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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도(佛道)佛道

송서 이만전 宋書 夷蠻傳 · 심약(沈約) · 488년 (남제 영명 6) · 단락 15 · 한자 2,821자 · 낭독 11.3분

「송서 이만전」 한 권 「불도(佛道)」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남조 송나라가 본 바다 건너 이웃들. 장수왕 고련의 조공과 풍홍 사건, 백제의 요서 경략 기사, 왜 오왕(찬·진·제·흥·무)의 표문, 그리고 남해 여러 나라가 불심으로 올린 표와 혜림의 균선론까지 — 5세기 바닷길의 기록이다.

1절 짓기를 단속하다

佛道自後漢明帝,法始東流,自此以來,其教稍廣,自帝王至于民庶,莫不歸心,經誥充積,訓義深遠,別為一家之學焉。元嘉十二年,丹陽尹蕭摹之奏曰:「佛化被于中國,已歷四代,形像塔寺,所在千數,進可以繫心,退足以招勸。而自頃以來,情敬浮末,不以精誠為至,更以奢競為重。舊宇頹弛,曾莫之修,而各務造新,以相姱尚。甲第顯宅,於茲殆盡,材竹銅綵,糜損無極,無關神祇,有累人事。建中越制,宜加裁檢,不為之防,流遁未息。請自今以後,有欲鑄銅像者,悉詣臺自聞;興造塔寺精舍,皆先詣在所二千石通辭,郡依事列言本州;須許報,然後就功。其有輒造寺舍者,皆依不承用詔書律,銅宅林苑,悉沒入官。」詔可。又沙汰沙門,罷道者數百人。

불도(佛道)는 후한 명제 때부터 법이 처음 동으로 흘러, 이로부터 그 가르침이 차츰 넓어져 제왕부터 서민까지 마음을 돌리지 않는 이가 없으니, 경전이 가득 쌓이고 가르침의 뜻이 깊고 멀어 따로 한 집안의 학문이 되었다. 원가 십이년에 단양윤 소모지가 아뢰었다. 「부처의 교화가 중국에 입혀진 지 이미 네 대를 지나, 형상과 탑과 절이 곳곳에 천으로 헤아려지니, 나아가면 마음을 매어 둘 만하고 물러나면 권면을 부를 만합니다. 그런데 요사이 공경하는 마음이 겉치레에 들떠 정성을 지극함으로 삼지 않고 도리어 사치 경쟁을 무겁게 여겨, 옛집이 무너져도 일찍이 고치지 않으면서 저마다 새로 짓기를 힘써 서로 뽐냅니다. 좋은 집과 훌륭한 저택이 이 때문에 거의 다 없어지고, 재목·대나무·구리·채색이 한없이 축나니, 신에게 관계된 것도 아니면서 사람의 일에 누가 됩니다. 법도를 넘는 세움은 마땅히 단속을 더해야 하니, 막지 않으면 흘러 피함이 그치지 않을 것입니다. 청컨대 이제부터 구리 불상을 부으려는 자는 다 대성(臺省)에 나아와 스스로 아뢰게 하고, 탑과 절과 정사를 지으려면 다 먼저 소재지의 이천석에게 나아가 신고하여 군이 사실대로 본주에 갖추어 아뢰고, 허가의 회보를 기다린 뒤에 공사에 들어가게 하소서. 함부로 절집을 지은 자는 다 조서를 받들지 않은 율에 의거하고, 구리와 집과 임원은 다 관에 몰수하소서.」 조서로 허락하였다. 또 사문을 걸러 내니 도를 그만둔 자가 수백 명이었다.

협주 2

進可以繫心 「繫」各本並作「擊」,據元龜六八九改。

「나아가면 마음을 매어 둘 만하다(進可以繫心)」의 계(繫)는 각 판본에 다 「격(擊)」으로 되어 있는데, 책부원귀 권689에 따라 고쳤다.

流遁未息 「遁」各本並作「道」,據通鑑宋文帝元嘉十二年改。

「흘러 피함이 그치지 않는다(流遁未息)」의 둔(遁)은 각 판본에 다 「도(道)」로 되어 있는데, 통감 송 문제 원가 12년에 따라 고쳤다.

