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 › 삼국유사 › 기이 제1

거문고 갑을 쏘다射琴匣

삼국유사 三國遺事 · 일연(一然) · 1281년 (고려 충렬왕 7) · 단락 2 · 한자 278자 · 낭독 1.1분

「삼국유사」 기이 제1 「거문고 갑을 쏘다」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고려의 승려 일연이 엮은 삼국시대 설화집. 정사가 버린 이야기를 모았다. 단군신화가 실린 가장 오래된 책이다.

1열어 보면 둘이 죽고 열지 않으면 하나가 죽는다

射琴匣第二十一毗處王〔一作炤智王.〕即位十年戊辰幸於天泉亭.時有烏與鼠來鳴,鼠作人語云“此烏去䖏尋之〔或云神徳王欲行香㒷輪寺,路見衆鼠含尾恠之,而还占之‘明日先鳴烏尋之’云云,此說非也.〕.”王命騎士追之南至避村,〔今壤避寺村,在南山東麓.〕兩猪相闘留連見之忽失烏所在.徘徊路旁時有老翁自池中出奉書.外靣題云‘開見二人死,不開一人死.’使來獻之,王曰“與其二人死莫若不開但一人死耳.”日官奏云“二人者庻民也,一人者王也.”王然之開見書中云‘射琴匣.’王入宮見琴匣射之.乃内殿焚修僧與宫主潜通而所奸也.二人伏誅.

거문고 갑을 쏘다.

스물한째 비처왕〔소지왕이라고도 한다.〕 즉위 10년 무진년에 천천정에 거둥하였다.

그때 까마귀와 쥐가 와서 우는데, 쥐가 사람 말을 하여 이르기를 "이 까마귀가 가는 곳을 찾아라" 하였다.

〔혹은 신덕왕이 흥륜사에 향을 올리러 가다가 길에서 쥐들이 서로 꼬리를 물고 있는 것을 보고 괴이히 여겨 돌아와 점치니 '내일 먼저 우는 까마귀를 찾으라' 하였다고도 하는데, 이 말은 옳지 않다.〕

왕이 말 탄 군사에게 명하여 뒤쫓게 하니 남쪽으로 피촌에〔지금의 양피사촌이니 남산 동쪽 기슭에 있다.〕 이르렀다.

돼지 두 마리가 서로 싸우고 있어 멈추어 보다가 홀연 까마귀가 간 곳을 잃었다.

길가를 서성이는데 그때 늙은이가 못 속에서 나와 글을 바쳤다.

겉면에 적혀 있기를 '열어 보면 두 사람이 죽고, 열지 않으면 한 사람이 죽는다' 하였다.

심부름꾼이 와서 바치니 왕이 말하였다. "두 사람이 죽느니 열지 않고 다만 한 사람이 죽는 것만 못하다."

일관이 아뢰었다. "두 사람이란 백성이요, 한 사람이란 임금입니다."

왕이 그렇다 여겨 열어 보니 글 속에 '거문고 갑을 쏘라' 하였다.

왕이 궁에 들어가 거문고 갑을 보고 쏘았다.

곧 내전에서 향불을 받들던 승려가 궁주와 몰래 통하여 간음하던 것이었다. 두 사람이 죽임을 당하였다.

협주 3

一作炤智王.

소지왕이라고도 한다.

或云神徳王欲行香㒷輪寺, 路見衆鼠含尾恠之, 而还占之 ‘明日先鳴烏尋之’ 云云, 此說非也.

혹은 신덕왕이 흥륜사에 향을 올리러 가다가 길에서 쥐들이 서로 꼬리를 물고 있는 것을 보고 괴이히 여겨 돌아와 점치니 '내일 먼저 우는 까마귀를 찾으라' 하였다고도 하는데, 이 말은 옳지 않다.

今壤避寺村, 在南山東麓.

지금의 양피사촌이니 남산 동쪽 기슭에 있다.

2정월 보름의 찰밥

自爾國俗每正月上亥·上子·上午䓁日忌慎百事不敢動作.以十五日爲烏忌之日以糯飯祭之,至今行之.俚言怛忉言悲愁而禁忌百事也.命其池曰書岀池.

이로부터 나라 풍속에 해마다 정월의 첫 돼지날·첫 쥐날·첫 말날 등에는 온갖 일을 꺼리고 삼가 감히 움직여 일하지 않는다.

보름날을 까마귀 꺼리는 날로 삼아 찰밥으로 제사하니 지금까지 행한다.

세속의 말로 '달도(怛忉)'라 하니 슬퍼하고 근심하여 온갖 일을 금하고 꺼린다는 말이다.

그 못을 이름하여 서출지(書出池)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