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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국高句驪國

송서 이만전 宋書 夷蠻傳 · 심약(沈約) · 488년 (남제 영명 6) · 단락 3 · 한자 706자 · 낭독 2.8분

「송서 이만전」 한 권 「고구려국」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남조 송나라가 본 바다 건너 이웃들. 장수왕 고련의 조공과 풍홍 사건, 백제의 요서 경략 기사, 왜 오왕(찬·진·제·흥·무)의 표문, 그리고 남해 여러 나라가 불심으로 올린 표와 혜림의 균선론까지 — 5세기 바닷길의 기록이다.

1정동대장군 고련

今治漢之遼東郡。高句驪王高璉,晉安帝義熙九年,遣長史高翼奉表獻赭白馬。以璉為使持節、都督營州諸軍事、征東將軍、高句驪王、樂浪公。高祖踐阼,詔曰:「使持節、都督營州諸軍事、征東將軍、高句驪王、樂浪公璉,使持節、督百濟諸軍事、鎮東將軍、百濟王映,並執義海外,遠修貢職。惟新告始,宜荷國休,璉可征東大將軍,映可鎮東大將軍。持節、都督、王、公如故。」三年,加璉散騎常侍,增督平州諸軍事。少帝景平二年,璉遣長史馬婁等詣闕獻方物,遣使慰勞之,曰:「皇帝問使持節、散騎常侍、都督營平二州諸軍事、征東大將軍、高句驪王、樂浪公,纂戎東服,庸績繼軌,厥惠既彰,款誠亦著,踰遼越海,納貢本朝。朕以不德,忝承鴻緒,永懷先蹤,思覃遺澤。今遣謁者朱邵伯、副謁者王邵子等,宣旨慰勞。其茂康惠政,永隆厥功,式昭往命,稱朕意焉。」

지금 한나라의 요동군 자리를 다스림터로 삼는다. 고구려왕 고련(장수왕)은 진 안제 의희 구년에 장사 고익을 보내 표를 받들고 자백마(赭白馬)를 바치니, 련을 사지절·도독영주제군사·정동장군·고구려왕·낙랑공으로 삼았다. 고조가 즉위하자 조서하였다. 「사지절·도독영주제군사·정동장군·고구려왕·낙랑공 련과 사지절·독백제제군사·진동장군·백제왕 영은 다 바다 밖에서 의를 지켜 멀리서 공직을 닦았다. 새로움을 고하는 처음이라 마땅히 나라의 아름다움을 입을지니, 련은 정동대장군으로, 영은 진동대장군으로 삼고, 지절·도독·왕·공은 예전대로 한다.」 3년에 련에게 산기상시를 더하고 독평주제군사를 늘렸다. 소제 경평 이년에 련이 장사 마루 등을 보내 대궐에 나아가 방물을 바치니, 사신을 보내 위로하였다. 「황제가 사지절·산기상시·도독영평이주제군사·정동대장군·고구려왕·낙랑공에게 묻노라. 동쪽 변방을 이어 다스려 공적이 자취를 이으니, 은혜가 이미 드러나고 정성 또한 뚜렷하여, 요수를 넘고 바다를 건너 본조에 공물을 바치는도다. 짐이 덕 없이 외람되이 큰 실마리를 이어받아, 길이 앞자취를 생각하며 남기신 은택을 펴기를 생각하노라. 이제 알자 주소백과 부알자 왕소자 등을 보내 뜻을 펴 위로하니, 어진 정사에 힘써 길이 그 공을 높이고 지난 명을 밝게 하여 짐의 뜻에 맞게 하라.」

2풍홍을 죽인 장수왕

先是,鮮卑慕容寶治中山,為索虜所破,東走黃龍。義熙初,寶弟熙為其下馮跋所殺,跋自立為主,自號燕王,以其治黃龍城,故謂之黃龍國。跋死,子弘立,屢為索虜所攻,不能下。太祖世,每歲遣使獻方物。元嘉十二年,賜加除授。十五年,復為索虜所攻,弘敗走,奔高驪北豐城,表求迎接。太祖遣使王白駒、趙次興迎之,并令高驪料理資遣,璉不欲使弘南,乃遣將孫漱、高仇等襲殺之。白駒等率所領七千餘人掩討漱等,生禽漱,殺高仇等二人。璉以白駒等專殺,遣使執送之,上以遠國,不欲違其意,白駒等下獄,見原。

