진이 목계를 달려 보내 알리기를, 거란이 군사를 일으켜 제 지경에 들어왔으니 저희 나라(당도)가 미처 모를까 하여 미리 대비하라 하였습니다. 저희와 여진은 비록 이웃 나라이나 길이 멀고, 저들의 참과 거짓은 본디 아는 터라 탐욕스럽고 속임이 많으므로 믿지 않았습니다. 그 뒤 또 사람을 보내 거란의 군마가 이미 매하(梅河)를 건넜다 알렸으나, 저희는 오히려 사실이 아닌가 의심하여 미처 구원하지 못했습니다. 이윽고 거란이 구름같이 모여 여진을 크게 치니 죽이고 사로잡음이 몹시 많았고, 남은 족속은 패해 흩어져 달아났는데 거란이 등을 눌러 뒤쫓아 저희 서북 덕창·덕성·위화·광화의 지경까지 와서 사로잡아 갔습니다. 그때 거란 기병 하나가 덕미하 북쪽에 이르러 관성의 수자리 군졸에게 크게 외치기를 〈나는 거란의 기병이다. 여진이 우리 변방을 노략하기를 예사로 하므로 이제 원수를 다 갚고 군사를 정돈해 돌아간다〉 하였습니다. 저희는 군사가 물러갔다 들었어도 오히려 뜻밖의 일을 근심하여, 난을 피해 도망 온 여진 이천여 명을 물자를 대어 돌려보냈습니다.
18성종의 해명 — 도리어 무고당하다
:女真又勸當道控梅河津要,築治城壘,以為防遏之備,亦以為然。方令行視興功,不意女真潛師奄至,殺略吏民,驅掠丁壯,沒為奴隸,轉徙他方。以其歲貢中朝,不敢發兵報怨,豈期反相誣構,以惑聖聽。當道世稟正朔,踐修職貢,敢有二心,交通外國?況契丹介居遼海之外,復有大梅、小梅二河之阻,女真、渤海本無定居,從何徑路,以通往復?橫罹讒謗,憤氣填膺,日月至明,諒垂昭鑒。
여진이 또 저희에게 매하 나루 요해를 지키고 성루를 쌓아 막을 대비를 하라 권하기에 저희도 그렇다 여겨, 바야흐로 가서 살피고 공사를 일으키게 하던 참에, 뜻밖에 여진이 몰래 군사를 내어 갑자기 이르러 관리와 백성을 죽이고 노략하며 장정을 몰아가 종으로 삼아 딴 데로 옮겼습니다. 저희는 해마다 중조에 조공하는 터라 감히 군사를 내어 원한을 갚지 못했는데, 어찌 도리어 무고로 얽어 성상의 들으심을 어지럽힐 줄 알았겠습니까. 저희는 대대로 정삭을 받들고 직공을 닦아 왔으니, 감히 두 마음을 두어 바깥 나라와 내통하겠습니까. 하물며 거란은 요해(遼海) 밖에 끼어 있고 다시 대매·소매 두 강의 막힘이 있으며, 여진과 발해는 본디 정한 거처가 없으니 어느 길로 오가며 통하겠습니까. 억울하게 참소와 비방을 만나 분한 기운이 가슴에 찼으니, 해와 달같이 지극히 밝으신지라 밝게 비추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19성종의 해명 — 마주 따지기를 청하다
:間者,女真逃難之眾,罔不存恤,亦有授以官秩,尚在當國,其職位高者有勿屈尼于、郍元、尹能達、郍老正、衞迦耶夫等十數人,欲望召赴京闕,與當道入貢之使庭辯其事,則丹石之誠,庶幾昭雪。
지난번 여진의 난을 피해 도망 온 무리를 구휼하지 않음이 없었고 벼슬을 준 이도 있어 아직 저희 나라에 있으니, 그 직위 높은 자로 물굴니우·나원·윤능달·나로정·위가야부 등 십수 명이 있습니다. 바라건대 서울로 불러 저희의 조공 사신과 뜰에서 그 일을 마주 따지게 하시면, 단석 같은 정성이 거의 밝게 씻기리이다.」
20군사를 내고 돌아가다
國華諾之,乃命發兵西會。治遷延未即奉詔,國華屢督之,得報發兵而還,具錄女真之事以奏焉。十月,遣使朝貢,又遣本國學生崔罕、王彬詣國子監肄業。
국화가 승낙하고 이에 군사를 내어 서쪽에서 모이기를 명하였다. 치가 미적거리며 곧 조서를 받들지 않으니 국화가 여러 번 독촉하여, 군사를 낸다는 답을 얻고 돌아가 여진의 일을 갖추 적어 아뢰었다. 10월에 사신을 보내 조공하고, 또 본국 학생 최한과 왕빈을 국자감에 보내 배우게 하였다.
21단공 연간의 사행
端拱元年,加治檢校太尉,以考功員外郎兼侍御史知雜呂端、起居舍人呂祐之為使。
단공 원년에 치에게 검교태위를 더하고, 고공원외랑 겸 시어사지잡 여단과 기거사인 여우지를 사신으로 삼았다.
22여가가 대장경을 받다
二年,遣使來貢,詔其使選官侍郎韓藺卿、副使兵官郎中魏德柔並授金紫光祿大夫,判官少府丞李光授檢校水部員外郎。先是,治遣僧如可賷表來覲,請大藏經,至是賜之,仍賜如可紫衣,令同歸本國。
2년에 사신을 보내 조공하니, 조서로 그 사신 선관시랑 한인경과 부사 병관낭중 위덕유에게 다 금자광록대부를 제수하고, 판관 소부승 이광에게 검교수부원외랑을 제수하였다. 이보다 앞서 치가 승려 여가를 보내 표를 지니고 조현하며 대장경을 청했는데, 이에 이르러 내리고 아울러 여가에게 자줏빛 가사를 내려 본국에 함께 돌아가게 하였다.
