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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성대왕元聖大王

삼국유사 三國遺事 · 일연(一然) · 1281년 (고려 충렬왕 7) · 단락 6 · 한자 1,076자 · 낭독 4.3분

「삼국유사」 기이 제2 「원성대왕」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고려의 승려 일연이 엮은 삼국시대 설화집. 정사가 버린 이야기를 모았다. 단군신화가 실린 가장 오래된 책이다.

1같은 꿈을 두 가지로 풀다

元聖大王伊飱金周元初爲上宰,王爲角干居二宰,夢脫幞頭著素笠,把十二絃琴入扵天官寺井中.覺而使人占之,曰“脫幞頭者失聀之兆,把琴者著枷之兆,入井入獄之兆.”王聞之甚患杜門不出.于時阿飱餘三,或本餘山來通謁,王辝以疾不出.再通曰“願得一見.”王諾之.阿飱曰“公所忌何事.”王具說占夢之由,阿飱興拜曰,“此乃吉祥之夢.公若登大位而不遺我則為公解之.”王乃辟禁左右而請解之,曰“脫幞頭者人無居上也,著素笠者冕旈之兆也,把十二絃琴者十二孫傳世之兆也,入天官井入宫禁之瑞也.”王曰“上有周元何居上位.”阿飱曰“請密祀北川神可矣.”從之.

원성대왕.

이찬 김주원이 처음에 상재였고 왕은 각간으로 두 번째 재상 자리에 있었다.

꿈에 복두를 벗고 흰 갓을 쓰고 열두 줄 가야금을 잡고 천관사 우물 속으로 들어갔다.

깨어나 사람을 시켜 점치게 하니 말하였다. "복두를 벗은 것은 벼슬을 잃을 조짐이요, 가야금을 잡은 것은 목에 형틀을 쓸 조짐이요, 우물에 들어간 것은 옥에 들어갈 조짐입니다."

왕이 듣고 몹시 근심하여 문을 닫고 나가지 않았다.

그때 아찬 여삼이〔어떤 책에는 여산이라 한다.〕 와서 뵙기를 청하니 왕이 병을 핑계로 나가지 않았다.

다시 청하여 말하였다. "한 번 뵙기를 원합니다."

왕이 허락하였다.

아찬이 말하였다. "공이 꺼리는 바가 무슨 일입니까."

왕이 꿈을 점친 까닭을 갖추어 말하니, 아찬이 일어나 절하며 말하였다.

"이는 곧 좋은 꿈입니다. 공이 만약 큰 자리에 올라 저를 버리지 않으신다면 공을 위해 풀어 드리겠습니다."

왕이 이에 좌우를 물리고 풀어 주기를 청하니 이렇게 말하였다.

"복두를 벗은 것은 위에 있을 사람이 없다는 것이요, 흰 갓을 쓴 것은 면류관의 조짐이요, 열두 줄 가야금을 잡은 것은 열두 대 자손이 대를 이을 조짐이요, 천관사 우물에 들어간 것은 궁궐에 들어갈 상서입니다."

왕이 말하였다. "위에 주원이 있는데 어찌 윗자리에 있겠는가."

아찬이 말하였다. "청컨대 몰래 북천의 신에게 제사하면 되겠습니다."

그대로 하였다.

2냇물이 불어 건너지 못하다

未㡬宣徳王崩,國人欲奉周元為王將迎入宫.家在川北忽川漲不得渡.王先入宫即位.上宰之徒衆皆來附之,拜賀新登之主,是為元聖大王.諱敬信金武,盖厚夢之應也.周元退居溟州.王旣登極時,餘山已卒矣召其子孫賜爵.王之孫有五人,惠忠大子·憲平大子·禮英匝干·大龍夫人·小龍夫人等也.大王誠知窮逹之變,故有身空詞䐉歌.〔歌亡未詳.〕

오래지 않아 선덕왕이 세상을 떠나니, 나라 사람들이 주원을 받들어 왕으로 삼으려 궁으로 맞아들이려 하였다.

주원의 집이 냇물 북쪽에 있었는데 홀연 냇물이 불어 건너지 못하였다.

왕이 먼저 궁에 들어가 즉위하였다.

상재의 무리가 모두 와서 붙어 새로 오른 임금에게 하례하니, 이가 원성대왕이다.

이름은 경신이며 대개 꿈의 응함이 두터웠던 것이다.

주원은 물러나 명주에 살았다.

왕이 이미 왕위에 올랐을 때 여산은 이미 죽었으므로 그 자손을 불러 벼슬을 주었다.

왕의 손자가 다섯이니 혜충태자·헌평태자·예영 잡간·대룡부인·소룡부인 등이다.

