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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알지 — 탈해왕 때金閼智脫解王代

삼국유사 三國遺事 · 일연(一然) · 1281년 (고려 충렬왕 7) · 단락 2 · 한자 211자 · 낭독 0.8분

「삼국유사」 기이 제1 「김알지 — 탈해왕 때」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고려의 승려 일연이 엮은 삼국시대 설화집. 정사가 버린 이야기를 모았다. 단군신화가 실린 가장 오래된 책이다.

1계림의 황금 궤에서 아이가 나오다

永平三年庚申〔一云中元六年誤矣,中元盡二年而已.〕八月四日瓠公夜行月城西里見大光明於始林中〔一作鳩林〕,有紫雲從天垂地.雲中有黃金樻掛於樹枝光自樻岀,亦有白雞鳴於樹下.以状聞於王.駕幸其林開樻,有童男卧而即起.如赫居世之故事故因其言以閼智名之.閼智即郷言小兒之稱也.抱載還闕烏獸相隨喜躍蹌蹌.土擇吉日冊位太子,後讓故婆娑不即王位.

영평 삼년 경신년〔중원 육년이라고도 하나 잘못이다. 중원은 이년으로 끝났을 뿐이다.〕 8월 4일에, 호공(瓠公)이 밤에 월성(月城) 서쪽 마을을 걷다가 시림(始林) 안에서〔구림이라고도 한다.〕 큰 빛이 밝게 비치는 것을 보았다. 자줏빛 구름이 하늘에서 땅으로 드리웠고, 구름 속에 황금 궤가 나뭇가지에 걸려 있어 빛이 궤에서 나오고 있었다. 또 흰 닭이 나무 아래에서 울고 있었다.

이 모습을 왕에게 아뢰니, 왕이 그 숲으로 행차하여 궤를 열었다. 사내아이가 누워 있다가 곧 일어났다. 혁거세의 일과 같았으므로 그 말을 따라 알지(閼智)라 이름하였다. 알지는 곧 우리말로 어린아이를 이르는 말이다.

안고 대궐로 돌아오는데 새와 짐승이 뒤를 따르며 기뻐 뛰고 춤추었다. 왕이 좋은 날을 가려 태자로 책봉하였으나, 뒤에 파사(婆娑)에게 물려주고 왕위에 오르지 않았다.

협주 3

永平

영평(永平)

一云中元六年誤矣, 中元盡二年而已.

중원 육년이라고도 하나 잘못이다. 중원은 이년으로 끝났을 뿐이다.

一作鳩林

구림(鳩林)으로 된 곳도 있다.

2성을 김씨로 삼고 7대 뒤 미추가 왕위에 오르다

因金樻而出乃姓金氏.閼智生熱漢,漢生阿都,都生首留,留生郁部,部生俱道,〔一作仇刀.〕道生未鄒,鄒即王位新羅金氏自閼智始.

금 궤에서 나왔으므로 성을 김(金)씨라 하였다.

알지가 열한(熱漢)을 낳고, 열한이 아도(阿都)를 낳고, 아도가 수류(首留)를 낳고, 수류가 욱부(郁部)를 낳고, 욱부가 구도(俱道)를 낳고〔구도(仇刀)로 된 곳도 있다.〕, 구도가 미추(未鄒)를 낳았다. 미추가 왕위에 올랐으니, 신라의 김씨는 알지에서 비롯되었다.

협주 1

一作仇刀.

구도(仇刀)로 된 곳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