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 › 삼국유사 › 기이 제1

지철로왕智哲老王

삼국유사 三國遺事 · 일연(一然) · 1281년 (고려 충렬왕 7) · 단락 2 · 한자 253자 · 낭독 1.0분

「삼국유사」 기이 제1 「지철로왕」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고려의 승려 일연이 엮은 삼국시대 설화집. 정사가 버린 이야기를 모았다. 단군신화가 실린 가장 오래된 책이다.

1짝을 찾아 세 길로 사람을 보내다

智哲老王第二十二智哲老王姓金氏,名智大路又智度路.謚曰智證,謚號始于此.又郷稱王爲麻立干者自此王始.王以永元二年庚辰即位〔或云辛巳則三年也〕.王隂長一尺五寸難於嘉耦發使三道求之.使至牟梁部,冬老樹下見二狗嚙一屎塊如皼大爭嚙其兩端.訪於里人,有一小女告云,“此部相公之女子洗澣于此隠林而所遺也.”尋其家檢之身長七尺五寸.具事奏聞,王遣車邀入宫中封爲皇后,群臣皆賀.

지철로왕.

스물두째 지철로왕은 성이 김씨요 이름은 지대로 또는 지도로다. 시호를 지증(智證)이라 하니, 시호라는 것이 여기서 비롯되었다.

또 우리말로 왕을 마립간이라 일컬은 것이 이 임금에게서 비롯되었다.

왕이 영원 이년 경진년에 즉위하였다.〔혹은 신사년이라 하니 그러면 삼년이다.〕

왕은 음경 길이가 한 자 다섯 치라 좋은 짝을 얻기 어려우므로, 세 길로 사신을 보내 구하게 하였다.

사신이 모량부에 이르니 겨울 늙은 나무 아래에서 개 두 마리가 북만 한 덩이 하나를 물고 양쪽 끝을 다투어 물어뜯고 있었다.

마을 사람에게 물으니 한 소녀가 알려 주었다. "이 부의 상공 댁 따님이 여기서 빨래하다가 숲에 숨어 남긴 것입니다."

그 집을 찾아 살펴보니 키가 일곱 자 다섯 치였다.

일을 갖추어 아뢰니 왕이 수레를 보내 궁중에 맞아들여 황후로 봉하였고, 신하들이 모두 하례하였다.

협주 1

或云辛巳則三年也

혹은 신사년이라 하니 그러면 삼년이다.

2나무 사자를 배에 싣다

又阿瑟羅州〔仐溟州〕東海中便風二日程有亐陵島〔今作羽陵.〕.周迴二万六千七百三十歩,島夷恃其水深憍慠不臣.王命伊喰朴伊宗将兵討之.宗作木偶師子載於大艦之上,威之云“不降則放此獸.”島夷畏而降.賞伊宗爲州伯.

또 아슬라주〔지금의 명주다.〕 동쪽 바다 가운데 순풍으로 이틀 걸리는 거리에 우릉도가〔지금은 우릉으로 적는다.〕 있다.

둘레가 이만 육천칠백서른 걸음이다.

섬 사람들이 물이 깊은 것을 믿고 교만하여 신하 노릇을 하지 않았다.

왕이 이찬 박이종(朴伊宗)에게 명하여 군사를 거느리고 치게 하였다.

박이종이 나무로 만든 사자를 큰 배 위에 싣고 으르며 말하였다. "항복하지 않으면 이 짐승을 풀어놓겠다."

섬 사람들이 두려워하여 항복하였다.

상을 주어 박이종을 그 고을의 우두머리로 삼았다.

협주 2

仐溟州

지금의 명주다.

今作羽陵.

지금은 우릉(羽陵)으로 적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