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 › 삼국유사 › 기이 제1

낙랑국樂浪國

삼국유사 三國遺事 · 일연(一然) · 1281년 (고려 충렬왕 7) · 단락 1 · 한자 212자 · 낭독 0.8분

「삼국유사」 기이 제1 「낙랑국」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고려의 승려 일연이 엮은 삼국시대 설화집. 정사가 버린 이야기를 모았다. 단군신화가 실린 가장 오래된 책이다.

1낙랑이 어디인지 자세하지 않다

樂浪國前漢時始置樂浪郡,應邵曰‘故朝鮮國也’.新唐書注云“平壌城古漢之樂浪郡也”.國史云“赫居世三十年樂浪人来投”,又第三弩禮王四年髙麗第三無恤王伐樂浪滅之,其國人與帶方〔北帶方〕投于羅.又無恤王二十七年光虎帝遣使伐樂浪取其地爲郡縣,薩水已南屬漢〔㨿上諸文,樂浪即平壌城冝矣.或云樂浪中頭山下靺鞨之界薩水今大同江也,未詳孰是.〕.又百濟温祚之言曰,‘東有樂浪北有靺鞨’,則殆古漢時樂浪郡之屬縣之地也.新羅人亦以稱樂浪故今本朝亦因之而稱樂浪郡夫人,又太祖降女於金傅亦曰樂浪公主.

낙랑국.

전한 때에 비로소 낙랑군을 두었다. 응소가 이르기를 '옛 조선국이다' 하였다.

『신당서』 주에 이르기를 "평양성은 옛 한나라의 낙랑군이다" 한다.

『국사』에 이르기를 "혁거세 30년에 낙랑 사람이 와서 의탁하였다" 한다.

또 셋째 노례왕 4년에 고구려 셋째 무휼왕이 낙랑을 쳐서 멸하니, 그 나라 사람이 대방〔북대방이다.〕 사람과 함께 신라에 의탁하였다.

또 무휼왕 27년에 광무제가 사신을 보내 낙랑을 치고 그 땅을 빼앗아 군현으로 삼으니, 살수 이남이 한나라에 속하였다.

〔위의 여러 글에 따르면 낙랑은 곧 평양성이라 함이 마땅하다. 혹은 낙랑이 중두산 아래 말갈의 지경이며 살수는 지금의 대동강이라고도 하니, 어느 것이 옳은지 자세하지 않다.〕

또 백제 온조의 말에 '동쪽에 낙랑이 있고 북쪽에 말갈이 있다' 하였으니, 아마도 옛 한나라 때 낙랑군에 딸린 현의 땅인 듯하다.

신라 사람도 낙랑이라 일컬었으므로 지금 본조에서도 이를 이어받아 낙랑군부인이라 일컫는다.

또 태조가 김부(金傅)에게 딸을 내렸는데 역시 낙랑공주라 하였다.

협주 2

北帶方

북대방이다.

㨿上諸文, 樂浪即平壌城冝矣. 或云樂浪中頭山下靺鞨之界薩水今大同江也, 未詳孰是.

위의 여러 글에 따르면 낙랑은 곧 평양성이라 함이 마땅하다. 혹은 낙랑이 중두산 아래 말갈의 지경이며 살수는 지금의 대동강이라고도 하니, 어느 것이 옳은지 자세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