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 › 삼국유사 › 기이 제2

효소왕 대의 죽지랑孝昭王代竹旨郎

삼국유사 三國遺事 · 일연(一然) · 1281년 (고려 충렬왕 7) · 단락 3 · 한자 658자 · 낭독 2.6분

「삼국유사」 기이 제2 「효소왕 대의 죽지랑」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고려의 승려 일연이 엮은 삼국시대 설화집. 정사가 버린 이야기를 모았다. 단군신화가 실린 가장 오래된 책이다.

1낭도 하나를 찾아 백서른일곱이 따라나서다

孝昭王代竹㫖郎〔亦作竹曼,亦名智官〕第三十二孝昭王代,竹曼郎之徒有得烏〔一云谷〕級干.隷名扵風流黄卷追日仕進.隔旬日不見,郎喚其母問爾子何在.母曰“幢典牟梁益宣阿干以我子差富山城倉直,馳去行急未睱告辭扵郎.”郎曰“汝子若私事適彼則不湏尋訪,今以公事進去湏歸享矣.”乃以舌餅一合酒一缸卒左人〔郷云皆叱知,言奴僕也.〕而行.郎徒百三十七人亦具儀侍從.

효소왕 대의 죽지랑.〔죽만이라고도 하며 지관이라고도 한다.〕

서른둘째 효소왕 대에 죽만랑의 무리 가운데 득오〔곡이라고도 한다.〕 급간이 있었다.

화랑의 명부에 이름이 매여 날마다 나와 섬겼는데, 열흘이 지나도록 보이지 않았다.

낭이 그 어머니를 불러 "그대의 아들이 어디 있는가" 물었다.

어머니가 말하였다. "당전(幢典)인 모량의 익선 아간이 제 아들을 부산성 창고지기로 뽑았습니다. 달려가느라 길이 급하여 낭께 하직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낭이 말하였다. "그대의 아들이 만약 사사로운 일로 갔다면 찾아볼 것이 없지만, 이제 공적인 일로 갔으니 모름지기 가서 대접해야겠다."

이에 혀떡 한 합과 술 한 항아리를 가지고 종들을〔우리말로 '개질지'라 하니 종을 이르는 말이다.〕 거느리고 갔다.

낭도 백서른일곱 사람도 차림을 갖추어 따랐다.

협주 3

亦作竹曼, 亦名智官

죽만이라고도 하며 지관이라고도 한다.

一云谷

곡(谷)이라고도 한다.

郷云皆叱知, 言奴僕也.

우리말로 '개질지'라 하니 종을 이르는 말이다.

2얼어 죽은 익선의 아들

到富山城問閽人得烏失奚在.人曰“今在益宣田隨例赴役.”郎歸田以所將酒餅饗之.請暇扵益宣將欲偕還,益宣固禁不許.時有使吏侃珎管收推火郡能節租三十石輸送城中,羙郎之重士風味,鄙宣暗塞不通,乃以所領三十石贈益宣助請.猶不許又以珎節舎知騎馬鞍具貽之乃許.朝廷花主聞之,遣使取益宣将洗浴其垢醜,宣逃隠掠其長子而去.時仲冬極寒之日,浴洗扵城内池中仍合凍死.大王聞之,勑牟梁里人從官者並合黜遣更不接公署,不著黒衣,若爲僧者不合入鍾皷寺中.勑史上偘珎子孫爲枰定户孫標異之.時园測法師是海東髙徳,以牟梁里人故不授僧職.

부산성에 이르러 문지기에게 득오가 어디 있는지 물었다.

"지금 익선의 밭에서 예에 따라 일하고 있습니다."

낭이 밭으로 가서 가지고 온 술과 떡으로 대접하였다.

익선에게 말미를 청하여 함께 돌아가려 하니, 익선이 굳이 막고 허락하지 않았다.

그때 사리 간진이 추화군 능절의 조 서른 섬을 거두어 성안으로 실어 보내던 참이었다.

간진이 낭이 선비를 중히 여기는 풍모를 아름답게 여기고 익선의 꽉 막혀 통하지 않음을 낮게 보아, 이에 제가 맡은 조 서른 섬을 익선에게 주어 청을 도왔다.

