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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국倭國

수서 동이전 隋書 東夷傳 · 위징(魏徵) 등 · 636년 (당 정관 10) · 단락 7 · 한자 1,415자 · 낭독 5.7분

「수서 동이전」 한 권 「왜국」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수나라가 본 동방 여섯 나라 — 고려·백제·신라·말갈·유구·왜. 수 문제가 고구려에 보낸 새서와, 왜왕이 보낸 「해 뜨는 곳의 천자가 해 지는 곳의 천자에게」 국서가 함께 실려 있다. 살수대첩으로 끝난 세 차례 원정의 중국 쪽 기록이다.

1야미퇴에 도읍하다

俀國,在百濟、新羅東南,水陸三千里,於大海之中依山島而居。魏時,譯通中國三十餘國,皆自稱王。夷人不知里數,但計以日。其國境,東西五月行,南北三月行,各至於海。其地勢,東髙西下。都於邪靡堆,則《魏志》所謂邪馬臺者也。古云去樂浪郡境及帶方郡並一萬二千里,在會稽之東,與儋耳相近。

왜국(俀國)은 백제·신라 동남쪽 물과 뭍으로 삼천 리에 있으니, 큰 바다 가운데 산섬에 의지해 산다. 위나라 때 통역으로 중국과 통한 것이 서른여 나라인데 다 스스로 왕이라 일컬었다. 이인(夷人)은 이수를 몰라 다만 날수로 헤아린다. 그 나라 지경은 동서로 다섯 달 길, 남북으로 석 달 길이며 저마다 바다에 이른다. 지세는 동쪽이 높고 서쪽이 낮다. 야미퇴(邪靡堆)에 도읍하니, 곧 《위지》에 이른 야마대(邪馬臺)라는 곳이다. 옛말에 낙랑군 지경과 대방군에서 다 일만 이천 리 떨어져 회계 동쪽에 있으며 담이(儋耳)와 가깝다 하였다.

2히미코

漢光武時,遣使入朝,自稱大夫。安帝時,又遣使朝貢,謂之俀奴國。桓、靈之間,其國大亂,遞相攻伐,歷年無主。有女子名卑彌呼,能以鬼道惑衆,於是國人共立爲王。有男弟佐卑彌理國。其王有侍婢千人,罕有見其面者,唯有男子二人,給王飲食,通傳言語。其王有宫室樓觀,城柵皆持兵守衞,爲法甚嚴。自魏至于齊、梁,代與中國相通。

한 광무 때 사신을 보내 입조하며 스스로 대부라 일컬었다. 안제 때 또 사신을 보내 조공하니 왜노국이라 일렀다. 환제·영제 사이에 그 나라가 크게 어지러워 서로 치며 여러 해 임금이 없었다. 히미코(卑彌呼)라는 여자가 있어 귀도(鬼道)로 뭇사람을 흘리니, 나라 사람들이 함께 세워 왕으로 삼았다. 남동생이 있어 히미코를 도와 나라를 다스렸다. 그 왕은 시비 천 명을 두었는데 낯을 본 자가 드물고, 오직 남자 둘이 왕에게 음식을 올리고 말을 전하였다. 왕은 궁실과 누관이 있고 성책에 다 병기를 지녀 지키게 하니 법이 몹시 엄했다. 위나라부터 제·양에 이르도록 대대로 중국과 통하였다.

3하늘을 형, 해를 아우로

開皇二十年,俀王姓阿每,字多利思比孤,號阿輩雞彌,遣使詣闕。上令所司訪其風俗。使者言:「俀王以天爲兄,以日爲弟。天未明時出聽政,跏趺坐。日出便停理務,云委我弟。」髙祖曰:「此太無義理。」於是訓令攺之。王妻號雞彌,後宫有女六七百人。名太子爲利歌彌多弗利。無城郭。內官有十二等:一曰大德,次小德,次大仁,次小仁,次大義,次小義,次大禮,次小禮,次大智,次小智,次大信,次小信,貟無定數。有軍尼一百二十人,猶中國牧宰。八十户置一伊尼翼,如今里長也。十伊尼翼屬一軍尼。

