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日本
1옛 왜노국
日本,古倭奴也。去京師萬四千里,直新羅東南,在海中,島而居,東西五月行,南北三月行。國無城郛,聯木爲柵落,以草茨屋。左右小島五十餘,皆自名國,而臣附之。置本(大)率一人,檢察諸部。其俗多女少男,有文字,尚浮屠法。其官十有二等。
일본은 옛 왜노(倭奴)다. 서울에서 만 사천 리, 신라 동남쪽 바다 가운데 있어 섬에 사니, 동서로 다섯 달 길이요 남북으로 석 달 길이다. 나라에 성곽이 없고 나무를 이어 목책을 만들며 풀로 지붕을 인다. 좌우의 작은 섬 오십여 개가 다 스스로 나라라 이름하며 신하로 붙는다. 본솔(本率) 한 사람을 두어 여러 부를 검찰한다. 그 풍속에 여자가 많고 남자가 적으며, 문자가 있고 부도의 법을 숭상한다. 벼슬은 열두 등급이 있다.
2천황의 계보
其王姓阿每氏,自言初主號天御中主,至彥瀲,凡二十二世,皆以「尊」爲號,居筑紫城。彥瀲子神武立,更以「天皇」爲號,徙治大和州。次曰綏靖,次安寧,次懿德,次孝昭,次天安,次孝靈,次孝元,次開化,次崇神,次垂仁,次景行,次成務,次仲哀。仲哀死,以開化曾孫女神功爲王。次應神,次仁德,次履中,次反正,次允恭,次安康,次雄略,次清寧,次顯宗,次仁賢,次武烈,次繼體,次安閑,次宣化,次欽明。
왕의 성은 아매씨(阿每氏)다. 스스로 말하기를 첫 임금은 천어중주(天御中主)라 부르고 언렴(彥瀲)에 이르기까지 무릇 스물두 대는 다 「존(尊)」을 호로 삼아 축자성에 살았다 한다. 언렴의 아들 신무(神武)가 서서 「천황」으로 호를 바꾸고 대화주로 옮겨 다스렸다. 다음은 수정, 다음 안녕, 다음 의덕, 다음 효소, 다음 천안, 다음 효령, 다음 효원, 다음 개화, 다음 숭신, 다음 수인, 다음 경행, 다음 성무, 다음 중애다. 중애가 죽자 개화의 증손녀 신공을 왕으로 삼았다. 다음 응신, 다음 인덕, 다음 이중, 다음 반정, 다음 윤공, 다음 안강, 다음 웅략, 다음 청녕, 다음 현종, 다음 인현, 다음 무열, 다음 계체, 다음 안한, 다음 선화, 다음 흠명이다.
3수나라와 통하다
欽明之十一年,直梁承聖元年。次海達。次用明,亦曰目多利思比孤,直隋開皇末,始與中國通。次崇峻。崇峻死,欽明之孫女椎古立。次舒明,次皇極。其俗椎髻,無冠帶,跣以行,幅巾蔽後,貴者冒錦;婦人衣純色裠,長𦝫襦,結髮于後。至煬帝,賜其民錦綫冠,飾以金玉,文布爲衣,左右佩銀蘤,長八寸,以多少明貴賤。
흠명 십일년은 바로 양나라 승성 원년이다. 다음은 해달(민달)이다. 다음 용명은 목다리사비고라고도 하니 바로 수 개황 말로, 처음 중국과 통했다. 다음은 숭준이다. 숭준이 죽자 흠명의 손녀 추고가 즉위하였다. 다음 서명, 다음 황극이다. 그 풍속은 몽치 상투에 관과 띠가 없고 맨발로 다니며 폭 넓은 천으로 뒤를 가리는데 귀한 이는 비단을 쓴다. 부인은 순색 치마에 허리 긴 저고리를 입고 머리를 뒤로 묶는다. 양제에 이르러 그 백성에게 비단실 관을 내리니 금과 옥으로 꾸미고, 무늬 베로 옷을 지으며 좌우에 은꽃을 차니 길이 여덟 치라, 많고 적음으로 귀천을 밝혔다.
