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 › 삼국유사 › 기이 제1

둘째 남해왕第二南解王

삼국유사 三國遺事 · 일연(一然) · 1281년 (고려 충렬왕 7) · 단락 3 · 한자 362자 · 낭독 1.4분

「삼국유사」 기이 제1 「둘째 남해왕」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고려의 승려 일연이 엮은 삼국시대 설화집. 정사가 버린 이야기를 모았다. 단군신화가 실린 가장 오래된 책이다.

1이 임금만 차차웅이라 불렀다

第二南解王南解居西干亦云次次雄.是尊長之稱唯此王稱之.父赫居世,母閼英夫人,妃雲帝夫人〔一作雲梯今迎日縣西有雲梯山聖母祈旱有應〕.前漢平帝元始四年甲子即位御理二十一年,以地皇四年甲申崩,此王乃三皇之弟一云.

둘째 남해왕.

남해거서간은 차차웅(次次雄)이라고도 한다. 이는 어른을 높이는 일컬음인데 오직 이 임금만 그렇게 불렀다.

아버지는 혁거세요 어머니는 알영부인이며, 왕비는 운제부인이다.〔운제(雲梯)라고도 한다. 지금 영일현 서쪽에 운제산이 있는데 성모에게 가뭄을 빌면 응함이 있다.〕

전한 평제 원시 사년 갑자년에 즉위하여 나라를 다스린 지 스물한 해에, 지황 사년 갑신년에 세상을 떠났다.

이 임금이 곧 세 임금 가운데 첫째라고도 한다.

협주 1

一作雲梯今迎日縣西有雲梯山聖母祈旱有應

운제(雲梯)라고도 한다. 지금 영일현 서쪽에 운제산이 있는데 성모에게 가뭄을 빌면 응함이 있다.

2차차웅은 무당을 이르는 말이다

按三國史云.新羅稱王曰居西干,辰言王也,或云呼貴人之.稱或曰次次雄或作慈充.金大問云“次次雄方言謂巫也.世人以巫事鬼神尚祭祀故畏敬之,遂稱尊長者爲慈充.或云尼師今言謂齒理也.”初南解王薨子弩禮讓位於脫解解云,“吾聞聖智人多齒.”乃試以餅噬之.古傳如此.或曰麻立干〔立一作䄂〕,金大問云“麻立者方言謂橛也.橛標准位而置,則王橛爲主臣橛列於下,因以名之.”

『삼국사』를 살피건대 이렇게 이른다.

신라에서 왕을 거서간이라 일컬으니 진한 말로 왕이며, 혹은 귀한 이를 부르는 말이라고도 한다.

혹은 차차웅이라 하고 자충(慈充)으로 적기도 한다.

김대문이 이르기를 "차차웅은 우리말로 무당을 이른다. 세상 사람이 무당으로 귀신을 섬기고 제사를 숭상하므로 두려워하고 공경하여, 마침내 어른을 높여 자충이라 일컬었다" 하였다.

혹은 이사금이라 하니 잇금(齒理)을 이르는 말이다.

처음에 남해왕이 죽자 아들 노례가 탈해에게 자리를 사양하니, 탈해가 "내가 듣건대 거룩하고 슬기로운 사람은 이가 많다 한다" 하였다.

이에 떡을 물어 시험하였다. 옛 전함이 이와 같다.

혹은 마립간이라 한다.〔'립'을 '수'로 적기도 한다.〕

김대문이 이르기를 "마립이란 우리말로 말뚝을 이른다. 말뚝은 자리를 표하여 세우는 것이니, 왕의 말뚝이 주가 되고 신하의 말뚝이 아래에 늘어선다. 이로 인해 그리 이름한 것이다" 하였다.

협주 1

立一作䄂

'립(立)'을 '수(袖)'로 적기도 한다.

3우리말을 그대로 두는 것이 마땅하다

史論曰“新羅稱居西干·次次雄者一,尼師今者十六,麻立干者四.羅末名儒崔致逺作帝王年代暦皆稱某王不言居西干等,豈以其言鄙野不足稱之也.今記新羅事,具存方言亦冝矣.羅人凢追封者稱葛文王未詳.此王代樂浪國人來侵金城不克而還.又天鳯五年戊寅高麗之裨屬七國來投.”

사론에 이르기를 이러하다.

"신라에서 거서간과 차차웅이라 일컬은 것이 하나요, 이사금이 열여섯이요, 마립간이 넷이다.

신라 말의 이름난 선비 최치원이 『제왕연대력』을 지으면서 모두 아무 왕이라 일컫고 거서간 등을 말하지 않았으니, 어찌 그 말이 촌스러워 일컫기에 넉넉하지 못하다 여긴 것이 아니겠는가.

이제 신라의 일을 적으면서 우리말을 그대로 갖추어 두는 것이 또한 마땅하다.

신라 사람이 무릇 추봉하는 이를 갈문왕(葛文王)이라 일컬었는데 자세하지 않다.

이 임금 대에 낙랑국 사람이 와서 금성을 쳤으나 이기지 못하고 돌아갔다.

또 천봉 오년 무인년에 고구려에 딸린 일곱 나라가 와서 의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