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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구국流求國

수서 동이전 隋書 東夷傳 · 위징(魏徵) 등 · 636년 (당 정관 10) · 단락 6 · 한자 1,202자 · 낭독 4.8분

「수서 동이전」 한 권 「유구국」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수나라가 본 동방 여섯 나라 — 고려·백제·신라·말갈·유구·왜. 수 문제가 고구려에 보낸 새서와, 왜왕이 보낸 「해 뜨는 곳의 천자가 해 지는 곳의 천자에게」 국서가 함께 실려 있다. 살수대첩으로 끝난 세 차례 원정의 중국 쪽 기록이다.

1바다 섬의 나라

流求國,居海島之中,當建安郡東,水行五日而至。土多山洞。其王姓歡斯氏,名渴剌兜,不知其由來有國代數也。彼土人呼之為可老羊,妻曰多拔荼。所居曰波羅檀洞,壍柵三重,環以流水,樹棘為藩。王所居舍,其大一十六間,琱刻禽獸。多鬬鏤樹,似橘而葉密,條纖如髮,紛然下垂。國有四五帥,統諸洞,洞有小王。往往有村,村有鳥了帥,並以善戰者為之,自相樹立,理一村之事。男女皆以白紵繩纏髮,從項後盤繞至額。其男子用鳥羽為冠,裝以珠貝,飾以赤毛,形製不同。婦人以羅紋白布為帽,其形正方。織鬬鏤皮并雜色紵及雜毛以為衣,製裁不一。綴毛垂螺為飾,雜色相間,下垂小貝,其聲如珮。綴鐺施釧,懸珠於頸。織藤為笠,飾以毛羽。有刀、矟、弓、箭、劍、鈹之屬。其處少鐵,刃皆薄小,多以骨角輔助之。編紵為甲,或用熊豹皮。王乘木獸,令左右轝之而行,導從不過數十人。小王乘机,鏤為獸形。

유구국은 바다 섬 가운데 있으니, 건안군 동쪽에 해당하며 물길로 닷새면 이른다. 땅에 산과 골이 많다. 그 왕의 성은 환사씨요 이름은 갈랄두인데, 나라를 둔 유래와 대수는 알 수 없다. 그 땅 사람들은 왕을 가로양이라 부르고 왕비를 다발도라 한다. 사는 곳은 파라단동이라 하며, 해자와 목책이 세 겹이고 흐르는 물로 두르고 가시나무를 심어 울을 삼았다. 왕이 사는 집은 크기가 열여섯 칸으로 새와 짐승을 아로새겼다.

투루나무가 많은데 귤 비슷하나 잎이 빽빽하고, 가지가 머리털처럼 가늘어 어지러이 드리운다.

나라에 네댓 수(帥)가 있어 여러 동(洞)을 거느리고, 동에는 작은 왕이 있다. 마을마다 조료수(鳥了帥)가 있으니 다 싸움 잘하는 자로 삼는데, 저희끼리 세우며 한 마을 일을 다스린다.

남녀 다 흰 모시 끈으로 머리를 감아 목덜미 뒤에서 이마까지 서린다. 남자는 새 깃으로 관을 만들어 구슬과 조개를 달고 붉은 털로 꾸미는데 생김이 저마다 다르다. 부인은 무늬 있는 흰 베로 모자를 만드는데 그 모양이 네모반듯하다. 투루나무 껍질과 여러 빛깔 모시와 갖가지 털을 섞어 짜서 옷을 만드는데 마름질이 한결같지 않다. 털을 잇고 소라를 드리워 꾸미며 여러 빛깔이 갈마드는데, 작은 조개를 아래로 드리우면 그 소리가 패옥 같다. 방울을 잇고 팔찌를 끼며 구슬을 목에 건다. 등나무를 짜서 삿갓을 만들고 털과 깃으로 꾸민다.

칼·창·활·화살·검·피(鈹) 따위가 있다. 그곳은 쇠가 적어 칼날이 다 얇고 작으며 뼈와 뿔로 많이 보탠다. 모시를 엮어 갑옷을 만들고 혹 곰·표범 가죽을 쓴다. 왕은 나무짐승을 타고 좌우에게 메게 하여 다니는데, 따르는 이가 수십 명에 지나지 않는다. 작은 왕은 궤를 타는데 짐승 모양으로 아로새긴다.