2승려를 걸러 내다

世祖大明二年,有曇標道人與羌人高闍謀反,上因是下詔曰:「佛法訛替,沙門混雜,未足扶濟鴻教,而專成逋藪。加姦心頻發,凶狀屢聞,敗亂風俗,人神交怨。可付所在,精加沙汰,後有違犯,嚴加誅坐。」於是設諸條禁,自非戒行精苦,並使還俗。而諸寺尼出入宮掖,交關妃后,此制竟不能行。

세조 대명 이년에 담표라는 도인이 강족 고사와 모반을 꾀하니, 임금이 이로 인해 조서를 내렸다. 「불법이 그릇되고 무너져 사문이 뒤섞이니, 큰 가르침을 붙들어 건지기에 족하지 못하고 오로지 달아난 자들의 숲이 될 뿐이다. 게다가 간사한 마음이 자주 일어나 흉한 정상이 여러 번 들리니, 풍속을 무너뜨리고 어지럽혀 사람과 신이 함께 원망한다. 소재지에 맡겨 정밀히 걸러 내고, 뒤에 어기는 자가 있으면 엄히 벌하라.」 이에 여러 금령을 두어, 계행이 정밀하고 각고한 이가 아니면 다 환속하게 하였다. 그러나 여러 절의 여승들이 궁궐을 드나들며 비빈·후비와 결탁하니, 이 제도는 끝내 행해지지 못했다.

3사문이 임금께 절하는가

先是晉世庾冰始創議,欲使沙門敬王者,後桓玄復述其義,並不果行。大明六年,世祖使有司奏曰:「臣聞邃宇崇居,非期宏峻,拳跪槃伏,非止敬恭,將以施張四維,締制八宇。故雖儒法枝派,名墨條分,至於崇親嚴上,厥繇靡爽。唯浮圖為教,逷自龍堆,反經提傳,訓遐事遠,練生瑩識,恒俗稱難,宗旨緬謝,微言淪隔,拘文蔽道,在末彌扇。遂乃陵越典度,偃倨尊戚,失隨方之眇迹,迷製化之淵義。夫佛法以謙儉自牧,忠虔為道,不輕比丘,遭人斯拜,目連桑門,遇長則禮,寧有屈膝四輩,而簡禮二親,稽顙耆臘,而直體萬乘者哉。故咸康創議,元興載述,而事屈偏黨,道挫餘分。今鴻源遙洗,羣流仰鏡,九仙賮寶,百神聳職,而畿輦之內,舍弗臣之氓,陛席之間,延抗禮之客,懼非所以澄一風範,詳示景則者也。臣等參議,以為沙門接見,比當盡虔禮敬之容,依其本俗,則朝徽有序,乘方兼遂矣。」詔可。前廢帝初,復舊。

이보다 앞서 진(晉)나라 때 유빙이 처음 의논을 내어 사문이 왕자에게 경례하게 하려 했고 뒤에 환현이 다시 그 뜻을 펼쳤으나 다 이루어지지 못했다. 대명 육년에 세조가 담당 관사를 시켜 아뢰게 하였다. 「신이 들으니 깊은 집과 높은 거처는 높고 가파름을 기약함이 아니요, 주먹 쥐고 꿇고 서리고 엎드림은 공경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장차 사유(四維)를 펴고 팔방을 엮어 다스리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유가와 법가가 가지 치고 명가와 묵가가 갈래 지어도, 어버이를 높이고 웃사람을 엄히 함에는 그 말미암음이 어긋나지 않습니다. 오직 부도(浮圖)의 가르침만은 멀리 용퇴(龍堆)에서 와서, 경전을 뒤집고 전함을 끌어 가르침이 멀고 일이 아득하니, 삶을 단련하고 앎을 닦는 일은 세속이 늘 어렵다 일컫는 바요, 종지는 아득히 멀어지고 미언은 잠겨 막혔는데, 글에 얽매여 도를 가리는 일이 말류에서 더욱 부채질됩니다. 드디어 법도를 넘고 존귀한 이 앞에서 거만하니, 방편을 따르는 아득한 자취를 잃고 교화를 짓는 깊은 뜻에 헤맵니다. 무릇 불법은 겸손과 검소로 스스로를 기르고 충성과 경건을 도로 삼으니, 불경보살은 사람을 만나면 절했고 목련 사문은 어른을 만나면 예를 갖추었습니다. 어찌 사배(四輩)에게는 무릎을 꿇으면서 두 어버이에게는 예를 간략히 하고, 늙은 승랍에게는 이마를 조아리면서 만승에게는 몸을 꼿꼿이 세울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함강에 의논을 내고 원흥에 거듭 폈으나, 일이 한쪽 무리에 눌리고 도가 나머지 갈래에 꺾였습니다. 이제 큰 근원이 멀리 씻기고 뭇 흐름이 거울을 우러르며, 구선(九仙)이 보배를 바치고 백신이 직분을 다투는데, 서울 안에 신하 노릇 않는 백성을 두고 뜰과 자리 사이에 예를 맞겨루는 손을 맞으니, 풍범을 맑게 하나로 하고 밝은 법칙을 자세히 보이는 길이 아닐까 두렵습니다. 신들이 참의하건대, 사문이 뵈올 때는 마땅히 경건히 예경하는 몸가짐을 다하게 하되 그 본속(本俗)은 그대로 두면, 조정의 아름다움에 차례가 있고 방편을 따름도 아울러 이루어지겠습니다.」 조서로 허락하였다. 전폐제 초에 옛날로 되돌렸다.

