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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째 탈해왕第四脫解王

삼국유사 三國遺事 · 일연(一然) · 1281년 (고려 충렬왕 7) · 단락 5 · 한자 830자 · 낭독 3.3분

「삼국유사」 기이 제1 「넷째 탈해왕」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고려의 승려 일연이 엮은 삼국시대 설화집. 정사가 버린 이야기를 모았다. 단군신화가 실린 가장 오래된 책이다.

1궤에 실려 아진포에 닿다

脫解齒叱今〔一作吐解尼師今〕.南解王時〔古夲云壬寅年至者謬矣.近則後於弩礼即位之初無爭讓之事,前則在於赫居之世,故知壬寅非也.〕駕洛國海中有舩來泊.其國首露王與臣民鼓譟而迎将欲留之,而舡乃飛走至於雞林東下西知村阿珎浦〔仐有上西知下西知村名〕.時浦邉有一嫗名阿珎義先,乃赫居王之海尺之母.望之謂曰“此海中元無石嵓何因鵲集而鳴”拏舡尋之,鵲集一舡上舡中有一樻子.長二十尺廣十三尺.曳其舩置於一樹林下而未知凶乎吉乎向天而誓爾.俄而乃開見有端正男子,并七寳奴婢滿載其中.供給七日迺言曰“我夲龍城國人〔亦云正明國或云琓夏國琓夏或作花厦國龍城在倭東北一千里〕我國甞有二十八龍王,從人胎而生自五歳六歳継登王位教萬民修正性命.而有八品姓骨然無棟擇皆登大位.時我父王含逹婆娉積女國王女爲妃,久無子胤禱祀求息七年後産一大卵.於是大王㑹問羣臣,‘人而生卵古今未有,殆非吉祥.’乃造樻置我并七寳奴婢載於舡中,浮海而祝曰‘任到有縁之地立國成家.’便有赤龍護舡而至此矣.”

탈해치질금(脫解齒叱今)이다.〔토해이사금이라고도 한다.〕

남해왕 때에〔옛 책에 임인년에 왔다고 한 것은 잘못이다. 가까이 잡으면 노례왕 즉위 초보다 뒤가 되어 서로 양보한 일이 없었을 것이고, 멀리 잡으면 혁거세 시대에 있게 되니, 그러므로 임인년이 아님을 알겠다.〕 가락국 바다 가운데 배가 와서 닿았다. 그 나라 수로왕이 신하와 백성과 함께 북을 치며 맞이하여 머무르게 하려 하였으나, 배가 곧 날듯이 달아나 계림 동쪽 하서지촌 아진포(阿珍浦)에 이르렀다.〔지금도 상서지·하서지라는 마을 이름이 있다.〕

그때 포구 가에 한 노파가 있어 이름을 아진의선(阿珍義先)이라 하였으니, 곧 혁거세왕 때 고기잡이의 어미였다. 바라보고 말하였다. "이 바다 가운데는 본래 바위가 없는데 어찌하여 까치가 모여 우는가."

배를 저어 찾아가니 까치가 배 한 척 위에 모여 있었고, 배 안에 궤 하나가 있었다. 길이는 스무 자, 너비는 열석 자였다. 그 배를 끌어다 나무숲 아래 두고, 흉한지 길한지 알 수 없어 하늘을 향해 맹세하였다. 이윽고 열어 보니 단정한 사내가 있었고, 일곱 가지 보물과 노비가 그 안에 가득 실려 있었다.

이레 동안 대접하니 그제야 말하였다.

"나는 본래 용성국(龍城國) 사람이다.〔정명국이라고도 하고 완하국이라고도 한다. 완하는 화하국으로도 쓴다. 용성은 왜의 동북쪽 일천 리에 있다.〕 우리나라에는 일찍이 스물여덟 용왕이 있었는데, 사람의 태에서 나 다섯 살 여섯 살부터 왕위에 올라 만백성을 가르쳐 타고난 성품과 목숨을 바르게 닦게 하였다. 여덟 등급의 성골(姓骨)이 있었으나 가리지 않고 모두 큰 자리에 올랐다.

