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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髙句麗

삼국유사 三國遺事 · 일연(一然) · 1281년 (고려 충렬왕 7) · 단락 6 · 한자 700자 · 낭독 2.8분

「삼국유사」 기이 제1 「고구려」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고려의 승려 일연이 엮은 삼국시대 설화집. 정사가 버린 이야기를 모았다. 단군신화가 실린 가장 오래된 책이다.

1졸본주는 요동 경계에 있다

髙句麗即卒夲扶餘也.或云“今和州又成州䓁”,皆誤矣.卒夲州在遼東界.

고구려는 곧 졸본부여(卒本扶餘)이다. 혹 "지금의 화주(和州)이다" 또는 "성주(成州)이다"라고 하나 모두 잘못이다. 졸본주는 요동(遼東) 경계에 있다.

2유화가 해모수를 만나 귀양살이하다

國史髙麗本記云.始祖東明聖帝姓言氏諱朱蒙.先是北扶餘王解夫婁旣避地于東扶餘及夫婁薨金蛙嗣位.于時得一女子於太伯山南優渤水問之,云“我是河伯之女名桞花,與諸弟岀遊時有一男子自言天帝子解慕漱,誘我於熊神山下鴨綠邉室中知之而徃不返.〔壇君記云“君與西河河伯之女要親,有産子名曰夫婁.”今拠此記,則解慕漱私河伯之女而後産朱蒙.壇君記云“産子名曰夫婁”,夫婁與朱蒙異母兄弟也.〕父母責我無媒而從人,遂謫居于此.”

『국사(國史)』 「고려본기(高麗本記)」에 이르기를 —

시조 동명성제(東明聖帝)는 성이 언씨(言氏)요 이름은 주몽(朱蒙)이다.

이보다 앞서 북부여 왕 해부루(解夫婁)가 이미 동부여로 땅을 피해 옮겼고, 부루가 죽자 금와(金蛙)가 왕위를 이었다. 그때 태백산 남쪽 우발수(優渤水)에서 한 여자를 얻어 물으니 이렇게 말하였다.

"저는 하백(河伯)의 딸이며 이름은 유화(柳花)입니다. 여러 아우들과 나가 놀 때 한 남자가 있어 스스로 천제(天帝)의 아들 해모수(解慕漱)라 하며, 저를 웅신산(熊神山) 아래 압록강 가의 집으로 꾀어 정을 통하고는 가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단군기』에 "단군이 서하 하백의 딸과 혼인하여 아들을 낳으니 이름이 부루이다"라고 하였다. 지금 이 기록에 따르면 해모수가 하백의 딸과 사통한 뒤에 주몽을 낳았다. 『단군기』에 "아들을 낳으니 이름이 부루"라고 하였으니, 부루와 주몽은 배다른 형제이다.〕 부모가 제가 중매 없이 남을 따랐다고 꾸짖어, 마침내 이곳에 귀양살이하게 하였습니다."

협주 1

壇君記云“君與西河河伯之女要親, 有産子名曰夫婁.” 今拠此記, 則解慕漱私河伯之女而後産朱蒙. 壇君記云“産子名曰夫婁”, 夫婁與朱蒙異母兄弟也.

『단군기(壇君記)』에 이르기를 "단군이 서하(西河) 하백의 딸과 혼인하여 아들을 낳으니 이름이 부루(夫婁)이다"라고 하였다. 지금 이 기록에 따르면 해모수가 하백의 딸과 사통한 뒤에 주몽을 낳았다. 『단군기』에 "아들을 낳으니 이름이 부루"라고 하였으니, 부루와 주몽은 배다른 형제이다.

3알에서 나온 아이가 활을 잘 쏘아 주몽이라 불리다

金蛙異之幽閉於室中,爲日光所照.引身避之日影又逐而照之.因而有孕生一卵大五升許.王弃之與犬猪皆不食.又弃之路牛馬避之.弃之野鳥獸覆之.王欲剖之而不能破乃還其母.母以物褁之置於暖處有一児破殼而岀,骨表英竒.年甫七歳岐嶷異常,自作弓矢百發百中.國俗謂善射爲朱蒙,故以名焉.

금와가 이를 이상히 여겨 방 안에 가두었더니 햇빛이 비쳤다. 몸을 끌어 피하였으나 햇빛이 또 따라와 비쳤다. 이로 인해 아이를 배어 알 하나를 낳았는데 크기가 닷 되쯤 되었다.

왕이 이를 버려 개와 돼지에게 주었으나 모두 먹지 않았다. 또 길에 버렸더니 소와 말이 피하였다. 들에 버렸더니 새와 짐승이 덮어 주었다. 왕이 쪼개려 하였으나 깨뜨리지 못하여 그 어미에게 돌려주었다.

어미가 물건으로 싸서 따뜻한 곳에 두니 한 아이가 껍질을 깨고 나왔는데, 골격과 겉모습이 빼어나고 기이하였다. 나이 겨우 일곱에 재주가 남달랐으며, 스스로 활과 화살을 만들어 백 번 쏘아 백 번 맞혔다. 그 나라 풍속에 활 잘 쏘는 이를 주몽이라 하였으므로 이로써 이름을 삼았다.