협주 2

遭人斯拜 「人」上各本並有「道」字,據高僧傳刪。

「사람을 만나면 절한다(遭人斯拜)」 — 인(人) 위에 각 판본에 다 「도(道)」 자가 있는데, 고승전에 따라 지웠다.

而簡禮二親 「禮」各本並作「體」,據通鑑改。

「두 어버이에게는 예를 간략히 한다(而簡禮二親)」의 예(禮)는 각 판본에 다 「체(體)」로 되어 있는데, 통감에 따라 고쳤다.

4신안사의 흥망

世祖寵姬殷貴妃薨,為之立寺,貴妃子子鸞封新安王,故以新安為寺號。前廢帝殺子鸞,乃毀廢新安寺,驅斥僧徒,尋又毀中興、天寶諸寺。太宗定亂,下令曰:「先帝建中興及新安諸寺,所以長世垂範,弘宣盛化。頃遇昏虐,法像殘毀,師徒奔迸,甚以矜懷。妙訓淵謨,有扶名教。可招集舊僧,普各還本,並使材官,隨宜修復。」

세조의 총희 은귀비가 죽자 그를 위해 절을 세웠는데, 귀비의 아들 자란이 신안왕에 봉해졌으므로 신안을 절 이름으로 삼았다. 전폐제가 자란을 죽이고 이에 신안사를 헐어 없애고 승도를 몰아 쫓았으며, 이윽고 또 중흥사·천보사 등 여러 절을 헐었다. 태종이 난을 평정하고 영을 내렸다. 「선제께서 중흥과 신안 등 여러 절을 세우신 것은 오랜 세상에 본을 드리우고 성한 교화를 넓혀 펴려 하심이었다. 지난번 혼학한 때를 만나 법상이 부서지고 스승과 무리가 흩어져 달아나니 몹시 가엾다. 묘한 가르침과 깊은 계책은 명교를 붙듦이 있으니, 옛 승려들을 불러 모아 다 저마다 근본으로 돌아가게 하고, 재관(材官)을 시켜 형편 따라 고쳐 세우게 하라.」

5돈오를 세운 도생

宋世名僧有道生。道生,彭城人也。父為廣戚令。生出家為沙門法大弟子。幼而聰悟,年十五,便能講經。及長有異解,立頓悟義,時人推服之。元嘉十一年,卒於廬山。沙門慧琳為之誄。

송나라 시대 이름난 승려에 도생이 있다. 도생은 팽성 사람이다. 아버지가 광척령이 되었다. 생은 출가하여 사문 법대의 제자가 되었다.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열다섯에 곧 경을 강할 수 있었다. 자라서는 남다른 견해가 있어 돈오(頓悟)의 뜻을 세우니 당시 사람들이 추앙하고 승복하였다. 원가 십일년에 여산에서 죽으니, 사문 혜림이 그를 위해 뇌문을 지었다.

협주 1

父為廣戚令 「廣戚」各本並作「廣武」,據南史、高僧傳改。

「아버지가 광척령이 되었다」의 「광척」은 각 판본에 다 「광무」로 되어 있는데, 남사와 고승전에 따라 고쳤다.

6혜림의 균선론

慧琳者,秦郡秦縣人,姓劉氏。少出家,住冶城寺,有才章,兼外內之學,為廬陵王義真所知。嘗著均善論,其詞曰:

혜림은 진군 진현 사람으로 성은 유씨다. 젊어서 출가하여 야성사에 살았는데, 글재주가 있고 안팎의 학문을 겸하여 여릉왕 의진의 알아줌을 받았다. 일찍이 균선론(均善論)을 지었으니 그 글은 이러하다.