그때 나의 아버지 왕 함달파(含達婆)가 적녀국(積女國) 왕의 딸을 맞아 왕비로 삼았는데, 오래도록 자식이 없어 빌고 제사하여 자식을 구한 지 칠 년 만에 큰 알 하나를 낳았다. 이에 대왕이 신하들을 모아 물었다. '사람이 알을 낳은 일은 예로부터 지금까지 없었으니 아마도 길한 조짐이 아니다.' 그리하여 궤를 만들어 나를 넣고 일곱 가지 보물과 노비를 함께 배에 실어 바다에 띄우며 빌었다. '인연 있는 땅에 닿는 대로 나라를 세우고 집을 이루어라.' 곧 붉은 용이 나타나 배를 호위하여 여기에 이르렀다."

협주 4

一作吐解尼師今

토해이사금(吐解尼師今)이라고도 한다.

古夲云壬寅年至者謬矣. 近則後於弩礼即位之初無爭讓之事, 前則在於赫居之世, 故知壬寅非也.

옛 책에 임인년에 왔다고 한 것은 잘못이다. 가까이 잡으면 노례왕 즉위 초보다 뒤가 되어 서로 양보한 일이 없었을 것이고, 멀리 잡으면 혁거세 시대에 있게 되니, 그러므로 임인년이 아님을 알겠다.

仐有上西知下西知村名

지금도 상서지·하서지라는 마을 이름이 있다.

亦云正明國或云琓夏國 琓夏或作花厦國 龍城在倭東北一千里

정명국(正明國)이라고도 하고 완하국(琓夏國)이라고도 한다. 완하는 화하국(花厦國)으로도 쓴다. 용성은 왜(倭)의 동북쪽 일천 리에 있다.

2숫돌과 숯을 묻어 호공의 집을 차지하다

言訖,其童子曳杖率二奴登吐含山上作石塚留七日.望城中可居之地,見一峯如三日月勢可久之地.乃下尋之即瓠公宅也.乃設詭計潛埋砺炭於其側,詰朝至門云“此是吾祖代家屋.”瓠公云“否”,爭訟不决.乃告于官,官曰“以何験是汝家.”童曰“我夲冶匠乍岀隣郷而人取居之,請堀地檢看.”從之,果得砺炭乃取而居.

말을 마치고 그 아이는 지팡이를 끌고 두 종을 거느려 토함산에 올라 돌무덤을 만들고 이레를 머물렀다.

성 안에 살 만한 땅을 바라보니 초사흘 달 같은 봉우리 하나가 보였는데 오래 살 만한 땅이었다. 이에 내려가 찾아가니 곧 호공(瓠公)의 집이었다.

이에 속임수를 써서 몰래 숫돌과 숯을 그 곁에 묻어 두고, 이튿날 아침에 문에 이르러 말하였다. "이는 우리 조상 대대의 집이오." 호공이 "아니다" 하여 다투었으나 결말이 나지 않았다.

이에 관가에 고하니 관가에서 물었다. "무엇으로 네 집임을 증명하겠느냐." 아이가 말하였다. "나는 본래 대장장이인데 잠시 이웃 고을에 나간 사이에 남이 빼앗아 살고 있으니, 청컨대 땅을 파서 살펴보십시오."

그대로 하니 과연 숫돌과 숯이 나왔다. 이에 그 집을 차지하여 살았다.

3공주와 혼인하고 요내정의 영험을 보이다

爲時南解王知脫解是智人以長公主妻之,是爲阿尼夫人.一日吐解登東岳迴程次令白衣索水飮之.白衣汲水中路先甞而進.其角盃貼於口不解.因而嘖之,白衣誓曰“爾後若近遥不敢先甞”然後乃解.自此白衣讋服不敢欺罔.今東岳中有一井,俗云遥乃井是也.

이때 남해왕이 탈해가 지혜로운 사람임을 알고 맏공주를 아내로 주니, 이가 아니부인(阿尼夫人)이다.