4고인표의 실례
太宗貞觀五年,遣使者入朝,帝矜其遠,詔有司毋拘歲貢。遣新州刺史高仁表往諭,與王爭禮不平,不肯宣天子命而還。久之,更附新羅使者上書。永徽初,其王孝德卽位,改元曰白雉,獻虎魄大如斗,碼碯若五升器。時新羅爲高麗、百濟所暴,高宗賜璽書,令出兵援新羅。
태종 정관 오년에 사자를 보내 입조하니, 황제가 그 멂을 딱하게 여겨 유사에 조서해 해마다 조공하는 데 매이지 말게 하고, 신주자사 고인표를 보내 타이르게 했는데, 왕과 예를 다투어 화평하지 못하고 천자의 명을 펴지 않은 채 돌아왔다. 한참 뒤 다시 신라 사자에 딸려 글을 올렸다. 영휘 초에 그 왕 효덕이 즉위하여 연호를 백치(白雉)라 고치고, 말만 한 호박과 닷 되들이만 한 마노를 바쳤다. 그때 신라가 고려·백제에게 시달리니, 고종이 새서를 내려 군사를 내어 신라를 구원하게 하였다.
5일본이라 이름을 고치다
未幾孝德死,其子天豐財立。死,子天智立。明年,使者與蝦蛦人偕朝。蝦蛦亦居海島中,其使者鬚長四尺許,珥箭於首,令人戴瓠立數十步,射無不中。天智死,子天武立。死,子揔持立。咸亨元年,遣使賀平高麗。後稍習夏音,惡倭名,更號日本。使者自言:「國近日所出,以爲名。」或云:「日本乃小國,爲倭所并,故冒其號。」使者不以情,故疑焉。又妄夸其國都方數千里,南、西盡海,東、北限大山,其外卽毛人云。
얼마 안 되어 효덕이 죽고 아들 천풍재가 즉위하였다. 죽으니 아들 천지가 즉위하였다. 이듬해 사자가 하이(蝦蛦) 사람과 함께 조회하였다. 하이도 바다 섬에 사는데, 그 사자는 수염 길이가 넉 자쯤이라, 화살을 머리에 꽂고 사람을 시켜 박을 이고 수십 걸음에 세워 쏘면 맞지 않는 것이 없었다. 천지가 죽고 아들 천무가 즉위하고, 죽으니 아들 총지가 즉위하였다. 함형 원년에 사자를 보내 고려 평정을 하례하였다. 뒤에 차츰 중국말을 익히자 왜라는 이름을 싫어하여 일본으로 이름을 고쳤다. 사자가 스스로 「나라가 해 뜨는 곳에 가까워 이름 삼았다」 하고, 혹은 「일본은 곧 작은 나라인데 왜에게 아울려졌으므로 그 이름을 차지했다」고도 한다. 사자가 사실대로 말하지 않으므로 의심스럽다. 또 그 나라 도읍이 사방 수천 리요 남과 서는 바다에 다하고 동과 북은 큰 산으로 한계 지으며 그 밖은 곧 모인(毛人)이라고 부풀려 말했다.