7백학 선생과 흑학 도사

:有白學先生,以為中國聖人,經綸百世,其德弘矣,智周萬變,天人之理盡矣,道無隱旨,教罔遺筌,聰叡迪哲,何負於殊論哉。有黑學道士陋之,謂不照幽冥之途,弗及來生之化,雖尚虛心,未能虛事,不逮西域之深也。於是白學訪其所以不逮云爾。

「백학(白學) 선생이 있어, 중국의 성인은 백세를 경륜하니 그 덕이 넓고, 지혜가 만 가지 변화에 두루 미치니 하늘과 사람의 이치가 다했다, 도에 숨긴 뜻이 없고 가르침에 남긴 통발이 없으니, 총명하고 슬기로운 밝음이 어찌 다른 의논에 뒤지랴 하였다. 흑학(黑學) 도사가 이를 낮추어, 그윽한 저승의 길을 비추지 못하고 내생의 교화에 미치지 못하니, 마음 비움은 숭상하나 일을 비우지는 못하여 서역의 깊음에 미치지 못한다 하였다. 이에 백학이 그 미치지 못한다는 까닭을 물었다.

8공(空)을 묻다

:白曰:「釋氏所論之空,與老氏所言之空,無同異乎?」黑曰:「異。釋氏即物為空,空物為一。老氏有無兩行,空有為異。安得同乎。」白曰:「釋氏空物,物信空邪?」黑曰:「然。空又空,不翅於空矣。」白曰:「三儀靈長於宇宙,萬品盈生於天地,孰是空哉?」黑曰:「空其自性之有,不害因假之體也。今構羣材以成大廈,罔專寢之實,積一豪以致合抱,無檀木之體,有生莫俄頃之留,泰山蔑累息之固,興滅無常,因緣無主,所空在於性理,所難據於事用,吾以為悞矣。」白曰:「所言實相,空者其如是乎?」黑曰:「然。」白曰:「浮變之理,交於目前,視聽者之所同了邪?解之以登道場,重之以輕異學,誠未見其淵深。」黑曰:「斯理若近,求之實遠。夫情之所重者虛,事之可重者實。今虛其真實,離其浮偽,愛欲之惑,不得不去。愛去而道場不登者,吾不知所以相曉也。」白曰:「今析豪空樹,無□垂蔭之茂,離材虛室,不損輪奐之美,明無常增其愒蔭之情,陳若偏篤其競辰之慮。

백이 물었다. 〈석씨가 논하는 공(空)과 노씨가 말하는 공이 같은가 다른가?〉 흑이 답했다. 〈다르오. 석씨는 사물에 나아가 공이라 하여 공과 사물이 하나요, 노씨는 유와 무를 둘 다 행하여 공과 유가 다르니 어찌 같겠소.〉 백이 〈석씨가 사물을 비운다는데, 사물이 참으로 비었소?〉 하니, 흑이 〈그렇소. 공이 또 공이니 공에 그치지 않소〉 하였다. 백이 〈삼의(三儀)는 우주에 신령히 오래고 만물은 천지에 가득 나는데 무엇이 비었단 말이오?〉 하니, 흑이 답했다. 〈그 자성(自性)의 있음을 비우는 것이지 인연으로 빌린 몸을 해치지 않소. 이제 뭇 재목을 얽어 큰 집을 이루면 침실이라는 실체가 없고, 한 터럭씩 쌓아 아름드리를 이루면 박달나무라는 본체가 없소. 산 것은 잠깐의 머묾도 없고 태산도 숨 몇 번의 굳음이 없으니, 일고 스러짐이 무상하고 인연에 주인이 없소. 비우는 바는 성리(性理)에 있는데 따지는 바를 사용(事用)에 두니, 나는 그것을 그르다 하오.〉 백이 〈이른바 실상(實相)의 공이 그와 같소?〉 하니 흑이 〈그렇소〉 하였다. 백이 말했다. 〈뜨고 변하는 이치는 눈앞에 오가니 보고 듣는 이가 다 같이 아는 바요. 그것을 풀어 도량에 오른다 하고 그것을 무겁게 여겨 다른 학문을 가벼이 여기니, 참으로 그 깊음을 보지 못하겠소.〉 흑이 말했다. 〈이 이치는 가까운 듯해도 찾으면 실로 머오. 무릇 정이 무겁게 여기는 것은 헛것이요 일로 무겁게 여길 만한 것은 실이오. 이제 그 참인 체하는 것을 비우고 그 뜬 거짓을 여의면 애욕의 미혹이 없어지지 않을 수 없소. 애욕이 없어지고도 도량에 오르지 못한다면 나는 무슨 말로 깨우쳐야 할지 모르겠소.〉 백이 말했다. 〈이제 터럭을 쪼개어 나무를 비운들 드리운 그늘의 무성함이 없어지지 않고, 재목을 떠나 집을 비운들 크고 아름다움이 덜리지 않소. 무상을 밝히면 도리어 쉬어 가려는 정만 더하고, 헛됨을 늘어놓으면 도리어 때를 다투는 생각만 도타워지오.