하루는 토해가 동악(東岳)에 올랐다가 돌아오는 길에 하인에게 물을 구해 오게 하였다. 하인이 물을 길어 오다가 도중에 먼저 맛보고 바쳤다. 그 뿔잔이 입에 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이에 꾸짖으니 하인이 맹세하였다. "이후로는 가깝든 멀든 감히 먼저 맛보지 않겠습니다." 그런 뒤에야 떨어졌다.

이로부터 하인이 두려워 복종하여 감히 속이지 못하였다. 지금 동악에 우물 하나가 있으니 세속에서 요내정(遙乃井)이라 하는 것이 이것이다.

4왕위에 오르고 석씨가 되다

及弩礼王崩,以光虎帝中元二年丁巳六月乃登王位.以昔是吾家取他人家故因姓昔氏.或云因鵲開樻故去鳥字姓昔氏.解樻脫夘而生故因名脫解.

노례왕이 죽자, 광무제(光武帝) 중원 이년 정사년 6월에 왕위에 올랐다.

"옛적에 이는 내 집이다" 하며 남의 집을 빼앗았으므로 이로 인해 성을 석(昔)씨라 하였다. 혹은 까치로 인해 궤를 열었으므로 작(鵲) 자에서 조(鳥) 자를 떼어 석(昔)씨로 성을 삼았다고도 한다. 궤를 풀고 알에서 벗어나 났으므로 이로 인해 탈해(脫解)라 이름하였다.

협주 1

中元

중원(中元)

5뼈로 소상을 만들어 동악신이 되다

在位二十三年建初四年己夘崩.葬䟽川丘中,後有神詔“慎埋葬我骨.”其髑髏周三尺二寸,身骨長九尺七寸.齒凝如一骨節皆連瑣.所謂天下無敵力士之骨.碎爲塑像安闕内,神又報云“我骨置於東岳.”故令安之〔一云崩後,二十七世文虎王代調露二年庚辰三月十五日辛酉夜見夢於太宗,有老人皃甚威猛曰‘我是脫解也.拔我骨於䟽川丘塑像安於土含山’,王從其言.故至今囯祀不絶,即東岳神也云〕.

왕위에 있은 지 스물세 해 만인 건초 사년 기묘년에 죽었다. 소천(疏川) 언덕에 장사 지냈는데, 뒤에 신의 명이 있었다. "내 뼈를 삼가 묻어라."

그 두개골의 둘레는 석 자 두 치요, 몸뼈의 길이는 아홉 자 일곱 치였다. 이가 엉겨 하나같고 뼈마디가 모두 이어져 얽혀 있었으니, 이른바 천하무적 역사(力士)의 뼈였다.

부수어 소상(塑像)을 만들어 대궐 안에 모셨더니, 신이 또 알렸다. "내 뼈를 동악에 두어라." 그러므로 그곳에 모시게 하였다.

〔일설에는 이러하다. 죽은 뒤 스물일곱째 문무왕 때인 조로 이년 경진년 3월 15일 신유일 밤에 태종의 꿈에 나타났는데, 한 노인이 모습이 매우 위엄 있고 사나웠다. '나는 탈해이다. 내 뼈를 소천 언덕에서 파내어 소상을 만들어 토함산에 모셔라.' 왕이 그 말을 따랐다. 그러므로 지금까지 나라 제사가 끊이지 않으니 곧 동악신(東岳神)이다.〕

협주 2

建初

건초(建初)

一云崩後, 二十七世文虎王代調露二年庚辰三月十五日辛酉夜見夢於太宗, 有老人皃甚威猛曰 ‘我是脫解也. 拔我骨於䟽川丘塑像安於土含山’, 王從其言. 故至今囯祀不絶, 即東岳神也云

일설에는 이러하다. 죽은 뒤 스물일곱째 문무왕(文武王) 때인 조로 이년 경진년 3월 15일 신유일 밤에 태종의 꿈에 나타났는데, 한 노인이 모습이 매우 위엄 있고 사나웠다. '나는 탈해이다. 내 뼈를 소천 언덕에서 파내어 소상을 만들어 토함산에 모셔라.' 왕이 그 말을 따랐다. 그러므로 지금까지 나라 제사가 끊이지 않으니 곧 동악신(東岳神)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