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째 노례왕第三弩禮王
「삼국유사」 기이 제1 「셋째 노례왕」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고려의 승려 일연이 엮은 삼국시대 설화집. 정사가 버린 이야기를 모았다. 단군신화가 실린 가장 오래된 책이다.
1떡을 물어 잇자국을 견주다
第三弩禮王朴弩禮尼叱今〔一作儒礼王.〕.初王與妹夫脫解讓位,脫解云“凢有徳者多齒,冝以齒理試之.”乃咬餅験之王齒多故先立.因名尼叱今,尼叱今之稱自此王始.劉聖公更始元年癸未即位〔年表云甲申即位.〕.
셋째 노례왕.
박노례이질금이다.〔유례왕이라고도 한다.〕
처음에 왕이 매부 탈해와 자리를 사양하니, 탈해가 말하였다.
"무릇 덕이 있는 이는 이가 많다 하니 마땅히 잇자국으로 시험해 보아야 한다."
이에 떡을 물어 시험하였는데 왕의 이가 많으므로 먼저 즉위하였다.
이로 인해 이질금이라 이름하였으니, 이질금이라는 일컬음이 이 임금에게서 비롯되었다.
유성공 경시 원년 계미년에 즉위하였다.〔연표에는 갑신년에 즉위하였다고 한다.〕
협주 2
一作儒礼王.
유례왕이라고도 한다.
年表云甲申即位.
연표에는 갑신년에 즉위하였다고 한다.
2여섯 부의 이름을 고치고 여섯 성을 내리다
攺定六部號,仍賜六姓.始作兠率歌,有嗟辝·詞腦格.始製黎耜及藏氷庫,作車乗.建虎十八年伐伊西國滅之,是年高麗兵来侵.
여섯 부의 이름을 고쳐 정하고 이내 여섯 성을 내렸다.
비로소 도솔가를 지었는데, 차사(嗟辭)와 사뇌(詞腦)의 격이 있었다.
비로소 쟁기와 보습, 그리고 얼음 곳간을 만들고 수레를 지었다.
건무 십팔년에 이서국을 쳐서 멸하였고, 이해에 고구려 군사가 와서 침범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