9주공·공자가 못 미친 것

貝錦以繁采發輝,和羹以鹽梅致旨,齊矦追爽鳩之樂,燕王無延年之術,恐和合之辯,危脆之教,正足戀其嗜好之欲,無以傾其愛競之惑也。」黑曰:「斯固理絕於諸華,墳素莫之及也。」白曰:「山高累卑之辭,川樹積小之詠,舟壑火傳之談,堅白唐肆之論,蓋盈於中國矣,非理之奧,故不舉以為教本耳。子固以遺情遺累,虛心為道,而據事剖析者,更由指掌之間乎。」黑曰:「周、孔為教,正及一世,不見來生無窮之緣,積善不過子孫之慶,累惡不過餘殃之罰,報効止於榮祿,誅責極於窮賤,視聽之外,冥然不知,良可悲矣。釋迦關無窮之業,拔重關之險,陶方寸之慮,宇宙不足盈其明,設一慈之救,羣生不足勝其化,敍地獄則民懼其罪,敷天堂則物歡其福,指泥洹以長歸,乘法身以遐覽,神變無不周,靈澤靡不覃,先覺翻翔於上世,後悟騰翥而不紹,坎井之局,何以識大方之家乎。」白曰:「固能大其言矣,今効神光無徑寸之明,驗靈變罔纖介之異,勤誠者不覩善救之貌,篤學者弗剋陵虛之實,徒稱無量之壽,孰見期頤之叟,咨嗟金剛之固,安覿不朽之質。

무늬 비단은 채색이 많아야 빛이 나고 국은 소금과 매실로 맛을 내는 법이라, 제나라 임금은 상구씨 시절의 즐거움을 그리워했고 연나라 왕에게는 수명 늘일 방술이 없었소. 화합의 변론과 위태롭고 무른 가르침은, 바로 그 즐기는 욕심을 그리워하게 하기에 족할 뿐 그 아끼고 다투는 미혹을 기울이지는 못할까 두렵소.〉 흑이 말했다. 〈그것은 참으로 중화에서 끊어진 이치니 옛 전적이 미치지 못하는 바요.〉 백이 말했다. 〈산은 낮은 것을 쌓아 높다는 말과 내는 작은 것을 모아 이룬다는 노래와 배와 골짜기와 불씨 전함의 이야기와 견백(堅白)과 당사(唐肆)의 의론이 중국에 가득하오. 이치의 깊은 속이 아니므로 가르침의 근본으로 들지 않았을 뿐이오. 그대는 참으로 정을 버리고 얽매임을 버려 마음 비움을 도로 삼는다면서, 일에 의거해 쪼개고 가르는 것은 도리어 손바닥 사이에서 나오는 것 아니오?〉 흑이 말했다. 〈주공·공자의 가르침은 바로 한 세상에 미칠 뿐이라, 내생의 무궁한 인연을 보지 못하니, 선을 쌓아도 자손의 경사에 지나지 않고 악을 쌓아도 남는 재앙의 벌에 지나지 않으며, 갚음은 영화와 녹에 그치고 벌은 궁하고 천함에 그치니, 보고 들음 밖은 캄캄히 알지 못하니 참으로 슬프오. 석가는 무궁한 업을 열고 겹겹 관문의 험함을 뽑으며, 방촌의 생각을 다듬으니 우주도 그 밝음을 채우기에 부족하고, 한 자비의 구원을 베푸니 뭇 삶도 그 교화를 감당하기에 부족하오. 지옥을 펴니 백성이 그 죄를 두려워하고 천당을 펴니 만물이 그 복을 기뻐하며, 니원(泥洹)을 가리켜 길이 돌아가고 법신을 타고 멀리 보니, 신통 변화가 두루 하지 않음이 없고 신령한 은택이 미치지 않음이 없소. 먼저 깨친 이는 윗세상에 날아오르고 뒤에 깨친 이는 날아올라 잇지 못하니, 우물 안의 좁은 국량으로 어찌 대방가를 알겠소.〉 백이 말했다. 〈참으로 말은 크게 하오. 그러나 이제 신령한 빛을 시험해도 한 치의 밝음이 없고, 신통 변화를 검증해도 실오라기만 한 이적이 없으며, 정성을 다한 자도 잘 건져 주는 모습을 보지 못하고, 독실히 배운 자도 허공 오르는 실제를 이루지 못하며, 한량없는 수명을 일컬을 뿐 백 살 노인인들 누가 보았으며, 금강의 굳음을 감탄한들 썩지 않는 바탕을 어디서 보겠소.

