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 › 삼국유사 › 기이 제1

변한과 백제卞韓百濟

삼국유사 三國遺事 · 일연(一然) · 1281년 (고려 충렬왕 7) · 단락 1 · 한자 222자 · 낭독 0.9분

「삼국유사」 기이 제1 「변한과 백제」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고려의 승려 일연이 엮은 삼국시대 설화집. 정사가 버린 이야기를 모았다. 단군신화가 실린 가장 오래된 책이다.

1변한이 백제라는 말을 따지다

卞韓百濟〔亦云南扶餘即泗泚城也〕新羅始祖赫居世即位十九年壬午,卞韓人以國来降.新·舊唐書云“卞韓苗裔在樂浪之地.”後漢書云“卞韓在南馬韓在西辰韓在東.”致逺云“卞韓百濟也.”按夲紀,温祚之起在鴻嘉四年甲辰,則後於赫居世·東明之世四十餘年.而唐書云“卞韓苗裔在樂浪之地”云者,謂温祚之系岀自東明故云耳.或有人岀樂浪之地,立國於卞韓與馬韓䓁並峙者在温祚之前爾,非所都在樂浪之北也.或者濫九龍山亦名卞那山,故以髙句麗爲卞韓者盖謬.當以古賢之說爲是.百濟地自有卞山故云卞韓,百濟全盛之時十五萬二千三百户.

변한과 백제.〔남부여라고도 하니 곧 사비성이다.〕

신라 시조 혁거세 즉위 19년 임오년에 변한 사람이 나라를 들어 항복해 왔다.

『신당서』와 『구당서』에 이르기를 "변한의 후예가 낙랑 땅에 있다" 한다.

『후한서』에 이르기를 "변한은 남쪽에 있고 마한은 서쪽에 있고 진한은 동쪽에 있다" 한다.

최치원이 이르기를 "변한은 백제다" 하였다.

본기를 살피건대 온조가 일어난 것이 홍가 사년 갑진년이니, 곧 혁거세와 동명의 때보다 마흔 남짓 해 뒤다.

그런데 『당서』에 "변한의 후예가 낙랑 땅에 있다" 한 것은, 온조의 계통이 동명에게서 나왔으므로 그렇게 말한 것일 뿐이다.

혹 어떤 사람이 낙랑 땅에서 나와 변한에 나라를 세워 마한 등과 나란히 섰던 일이 온조보다 앞에 있었을 뿐이지, 도읍한 곳이 낙랑 북쪽에 있었다는 말은 아니다.

혹자가 구룡산을 또한 변나산이라 이름한 것을 함부로 끌어다 고구려를 변한이라 하는 것은 대개 잘못이다.

마땅히 옛 어진 이의 말을 옳다고 해야 한다.

백제 땅에 본디 변산이 있으므로 변한이라 이른다.

백제가 한창 성할 때에는 십오만 이천삼백 호였다.

협주 1

亦云南扶餘即泗泚城也

남부여라고도 하니 곧 사비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