23시성무의 글
淳化元年三月,詔加治食邑千戶,遣戶部郎中柴成務、兵部員外郎直史館趙化成往使。其國俗信陰陽鬼神之事,頗多拘忌,每朝廷使至,必擇良月吉辰,方具禮受詔。成務在館踰月,乃遺書於治曰:「王奕葉藩輔,尊奬王室,凡行大慶,首被徽章。今國家特馳信使,以申殊寵,非止歷川塗之綿邈,亦復蹈溟海之艱危,皇朝睠遇,斯亦隆矣。而乃牽於禁忌,泥於卜數,眩惑日者之浮說,稽緩天子之命書。惟典冊之垂文,非卜祝之能曉,是以書稱上日,不推六甲之元辰;禮載仲冬,但取一陽之嘉會。粲然古訓,足以明稽,所宜改圖,速拜君賜。儻鳳綍無滯,克彰拱極之誠;則龍節有輝,免貽辱命之責。謹以誠告,王其聽之。」治覽書慚懼,遣人致謝焉。會霖雨不止,仍以俟霽為請。成務復遺書以責之,治翌日乃出拜命。
순화 원년 3월에 조서로 치에게 식읍 천 호를 더하고, 호부낭중 시성무와 병부원외랑 직사관 조화성을 보내 사신 가게 하였다. 그 나라 풍속이 음양과 귀신의 일을 믿어 꺼리는 것이 자못 많아, 조정 사신이 이를 때마다 반드시 좋은 달 길한 날을 가려서야 예를 갖추어 조서를 받았다. 성무가 객관에서 한 달을 넘기자 이에 치에게 글을 보냈다. 「왕은 여러 대의 번국 울타리로 왕실을 높이 받들어, 큰 경사를 행할 때마다 먼저 아름다운 표창을 입었소. 이제 국가가 특별히 신사(信使)를 달려 보내 남다른 총애를 폈으니, 먼 내와 길을 지났을 뿐 아니라 아득한 바다의 험난함까지 밟았으니 황조의 돌보심이 이 또한 두텁소. 그런데 금기에 끌리고 점술에 얽매여, 날 가리는 자의 뜬말에 홀려 천자의 명서(命書)를 지체시키는가. 전책에 드리운 글은 점쟁이가 알 바 아니오. 그러므로 서경은 상일(上日)을 일컬으며 육갑의 으뜸 날을 밀지 않았고, 예기는 중동(仲冬)을 실으며 다만 일양(一陽)의 아름다운 모임을 취했을 뿐이오. 밝은 옛 가르침이 상고하기에 족하니, 마땅히 고쳐 생각하여 빨리 임금의 내리심에 절하시오. 조서가 지체됨이 없으면 북극성을 두르는 정성이 밝게 드러나려니와, 그래야 사신의 부절도 빛이 나서 사명을 욕되게 한 책망을 면하리다. 삼가 정성으로 알리니 왕은 들으시오.」 치가 글을 보고 부끄럽고 두려워 사람을 보내 사례하였다. 마침 장마가 그치지 않자 다시 개기를 기다리겠다 청하니, 성무가 다시 글을 보내 꾸짖으매 치가 이튿날에야 나와 명을 받았다.
24어제 시문을 내리다
二年,遣使韓彥恭來貢。彥恭表述治意,求印佛經,詔以藏經并御製祕藏詮、逍遙詠、蓮華心輪賜之。
2년에 사신 한언공을 보내 조공하였다. 언공이 표로 치의 뜻을 아뢰어 불경 인쇄를 청하니, 조서로 대장경과 어제 비장전·소요영·연화심륜을 내렸다.
협주 1
御製祕藏詮「詮」原作「銓」,據玉海卷一五四改。
「어제 비장전(祕藏詮)」의 전(詮)은 원래 「銓」으로 되어 있는데, 옥해 권154에 따라 고쳤다.
25진정이 다녀온 길
四年正月,治遣使白思柔貢方物并謝賜經及御製。二月,遣祕書丞直史館陳靖、祕書丞劉式為使,加治檢校太師,仍降詔存問軍吏耆老。靖等自東牟趣八角海口,得思柔所乘海船及高麗水工,即登舟自芝岡島順風泛大海,再宿抵甕津口登陸,行百六十里抵高麗之境曰海州,又百里至閻州,又四十里至白州,又四十里至其國。治迎使于郊,盡藩臣禮,延留靖等七十餘日而還,遺以襲衣、金帶、金銀器數百兩、布三萬餘端,附表稱謝。
4년 정월에 치가 사신 백사유를 보내 방물을 바치고 아울러 대장경과 어제를 내린 데 사례하였다. 2월에 비서승 직사관 진정과 비서승 유식을 사신으로 삼아 치에게 검교태사를 더하고, 아울러 조서를 내려 군리와 기로를 위문하였다. 정 등이 동모에서 팔각 바다 어귀로 나아가, 사유가 탔던 바닷배와 고려 뱃사공을 얻어 곧 배에 올라 지강도에서 순풍을 타고 큰 바다에 떠서, 이틀 밤을 자고 옹진 어귀에 닿아 뭍에 올랐다. 백육십 리를 가서 고려 지경 해주에 이르고, 또 백 리에 염주, 또 사십 리에 백주, 또 사십 리에 그 나라에 이르렀다. 치가 교외에서 사신을 맞아 번국 신하의 예를 다하고, 정 등을 칠십여 일 머물게 하고 돌려보내며 습의와 금띠와 금은 그릇 수백 냥과 베 삼만여 단을 주고 표를 부쳐 사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