4대소가 시기하고 어머니가 떠날 것을 이르다

金蛙有七子常與朱蒙逰戱,技能莫及.長子帶素言於王曰,“朱蒙非人所生若不早圗恐有後患.”王不聽使之飬馬.朱蒙知其駿者減食令瘦,駑者善飬令肥.王自乗肥瘦者給蒙.王之諸子與諸臣將謀害之,蒙母知之告曰,“國人將害汝,以汝才畧何徃不可.冝速圖之.”

금와에게 아들 일곱이 있어 늘 주몽과 함께 놀았으나 재주가 미치지 못하였다. 맏아들 대소(帶素)가 왕에게 말하였다. "주몽은 사람에게서 난 자가 아니니 일찍 도모하지 않으면 뒷날 근심이 있을까 두렵습니다." 왕이 듣지 않고 주몽에게 말을 기르게 하였다.

주몽은 준마를 알아보고 먹이를 줄여 여위게 하고, 둔한 말은 잘 먹여 살찌웠다. 왕은 살찐 말을 스스로 타고 여윈 말을 주몽에게 주었다.

왕의 여러 아들과 신하들이 주몽을 해치려 꾀하니, 주몽의 어머니가 이를 알고 일러 주었다. "나라 사람들이 장차 너를 해치려 한다. 네 재주와 지략이면 어디를 간들 못하겠느냐. 마땅히 속히 도모하여라."

5물고기와 자라가 다리를 이루고 졸본에 도읍하다

於是蒙與烏伊䓁三人爲友行,至淹水〔今未詳.〕告水曰,“我是天帝子河伯孫,今日逃遁追者垂及奈何.”扵是魚鼈成橋得渡而橋解,追騎不得渡.至卒夲州〔玄菟郡之界.〕遂都焉.未遑作宫室但結廬扵沸流水上居之,國號髙句麗,因以高爲氏,〔夲姓解也.仐自言是天帝子承日光而生,故自以高爲氏.〕時年十二歳,漢孝元帝建昭二年甲申歳即位稱王.高麗全盛之日二十一万五百八户.

이에 주몽은 오이(烏伊) 등 세 사람과 벗이 되어 길을 떠나, 엄수(淹水)에〔지금은 알 수 없다.〕 이르러 물에 고하였다. "나는 천제의 아들이요 하백의 손자이다. 오늘 달아나는데 뒤쫓는 자가 곧 미치니 어찌하랴."

이에 물고기와 자라가 다리를 이루어 건널 수 있었고, 건너자 다리가 풀어져 뒤쫓던 기병은 건너지 못하였다.

졸본주에〔현도군의 경계이다.〕 이르러 마침내 도읍하였다. 미처 궁실을 지을 겨를이 없어 다만 비류수(沸流水) 가에 초막을 엮어 살았다. 나라 이름을 고구려라 하고, 이로 인해 고(高)로 성을 삼았다.〔본래 성은 해(解)씨이다. 이제 스스로 천제의 아들로서 햇빛을 받아 태어났다고 하였으므로 스스로 고로 성을 삼은 것이다.〕

이때 나이 열두 살이었고, 한(漢) 효원제(孝元帝) 건소 이년 갑신년에 즉위하여 왕이라 일컬었다. 고구려가 가장 융성하던 때에는 이십일만 오백여덟 호였다.

협주 4

建昭

건소(建昭)

今未詳.

지금은 알 수 없다.

玄菟郡之界.

현도군(玄菟郡)의 경계이다.

夲姓解也. 仐自言是天帝子承日光而生, 故自以高爲氏.

본래 성은 해(解)씨이다. 이제 스스로 천제의 아들로서 햇빛을 받아 태어났다고 하였으므로 스스로 고(高)로 성을 삼은 것이다.

6주림전이 전하는 또 하나의 탄생담

珠琳傳第二十一卷載,“昔寧禀離王侍婢有娠,相者占之曰‘貴而當王’,王曰‘非我之胤也,當殺之’.婢曰‘氣從天来故我有娠’.及子之産謂為不祥,捐圈則猪噓,弃欄則馬乳,而得不死卒為扶餘之王.”〔即東明帝為卒夲扶餘王之謂也.此卒夲扶餘亦是北扶餘之别都,故云扶餘王也.寧禀離乃夫婁王之異稱也.〕

『주림전(珠琳傳)』 제21권에 실려 있다.

"옛날 영품리왕(寧禀離王)의 시비(侍婢)가 아이를 배니, 관상 보는 이가 점쳐 말하기를 '귀하여 마땅히 왕이 되리라' 하였다. 왕이 '내 자식이 아니니 마땅히 죽여야 한다' 하니, 시비가 '기운이 하늘에서 내려왔으므로 제가 아이를 배었습니다' 하였다. 아이를 낳자 상서롭지 못하다 하여 우리에 버렸더니 돼지가 입김을 불어 주고, 마구간에 버렸더니 말이 젖을 먹여 죽지 않았다. 마침내 부여의 왕이 되었다."

〔곧 동명제가 졸본부여의 왕이 되었음을 이른 것이다. 이 졸본부여 또한 북부여의 별도이므로 부여왕이라 한 것이다. 영품리는 곧 부루왕의 다른 이름이다.〕

협주 1

即東明帝為卒夲扶餘王之謂也. 此卒夲扶餘亦是北扶餘之别都, 故云扶餘王也. 寧禀離乃夫婁王之異稱也.

곧 동명제가 졸본부여의 왕이 되었음을 이른 것이다. 이 졸본부여 또한 북부여의 별도(別都)이므로 부여왕이라 한 것이다. 영품리는 곧 부루왕의 다른 이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