대왕이 참으로 궁하고 통하는 변화를 알았으므로 「신공사뇌가(身空詞腦歌)」가 있다.〔노래가 없어져 자세하지 않다.〕

협주 1

歌亡未詳.

노래가 없어져 자세하지 않다.

3일본이 만파식적을 사려 하다

王之考大角干孝讓傳祖宗万波息笛乃傳扵王.王得之故厚荷天恩其徳逺輝.貞元二年丙寅十月十一日,日本王文慶〔按日本帝紀,第五十五年文徳王疑是也.餘無文慶.或夲云是王大子.〕舉兵欲伐新羅,聞新羅有万波息笛退兵.以金五十兩遣使請其笛.王謂使曰“朕聞上世真平王代有之耳,今不知所在.”明年七月七日,更遣使以金一千兩請之曰,“寡人願得見神物而還之矣.”王亦辝以前對以銀三千兩賜其使,還金而不受.八月使還藏其笛扵内黃殿.

왕의 아버지 대각간 효양이 조상 대대로 전해 온 만파식적을 왕에게 전하였다.

왕이 이를 얻었으므로 하늘의 은혜를 두터이 입어 그 덕이 멀리 빛났다.

정원 이년 병인년 10월 열하룻날에 일본 왕 문경이〔『일본제기』를 살피건대 쉰다섯째 문덕왕이 아마 이인 듯하다. 그 밖에 문경이라는 이는 없다. 어떤 책에는 이 왕의 태자라 한다.〕 군사를 일으켜 신라를 치려 하다가, 신라에 만파식적이 있다는 말을 듣고 군사를 물렸다.

금 쉰 냥으로 사신을 보내 그 피리를 청하였다.

왕이 사신에게 일렀다. "짐이 듣건대 윗대 진평왕 대에 있었다 할 뿐이요 지금은 있는 곳을 알지 못한다."

이듬해 7월 초이렛날에 다시 사신을 보내 금 천 냥으로 청하며 말하였다. "과인은 그 신령한 물건을 보고 돌려보내기를 원합니다."

왕이 또한 앞서와 같이 사양하고, 은 삼천 냥을 그 사신에게 주고 금은 돌려주어 받지 않았다.

8월에 사신이 돌아가자 그 피리를 내황전에 갈무리하였다.

협주 1

按日本帝紀, 第五十五年文徳王疑是也. 餘無文慶. 或夲云是王大子.

『일본제기』를 살피건대 쉰다섯째 문덕왕이 아마 이인 듯하다. 그 밖에 문경이라는 이는 없다. 어떤 책에는 이 왕의 태자라 한다.

4물고기로 바뀐 세 용

王即位十一年乙亥,唐使來京留一朔而还.後一日有二女進内庭奏曰,“妾等乃東池·青池〔青池即東泉寺之泉也.寺記云“泉乃東海龍往來聽法之地.寺乃真平王所造,五百聖衆五層塔并納田民.”〕二龍之妻也.唐使将河西國二人而來,呪我夫二龍及芬皇寺井等三龍變為小魚筒貯而敀.願陛下勑二人留我夫等護國龍也.”王追至河陽舘親賜享宴,勑河西人曰,“爾軰何得取我三龍至此.若不以實告必加極刑.”扵是出三魚獻之,使放扵三處,各湧水丈餘喜躍而逝.唐人服王之明聖.

왕이 즉위한 지 열한 해 을해년에 당나라 사신이 서울에 와서 한 달을 머물다 돌아갔다.

그 뒤 하루는 두 여인이 궁 안뜰에 나아와 아뢰었다.

"저희는 곧 동지와 청지〔청지는 곧 동천사의 샘이다. 절의 기록에 이르기를 '샘은 동해 용이 오가며 법을 듣던 자리다. 절은 진평왕이 지었고 오백 성중과 오층탑과 아울러 밭과 사람을 바쳤다' 한다.〕 두 용의 아내입니다.

당나라 사신이 하서국 사람 둘을 데리고 와서, 제 남편인 두 용과 분황사 우물의 용까지 세 용에게 주문을 걸어 작은 물고기로 바꾸어 통에 담아 돌아갔습니다.

원컨대 폐하께서는 그 두 사람에게 명하여 제 남편들, 곧 나라를 지키는 용을 머물게 해 주소서."

왕이 하양관까지 뒤쫓아 몸소 잔치를 베풀고 하서 사람들에게 명하였다.

"너희가 어찌 우리 세 용을 가져와 여기에 이르렀느냐. 만약 사실대로 알리지 않으면 반드시 지극한 형벌을 더하리라."

이에 물고기 셋을 내어 바치니, 세 곳에 놓아주게 하였다. 각각 물이 한 길 남짓 솟구치며 기뻐 뛰놀며 갔다.

