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百濟
1동명과 구태
百濟之先,出自高麗國。其國王有一侍婢,忽懷孕,王欲殺之。婢云:「有物狀如雞子,來感於我,故有娠也。」王捨之。後遂生一男,棄之廁溷,久而不死,以為神,命養之,名曰東明。及長,高麗王忌之,東明懼,逃至淹水,夫餘人共奉之。東明之後,有仇台者,篤於仁信,始立其國于帶方故地。漢遼東太守公孫度以女妻之,漸以昌盛,為東夷強國。初以百家濟海,因號百濟。歷十餘代,代臣中國,前史載之詳矣。開皇初,其王餘昌遣使貢方物,拜昌為上開府、帶方郡公、百濟王。
백제의 선조는 고려국에서 나왔다. 그 국왕의 시비 하나가 문득 아이를 배니 왕이 죽이려 하였다. 시비가 「달걀 같은 것이 와서 저에게 감응하였기에 아이를 배었습니다」 하니 왕이 놓아주었다. 뒤에 사내아이를 낳아 뒷간에 버렸으나 오래도록 죽지 않으니, 신령하다 여겨 기르라 명하고 이름을 동명이라 하였다. 자라자 고려왕이 꺼리니, 동명이 두려워 엄수까지 달아나자 부여 사람들이 함께 받들었다.
동명의 후손에 구태(仇台)라는 이가 있어 어짊과 믿음에 도타웠는데, 처음 대방 옛 땅에 나라를 세웠다. 한나라 요동태수 공손도가 딸로 아내를 삼게 하니 차츰 창성하여 동이의 강국이 되었다. 처음 백가(百家)로 바다를 건넜다(濟) 하여 백제라 이름하였다. 십여 대를 지나며 대대로 중국에 신하 노릇 하니, 앞선 역사책에 자세히 실려 있다.
개황 초에 그 왕 여창(위덕왕)이 사신을 보내 방물을 바치니, 창에게 상개부·대방군공·백제왕을 제수하였다.
2열여섯 품계와 다섯 부
其國東西四百五十里,南北九百餘里,南接新羅,北拒高麗。其都曰居拔城。官有十六品:長曰左平,次大率,次恩率,次德率,次杅率,次奈率,次將德,服紫帶;次施德,皂帶;次固德,赤帶;次李德,青帶;次對德以下,皆黃帶;次文督,次武督,次佐軍,次振武,次剋虞,皆用白帶。其冠制並同,唯奈率以上飾以銀花。長史三年一交代。畿內為五部,部有五巷,士人居焉。五方各有方領一人,方佐貳之。方有十郡,郡有將。其人雜有新羅、高麗、倭等,亦有中國人。其衣服與高麗略同。婦人不加粉黛,女辮髮垂後,已出嫁則分為兩道,盤於頭上。
그 나라는 동서 사백오십 리, 남북 구백여 리로, 남쪽은 신라에 닿고 북쪽은 고려에 버틴다. 도읍은 거발성이라 한다.
벼슬에 열여섯 품계가 있다. 으뜸은 좌평이요, 다음 대솔, 다음 은솔, 다음 덕솔, 다음 우솔, 다음 나솔, 다음 장덕까지는 자주 띠를 두르고, 다음 시덕은 검은 띠, 다음 고덕은 붉은 띠, 다음 계덕은 푸른 띠, 다음 대덕 이하는 다 누런 띠, 다음 문독, 다음 무독, 다음 좌군, 다음 진무, 다음 극우는 다 흰 띠를 쓴다. 관의 제도는 다 같은데 오직 나솔 이상은 은꽃으로 꾸민다. 장사(長史)는 삼 년에 한 번 교대한다.
기내는 다섯 부로 하고 부에는 다섯 항(巷)이 있어 사인(士人)이 산다. 다섯 방(方)에는 각각 방령 한 사람이 있고 방좌가 돕는다. 방에는 열 군이 있고 군에는 장수가 있다.
그 사람들에는 신라·고려·왜 등이 섞여 있고 중국 사람도 있다. 옷은 고려와 대략 같다. 부인은 분과 눈썹먹을 하지 않고, 처녀는 머리를 땋아 뒤로 드리우며, 시집가면 두 갈래로 나누어 머리 위에 서린다.
