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 › 삼국유사 › 기이 제1

김유신金庾信

삼국유사 三國遺事 · 일연(一然) · 1281년 (고려 충렬왕 7) · 단락 4 · 한자 667자 · 낭독 2.7분

「삼국유사」 기이 제1 「김유신」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고려의 승려 일연이 엮은 삼국시대 설화집. 정사가 버린 이야기를 모았다. 단군신화가 실린 가장 오래된 책이다.

1등에 일곱 별의 무늬가 있었다

金庾信虎力伊干之子舒玄角干金氏之長子曰庾信,弟曰欽純.姊妹曰寳姬小名阿海.妹曰文姬小名阿之.庾信公以真平王十七年乙夘生,禀精七曜故背有士星文,又多神異.

김유신.

호력 이간의 아들인 서현 각간 김씨의 맏아들을 유신이라 하고 아우를 흠순이라 한다.

손위 누이는 보희이니 어릴 적 이름은 아해다. 아우 누이는 문희이니 어릴 적 이름은 아지다.

유신공은 진평왕 17년 을묘년에 태어났다.

일곱 별의 정기를 받았으므로 등에 일곱 별의 무늬가 있었고, 또 신이한 일이 많았다.

2세 여인이 신의 모습을 드러내다

年至十八壬申修釰得術爲國屳.時有白石者不知其所自來,属於徒中有年.郎以伐麗濟之事日夜深謀.白石知其謀告於郎曰,“僕請與公宻先探於彼然後圗之何如.”郎喜親率白石夜出行.方憩於峴上有二女随郎而行.至骨火川留宿又有一女忽然而至.公與三娘子喜話之時娘等以羙菓餽之.郎受而啖之心諾相許乃說其情.娘等告云“公之所言已聞命矣,願公謝白石而共入林中更陳情實.”乃與俱入娘等便現神形曰,“我等奈林·穴禮·骨火䓁三所護國之神,今敵國之人誘郎引之郎不知而進途,我欲留郎而至此矣.”言訖而隠.公聞之驚仆再拜而出.

나이 열여덟 임신년에 칼 쓰기를 닦아 술법을 얻어 국선이 되었다.

그때 백석(白石)이라는 이가 있었는데 어디서 왔는지 알지 못하였고, 무리에 속한 지 여러 해였다.

낭이 고구려와 백제를 칠 일을 밤낮으로 깊이 꾀하였다.

백석이 그 꾀를 알고 낭에게 아뢰었다. "제가 공과 함께 몰래 먼저 저쪽을 살펴본 뒤에 도모함이 어떻겠습니까."

낭이 기뻐하며 몸소 백석을 데리고 밤에 나섰다.

마침 고개 위에서 쉬는데 두 여인이 낭을 따라왔다.

골화천에 이르러 묵는데 또 한 여인이 홀연 이르렀다.

공이 세 낭자와 기쁘게 이야기할 때 낭자들이 좋은 과일을 주었다.

낭이 받아먹고 마음으로 허락하여 서로 믿게 되자 이에 사정을 말하였다.

낭자들이 아뢰었다. "공이 말씀하신 바는 이미 들었습니다. 원컨대 공은 백석을 물리치고 함께 숲으로 들어가 다시 속사정을 자세히 말씀해 주소서."

이에 함께 들어가니 낭자들이 곧 신의 모습을 드러내며 말하였다.

"우리는 내림·혈례·골화 세 곳의 나라를 지키는 신입니다.

이제 적국 사람이 낭을 꾀어 이끄는데 낭이 알지 못하고 길을 가므로, 우리가 낭을 머물게 하려고 여기에 이른 것입니다."

말을 마치고 숨었다.

공이 듣고 놀라 엎드려 두 번 절하고 나왔다.

3쥐의 배 속에 일곱 마리가 있었다

宿於骨火舘謂白石曰,“今歸他國忘其要文.請與爾還家取來.”遂與還至家拷縛白石而問其情.曰“我本高麗人,〔古本云百濟誤矣.楸南乃髙麗之士.又逆行隂陽亦寳藏王事.〕我國群臣曰‘新羅庾信是我國卜筮之士楸南也〔古本作春南誤矣.〕’.國界有逆流之水〔或云雄雌尤反覆之事.〕使其卜之.奏曰‘大王夫人逆行隂陽之道其瑞如此.’大王驚恠而王妃大怒謂是妭狐之語,告於王‘更以他事験問之失言則加重刑.’乃以一鼠藏於合中問‘是何物.’其人奏曰‘是必鼠其命有八.’乃以謂失言将加斬罪,其人誓曰‘吾死之後願爲大将必滅高麗矣.’即斬之剖鼠腹視之其命有七,於是知前言有中.其日夜大王夢楸南入于新羅舒玄公夫人之懷,以告於羣臣皆曰,‘楸南誓心而死是其果然.’故遣我至此謀之爾.”公乃刑白石,備百味祀三神皆現身受奠.