당나라 사람이 왕의 밝고 거룩함에 탄복하였다.

협주 1

青池即東泉寺之泉也. 寺記云 “泉乃東海龍往來聽法之地. 寺乃真平王所造, 五百聖衆五層塔并納田民.”

청지는 곧 동천사의 샘이다. 절의 기록에 이르기를 '샘은 동해 용이 오가며 법을 듣던 자리다. 절은 진평왕이 지었고 오백 성중과 오층탑과 아울러 밭과 사람을 바쳤다' 한다.

5자라가 준 구슬

王一日請皇龍寺,注或本云華嚴寺又金剛寺香,盖以寺名經名光混之也,釋智海入内稱華嚴經五旬.沙弥妙正每洗鉢扵金光井〔因大賢法師得名.〕邊,有一黿浮沉井中,沙弥每以殘食餽而爲戱.席将罷沙弥謂黿曰,“吾徳汝日久,何以報之.”隔數日,黿吐一小珠如欲贈遺.沙弥得其珠繋扵帶端.自後大王見沙弥愛重,邀致内殿不離左右.時有一匝干奉使扵唐,亦愛沙弥請與俱行,王許之.同入扵唐,唐帝亦見沙弥而寵愛,承相左右莫不尊信.有一相士奏曰,“審此沙弥無一吉相,得人信敬必有所將異物.”使人撿看得帶端小珠.帝曰“朕有如意珠四枚,前年失一个.仐見此珠乃吾所失也.”帝問沙弥,沙弥具陳其事.帝内失珠之日與沙弥得珠同日.帝留其珠而遣之.後人無愛信此沙弥者.

왕이 하루는 황룡사의 승려 지해를 청하여 궁 안에서 『화엄경』을 오십 일 동안 강하게 하였다.

사미 묘정이 늘 금광정〔대현법사로 인하여 얻은 이름이다.〕 가에서 바리를 씻었는데, 자라 하나가 우물 속에 떴다 가라앉았다 하였다.

사미가 늘 남은 밥을 주며 장난삼아 놀았다.

자리가 끝나려 할 때 사미가 자라에게 말하였다. "내가 너에게 덕을 베푼 지 오래인데 무엇으로 갚겠느냐."

며칠을 사이에 두고 자라가 작은 구슬 하나를 토해 주려는 듯하였다.

사미가 그 구슬을 얻어 허리띠 끝에 매었다.

이 뒤로 대왕이 사미를 보고 아끼고 중히 여겨 내전으로 맞아들여 곁에서 떠나지 않게 하였다.

그때 한 잡간이 당나라에 사신으로 가는데, 역시 사미를 사랑하여 함께 가기를 청하니 왕이 허락하였다.

함께 당나라에 들어가니 당나라 임금도 사미를 보고 총애하였고, 승상과 좌우가 높이 믿지 않는 이가 없었다.

한 관상 보는 이가 아뢰었다. "이 사미를 살피니 좋은 상이 하나도 없는데 사람의 믿음과 공경을 얻으니, 반드시 지닌 남다른 물건이 있을 것입니다."

사람을 시켜 살피니 허리띠 끝의 작은 구슬을 얻었다.

임금이 말하였다. "짐에게 여의주 넉 낱이 있었는데 지난해에 하나를 잃었다. 이제 이 구슬을 보니 곧 내가 잃은 것이다."

임금이 사미에게 물으니 사미가 그 일을 갖추어 말하였다.

임금이 궁 안에서 구슬을 잃은 날과 사미가 구슬을 얻은 날이 같았다.

임금이 그 구슬을 두고 돌려보냈다.

이 뒤로 이 사미를 사랑하고 믿는 이가 없었다.

협주 1

因大賢法師得名.

대현법사로 인하여 얻은 이름이다.

6능과 추봉

王之陸在吐含岳西洞鵠寺〔今崇福寺〕,有崔致逺撰碑.又刱報恩寺又望徳樓,追封祖訓入匝干爲興平大王,曽祖義官匝干爲神英大王,髙祖法宣大阿干爲玄聖大王.玄聖之考即摩叱次匝干.

왕의 능은 토함산 서쪽 골짜기 곡사에〔지금의 숭복사다.〕 있으며 최치원이 지은 비가 있다.

또 보은사를 세우고 망덕루를 지었다.

할아버지 훈입 잡간을 추봉하여 흥평대왕이라 하고, 증조 의관 잡간을 신영대왕이라 하고, 고조 법선 대아간을 현성대왕이라 하였다.

현성대왕의 아버지는 곧 마질차 잡간이다.

협주 1

今崇福寺

지금의 숭복사다.