10천당으로 꾀는 길

苟於事不符,宜尋立言之指,遺其所寄之說也。且要天堂以就善,曷若服義而蹈道,懼地獄以敕身,孰與從理以端心。禮拜以求免罪,不由祗肅之意,施一以徼百倍,弗乘無吝之情。美泥洹之樂,生耽逸之慮,贊法身之妙,肇好奇之心,近欲未弭,遠利又興,雖言菩薩無欲,羣生固以有欲矣。甫救交敝之氓,永開利競之俗,澄神反道,其可得乎。」黑曰:「不然。若不示以來生之欲,何以權其當生之滯。物情不能頓至,故積漸以誘之。奪此俄頃,要彼無窮,若弗勤春稼,秋穡何期。端坐井底,而息意庶慮者,長淪於九泉之下矣。」白曰:「異哉!何所務之乖也。道在無欲,而以有欲要之,北行求郢,西征索越,方長迷於幽都,永謬滯於昧谷。遼遼閩、楚,其可見乎。所謂積漸者,日損之謂也。當先遺其所輕,然後忘其所重,使利欲日去,淳白自生耳。豈得以少要多,以粗易妙,俯仰之間,非利不動,利之所蕩,其有極哉。

일에 맞지 않으면 마땅히 말 세운 뜻을 찾고 그 부친 말은 버려야 하오. 또 천당을 내걸어 선으로 나아가게 함이 어찌 의를 좇아 도를 밟음만 하며, 지옥으로 겁주어 몸을 단속함이 어찌 이치를 따라 마음을 바로 함만 하겠소. 예배로 죄 면하기를 구함은 공경히 삼가는 뜻에서 나온 것이 아니요, 하나를 베풀어 백 배를 바람은 아낌없는 정에 올라탄 것이 아니오. 니원의 즐거움을 기리면 편안히 놀려는 생각이 나고, 법신의 묘함을 찬탄하면 신기함을 좋아하는 마음이 비롯되니, 가까운 욕심이 그치기도 전에 먼 이익이 또 일어나오. 보살은 무욕이라 말한들 뭇 삶은 본디 욕심이 있으니, 겨우 시달리는 백성을 건진다면서 길이 이익 다투는 풍속을 열어 놓고, 정신을 맑혀 도로 돌아가는 일이 될 법이나 하오?〉 흑이 말했다. 〈그렇지 않소. 내생의 욕망으로 보이지 않으면 무엇으로 당장의 막힘을 저울질하겠소. 만물의 정은 단번에 이르지 못하므로 차츰 쌓아 꾀는 것이오. 이 잠깐을 빼앗아 저 무궁을 기약하니, 봄 농사에 힘쓰지 않으면 가을걷이를 어찌 기약하겠소. 우물 밑에 단정히 앉아 뭇 생각을 쉬기만 하는 자는 길이 구천 아래 잠길 뿐이오.〉 백이 말했다. 〈이상하도다, 힘쓰는 바가 어찌 그리 어긋나는가. 도는 무욕에 있는데 유욕으로 꾀니, 북으로 가면서 영(郢)을 찾고 서로 가면서 월(越)을 찾는 격이라, 바야흐로 유도(幽都)에 오래 헤매고 매곡(昧谷)에 길이 잘못 머물리니, 아득한 민·초 땅인들 보이겠소. 이른바 차츰 쌓는다는 것은 날로 덜어 냄을 이름이오. 마땅히 먼저 가벼운 것을 버리고 그런 뒤에 무거운 것을 잊어, 이욕이 날로 사라지고 순박함이 절로 나게 할 뿐이오. 어찌 적음으로 많음을 요구하고 거침으로 묘함을 바꾸며, 굽어보고 우러르는 사이에 이익 아니면 움직이지 않게 하겠소. 이익이 휩쓰는 데야 끝이 있겠소.