6아와타노 마히토
長安元年,其王文武立,改元曰大寶,遣朝臣真人粟田貢方物。朝臣真人者,猶唐尚書也。冠進德冠,頂有華蘤四披,紫袍帛帶。真人好學,能屬文,進止有容。武后宴之麟德殿,授司膳卿,還之。文武死,子阿用立。死,子聖武立,改元曰白龜。開元初,粟田復朝,請從諸儒授經,詔四門助教趙玄默卽鴻臚寺爲師,獻大幅布爲贄,悉賞物貿書以歸。其副朝臣仲滿慕華不肯去,易姓名曰朝衡,歷左補闕,儀王友,多所該識,久乃還。
장안 원년에 그 왕 문무가 서서 연호를 대보(大寶)라 고치고, 조신 마히토 아와타(粟田)를 보내 방물을 바쳤다. 조신 마히토란 당나라의 상서 같은 것이다. 진덕관을 쓰니 꼭대기에 꽃 네 갈래가 피었고, 자주 도포에 비단 띠였다. 마히토는 학문을 좋아하고 글을 지을 줄 알며 몸가짐에 위엄이 있었다. 무후가 인덕전에서 잔치하고 사선경을 제수해 돌려보냈다. 문무가 죽고 아들 아용이 서고, 죽으니 아들 성무가 서서 연호를 백귀(白龜)라 고쳤다. 개원 초에 아와타가 다시 조회하여 유학자들에게 경전 배우기를 청하니, 조서로 사문조교 조현묵이 홍려시에서 스승이 되게 하였다. 폭 넓은 베를 폐백으로 바치고, 받은 상은 다 책을 사서 돌아갔다. 그 부사 조신 나카마로는 중화를 사모하여 떠나려 하지 않고 성명을 조형(朝衡)으로 바꾸어 좌보궐·의왕우를 지냈으니, 아는 것이 많았고 오래 있다가 돌아갔다.
7조형과 뱃길
聖武死,女孝明立,改元曰天平勝寶。天寶十二載,朝衡復入朝,上元中,擢左散騎常侍、安南都護。新羅梗海道,更繇明、越州朝貢。孝明死,大炊立。死,以聖武女高野姬爲王。死,白壁立。建中元年,使者真人興能獻方物。真人,蓋因官而氏者也。興能善書,其紙似蠒而澤,人莫識。貞元末,其王曰桓武,遣使者朝。其學子橘免勢、浮屠空海願留肄業,歷二十餘年,使者高階真人來請免勢等俱還,詔可。
성무가 죽고 딸 효명이 서서 연호를 천평승보라 고쳤다. 천보 12재에 조형이 다시 입조하고, 상원 연간에 좌산기상시·안남도호로 올랐다. 신라가 바닷길을 막으니 명주·월주를 거쳐 조공하게 되었다. 효명이 죽고 대취가 즉위하고, 죽으니 성무의 딸 고야희를 왕으로 삼았다. 죽으니 백벽이 즉위하였다. 건중 원년에 사자 진인흥능이 방물을 바쳤다. 진인이란 대개 벼슬로 성씨를 삼은 것이다. 흥능은 글씨를 잘 썼는데 그 종이가 누에고치 같고 윤이 나니 사람들이 알아보지 못했다. 정원 말에 그 왕 환무가 사자를 보내 조회하였다. 그 유학생 다치바나노 하야나리와 승려 구카이가 남아 배우기를 원하더니, 이십여 년이 지나 사자 다카시나노 마히토가 와서 하야나리 등과 함께 돌아가기를 청하니 조서로 허락하였다.
8그 뒤의 임금들
次諾樂立,次嵯峨,次浮和,次仁明。仁明直開成四年,復入貢。次文德,次清和,次陽成。次光孝,直光啟元年。其東海嶼中又有邪古、波邪、多尼三小王,北距新羅,西北百濟,西南直越州,有絲絮、怪珍云。
다음 낙락(헤이제이)이 서고, 다음 차아, 다음 부화(준나), 다음 인명이다. 인명은 바로 개성 사년으로 다시 조공하였다. 다음 문덕, 다음 청화, 다음 양성이다. 다음 광효는 바로 광계 원년이다. 그 동쪽 바다 섬 가운데 또 야고·파야·다니 세 작은 왕이 있고, 북은 신라에 닿고 서북은 백제요 서남은 곧장 월주에 닿으니, 실과 솜과 진기한 보배가 난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