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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은 말한다論

송서 이만전 宋書 夷蠻傳 · 심약(沈約) · 488년 (남제 영명 6) · 단락 1 · 한자 329자 · 낭독 1.3분

「송서 이만전」 한 권 「사신은 말한다」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남조 송나라가 본 바다 건너 이웃들. 장수왕 고련의 조공과 풍홍 사건, 백제의 요서 경략 기사, 왜 오왕(찬·진·제·흥·무)의 표문, 그리고 남해 여러 나라가 불심으로 올린 표와 혜림의 균선론까지 — 5세기 바닷길의 기록이다.

1사신은 말한다

史臣曰:漢世西譯遐通,兼途累萬,跨頭痛之山,越繩度之險,生行死徑,身往魂歸。晉氏南移,河、隴敻隔,戎夷梗路,外域天斷。若夫大秦、天竺,迥出西溟,二漢銜役,特艱斯路,而商貨所資,或出交部,汎海陵波,因風遠至。又重峻參差,氏眾非一,殊名詭號,種別類殊,山琛水寶,由茲自出,通犀翠羽之珍,蛇珠火布之異,千名萬品,並世主之所虛心,故舟舶繼路,商使交屬。太祖以南琛不至,遠命師旅,泉浦之捷,威震滄溟,未名之寶,入充府實。夫四夷孔熾,患深自古,蠻、僰殊雜,種眾特繁,依深傍岨,充積畿甸,咫尺華氓,易興狡毒,略財據土,歲月滋深。自元嘉將半,寇慝彌廣,遂盤結數州,搖亂邦邑。於是命將出師,恣行誅討,自江漢以北,廬江以南,搜山盪谷,窮兵罄武,繫頸囚俘,蓋以數百萬計。至於孩年耋齒,執訊所遺,將卒申好殺之憤,干戈窮酸慘之用,雖云積怨,為報亦甚。張奐所云「流血于野,傷和致災。」斯固仁者之言矣。

사신은 말한다. 한나라 시대에는 서역 통역이 멀리 통하여 길이 겹으로 수만 리라, 머리 아픈 산을 넘고 밧줄로 건너는 험한 데를 지나니, 살아서 가서 죽어서 오는 길이라 몸은 갔다가 넋으로 돌아왔다. 진씨(晉氏)가 남으로 옮기자 하수·농산이 아득히 막히고 융이(戎夷)가 길을 막아 바깥 지역이 하늘처럼 끊겼다. 저 대진·천축으로 말하면 서쪽 바다 밖에 아득히 솟아, 두 한나라가 사행을 물리면서도 이 길을 특히 어려워했는데, 상품과 재화의 밑천이 혹 교주 쪽에서 나와 바다에 떠 물결을 넘어 바람 따라 멀리서 이르렀다. 또 겹겹의 산이 들쭉날쭉하고 씨족의 무리가 하나가 아니어서, 다른 이름과 괴이한 칭호로 갈래와 부류가 다른데, 산의 보배와 물의 보물이 여기서 절로 나니, 통서(通犀)와 물총새 깃의 진귀함과 뱀구슬·화완포의 기이함이 천 가지 만 가지라, 다 세상 임금들이 마음을 비우고 바라는 바이므로, 배가 길을 잇고 장사꾼과 사신이 잇달았다. 태조는 남쪽의 보배가 이르지 않는다 하여 멀리 군사를 명하니, 천포(泉浦)의 승첩에 위엄이 푸른 바다를 진동하고 이름 모를 보물이 들어와 부고를 채웠다.

무릇 사이(四夷)의 성함은 근심이 예로부터 깊다. 만(蠻)·북(僰)이 뒤섞여 갈래와 무리가 특히 많은데, 깊은 데를 의지하고 험한 데를 곁에 두고 기전(畿甸)에 가득 쌓여, 지척의 중화 백성에게 교활한 해독을 일으키기 쉬우니, 재물을 빼앗고 땅을 차지함이 세월이 갈수록 깊어졌다. 원가 중엽부터 도적의 무리가 더욱 넓어져 드디어 여러 주에 서리고 얽혀 고을을 흔들고 어지럽혔다. 이에 장수에게 명해 군사를 내어 마음껏 토벌을 행하니, 강한(江漢) 이북과 여강 이남에서 산을 뒤지고 골짜기를 쓸며 군사를 다하고 무력을 다하여, 목을 매어 묶은 포로가 대개 수백만으로 헤아려졌다. 어린아이와 늙은이, 심문하고 남은 무리에 이르기까지, 장수와 군졸이 죽이기 좋아하는 분을 펴고 창칼이 시고 참혹한 쓰임을 다했으니, 비록 쌓인 원한이라 하나 갚음 또한 심하였다. 장환이 이른 「들에 피를 흘리면 화기를 상해 재앙을 부른다」는 말은 참으로 어진 이의 말이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