11도는 어디 깃드는가

乃丹青眩媚綵之目,土木夸好壯之心,興糜費之道,單九服之財,樹無用之事,割羣生之急,致營造之計,成私樹之權,務勸化之業,結師黨之勢,苦節以要厲精之譽,護法以展陵競之情,悲矣。夫道其安寄乎。是以周、孔敦俗,弗關視聽之外,老、莊陶風,謹守性分而已。」黑曰:「三遊本於仁義,盜跖資於五善,聖跡之敝,豈有內外。且黃、老之家,符章之偽,水祝之誣,不可勝論。子安於彼,駭於此,玩於濁水,違於清淵耳。」白曰:「有跡不能不敝,有術不能無偽,此乃聖人所以桎梏也。今所惜在作法於貪,遂以成俗,不正其敝,反以為高耳。至若淫妄之徒,世自近鄙,源流蔑然,固不足論。」黑曰:「釋氏之教,專救夷俗,便無取於諸華邪?」白曰:「曷為其然。為則開端,宜懷屬緒,愛物去殺,尚施周人,息心遺榮華之願,大士布兼濟之念,仁義玄一者,何以尚之。惜乎幽旨不亮,末流為累耳。」黑曰:「子之論善殆同矣,便事盡於生乎?」白曰:「幽冥之理,固不極於人事矣。

이에 단청은 고운 채색 좋아하는 눈을 홀리고 토목은 좋고 장한 것 자랑하는 마음을 부풀려, 낭비의 길을 일으켜 온 천하의 재물을 다하고, 쓸데없는 일을 세워 뭇 삶의 급한 것을 빼앗으며, 짓고 세우는 계교를 이루어 사사로이 심는 권세를 이루고, 교화 권하는 업을 힘써 스승 무리의 세력을 맺으며, 각고한 절조로 정려하다는 명예를 요구하고 호법을 빙자해 다투는 정을 펴니, 슬프다, 도가 어디에 깃들겠소. 그러므로 주공·공자는 풍속을 도탑게 하되 보고 들음 밖에 관여하지 않았고, 노자·장자는 기풍을 빚되 성분(性分)을 삼가 지켰을 뿐이오.〉 흑이 말했다. 〈삼유(三遊)는 인의에서 근본했고 도척은 다섯 가지 선을 밑천 삼았으니, 성인 자취의 폐단에 어찌 안팎이 있겠소. 게다가 황로의 무리, 부적의 거짓과 물 축원의 속임은 이루 다 논할 수 없소. 그대는 저기에는 태연하고 여기에는 놀라니, 흐린 물에서는 놀면서 맑은 못은 어긴 것이오.〉 백이 말했다. 〈자취가 있으면 폐단이 없을 수 없고 방술이 있으면 거짓이 없을 수 없으니, 이것이 성인이 질곡이라 여긴 바요. 이제 애석한 것은, 탐욕 위에 법을 만들어 드디어 풍속을 이루고는, 그 폐단을 바로잡지 않고 도리어 높다 여기는 데 있소. 음란하고 망령된 무리로 말하면 세상이 절로 비루히 여겨 근원과 갈래가 보잘것없으니 애초에 논할 것이 못 되오.〉 흑이 말했다. 〈석씨의 가르침이 오로지 이(夷)의 풍속만 건진다면 중화에서는 취할 것이 없단 말이오?〉 백이 말했다. 〈어찌 그렇겠소. 함이 있으면 실마리를 열고 마땅히 줄기를 이어야 하니, 만물을 사랑하고 죽임을 버림은 오히려 사람들에게 베풂이 두루 미치고, 마음을 쉬어 영화의 소원을 버리고 대사(大士)가 두루 건지는 생각을 폄은, 인의와 현묘히 하나 되니 무엇으로 이보다 낫겠소. 애석하게도 그윽한 뜻이 밝혀지지 못하고 말류가 누가 될 뿐이오.〉 흑이 말했다. 〈그대의 논의로 선은 거의 같아졌소. 그러면 일은 삶에서 다하는 것이오?〉 백이 말했다. 〈그윽한 저승의 이치는 본디 사람의 일에서 다할 수 없소.