협주 4
左平 通典一八五作「左率」。
「좌평」은 통전 185권에는 「좌솔」로 되어 있다.
李德 北史百濟傳作「季德」。
「이덕(李德)」은 북사 백제전에는 「계덕(季德)」으로 되어 있다.
次對德以下皆黃帶次文督 北史百濟傳,「皆黃帶」在「次文督」下。
「次對德以下皆黃帶次文督」 — 북사 백제전에는 「皆黃帶」가 「次文督」 뒤에 있다.
其人雜有新羅高麗倭等 「倭」原作「俀」。按:古從「委」和從「妥」的字,有時可以通用。如「桵」或作「㮃」,「緌」或作「綏」。「俀」應是「倭」字的別體。本書煬帝紀上作「倭」。本卷和他處作「俀」者,今一律改為「倭」。
「왜(倭)」는 원래 「타(俀)」로 되어 있다. 생각건대 옛날 「委」를 따르는 글자와 「妥」를 따르는 글자는 때로 통용되었으니, 「桵」를 「㮃」로도 쓰고 「緌」를 「綏」로도 쓴 것과 같다. 「俀」는 「倭」의 딴 글자체다. 이 책 양제기 상권에는 「倭」로 되어 있다. 이 권과 다른 곳의 「俀」는 (교감에서) 일률로 「倭」로 고쳤다.
3여덟 큰 성씨와 풍속
俗尚騎射,讀書史,能吏事,亦知醫藥、蓍龜、占相之術。以兩手據地為敬。有僧尼,多寺塔。有鼓角、箜篌、箏、竽、箎、笛之樂,投壺、圍棊、樗蒲、握槊、弄珠之戲。行宋元嘉曆,以建寅月為歲首。國中大姓有八族,沙氏、燕氏、刕氏、解氏、貞氏、國氏、木氏、苩氏。婚娶之禮,略同於華。喪制如高麗。有五穀、牛、猪、雞,多不火食。厥田下濕,人皆山居。有巨栗。每以四仲之月,王祭天及五帝之神。並其始祖仇台廟於國城,歲四祠之。國西南人島居者十五所,皆有城邑。
풍속은 말타기와 활쏘기를 숭상하고, 경서와 사서를 읽으며, 관리의 일에 능하고, 의약과 시초점·거북점과 관상술도 안다. 두 손을 땅에 짚는 것으로 공경을 삼는다. 승려와 비구니가 있고 절과 탑이 많다. 고각·공후·쟁·우·지·적의 음악과 투호·바둑·저포·악삭·농주의 놀이가 있다. 송나라 원가력을 써서 인월(寅月)을 한 해의 첫머리로 삼는다.
나라 안의 큰 성씨로 여덟 족이 있으니, 사씨·연씨·리씨·해씨·정씨·국씨·목씨·백씨다. 혼인의 예는 중화와 대략 같고 상제는 고려와 같다. 오곡과 소·돼지·닭이 있으며 대개 불로 익혀 먹지 않는다. 그 밭은 낮고 습하여 사람들이 다 산에 산다. 큰 밤이 난다.
네 계절의 가운데 달마다 왕이 하늘과 오제의 신에게 제사하고, 그 시조 구태의 사당을 나라 성에 세워 해마다 네 번 제사한다. 나라 서남쪽에 사람 사는 섬이 열다섯 곳 있는데 다 성읍이 있다.
협주 1
苩氏 「苩」原作「苗」,據通典一八五改。
「백(苩)」은 원래 「묘(苗)」로 되어 있는데, 통전 185권에 따라 고쳤다.
4표류선을 돌려보내다
平陳之歲,有一戰船漂至海東𨈭牟羅國,其船得還,經于百濟,昌資送之甚厚,并遣使奉表賀平陳。高祖善之,下詔曰:「百濟王既聞平陳,遠令奉表,往復至難,若逢風浪,便致傷損。百濟王心迹淳至,朕已委知。相去雖遠,事同言面,何必數遣使來相體悉。自今以後,不須年別入貢,朕亦不遣使往,王宜知之。」使者舞蹈而去。
진(陳)을 평정하던 해에 싸움배 한 척이 바다 동쪽 탐모라국에 떠내려갔다. 그 배가 돌아올 때 백제를 지나니, 창이 물자를 매우 후하게 주어 보내고 아울러 사신을 보내 표를 받들어 진 평정을 하례하였다. 고조가 갸륵히 여겨 조서를 내렸다.
