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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시조 혁거세왕新羅始祖赫居世王

삼국유사 三國遺事 · 일연(一然) · 1281년 (고려 충렬왕 7) · 단락 6 · 한자 1,012자 · 낭독 4.0분

「삼국유사」 기이 제1 「신라 시조 혁거세왕」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고려의 승려 일연이 엮은 삼국시대 설화집. 정사가 버린 이야기를 모았다. 단군신화가 실린 가장 오래된 책이다.

1진한 땅의 여섯 마을

辰韓之地古有六村.

진한(辰韓) 땅에 옛날 여섯 마을이 있었다.

1. 알천 양산촌 — 이씨(李氏)의 조상

一曰閼川楊山村,南今曇嚴寺.長曰謁平初降于瓢嵓峯是為及梁部李氏祖〔奴礼王九年置名及梁部,夲朝太祖天福五年庚子改名中興部.波潛·東山·彼上·東村屬焉.〕

첫째는 알천(閼川) 양산촌(楊山村)이니, 그 남쪽이 지금의 담엄사(曇嚴寺)이다. 촌장은 알평(謁平)이라 하는데 처음 표암봉(瓢嵓峯)에 내려왔으니, 이가 급량부(及梁部) 이씨(李氏)의 조상이다.

2. 돌산 고허촌 — 정씨(鄭氏)의 조상

二曰突山高墟村,長曰蘇伐都利初降于兄山,是為沙梁部〔梁讀云道或作涿,亦音道.〕鄭氏祖.今曰南山部,仇良伐·麻等烏·道北·迴徳等南村属焉.〔称今曰者太祖所置也.下例知.〕

둘째는 돌산(突山) 고허촌(高墟村)이니, 촌장은 소벌도리(蘇伐都利)라 하는데 처음 형산(兄山)에 내려왔으니, 이가 사량부(沙梁部) 정씨(鄭氏)의 조상이다. 지금은 남산부라 하며, 구량벌·마등오·도북·회덕 등 남쪽 마을이 여기에 속한다.

3. 무산 대수촌 — 손씨(孫氏)의 조상

三曰茂山大樹村,長曰俱〔一作仇〕禮馬,初降于伊山〔一作皆比山〕是為漸梁〔一作涿〕部又牟梁部孫氏之祖.今云長福部,朴谷村等西村屬焉.

셋째는 무산(茂山) 대수촌(大樹村)이니, 촌장은 구례마(俱禮馬)라 하는데 처음 이산(伊山)에 내려왔으니, 이가 점량부(漸梁部) 또는 모량부(牟梁部) 손씨(孫氏)의 조상이다. 지금은 장복부라 하며, 박곡촌 등 서쪽 마을이 여기에 속한다.

4. 자산 진지촌 — 최씨(崔氏)의 조상

四曰觜山珎支村〔一作賔之又賔子又氷之〕,長曰智伯虎初降于花山是爲夲彼部崔氏祖.今曰通仙部,柴巴等東南村屬焉.致逺乃夲彼部人也,今皇龍寺南味呑寺南有古墟,云是崔侯古宅也,殆明矣.

넷째는 자산(觜山) 진지촌(珍支村)이니, 촌장은 지백호(智伯虎)라 하는데 처음 화산(花山)에 내려왔으니, 이가 본피부(本彼部) 최씨(崔氏)의 조상이다. 지금은 통선부라 하며, 시파 등 동남쪽 마을이 여기에 속한다.

최치원(崔致遠)이 곧 본피부 사람이다. 지금 황룡사 남쪽 미탄사 남쪽에 옛터가 있는데 이것이 최후(崔侯)의 옛집이라 하니 거의 분명하다.

5. 금산 가리촌 — 배씨(裴氏)의 조상

五曰金山加里村,〔今金剛山栢栗寺之北山也.〕長曰祗沱〔一作只他〕初降于明活山.是爲漢歧部又作韓歧部裴氏祖.今云加徳部上·下西知·乃兒等東村屬焉.

다섯째는 금산(金山) 가리촌(加里村)이니, 촌장은 지타(祗沱)라 하는데 처음 명활산(明活山)에 내려왔으니, 이가 한기부(漢歧部) 배씨(裴氏)의 조상이다. 한(韓) 자를 써서 한기부라고도 적는다. 지금은 가덕부라 하며, 상서지·하서지·내아 등 동쪽 마을이 여기에 속한다.

6. 명활산 고야촌 — 설씨(薛氏)의 조상

六曰明活山髙耶村,長曰虎珎初降于金剛山是爲習比部薛氏祖.今臨川部,勿伊村·仍仇旀村·闕谷〔一作葛谷〕等東北村屬焉.

여섯째는 명활산(明活山) 고야촌(高耶村)이니, 촌장은 호진(虎珍)이라 하는데 처음 금강산에 내려왔으니, 이가 습비부(習比部) 설씨(薛氏)의 조상이다. 지금은 임천부라 하며, 물이촌·잉구며촌·궐곡 등 동북쪽 마을이 여기에 속한다.