개황 이십년에 왜왕 — 성은 아매(阿每), 자는 다리사비고(多利思比孤), 호는 아배계미(阿輩雞彌) — 가 사신을 보내 대궐에 이르렀다. 임금이 맡은 관사를 시켜 그 풍속을 물으니 사자가 말하였다. 「왜왕은 하늘을 형으로 삼고 해를 아우로 삼습니다. 하늘이 밝기 전에 나와 정사를 듣되 가부좌하고 앉고, 해가 뜨면 곧 일 보기를 그치고 아우에게 맡긴다 합니다.」 고조가 「이는 너무나 도리가 없다」 하고 가르쳐 고치게 하였다.

왕의 아내는 계미(雞彌)라 부르고 후궁에 여자 육칠백 명이 있다. 태자 이름은 리가미다불리(利歌彌多弗利)라 한다. 성곽이 없다.

내관에 열두 등급이 있으니, 첫째 대덕, 다음 소덕, 다음 대인, 다음 소인, 다음 대의, 다음 소의, 다음 대례, 다음 소례, 다음 대지, 다음 소지, 다음 대신, 다음 소신인데 정원이 없다. 군니(軍尼) 백이십 명이 있으니 중국의 목재(牧宰)와 같다. 팔십 호에 이니익(伊尼翼) 하나를 두니 지금의 이장 같고, 열 이니익이 한 군니에 속한다.

협주 1

다른 본에는 「北」로 되어 있다

「비(比)」가 다른 본에는 「북(北)」으로 되어 있다.

4옷과 형벌과 풍속

其服飾,男子衣裠襦,其袖微小。履如屨形,漆其上,繫之於脚。人庶多跣足。不得用金銀爲飾。故時,衣橫幅,結束相連而無縫。頭亦無冠,但垂髮於兩耳上。至隋,其王始制冠,以錦綵爲之,以金銀鏤花爲飾。婦人束髮於後,亦衣裠襦,裳皆有襈。攕竹爲梳,編草爲薦,雜皮爲表,緣以文皮。有弓、矢、刀、矟、弩、䂎、斧,漆皮爲甲,骨爲矢鏑。𨿽有兵,無征戰。其王朝會,必陳設儀仗,奏其國樂。户可十萬。其俗殺人、強盗及姦皆死,盗者計贓酬物,無財者没身爲奴。自餘輕重,或流或杖。每訊究獄訟,不承引者,以木𡑅膝,或張強弓,以弦鋸其項。或置小石於沸湯中,令所競者探之,云理曲者即手爛。或置蛇瓮中,令取之,云曲者即螫手矣。人頗恬靜,罕爭訟,少盗賊。樂有五弦琴、笛。男女多黥臂、點面、文身,没水捕魚。無文字,唯刻木結繩。敬佛法,於百濟求得佛經,始有文字。知卜筮,尤信巫覡。每至正月一日,必射戲飲酒,其餘節略與華同。

그 복식은, 남자는 저고리와 잠방이를 입는데 소매가 조금 작다. 신은 신골 모양 같은데 위에 옻칠하고 발에 동여맨다. 백성은 대개 맨발이다. 금은으로 꾸미지 못한다. 옛날에는 폭 넓은 천을 옆으로 둘러 묶어 이었을 뿐 꿰매지 않았고, 머리에도 관이 없이 양 귀 위로 머리털을 드리웠다. 수나라에 이르러 그 왕이 처음 관을 만들었는데, 채색 비단으로 하고 금은을 아로새긴 꽃으로 꾸몄다. 부인은 머리를 뒤로 묶고 역시 저고리 잠방이를 입는데 치마에 다 선을 두른다. 가는 대를 깎아 빗을 만들고 풀을 엮어 자리를 만들며, 갖가지 가죽으로 겉을 삼고 무늬 가죽으로 가를 두른다.

활·화살·칼·창·쇠뇌·작은 창·도끼가 있고, 옻칠한 가죽으로 갑옷을 삼고 뼈로 살촉을 만든다. 병기는 있어도 정벌 전쟁은 없다. 그 왕의 조회에는 반드시 의장을 벌이고 그 나라 음악을 연주한다. 호수는 십만쯤 된다.

