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 › 삼국유사 › 기이 제1

진한辰韓

삼국유사 三國遺事 · 일연(一然) · 1281년 (고려 충렬왕 7) · 단락 2 · 한자 324자 · 낭독 1.3분

「삼국유사」 기이 제1 「진한」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고려의 승려 일연이 엮은 삼국시대 설화집. 정사가 버린 이야기를 모았다. 단군신화가 실린 가장 오래된 책이다.

1진나라 망명객의 말이 남았다

辰韓〔亦作䄅韓〕後漢書云“辰韓耆老自言,‘䄅之亡人来適韓國而馬韓割東界地以與之.相呼爲徒有似䄅語故或名之爲䄅韓.’有十二小國,各萬户稱國.”又崔致逺云“辰韓夲燕人避之者,故取涿水之名稱所居之邑里云沙涿·漸涿等.”〔羅人方言讀涿音爲道.今或作沙梁,梁亦讀道.〕

진한(辰韓).〔진(秦) 자를 써서 진한이라 적기도 한다.〕

『후한서』에 이르기를 이러하다.

"진한의 늙은이가 스스로 말하기를 '진나라에서 망명한 사람이 한(韓) 땅에 와서 살자 마한이 동쪽 지경의 땅을 갈라 주었다. 서로 부르기를 도(徒)라 하는 것이 진나라 말과 비슷하므로 혹 진한(秦韓)이라 이름한다' 하였다.

열두 작은 나라가 있어 각각 만 호이며 나라라 일컫는다."

또 최치원이 이르기를 "진한은 본디 연나라 사람으로 피해 온 이들이다. 그러므로 탁수(涿水)의 이름을 따서 사는 고을을 사탁·점탁 등이라 일컬었다" 하였다.

〔신라 사람의 말로 '탁'의 음을 '도'로 읽는다. 지금은 사량으로 적기도 하는데 '량' 또한 '도'로 읽는다.〕

협주 2

亦作䄅韓

진(秦) 자를 써서 진한이라 적기도 한다.

羅人方言讀涿音爲道. 今或作沙梁, 梁亦讀道.

신라 사람의 말로 '탁(涿)'의 음을 '도'로 읽는다. 지금은 사량(沙梁)으로 적기도 하는데 '량(梁)' 또한 '도'로 읽는다.

2서른다섯 채의 금입택

新羅全盛之時,京中十七萬八千九百三十六户,一千三百六十坊,五十五里.三十五金入宅,〔言富潤大宅也.〕南宅·北宅·亐比所宅·本彼宅·梁宅·池上宅〔本彼部〕·財買井宅〔庾信公祖宗〕·北維宅·南維宅〔反香寺下坊〕·隊宅·賔支宅〔反香寺犯〕·長沙宅·上櫻宅·下櫻宅·水望宅·泉宅·楊上宅〔梁南〕·漢歧宅〔法流寺南〕·鼻穴宅〔上同〕·板積宅〔芬皇寺上坊〕·别敎宅〔川北〕·衙南宅·金楊宗宅〔梁官寺南〕·曲水宅〔川北〕·桞也宅·寺下宅·沙梁宅·非上宅·里南宅〔亐所宅〕·思内曲宅·池宅·寺上宅〔大宿宅〕·林上宅〔青龍之寺東方,有池.〕·橋南宅·巷叱宅〔夲彼部〕·樓上宅·里上宅·椧南宅·井下宅.

신라가 한창 성할 때 서울 안에 십칠만 팔천구백서른여섯 호, 천삼백예순 방(坊), 쉰다섯 리(里)가 있었다.

금입택(金入宅)이 서른다섯이었다.〔부유하고 윤택한 큰 집을 이른다.〕

남택·북택·우비소택·본피택·양택·지상택〔본피부에 있다.〕 재매정택〔김유신공의 조상 집이다.〕·북유택·남유택〔반향사 아래 방에 있다.〕 대택·빈지택〔반향사에 닿아 있다.〕·장사택·상앵택·하앵택·수망택·천택 양상택〔양부 남쪽에 있다.〕·한기택〔법류사 남쪽에 있다.〕·비혈택〔위와 같다.〕 판적택〔분황사 위 방에 있다.〕·별교택〔내 북쪽에 있다.〕·아남택 금양종택〔양관사 남쪽에 있다.〕·곡수택〔내 북쪽에 있다.〕·유야택·사하택 사량택·비상택·이남택〔우소택이다.〕·사내곡택·지택 사상택〔대숙택이다.〕·임상택〔청룡사 동쪽에 있으며 못이 있다.〕 교남택·항질택〔본피부에 있다.〕·누상택·이상택·명남택·정하택.

협주 3

言富潤大宅也.

부유하고 윤택한 큰 집을 이른다.

庾信公祖宗

김유신공의 조상 집이다.

青龍之寺東方, 有池.

청룡사 동쪽에 있으며 못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