12여섯 건넘과 다섯 가르침

周、孔疑而不辨,釋迦辨而不實,將宜廢其顯晦之跡,存其所要之旨。請嘗言之。夫道之以仁義者,服理以從化,帥之以勸戒者,循利而遷善。故甘辭興於有欲,而滅於悟理,淡說行於天解,而息於貪偽。是以示來生者,蔽虧於道、釋不得已,杜幽闇者,冥符於姬、孔閉其兌。由斯論之,言之者未必遠,知之者未必得,不知者未必失,但知六度與五教並行,信順與慈悲齊立耳。殊塗而同歸者,不得守其發輪之轍也。」

주공·공자는 의심하여 가리지 않았고 석가는 가렸으나 실증하지 못했으니, 마땅히 드러나고 감춘 자취는 접어 두고 그 요긴한 뜻만 남겨야 하오. 시험 삼아 말해 보리다. 무릇 인의로 이끄는 것은 이치에 승복하여 교화를 따름이요, 권면과 경계로 거느리는 것은 이익을 좇아 선으로 옮김이오. 그러므로 단 말은 욕심 있는 데서 일어나 이치를 깨치면 스러지고, 담박한 말은 하늘의 깨침에서 행해져 탐욕과 거짓에서 그치오. 그러니 내생을 보이는 것은 도가와 석가가 부득이하여 도를 가린 것이요, 그윽하고 어두운 것을 막은 것은 주공·공자가 그 구멍을 닫음에 그윽이 부합하오. 이로써 논하면, 말하는 자가 반드시 멀리 안 것이 아니요 아는 자가 반드시 얻은 것이 아니며 모르는 자가 반드시 잃은 것이 아니니, 다만 육도(六度)가 오교(五敎)와 나란히 행해지고 신순(信順)이 자비와 가지런히 섬을 알 뿐이오. 길은 달라도 돌아감이 같으니, 첫 바퀴 자국만 지켜서는 안 되오.〉」

13검은 옷의 재상

論行於世。舊僧謂其貶黜釋氏,欲加擯斥。太祖見論賞之,元嘉中,遂參權要,朝廷大事,皆與議焉。賓客輻湊,門車常有數十兩,四方贈賂相係,勢傾一時。注孝經及莊子逍遙篇、文論,傳於世。

논이 세상에 행해지니, 옛 승려들은 석씨를 깎아내렸다 하여 내쫓으려 하였다. 태조가 논을 보고 칭찬하여, 원가 연간에 드디어 권요(權要)에 참여하니 조정 대사를 다 그와 의논하였다. 빈객이 몰려들어 문앞에 수레가 늘 수십 대요, 사방의 선물이 잇달아 권세가 한때를 기울였다. 효경과 장자 소요편의 주와 문론이 세상에 전한다.

14투장의 선굴, 동안의 담림

又有慧嚴、慧議道人,並住東安寺,學行精整,為道俗所推。時鬭場寺多禪僧,京師為之語曰:「鬭場禪師窟,東安談義林。」

또 혜엄·혜의 도인이 있어 다 동안사에 살았는데, 학문과 행실이 정밀하고 가지런하여 도속의 추앙을 받았다. 그때 투장사에 선승이 많으니, 서울에서 말하기를 「투장은 선사의 굴이요, 동안은 담의(談義)의 숲이라」 하였다.

15천안사가 된 중흥사

世祖大明四年,於中興寺設齋。有一異僧,眾莫之識,問其名,答言名明慧,從天安寺來,忽然不見。天下無此寺名,乃改中興曰天安寺。大明中,外國沙門摩訶衍苦節有精理,於京都多出新經,勝鬘經尤見重內學。

세조 대명 사년에 중흥사에서 재를 베풀었다. 낯선 승려 하나가 있어 아무도 알지 못하므로 이름을 물으니, 명혜(明慧)라 하며 천안사에서 왔다 답하고 홀연히 보이지 않았다. 천하에 이런 절 이름이 없으므로 이에 중흥을 고쳐 천안사라 하였다. 대명 연간에 외국 사문 마하연이 각고한 절조에 정밀한 이치가 있어 서울에서 새 경전을 많이 내니, 승만경이 내학(內學)에서 더욱 소중히 여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