그 풍속에 살인·강도와 간음은 다 죽이고, 도둑질은 장물을 헤아려 물게 하되 재물이 없으면 몸을 몰수해 종으로 삼는다. 그 밖에는 가볍고 무거움에 따라 유배하거나 매질한다. 옥사를 신문할 때마다 승복하지 않는 자는 나무로 무릎을 누르거나 센 활을 당겨 그 시위로 목을 켠다. 혹 작은 돌을 끓는 물에 넣어 다투는 자에게 더듬게 하니, 이치가 굽은 자는 곧 손이 문드러진다 한다. 혹 뱀을 독에 넣고 집게 하니, 굽은 자는 곧 손을 물린다 한다.

사람들이 자못 안존하고 고요하여 다툼과 송사가 드물고 도적이 적다. 악기로 오현금과 피리가 있다. 남녀 대개 팔에 문신하고 낯에 점을 찍고 몸에 무늬를 넣으며, 물에 들어가 고기를 잡는다. 문자가 없어 오직 나무에 새기고 노끈을 맺을 뿐이었는데, 불법을 공경하여 백제에서 불경을 구해 얻으면서 비로소 문자가 생겼다. 점을 알고 무당을 더욱 믿는다. 정월 초하루가 되면 반드시 활쏘기 놀이를 하고 술을 마시며, 그 나머지 명절은 대략 중화와 같다.

5놀이와 혼인과 장례

好棊博、握槊、樗蒲之戲。氣候溫暖,草木冬青,土地膏腴,水多陸少。以小環挂鸕鷀項,令入水捕魚,日得百餘頭。俗無盤俎,藉以檞葉,食用手餔之。性質直,有雅風。女多男少,婚嫁不取同姓,男女相恱者即爲婚。婦入夫家,必先跨犬,乃與夫相見。婦人不婬妬。死者斂以棺槨,親賔就屍歌舞,妻子兄弟以白布製服。貴人三年殯於外,庶人卜日而瘞。及葬,置屍舩上,陸地牽之,或以小轝。

바둑·쌍륙·악삭·저포 놀이를 좋아한다. 기후가 따뜻하여 풀과 나무가 겨울에도 푸르고, 땅이 기름지며 물이 많고 뭍이 적다. 작은 고리를 가마우지 목에 걸어 물에 들어가 고기를 잡게 하니, 하루 백여 마리를 얻는다. 풍속에 소반과 도마가 없어 떡갈잎을 깔고 손으로 집어 먹는다. 성질이 곧고 아담한 풍도가 있다. 여자가 많고 남자가 적으며, 혼인에 같은 성을 취하지 않고 남녀가 서로 좋아하면 곧 혼인한다. 아내가 지아비 집에 들어갈 때 반드시 먼저 개를 넘고서야 지아비와 서로 본다. 부인은 음란하지도 시새우지도 않는다.

죽은 이는 관과 곽으로 염하고, 친척과 손이 주검 곁에서 노래하고 춤추며, 처자와 형제는 흰 베로 상복을 짓는다. 귀인은 세 해를 바깥에 빈소 두고, 서인은 날을 가려 묻는다. 장사 지낼 때 주검을 배 위에 놓고 뭍에서 끌거나, 작은 가마로 한다.

6아소산과 여의보주

有阿蘇山,其石無故火起接天者,俗以爲異,因行禱祭。有如意寶珠,其色青,大如雞卵,夜則有光,云魚眼精也。新羅、百濟皆以俀爲大國,多珎物,並敬仰之,恒通使徃來。

아소산이 있는데 그 돌이 까닭 없이 불길이 일어 하늘에 닿으니, 풍속에 이상하게 여겨 제사를 지낸다. 여의보주가 있는데 빛이 푸르고 크기가 달걀만 하며 밤이면 빛이 나니, 물고기 눈의 정기라 한다. 신라와 백제가 다 왜를 큰 나라로 여기고 진기한 물건이 많다 하여 다 공경하고 우러르며, 늘 사신이 오간다.