골화관에 묵으며 백석에게 일렀다. "이제 다른 나라로 가는데 중요한 글을 잊고 왔다. 너와 함께 집에 돌아가 가져오자."

마침내 함께 집에 이르러 백석을 묶어 매질하며 사정을 물으니 이렇게 말하였다.

"저는 본디 고구려 사람입니다.〔옛 책에 백제라 한 것은 잘못이다. 추남은 곧 고구려의 선비다. 또 음양을 거스른 일도 보장왕 때의 일이다.〕

우리 나라 신하들이 말하기를 '신라의 유신은 곧 우리 나라 점치는 선비 추남(楸南)이다'〔옛 책에 춘남으로 적은 것은 잘못이다.〕 하였습니다.

나라 경계에 거꾸로 흐르는 물이 있어〔혹은 암수가 뒤바뀐 일이라고도 한다.〕 그에게 점치게 하였습니다.

아뢰기를 '대왕의 부인이 음양의 도를 거슬렀으므로 그 조짐이 이와 같습니다' 하였습니다.

대왕이 놀라고 괴이히 여겼으나 왕비가 크게 노하여 이는 요망한 여우의 말이라 하고, 왕에게 '다시 다른 일로 시험해 물어 말이 틀리면 무거운 형벌을 더하소서' 하였습니다.

이에 쥐 한 마리를 함 속에 감추고 '이것이 무슨 물건이냐' 물었습니다.

그가 아뢰기를 '이는 반드시 쥐인데 그 수가 여덟입니다' 하였습니다.

이에 말이 틀렸다 하여 목을 베려 하니, 그가 맹세하였습니다. '내가 죽은 뒤에는 원컨대 큰 장수가 되어 반드시 고구려를 멸하리라.'

곧 목을 베고 쥐의 배를 갈라 보니 새끼가 일곱이었습니다. 이에 앞의 말이 맞았음을 알았습니다.

그날 밤 대왕의 꿈에 추남이 신라 서현공 부인의 품에 들어갔습니다. 이를 신하들에게 알리니 모두 '추남이 마음으로 맹세하고 죽었으니 그것이 과연 그러하다'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저를 보내 여기에 이르러 도모하게 한 것일 뿐입니다."

공이 이에 백석을 벌하고, 온갖 음식을 갖추어 세 신에게 제사하니 모두 몸을 나타내어 제물을 받았다.

협주 3

古本云百濟誤矣. 楸南乃髙麗之士. 又逆行隂陽亦寳藏王事.

옛 책에 백제라 한 것은 잘못이다. 추남은 곧 고구려의 선비다. 또 음양을 거스른 일도 보장왕 때의 일이다.

古本作春南誤矣.

옛 책에 춘남으로 적은 것은 잘못이다.

或云雄雌尤反覆之事.

혹은 암수가 뒤바뀐 일이라고도 한다.

4솔꽃이 골짜기에 가득한 곳

金氏宗財買夫人死,葬於青淵上谷因名財買谷.每年春月一宗士女㑹宴於其谷之南澗,于時百卉敷榮松花滿洞府林.谷口架築爲庵因名松花房,傅爲願刹.至五十四景明王追封公爲興虎大王.陵在西山毛只寺之北,東向走峰.

김씨 문중의 재매부인이 죽어 청연 위 골짜기에 장사 지냈으므로 이로 인해 재매곡이라 이름하였다.

해마다 봄철에 온 문중의 남녀가 그 골짜기 남쪽 시내에 모여 잔치하였다.

이때 온갖 풀이 꽃을 피우고 솔꽃이 골짜기 숲에 가득하였다.

골짜기 어귀에 얽어 지어 암자로 삼고 이로 인해 송화방(松花房)이라 이름하였으며, 전하여 원찰이 되었다.

쉰넷째 경명왕에 이르러 공을 추봉하여 흥무대왕(興武大王)이라 하였다.

능은 서산 모지사 북쪽에 있으며 동쪽을 향한 봉우리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