2여섯 부의 조상이 알천에 모여 임금을 세우기로 의논하다

按上文,此六部之祖似皆從天而降弩禮王九年始改六部名又賜六姓.今俗中興部爲母長福部爲父臨川部爲子加徳部為女其實未詳.前漢地節元年壬子〔古本云建虎元年,又云建元三年等皆誤〕三月朔,六部祖各率子弟俱㑹於閼川岸上議曰,“我軰上無君主臨理蒸民,民皆放逸自從所欲,盍覔有徳人爲之君主立邦設都乎.”

위 글을 살피건대 이 여섯 부의 조상은 모두 하늘에서 내려온 듯하다. 노례왕 9년에 비로소 여섯 부의 이름을 고치고 또 여섯 성을 내려 주었다. 지금 세속에서는 중흥부를 어머니, 장복부를 아버지, 임천부를 아들, 가덕부를 딸이라 하는데 그 실상은 알 수 없다.

전한(前漢) 지절 원년 임자년〔옛 책에는 건무 원년이라 하고 또 건원 삼년이라고도 하나 모두 잘못이다.〕 3월 초하루에, 여섯 부의 조상들이 각기 자제를 거느리고 알천 언덕 위에 함께 모여 의논하였다.

"우리에게는 위로 백성을 다스릴 임금이 없어 백성이 모두 제멋대로 하고자 하는 대로 따르니, 어찌 덕 있는 사람을 찾아 임금으로 삼고 나라를 세워 도읍을 정하지 않겠는가."

협주 2

地節

지절(地節)

古本云建虎元年, 又云建元三年等皆誤

옛 책에는 건무 원년이라 하고 또 건원 삼년이라고도 하나 모두 잘못이다.

3나정 곁 자줏빛 알에서 혁거세가 나오다

於時乗高南望,楊山下蘿井傍異氣如電光垂地,有一白馬跪拜之状.尋撿之有一紫卵〔一云青大卵〕,馬見人長嘶上天.剖其卵得童男形儀端羙.驚異之,浴於東泉〔東泉寺在詞腦野北〕,身生光彩鳥獸率舞天地振動日月清明.因名赫居世王,〔蓋郷言也.或作弗矩内王,言光明理世也.說者云“是西述聖母之所誕也.故中華人讃屳桃聖母‘有娠賢肇邦’之語是也.”乃至雞龍現瑞産閼英,又焉知非西述聖母之听現耶.〕位號曰居瑟邯,〔或作居西干,初開口之時自称云“閼智居西干一起”,因其言稱之,自後爲王者之尊稱.〕時人爭賀曰“今天子已降,冝覔有徳女君配之.”

이때 높은 곳에 올라 남쪽을 바라보니, 양산 아래 나정(蘿井) 곁에 이상한 기운이 번갯빛처럼 땅에 드리웠고, 흰 말 한 마리가 꿇어앉아 절하는 모습이 있었다.

찾아가 살펴보니 자줏빛 알 하나가 있었고〔푸르고 큰 알이라고도 한다.〕, 말은 사람을 보자 길게 울고 하늘로 올라갔다. 그 알을 쪼개어 사내아이를 얻으니 모습이 단정하고 아름다웠다. 놀라고 기이하게 여겨 동천(東泉)에서 목욕시키니〔동천사는 사뇌야 북쪽에 있다.〕 몸에서 광채가 나고 새와 짐승이 따라 춤추며 천지가 진동하고 해와 달이 맑고 밝아졌다.

이로 인해 혁거세왕(赫居世王)이라 이름하였다.〔아마도 우리말일 것이다. 혹은 불구내왕이라고도 쓰니 광명으로 세상을 다스린다는 말이다. 말하는 이는 "이는 서술성모가 낳은 바이다. 그러므로 중국 사람이 선도성모를 기려 '어진 이를 배어 나라를 열었다'고 한 말이 이것이다"라고 한다. 나아가 계룡이 상서를 나타내어 알영을 낳은 것 또한 어찌 서술성모가 나타난 것이 아님을 알겠는가.〕

위호(位號)를 거슬한(居瑟邯)이라 하였다.〔거서간이라고도 한다. 처음 입을 열 때 스스로 "알지거서간이 한 번 일어난다"고 일컬었으므로 그 말로 인해 일컬은 것이며, 이후로 왕을 높여 부르는 말이 되었다.〕

그때 사람들이 다투어 하례하며 말하였다. "이제 천자가 이미 내려왔으니 마땅히 덕 있는 여군(女君)을 찾아 짝지어야 한다."

협주 4

一云青大卵

푸르고 큰 알이라고도 한다.

東泉寺在詞腦野北

동천사는 사뇌야(詞腦野) 북쪽에 있다.

蓋郷言也. 或作弗矩内王, 言光明理世也. 說者云“是西述聖母之所誕也. 故中華人讃屳桃聖母 ‘有娠賢肇邦’之語是也.” 乃至雞龍現瑞産閼英, 又焉知非西述聖母之听現耶.