2싸움과 형벌

國人好相攻擊,人皆驍健善走,難死而耐創。諸洞各為部隊,不相救助。兩陣相當,勇者三五人出前跳噪,交言相罵,因相擊射。如其不勝,一軍皆走,遣人致謝,即共和解。收取鬬死者,共聚而食之,仍以髑髏將向王所。王則賜之以冠,使為隊帥。無賦斂,有事則均稅。用刑亦無常准,皆臨事科決。犯罪皆斷於鳥了帥;不伏,則上請於王,王令臣下共議定之。獄無枷鏁,唯用繩縛。決死刑以鐵錐,大如筯,長尺餘,鑽頂而殺之。輕罪用杖。俗無文字,望月虧盈以紀時節,候草藥枯以為年歲。

나라 사람들은 서로 치기를 좋아하며, 다 날래고 잘 달리며 여간해선 죽지 않고 상처를 잘 견딘다. 여러 동은 저마다 부대가 되어 서로 구해 주지 않는다. 두 진이 맞서면 용감한 서너댓 사람이 앞에 나와 뛰며 소리치고, 말을 주고받으며 서로 꾸짖다가 곧 치고 쏜다. 못 이길 것 같으면 온 군이 다 달아나고, 사람을 보내 사죄하면 곧 함께 화해한다. 싸우다 죽은 자를 거두어 함께 모여 먹고, 해골은 왕에게 가져간다. 왕은 관을 내려 대수로 삼는다.

부세는 없고 일이 있으면 고르게 거둔다. 형벌도 일정한 기준이 없어 다 일에 임해 결정한다. 죄는 다 조료수가 결단하고, 승복하지 않으면 왕에게 올려 청하니 왕이 신하들에게 함께 의논해 정하게 한다. 옥에는 칼과 쇠사슬이 없고 오직 노끈으로 묶는다. 사형은 쇠송곳으로 하니 크기가 젓가락만 하고 길이가 한 자 남짓인데, 정수리를 뚫어 죽인다. 가벼운 죄는 매를 쓴다.

풍속에 문자가 없어, 달이 차고 이지러짐을 바라보아 철을 기록하고 풀과 약초가 마르는 것을 살펴 한 해로 삼는다.

3혼인과 장례

人深目長鼻,頗類於胡,亦有小慧。無君臣上下之節,拜伏之禮。父子同牀而寢。男子拔去髭鬢,身上有毛之處皆亦除去。婦人以墨黥手,為蟲蛇之文。嫁娶以酒肴珠貝為娉,或男女相悅,便相匹偶。婦人產乳,必食子衣,產後以火自灸,令汗出,五日便平復。以木槽中暴海水為鹽,木汁為酢,釀米麪為酒,其味甚薄。食皆用手。偶得異味,先進尊者。凡有宴會,執酒者必待呼名而後飲。上王酒者,亦呼王名。銜杯共飲,頗同突厥。歌呼蹋蹄,一人唱,衆皆和,音頗哀怨。扶女子上膊,搖手而舞。其死者氣將絕,舉至庭,親賓哭泣相弔。浴其屍,以布帛纏之,裹以葦草,親土而殯,上不起墳。子為父者,數月不食肉。南境風俗少異,人有死者,邑里共食之。

사람들은 눈이 깊고 코가 길어 자못 호(胡)와 비슷하며 잔꾀도 있다. 임금과 신하, 위아래의 절차와 절하고 엎드리는 예가 없다. 아비와 자식이 한 침상에서 잔다. 남자는 수염과 구레나룻을 뽑고 몸에 털 난 데는 다 없앤다. 부인은 먹으로 손에 벌레와 뱀 무늬를 새긴다.

혼인은 술과 안주와 구슬·조개로 청혼하는데, 혹 남녀가 서로 좋아하면 곧 짝이 된다. 부인이 아이를 낳으면 반드시 태를 먹고, 낳은 뒤 불로 제 몸을 지져 땀을 내면 닷새면 회복된다.

나무 구유에 바닷물을 볕에 말려 소금을 만들고 나무 즙으로 식초를 삼으며, 쌀과 밀가루를 빚어 술을 만드는데 그 맛이 몹시 엷다. 먹기는 다 손으로 한다. 우연히 별미를 얻으면 먼저 웃어른께 올린다. 무릇 잔치에는 술을 잡은 자가 반드시 이름 부르기를 기다린 뒤에 마신다. 왕에게 술을 올리는 자도 왕의 이름을 부른다. 잔을 물고 함께 마시니 자못 돌궐과 같다. 노래하고 소리치며 발을 구르는데, 한 사람이 부르면 뭇사람이 화답하니 소리가 자못 슬프고 원망스럽다. 여자를 부축해 팔뚝에 올리고 손을 흔들며 춤춘다.

죽는 이는 숨이 끊어지려 하면 들어다 뜰에 두고, 친척과 손이 곡하며 서로 조상한다. 주검을 씻어 베로 감고 갈대 풀로 싸서 흙에 붙여 묻되, 위에 봉분을 세우지 않는다. 자식은 아비를 위해 몇 달 고기를 먹지 않는다. 남쪽 지경은 풍속이 조금 달라, 사람이 죽으면 마을에서 함께 먹는다.