이보다 앞서 선비 모용보가 중산을 다스리다가 색로(북위)에게 깨져 동으로 황룡에 달아났다. 의희 초에 보의 아우 희가 그 부하 풍발에게 살해되니, 발이 스스로 서서 임금이 되어 연왕이라 이름하였는데, 황룡성을 다스림터로 삼았으므로 황룡국이라 일렀다. 발이 죽고 아우 홍이 서서 여러 번 색로의 공격을 받았으나 함락되지 않았다. 태조 시대에 해마다 사신을 보내 방물을 바치니 원가 십이년에 제수를 더하였다. 15년에 다시 색로의 공격을 받아 홍이 패해 달아나 고구려 북풍성에 몸을 붙이고 표를 올려 맞아 주기를 구하였다. 태조가 사신 왕백구·조차흥을 보내 맞게 하고 아울러 고구려에 물자를 대어 보내게 했는데, 련은 홍을 남으로 보내고 싶지 않아 이에 장수 손수·고구 등을 보내 습격해 죽였다. 백구 등이 거느린 칠천여 명을 이끌고 수 등을 덮쳐 쳐서, 수를 사로잡고 고구 등 두 사람을 죽였다. 련은 백구 등이 제멋대로 죽였다 하여 사신을 시켜 잡아 보내니, 임금은 먼 나라라 그 뜻을 어기고 싶지 않아 백구 등을 옥에 내렸다가 용서하였다.

협주 1

跋死子弘立 馮弘為馮跋之弟,見晉書載記,子當作弟,蓋沈約承鄰國傳聞而誤。

「발이 죽고 아들 홍이 섰다」 — 풍홍은 풍발의 아우이니 진서 재기에 보인다. 자(子)는 마땅히 제(弟)라야 하니, 심약이 이웃 나라의 전해 들은 말을 이어받아 잘못한 것이다.

3말 팔백 필

璉每歲遣使。十六年,太祖欲北討,詔璉送馬,璉獻馬八百匹。世祖孝建二年,璉遣長史董騰奉表慰國哀再周,幷獻方物。大明三年,又獻肅慎氏楛矢石砮。七年,詔曰:「使持節、散騎常侍、督平營二州諸軍事、征東大將軍、高句驪王、樂浪公璉,世事忠義,作藩海外,誠係本朝,志剪殘險,通譯沙表,克宣王猷。宜加褒進,以旌純節。可車騎大將軍、開府儀同三司,持節、常侍、都督、王、公如故。」太宗泰始、後廢帝元徽中,貢獻不絕。

련이 해마다 사신을 보냈다. 16년에 태조가 북벌하고자 하여 조서로 련에게 말을 보내게 하니, 련이 말 팔백 필을 바쳤다. 세조 효건 이년에 련이 장사 동등을 보내 표를 받들어 국상(國喪) 두 돌을 위문하고 아울러 방물을 바쳤다. 대명 삼년에 또 숙신씨의 호시와 석노를 바쳤다. 7년에 조서하였다. 「사지절·산기상시·독평영이주제군사·정동대장군·고구려왕·낙랑공 련은 대대로 충의를 섬겨 바다 밖의 울타리가 되고, 정성이 본조에 매여 뜻이 잔악한 무리를 자르는 데 있으며, 사막 밖까지 통역을 통해 왕의 계책을 능히 폈다. 마땅히 표창해 올려 순수한 절개를 기릴지니, 거기대장군·개부의동삼사로 삼고 지절·상시·도독·왕·공은 예전대로 한다.」 태종 태시와 후폐제 원휘 연간에 공물 바침이 끊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