「백제왕이 진을 평정했다는 소식을 듣고 멀리서 표를 받들게 하였으니, 오가기가 지극히 어려워 풍랑을 만나면 문득 몸을 상하리라. 백제왕의 마음의 자취가 순박하고 지극함을 짐이 이미 잘 안다. 서로 떨어짐이 멀어도 일은 얼굴을 마주한 것과 같으니, 어찌 꼭 자주 사신을 보내 와야만 서로 알랴. 이제부터는 해마다 따로 조공하지 않아도 되고 짐도 사신을 보내지 않을 터이니, 왕은 알아 두라.」
사자가 춤추며 돌아갔다.
5군도가 되기를 청하다
開皇十八年,昌使其長史王辯那來獻方物,屬興遼東之役,遣使奉表,請為軍導。帝下詔曰:「往歲為高麗不供職貢,無人臣禮,故命將討之。高元君臣恐懼,畏服歸罪,朕已赦之,不可致伐。」厚其使而遣之。高麗頗知其事,以兵侵掠其境。
개황 십팔년에 창이 장사 왕변나를 시켜 와서 방물을 바쳤다. 요동의 전역이 일어난 때라 사신을 보내 표를 받들어 군도(軍導·길잡이)가 되기를 청하였다. 황제가 조서를 내렸다. 「지난해에 고려가 직공을 바치지 않고 신하의 예가 없으므로 장수에게 명해 쳤다. 고원의 임금과 신하가 두려워하며 죄를 빌기에 짐이 이미 용서했으니 칠 수 없다.」 그 사신을 후대하여 보냈다. 고려가 그 일을 자못 알고 군사로 그 지경을 침노하였다.
6창이 죽고 장이 즉위하다
昌死,子餘宣立,死,子餘璋立。
창이 죽고 아들 여선이 즉위하고, 죽자 아들 여장(무왕)이 즉위하였다.
7속으로는 고려와 통하다
大業三年,璋遣使者燕文進朝貢。其年,又遣使者王孝鄰入獻,請討高麗。煬帝許之,令覘高麗動靜。然璋內與高麗通和,挾詐以窺中國。七年,帝親征高麗,璋使其臣國智牟來請軍期。帝大悅,厚加賞錫,遣尚書起部郎席律詣百濟,與相知。明年,六軍渡遼,璋亦嚴兵於境,聲言助軍,實持兩端。尋與新羅有隙,每相戰爭。十年,復遣使朝貢。後天下亂,使命遂絕。
대업 삼년에 장이 사자 연문진을 보내 조공하였다. 그해에 또 사자 왕효린을 보내 공물을 바치며 고려 치기를 청하니, 양제가 허락하고 고려의 동정을 엿보게 하였다. 그러나 장은 안으로 고려와 화통하며 속임수를 끼고 중국을 엿보았다.
칠년에 황제가 고려를 친히 정벌하니 장이 신하 국지모를 보내 군사 낼 시기를 물었다. 황제가 크게 기뻐하여 상을 후하게 더하고, 상서기부랑 석률을 백제에 보내 서로 알리게 하였다. 이듬해 육군이 요수를 건너자 장도 지경에 군사를 엄히 벌여 놓고 군사를 돕는다 소리내면서, 실은 두 마음을 지녔다. 이윽고 신라와 틈이 생겨 늘 서로 싸웠다.
십년에 다시 사신을 보내 조공했으나, 뒤에 천하가 어지러워지자 사신 길이 마침내 끊겼다.
8탐모라국
其南海行三月,有𨈭牟羅國,南北千餘里,東西數百里,土多麞鹿,附庸於百濟。百濟自西行三日,至貊國云。
그 남쪽으로 바닷길 석 달을 가면 탐모라국이 있는데, 남북 천여 리, 동서 수백 리로 노루와 사슴이 많으며 백제에 부용한다. 백제에서 서쪽으로 사흘을 가면 맥국(貊國)에 이른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