4물산

有熊羆豺狼,尤多猪雞,無牛羊驢馬。厥田良沃,先以火燒而引水灌之。持一插,以石為刃,長尺餘,闊數寸,而墾之。土宜稻、粱、𢇲黍、麻、豆、赤豆、胡豆、黑豆等,木有楓、栝、樟、松、楩、楠、杉、梓,竹、籐、果、藥同於江表,風土氣候與嶺南相類。

곰·말곰·승냥이·이리가 있고 돼지와 닭이 더욱 많으며 소·양·나귀·말은 없다. 밭은 기름져서 먼저 불을 놓고 물을 끌어 댄다. 삽 하나를 잡는데 돌로 날을 삼으니 길이 한 자 남짓, 너비 두어 치로 그것으로 간다. 땅에는 벼·조·기장·삼·콩·팥·호두(胡豆)·검은콩 따위가 알맞고, 나무는 단풍·전나무·녹나무·소나무·편나무·남나무·삼나무·가래나무가 있으며, 대·등나무·과일·약초는 강남과 같고 풍토와 기후는 영남과 비슷하다.

5산과 바다의 신

俗事山海之神,祭以酒肴,鬬戰殺人,便將所殺人祭其神。或依茂樹起小屋,或懸髑髏於樹上,以箭射之,或累石繫幡以為神主。王之所居,壁下多聚髑髏以為佳。人間門戶上必安獸頭骨角。

풍속에 산과 바다의 신을 섬겨 술과 안주로 제사하고, 싸워서 사람을 죽이면 곧 죽인 사람을 그 신에게 제사한다. 혹 무성한 나무에 기대어 작은 집을 세우고, 혹 해골을 나무 위에 걸고 화살로 쏘며, 혹 돌을 쌓고 깃발을 매어 신주로 삼는다. 왕이 사는 곳은 벽 아래 해골을 많이 모아 두는 것을 좋게 여긴다. 민가의 문 위에는 반드시 짐승 머리뼈와 뿔을 단다.

6진릉이 치고 끊기다

大業元年,海師何蠻等,每春秋二時,天清風靜,東望依希,似有煙霧之氣,亦不知幾千里。三年,煬帝令羽騎尉朱寬入海求訪異俗,何蠻言之,遂與蠻俱往,因到流求國。言不相通,掠一人而返。明年,帝復令寬慰撫之,流求不從,寬取其布甲而還。時倭國使來朝,見之曰:「此夷邪久國人所用也。」帝遣武賁郎將陳稜、朝請大夫張鎮州率兵自義安浮海擊之。至高華嶼,又東行二日至𪓟鼊嶼,又一日便至流求。初,稜將南方諸國人從軍,有崐崘人頗解其語,遣人慰諭之,流求不從,拒逆官軍。稜擊走之,進至其都,頻戰皆敗,焚其宮室,虜其男女數千人,載軍實而還。自爾遂絕。

대업 원년에 뱃길잡이 하만 등이, 봄가을 두 철 하늘이 맑고 바람이 고요할 때 동쪽을 바라보면 어렴풋이 연기와 안개 같은 기운이 있는데 몇천 리인지 모르겠다고 하였다. 삼년에 양제가 우기위 주관에게 바다에 들어가 색다른 풍속을 찾게 하니, 하만이 말한 대로 함께 가서 유구국에 이르렀다. 말이 통하지 않아 한 사람을 잡아 돌아왔다. 이듬해에 황제가 다시 주관을 시켜 위무하게 했으나 유구가 따르지 않으니, 주관이 그 베 갑옷을 가지고 돌아왔다. 그때 왜국 사신이 조회 와서 보고 「이는 이사구국(夷邪久國) 사람들이 쓰는 것이라」 하였다.

황제가 무분낭장 진릉과 조청대부 장진주를 보내 군사를 거느리고 의안에서 바다를 건너 치게 하였다. 고화서에 이르고, 또 동쪽으로 이틀을 가서 구벽서에 이르고, 또 하루 만에 유구에 이르렀다. 처음 진릉이 남방 여러 나라 사람을 데리고 종군했는데, 곤륜인 하나가 그 말을 자못 알아들어 사람을 보내 타일렀으나 유구가 따르지 않고 관군을 막았다. 진릉이 쳐서 쫓고 그 도읍에 이르러 자주 싸워 다 이기고, 그 궁실을 불사르고 남녀 수천 명을 사로잡아 군수품을 싣고 돌아왔다. 이로부터 마침내 끊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