7해 뜨는 곳의 천자

大業三年,其王多利思比孤遣使朝貢。使者曰:「聞海西菩薩天子重興佛法,故遣朝拜,兼沙門數十人來學佛法。」其國書曰「日出處天子致書日没處天子無恙」云云。帝覽之不恱,謂鴻臚卿曰:「蠻夷書有無禮者,勿復以聞。」明年,上遣文林郎裴清使於俀國。度百濟,行至竹島,南望𨈭羅國,經都斯麻國,迥在大海中。又東至一支國,又至竹斯國,又東至秦王國,其人同於華夏,以爲夷洲,疑不能明也。又經十餘國,達於海岸。自竹斯國以東,皆附庸於俀。俀王遣小德阿輩臺,從數百人,設儀仗、鳴鼓角來迎。後十日,又遣大禮哥多毗,從二百餘騎郊勞。旣至彼都,其王與清相見,大恱,曰:「我聞海西有大隋,禮義之國,故遣朝貢。我夷人,僻在海隅,不聞禮義,是以稽留境內,不即相見。今故清道飾館,以待大使,兾聞大國惟新之化。」清答曰:「皇帝德並二儀,澤流四海,以王慕化,故遣行人來此宣諭。」旣而引清就館。其後清遣人謂其王曰:「朝命旣達,請即戒塗。」於是設宴享以遣清,復令使者隨清來貢方物。此後遂絶。

대업 삼년에 그 왕 다리사비고가 사신을 보내 조공하였다. 사자가 말하였다. 「바다 서쪽 보살천자께서 거듭 불법을 일으키신다 들었기에 사신을 보내 조배하고, 겸하여 사문 수십 명이 불법을 배우러 왔습니다.」 그 국서에 「해 뜨는 곳의 천자가 해 지는 곳의 천자에게 글을 부치노니, 별고 없으신가」 운운하였다. 황제가 보고 기뻐하지 않으며 홍려경에게 「만이의 글에 무례한 것이 있거든 다시 아뢰지 말라」 하였다.

이듬해에 임금이 문림랑 배청(배세청)을 왜국에 사신 보냈다. 백제를 지나 죽도에 이르러 남쪽으로 탐라국을 바라보며 도사마국을 지나니 아득히 큰 바다 가운데 있었다. 또 동쪽으로 일지국에 이르고 또 죽사국에 이르고 또 동쪽으로 진왕국에 이르니, 그 사람들이 화하와 같아 이주(夷洲)라고들 하나 의심스러워 밝힐 수 없다. 또 십여 나라를 지나 바닷가에 다다랐다. 죽사국에서 동쪽은 다 왜에 부용한다.

왜왕이 소덕 아배대를 보내 수백 명을 거느리고 의장을 벌이고 북과 뿔피리를 울리며 와서 맞았다. 열흘 뒤에 또 대례 가다비를 보내 이백여 기를 거느리고 교외에서 위로하였다. 그 도읍에 이르자 왕이 배청과 서로 보고 크게 기뻐하며 말하였다. 「내 바다 서쪽에 대수(大隋)라는 예의의 나라가 있다 듣고 사신을 보내 조공하였소. 나는 이인이라 바다 모퉁이에 치우쳐 살아 예의를 듣지 못했소. 그래서 지경 안에 머물며 곧 만나지 못한 것이오. 이제 길을 쓸고 관사를 꾸며 대사를 기다렸으니, 바라건대 대국 유신의 교화를 듣고자 하오.」 배청이 답하였다. 「황제의 덕은 하늘땅에 나란하고 은택은 사해에 흐르오. 왕이 교화를 사모하므로 사자를 보내 이곳에 와서 선유하는 것이오.」

그러고는 배청을 관사로 이끌었다. 그 뒤 배청이 사람을 보내 왕에게 「조정의 명이 이미 전해졌으니 곧 길 떠날 채비를 하겠소」 하니, 이에 잔치를 베풀어 배청을 보내고 다시 사자를 배청에 딸려 보내 방물을 바쳤다. 이 뒤로 마침내 끊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