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신은 말한다史臣曰
1사신은 말한다
史臣曰:廣谷大川異制,人生其間異俗,嗜欲不同,言語不通,聖人因時設教,所以達其志而通其俗也。九夷所居,與中夏懸隔,然天性柔順,無獷暴之風,雖緜邈山海,而易以道御。夏、殷之代,時或來王。暨箕子避地朝鮮,始有八條之禁,疎而不漏,簡而可久,化之所感,千載不絕。今遼東諸國,或衣服參冠冕之容,或飲食有俎豆之器,好尚經術,愛樂文史,遊學於京都者,往來繼路,或亡沒不歸。非先哲之遺風,其孰能致於斯也?故孔子曰:「言忠信,行篤敬,雖蠻貊之邦行矣。」誠哉斯言。其俗之可採者,豈徒楛矢之貢而已乎?自高祖撫有周餘,惠此中國,開皇之末,方事遼左,天時不利,師遂無功。二代承基,志包宇宙,頻踐三韓之域,屢發千鈞之弩。小國懼亡,敢同困獸,兵連不戢,四海騷然,遂以土崩,喪身滅國。兵志有之曰:「務廣德者昌,務廣地者亡。」然遼東之地,不列於郡縣久矣。諸國朝正奉貢,無闕於歲時,二代震而矜之,以為人莫若己,不能懷以文德,遽動干戈。內恃富強,外思廣地,以驕取怨,以怒興師。若此而不亡,自古未之聞也。然則四夷之戒,安可不深念哉!
사신은 말한다. 너른 골짜기와 큰 냇물은 제도를 달리하고, 그 사이에 사는 사람은 풍속을 달리하여, 즐기고 바라는 것이 같지 않고 언어가 통하지 않으니, 성인이 때를 따라 가르침을 베풀어 그 뜻을 이루고 그 풍속에 통하게 하였다.
구이(九夷)가 사는 곳은 중화와 아득히 떨어졌으나 천성이 유순하여 사납고 포악한 기풍이 없으니, 산과 바다로 멀어도 도로써 다스리기 쉽다. 하·은 시대에 때로 와서 조회하였고, 기자가 조선으로 피해 가서 비로소 여덟 조목의 금법을 두니, 성기어도 새지 않고 간략해도 오래갈 만하여 교화의 감화가 천 년토록 끊이지 않았다.
지금 요동의 여러 나라는 옷이 관면의 모습을 갖추기도 하고 음식에 조두의 그릇을 쓰기도 하며, 경술을 좋아하고 문학과 사학을 사랑하여, 서울에 유학하는 자가 오가며 길에 이었고 혹은 죽어도 돌아가지 않았다. 옛 성현이 남긴 풍화가 아니면 그 무엇이 이렇게 하였으랴. 그러므로 공자가 「말이 충성스럽고 미더우며 행실이 도탑고 공경스러우면 만맥의 나라에서도 행해진다」 하였으니, 참되도다 이 말이여. 그 풍속의 취할 만한 것이 어찌 호시(楛矢)의 조공뿐이랴.
고조가 주나라의 남은 터를 어루만져 이 중국에 은혜를 베풀고, 개황 말에 바야흐로 요동 일을 벌였으나 천시가 이롭지 못해 군사가 마침내 공이 없었다. 이대(양제)가 기업을 이어 뜻이 우주를 싸고, 자주 삼한의 지경을 밟고 여러 번 천 균의 쇠뇌를 쏘았다. 작은 나라는 망할까 두려워 감히 궁지의 짐승처럼 맞서니, 전쟁이 이어져 그치지 않고 사해가 소란하다가, 마침내 흙 무너지듯 하여 몸을 잃고 나라를 망쳤다.
병서에 「덕 넓히기를 힘쓰는 자는 창성하고, 땅 넓히기를 힘쓰는 자는 망한다」 하였다. 요동 땅이 군현에 들지 않은 지 오래고, 여러 나라가 정삭을 받들어 조공하며 철마다 빠뜨림이 없었다. 그런데 이대가 이를 떨쳐 자랑하며 남이 저만 못하다 여겨, 문덕으로 품지 못하고 대뜸 창칼을 움직였다. 안으로 부강을 믿고 밖으로 땅 넓힘을 생각하여, 교만으로 원망을 사고 노여움으로 군사를 일으켰다. 이러고도 망하지 않은 자는 예로부터 들어 보지 못하였다. 그러니 사이(四夷)에 대한 경계를 어찌 깊이 생각하지 않을 수 있으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