그래도 허락하지 않으므로 또 진절 사지의 말과 안장 갖춤을 주니 그제야 허락하였다.

조정의 화주가 듣고 사신을 보내 익선을 잡아 그 더러움을 씻기려 하니, 익선이 달아나 숨으므로 그 맏아들을 잡아갔다.

한겨울 몹시 추운 날이라 성안 못에서 씻기니 곧 얼어 죽었다.

대왕이 듣고 명을 내려, 모량리 사람으로 벼슬하는 이를 모두 내쫓아 다시 관청에 붙이지 못하게 하고 먹물 옷을 입지 못하게 하였다. 만약 승려가 된 이는 종과 북이 있는 절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였다.

사리 간진의 자손을 평정호손으로 삼아 남다르게 표하였다.

그때 원측법사는 해동의 높은 이였으나, 모량리 사람이라 하여 승직을 주지 않았다.

3고갯길을 닦던 거사가 태어나다

初述宗公爲朔州都督使将歸理所,時三韓兵乱以騎兵三千護送之.行至竹㫖嶺,有一居士平理其嶺路.公見之歎羙,居士亦善公之威勢赫甚相感扵心.公赴州理隔一朔夢見居士入于房中,室家同夢.驚恠尤甚翌日使人同其居士安否.人曰“居士死有日矣.”使來还告,其死與夢同日矣.公曰“殆居士誕扵吾家爾.”更發卒修葬扵嶺上北峯,造石彌勒一軀安扵塜前.妻氏自夢之日有娠既誕因名竹㫖.壯而出仕,與庾信公爲副帥統三韓,真徳·太宗·文武·神文四代爲冡宰安定厥邦.初得烏谷慕郎而作歌曰.去隱春皆理米,毛冬居叱沙哭屋尸以憂音.阿冬音乃叱好支賜烏隱,皃史年数就音墮支行齊.目煙迴扵尸七史伊衣,逢烏支惡知乎下是.郎也慕理尸心未行乎尸道尸,蓬次叱巷中宿尸夜音有叱下是.

처음에 술종공이 삭주 도독사가 되어 다스릴 곳으로 가려 할 때, 삼한에 병란이 있어 기병 삼천으로 호송하게 하였다.

가다가 죽지령에 이르니 한 거사가 그 고갯길을 고르게 닦고 있었다.

공이 보고 아름답게 여겨 감탄하였고, 거사 또한 공의 위세가 몹시 빛나는 것을 좋게 여겨 서로 마음에 느꼈다.

공이 고을에 이르러 다스린 지 한 달 남짓에, 꿈에 거사가 방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았는데 아내도 같은 꿈을 꾸었다.

놀라고 괴이함이 더욱 심하여 이튿날 사람을 보내 그 거사의 안부를 묻게 하였다.

사람들이 말하였다. "거사가 죽은 지 며칠 되었습니다."

심부름꾼이 와서 알리니 그 죽은 날이 꿈꾼 날과 같았다.

공이 말하였다. "아마 거사가 우리 집에 태어나려는 것이로다."

다시 군사를 보내 고개 위 북쪽 봉우리에 장사 지내고, 돌미륵 한 구를 만들어 무덤 앞에 모셨다.

아내가 꿈꾼 날부터 아이를 배어 낳으니, 이로 인해 이름을 죽지(竹旨)라 하였다.

자라서 벼슬에 나아가 유신공과 함께 부원수가 되어 삼한을 통합하였고, 진덕·태종·문무·신문 네 대에 걸쳐 재상이 되어 그 나라를 편안히 하였다.

처음에 득오곡이 낭을 사모하여 노래를 지었다.

去隱春皆理米 毛冬居叱沙哭屋尸以憂音 阿冬音乃叱好支賜烏隱 皃史年数就音墮支行齊 目煙迴扵尸七史伊衣 逢烏支惡知乎下是 郎也慕理尸心未行乎尸道尸 蓬次叱巷中宿尸夜音有叱下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