아마도 우리말일 것이다. 혹은 불구내왕(弗矩內王)이라고도 쓰니 광명으로 세상을 다스린다는 말이다. 말하는 이는 "이는 서술성모(西述聖母)가 낳은 바이다. 그러므로 중국 사람이 선도성모(仙桃聖母)를 기려 '어진 이를 배어 나라를 열었다'고 한 말이 이것이다"라고 한다. 나아가 계룡이 상서를 나타내어 알영을 낳은 것 또한 어찌 서술성모가 나타난 것이 아님을 알겠는가.

或作居西干, 初開口之時自称云“閼智居西干一起”, 因其言稱之, 自後爲王者之尊稱.

거서간(居西干)이라고도 한다. 처음 입을 열 때 스스로 "알지거서간이 한 번 일어난다"고 일컬었으므로 그 말로 인해 일컬은 것이며, 이후로 왕을 높여 부르는 말이 되었다.

4계룡이 알영을 낳고 두 성인이 왕과 왕후가 되다

是日沙梁里閼英井〔一作娥利英井〕邉有雞龍現,而左脇誕生童女〔一云龍現死,而剖其腹得之.〕姿容殊麗.然而唇似雞觜將浴於月城北川其觜撥落,因名其川曰撥川.營宮室於南山西麓〔今昌林寺〕奉飬二聖兒.男以卵生卵如瓠,郷人以瓠爲朴故因姓朴.女以所出井名名之.二聖年至十三歳,以五鳯元年甲子男立爲王,仍以女爲后.

이날 사량리 알영정(閼英井) 가에〔아리영정이라고도 한다.〕 계룡(雞龍)이 나타나 왼쪽 옆구리로 여자아이를 낳았는데〔용이 나타났다가 죽어서 그 배를 갈라 얻었다고도 한다.〕 자태와 얼굴이 유달리 고왔다.

그러나 입술이 닭 부리 같았는데, 월성 북천에서 목욕시키자 그 부리가 떨어져 나갔다. 이로 인해 그 내를 발천(撥川)이라 이름하였다.

남산 서쪽 기슭에〔지금의 창림사이다.〕 궁실을 짓고 두 성스러운 아이를 받들어 길렀다. 사내아이는 알에서 났는데 알이 바가지처럼 생겼고, 그 고장 사람들이 바가지를 '박'이라 하였으므로 이로 인해 성을 박(朴)이라 하였다. 여자아이는 나온 우물 이름으로 이름을 삼았다.

두 성인의 나이 열세 살에 이르러, 오봉 원년 갑자년에 사내를 세워 왕으로 삼고 여자를 왕후로 삼았다.

협주 4

五鳳

오봉(五鳳)

一作娥利英井

아리영정(娥利英井)이라고도 한다.

一云龍現死, 而剖其腹得之.

용이 나타났다가 죽어서 그 배를 갈라 얻었다고도 한다.

今昌林寺

지금의 창림사이다.

5나라 이름을 서라벌이라 하다

國號徐羅伐又徐伐〔今俗訓亰字云徐伐以此故也〕,或云斯羅又斯盧.初王生於雞井故或云雞林國,以其雞龍現瑞也.一說脫解王時得金閼智而雞鳴於林中,乃攺國號爲雞林.後世遂定新羅之號.

나라 이름을 서라벌(徐羅伐) 또는 서벌(徐伐)이라 하고〔지금 세속에서 '경(京)' 자를 새겨 '서벌'이라 하는 것이 이 때문이다.〕, 혹은 사라(斯羅) 또는 사로(斯盧)라고도 하였다.

처음 왕이 계정(雞井)에서 났으므로 계림국(雞林國)이라고도 하니, 계룡이 상서를 나타냈기 때문이다. 일설에는 탈해왕 때 김알지를 얻으면서 닭이 숲 속에서 울었으므로 이에 나라 이름을 계림으로 고쳤다고 한다. 후세에 마침내 신라(新羅)라는 이름으로 정하였다.

협주 1

今俗訓亰字云徐伐以此故也

지금 세속에서 '경(京)' 자를 새겨 '서벌'이라 하는 것이 이 때문이다.

6왕이 하늘로 오르고 오릉에 나뉘어 묻히다

理國六十一年王升于天,七日後遺體散落于地,后亦云亡.國人欲合而葬之有大虵逐禁,各葬五體爲五陵亦名虵陵,曇嚴寺北陵是也.太子南解王継位.

나라를 다스린 지 예순한 해에 왕이 하늘로 올라갔고, 이레 뒤에 유해가 땅에 흩어져 떨어졌으며 왕후도 따라 죽었다고 한다.

나라 사람들이 합쳐서 장사 지내려 하였으나 큰 뱀이 쫓아 막았다. 다섯 부분을 각각 장사 지내 오릉(五陵)으로 삼았고 사릉(蛇陵)이라고도 하니, 담엄사 북쪽 능이 그것이다. 태자 남해왕이 왕위를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